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라앉은 자와 구조된 자 - 아우슈비츠 생존 작가 프리모 레비가 인생 최후에 남긴 유서
프리모 레비 지음, 이소영 옮김 / 돌베개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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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스러웠던 과거의 기억을 되살리는 것은 괴로운 일이다. 과거의 기억이 아우슈비츠와 같은 극한 환경에서의 것이라면 더욱 그러하다. 전쟁이 끝나고 해방이 되었을 , 피해자들의 증언을 들은 사람들 대부분은 그들의 이야기를 믿지 않았다. 있을 없는 일이었고, 있어서는 되는 일이었다. 사람들은 믿지 않았다. 믿을 없었다. 구체적인 증거가 나타나고 나서야 사람들은 비로소 피해자들의 증언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역사상 유례를 찾아볼 없는 홀로코스트의 비극의 정점은 민족 전체를 전멸시키기 위한 계획들이 얼마나 치밀하고 잔인하게 이루어졌는지를 확인하는데 있다. 유대인들을 향한 감정적 증오는 그들은 인간이 아니라는 확신을 갖게 했고, 증거를 남기지 않기 위해 유대인이라면 명도 남김 없이 모두 죽어야 했다. 가장 잔인한 방식으로, 가장 철저한 방식으로. 





유대인을 화로 속에 넣어야 했던 것도 유대인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위 종족인 유대인, 인간 이하인 유대인들이 모든 굴욕에 굴복한다는 것이 증명되어야 했다. 심지어 자기 자신을 파괴하는 일에서조차. 반면, 모든 SS 일상적인 임무로 기꺼이 학살을 받아들인 것은 아니었다는 점도 입증된다. … 사실 특수부대의 존재는 어떤 의미를 갖고 있었고 어떤 메시지를 담고 있었다. “지배 민족인 우리는 너희들의 파괴자이지만, 너희들은 우리보다 나은 것이 없다. 우리가 원하기만 한다면, 그리고 실제로 원하고 있지만, 우리에겐 너희의 육신 뿐만 아니라 영혼을 파괴할 능력이 있다. 우리가 우리의 영혼을 파괴한 것처럼.” (61) 





인간이 인간에게 모욕을 있는 모든 가능한 방법을 독일인들은 포로들에게 시험했다. 되는 대로 혹은 아무렇게나, 아니라, 최대한의 모욕을 주기 위해, 죽되 고통 속에서 죽어가도록 가능한 모든 조처를 다했다. 수용소에 처음 도착한 포로들은 자신들의 처지가 급격하게 바뀐 것을 처음에는 받아들이지 했다. 반항하는 사람들이 먼저 죽었다. 인간이 아닌 동물로서의 자기 자신을 받아들인 사람들만이, 내일을 위해 빵을 숨겨둘 계략을 가진 자만이 지옥 같은 생활을 감당할 있었다. 



책에서는 인간이 인간을 대우하는 처참한 방법들과 인종주의에 근거한 잔인함, 독일 민족 특유의 완벽성에 대해 보여주지만, 프레모 레비가 말하고 싶은 것은 이상이다. 생존자로서, 프레모 레비는 자신이 어떻게살아남았는지 돌아본다. 





다른 사람 대신에, 다른 사람을 희생하여 내가 살아있는 것일 수도 있다. 다른 사람의 자리를 빼앗은 것일 수도, 그러니까 사실상 죽인 것일 수도 있다.’ 라거의구조된 자들 최고의 사람들, 선한 운명을 타고난 사람들, 메시지의 전달자들이 아니었다. 내가 , 내가 겪은 것은 그와는 정반대임을 증명해 주었다. 오히려 최악의 사람들, 이기주의자들, 폭력자들, 무감각한 자들, ‘회색지대 협력자들, 스파이들이 살아남았다. (97) 





그는 진정한 증언을 있는 사람들은 죽었다고 말한다. 살아야 사람이 죽었고, 죽어야 사람이 남았다고. 나은 사람이 죽었고, 못한 사람이 남겨졌다고. 이로 인한 철저한 죄책감과 슬픔이 그를 사로잡고 있음을, 수용소에서 해방된 40여년이 지난 시간에도 고백하고 있는 것이다. 



마지막 그의 당부는 개인적인 증오의 범위를 넘어선다. 해방 재판에 넘겨진 범죄자들의 변명, 어쩔 없었다는 그들의 변명은 온당한 것인가. 독일은, 독일 민족은 어쩌면 그토록 방향으로 미친 폭주를 계속할 있었단 말인가. 




그러나 마찬가지로 분명히 해둘 것이 있다. 독일 국민들 대다수는 정신적 나태함 때문에, 근시안적 타산 때문에, 어리석음 때문에, 국민적 자부심 때문에 애초에 히틀러 대장의아름다운 말들 받아들였다. 히틀러에게 행운이 따른 동안에 그를 추종했고 아무런 가책도 없이 그를 지지했다. 그러다 히틀러의 파멸이 그들을 휩쓸어버렸고, 그들은 죽음과 비참함, 회환으로 괴로워하다가 부도덕한 정치놀음의 결과로 재활했다. 바로 그런 독일 국민들 대다수의 책임도 있었다는 사실은 분명히 해두어야 것이다. (252) 





나는 주로 식탁에서 읽고 쓴다. 커피를 타서 옆에 놓고 좋아하는 과자를 먹으면서 , 책장을 넘겨 이제 책을 읽었다. , 괜찮네. 좋은 지적 자극이 됐어, 라고 말하며 잊어버리기엔 책은 너무나도 무거운 질문을 남겨준다. 어떤 사람이 죽고 어떤 사람이 살아남는가. 살아남은 사람은 자신의 존재에 대해 어떤 방식으로 긍정할 있는가. 살아남은 자는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죽어간 자를 어떤 방식으로 기억할 있는가. 역사의 실수를 어떤 방식으로 극복할 있는가. 아우슈비츠의 비극이 다시는 반복되지 않으리라 확신할 있는가. 우리는, 우리는 어떤 지도자를 선택할 것인가. 내가 속한 거대한 집단이 잘못된 선택을 했을 , 어떻게 해야 하는가. 사회 전체가 미쳐 돌아갈 우리는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 나는, 도대체 나는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   





나는 누구든지 감히 심판을 하고자 하는 사람은 자기 자신에 대해 솔직하게 추론적 실험을 해보라고 권하고 싶다. 할 수 있다면 수개월을, 수년을 게토에서 만성적 배고픔과 피로, 혼잡한 난리통과 굴욕감에 시달렸다고 상상해보라. 자신의 주위에서 한 사람 한 사람씩 소중한 사람들이 죽어가는 것을 보고 소식을 받거나 보내지도 못한 채 세상에서 잘려져 나갔다고 상상해보라. 결국에는 화물열차의 객차마다 80명, 100명씩 실려 무턱대고 미지의 곳으로 며칠 밤낮을 잠도 못자고 여행한다고 상상해보라. (68쪽)

