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나지 않은 일 비비언 고닉 선집 3
비비언 고닉 지음, 김선형 옮김 / 글항아리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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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럽기는 한데, 사실은 사실이다. 이 책을 읽을 때 이 책이 꼭 나를 위해 쓰인 것만 같다고 느꼈다. 신기하게도. 내가 꼽은 문단은 여기다.



하지만 소설들과 나란히 발맞춰 등장한 긴츠부르그의 에세이들이야말로 나에게 직접 말을 걸어온 글들이었다. 딱 때맞춰, 꼭 나를 위해 쓰인 것만 같은 글들. 거기 그 에세이들 속에서 우리는 서술하는 페르소나의 창생을 보았다. 이 페르소나는 소설에 표현된 것과 똑같은 내면성에서 출발하되 어조와 조망의 관점은 확연히 달라서 논픽션 산문으로 은유를 창출하는 고전적 기예를 쓰면서도 차별화된 모더니즘적 특징을 확보했다. (157쪽)



고닉은 긴츠부르그의 에세이가 자신에게 그런 글이라고 말했는데, 내게는 고닉이 그랬다. 작년, 나의 발견. 작년에 읽은 책을 정리한 페이퍼에서 『상황과 이야기』를 말하며 나는 이렇게 썼다.



... 이 책이 ‘특별히’ 좋은 책이기는 하지만, 무엇보다 내가 이 책을 만났어야 하는 때에 만난 것이 신기하고 놀랍다. 오래 고민하고 궁금해하던 답을 이 책에서 찾았다. ‘논픽션 페르소나’에 대한 글을 머릿속으로 반 정도 써두었는데, 첫 문장이 떠오르지 않아 내내 미루고 있다. ‘나는 이 책으로 나를 가르친다’는 이슬아 작가의 말을, 이제는 이해할 것도 같다. (단발머리 페이퍼)



고민의 일부가 해결되었을 때 느껴지는 해방감, 쾌감, 즐거움을 나는 고닉의 문장에서 찾았다. 픽션뿐 아니라, 논픽션을 쓰는 사람도 페르소나를 쓴다는 것. 그 페르소나를 실제의 나와 분리해도 된다는 친절한 설명. 페르소나 속의 나는 훨씬 더 객관적이고 근사한 사람이어도 된다는 허락. 나는 마음껏 기뻤다. 한편으로는, 또 다른 깨달음이 찾아왔는데, 나의 것이든 혹 다른 사람의 것이든 논픽션 페르소나에 심취할 필요는 없다는 거였다. 일종의 주의사항이라고 할 수 있는데, 아름다움에 대한 찬미와 부끄러움과 후회, 성찰과 회복이 진실이 아니라거나 잘못되었다는 뜻이 아니라, 페르소나를 쓰고 있는 한 그건 어디까지나 작위적일 수 있다는 것. 그러니까, 이 한 문단을 쓰면서도 내가 (←)를 얼마나 많이 눌렀는지를 생각해 보면 될 일인데, 만들어진 것은 그 무엇이든 창작자의 의도가 숨어 있다는 것을 잊지 말라는 거였다. 내가 나에게 주는 위로 그리고 내가 나에게 주는 경고.



이 책에서 제일 주요한 거라면 아무래도 '다시 읽기'가 아닐까 싶다. 다시 읽는다는 것. 처음 읽을 때 보지 못한 것을 발견하는 순간들은 찬란하고 고요하다. 두 번 읽을 책이 아니면 아예 읽지 않는다는 원칙 아닌 원칙을 세웠던 때가 있었다. 지금도 금방 책을 고르지는 못하는 편인데, 그때는 진짜 책 고르는 데 시간이 많이 들었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며 좋은 책을 읽고 시간이 흐른 후에 다시 그 책을 읽는 것이 얼마나 기쁜 일인지 확인하게 되니 다시 그 원칙이 생각나기는 한다. 좋은 책을 골라 정성 들여 읽고, 머지 않은 시간에 그 책을 찾아 '다시' 읽기.

고닉의 페미니즘 모먼트(20쪽)는 더 이상의 부연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이고, 엘리자베스 스태턴의 연설문에 대한 부분은 유수님의 페이퍼를 참고하셔도 좋을 듯하다. 읽어야할 페이퍼가 2개이니 그것도 참고하시길.

(https://blog.aladin.co.kr/727621184/15544300https://blog.aladin.co.kr/727621184/15538317)


엘리자베스 스탠턴의 이야기는 나 역시 읽다가 멈춘 부분이고, 이것이 가부장제의 근간이 되는 '강제적 이성애'와 어떻게 결합하여 작동하는지에 대해 고민했던 부분이다. 다만 '실존'이라는 측면에서, 모두가 혼자이고, 또 혼자일 수밖에 없지만, 죽을 때까지 연결을 원하는 심경, 합일에 대한 갈구가 인간 본성의 부인할 수 없는 측면이라고 생각한다. 육체 안에 갇혀있기를 거부하는 힘이 인간 내부에 존재한다고, 나는 믿고 있다.

이야기하고 싶은 부분이 많지만, 오늘은 어제 올린 페이퍼와 관련된 문단만 올려보기로 한다. 긴츠부르그와 그의 두 번째 남편 간의 삶을 문학적으로 활용한 에세이가 「그와 나He and I」이다. 역사의 총아이고 의례적 숭배의 대상이 되는 결혼이 결혼 생활을 거치면서 어떻게 불행하게 만들어져 가는가를 그려낸 작품인데, 그 작품에서 불행은 화자 한쪽에게만 닥친 것처럼 보인다. 온갖 피해를 초래하는 건 전적으로 그, 그 남자다! 하지만, 저자는 서서히 자신이 이 불행에 공모하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아, 또 나오는 것인가. 그놈의 쌍방과실!

