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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파는 남자
요슈타인 가아더 지음, 박종대 옮김 / 이레 / 2005년 10월
평점 :
절판
아무래도 책 읽기를 좋아해서인지 '이야기를 파는 남자'라는 제목이 무척 눈길을 끄는것 같아요. 게다가 책 겉표지의 웃는 얼굴에 찢어진 입의 광대의 기괴한 모습이 함께라면 말이죠. 계속 보고 있으면 배트맨에서 잭 니콜슨이 분장한 조커 모습도 닮은것 같고... 그래서 어릿광대는 종종 호러속 주인공에 잘 등장하는 것 같습니다.
책 제목과 디자인이 마음에 들어서 선택한 책이었는데, 알고 보니 '소피의 세계'로 유명한 작가의 작품이더군요. 왠지 횡재한 기분이네요. (솔직히 소피의 세계는 구입만 하고 아직 읽어보지는 못했습니다. )
이야기의 소재가 끊임없이 솟아 나오는 페테르.
어린시절 상상속에서만 생활한것으로도 무척 만족스러워하던 아이였습니다.아이는 어머니에게 자신의 상상속 이야기를 들려주는데, 어린아이의 이야기라고는 믿기지 않을만큼 재미있고, 흥미로웠습니다.
페테르의 첫 이야기인 '서커스 단장과 잃어버린 딸' 이야기는 무척 인상적이었어요. 이야기를 중심으로 계속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이야기들은 풍자적이면서도 꽤 비판적이었습니다.
상상속에 사는 페테르를 보면서 무척 부럽더군요. 그의 수 많은 아이디어도 놀랍지만, 남들이 하지 못하는 경험을 할수 있다는것이 참 행복해보였습니다. 비록 그것이 실제 경험이 아닌 상상속일지라도 말이지요.이름을 짓는것 또한 일일텐데, 수 많은 이름을 아무렇제 않게 내뱉는 그의 모습이 놀라웠고요. 책속의 이야기도 무척 흥미진진했습니다. 책속의 이야기라는 점 때문에 몇페이지를 채우지 못하는 점이 무척 아쉬울 만큼이나요.
자신은 넘치는 이야기 속에 살고 있지만, 정작 글을 쓰지 못하는 자신의 단점이자, 장점인 재능을 살려 작가들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팔게됩니다. 이야기를 팔면서 자신의 이야기는 유명해지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페테르는 익명의 삶을 살아야했습니다. (책 뒷편쯤에 가서 왜 그가 글을 쓰지 않는지에 대해서 살짝 이야기합니다.)
서커스단장과 딸이야기, 체스에 미친 영주의 이야기. 영혼이 없는 아이(무영혼 희귀성 신드롬),|쌍동이지만 둘이 총을 겨누게 된 이야기,사후의 삼중살인도 재미있었습니다. 특히나 무영혼의 아이는 따로 책을 내도 좋을만큼 충격적이면서 재미있었습니다. 그래서 저 역시 페테르의 아이디어를 사고 싶다는 욕망을 느꼈답니다.
하지만, 그에게 이야기는 다른사람에게 부러움의 대상이지만 자신에게는 피를 철철흘린다고 표현할만큼 고통이 될때가 있습니다. 머리속에 너무 많은 이야기를 가지고 있는 탓에 때론 상상의 기억과 현실의 기억이 구분되지 않습니다. 현재의 상상과 현실은 구분하지만 기억속의 상상과 현실은 구분하기 힘들다는 말에 무척 동감이 되더군요.
자신이 판 이야기는 그것을 산 작가들의 능력으로 새로 포장되고 양념되어, 페테르가 인정하기 싫을만큼 형편없이 탄생되기도 하지만 대체적으로 만족스럽게 새로 태어나게 됩니다. 소재가 떠오르지 않아 펜을 들수 없었던 작가들에게 페테르는 때로는 뮤즈처럼, 때로는 메피스토펠레스가 되었습니다. 그는 지식을 돈으로 사고 파는 모습과 단일문화에 익숙해져 있는 사람들을 향해 조롱하고 비웃습니다.
그런 페테르에게 마리아라는 여성이 등장하면서 그의 삶을 흔들어 놓았지만, 곧 그녀도 그의 일생의 추억이 되어버립니다. 페테르와 마리아는 서로를 너무 잘 알았기 때문에, 일생을 함께 할수 없다는것을 알았습니다. 하지만 그녀와 함께하면서 들려주었던 이야기들이 세상밖으로 나오기 시작하면서 그의 인생이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여기부터는 이 책을 읽으려 계획하시는 분을 잃지 않으시는것이 좋을것 같아요.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결국 페테르의 사업을 눈치챈 작가들이 단합하여 페테르를 위협하고, 페테르는 위험속에 혼자라는 절망감에 빠져 있을때 마리아를 만났을 때 처럼 베아테를 보는 순간 단숨에 그녀에게 빠져듭니다. 솔직히 저는 베아테를 읽는 순간 '서커스 단장과 잃어버린 딸'이 갑자기 떠오르면서 설마...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결국 제가 '서커스 단장과 잃어버린 딸'이 떠오른것처럼 그 이야기를 통해 서로의 존재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이 이야기가 처음 등장했을 때부터 왠지 예사롭지 않았었나봅니다.
하필이면 자신이 모든것을 버리고 함께 하고 싶은 여인이 자신의 딸이라니..
베아테가 페테르에게 "당신은 괴물"이라는 말이 무척 뇌리에 오래도록 남았습니다.
구속이 싫어 자유를 택한 페테르는 자신의 덫에 걸린 상처받은 괴물이 되어버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