나치는 그 방면에서 대가였다. 이런 것들은 즉각적인 파기력을 가지며, 파괴시키기 전에 먼저 마비시킨다. 격리, 굴욕, 학대, 강제이주를 당하고, 가족 관계가 찢겨지고 세상과의 접촉이 단절될 때는 더더욱 그렇다. 바로 이것이 게토나 임시집결수용소라는 지옥의 전 단계를 거쳐 아우슈비츠에 상륙한 포로들 대부분이 처한 상황이었다. (90쪽)

국가사회주의의 밑그림이 나름의 합리성을 가지고 있었다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독일의 오랜 꿈인) 동방 진출, 노동운동의 탄압, 유럽 대륙에 대한 패권 장악, 히틀러가 극단적으로 단순화하여 동일시한 볼셰비즘과 유대교의 전멸, 영국, 미국과의 세계 권력 분할, 정신병자와 쓸데없는 군입들을 ‘스타르타식‘으로 제거함으로써 게르만족을 이상적으로 만드는 것 등이 바로 그것이다. 이 모든 요소들은 서로 병존할 수 있었고, 이미 <나의 투쟁>Mein Kampf에 부인할 수 없이 명료하게 드러난 명제들, 즉 오만함과 급진주의, 교만과 철두철미, 광기가 아닌 거만한 논리 등과 같은 몇몇 소수의 명제들에 의해 추론될 수 있는 것들이었다. (128쪽)

맨발에 벌거벗은 인간은 온몸의 신경과 힘줄이 잘려나가는 기분을 느낀다. 그는 속수무책인 먹잇감이다. 비록 배급받는 게 더러운 옷이라 해도, 밑창이 나무로 된 형편없는 신발이라 해도, 의복이란 보잘것없지만 필수불가결한 최소한의 방어다. 의복이 없는 사람은 자기 자신을 인간으로 인식하지 못한다. 차라리 스스로를 땅바닥에 기어다니는 지렁이처럼 벌거벗고 느리고 비천한 존재로 인식한다. 그렇게 그들은 자신들이 언제라도 짓이겨질 수 있다고 느낀다. (137쪽)

문신 작업은 그다지 아프지 않았고 1분 이상 걸리지 않았다. 하지만 트라우마를 안겨주었다. 문신의 상징적 의미는 모두에게 너무나 분명했다. 즉, 이것은 지워지지 않는 표식이다, 이곳에서 너희들은 결코 나갈 수 없다, 이것은 도살된 운명인 짐승들과 노예들에게 찍히는 낙인이다, 너희들은 바로 그런 것이 되었다, 너희들은 더 이상 이름이 없다, 이것이 바로 너희의 이름이다. 문신의 폭력은 아무런 이유가 없는, 폭력 그 자체가 목적인 폭력이었고 순전한 모욕이었다.(144쪽)

우리가 받는 질문들 중 절대로 빠지지 않는 것이 하나 있다 .오히려 그 질문은 해가 거듭될수록 조금씩, 점점 더 집요하게, 비난의 어조를 점점 덜 감춘 채 표현되었다. 그것은 단일한 질문이라기보다는 질문들의 집합이다. 당신들은 왜 도망가지 않았나? 왜 저항하지 않았나? 왜 ‘사전에‘ 체포를 피하지 못했나? 이런 질문들은 빠지지 않으며 시간이 흐를수록 증가한다. 어쩌면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이 질문들이 더 주목할 가치가 있는지도 모르겠다. (18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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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9-10-04 10: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진짜 단발머리님 열심히 읽네요. 저는 이 책을 샀는지 안샀는지 모르겠지만 프리모 레비 책 집에 몇 권 있거든요. 네, 다른 책들처럼... 그냥 ..... 있어요...... 매번 읽어야지 읽어야지 하지만 또.....

[주기율표] 그것만 읽었네요, 프리모 레비는...


오전에 제가 리뷰 쓴 [돌이킬 수 있는]은 거대한 싱크홀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죽고 거기에서 살아난 생존자들의 이야기거든요. 최근에 시몬 베유를 읽은 탓인지, 유대인 학살과 세월호.. 그 모두가 생각났어요.

단발머리 2019-10-04 11:35   좋아요 0 | URL
저는, <프리모 레비의 말>이랑 이 책, 이렇게 두 권 읽었는데요. <죽음의 수용소에서>와는 좀 다른 느낌이었어요.
살아 온 것이 자랑스럽고, 피해자이며 동시에 영웅으로서의 자신이 아니라,
남의 것을 도둑질하지는 않았지만 다른 사람을 충분히 돕지 않은 것에 대해 죄책감을 갖는 부분에서,
이런 사람의 목소리를 듣는다는 점에서, 제게는 무척 다르게 느껴지는 책이었어요.
<쥐>를 읽고 나서 바로 이 책을 읽어서 그런지 머리 속에 끔찍한 광경들이 가끔은 그림으로 그려지기도 했구요 ㅠㅠ

[돌이킬 수 있는]는 장르가 환상소설로 되어 있더라구요. 다락방님 리뷰 읽고 나니까 막 서둘러 읽고 싶어요.
기대가 크다고 합니다, 제가^^

다락방 2019-10-04 11:37   좋아요 1 | URL
와 진짜 빠른 단발님.
저는 ‘내가 프리모 레비 읽었는데, 뭐였지?‘ 궁금해서 프리모 레비 넣고 검색했다가 제가 읽은 게 주기율표 라는 걸 알았고, 그러면서 오오, 이런 책이 있었군, 하면서 프리모 레비의 말을 장바구니에 넣었거든요. 제가 오늘 장바구니에 넣은 책을 단발머리님은 이미 읽으셨네요. 아, 진짜 겁나 멋져... 요즘 세상 최고 멋진 분이 단발머리님 이란거, 아세요? 그거 알고 사셔야 해요.

단발머리 2019-10-04 11:42   좋아요 1 | URL
에궁궁.... 아닙니다요~~ 프리모 레비 책 [주기율표], 정말 아름다운 책이잖아요.
프리모 책 중에서 가장 문학적인 완성도를 보여준다는 그 훌륭한 책을 다락방님은 진작에 읽지 않으셨습니까.
저는 프리모 레비의 책을 좋아하지만, [프리모 레비의 말]이라는 인터뷰집은 으흠.... 제겐 그렇게 감동적이지는 않았습니다.
우리 사이를 고려해 도서관에서 먼저 대여해보시기를 권해드리고요.