"남편이 한 번 실수를 저지르면, 나는 그가 못 참고 기어이 분통을 터뜨릴 때까지 그 얘기를 하고 하고 또 하곤 했다." 새로운 발견이다. 고함 지르기와 신경 긁기가 맞물려 소정의 역학이 생겨나고, 그 역학은 애매모호함에 빌미를 주고, 그 애매모호함이 관계를 규정하는 짜증스러움을 담보하게 된다니.(159쪽)

삶의 역학. 그 끝없는 복잡함. 완벽한 가해자는 없고 완벽한 피해자는 없다. 전적인 잘못이란 없으며, 피해자 역시 불행에 공모할 수 있다. 이 모든 것은 쌍방과실이며.... 나의 책, 나의 고뇌. 고닉의 페이퍼를 푸코의 문장으로 마무리 짓는다. 고난과 역경을 헤쳐 나가기가 쉽지 않을 것이나, 그것이 전혀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권력은 그들을 포위공격하고, 그들을 거쳐 가고, 그들을 가로질러 간다. (『감시와 처벌』, 6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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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수 2024-05-27 15:1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선좋아요 후 하원하려다 읽어버림 중..

다락방 2024-05-27 15:2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맞춤할 때에 내개로 온 책이 있다는 것은 정말 행운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점에서 행운을 맞이하시 것 축하드리고요! 사실 저의 경우에는 너무 재미있게 읽은 책들에 대해서 그런 생각을 종종 하곤 합니다.

저는 고닉의 책을 한 권 읽고 더는 읽지 않는데요, 최근에 이 책에 대한 상찬이 여기저기 올라와서 흐음 한 번 더 도전해볼까 했거든요? 그런데 단발머리 님이 이 페이퍼에 옮기신 인용문들을 보니 저는 역시 고닉과는 친해질 수 없을 것 같아요. 저에겐 문장이 너무 어렵습니다. 저는 고닉의 책을 읽고 감탄하는 단발머리 님의 페이퍼를 읽는 걸로 대신하겠어요!!

2024-05-27 16: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4-05-27 20: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그레이스 2024-05-27 22: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빨리 읽고 싶어요 ㅠ
 
















이 책을 읽는 일이 힘든 이유는, 이 책이 나 역시 현재 지구의 총체적 위기의 공범자라고 말하기 때문이다.

 


이 이슈를 자신의 의식 속에 받아들이게 되면, 그들은 남성이든 여성이든 자신들이 한편으로는 피해자일 뿐 아니라, 다른 한편으로는 남성과 여성을 모두 속박하고 있는 착취와 억압의 체제에서 자신도 공범자라는 점을 인정해야만 한다. 진정으로 자유로운 인간관계로 가고 싶다면 이제껏 해온 공모 행위를 포기해야만 한다. 이는 이 체제에서 특권을 가진 남성만이 아니라, 이 체제에 물질적 존재 기반을 두고 있는 여성도 마찬가지이다. (47)

 


피해자이면서 가해자인. 가해자이면서 피해자의 영향 아래 있는.

 















푸코의 <감시와 처벌>이 생각나는 대목이다. 나는 이 책을 끝까지 읽었지만, 이 책을 다 이해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푸코가 말하고자 하는 핵심이 이 문단에 있다고 생각한다.

 


, 권력은 소유되기보다는 오히려 행사되는 것이며, 지배계급이 획득하거나 보존하는 특권이 아니라, 지배계급의 전략적 입장의 총체적 효과이며, 피지배자의 입장을 표명하고 때로는 연장시켜 주기도 하는 효과라는 것이다. 다른 한편, 권력은 그것을 갖지 못한 자들에게 다만 단순하게 의무나 금지로서 집행되는 것은 아니다. 권력은 그들을 포위공격하고, 그들을 거쳐 가고, 그들을 가로질러 간다. 권력은 그들을 거점으로 삼는데, 이것은 마치 권력에 맞서 싸우는 사람들이 권력에 대한 영향력을 거점으로 삼는 것과 같다. 바꿔 말하면, 이 권력의 이러한 관계들은 사회의 심층 속에 깊숙이 자리 잡은 것이지, 국가와 시민들 사이에 혹은 국가와 계급들의 경계 사이에 있는 관계들 속에 있는 것이 아니다. (<감시와 처벌>, 66)

 


소유되는 것이 아니라 행사되는 것으로서의 권력. 지배계급의 특권으로서가 아니라, 지배계급의 입장을 강권하는 효과. 그것이 피지배자에게 미치는 영향뿐 아니라, 그것이 지배계급에 가하는 압력.

 
















아시스 난디는 <친밀한 적>에서 피지배자의 예속화가 지배자의 예속화를 포함한다고 말하는데, 인도를 식민화했던 영국을 예로 들어 설명한다. 제국주의의 영향 아래 들어갔음에도 문화적으로 파편화되고 정치적으로 이질적이었던 인도의 특성상 영국 제국주의의 영향은 도시 중심부와 서구화된 혹은 반서구화된 상층, 중간계급, 그리고 전통적 엘리트에게 국한되었다. (82) 이에 반해 상대적으로 동질성을 띤 작은 섬나라였던 식민지 본국은 식민 통치의 경험에 압도당했고, 식민지의 위계질서가 약간의 변형을 통해 영국 사회에 적용됨으로 인해 장남이 아닌 아들들과 부인들은 물론 그 모든 그런저런 기타 등등의 존재들이 비극을 겪게 되었다는 것이다. (83)

 


식민주의의 영향이 지배자에게는 경제적 이득을 포함한 성장과 발전의 희망을 선사한 데 비해, 피지배자들에게는 모욕과 불이익, 불평등만을 안긴 것이 아니라, 자연과 여성, 다른 민족과 문화를 타자화하고 종속시킴으로 해서 지배자 역시 그로 인한 악영향을 받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쯤에서, 식민 지배를 받았던 나라에서 여자로 태어나 살고 있는 사람으로서, 억울한 심정이 든다. 나 자신을 피해자로만 정체화하지 않아야 한다는 걸 안다. 그럴 수 없다는걸, 그래선 안 된다는 걸 안다. 하지만, 그렇다면 이 세상 모든 일이 그러하단 말인가. 가해자와 피해자가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받는, 이 세계 이 우주 속에서. 이 모든 일들은 쌍방 폭행, 쌍방 과실로만 설명될 수 있단 말인가.

 


일말의 가책 없는 가해자와 자기 성찰하는 피해자. 내가 걱정하는 상황이 바로 이것이다. 일본과 한국의 처지가 그러하다고 나는 생각하는데, 잘못된 과거사에 대해 일말의 사과도 없는 일본은 부끄럼 없이 다음 세대에게도 잘못된 역사를 가르치고 있다. 그리고 한국은 일본에 대한 맹신을 삶의 모토로 삼고 있는 극우와 성찰하는 진보, 피해자 경쟁이 아닌 기억 연대로 나가자는 축이 넓은 스펙트럼으로 공존하고 있다.

