[오마이뉴스 정민호 기자]
 
ⓒ2006 문학동네
프라하, 어느 순간부터 이곳이 인기 여행지로 부상하고 있다. 비교적 싼값에 명소들을 볼 수 있기 때문일까? 아니면 개성 강한 문학가들의 발자취 때문인가? 어쨌든 ‘프라하’를 말하는 책들은 끊이지 않고 나온다. 얼마나 프라하가 좋은지 경쟁이라도 붙은 듯이.

실비 제르맹의 <프라하 거리에서 울고 다니는 여자>는 어떨까? 장르가 소설임에도 ‘프라하’ 때문에 눈에 띈다. 제목을 보면 궁금증이 생긴다. ‘그녀’는 왜 울고 다닐까? 그 좋다는 프라하 거리에서? 궁금증을 갖고 책을 펼쳐본다.

‘그녀’는 누구일까? 모른다. 저자는 엄청나게 큰 거인으로 다리를 쩔뚝거리는 그녀가 책 속으로 들어왔다고 말한다. 또한 그녀가 배회하고 있다고 알려준다. 배회라니, 어디서? 프라하다. 그녀는 생각지도 못한 장소에 소리 소문 없이 나타났다가 사라진다. 도대체 그녀는 누굴까? 알 수 있는 것은 그녀가 나타나는 곳은 오직 프라하라는 것 뿐이다.

그녀가 나타나면 이상한 일이 일어난다. 이상한 소리가 들리고, 평소에는 진지하게 보이지 않던 것들을 보게 된다. 그리고 소리를 듣는다. 울음 소리다. 그녀는 왜 우는 것일까? 그녀에게 물어보고 싶다. 하지만 불가능하다. 그녀의 울음은 보통의 사람들이 우는 것과 다르다. 그녀의 울음은 그녀가 우는 것이 아니라 그녀 내면의 것이 우는 것과 같다.

“사실 그 여자는 전혀 눈물을 흘리는 것이 아니었다. 마치 살 속에서 흐르는 피가 귀에 들리지 않게 잉잉대는 소리가 문득 들리게 된 것인 양, 물기 있는 속삭임이 그녀의 몸 저 속으로부터 나직하게 새어나오는 것이었다. 그것은 그녀의 심장이 뛰는 소리였을까? 그것은 그녀의 살이 속에서 떠는 소리였을까? 아니면 살갗이 떨리는 소리였을까? 그렇지만 그 무슨 이기지 못할 고통 때문에?”

-책 속에서.


그녀를 만나는 것은 퍼즐 조각을 맞춰가는 것과 같다. 하나의 사실들을 하나씩, 혹은 둘씩 알아간다. 다섯 번째 만남이었다. 그녀를 만난 그때 어린아이의 시를 듣는다. 테레진의 어린아이다. 테레진! 세계 2차 대전 당시 나치가 수용소로 사용했던 장소로 약 14만 명의 유대인이 수용됐던 곳이다. 3만여 명이 여기서 죽었다. 9만 여명이 아우슈비츠 등으로 이송됐다. 전쟁이 끝났을 때 겨우 2만 여명이 살아남은 곳이 바로 테레진이다.

“미풍은 한 어린아이가 쓴 그 시의 낱말들을 아주 낮게, 아주 아주 낮게 웅얼거리고 있었다. 테레진의 어린아이가, 거기에 있지 않은 지 벌써 오래된 어린아이가 쓴. 끝내 어른이 되지 못한, 그러나 사람들이 재에게, 바람에게, 구덩이에게, 망각에게 넘겨줘버린 한 작은 어린아이가 쓴.”

-책 속에서.


그녀는 누굴까? 누구이기에 프라하의 아픈 과거를 보여주는 것일까? 혹시, 그녀가 곧 프라하가 아닐까? 아니, 영혼이라는 말을 사용하기로 허락한다면 프라하의 영혼은 아닐까?

“세기에 세기를 거듭하는 동안 그토록 많은 사라진 몸들, 난파한 남자 여자들, 맨발로 환장하여 눈이 뒤집힌 아이들을 그 헌 누더기의 주름주름마다 품고 있어야 하는데, 과거의 저 끝으로부터 가장 가까운 현재에 이르기까지 그토록 무거운 역사의 몸을 떠메고 가야 하는데 그 거인여자가 어찌 다리를 쩔뚝거리지 않을 수 있겠는가.”

-책 속에서.


그녀가 정확히 무엇인지는 이제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그녀를 따라가는 건 프라하의 아픈 기억 속으로 스며들어 간다는 것일 게다. 그렇다. <프라하에서 울고 다니는 여자>의 책장을 여는 건, 상처를 공유하겠다는 주문을 외는 것이다.

좋다고 소문난 프라하를 기대했다가 되레 아팠던, 그리고 지금도 아픈 프라하를 마주하는 건 유쾌한 일이 아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 만남을 멈춰야 할까? 내 것이 아니더라도 ‘고통’을 본다는 건 결코 반가운 일이 아니다. 갈등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처음과 같은 질문이지만 의미가 달라진 의문 때문에 갈등을 참아낸다. 그녀는 ‘왜’ 울고 다닐까, 하는 궁금증이 계속 그녀를 쫓게 만든다.

