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람들에게 받는 질문 중 약간 난감해지는 게 딱 하나 있으니 그것은
"바람돌이씨는 집에 가면 뭐해?"란 질문이다.
이 질문이 나오는 건 항상 전날의 TV프로그램 얘기를 하는 중일 경우인데, 문제는 내가 TV를 보지 않는다는 거다.
직장에서 만나는 사람들이 같이 점심을 먹거나, 잠시 틈을 내어 수다를 떨 때 화제의 90% 이상은 항상 TV 드라마거나, 예능이거나, 뉴스거나, 스포츠거나 어쨌든 TV다. 역시 제일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건 당연히 드라마고.....
매일 얼굴 보고 사는 사람들한테 매일 아 못봤어요. 안봤어요라고 하다보면
결국 저 질문 "넌 집에 가서 도대체 뭐하고 노냐"라는 질문이 나오는거다.
대답이야 "저는 집에 가면 쉬는 시간에 책봐요."인데........
문제는 이렇게 대답할 때 사람들의 대응이 참 묘하다는 거다.
"하루종일 일하고 피곤한데 집에 가서 책이 봐지니?", "tv드라마 그 재밌는걸 어떻게 안보니?" "너 참 훌륭하구나." "우와! 대단하다" 등등 여기까지는 그래도 긍정적인 반응이고, 가끔은 "집에 가서까지 책 읽으려면 머리 안아파?" 내지는 약간은 아니꼽다는 표정도 있다. 진짜로..... ㅎㅎ
여기서 긍정이든 부정이든 저 모든 반응들이 전제하고 있는 것은 퇴근 후 책을 읽는 행위가 휴식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
내가 tv드라마를 안 보는 것은 뭔가 대단한 생각이 있어서가 아니다.
나도 한 때는 tv드라마 빠순이였다. 한국 드라마 뿐만 아니라 일드와 미드까지 손을 뻗친 적도 있었다.
다만 어느 날 그 드라마와 예능 프로들이 그냥 재미없어진 것 뿐이다.
tv가 시시해진 순간, 이전 tv와 책이 나눠가지던 나의 시간을 온통 책이 차지한 것 뿐이다.
드라마보다 재밌는 책은 너무 많다.
책을 읽는 것은 특별히 고상한 행위가 아니며, 뭔가를 결심하고 각잡고 해야 하는 행위도 아니다.
공부가 아니라 그냥 재미있고 즐거워서 책을 읽는 일이 내게는 훨씬 많다.
책을 통해 판타지의 세계로 들어가는 것도 좋고, 내 주변의 인물을 새로운 시각으로 볼 수 있는 이야기도 좋고, 나에게 다른 생각과 시선을 알려주는 것도 신선해서 좋다.
재미없는 책이 없는 건 아니지만 그건 앞부분 30여페이지만 보면 판가름 난다. 그냥 구석으로 슬쩍 밀쳐놓으면 된다.
아무도 나에게 그 책을 읽지 않는다고 뭐라 하지 않는다.
최근에 읽은 책 중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서 잠을 못자고 새벽까지 나를 붙잡고 있었던 이야기들.
결국 이 글은 이 책들을 이야기하기 위한 거였는데 하다보니 쓸데없는 서론만 잔뜩인 글이 되어 버렸다.
스티븐 킹의 신작 <인스티튜트 1, 2>
킹 아저씨는 정말 재미난 이야기꾼이다.
내가 하는 말이 아니라 전 세계가 인정하는게 맞을 거다.
그렇지 않다면 이 아저씨가 이렇게 오랫동안 나오는 책마다 화제가 될 리가 없을테니까....
요 근래에는 킹아저씨의 책 중 탐정 빌호지스 시리즈와 느닷없는 휴먼 소설 <고도에서>를 봤는데, 약간은 아 이건 킹아저씨가 아니야?
왜 외도를 하세요. 제발 제일 잘하는걸 해주세요라고 빌기도 했었다.