 



다시 마리아 미즈에게로 돌아온다.

 


'과개발-저개발' 개념을 이런 의미에서 사용하는 것은 이런 원칙에 따라 구조화된 하나의 세계 체제에서 저개발 국민의 문제가 발전을 지원하는 '원조'를 통해 해결될 수 있을 것이라던가, 개발 국가의 국민이 저개발 세계를 더 착취함으로써 인간적 행복을 성취하게 될 것이라는 환상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해줄 수 있다. 제한된 하나의 세계 안에서 두 편 사이의 착취와 억압의 관계는 양편 모두에게 파괴적인 결과를 낳을 수밖에 없다. 역사의 현 단계에서 이런 진실은 과개발된 세계의 사람들 속에서 점차 밝혀지고 있다. (113)

 


그렇다. 착취와 억압의 관계는 앙편 모두에게 파괴적인 결과를 가져온다. 가부장제로 인한 착취와 억압으로 모성과 여성성을 강요받는 여성만큼 공격적인 남성성을 요구받는 남성 역시 괴로울 것이다. 가부장제로 인해 고통받는 남성이 존재할 것이고, 가부장제의 이상을 실천함으로써 이득을 보는 여성이 존재할 것이다. 하지만, 산업화 시대를 지나 플라이트 쉐임(flight shame)‘까지 지구의 마지막 슈퍼맨이 되려고 하는 서구 유럽은 여전히 건강하고, 건재한 데 비해, 제국주의의 침략 속에 현재까지도 내전으로 인해 고통받는 아프리카와 아시아, 남미 여러 나라들의 고통은 언제 끝날는지 예상조차 할 수 없다. 현재 진행 중인 가자 지구에서의 전투는 말할 것도 없다. 가해자와 피해자, 앙편 모두에게 파괴적인 결과가 주어진 것은 사실인데, 그 넓이와 깊이가 새삼 다르다고 느껴지는 지점이다. 피해자에게 세상은 훨씬 더 가혹하다. 억울한 포인트가 바로 여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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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5-26 23: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4-05-26 23: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4-05-26 23: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4-05-26 23: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락방 2024-05-27 08: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늘 제가 들으면서 온 정희진의 <공부>와 겹치네요. 녹색계급을 말하면서 정희진쌤은 우리는 피해자이면서 동시에 가해자라고 했거든요. 환경을 파괴하는 건 기업만 하는 건 아니라고 하면서요. 저 역시 비닐봉투를 쓰려고 하지 않지만, 대중교통을 이용하지만, 그러나 비행기를 타면서 탄소 발자국을 크게 일으키고 있고요.

피해자이기만 한 사람은 없겠지만, 말씀하신 것처럼, 그런데 그 넓이와 깊이가 다르니 억울하긴 해요. 저도 오늘 아침 마리아 미즈를 읽으면서 왔어요. 남성의 도구와 폭력에 대해 읽었습니다. 저도 정리할 수 있으면 해볼게요.

단발머리 2024-05-27 08:52   좋아요 0 | URL
네네, 맞아요. 하지만 전 기업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쪽인데요. 텀블러나 장바구니 사용으로 막을 수 있는 건 상당히 제한적이라고 생각해요. 지구 반바퀴 날아 오는 과일을 덜 먹으려고 하지만 그것 역시 유통 기업이 개인들보다 훨씬 큰 힘을 가지고 있구요. 그래서, 저는 정치......... 다시 정치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친환경적인 에너지를 사용하는 기업이 더 번창하고 성공할 수 있도록 세계적인 차원에서 각 정부들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보거든요. 그러려면 그걸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을 우리가 뽑아줘야 하는데, 한국에서는 더더욱 그런 정당의 힘이 .... ㅠㅠㅠ

다락방님의 정리글을 기다리는 월요일 되시겠습니다. 책탑 페이퍼도 기다리는 월요일이고요, 아가 조카 동화 에피소드도 기다리는 월요일입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단발머리 2024-05-27 09:07   좋아요 0 | URL
이 3가지를 하나로 퉁치면 안 돼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3개면 양호, 2개는 오케이 ㅋㅋㅋㅋㅋㅋㅋ
 


남편이.



이중노동에 시달리던 나는, 이제 삼중노동의 거대한 늪 앞에서 걱정과 한숨과 푸념과 원망을 적절히 쏟아내었다. 수험생 놔두고 어디 가느냐 잔소리 시전하려니, 나도 3월에 수험생 두고 싱가포르 갔... 남편은 봉투를 내어놓았다. 물론 나도. 여행간다고 봉투를 준다는 말!은 했다. 월급이 안 들어왔는데, 어떻게 주겠나. 월급 나오면 주겠다고 했다.


평생 한결같이 집돌이인지라 맨날 그걸로 솔찬히 놀리고 있는데, 이번에 여행간다고 새로 산 캐리어에 착착 옷을 개켜 넣는 뒷모습에서 어슴프레 감지되는 '신바람'의 기운. "자기, 혹시 지금 신난거야?" "일로 가는 거잖아. 일이야, 일." 남편은 더 이상 아무런 말도 보태지 않은 채 잘 접어둔 옷을 꼭꼭 누르기만 한다.



엄마가 없으니 네가 아빠 마중 좀 해라,는 말에 대학생은 심드렁한 반응이었는데, 멀리 가는 길이니까 지하 1층까지는 내려가야 한다,하는 엄포에 잠옷 입고 슬렁슬렁 내려가서는 캐리어 싣고 출발하는 차에 대고 빠이빠이 하는 장면을 동영상으로 찍어 보냈고.


안녕,은 잠시. 제아빠가 핸드폰 두고 간 것을 알게된 대학생은 반바지로 갈아입고 슬리퍼를 신고서는 500미터를 전력질주. 제아빠에게 무사히 핸드폰을 건네었는데. 놀라운 건, 바로 그거. 네 아빠가 상가에 차 세우고 그 정류장으로 갈지 어떻게 알았어? 아빠가 얘기했어. 그러니까 흔한 P들의 대화. 동선과 시간을 공유하는 이 쓸데있는 치밀함.