“한순간, 아주 짧은 한순간, 도시 전체가 거인여자의 무릎 위에서 조용히 흔들리고 그녀의 품안에서 포근히 감싸였다. 그리고 그녀의 배에서, 대지와 그 뿌리의 깊은 태 속에서, 우유맛이 나는 눈물의 종소리를 내는 심장에서 솟아오르는 노래가 그 도시를 쓰다듬었다.”

-책 속에서.


그녀는 왜 울고 다니는가? 위로? 연민? 무엇이라고 불러도 상관없다. 울고 있는 그녀가 있음으로 해서 짧은 순간이라도 그 차가운 곳을 따뜻하게 보듬어준다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다. 그녀가 있음으로 해서, 그녀가 울고 있기 때문에 오늘의 프라하는 어제의 프라하를 마주보며 서로를 감싸 안을 수 있다. 울면서, 웃으면서.

<프라하 거리에서 울고 다니는 여자>는 묘한 울림이 있다. 그래서인지 프라하를 홍보하는 목소리에 비하면 작고, 가냘프지만 마음을 이끄는 데는 무엇에 비해도 부족함이 없다. 작품의 중간 중간에 언급된 ‘프라하의 것’들을 찾아봐야 한다는 수고로움이 있지만 그런 것 따위는 쉽게 잊게 만드는 고혹적인 울림이다. 어제와 오늘의 프라하와 함께 있기에 가능한 것일까? 프라하, 그곳의 향기를 잔뜩 불러내고 있다.

/정민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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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속에 수장된 뒤 부활하는 말들을 꿈꾼 적이 있는가.”

손택수씨(36)가 펴낸 두번째 시집 ‘목련전차’(창비)에 수록한 ‘오징어 먹물에 붓을 찍다’의 한 구절이다. 오징어 먹물로 쓴 글씨는 감쪽같이 사라지는데 바닷물에 담그면 되살아난다는 것. 손시인은 정약전의 ‘자산어보’에 나오는 이 이야기를 시쓰기의 운명이자 자세로 삼은 듯하다.

손씨는 ‘오징어 먹물’의 비유에 대해 “정약용 형제들은 추방과 몰락 속에서 갱신한 진정성을 토대로 결국 역사로 귀환했다”며 “우리 시대의 문학도 망각의 두려움 대신에 죽음을 딛고 생환하는 불멸을 꿈꿔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대부분의 시인은 사는 만큼 말을 한다. 몸으로 감당한 이상으로 말하면 대개 들켜버린다. 그가 아무나 할 수 없는 무서운 말을 조심스럽되 떨지 않고 할 수 있는 이유는 책 맨 뒤에서 찾아진다. “아버지가 그랬다,/시란 쓸모없는 짓이라고.//어느날 아버지가 다시 말했다,/기왕이면 시작했으니 최선을 다해보라고.//쓸모없는 짓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게 나의 슬픔이고 나를 버티게 한 힘이다.”(‘시인의 말’ 전문)

그는 “아버지 말씀은 제 유일한 시론(詩論)”이라며 “이 세상에 와서 할 수 있는 유일한 것, 잘 못하지만 그래도 해야만 하는 게 있다는 것이 너무 고맙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정말 시를 잘 써야 하는데 부끄럽다”고 덧붙였다.

그는 전업시인이다. 한 편의 시일지라도 그의 분신에 불멸의 생명을 남겨주고 싶은 위대한 망집의 소유자이자, 그 대가로 차가운 현실의 터널을 오체투지로 통과해야 하는 경제적 금치산자다. 이번 시집은 그런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의 양극단적 팽팽한 줄다리기 사이에서 무게중심을 잡고 용맹정진한 투혼의 흔적들로 읽힌다.

이 시집의 세계는 표제작이 얼추 안내해준다. 목련이 상징하는 자연·고향·이상향, 전차가 함의하는 문명·도시·일상이라는 이질적 두 축을 겹눈으로 포착한다. 그 긴장 속에서 그의 상상력이 목련처럼 꽃피고 전차처럼 레일을 달린다. 급기야 “꽃들이 전차 창문을 열고 손을 흔든다”(‘목련전차’ 중). 현실과 일상을 뚫고나와 손 흔드는 자연의 탄력과 탄성을 뽑아내는 것이다. 그 ‘꽃전차’야말로 시인에게는 “나의 슬픔이고 나를 버티게 한 힘”이 아닐까.

시집의 주된 공간은 집이다. 떠돎의 삶을 살았던 그에게 집은 ‘결핍된 충만’의 공간. 그는 “존재의 근원인 몸의 확장이 집이요, 그 집의 확장이 우주라고 본다”면서 “그런데 몸과 우주의 매개인 집이 다 병들어 있으므로 제발 내 몸 안팎이 집을 통해 우주와 맞장구쳤으면 좋겠다”는 뜻을 피력했다.

