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찾아 듣는 프로그램은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이다. <코로나 19, 신인류 시대>라는 특별기획이 방송되었는데, 칼폴라니사회경제연구소의 홍기빈 소장이 출연했다





코로나 사태를 겪으며 자주 회자되는 말이 일상이라는 단어다. ‘일상을 산다는 게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깨닫게 되었다.’ ‘어서 잃어버린 소박한 일상을 되찾고 싶다’. 홍기빈 소장은 다르게 말한다. ‘이전으로 돌아간다는 생각에 의문을 제기한다. 무한 소비를 긍정하는 현대 문명으로의 회귀에 대해 반대한다. 멈추고 생각해봐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에게 도래하는 대상으로서의 미래가 아니라, 우리가 만들고 싶은 미래를 생각해봐야 한다고 말한다.

 


정관용 : 아까 금융화 설명하시면서도 그런 얘기하셨잖아요. 예측을 못 하기 때문에 금융시장에서 어떤 액터들이 어떤 플레이를 해야할지 방향을 못 잡겠다는 거 아니에요. 지금 그런 현상이죠?


홍기빈 : 그러면 예측이 안 되는 상황에서는 미래를 우리가 대하는 방식은 결단이에요. 그건 우리가 이 상황에서 어떤 가치를 중요시하고 어떤 식의 미래를 만들고 싶은가라고 하는 우리의 이성과 양심으로 되돌아가서 어떤 미래를 만들까라는 그림을 우리 스스로가 결단하고 만들어야 됩니다. (CBS 라디오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 방송일: 2020 4 20일 월요일)

 

 

강력한 사회적 거리두기 기간이 끝나고 초, , 고등학교가 등교개학을 하게 되면 우리는 예전과 비슷한 모습의 생활로 돌아갈 것이다. 하지만 코로나의 위협이 상존하는 미래는 예전과 같지 않을 것이다. 방역이 상시적으로 이루어져야 할 것이고, 학년별 식사 또는 학년별 등교까지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지난 주부터 교회에 간다. 체온기로 열을 체크하고 손소독제로 그 자리 서서 (장로님이 보는 앞에서) 손을 문지르고 명부의 이름을 확인해야 입장이 가능하다. 간격을 유지해서 앉아야 하고, 예배 중에도 마스크를 착용해야 하며, 악수 대신 주먹인사를 한다. 식사는 7대 방역 지침 위반이어서 불가능하다. 무기한 연기. 예배 드리고 밥 먹고 커피 마시며 이야기하고, 연습하고 예배 드리고 다시 만나 못 다한 이야기를 나누던 시간들은 어쩌면 다시 못 올 추억이 될 수도 있다. 그런 생각이 들면 맘이 슬퍼진다. 다른 시간, 다른 시대가 오고 있다.  

 

 

장하준 교수는 말한다.

 

제가 보기에 이번에 그런 산업구조 개편 이런 것도 있지만, 뭐가 우리 사는 데 더 중요한가, 이런 데 대해서 사람들이 다시 생각을 하기 시작했거든요. 왜냐하면 방금 말씀하신 배달, 택배 이런 거 그냥 당연히 하는 거 이런 식으로 생각했는데 그런 게 얼마나 중요한 건지. 그러면 의료, 보육, 양로 이런 데서 일하는 분들이 얼마나 중요한 건지. 하다못해 식품점, 슈퍼마켓에서 일하는 분들이 얼마나 중요한 건지. 그러다 보니까 영국 같은 데서는 그런 의료나 먹거리, 교육 이런 데 종사하는 분들을 핵심인력, 키워커 이렇게 부르고 미국에서도 필수직원, 이센셜 임플로이 이렇게 부르기 시작했거든요. 그러니까 지금까지는 그냥 세상에 더 중요한 것도 없고 덜 중요한 것도 없고 그냥 시장에서 사람들이 원하면 그런 게 더 많이 생산이 되고 원하지 않으면 그냥 생산이 안 되고 이런 식으로 해서 사회를 운영을 했는데, 이제는 뭔가 우리를 안전하게 지키고 사회를 유지하기 위해서 더 필요한 일들이 있고 그런 데서 일하는 사람들이 중요하다는 인식이 이제 생겼기 때문에 그런 임금구조나 노동시장구조, 이런 것도 또 변할 것 같아요. (CBS 라디오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 방송일: 2020 4 10일 금요일)



질병의 치료와 돌봄. 생존을 위해 필요한 식자재의 생산과 유통. 조리, 반조리 식품의 배달까지 생존에 반드시 필요한 영역의 노동을 우리는 그동안 너무 하찮게 여겨왔고, 노동에 대한 처우도 불합리했다. 비대면. 바이러스의 전파자인 인간과의 접촉을 무조건 피해야만 하는 상황에서, 그럼에도 질병의 치료와 완화를 위해 의료적 도움을 받아야만 하는 처지에 비로소 우리는, 우리에게 정말필요한 노동이 무엇인지 조금씩 깨달아가고 있다. 우리가 추구해야 하는 가치에 대해 새삼 생각해보게 되었다. 삼시세끼의 위대함과 고단함. 외로움에 대한 대처. 돌봄과 사랑. 연대 그리고 돈.