잘 도착한 1인은 도착하자마자 카톡 프로필을 바꾸는 만행을 저질렀고. 단톡방에서 좀처럼 말이 없는 수험생은, 이거 다 핸드폰 없었으면 안 될 일이야,라고 말했다나 뭐래나.






인천까지 퀵을 부른다해도 전달하는 비용까지 생각하면 엄청날 거다. 30만원은 줘야한다, 착한 엄마의 선빵. 달리기 선수가 된 대학생은 60만원을 부르던데, 아서라. 너는 물정도 모르고, 네 아빠도 모르는구나. 너는, 못 받을지 싶다. 고맙다는 말 외에는. 고맙다, 고맙다, 고맙다 2번. 그걸로 끝.


















수험생 기다리며 읽는 책은 비비언 고닉. 야한 장면 있는데 좀 야해서, 점잖은 곳으로 골라봤다. 엄마 생각났다. 울엄마도 내게 요리, 청소, 다림질을 가르친 적이 없다. 전문 살림꾼인 엄마도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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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수 2024-05-24 23:3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단발님 글 평소 시간대보다 늦은 거 같아요. 삼중 노동 때문인가요. 아닌가? 아니었으면 ㅎㅎ 발췌해주신 부분만 봐도 역시 이 책 저는 못 읽을 거 같네요ㅋㅋㅋ 나머지는 다 보겠어!!

단발머리 2024-05-24 23:35   좋아요 2 | URL
네, 저 교회 다녀와서 대기 타다가 방금 삼중 노동 완료함으로써 오늘 일정 끝났습니다. 이제 씻고 좀 놀아야겠죠?
불타는 금요일! 전 ‘엄마-딸‘ 이야기 별로 안 좋아하는데 이 책은 고닉책이라 시작했어요. (밀리의 서재입니다 ㅋㅋㅋㅋㅋ)

유수 2024-05-24 23:36   좋아요 3 | URL
고닉은 역시 단발님도 모녀 서사 읽게 한다!

단발머리 2024-05-24 23:42   좋아요 2 | URL
고닉이 먹으라 하면 뭐든 먹을 자신이 있습니다, 저는요 ㅋㅋㅋㅋㅋㅋㅋㅋ 넘나 사람이 극단적이라서요 ㅋㅋㅋㅋㅋㅋㅋ

유수 2024-05-24 23:45   좋아요 2 | URL
그런 류의 극단은 저에게도 익숙한 것 같습니다ㅋㅋ 단발님 극단은 상황과 이야기에서 왔나요?

단발머리 2024-05-24 23:50   좋아요 2 | URL
네네 맞습니다. 저는 <상황과 이야기>에서 완전 고닉에게 반했고요. 그 파란색 책<멀리 오래 보기>는 아직 진행 중인데, <끝나지 않은 일>은 거의 끝나가고 이제 막 <사나운 애착>을 시작했지요.
아.... 몇 권 없어요. 금방 다 읽을 거 같아요. 아이참....

유수 2024-05-24 23:54   좋아요 2 | URL
저도 오늘 <멀리 오래 보기>읽으면서 새로 산 책하고 연결돼서 신났더랬죠. 금방 다 읽으시다닠ㅋㅋㅋ무서운 먹성😎😍 소화일지 기다릴게요.

단발머리 2024-05-25 00:01   좋아요 1 | URL
소화일지 기다리는 마음, 참 착한 마음 ㅋㅋㅋㅋㅋㅋㅋ 감사합니다!
저야말로 유수님의 글을 기다리지요. 얼른 얼른 서둘러 읽으시고 좋은 글, 좋은 페이퍼로 돌아와주세요!

유수 2024-05-25 00:02   좋아요 2 | URL
🤞🤞🤞
잘 자요 단발님!

단발머리 2024-05-25 00:29   좋아요 1 | URL
유수님도 굿밤! 😘😘😘

책읽는나무 2024-05-25 11:2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어제 <끝나지 않은 일> 다 끝내고 뿌듯함을 안고 잠들었습니다. 좋은 책을 읽고 너무 뿌듯할 땐, 이상하게 다른 책을 읽을 때 집중이 잘 안 될 때가 있어요. 아침에 읽다 만 다른 책 읽다가 또 그런 기분이 들어서....다른 사람들도 그럴까? 싶더군요.
암튼...글 항아리 시리즈 중에선 <사나운 애착>만 읽음 다 읽었네요. <사나운 애착>은 읽다가 잠깐 멈춤했어요. <짝 없는 여자와 도시>는 재미나게 읽었는데...<사나운 애착>은 조금 집중이 안 되어서 나중에 다시 읽어볼 시도를 해야겠다. 점 찍어둔 책이 되었어요.
그러고 보니 <누구나 공연을...>책도 재미나게 읽다가 또 멈춤. 멈춘 책들이 수두룩합니다.ㅋㅋㅋ
<사나운 애착>은 단발 님의 글을 먼저 읽고 정을 좀 붙여볼까요?^^

남편분이 긴 출장을 가셔서 조금 일이 많으시겠어요. 하지만 또 익숙해지면 한 사람이 공간을 비워준 편안함도 있긴 하던데..^^;;;
전 줄곧 주말부부 하다가 일주일동안 평일부부 했더니 장단점이 있더군요. 일단 정신이 하나도 없더라는...🥲
제가 운전을 못해서 수험생 픽업을 남편이 대신 해주니 그건 좋더군요.ㅋㅋㅋ
(암튼 수험생들도 수험생 어머님도 파이팅입니다.^^)
근데 P들이 저렇게 텔레파시가 잘 통하나요?
와....👏👏👏
하지만 저도 P.
저런 적이 있었던가?🙄
떠올려봅니다.
나의 텔레파시는?......어디에 꽂혀 있나?