실제 그는 ‘집장구’라는 시에서 새 창호지를 바른 날 창호문 안팎의 경계가 탱탱해져서 수저 부딪치는 소리, 새소리·닭울음소리도 한결 좋았을 뿐더러 “그런 날이면 코 고는 소리에도 정든 가락이 실려 있었다”고 노래했다.

시집은 또한 촉각·시각 이미지가 역력하다. 그는 “영산강 물 속에서 장어가 허벅지 사이를 미끌 지나가는 감각과 담양 들판을 수천마리 새떼가 아침 저녁으로 검게 뒤덮으며 날던 이미지가 내 혈액 속에 남아있다”고 밝혔다.

그는 전남 담양 영산강 수원지인 용소 부근에서 태어나 네다섯살 때 부모를 따라 부산으로 이사갔다. 꼬마 손택수는 근대도시 부산에 적응하지 못한 채 “최초의 상처”를 받았다. 여동생을 때리며 부모에게 떼쓰고 도둑질을 했다. 결국 예닐곱살 때 가족과 헤어져 (외)조부모가 사시는 담양으로 홀로 귀향했다.

그는 “그때 2년이 내 시를 결정한 황금기였다”면서도 “자연이 그저 아름답지만은 않은 ‘서러운 풍경’이었고, 나의 감각과 감수성은 그리움으로 요약됐다”고 말했다. 고졸 이후 때밀이·구두닦이·공장일 등 ‘밑바닥’ 생활을 두루 경험했으며 군 제대 후 25살 때 대학에 갔다.

시집에는 그런 이력이 바닷물의 소금처럼 녹아있다. 농경문화적 상상력과 곡진한 가락으로 읊은 ‘대지=할머니=잃어버린 고향’ 이야기, 근대도시의 갯물과 바닷물처럼 짜디짠 일상과 생활, 영산강 대신 바다에서 발견한 새로운 모성적 세계가 차례로 펼쳐진다. 손시인은 “결국 흙에서 물로 가는 형국이므로 앞으로 내 시는 ‘진흙’이 될 것 같다”고 예고했다.

손시인은 농경문화적 상상력과 동양적 사유가 어우러진 서정성 짙은 시편들에서 빼어난 성취를 일구고 있다. 가족과 새와 먼지가 다 그와 혈연관계에 있다. 욕망이 흘러넘치는 세속도시의 진흙 속에서도 연꽃을 피워낼지 주목된다. 그는 현재 경기 일산에서, “구멍난 단풍나무 팬티”를 입고 사는 아내와 단둘이 살고 있다.

“세상에 천리향이 있다는 것은/세상 모든 곳에 천리나 먼/거리가 있다는 거지/한 지붕 한 이불을 덮고 사는/아내와 나 사이에도/천리는 있어,/(중략)/등을 맞댄 천리 너머/(후략).”(‘아내의 이름은 천리향’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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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렘과 두려움이 공존하는 도전은 젊은이들의 특권이다. 배낭을 메고 자전거 하나에 몸을 의지해 340일 동안 유럽을 헤짚고 다닌 청년 정재헌의 용기있는 도전을 담았다.

한국에서 고등학교를 꼴찌로 졸업하고 미국으로 겁없는 유학을 떠난 그는 버클리 음대의 장학생이 됐다. 그러나 그의 도전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1년여의 준비 끝에 저자는 “텐트와 침낭을 가지고 있는데 마당에 텐트를 치거나 마루 바닥에 침낭을 펼 수 있게 해 주신다면 대단히 고맙겠습니다”라고 쓰인 종이와 돈이 없을 때 길거리 공연을 위한 어쿠스틱 기타, 여행기를 쓰기 위한 노트북 컴퓨터, 사진기 등을 자전거에 싣고 런던행 비행기에 몸을 맡겼다.

저자는 강가, 농가의 처마 밑, 길거리, 학교 운동장, 병원 응급실, 빈민가와 노숙자 숙소 등에서 잠을 자면서 자신과의 싸움을 했다.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새로운 것을 경험하면서 느낀 기쁨과 외로움 그리고 고통을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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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김현자 기자]
 
ⓒ2006 해피북스
무열왕릉, 천마총, 무용총, 김유신묘…. 초등학교 수학여행 때 갔던 곳이거나 교과서를 통하여 많이 들었던 무덤 이름들이다. 게다가 내가 살고 있는 곳 가까이에 왕릉골이 있고 서오릉과 서삼릉, 공릉 등 수많은 왕릉들이 있다. 그런데 나는 정작 이 무덤들의 이름에 얽힌 내력도, 누구의 무덤인지도 모른다. 왕릉이 왜 중요한지도 몰랐다.

왕릉에 대한 상식이 없다보니 역사관련 책을 읽으면서 수도 없이 만나는 왕릉들이나 사극을 통하여 알게 되는 무덤 이름들이 잠깐 기억되다가 잊기 예사였다. 그다지 중요할까 싶건만, 최근 우리 아이들은 유치원이나 학교에서 체험학습으로 왕릉에 자주 가곤 하였다.