 

지팡이를 짚고 힘겹게 주민센터를 오르는 어르신들은 서울시 재난지원금을 신청하러 가시는 길이다. 4인 가족 100만원. 전 국민에게 긴급재난지원금이 지급된다. 7세 미만 아동 1인당 40만원 아동돌봄쿠폰이 지급되고 지자체별로 5만원부터 10만원까지 재난기본소득이 지급된다. 이전에 한 번도 없었던 비상 시국에, 이전에 한 번도 없었던 형태로 나라에서 주는 공돈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자영업자, 소상공인들은 물론, 하루 아침에 일자리를 잃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당장의 생활이 어렵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바이러스. 코로나19 바이러스 때문이다. 누구를 탓하며 누구를 원망할 수 있겠는가. 이제 우리가 가진 자원을, 더 중요한 곳, 더 필요한 곳, 더 긴박한 곳에 배분해야 한다. 지금이 그런 때이다. 그런 일을 시도할 만한 때이다.

 

 

총선이 끝나고, 나의 정치적 성향을 가감없이 드러내도 전혀 괜찮은 독서모임 언니들과 카톡을 하게 되었다. 축하인사를 나누고, 덕담을 주고 받다가 이렇게 썼다. 언니님들, 예상을 뛰어넘는 이런 결과를 받아보니 부담이 되네요. 무한한 책임감을 느낍니다. 언니님들은 하하하! 하고 웃으셨다. 근데 언니님들, 왜 제가 부담감을 느끼는 걸까요?

 

180석에 무한한 책임감을 느끼는 나는 평범한 전업주부다. 이세상 제일 싫은 이야기 주제가 개학일정24시간 수면잠옷 고딩과 고기반찬만 먹으려 하는 호르몬 폭발 중딩의 엄마이다. 유부만두님이 알려주시지 않으면 지금이 이불빨래 타임이라는 것도 모르는, 철모르는 나다. 『나의 사촌 레이첼』의 필립을 아주 조금 사랑하고, 그를 한없이 미워하면서도 다시 그의 마음을 찬찬히 헤아리며 마음껏 상상하는 독자다. 아무도 내 이야기에 귀 기울이지 않을 테지만. 우리 앞에 새롭게 펼쳐질 세계에 대한 더 진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이제는 필요한 때가 되었다고 말하고 싶다.

 

 

유토피아에 대한 전망이 글쓴이들이 직접 겪은 고난의 경험에서 온 경우가 많다는 사실은 별로 놀랍지 않을 것이다. 우리의 요구는 반드시 우리가 잘 아는 과거와 현재를 바탕으로 형성된다. 우리가 꿈꾸는 미래는 현재의 삶에 관해서도 말해 준다. (『페미니스트 유토피아』, 12)

 

 

우리가 꿈꾸는 미래는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가. 현재의 불합리와 불평등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돈이 최고라는 종교 같은 신념에 어떻게 맞설 수 있는가. 인간마저 도구로 치환하는 자본주의 미친 질주를 어떻게 멈출 것인가. 내 아이가 살아갈 미래는, 내 아이가 살아야 할 사회는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가.

 

 





















방송 내용이 묶여서 책으로 나왔다고 한다. 참 기민하고 적절한 출판 자세라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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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5-04 01: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5-04 07: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얼마 전 다락방님의수리부엉이는 황혼에 날아오른다』 리뷰를 아주 재미있게 읽었다
















이전에 읽다가 도중에 포기한 책이라서 더 관심이 갔다. 앞부분만 읽었지만, 하루키를 인터뷰했던 젊은 작가 가와카미 미에코가 그의 왕팬이라는 걸 알아챌 수 있었다. 하루키의 작품을 오랫동안 깊이 있게 읽어온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질문을 던졌다. 읽던 도중, 하루키 작품을 좀 더 읽은 후에 이 책을 읽으면 더 재미있겠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반납일도 성큼성큼 다가오기도 했다.