단발머리 2024-05-25 20:19   좋아요 2 | URL
저는 <끝나지 않은 일> 아직 안 끝났는데 너무 아쉽구요. 책이 예뻐서 좋은데 너무 작다는 생각에...
책나무님, 고닉 많이 읽으셨네요!! 전 <상황과 이야기> 읽었고, 그리고 <멀리 오래 보기>랑 <끝나지 않은 일>, 그리고 <사나운 애착>이 읽는 중입니다. 멈춘 책들은 모두 우리의 훌륭한 양식이 되어줄거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크고 작은 일들이 밀려 있는데, 대충 다 미뤄두고 있는 형국입니다. (참고: 집 더욱 엉망) 주말부부랑 평일부부는... 맞아요, 장단점이 있을 거 같아요. 저도 그렇게 생각해야겠네요, 우린 주말부부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 누려야겠네요 ㅋㅋㅋㅋ
수험생 파이팅 감사합니다. 싸우지 않고 올 한해를 잘 보내는게 제 바람인데, 아까 한 소리 했더니 자기한테 지금 짜증내는 거냐고 점잖게 묻더라구요. 그래서 제가 ㅋㅋㅋㅋㅋ 응, 맞아. 그랬습니다.
주말 잘 보내세요, 책나무님~~ 여유롭고 평안한 밤 되기를 바래요!!

미미 2024-05-25 12: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엄마에게 살림 못 배웠어요. 잘하면 시집가서 괜히 더 고생한다고ㅋㅋㅋㅋ
P들의 쓸데있는 치밀함에 공감 꾹👆

단발머리 2024-05-25 20:14   좋아요 1 | URL
참 훌륭한 엄마십니다 ㅎㅎㅎ 저희 엄마랑 비슷하시구요. 저희 엄마는 잘해서 뭐하냐....라고 말씀하셨는데 비슷한 맥락이네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수이 2024-05-26 07: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출장 가신 남편님도 신난 기운이 느껴지지만 단발님도 못지 않게 신난 느낌은 뭘까요. 흠. 태그 보니 여행가고픈 마음이 한그득 느껴지기는 하는데.....

단발머리 2024-05-26 20:56   좋아요 0 | URL
저는 하나도 신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현재 기분은 좋습니다 ㅋㅋㅋㅋㅋㅋ 밥 먹고 마라상궈 먹고 맘모스 빵 먹고 요구르트 두 개 마셨어요. 만세!
 
















예전에 이 책을 읽을 때는 반성 모드속에서 읽었다. 지금도 반성할 일이 많고, 반성은 앞으로도 계속될 터이지만, 그때와 좀 다르게 읽히기는 하다.

 





이 책에 대한 비판 중 본질주의에 대한 저자의 대답이 눈길을 끈다.

 


나는 위에서 열거한 이 모든 죄를 짓고 있다고 고백한다. 여성이 주변의 자연과 갖는 관계를 이야기하고 이런 관계가 타고난 것이 아니라, 여성의 몸으로 '존재'해 온 경험, 세대에서 세대로 전해 내려오면서 형성되고 변화되어 온 지식을 배우고 습득해 온 경험을 통해 역사적으로 영향을 받은 것이라고 보면서, 인류와 인류를 둘러싼 세계 사이의 연속성을 강조하는 것이 본질주의라면, 나는 본질주의자이다. 이는 여성이 남성보다 자연에 '더 가깝다'는 것이 아니다. 여성과 남성은 자연의 일부이다. 남성이든 여성이든 이 사실을 깨닫는다면 좋을 것이다. '남성'을 만물의 영장, 자연의 가부장으로 개념화하는 것이 가부장적 프로젝트의 일부이다. (34, <개정판 서문>)

 


나는 여성을 하나의 계급으로 이해한 필리스 체슬러의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나는 가부장제 문화와 의식이 수백 년에 걸쳐 인간의 심리를 어떻게 형성해 왔는가를 자료로 입증해 나갔다하나의 계급으로서 여성은 생산 수단과 재생산 수단을 통제할 수 없었으며 게다가 꾸준히성적으로 또는 다른 측면에서 치욕을 당했다. (<여성과 광기>, 25)  

 


여성이라는 이유여성에게 가해지는 폭력, 학대, 억압은 전 세계적인 공통 현상이며, 이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영역에서 포괄적으로 이루어진다. 8년이 지났다. 그럼에도 2016 5 17일 강남역 인근 공중화장실에서 일어난 살인 사건이 여성 혐오로 인한 것이었음을 아직도, 아직도! ‘설명해야 한다. 여성 혐오는 공기처럼 자리 잡고 있어서 대부분의 경우 그것은 가시화되지 않는다. 여성은 여전히, ‘여성이라는 이유로억압받는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정체성의 정치에 함몰되지 않으면서 현대 사회의 당면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여성이 하나의 단일한 계급이 아님을 인지해야 한다. 여성 사이의 차이가 남녀 사이의 차이만큼이나 혹은 그 이상으로 넓게 존재하고 있음을, 우리는 안다. 모든 사건의 답이 여자이기 때문에혹은 남자이기 때문에가 될 수 없음을, 이미 이해하고 있다.

 


자신이 가진 여성성을 총동원하여 대통령의 부인 자리에까지 도달한 현재의 영부인과 자립을 꿈꾸며 일상의 많은 시간을 아르바이트로 채우고 있는 20세의 젊은 여성의 위치는  판이하다. 개인차로 출퇴근하며 몸이 피곤하면 배달 음식을 주문하는 한국의 어떤 여성은 화장실에 가는 시간마저 제지받으며 공장에서 일하고 있는 제3세계의 여성 청소년의 위치와 완전히 다르다.

 


여성의 으로 전해지는 오천 년 가부장제의 경험은 자본주의와의 공조를 통해 이 지구에 살고 있는 인류(백인 비장애인 유럽 남성을 제외한 사람들) 대부분의 삶을 억압하고 자연을 훼손하는 방식으로 작동해 왔다. 신자유주의의 등장은 이 미친 질주를 가속화시켰다. 저자는 좋은 삶에 대한 규정을 바꾸는 것뿐만 아니라, 소비자 불매운동 등의 차별화된 사회적, 경제적 관계를 제안한다. 또한 성장에 대한 맹신을 넘어서서 자급적 삶이라는 대안을 제시한다.