‘아이들 데리고 갈 곳이 그렇게 없나? 왕릉이 뭐 그리 중요하다고 어린아이들을 걸핏하면 왕릉에 데리고 가는데? 뭐 배울 것 있다고. 여기 저기 아이들 데리고 다닐 곳도 많은데….’

난 솔직히 이런 부끄러운 생각을 했다. 그런데 요즘 박물관에 자주 가면서 유물이 나온 무덤의 이름을 자주 접하게 되었고, 역사를 제대로 알기 위해선 왕릉에 대한 줄기를 간추려 볼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다.

이런 내력으로 <조선의 왕릉>이란 책을 찾아 들었는데, 왕릉에 대한 기본적이고 핵심적인 지식과 왕릉이 아우르고 있는 역사를 접할 수 있어서 여러모로 만족스러웠다.

무덤의 이름 어떻게? ‘능’은, ‘총’은 무엇? ‘고분’은?

<조선의 왕릉>은 조선왕실의 무덤에 관한 이야기다. 릉(능)은 무엇인가. 능에 묻힐 수 있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이며 왕릉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왕실 무덤의 종류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가. 무덤의 치장물(홍살문·무인석·정자각)들은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가.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조선의 왕릉은 어떤 의미일까 등이 주제다.

그렇다고 조선의 왕릉만이 주제는 아니다. 조선의 왕릉을 알자면 고구려나 백제, 신라 등의 무덤에 대해서도 당연히 알아야 할 것이다. 조선만 왕의 무덤을 능이라고 부른 것은 아니다. 우리가 비교적 어렸을 때부터 잘 알고 있는 무열왕릉이 백제 무열왕의 것이고 보면. 이처럼 자연스럽게 관계되는 이야기를 연결시켜 나가고 있어서 조선의 왕릉만이 아닌 우리나라 왕의 무덤들에 대한 전반전인 지식을 폭넓게 아울러 볼 수 있다.

사실 참 궁금했다. 어떤 무덤에는 ‘릉’을 붙이고, 어떤 무덤에는 ‘총’을 붙이는 것인지, 함부로 붙이지는 않을 것인데 그 기준이 무엇인지. 그리고 ‘릉’이나 ‘총’과는 달리 '고분'이라고 붙이는 이유는 무엇인지….

고구려 백제 신라 고려 등도 왕의 무덤을 ‘능’이라 불렀다. 조선의 왕릉이 당시의 사람들에 의해 붙여진 묘호(왕릉 이름)를 기록한 근거로 부른다면, 그 이전의 무덤들은 발굴당시 무덤의 사정과 많은 관계가 있다. 어떤 모습인가. 무엇이 나오는가에 의해 릉이 되고 총이 되고 고분이 된다.

발굴 당시에 어떤 왕이 묻혔는가를 확실하게 알 수 있는 유물이 출토되면 무열왕릉처럼 ‘릉’을 붙인다. 그러나 왕의 무덤인 것은 추정되지만 누구의 무덤인지 밝혀지지 않으면 ‘총’을 붙인다. 물론 이때 그 무덤에서 나온 유물의 특성을 살려 이름을 붙인다. 천마도가 나와서 천마총, 무용도가 나와서 무용총, 각저총에서는 씨름도가 나왔다. 각저는 씨름을 뜻한다.

발굴 당시 무덤의 주인이 누구인지 알만한 유물이 나오면 ‘릉(능)’이 되고 누구의 무덤인지 확실하지 않지만 역사학적으로 중요한 유물이 나오면 ‘총’이 된다. 그렇다면 고분은? 역사학적으로 중요한 무덤이지만 보편적인 유물만 나오고 누구의 무덤인지를 알 수 있는 확실한 유물이 나오지 않으면 고분, 고분이 모여 있으면 고분군이 된다.

이 책은 이런 설명부터 해주고 있다. 이렇듯 조선의 왕릉만이 아닌 우리나라 무덤에 대해 확실하게 알 수 있는 이 책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다. 첫 번째가 왕릉에 대한 전반적인 이야기라면 두 번째 이야기는 앞장에서 배운 왕릉에 대한 전체적인 지식을 바탕으로 직접 왕릉을 찾아가 확인해보는 형태다.

선릉에 직접 찾아가 체험해보는 것. 선릉의 홍살문과 참도, 무덤을 지키고 있는 무인석, 제사를 지내는 정자각 등을 보면서 왕릉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아본다. 이런 것을 토대로 현장답사일지를 효율적으로 쓰는 법, 학년별 교과서별로 연결된 현장 학습장소나 박물관 등을 소개하고 있는 알찬 부록이다.

조선의 왕릉? 아이들이 자칫 딱딱해 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왕릉을 둘러싼 재미있는 이야기로 아이들을 역사 속으로 흥미진진하게 이끌고 있다. 이 책은 현직 초등학교 선생님 400명이 추천한 시리즈 중 한 권으로 알찬 체험학습 길잡이다. 사극을 보면서 다소 낯설었던 역사에 대한 상식과 용어들도 틈틈이 실었다.