요즘 세상 최고 멋진 분은 다락방님이시고, 그 다음으로는.... 저 할까 말까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제 방이라고 이거 정말, 너무 나대는 거 아닙니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다락방 2019-10-04 11:45   좋아요 0 | URL
공동1위 어때요?

단발머리 2019-10-04 11:47   좋아요 0 | URL
다락방님은 손해인데, 나는 개이득이니까요.
그냥 나 몰라라 해볼까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분노와 애정 - 여성 작가 16인의 엄마됨에 관한 이야기
도리스 레싱 외 지음, 모이라 데이비 엮음, 김하현 옮김 / 시대의창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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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작가 16인의 엄마됨에 관한 이야기분노와 애정』 읽고 있다. 많이는 아니더라도 페미니즘 관련 도서를 적잖이 읽어왔다고 생각하는데, 수전 그리핀의 <페미니즘과 엄마됨> 읽으면서 다시 뜨거워진다. 짧지만 강렬하다. 



수전 그리핀의 글은싱글맘을 위한 신문 기고된 것으로 엄마됨에 관한 페미니스트 이론을 주제로 하고 있다. 끝없는 사랑으로 자녀를 보살피는 아름다운 엄마의 모습이라는 것이 얼마나 허구적인지에 대해 수전은 말한다. 아이와 엄마는 가난하다. 





여성이 필수품을 얻으려면 아이들의 아버지와 결혼해야만 하고, 아이 아버지에게 이들을 부양할 있는 능력과 의지가 있어야만 한다. (80) 





여성이 아버지 없이 아이를 키우려 , 아이와 여성은 비난에 직면할 뿐만 아니라, 생필품을 얻기 위해, 살아남기 위해, 사는 필요한 돈을 벌기 위해 서로 떨어져 지내야 한다. 가난 속에서 아이를 키울 , 가난한 여성이 아이를 혼자 키울 , 이들의 정신과 신체가 파괴되는 모습이 문학작품에서는 되풀이된다.(81)





엄마됨에 관한 페미니즘 분석에 걸맞는 다른 통찰은 아이의 이익을 가져와야 어머니의 희생이 아이를 파괴할 있다는 것이다. 엄마가 자신의 자아를 희생하면 아이도 자아를 희생한다. 엄마의 사랑은 아이를 집어삼킨다. 엄마의 평가는 억압이 되고, 엄마의 보호는 지배가 된다. (83) 




정희진 『21세기에는 지켜야 자존심』에서노동시장으로 진출하지 않은 혹은 못한, 중산층 고학력 여성들이 자아실현을 위해 가정에서 자녀 교육에 올인하는 구조 때문에 계급 고착화가 심화되었고, 강남 부동산 문제나 사교육 문제도 이와 연결되어 있다’(226) 지적했다. 엄마의 희생이 아이에게 희생을 강요하고, 엄마의 사랑으로 아이가 억압되는 구조. 서로의 희생으로 서로를 옥죄는 절망적 상황이 곳곳에서 펼쳐지고 있다.  



정답은 없다. 하나의 답을 강제해서도 된다. 후회도 아쉬움도 없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만, 때로 돌아가 퇴사하지 않고 아이를 부모님께 맡기겠냐 묻는다면. 아니. 때와 똑같은 결정을 내렸을 것이다. 하루가 다르게 자라는, 꽃처럼 싱그럽고, 별처럼 빛나는 예쁜 아기를, 손으로 키우겠다, 말할 것이다. 하지만, 모두 그래야만 한다고 누군가 말한다면 그건 폭력이라고 말하고 싶다. 모든 여성에게는 모성애가 있고, 어머니의 사랑은 숭고하며, 어머니의 희생으로 아이가 자란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답해 주고 싶다. 그건 거짓말이다. 희생을 전제로 사랑은 포근할 없다. 자신을 버려서 얻게 힘으로 전하는 사랑은 사람을 행복하게 없다. 엄마가 행복해야 아이가 행복하다. 엄마와 아이가 같이 행복을 누려야만 진짜 사랑이다. 특정 시간만큼은 희생하지 않을 없겠지만, 기간을 최소화할 있는 구체적인 방법들은 분명 존재한다. 





우리 아파트에는 층에 4가구가 사는데, 바로 옆집의 아이가 둘째와 같은 중학교, 같은 학년이다. 옷을 챙겨준다며 현관문을 열고 나섰더니, 엄마는 얼른 들어가시라, 벌컥 화를 낸다. 엄마가 챙겨주는 아이가 되고 싶지 않아서 혹은 그런 돌봄을 받는다는 사실을 보여 주기 싫어서. 얼른 안으로 들어서며 다시는 현관 밖으로 나가지 말아야지 다짐을 한다. 현관문을 열고 학교 가는 둘째의 대견한 뒷모습을 바라보지 말아야지. 큰아이 방에 자꾸 들어가지 말아야지. 아이들이 사랑을 귀찮아할 만큼 매달리지 말아야지. 



그게 빅뱅과 같은 호르몬 대폭발 시기를 보내고 있는 아이에 대한 나의 사랑일테니. 예전처럼 붙어있을 수는 없겠지. 지금은 이렇게 약간의 공간을 두고 떨어져 있는 어쩌면 진짜 사랑일 수도. 응원하며 옆에 있어 주기. 약간 떨어져서. 현관문 밖에서는 애정을 자제하고.  

그렇게 해야지. 그렇게 해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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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19-09-20 02: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아이에 따라 조금 다르지 않을까 싶기도 해요 엄마가 마음을 나타내주기를 바라는 아이도 있고 가만히 내버려두기를 바라는 아이도 있을 거예요 아이 마음은 엄마가 이것저것 챙겨주면 좋을 텐데, 그걸 나타내지 못하는 아이도 있겠지요 아이 마음 알기 어렵겠습니다 자주 이야기 한다면 조금은 알지... 지금은 부모와 아이 사이가 예전하고 다르기도 하니 이야기도 자주 하겠지요 저는 거의 안 했는데,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예요 이제와서 부모한테 바라는 건 없지만... 그러면서도 제 마음은 조금 알았으면 하기도 하는군요

엄마가 즐겁게 살아야 아이도 그걸 느낄 거예요 엄마 자신이 희생했으니 아이한테도 그런 걸 바라면 안 되겠지요 이건 어떤 관계에서나 마찬가지군요 무언가를 바라지 않고 마음을 주기...