그리고 드디어 이 책 <인스티튜트>가 나왔다.
기관 단체 학회의 뜻을 가지는 이 단어는 말 그대로 이 소설 속 악의 축인 어떤 기관을 가리킨다.
이 기관 또는 학회에서는 약간의 초능력을 가진 어린 아이들을 납치해서 그들을 훈련시키고 정치적 내지는 모종의 목적을 위해 아이들을 이용한다. 주인공격인 루크라는 소년도 그렇게 납치된 아이들 중 하나다.
책을 읽어나가면서 그 뒤쪽이 미칠 정도로 궁금하다면 그 책은 훌륭하게 성공한 책이다.
도대체 루크를 잔혹하게 납치한 이 단체의 정체는 무엇이고 목적은 무엇이란 말인가?
아이들의 진짜 대단치 않은 초능력은 과연 어떻게 그들의 원하는 바를 충족시켜 줄 수 있는가?
(정말 대단치 않다. 주인공 루크의 초능력은 염동력인데 그 정도가 겨우 빈 피자팬을 떨어뜨릴 수 있을 만큼??? 피자가 있으면 안된다. 무거워서.... ^^ )
아이들이 수용소에서 다음으로 가는 저 뒷편의 시설에는 과연 무엇이 있으며 이후 아이들은 어떻게 되는가?
아 루크는 도대체 언제 탈출하며, 어떻게 탈출할 수 있을 것인가?
독자는 물론 주인공인 루크가 탈출할 것을 당연히 알고 있으며, 또 다른 등장인물인 팀과 만나 어떻게든 이 사건을 해결하리라는 것을 알고 있다.
또한 이 소설에서 나오는 기본 전제가 허구임 또한 알고 있으며 말도 안되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소설의 힘은 바로 그 말도 안되는 이야기를 말이 되게 보이는 것 아닌가?
이런 점에서 스티븐 킹은 가히 천재적이다.
책 전체에 비해 결말의 임팩트가 약간 떨어지는 감이 있다.
하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는 광기 또는 잘못된 신념이 습관적 관행이 되었을 때 그것을 바꾸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를 보여주는 나름의 현실적인 결말이었다는 생각도 든다.
드라마를 볼 시간이 없다.
너무 재밌는 책을 만나면.....
또 하나 요 며칠 째 나를 확 열광하게 한 책
<시녀 이야기>의 뒷편이 나와주었다. 무려 34년만에!!!!
34년이라니?
책 속의 시간도 겨우 15년 후인데, 실제 시간으로 34년 뒤라니.....
작가는 무슨 말을 더 하고 싶었던 걸까?
34년간 묵힌 이야기는 과연 무엇일까? 궁금즘만으로 후덜덜이라는 말이 안나올 수가 없다.
34년만의 후일담이라는 것만으로도 안 읽을 수가 없는 책이다.
그것도 <시녀이야기>의 후속편이잖아.
<시녀 이야기>를 읽은지 10년도 훨씬 넘은 것 같고, 책장에 있던 내 책은 어딘가로 사라지고 없고.....
그럼에도 <시녀 이야기> 속 길리어드라는 가상국가의 충격만 머릿속에 남아있는 상태.
사실 나에게 <시녀 이야기>는 엄지 척 하고 싶은 최고의 작품은 아니었다.
옛 기억에 어렴풋하지만 뭔가 2% 부족한 듯한....
그래도 2%만 부족한게 어딘가? 98% 부족한 책도 천지에 널렸는데.
그렇게 <증언들>의 독서를 시작
근데 정말 <시녀 이야기>보다 훨씬 더더더 좋은거다.
작품은 15년후 각자 다른 입장의 3인 - 길리아드 공화국의 여성정책을 전담 집행하는 기구의 리디아 아주머니(여기서 아주머니는 계급), 길리아드에서 체제 순응적으로 귀한 꽃 - 그래봤자 아이를 낳을 도구에 불과하지만 -으로 자란 아그네스, 그리고 인접국가 캐나다에서 자라고 있는 소녀 데이지의 증언들을 모아놓았다.