갈비집 간판에 능 이름이 많은 이유는?

'갈비 집 간판에 능 이름이 많은 이유는? 이런 이야기도 있었다. 자주 접하면서도 궁금해 하지 않고 예사로 그런가보다 했는데, 갈비집 간판에는 뜻밖에도 조선의 사회풍습, 법까지 함께 들어 있었다. 이렇게 왕릉은 우리들의 생활과 별개라고 생각하고 살았음에도 지금 우리의 생활과 이어지고 있었다.

역사와 왕릉에 관심 없어 하는 아이에게 이런 질문을 슬쩍 흘려보는 것은 어떨까? 또 어떤 이야기들이 있을까?

△무덤 하나 만드는데 5개월, 5개월 동안 시체는 어떻게 처리하고 보관했을까? △왕릉은 몇 m까지 파내려 갔으며 동원된 인원은 모두 몇 명일까? △모든 왕실의 무덤은 모두 왕릉일까? △무덤에 붙이는 원은 무엇일까? △병풍석이나 무인석을 만드는 이유는 무엇일까? △시신에 90여벌의 옷을 입힌다고? △600년 동안 단 한 번도 마른 적 없이 갈대가 무성하게 자라는 건원릉의 특별한 사연은?

당시의 국가 위상이나 풍습에 따라, 왕의 업적이나 신분에 따라 무덤은 달라졌다. 따라서 왕릉을 알면 역사를 알 수 있다. 아이들이 역사를 폭넓고 깊이 있게, 제대로 알려면 왕릉과 제대로 만나야 한다. 교과서를 통하여 활자의 지식만 배운다든지, 식물도감 한 권을 외우는 것보다 직접 나가서 만나보고 경험하는 것, 꽃 한 송이 바라보고 만져보는 것이 더 생생하고 확실한 교육이 될 것이다.

아이가 자라면서 겪는 모든 체험은 인성을 올바르게 형성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 책은 어른들과 아이들이 우리의 역사와 왕릉을 알아 가는데 중요한 길잡이가 될 것이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 몇 번을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는 말이다.

'태릉갈비', '홍릉갈비'... 왕릉 이름과 갈비집은 어떤 연관?

거리를 가다보면 능 이름을 붙인 갈비집 간판을 자주 만날 수 있다. 태릉갈비, 홍릉갈비 등등. 왕릉 이름과 갈비집이 어떤 연관이 있을까?

'농자천하지대본'이라. 농업을 중시하던 조선에서는 사람과 함께 농사일을 하는 소를 함부로 하지 못했다. 자신의 재산이어도 나라의 허락 없이는 절대로 잡아먹지 못했으며 도축되는 소는 당연히 허가를 받고서 가능했던 것.

하지만 허가 없이 소를 잡는 경우가 있었는데 바로 능제를 지내는 경우였다. 능제는 개인의 조상에게 지내는 제사가 아니라 능에서 지내는 제사. 능제 음식으로 소고기가 쓰였고 이 능제 덕분에 왕릉 주변에 사는 사람들은 소고기 맛을 볼 수 있었다.

소고기 맛을 알게 되자 좀 더 맛있게 먹는 법을 알게 되고, 능제를 둘러싼 왕릉 주변의 소고기 맛이 유명해지면서 능이름을 내건 요리집이 하나 둘씩 생겨나 오늘에 이르고 있는 것.(23p 내용 중에서)

▶감수자 이이화 - 민족문화추진회, 서울대 규장각 등에서 근무, 성심여대 등에서 강의. 현재 역사문제연구소 소장, <역사비평>편집인으로서 우리나라 근 현대사 연구를 위한 사업과 동학 100주년사업을 이끌기도. 저서로 <동학농민전쟁 인물열전> <이야기 인물한국사> <조선후기 정치사상과 사회변동> <이야기 인물한국사> <허균> 등.

▶글쓴이 손민호- 성군관대 역사교육학과 졸업. 현재 수원영복여고에서 역사를 가르치고 있다. 답사를 좋아하여 틈틈이 답사. 학생들에게 답사경험과 지식을 들려주는 것을 수업의 원칙으로 하고 있다고.

▶그림 그린 김순남- 한국화 공부. 그림그림책으로 <도련님> <심생전> <허생몽유록><조선왕조실록><남산한옥마을> 등이 있다. 현재 mqpm에 소속되어 그림을 그리고 있다. / 김현자


/김현자 기자


덧붙이는 글
<조선의 왕릉-왕과 왕비가 잠들어 있는 곳>

-손민호 글/김순남 그림/이이화 감수/해피북스 2006년 5월 4일/7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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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인생 - 오드리 헵번
알렉산더 워커 지음, 김봉준 옮김 / 달과소 / 200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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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혹적인 입술을 갖고 싶으면,
친절한 말을 하라.
사랑스러운 눈을 갖고 싶으면,
다른 사람의 좋은 점을 보아라.
날씬한 몸매를 갖고 싶으면,
네 음식을 배고픈 사람들과 나눠라.
윤기 나는 머리카락을 갖고 싶으면,
하루에 한 번 아이의 손으로 쓰다듬게 하라.
아름다운 자세를 갖고 싶으면,
네가 결코 혼자 걷지 않을 것임을 명심하면서 걸어라.