희선

단발머리 2019-09-21 08:10   좋아요 0 | URL
아이에 따라 다르기는 한거 같아요. 근데 아무래도 아이들이 어릴 때 손이 더 가기는 하죠.
제일 나쁜 경우는 아이가 어릴 때는 아이랑 같이 있는 걸 힘들어하다가
아이가 또래그룹에 관심을 갖고 부모에게서 심정적으로 독립할 때, 그런 아이와 함께 있자며 아이방으로 돌진하는 경우죠.

아이 키우는 게 어렵죠. 아직도 어려워요. 아이 키우면서 부모가 더 성장하는 것 같기도 하구요.

감은빛 2019-09-20 13: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글을 읽으며 엄마를 아빠로 바꾸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잠시 해봅니다.
큰 아이 태어나고 얼마되지 않아, 아이 엄마가 버는 돈이 저보다 많았기 때문에,
제가 육아휴직(무급)을 받고 아이를 돌보고 아이 엄마는 일을 하러 다녔거든요.
휴직을 마치고 제가 복귀하면서는 아이를 어린이집에 종일반으로 보냈구요.
저처럼 일에 집중해야 할 아이 엄마를 존중해 퇴근후 아이를 데리러가는 일도,
주말에 아이를 돌보는 일도 그외 온갖 잡다한 집안 일들도 모두 적절하게 나눠 하려고 노력했어요.
그래서 우리 아이들은 태어나면서부터 엄마와 거의 비슷한 비중으로 아빠와도 시간을 보냈어요.
이 사실이 지금 아이들이 자라는 과정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도 궁금합니다.

이제는 따로 살지만, 아이들이 엄마집과 아빠집을 오가며 생활하는 것도,
엄마에 비해 아빠는 학교 성적에 대해 상대적을 관대한 점(신경쓰지 않는 것이 아니라)도,
아이들과 동성인 엄마가 챙길 수 있는 여러 것들과 반대로 아빠만 챙길수 있는 어떤 것들도,
아이들에 대해서는 늘 많은 것들이 궁금하고 또 한 편 신기합니다.

이 글에 아이들에 대한 단발머리님의 사랑이 듬뿍 담겨있어 읽는 사람을 감동시켜요!

단발머리 2019-09-21 08:20   좋아요 0 | URL
감은빛님 가정 이야기 읽다보니 청와대 고민정 대변인 가정이 생각나네요. 그 집에서는 아이들이 아빠를 엄마라고 부른다 하더라구요. 감은빛님은 진짜 아이들 육아에 많이 참여하셨던 것 같아요. 여성이 일을 하는 경우에도 육아는 ‘당연히‘ 아내 차지가 되어 버리는데, 감은빛님은 진정한 공동육아 실천자세요^^

전, 아이들도 알고 있을 거라 생각해요. 아빠하고 가까운 사이였어도 아이들이 여자아이들라면 사춘기 때는 잠깐 소원한 시간이 있는 것 같아요. 제 경험에는 그렇더라구요. 그래도 아빠하고 함께했던 시간과 추억의 소중함을 잘 간직하고 있을 거예요.

아이를 키우는 과정에서 부모만 아이에게 무언가를 주는 것 같지만, 전 부모도 그 과정 속에서 성장하는 거라 생각해요.
더 나은 사람이 되어 가는 시간이요.
전 댓글에서 감은빛님의 아이들에 대한 사랑을 느낍니다. 저야말로 감동받습니다!!!
 
나혼자 끝내는 독학 프랑스어 첫걸음 나혼자 끝내는 독학 첫걸음 시리즈
염찬희 지음 / 넥서스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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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부터 프랑스어를 공부하고 있다. 독학은 아니고 수연님이 공부를 도와주는프랑스어 입문반 들어갔다. 일주일을 고민에 고민을 하다가 포기하더라도, 한달 하고 말더라도 보자, 용기를 그러모아 간신히 시작했다. 교재는나혼자 끝내는 독학 프랑스어 첫걸음』이고, 매일 단원씩 공부하고 본문을 소리 내어 읽은 , 녹음한 파일을 단톡방에 올리면 된다. 일주일에 번씩 진도를 확인하고 질문에 답해주는 친절한 프랑스어 선생님의전화 찬스 있다. 1, 2 열심히는 했는데 녹음 파일을 들어보니 도저히 들을 없는 지경이라 어쩔 없이 녹음파일을 올리지 않았다. 수연님의 따끔한 소리를 들은 후에야에라 모르겠다 심정으로 두어 녹음 파일을 올렸다. 제발, 아무도, 녹음파일을 듣지 말기를. 



새로운 외국어를 배우는 일은 가슴 설레는 일이다. 집에는 일본어 초급책 2권과 마스다 미리 원서 1, 구몬 중국어 6개월치가 차분히 나를 기다리고 있지만, 시작하지 않고서도 나는 일본어와 중국어에는 가슴 설레지 않을 거라는 걸 알았. 그래서 마음 편히 모른 있었다. 외국어를 시작한다 치면, 머리 속을 맴도는영어나 하지 그래?’ 질책과 호소가 발목을 잡는다. 잡았다. 하지만, 평생에 영어가 유창해지지 않을 거라는 불길한 예감은 점점 강력해져 이제는 확신을 갖기에 이르렀고, 그래서 외국어 배우기에 도전하기로 했다. 늦기 전에.  








프랑스어 공부를 시작하면서 좋은 가지는 영어에 대한 사랑이 불타오른다는 것이다. 영어를 공부해야만 했을 , 국어에 대해 느끼는 애절한 사모의 마음이, 프랑스어를 공부하는 시점에 영어로 옮겨가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어는 얼마나 쉽고, 합리적이며, 아름다운 언어인가. 한국어는 얼마나 정확하고, 경제적이며, 완벽한 언어인가. 영어는 (프랑스어에 비해) 얼마나 쉽고, 합리적이며, 아름다운 언어인가. 영어는 (프랑스어에 비해) 얼마나 정확하고, 경제적이며, 완벽한 언어인가. 프랑스어를 공부하다가 영어를 좋아하게 됐다. 나는 영어를 잘하니까, 프랑스어 보다는. 




<Friends> 클립 <Joy speaks French> 보며 혼자 한참을 웃었는데, 조이가 프랑스어를 해서 웃은 아니다. 근처에 프랑스어 잘하는 사람이 없어서 망정이지, 밑에 한글로 써놓고 따라 읽는 프랑스어가 조이의 프랑스어와 비슷할 거라는 생각 때문에. 그럴 가능성이 99.9 % 웃었다. 혼자서 많이.  