 















최근의 강연에서 정희진 선생님이 다시 강조하셨던 대로, 신자유주의는 오천 년 인류 역사에서 최초로 가부장제를 이겨버렸다’. 신자유주의라는 환경 아래에서, 여성과 남성은 언제든 대체가 가능한 노동자로서 비로소 평등해졌고, ‘여전히 성차별 있음을 증명해야 하는 책임은 여성에게만 주어진다. (<다시 페미니즘의 도전>, 55)

 


텀블러를 사용하고 육식을 줄이거나 배달 음식을 줄이는 정도의 의식과 실천으로 이 지구의 몰락과 멸망을 막을 수 없다는 것이 자명한 지금, 국제적인 규모의 연대와 협력이, 구체적으로는 미국과 중국 산업계의 적극적인 개입이 필요한 지금, 필요한 것은 역시 정치적인 힘이 아닐까, 하고 생각한다. 정치 묻히지 말라는 친구의 외침이 저 멀리에서 아련히 들려오는 듯하다.

 


답을 찾아보자. 해결책을 찾아보자. 더 읽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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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쟝쟝 2024-05-20 09:5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누구보다 글에 정치묻히는 중입니다…. (첫문장이 2012년 대선으로 시작하는…) 인생이 정치적이다… 누가 나를 말려…
책을 마주하기 두려워하던 그녀는 신자유주의적 여성주의를 만나 (ㅋㅋㅋㅋ) 흠결없는 파편이 되기 위해 일을 하느라 책을 못읽게 되는데…. 무리하지마세요~~~
마리아 미즈 짱!!! 정희진 짱짱!!

수이 2024-05-20 10:17   좋아요 2 | URL
마리아 미즈를 다시 읽어야겠어요. 내용이 하나도 기억나지 않아요. 갱년기 증상이라고 우겨도 여기서는 안 먹히겠죠. 정치랑 철학 빼면 그 어디에 섹시함이 묻어있을까 싶은 친구가 떠오르네요. 요즘 어떤 느끼하게 생긴 일본 아저씨 책 읽느라 정신이 없으시던데, 아 아니다 우리 지돈이 읽으시고 계시나 다 읽으셨나. 일하고 공부해야 하고 영어까지 시작한 세계 최강 똑똑이랑 놀고 싶은데 일해야 한대요, 그리고 틈새 시간 노려 오늘의 영어까지 끝내고 고닉까지 읽고 일 시작한 친구도 그만 좀 놀고 영어 좀 해.... 책 좀 읽어..... 이제 낮도 길어졌잖아...... 라고 해서 반성을 저 밑바닥까지 해버리고 책이랑 영어책 들고 나가요. 오늘은 진짜 좀만 놀게요. 오바.

공쟝쟝 2024-05-20 13:01   좋아요 2 | URL
지돈이 다 뗏고 느끼한/재섭는/이상한 일본인 ‘들‘ 읽다가 한국인으로 잠시 피신 중이고. 일하고 노동하고 사업하고 견적서 쓰고 레퍼런스 찾고, ai 가지고 놀고, 영어 단어 외구고, 고닉 읽고. 낮은 길고. 틈틈 다리 다쳐서 재활훈련도 해야하고. 고양이 발톱도 깎아주고. 정신없습니다. 대체로 아무리 놀려고 노력해도 흠결없는 파편이...라 미안합니다...ㅜ..ㅜ 이런 지옥을 누가 만든거죠?... 나다...

수이 2024-05-20 16:15   좋아요 1 | URL
너무 건설적인 지옥인 겁니다. 신자유주의를 살아가는 현대 여성으로서 어디 모자람 하나 없어 보이는...... 아 물론 제 눈에는 뭔가 모자라보이는 그게 하나 부족해보이는 그런 게 있지만 차마 공적인 공간에서는 이야기를 하지 않겠습니다, 여러모로 씨게 요즘 당한 것들이 많은지라. 그대가 고닉고닉고닉 그랬을 때 들춰도 보지 않았는데 갑자기 이렇게 꽂혀 버리네요. 영어공부 오늘 분량 다 했으니 이제 고닉 언니 책 다른 것 좀 읽어야지. 재활 훈련 열씨미 하셔서 여름에 같이 달리기 할까요? 라고 말하려다가 아 맞아 이곳은 달리기 항상 1등 하던 분의 서재, 더구나 그대도 달리기 취미로 하는 녀인, 꼴찌는 맡아놓았으니 달리기는 그냥 패스합시다.

단발머리 2024-05-21 18:53   좋아요 0 | URL
쟝쟝님 / 무리하지 마세요~~ 는 그 누구보다 저의 멘트 아닙니꽈! 나는 열심히 살기를 강요받는 일용직 노동자이며 끝내 살살하려 했으나 이 일을 대체할 사람이 없어 열심히 하게 된...... 잠깐만요. 눈물 좀 닦고 올게요. (엉엉)

수이님 / 마리아 미즈 너무 좋네요. 제가 리즈라고 했던 거 다 잊어주시구요 ㅋㅋㅋㅋㅋ 그거 아시죠? 하지 지나면 낮이 짧아진대요. 그때까지만 열공하기로 해요. 저도 오늘의 영어 했습니다. 오늘의 공부는 못했구요. 잠깐만요. 저 좀 누웠다 올게요. (쿨쿨)

바람돌이 2024-05-20 13:2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그래서 뭔가를 알아간다는건 사실은 참 두려운 일인것 같아요. 알면 내 삶의 모습을 바꿔야 하잖아요. 대부분의 경우 그건 조금 더 불편하고 조금 더 예민하게 느껴야 하는 쪽이죠. 사는게 점점 어려워 진다는 말이라서요.
아는 것도 어려운데 아는 만큼 사는건 더 어려워요. ㅠ.ㅠ
늘 고민하고 정진하시는 단발머리님, 그리고 댓글의 공쟝쟝님 수이님 다들 오랫만이에요. 화이팅입니다. ^^

단발머리 2024-05-22 09:52   좋아요 0 | URL
사는 게 점점 더 어려워진다는 말씀 참 맞아요. 조금씩 알게 되면 더 답답해지고.... 실천할 수 있는 방법들을 찾아야하는데, 하는데... 하면서 숙제만 쌓이는 기분입니다.

제게 퇴근의 참맛을 가르쳐 주신 바람돌이님~~ 출근 힘들 때마다 되뇌입니다.
출근해야 퇴근한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제 자주 오시는 거죠?

책읽는나무 2024-05-20 23: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 오늘 서문 조금 읽었는데 저도 좀 뜨끔하더이다.ㅜㅜ

단발머리 2024-05-22 09:53   좋아요 0 | URL
책나무님도 시작하셨군요. 저 이 책 좋은데 현재 홀딩 상태입니다.
얼른 뜨끔 주사 맞으러 저도 출동하겠습니다! 충성!