기억하라.
만약 네가 도와줄 수 있는 손이 필요하다면,
너의 팔 끝에 달린 손을 이용해라.
네가 더 나이를 먹는다면,
너의 손이 두 개란 걸 알게 될 것이다.
한 손은 너 자신을 위한 손이고,
다른 한 손은 남을 위한 손이다.

1992년 크리스마스이브에 오드리 헵번이 아들 숀에게 들려준 'Beauty Tip' 중에서

=>예전에도 읽었던 글인데, 다시 이 글을 만나니 마음이 찡하네요.
현명한 그녀의 모습을 볼수 있어 좋았습니다.-.쪽

"공주가 드디어 여왕이 되었다. 영화에서뿐만 아니라…."

그레고리 펙-.쪽

그녀는 자신을 만지던 한 아이를 회상했다. 아이의 손이 닿았을 때, 마치 병아리 한 마리가 손바닥 위에 발톱 달린 발을 올려놓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아이의 팔은 가늘면서도 단단했지만, 피부를 통해 아무 감촉도 느낄수 없었다.

"그런데 가장 심한 것은 말이죠... 그러니까 그 아이의 팔은 전혀 무게가 느껴지지 않았다는 점이에요. 아이의 팔이 부러지지 않을까 겁이 날 정도로요. 나는 큰 충격을 받았어요. 어린 시절을 포함해서 내 인생 전체를 통해 그 어떤 경험도, 이 사건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알려주지 못했어요. 만야 한 아이가 넘어지면 그냥 일으켜 세워주면돼요. 그건 간단하죠. 그러나 거기서는 아이를 위로하기 위해 안아주기가 겁나요. 안아주어도 마치 아무것도 안고 있지 않은 것 같은 느낌을 받기 때문이죠..."-.쪽

오드리의 눈에 펼쳐진 풍경은 어디를 보아도 마치 황달에 걸린 것처럼 황색으로 변해 버린 황량한 땅뿐이었다. 거기 사는 사람들처럼 그 땅도 자신을 죽이려고 기를 쓰는 가뭄의 신 외에는 모든 것으로부터 격리되어 있었다.
오드리는 몇 시간 동안 쉬지 않고 여행했다. 그녀는 그 몇 시간의 여행이 사람들의 운명을 바라보는 자신의 시각을 완전히 바꿀 수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중략)
5백만 명의 사람들이 기아와 가뭄으로 죽음 직전에 있었다. 그중 절반은 어린아이였다.
-.쪽

카메라 앞에서 그토록 자연스럽게 사랑을 호소하는 눈빛을 만들던 두 눈은, 이제는 주인이 보고 싶은 것을 크게 확대해서 보여주는 커다란 안경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았다. 이제는 화장도 안 하지만, 맨 얼굴이 오히려 깨끗하고 가식이 없었다. 에티오피아의 더운 열기 속에서 오드리에게 허락된 사치의 전부는 한 시간에 한 번 바르는 자외선 차단 크림뿐이었다.
그녀는 아이의 눈앞으로 손가락을 가져가 그 아이가 맹인인지 아닌지 확인했다. 소년의 눈동자는 그녀의 손가락을 따라 움직였다. 그러나 그의 얼굴은 생동감도 호기심도 표현하지 않았다.
그녀는 나중에 이 사건을 무대 공포에 비유했다. 이번에 느낀 공포는 자신의 대사를 잊어버릴까봐 두려워하는 것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그토록 심한 정적을 깨뜨릴 수 있는 어떤 한 마디 대사도 없다는 무기력함에서 야기된 것이었다.
"나는 아이들을 돌보면서 보낸 내 인생을 생각해 보았어요. 그리고 지금은 집을 떠나 여기에 있는 이 아이들을 보게 되었어요. 나는 아무것도 해줄 수 없었어요."
자신의 느낌을 표현해 줄 그 어떤 말도 생각나지 않아 오드리는 그저 아이에게 자신의 손을 뻗었다. 이 행동이 그녀의 감정을 폭발시켰다.
"나는 울었어요."
그 아이가 자신의 손을 그녀의 손바닥 위에 올려놓은 것은 바로 그때였다.
차량으로 돌아가 여행을 계속했을 때도 그녀는 여전히 충격 속에 휩싸여 있었다. 당시 유니세프 대원 중 한 명은 회상했다. 만약 그녀가 한 소년에게서 그렇게 심한 충격을 받는다면, 앞으로 몇 년간 활동하면서 만나게 될 많은 아이들에게 부담을 갖게 될 것이라고….