Je m’appelle Pa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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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나무 2019-09-15 19: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멋지십니다^^

단발머리 2019-09-15 20:04   좋아요 0 | URL
저랑 같이 가시지요!!!^^

카알벨루치 2019-09-16 07: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멋찌다 단발머리님 고개가 숙여집니다 ㅠㅠ

단발머리 2019-09-16 07:38   좋아요 1 | URL
제가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이 페이퍼를 올렸더랬는데요.
또 한없이 부끄러워집니다 ㅠㅠ

카알벨루치 2019-09-16 08:14   좋아요 0 | URL
don’t be shy^^

단발머리 2019-09-16 08:17   좋아요 0 | URL
푸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그럴께요^^

카알벨루치 2019-09-16 08:22   좋아요 0 | URL
외국어공부하신다길래 엄청난 도전을 받았는데요 제가 포크너의 소설을 읽으면서 느낀 점은 정말 원서로 읽으면 이 맛이 어떨까 그런 생각을 했더랬는데...전 안되도 단발머리님은 될 듯! ㅋ👍👍👍

단발머리 2019-09-16 08:39   좋아요 0 | URL
제가 프랑스어로 원서를 읽는 날이 올까 모르겠습니다. 포크너의 소설도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전 요즘에 로알드 달의 책을 한 권씩 재미나게 읽고 있기는 해요.
제 생각으로는.... 제가 원서의 맛을 맘껏 느끼는 수준까지 갈지 확신이 없는데, 카알벨루치님 응원으로 어쩌면 될 수도 있겠다는 긍정적인 생각이 들어요.
정말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카알벨루치님!
Merci Beaucoup! Bonne journee! 카알벨루치님!

다락방 2019-09-16 10: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단발머리님 진짜 짱멋져..... ♡

단발머리 2019-09-16 10:22   좋아요 0 | URL
흐이잉~~~~~😍

수이 2019-09-16 10: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단발머리님 짱 귀여워 ㅋㅋ

단발머리 2019-09-16 11:10   좋아요 0 | URL
크이힝~~~~~😍
 
쾌락독서 - 개인주의자 문유석의 유쾌한 책 읽기
문유석 지음 / 문학동네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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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문서를 펼쳐 보니일주일 며칠  페이퍼는 북플에서 작성한 것이라 일주일 만이다 맘대로 2019올해의 휴가 책을 선정해 보려 한다휴가는  갔는데올해의 휴가 올해는 예상대로 휴가를 가지  했다아이의 보충 수업 일정 때문이었는데역시 예상대로 며칠은 에어컨이 빵빵한 곳에서 아침부터 밤까지 서늘하게 보내기는 했다 밖을 나설 때마다 손에 들었던  중에 올해의 휴가책을 골라본다첫번째 책은 문유석 판사의 『쾌락독서』. 



 책의 특장점이라고 한다면부담없고 재미있는 책수다를 마음껏 들을 수 있다는 것이판사라는 사회적 지위에 괘념치 않고(괘념할 경우 말할  없을 것이므로), 자신이 어떻게 책에 대한 관심을 지속해 왔는지를 고백한다(고백이라 하는 이유는 그의 초창기 독서이력에서 야한  찾기를 고려한 것이다).  





물론 어차피 어떤 고전 명작이든 사춘기 사내아이의 눈에는 오로지 어른들의 성과 연애를 엿볼 기회였을 뿐이다별다른 매체가 없던 시절문학만이 소년의 성적 호기심 충족 수단이었으니까양주동판 <국어대사전구석구석을 집요하게 뒤져  자로 끝나는 말부터 소설에 나오는 ‘용두질’ ‘공알운운의 고급 용어까지 습득하기도 했습지요. (45) 





저자의 다양한 독서 스펙트럼에는 한껏 박수를 보내고 싶다그가 말하는   대부분이 읽기는 커녕 들어보지도 못했던 제목의 책들이다 





그에게서는 언제나 비누 냄새가 났다 시작하는 강신재의 <젊은 느티나무> 여학생들 할리퀸 로맨스 읽듯이 가슴 설레며 읽고손소희의 <남풍>에서 세영과 남희의 기구한 사랑에 멍해지고박화성의 <태양은 날로 새롭다> 보며 통속적인 신파 드라마 같다고 느끼면서도 여자 캐릭터들이  이쁘고 매력적인 것처럼 묘사되어 남주인공에 감정이입하며 열심히 읽기도 하고. (49) 





한국문학대전집에서 시작되어 서양문학으로 이동해 스탕달모파상제임스 조이스를 읽던 호르몬 과잉 사춘기 소년은 급기야 가슴 콩닥거리는 연애 이야기에 이른다이른바 ‘순정만화 시기 다다른 것이다. 





돌이켜보면  시기가 내게   선물이 하나 있다나와 다른 성인 사람들의 내면을 간접적으로나마 경험해볼  있었다는 것이다어려서부터 많은 명작들을 읽어왔지만  명작들의 대부분은 나와 같은 남성의 시점으로  것들이었다주인공인 남성들의 욕망번뇌방황은 실감나게 묘사되어 있었지만등장하는 여성들의 내면은 알기 힘들었다그녀들은 그저 신비로운 존재였다눈부시게 아름답거나 눈물겹게 희생적이거나무슨 “영원히 여성적인 것이 우리를 이끌어올린다 늙은 괴테 은교 찾는 소리나 ‘자애로운 국모’ 등등의 마거릿 대처 탄광노조 굴복시키는 소리 말이다아니인구의 50퍼센트는 신비화하기엔 지나치게  집단 아닌가. (104) 





그는 한결같이 자신은 ‘재미 위해 책을 읽어왔노라 말한다읽을 책을 고를 때도 앞부분을  읽어봐서 재미있는 책을 고르고재미있게 읽은 책에 대해 친구동료들과 책수다를 떨고그리고 재미있게 읽은 책에 대한 글을 여기저기에 써왔노라고 말이다하지만 순수한 재미를 추구했던 독서 여정 순정 만화 시기를 통해 그는 ‘여성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된다아름다움과 희생한없이 미화되고 무조건적으로 신비화되었던 인구 50퍼센트의 꿈과 사랑우정과 비전에 대해서 말이다여학생은 순정만화 코너에남학생은 소년만화 코너에 일사분란하게 나뉘어 앉아 있던(107   시절순정만화 읽기를 통해 그는사람이  가지 성으로 간단히 분류할  있는 단순한 존재가 아님을 배우게 된다. 재미를 찾아, 재미만을 찾아 여학생 전용 순정만화 코너에서 만화책의 책장을 넘기면서. 