다락방 2024-05-21 09: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가부장제와 자본주의] 시작했는데요, 분명 포스트잇 잔뜩 붙어있는데 과연 이 책을 내가 읽었단 말인가 싶을 정도로 새롭습니다. 읽고 읽고 또 읽어야겠어요. 화이팅!

단발머리 2024-05-22 09:55   좋아요 0 | URL
이 책 진짜 좋아요, 그죠? 저는 에이드리언이랑 필리스랑 페데리치랑 마리아로사랑 보부아르랑 마리아 미즈를 좋아하는 거 같아요. 아! 거다 러너랑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정희진쌤, 그리고 다락방님!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읽고 있어요를 정리해 둔다.














<the idea of you>는 지난주에 읽었다. 영화를 먼저 보고 나중에 책을 읽었는데, 나처럼 영화를 보고 좋아하셨던 분이 또 다른 감동을 기대하신 거라면, 책은 그보다 훨씬 더 현실적이라는 점을 알려드리고 싶다.


노력하지 않아도, 애쓰지 않아도 <the idea of you>는 앤 해서웨이의 영화라서, 이런 아름다운 여성이라면, 얘가 셋이든 넷이든 상관없이, 이 사랑은 반드시 이루어질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게 된다. 앤은 너무 예쁘고, 너무 사랑스럽고, 너무 핫하다. 책 속의 화자는 앤이 역할을 맡았던 ‘Solen’인데, 소설 속의 솔렌은 딱 엄마다. 헤이즈를 바라보는 눈빛이, 그의 행동을 관찰하는 시선이, 내면의 목소리가 모두 엄마로서의 솔렌이다. 두 명의 솔렌 중에 나는 확실히 소설 쪽의 솔렌이어서(당연하지 않은가, 영화 쪽으로는 얼씬거릴 수 없음이다) 소설을 읽는 내내, 나는 훨씬 덜 행복했다. 내가 앤 해서웨이가 되고 싶었다는 그런 이야기가 아니다. 40살의 싱글맘이 20살의 청년을 연인으로 앞에 두었을 때의 심경이 너무 적나라했다는 뜻이고, 그 마음이 잘 이해되었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직진남의 귀여운 돌진은 이어지고.  





계속해서 칭송되는 헤이즈의 특질은 젊음이다. 그가 가지고 있는 바로 그것이 그를 가장 빛나게 하는데, 그걸 가지고 있는 그는 그 소중함을 알지 못한다. 다만, 그는 자랑한다. 자신이 바로 그것을 가지고 있음을 말이다. 나는 남자들이 어린 여자를 좋아한다거나, 나이 든 여자도 젊은 남자를 좋아한다는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니다. 나는 차은우만큼 블랙핑크의 제니를 좋아한다. 나는 김수현을 좋아하고, 뉴진스의 민지를 좋아한다. 우리가 사랑하는 건, 젊음이다. 내가 사랑하는 건 그가 가진 젊음이다. 헤이즈가 가진 젊음. 솔렌에게 작동하는 헤이즈의 힘은 그의 젊음에서 나온다.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와 단장의 아픔을 주는 사랑하는 이와의 이별과 영속성을 잃어버린 사랑의 위치가 어디쯤인지에 관해서도 쓰고 싶지만, 그건 다음 기회에.
















정보라의 <저주토끼>가 유행했을 때, 나는 그 책을 읽어볼 생각도 하지 않았는데, 오히려 인터뷰 기사를 읽고는 정보라 작가의 팬이 됐다. 모든 사람이 사회 정의를 위해, 대의를 위해, 신념을 위해 자신의 삶을 갈아 넣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 대의를 위해 자신의 시간을, 자신의 에너지를 바치는 사람들에 대해 마음 깊이 존경심을 가지고 있다. 나는 그런 사람들이 더 존중받아야 한다고, 사회의 발전을 위해 애쓰는 만큼 일정 정도의 생활 수준을 유지할 수 있을 정도의 보완책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예술은 고독한 작업이고, 사회는 예술가들의 그런 고립과 고독을 이해해 준다. 예술가들은 마음을 흔드는 노래로, 그림으로, 연주로, 작품으로 고립과 고독의 결과물을 사회에 돌려준다. 그 사회를 풍요롭게 한다. 그 누구보다 혼자이고 싶은, 그 누구보다 고립되고 싶은 예술가가, 작가가, 소설가가 길 위에서 써 내려간 이 기록이 특별한 이유다. 세월호 농성과 오체투지와 전장연 투쟁 이야기 등은 한 단어, 한 단어 모두 절절해서 이 얇은 책을 30여 페이지 읽는 동안 자주 덮을 수 밖에 없었다. 더 읽을 수가 없었다부당한 현실에 몸으로 부딪치는 사람들. 소중한 사람들. 고마운 사람들.

















<가부장제와 자본주의>를 알라딘 이웃님들과 같이 읽던 그때, 지금 사는 이 집으로 이사를 왔다. 막 코로나가 시작된 때였고, 모든 사람이 마스크를 쓸 때였다. 사회활동의 마지막 근거지였던 교회까지 가지 못하게 되자, 장보기 이외에는 외출할 일이 없어졌다. 이 책을 읽으면서 느끼는 죄책감과 무력감에 힘입어 올해는 옷을 사지 않겠다는 결심을 하게 됐다. 초반에는 잘 되는 듯했지만, 1+1 행사 때문에 요가 레깅스를 두 개 샀고, 여름 원피스를 하나 샀다. 굳은 결심은 작년에 일을 하게 되면서 유야무야 되고 말았다.


책을 펼치자마자 또다시 밀려오는 죄책감의 파도. 먹을 것을 줄일 수 없다면 다른 소비를 줄여야 한다. 소비 행태를 바꿔야 한다. 덜 먹고, 덜 사야 한다. 덜어내고 더 덜어내야 한다.



