=>한비야님의 글이 떠올렸습니다. 유니세프일은 감정에 휩싸이면 안된다는..-.쪽

생명의 위협, 분쟁, 전염병, 가뭄, 내전으로 고통받는 지역들을 포함하여 전 세계의 도처에서 만나야 할 어린이는 수만 명도 넘는다.
그녀는 귀국길에 고백했다.
"이 일을 감당할 수 있을 정도로 내 자신이 강해질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여행을 계속하면서 한 가지 위로가 될 생각을 했다. 부끄러운 생각이었지만, 그녀는 사람들을 치료하기 위해 에티오피아에 거주하는 것이 아니니 얼마나 다행인지. 그녀는 의사가 아니었다. 그녀가 지니고 있는 유일한 재능은 은퇴했지만 아직도 발휘되고 있는 재능, 즉 인기 영화배우가 내뿜는 신비한 분위기 그것이었다.
그녀의 임무는 유엔아동기금에 관심을 불러 모으고 기금을 마련하는 일, 간단히 말해 국제자선단체의 공식적인 얼굴이 되어 대중의 눈을 매혹시키고 동정심을 유발하는 역할을 잘하면 되는 것이었다. 한 세대 전에, 그녀가 영화계에 보여주었던 특별한 마법이 더욱 가치 있는 목적을 발견해 낸 것이다. 여성의 이상적인 모델을 새로 정의했던 소녀가 자신이 연기했던 그 어떤 역보다 더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는 여성이 되었다. 자신의 영화를 보았던 사람들, 자신의 얼굴을 아는 사람들, 자신의 이름만 아는 사람들보다 훨씬 더 많은 수백만의 사람들에게 삶의 희망을 주는 역할을그녀가 맡은 것이다.
"아이들이 운이 좋다고 할 수 있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눈으로 직접 보지 못했더라면 결코 상상조차 하지 못했을 악몽과도 같은 현장에서, 일종의 위로가 될 만한 것을 발견하고 이렇게 말했다.
"아이들에겐 친구만 있어요. 적이란 없어어요."-.쪽

오드리는 부모님의 목소리가 커지면서 싸움이 시작되면 시탁 밑으로 숨은 적이 많았다고 회상했다. 이런 경험 때문에 오드리는 다른 어느 누구에게도 소리를 지르는 적이 없었다.
(중략)
오드리가 유명 배우가 되었을 때 그녀와 함께 일했던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녀가 전혀 화를 내지 않는 사람이며, 침착하며, 모든 것을 참아내며, 사람들의 장점만을 보려고 했다고 평한다. 자기 보호를 위해 시작된 성격이 다른 사람에 대한 깊은 이해심으로 발전해 나간 것이다. 이런 성품은 영화배우에게는 흔하지 않은 특성이다.-.쪽

"나는 솔로 무용수가 되고 싶었어요."
오드리는 나중에 회상했다. 어린 시절의 고독이 어떻게 자신의 야망에 자극이 되었는지를 암시해 주는 말을 했다.
"나는 솔로 역할을 원했어요. 왜냐하면 솔로 역할이야말로 내 자신을 가장 잘 표현해 주기 때문이죠. 열두 명으로 구성된 열에 들어가 똑같은 동작을 하는 동안은 내 자신을 표현할 수가 없었어요. 나는 맞추는 것이 싫었어요. 나는 내가 하고 싶은 역을 할 거라고 마음먹었어요."
발레가 오드리가 하고 싶었던 유일한 것은 아니었다. 그것은 그녀가 실제로 할 수 있는 유일한 오락이었다.-.쪽

오드리는 자신의 인생에서 단호하게 공과 사를 가렸다. 그녀는 자신이 출연한 작품을 홍보할 의무가 있었다. 그녀는 양심적으로 그 의무를 인정했다. 그러나 영화 이외의 자신의 인생은 완전히 다른 문제였다. 그녀는 자기방식대로 살았고 자신의 삶을 침해하는 호기심으로부터 자신을 지켰으며, 영화를 찍지 않는 동안에는 기자들에게 가능한 한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오드리는 요즘은 흔하지만, 당시 사생활 보호권을 주장한 1세대 스타군에 속한다. 예를 들어, 자신의 집에서 인터뷰하는 것에 동의한 기록이 거의 없다. 공적인 삶은 공적인 장소에서만 유지되었다.-.쪽

할머니는 수입이 적었다. 오드리의 사진을 제공한 대가로 받은 돈은 반가운 것이었다. 가장 행복한 날에 부부로서 교회를 나서는 멜과 오드리의 사진을 파는 것이 그녀에게는 그렇게 나쁘게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오드리는 그것을 신뢰를 깨는 행위로 보았다. 이것은 할머니가 받았을 푼돈 이상으로 그녀를 걱정시켰다.
오드리는 편지에서 자신은 항상 기자들과 만날 때 마음을 열어놓으려고 하지만, 어떤 것들은 소중하게 간직하여 개인적인 일로만 덮어두고 싶다고 할머니에게 상기시켰다. 그녀가 그것들을 숨기고 싶어서가 아니라, 단순히 그것들이 자신에게 너무 가깝고 소중하기 때문이었다. 편지는 할머니가 이번 일로 교훈을 얻으셨기를 바란다고 끝을 맺었다. 앞으로는 할머니가 손녀인 자기를 지켜주는 일만 하고, 세상에 손녀의 이야기를 퍼뜨려 결국 소중한 가치가 사라지게 되는 일이 없도록 해달라고 부탁했다.
혼이 난 할머니는 오드리의 말에 따랐다. 그리고 다정한 관계는 크리스마스 선물로 보낸 체크무늬 옷으로 다시 복구되었다. 오드리는 사랑이 담긴 편지를 보내주었다. 할머니가 돌아가실 때까지 매년 이 관계는 계속되었다. 오드리가 더 쉬운 해결책을 택하거나 일시적인 실수로 넘기지 않고, 가슴 아프게 할머니를 질책할 결심을 했다는 사실은 자신의 인생을 통제하는 결단력이 점점 커져 가고 있다는 걸 보여주는 것이다.-.쪽

