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의 목표가 생겼다.
버지니아 울프를 읽자
가끔 꽂히는 작가가 있으면 전작 읽기에 도전하는데 사실 성공한 적은 별로 없다.
결정적으로 한 작가의 책을 계속 읽다보면 그의 패턴이 보이고, 그게 계속 되다보면 식상해지기 일수다.
그쯤 되면 굳이 고집하지 않고 내려놓는다.
세상에 읽을 책이 얼마나 많으냐 말이다.
현재 활동하고 있는 작가라면 맘에 드는 작가의 글은 출간되는대로 챙겨서 보는 편이다.
한국 작가들 중에서는 요즘 가장 애정하는 작가는 황정은. 오랫만에 전작 읽기에 도전하고 있다.
출간 된 책이 그렇게 많지 않고 각 권당 분량이 그렇게 길지 않은건 다행이랄까?
전작 읽기가 어렵지 않은 작가다.
새로 나오는 책들은 모두 읽었고, 예전에 나왔던 책들도 하나씩 챙겨서 읽고 있다.
아래 읽은 책들이 모두 좋았고, 아직 읽지 않은 책이 남아있어서 행복한 작가이기도 하다.
한권 한권 아껴가며 읽는다.
황정은 작가의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 짧게 끊어치는 문장들, 하나의 장면만으로도 많은 감정과 얽히고 설킨 관계의 타래들을 보여주는 능력들 너무 좋다.
그외에 김연수, 김영하 작가들의 책은 오래전부터 좋아해서 나오는 대로 꼭 챙겨서 읽는다.
전작읽기에 도전하는건 아니라서 오래 된 책들을 굳이 다 찾아 읽지는 않는다.
김연수 작가는 에세이를 더 좋아하고, 김영하작가는 소설을 더 좋아한다.
이들의 책 중 가장 좋아하는 책들은
아 그리고 내 스스로도 의아하게 여기는게 김훈작가를 좋아한다.
이분 생각은 정말 밤새도록 얘기하래도 할 수 있을 정도로 정말 정말 나랑 안맞다.
안맞는 정도가 아니라 죽도록 싫다.
그럼에도 김훈작가는 꼭꼭 챙겨서 읽는다.
그의 문장을 쓰는 방식이 너무 좋다.
문학이 얼마나 예리하게 벼려질 수 있는지, 문장이 어떻게 칼이 될 수 있는지 섬뜩할 정도로 보여준다.
김훈작가의 책을 읽을 때면 언어의 힘에 전율한다.
생각이 그렇게 다른데도 읽게 만드는 게 김훈작가의 힘인듯도 하다.
특히 에세이 <자전거 여행>의 글들은 한국어가 얼마나 아름다울 수 있는지 극치를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아 최근에 나온 <달 너머로 달리는 말>은 솔직히 별로였다.
외국 작가로는 하나씩 둘씩 챙겨보면서 전작읽기에 도전하는 작가는 커트 보니것
지금까지 내가 읽은 책 중에 가장 좋아하는 책들.
<제5도살장>은 모든 책들 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책.
커트 보니것의 책은 기발한 상상력, 뒤통수를 강력하게 때리는 반전, 건강하고 정치적으로 올바른 관점, 읽는 내내 낄낄거리게 만드는 유머감각, 그리고 웃음 뒤에 머리를 싸늘하게 만드는 짙은 애수 등등.
내가 커트 보니것을 왜 좋아하는지를 더 잘 설명할 수 없는게 안타까울 따름이다.
그리고 이제 버지니아 울프를 만났다.
보통 오래된 작가 중 좋구나 싶은 작가를 만나도 대표작을 챙겨서 보는 편이지 전작을 다 읽어야겠다는 생각은 잘 안한다.
그것들을 읽을 시간에 매력적인 신간을 읽을 시간이 없어지니까.
그런데 이제 겨우 1권 등대로를 읽었을 뿐인데 아 정말 이분은 뭐지?
솔 출판사에서 버지니아 울프 전집이 나와 있으니 전작 읽기에 도전하기 좋은 여건까지 갖춰져 있구나.
<등대로>는 정말로 놀라운 책이다.
읽을 때는 정말 힘들다 힘들다 하면서 읽었는데, 읽는 중간에도 앞에 읽은 장면이 끊임없이 떠오른다.
이야기의 내용이야 요약할 것도 없을 정도로 간단하며 솔직히 사건이랄 것도 없다.
램지 가족과 그들의 손님이 등대에 가기로 했다가 결국 날씨 때문에 못가게 되고,
10년이 지나고 램지 부인이 죽은 후, 드디어 남은 가족들이 등대에 가게 된 어느날까지, 정말로 줄거리는 이게 다다.
심지어 그 등대에는 정말 별것이 없기까지 하다.
등대의 의미가 무엇이었을까? 그조차도 명확하지 않다.
이렇게 줄거리도 없고, 명확한것도 아무것도 없어보이는 이 책의 무엇이 나에게 이토록 강렬한 이끌림을 주는 것일까?
가장 인상적이었던건 본격적인 의식의 흐름 기법을 제대로 본건 처음이라는 신선함인듯하다.(100년도 더 전에 쓰여진 소설에 신선함이라니.... 그래도 신선함 맞다.)
소설 속 인물들의 대화를 읽고 있으면 그들의 생각이 튀는대로, 느닷없이 툭 튀어나오는 인물대로 그대로 모든 생각을 다 표현하고 있다.
사실 이것이 이 소설을 읽기 난해하게 만드는 주범이지만 생각해보면 이것은 우리가 일상에서 항상 마주치는 장면이다.