<일류의 조건>은 자기 계발서다. 예전에 출판된 책이 절판된 상태에서 박문호 박사의 추천으로 화제가 되어 재출간 되었는데, ‘일류가 될 수 있는 조건이 따로 있는가 하는 의문으로 읽기 시작했다. 첫 번째 원칙은 훔치기인데, 도제식 교육법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기술을 훔치는 비법이란, '암묵지'와 그것을 활성화한 '형식지'의 순환을 기술화하는 것이다. 이 순환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서는 적확한 '요약력'과 전문가를 상대로 하는 '질문력', 그리고 '코멘트력'과 같은 중요한 능력들을 발휘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일이라는 것 자체는 '과정'에 따라 진행하기 때문에, 결국 기술을 훔치는 것은 과정을 훔친다는 뜻이기도 하다. 자기 스스로 일을 기획하고 실행하는 과정을 정리하며, 그것을 제대로 추진할 수 있을 때까지 수련하는 것은 '일의 추진력'을 단련하는 일이기도 하다. (49)




나는 이런 생활이 아직도 익숙지 않아서 오늘 내내 놀았는데도 더 놀고 싶다. 한없이 오래오래 놀고 싶다. 내일 출근한다는 생각은 마음을 무겁게 하지만, 처리해야 할 일 하나를 화요일 퇴근 전에 급하게 처리했던 터라 딱 그만큼은 마음이 가볍다.


아침에 흰 빨래 한 판 돌려서 저녁에는 청소기 돌리고, 지금 검은 빨래를 한 판 돌리고 있다. 시간은 흘러가고 이제 곧 잘 시간. 그리고는 아침이다. 아침이 찾아올 테다.


그래서 책을 샀다. 나도 책을 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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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4-05-15 22:4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네 맞습니다. 우리는, 인간은 젊음을 사랑합니다. 저는 아이들을 향한 돌봄과 노인을 향한 돌봄이 다른 것에서도 그것은 나타난다고 생각해요. 우리는 우리보다 젊은 사람들을 향해 더 열리는 종족인듯 합니다.

저도 그걸 깨달았어요, 단발머리 님. 우리가 젊음을 사랑한다는 것을요. ‘우리는 젊음을 사랑한다‘고 제가 1년 전에 써둔 글을 링크합니다.

https://blog.aladin.co.kr/fallen77/14299700

단발머리 2024-05-16 13:31   좋아요 0 | URL
아이에 대한 돌봄과 노인을 향한 돌봄이 다른 부분에 대한 다락방님 이야기 너무 좋았어요. 이달의 당선작의 위용이랄까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저도 다락방님의 생각에 동의합니다.

근데, 저는 이 부분에 대해 이렇게도 생각할 수 있을 거 같아요. 그러니깐 이걸 간단히 표현하자면요.
아이들이 덜 아파서(아파도 빨리 회복되어서) 노인을 향한 돌봄보다 아이를 향한 돌봄이 덜 힘들다고요.

이런 식입니다. 아이들도 강도 높은 돌봄이 요구되는 ‘질병‘의 상태에 도달할 때가 있지만, 아이들은 상대적으로 그 시기가 짧습니다. 어른들, 노인들은요? 우리 다 아다시피, 무릎이 나으면 허리가 아프고, 어깨를 치료한 후에는 혈압 체크가 필요하고... 뭐 이런 식입니다. 끝이 안 납니다. 계속 되요. 물론 돌봄 대상자의 미적 아름다움이나 삶에 대한 태도(대부분 아이들이 명랑하고 긍정적이죠, 노인들보다요)도 중요하겠지만요.
전 최근에 읽은 <사랑에 따라온 의혹들>을 읽고 그렇게 느꼈거든요. 아이의 병이 위중하고 요구사항이 많다보니 돌보는 사람이 거의 쓰러지기 직전이에요. 내 자식이니깐 견디고 참을 수 있었던 것 같고요.

하지만 그 무엇보다 저도 젊음을 사랑합니다. 이미 어느 정도 ㅋㅋㅋㅋㅋㅋㅋㅋ 지나가 버렸다고 생각하지만, 우리나라의 중위 연령이 45.6세래요. 그니깐 중간 어느쯤에 우리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우리 아직 젊네요!!

(추신) 헤이즈의 젊음을, 제가 좋아합니다, 많이..............

다락방 2024-05-15 22:4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아, 그리고 책 사러 가겠습니다. 슝-

단발머리 2024-05-16 13:20   좋아요 1 | URL
절대 찬성입니다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독서괭 2024-05-17 13:4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젊음, 너무 좋죠. 전 딱히 시간을 돌려 가고 싶지는 않지만 그 젊었던 나를 다시 느껴보고 싶긴 합니다.. 그땐 그게 소중한지 몰랐죠.. ㅠㅠㅠ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저는 소비가 많지는 않은데 물건을 잘 관리하지를 못해서 ‘좋은 걸 사서 오래 쓴다‘ 이게 안되더라고요. 신발도 툭하면 앞이든 뒤든 까져버리고.. 남편이 아예 세무 이런 건 못 사게 해요 ㅡㅡ;; 흰빨래고 검은빨래고 그냥 다 한번에 처넣고 돌리는 저는~ 워우어 .. 모르겠음다. 현명한 소비와 유지 너무 어려워요.
그래도 소비 중엔 역시 책 소비가 최고죠. ㅋㅋ 구간 처리도 많이 못했는데 두꺼운 세트를 선물로 받아버려서 어쩌지 싶던 것도 잠시, 그 책이 재밌어서 행복합니다 크하하, 단발님 행복한 독서하세용♥

단발머리 2024-05-22 09:59   좋아요 0 | URL
전 물어보면ㅋㅋㅋㅋㅋㅋㅋ 누군가 물어보면 잠깐 다녀올 용의가 있습니다. 전.... 너무, 너무 놀았거든요. 대학다닐때, 시험 기간에도 도서관 안 갔다면 말 다했죠. 다시 돌아가고 싶습니다.
저도 물건을 잘 관리하지 못하는 편이기는 한데, 요즘 의류... 특히 의류에 저가 제품이 많아서 더 쉽게 소비하는 거 같고요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저는 책소비는.... 걔 중에 제일 윤리적이고 정직하고 착한 소비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독서괭님의 그런 자세(구간 읽고 신간 사기)는 반드시 본받아야할 거 같아요.
이상 주문할 때 맘이랑 책 쌓아둘 때 맘이 다른 단발머리였습니다.

2024-05-24 07:44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