영화에서 주제곡이 주인공에 딱 들어맞으면서 영화 밖에서도 그녀를 따라다니는 경우는 드물다. 이 곳이 그랬다. '문 리버'는 그 후 오드리의 상징이 되었다. 오드리가 죽었을 때 티파니의 보석 상점은 너무나도 감동적인 천진난만한 방식으로 '마이 허클베리 프렌드'에게 헌사하는 광고를 게재해 그녀를 기념했다.-.쪽

그녀의 계획을 명확히 표명하기 위해서 그녀는 매우 신중하게 선별한 몇 명의 기자와 인터뷰를 했다.
"단지 아내로서 지낼 수 있습니까? 영원히 그렇지는 못할 텐데요."
그녀는 반문했다. 그리고 덧붙였다.
"왜 영원히 그렇지 못할 거라고 생각하지요? 간단히 말씀드리죠. 나는 조금도 일할 마음이 없어요. 그리고 그 이유를 알기 위해 정신과 의사를 찾아갈 필요도 없어요."
이것은 남편이 정신과 의사이기에 한 농담이었다. 기자가 다시 물었다.
"하지만 신이 당신한테 주신 재능은 어떻게 하지요?"
이 질문은 잘못된 접근이었다.
"난 결코 '신이 주신 재능'을 믿지 않아요. 난 일을 좋아하고 최선을 다했을 뿐이에요. 그리고 그게 전부예요."
그녀는 자신의 인생에서 처음으로 편안함을 느끼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다시는 '긴장감을 갖고 살아가기 싫다'고 단언했다. 다시 일을 시작해서 자신을 하루 종일 스튜디오에 가둬두고, 남편과 아이들에게서 멀리 떨어진 채 다음 장면에 대해 고민하느라 스트레스를 받아 가며 살아가는 게 싫다는 것이었다. 이제 그녀 인생의 주인은 바로 그녀 자신이었다.-.쪽

"사람이 두려워하는 것은 나이를 먹는 것이나 죽는 것이 아니에요. 외로운 삶과 애정이 결핍된 삶이 가장 두려운거예요."
오드리는 미국인 기자에게 말했다.
"나는 계속해서 사랑받을 수 있고, 또 앞으로 사랑할 가능성이 있다는 걸 알 수 있다면 나이를 걱정하지는 않을겁니다."-.쪽

두 사람은 사랑에 바탕을 두지 않은 관계는 모래성처럼 무너지기 쉬우며, 결혼에 의해 반드시 튼튼하게 유지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깨닫기에 충분한 불행을 겪었다. 월더스는 아내의 죽음을 경험했고, 오드리는 두 번의 이혼을 겪었다. 오드리는 나중에 설명했다.
"우리가 결혼해선 안 되는 이유는 없었어요. 그러나 우리는 결혼 안 한 상태인데도 정말 행복했어요."
<배너티 페어Vanity Fair>의 작가인 도미니크 던네에게 그녀는 상세히 설명했다.
"월더스와 나는 우리 인생에서 아주 불행한 시기에 만난 것이 분명해요. 그리고 이제 우리는 너무 행복해졌어요."
감정적인 공허감을 채워 주는 능력이 월더스에게 선천적으로 타고난 재능이었던 것 같다. 오드리는 말했다.
"늦더라도 하는 것이 안 하는 것보다는 낫다는 속담이 맞는 거 같아요. 내가 열여덟 살 때 그를 만났다면 나는 그의 매력을 발견하지 못했을 겁니다. 내가 생각하기에 '모든 사람들이 다 그런 거 같아요.'"
만약 이 말이 너무 단순하게 들린다면, 오드리가 단순한 방식으로 세상사를 보는 경향이 있다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세상사가 그렇지 않다는 것이 나중에 증명될 때까지는 그런 태도를 유지했다. 그런 선천적인 성격은 그녀가 가진 매력의 한 부분이었지만, 동시에 그녀가 상처받기 쉽도록 만들기도 했다.
(중략)
톨로셰나즈는 그녀와 월더스에게 딱 맞는 곳이었다. 곧 그들은 평온한 삶을 되찾았다. 일상적인 일에 지배당하지 않으면서 편안함을 느꼈다. 마을 사람들은 월더스를 '오드리 부인의 친구'로 받아들였다.-.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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