다른 사람들과 부대끼고 생활하는 와중에 하나의 생각을 진득하게 논리정연하게 하는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우리 모두는 이 생각 저 생각 정신없고 산만하게 생각의 실타래들을 확확 풀어내면서, 이 얘기 저 얘기 대중없이 하고 사는게 일상이다. 그 와중에 훅 끼어드는 사람도 언제나 있기 마련이고...
그 실제의 과정을 그대로 보여주면서도 버지니아 울프는 인물 개개인의 평가와 그들이 아무도 모른다고 생각하면서 머릿속으로 열심히 떠올리는 위선과 이율배반과 변덕을 너무나도 효과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또 때로는 그들의 생각의 미덕도 살짝 끼어들기도 한다.
어느 인물도 한면으로만 평가 될 수 없으며, 인간의 생각이 어떤 과정을 통해서 선함을 획득해나가는지, 또는 위선적인 인간으로 남는지, 아니면 다른 인간에 대한 적대와 호감이 어떻게 형성되고 변화되고 또는 고착되는지까지를 너무도 드라마틱하게 보여주고 있다.
그저 독자는 버지니아 울프가 펼쳐놓은 공간을 따라가기만 하면 된다.
그녀가 만든 공간에서는 무심하게 놓은 그릇 하나, 정원에 핀 꽃들, 창과 문으로 들어오는 바람조차도 의미없는 것이 없다.
모두가 등장인물의 내면과 생각과 그들이 만든 장면들을 위한 소품으로 쓰이고 있다.
그래서 이 소설을 읽는 것은 너무 많은 것을 신경써야 함으로써, 나의 사고의 과부하를 일으키기도 한다.
1부에서 그토록 많은 사람들을 매혹시키고, 흩어진 사람들을 하나로 모아내고, 그 선함이 지나쳐 의도적으로 폄하하고 싶은 마음까지 불러일으키던 주인공같던 램지부인은 어느날 그냥 죽는다. (사실 램지 부인 역시 모범적인 부인으로 사는 것이 그녀의 삶의 목표 또는 희망은 아니었다. 그녀는 끊임없이 무시당하는데 익숙해져있었고, 그래서 자기 역할을 전통적인 여성상으로 한정하는 것으로 스스로를 억압할 수 밖에 없었던 여성이다. )
이것조차도 너무 현실적이다.
죽음이란 것은 항상 그렇게 결정적인 장면이 될 수 없다.
사람들은 항상 예상치 못한 순간에 그냥 죽는다.
사람들의 죽음을 얘기하는 2부는 의식의 흐름이 아니라 시간의 흐름기법이라고 표현할만하다.
30페이지밖에 안되는 짧은 글은 폭풍처럼 시간을 휘몰아간다.
그 30페이지를 읽으면서 숨이 가쁘다는 느낌을 실제로 받았다.
10년이 흐르고 알 수 없는 이유로 다시 모인 램지씨의 가족과 손님들.
10년전과 전혀 변하지 않은 램지씨와 이제는 성장과 함께 변한 램지씨네 아이들의 생각.
그리고 그림을 그리는 손님 릴리
버지니아 울프가 결국 하고싶었던 얘기는 릴리를 통해서 나온다.
재빨리, 마치 그녀가 저기 있는 어떤 것에 의하여 상기된 것처럼 그녀는 캔버스를 향해 돌아섰다. 거기에 그녀의 그림이 있었다. 그렇다, 그 모든 초록색들과 파란색들을 가지고 선들이 달려올라가고 가로질러 가면서 무엇인가를 시도하고 있었다. 그녀는이 그림이 다락방에 걸리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으니, 그것은 결국은 파괴되고 말 것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무슨 문제인가? 그녀는 브러시를 다시 잡으면서 생각했다. 그녀는 층계를 바라보았는데 비어 있었고, 캔버스를 바라보니까 시계視界가 뿌옇게 흐려져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마치 그녀가 그것을 한순간 명확하게 본 것처럼 갑자기 강렬하게 그녀는 그림의 한가운데에 선을하나 그려 넣었다. 됐다. 끝났다. 그래, 브러시를 내려놓으면서, 극도의 피로를 느끼면서, 나는 드디어 통찰력을 획득했다고 그녀는생각했다. - P286
램지부인을 사랑하면서 한편으로 경멸할 수 밖에 없었던 릴리는 이제 10년이 지나서야 그림을 완성하고 제대로 된 자아를 획득한다.
결혼이라는 관습에 얽매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스스로 만들어나가는 주체로서의 여성상 말이다.
램지부인이 갖고 싶었지만 가지지 못했던 것, 비록 그 결과가 자신의 그림이 다락방에 걸렸다가 찢어지고 어느 날 사라지더라고 일단은 자신의 삶을 가장 소중히 여기고 시도하는 것.
그녀가 그 통찰을 얻는 것이 진짜 등대가 아니었을까?
실제로 등대에 간 램지씨가 아무것도 얻지 못한 것은 그 등대행이 자신의 목표가 아니라 램지부인의 목표였음을 끝까지 자각하지 못했기 때문일테고....
인간의 주체성이나 삶이 언제나 눈에 보이는 결정적인 계기를 통해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님을, 사실은 우리가 자각하지 못하는 무수한 대화와 만남과 상황속에서 하나씩 하나씩 차곡 차곡 쌓여가는 것임을, 그렇게 만들어지는 것이 나라는 인간임을 깨닫는다.
어떻게 하나의 인간이 만들어지고, 하나의 세계관이 탄생하는지를 너무나 꼼꼼하게 그리고 있는 수작이 이 책이다.
이 책만으로도 나는 버지니아 울프에 폭 빠져 버렸고, 이제 나에게는 그녀의 전집 중 12권이 남아있다.
올 한해 버지니아 울프로 행복한 한해가 되리라 전작 읽기에 도전하며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