자신이 좋아하는 책만 읽고자신이 좋아하는 글만 쓴다는 문유석의 책읽기를 통해  줌의 더위를 덜어냈다진지할 것이 예상되어 더욱 궁금한 그의 판결문도 읽고 싶기는 한데어떻게 어떤 방식으로 찾아야할지  모르겠다. 

2019올해의 휴가  후보 1번은 문유석의 『쾌락독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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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22598 2019-08-21 23: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단발머리님도 재밌게 있으셨다니 기쁘네요 ^^ 문유석님의 어릴때 책 읽기의 취향...특히 야한 부분을 고대하며 읽으셨다는 고백...이제 나도 다른 사람에게 나도 그랬다며..자신있게 얘기할 수 있는 큰 용기를 주셨어요 ㅋㅋ

단발머리 2019-08-22 09:34   좋아요 0 | URL
그렇게 솔직히 말하지 못하는 분들이 사실 대다수죠. 문유석님을 통해 많은 분들이 고백하게 되는 계기가 될 수 있겠네요.
저를 포함해서요 ㅎㅎㅎㅎㅎㅎㅎㅎ
 
탈코르셋 선언 - 일상의 혁명 페미니즘 철학 세미나 1
윤지선.윤김지영 지음 / 사월의책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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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엄마 세대를 중심으로 알음알음 전해지던 과격한눈썹 문신 한껏 진화해, 요즘에는 주위의 여성들도 자연스러운 색상의 예쁜 눈썹 문신을 많이 하는데, 추천의 시작은, 편해이다. 급기야는 짱구 눈썹으로 무장한 딸애게조차 눈썹 문신을 권한다. 쟤도 해줘, 하면 얼마나 편한데. 요즘 유행에 맞춰 해준다니까. 



친하기는 하지만 친구는 아닌 지인들과 식사를 하고 있었는데, 이야기를 나누던 난데없이 쌍꺼풀 수술 고백 타임이 되어버렸다.  8명이 모여 있었는데, 중에 쌍꺼풀 수술을 사람이 , 나였다. 7명은너도 수술한 거였어?” 서로 묻기 바빴는데, 수술 시기, 수술법, 눈의 형태, 수술한 후의 얼굴 변화에 따라 쌍꺼풀은 모두 각각이었다. 불현듯 이렇게 획일화된 쌍꺼풀 시대를 살아가기에는 나같은 무쌍이 특별하지 않나 생각했다.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저자가, 역시나 기억나지 않는 어떤 책에서 말했다. , 가난한 사람들만이 성형하지 않는 시대가 도래할 것이다. 



여름옷이 많다. 여름을 좋아하고 여름옷을 좋아한다. 여름옷은 가볍고 세탁이 쉽고 저렴하다. 부담없이 여름옷을 산다. 대신 겨울에는 거의 교복 수준이다. 청바지에 티만 바꿔 입는다. 이번 여름을 맞이하면서, 힘들었던 나를 위로하는 마음에(?) 인터넷 쇼핑을 많이 했다. 특히 원피스를 많이 샀다. 원피스는 시원하고 체형을 가려주고 하나 값으로 벌이 완성된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모르게 자꾸 드레스 같은 원피스를 찾고 있는 나를 본다. 자꾸 원피스를 산다. 






탈코르셋 운동은 가부장제라는 구조적 지각판을 습곡, 침강, 단절시킬 있는, 맨틀과도 같은 미규정적이며 상이한 강도를 지닌 역량들의 다발체로서의 페미니스트 다중의 봉기로 해석할 있습니다. (26) 



달리 말해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성은 자연적으로 여성-신체자원이라는천연적 노동대상물 타고 났으며 이를 보다 세련되게 관리하고 정교히 세공해내는 기술을 투입함으로써 스스로의 신체를가공된 노동대상으로 탈바꿈하는꾸밈노동 수행해야 하는 것입니다. (33) 





탈코르셋 운동은 가부장제에 대한 도전인가.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성은신체 갇혀있다. 여성은 사람은 아니라, 여성이다. 남성이 인간의 표준이고 기준이기 때문이다. ‘여자가’, 혹은감히 여자가’, ‘어떻게 여자가라고 시작되는 모든 언설은어떠해야 한다고 이미 규정되어 있는 여성의 표준 전제로 한다. 중에서 여성을 여성으로 제약하는 가장 강력한 도구, 다시 말해 여성을 남성이 아닌 여성이 되게 하는 차별점이 바로이다. 따라서, 여성-신체자원을 타고난 여성은 화장, 다이어트, 성형 등의 꾸밈노동과 애교 섞인 말투, 순종적인 자세 등을 통해 자신의 신체를가공된 노동대상으로 바꾸어야 한다. 이를 거부하거나 반항할 경우, 강력한 비난에 직면한다. 아니, 무슨 여자가 저렇게 많이 먹어. 아니, 무슨 여자가 화장도 . 아니, 무슨 여자가 저렇게 목소리가 . 





화장이나 외모 꾸미기에 대한 여성들의 취향이나 관심, 아름다움에 대한 열망, 인형이나 분홍색에 대한 선호, 나긋나긋한 말투나 수동적 태도 등은 여성에게 각인된아비투스’(habitus) 드러냅니다. 여기서 아비투스란 사회적으로 범주화된 계층적 가치가 육체에 각인된 상태로서, 개인은 자신이 속한 사회적 계층성을 온전히 체현한 방식으로 말하고 생각하고 행위하고 무언가를 선호하게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화장과 같은 꾸밈노동을 여성 개인의 사적인 취향이나 기호로 오인하도록 만드는 구조야말로 성별 계층성에 의해 도식화된 개인의 행동패턴과 특정 라이프스타일의 재생산 효과가 얼마나 개인의 신체와 사고방식에 온전히 침습되어 있는가를 방증하는 것이라 있습니다. (74) 




여성이 하나의 단일한 계층으로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아비투스 이념이 이해되지 않을 것이다. 혹은 이해할 없을 것이다. 사회적으로 범주화된 계층적 가치가 육체에 각인되어, 성별 계층성에 의해 도식화되는 . , 같은 조건의 남성에게는 요구되지 않거나 요구될 없다고 생각되는 조건들이여성이라는 이유로 당연히 요구된다는 것이다. ‘여성이라고 이름 붙이는 계층 전체에. 예를 들자면. 





최근 충남의 카페에서는 여성 아르바이트생이 머리를 짧게 자르고 화장을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해고되는 부당한 일이 있었다.