이 중 가장 흥미롭고 공감이 가는 인물은 리디아 아주머니였다.
길리어드 공화국이 만들어질 때 지식인 여성들이 어떻게 공격당하는지, 여성들을 어떤 식으로 모든 정치 사회적 행위에서 배재시키고 말 잘듣는 고분고분한 도구, 꽃으로 만드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인물이다.
책의 서사는 리디아 아주머니의 서사만 따라가도 흥미진진하고 한편의 작품이 될 수 있을 정도이다.
아무것도 없는 하층민 가정에서 태어나 스스로의 노력으로 판사까지 되었던 강한 자존감을 소유한 리디아라는 권력에 굴복하는 과정은 인간이라는 존재가 얼마나 쉽게 무너질 수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책을 보면서 어쩔 수 없이 자동적으로 나라면 어떨까를 생각하는데 절대로 무조건 무너질 수 밖에 없을거다 싶다.
예전에 본 책 중 어딘가에서 유대인 수용소에서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사람들이 어떤 사람인지 본 기억이 있는데, 그게 의외로 어떤 순간에도 할 수 있는 최대한으로 자신을 가꾸던 사람이었다고 한다.
못먹고 굶으면 육체가 죽지만, 최소한의 물과 화장실 시설 등이 주어지지 않아 최소한의 위생이 유지될 수 없으면 인간의 자존감이 무너진다.
분비물의 냄새와 흔적을 온 몸에 묻히고 나와 타인이 모두 서로에게 악몽이 되는 순간 인간의 마음은 죽는 것이다.
그것을 교묘하게 이용하는 길리아드의 남자들을 보면서 이 체제가 만들어진 과정, 이유, 그리고 몰락의 이유까지 이해가 갔었다.
그런 인간의 바닥까지 치고 갔던 리디아가 끝내 복수를 생각할 수 있는 힘은 어디에서 나왔을까?
나는 그것이 인간의 신비라고 항상 생각한다.
누구보다 비굴한 것이 인간이지만 누구보다 용감하고 고귀한 것이 또 인간이다.
인간으로서의 자존감의 밑바닥을 겪고도 일어설 수 있는 인간의 존재
<증언들>이라는 이 책을 한 순간도 손에서 놓치고 싶지 않았던 것은 바로 이 강력한 리디아 아주머니라는 캐릭터의 힘이었다.
이 책에서는 또 한명의 인상적이 여성이 나온다.
그 여성은 단역이다.
단 한장면, 단 한줄밖에 나오지 않는다.
그럼에도 나는 그 여성이 너무 인상적이었다.
인간으로서의 자존감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 복수와 죽음을 택하는 여성이다.
스타티움에서 동료를 살해하라고 명령받았을 때 그 명령과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으려면 어느만큼의 용기가 필요할까?
그런데 참 역사를 보면 늘 그런 사람들이 있어왔다.
그 아름다운 사람들이 세상을 그래도 살만한 곳으로 만들어준다.
소설이 가지는 흡입력과 즐거움을 만끽하게 해주는 2권의 책으로
나는 역시 드라마보다는 책읽기가 더 즐겁다는 것을 한 번더 확신한다.
책 읽는게 뭔가 특별한 행위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소리높여 알리고 싶다.
드라마만큼 아니 드라마보다 더 재밌어서 보는게 책이라고....
책을 읽는다는건 뭔가 그리 거창한 행위도 아니고,
책을 읽는다고 아주 똑똑한 것도 아니며,
그저 아주 많이 즐거운 행위일 뿐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래서 내 주변에 나와 같이 책을 읽어주는 사람이 좀 많아졌으면,
휴식시간에 드라마 얘기 말고 책이야기도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좀 더 많아졌으면 싶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