변호사 같은 전문직 여성도 예외는 아니다. 이른바접견 전문 변호사문제이다. 변호사 접견이 잡히면 구치소 수감자는 좁은 감방에서 벗어나 횟수·시간 제한 없이 접견실에 머물 있다. 점을 이용해, ‘접견 전문 변호사 부유한 남성 수감자의 심부름꾼·말동무가 되는 대신에 시간당 30~300 원을 받는다. 그래서 일부 로펌은 젊은 신규 여성 변호사를 부유한 남성 수감자를 위한접견 전문 변호사 채용하고, 신체 치수와 사진을 제출하라고 요구한다.  <노동자연대,  268,  2018-11-28> 




예전에 백화점 판매직 여성들에게 강요되던 화장 강요 안경 착용 금지가 이제는 아르바이트생에게, 여성 아르바이트생에까지 확대되었다. 변호사라는전문직여성이어도, ‘예쁘고 단정한용모를 요구 받는다. 참고사항 정도가 아니다. 신체 치수와 사진으로 증명해야 한다. 





우리 사회에서 여성성 과잉 전시 행위는 지극히 정상이라 여겨지는 반면, 강요된 여성성과 다른 방향의 모습들을 전시하는 행위는 폭력적이고 과격한 것들로 해석된다는 것은 과연 무엇을 의미할까요? 이와 같은 실천 행위들은 사회가 요구하지 않는 가치체계를 여성들이 재현하는 모습을 통해 반감과 반발심을 불러옴과 더불어 두려움, 체제전복의 공포감, 혁명의 가능성이라는 정동 또한 이끌어내고 있습니다. (46) 





우리 사회의 여성성 전시가 얼마나 과한지는, 5 여아의 옷만 봐도 있다. 5 여아들이 얼음공주 엘사와 백설공주, 잠자는 숲속의 공주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고 있다. 엘사와 백설공주, 잠자는 숲속의 공주 드레스를 입고 얼마나 행복해하는지, 물론 알고 있다. 다만, 5 여아에게 그대로 늘여서 입으면 엄마가 입어도 만큼 여성스런 옷을 입히고, 불편하고 답답한 검정, 빨강, 분홍 구두를 신겼을 , 그리고 그 모습이 예쁘다고 박수치는 우리 사회의 여성성이 너무 과하지 않은가, 너무 여성성 충만한 세상 아닌가, 의문을 가질 수도 있다는 말이다. 



머리를 샴푸하고 말리는데 들이는 시간과 노력이 아까워 머리를 짧게 자른. 

30 혹은 40, 화장하는데 들이는 시간과 노력이 아까워 민낯으로 외출을 한다. 

체형을 보완하기 위해 몸을 옥죄는 불편한 대신 편안하고 튼튼한 옷을 입기로 한.

 

여기, 어느 지점에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 면이 있나. 여기, 어느 지점에 남자를 적으로 규정하는 지점이 있나. 여성의 <탈코르셋 선언> 어디에, 반사회적, 반공동체적 영향이 존재하는가. 






여성은 연애와 결혼이라는 사적 영역에서든, 취업과 승진이라는 공적 영역에서든 자신의 신체를 물리적, 감정적, 심미적, 도덕적 차원에서 전방위적으로 개발해야 하며 이는 타자의 이익 – 남편과 가족에게 편의 제공하기, 애인의 성적 욕망에 화답하기, 기업의 용모 단정 규준에 복종하기 등 – 을 위해 기꺼이 이용 가능한 ‘자원’(resource)으로 채굴되고 착취됩니다. (39쪽)

남성의 신체자원이 성적으로 동일한 방식과 강도로 채굴되고 착취되지 않는 이유는 그들의 신체가 가부장적 교환가치 – 남성 욕망경제의 기호품이자 부계혈통의 세대 재생산 도구 – 로 결코 환원되지 않는 성질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여성의 성적 신체자원은 그들의 노동력의 기본값(default value)으로 설정되어 있기에 업무의 분야에 상관없이 여성들을 향한 아름답고 젊어 보이는 외모에 대한 요구는 사회적으로 이미 조건화되어 있습니다. (41쪽)

다른 한편으로 탈코르셋 운동은 가부장제 자본주의에 대한 주요한 소비파업 운동으로 작동하고 있습니다. 이는 소위 여성용품이라는 이유만으로 더 낮은 기능성을 갖춘 제품을 더 비싸게 파는 소위 ‘핑크 택스’(Pink Tax) 상업 전략에 대항하는 방식으로서, 성별에 따른 저임금 상태의 여성들에게 더 많은 소비를 명령하는 수많은 화장품과 여성 용품, 여성 면도기, 여성 의류에 대해 보이콧하고 그것의 불필요함을 전면화하여 드러냅니다. 이처럼 탈코르셋 운동은 여성을 끊임없이 빈콘케 하는 동시에 외모를 억압하는 화장품 소비를 멈추고, 여성들의 현재와 미래를 충만하게 하는 여러 자산 축적 비법들과 편하고 싼 제품들에 관한 정보를 공유하고, 생활기술들의 전략들을 나누는 행위들이 동반되는 전 방위적 차원의 삶의 혁명 운동이기도 합니다. (69쪽)

예컨대 남성보다 가녀린 신체, 선이 곱고 예쁜 이목구비, 볼륨감 있는 몸매, 긴 머리, 호전적이지 않고 부드럽고 순종적인 태도와 눈빛, 배려심, 착하고 고운 마음씨, 애교 등은 임의적이고 우연적인 특성들의 총합일 뿐이지만, 이것이 남성과 확연히 대별되는 신체적, 심리적 차원의 성별 특성들의 총체를 형성함으로써 결국에는 ‘여성’이라는 하나의 균질하고 동질적인 성별 계승성의 고유한 특질(property)로서 고정화되기에 이르는 것입니다. (75쪽)

[오해 1] "외모 꾸미기는 내가 좋아서 하는 것인데 왜 그만두라고 하는 것인가요?"

아름다움이란 가치는 결코 내내적이지 않습니다. 늘 그 아름다움을 판단하고 평가하는 남성 인식주체의 인정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점에서 여성들이 추구하는 아름다움에 대한 욕망은 자족적인 것도, 독립적인 것도, 온전히 자유로운 것도 아닙니다. 또한 앞서 살펴본 대로 사회학자 부르디외에 따르면 여성의 사적 취향과 기호, 욕망, 앉거나 걷는 자세, 태도, 어투, 제스처까지 사회적으로 구별되는 성별 계승성에 의해 각인되고 결정됩니다. 여성이 온전히 자유롭게 선택하는 취향으로서의 외모 꾸미기란 사회적 환상에 불과합니다. (93쪽)

우리 대다수가 꾸밈노동의 완벽한 수행을 찬사와 무조건적인 박수로 맞이했었다면, 여성들의 민낯과 짧은 머리는 사람들에게 일종의 ‘불편함의 감각’을 선사합니다. 왜냐하면 짧은 머리를 하고 바지를 입은 여성들은 기존의 여성성 수행 방식에 대한 반란자들이자 이 억압적 사태에 ‘동참하지 않음’을 선언하고 그것을 자신의 몸으로 보여줌으로써 여전히 꾸밈노동을 지속하고 이는 사람들에게 이전엔 느껴보지 못했던 윤리적 불편함을 일으키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런 불편함을 느끼는 사람들이 탈코르셋 운동을 배제와 차별의 정치라고 반박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제까지의 코르셋이야말로 수많은 여성들을 스스로의 신체와 불화케 하고 아름다운 기준에 충족되지 않는 여성들에 대한 차별과 배제를 정당화했다는 것을 우리는 반드시 깨달아야만 합니다. (99쪽)

화장이 주는 기쁨의 정동의 강도보다 탈코르셋 운동을 실천하는 이들이 드러내는 존재역량의 상승의 사진들과 경험담들, 이로 인한 새로운 삶의 양식들의 전략과 태도들이 더 많이 사회적으로 발화되고 공유됨으로써 탈코르셋이 주는 기쁨의 정동의 강도가 더 높아질 때, 많은 여성들은 그 기쁨의 정동의 물결을 스스로 따를 것입니다. (102쪽)

이미 유명 브랜드 브라의 광고에서는 아름다움을 위해 편안함을 포기했던 과거에서 벗어나 편안함이 곧 아름다움이라고 속삭이는 여성 모델이 출연하고 있으며, 아름다울 미는 타인을 위한 것이 아니라 ‘me’, 즉 나를 위한 것이라는 여성 화장품의 광고문구도 등장하고 있습니다. 이는 자본주의가 아주 탄력적이며 영리하게 여성 소비자들의 탈코르셋 운동 여파를 반영하고 주요 고객층의 니즈를 흡수하려는 전략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108쪽)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여성의 신체 형상에 있는 굴곡짐과 구부정함 등이 하층민의 그것과 유사한 것으로 여겨졌다는 점입니다. 이미 여성의 신체적 특징을 계급제도에서의 하층민의 징표이자 열등함의 표식으로 규정했다는 점에서 초기에 등장한 코르셋도 여성혐오에 관통되어 있는 것임이 드러납니다. (부록: 코르셋의 간략한 역사, 1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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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almA 2019-08-14 16: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문제가 참 복잡하고 끝이 없게 됐죠. 가부장제 틀 비판만으로는 어렵지요. 손끝, 발끝, 온몸의 털까지 케어를 하라는 자본주의 시장이 더 문제라고 봅니다. 여성의 가사 활동을 돈으로 환산하면 얼마냐 식으로 서비스 가치 기준으로 환산도 하고 있습니다. 많은 것들을 서비스, 가치 비교하는 것도 무척 자본주의적이죠. 이 놈의 세상은 이렇게라도 수치화해서 보여주지 않으면 안 되니까.

생존하려면 조금이라도 더 얻으려면 자기 관리는 물론 업그레이드도 계속해야 하는 상황이니 다같이 ‘자연인‘으로 살자는 늘 캠페인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건 불안감일 뿐이다, 아비투스화된 사회인식이다 끝없이 말해도 돌아가는 판은 참 안 바뀌죠. 요즘은 화장하는 남성들도 꽤 있던데요. 이 꾸미기는 생존 전략에서 쉽게 놓지 못할 무기입니다. 그 뿐인가요. 꾸미기는 여가 생활, 자기 만족, 친목 활동 등 인간 삶의 기본 요소니 단점 하나만 덜어낼 수도 없습니다.

짧은 치마를 입는 건 내 자유고 내 만족감을 위해서라고 말하고, 브라를 착용하고 화장하는 건 남성에게 잘 보이기 위한 그들의 가치 기준에 끌려다니는 거다 그렇게 이분법으로 나눌 수 있는 것인가요. 우리의 선택은 늘 자유와 방어가 혼재해 있습니다. 문제를 따지다보면 늘 나오게 되는 지점에 또 다다르게 됩니다. 어디까지가 내 ‘자유의지‘인가, ‘자유의지‘가 있기는 한가.

아름다움의 기준이 꼭 남성 인식주체에서 비롯되기만 할까요. 남성, 여성을 가리지 않고 고운 피부, 아름다운 곡선, 표정, 태도, 목소리 등등에 대한 호감은 유전자에 들어 있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자동반사적으로 느끼는 것 같다 싶은데요. 뱀에 대한 혐오가 즉각적이듯이요. 생물계에서도 어떤 종은 짝짓기를 위한 꾸미기 전략이 치열하죠. 인간이기에 가부장제가 특수하게 작용하는 거겠지요. 동물계 사례와 비교한 생물학적 분석을 페미니즘 쪽에선 문제 축소 혹은 왜곡으로 보는 시각차가 있죠. 그래서 생물학과 페미니즘 사이가 안 좋은 건 자주 봅니다^^; 이런 복잡한 상황이라 저는 진화와 인간 본성 공부에 더 흥미를 느끼게 되는지도 모르겠어요.

단발머리 2019-10-22 18:45   좋아요 2 | URL
제가 인터넷이 안 되는 지역에서 며칠 지내느라 댓글이 늦었어요, 아갈마님^^ 이미 지구는 자본주의에 의해 완전 점령당했다고 보는게 맞는것 같아요. 이 지구에 돈의 힘을 이길수 있는게 있을까 싶고요. 탈코르셋 선언에 대한 평가가 제각각일수는 있겠지만 제가 이 책의 주장 중에 동의하는건 지나친 여성성의 표현 혹은 과시에 대해서는 찬성과 동의의 한 목소리만 존재한다는 데 있어요. 나의 자유라고 말하는 것과 별개로 여성에게는 일방적으로 화장이 요구되는 문화를 무시할 순 없으니까요. 남성 역시 피부톤을 정돈하고 하얀 피부 표현을 위해 썬크림, 보정크림을 사용할 수는 있지만 자신의 장기를 훼손하는 정도의 미용 도구가 강제되지는 않으니까요. 저도 이 부분은 아직 모르는게 많아요. 원피스 좋아하고 립스틱은 분홍만 바르는 제가, 이해하는 것과 받아들이는 것 사이의 간극을 어떻게 극복하게될지 그것도 모르겠구요. 진화와 인간본성에 대한 아갈마님의 탐구 열정을 통해 새로운 시각을 알아가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