 














가장 최근에 읽은 하루키 소설은기사단장 죽이기』인데, 친하지 않은 옆집 아저씨에게 제 가슴, 너무 작다고 생각하지 않으세요?’라고 묻는 이상한 여고생 설정 빼놓고는 재미있게 읽었다. 이야기를 풀어가는 힘 자체로서는 하루키의 능력에 대해 논쟁할 필요가 없는 듯하다. 다만 성적인암시나 섹스에 관한 표현 방식을 넘어서서, 남성 작가 하루키가 생각하는 성적 모험에 대해서는 매력을 느끼지 못하겠다.

 

 

남녀의 성적인 관계, 육체적인 소통에 대해서 작가들이 각각 지향하는 바가 있을 것이다. 그 중에는 내가 좋아하는 방식도 있고, 싫어하는 방식도 있다.

 

20대의 나를 한없이 부끄럽게 했던 조정래의 서술은 지극히 남성적이다. 남성적이라는 말이 일반적으로 사용될 때의 의미 그대로다. 그의 작품들의 지향과 노고에 지극히 찬탄하고 존경하지만, 적어도 성적인 서술에 있어서는 아쉬움이 남는다. 수컷이 먹이인 암컷을 대하는 자세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김훈도 마찬가지다. 나는 페미니즘을 알고 나서야 비로소 김훈을 읽을 때 불편했던 내 마음을 사실 그대로 말할 수 있게 됐다. 김훈이 페미니즘을 못된 사조라고 생각하는 이유, 그렇게 말하는 것을 전혀 꺼리지 않는 이유가 단박에 설명된다. 밥 먹는 일과 다름없는 일상으로서의 섹스. 역시 수컷의 섹스. 딱 그만큼이다. 필립 로스를 사랑하고, 그의 소설을 사랑하지만, 그를 아무리 좋아한다고 해도 섹스에 관한 기나긴 묘사에 대해서는, 뭐랄까. 읽다 보면 중간에 나도 모르게 이런 말이 나온다. 아이구, . , 또 이렇게까지.




 


















싫어하는 사람 말했으니 이제 좋아하는 사람 차례다. 절판되었던 이언 맥큐언의속죄』는 <이동진의 빨간책방> 방송 이후 재출간되었을 정도로 큰 인기를 끌었는데, 방송에서 소설가 김중혁은 도서관 장면을 말하면서, 로맨스의 측면에서 손에 꼽을 수 있을 만큼 아름다운 장면이라고 했다. 동의한다. 혹 아직 안 읽어보신 분이 계시다면 직접 읽어 보시면 되겠다. 풋풋한 첫사랑의 난감함과 애절함, 그리고 폭주하는 기관차 같은 열정을 만나볼 수 있다. 그리고 낭떠러지. 한없이 낭만적인 낭떠러지에 다다를 수 있다.


















잭 리처가 나오는 『어페어』 역시 좋아한다. 엄중한 상황 속에 꽃피는 사랑, 끊이지 않는 웃음의 대향연. 깊은 밤, 손을 잡고 같은 방으로 들어가는 것에 합의한 성인남녀가 얼마나 천천히 옷을 벗을 수 있는지. 이 책을 읽어보면 확인할 수 있겠다.

 
















아룬다티 로이의 작은 것들의 신은 아름다운 소설이다. 처음 문장부터 마지막 문장까지 모두 다 한결같이 아름답다. 촉촉하고 부드럽다. 더 이상 덧붙일 말이 없다.

 



그리고 이 책나의 사촌 레이첼』


422쪽에서부터 425쪽까지어떤 사람이 어떤 사람을 사랑하게 되었을 때, 자신의 온 마음을 다 빼앗겼을 때, 자신도 모르게 저지르는 어리석은 행동들과 미숙한 움직임이 얼마나 귀여운지 이 책은 보여준다. 사랑은 영원하지 않지만, 영원히 마음에 남는 사랑의 흔적에 대해서 말한다. 처음이자 마지막인 사랑 그리고 그 찰나의 순간에 대해 이야기한다. 심장이 벌렁거리다 못해 뛰쳐나올 것 같은 순간. 영원히 나의 것인 바로 그 순간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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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0-05-01 01: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뭔데요 뭐지 뭐지!!! 저 내일 외출할 때 이 책 가지고 나갈래요!!

단발머리 2020-05-01 01:59   좋아요 0 | URL
다락방님 내일 출근 안 한다고 이렇게 늦게까지ㅋㅋㅋㅋㅋㅋㅋㅋㅋ일단 이 책을 읽고나서 이야기 나누시죠. 전 이런 스타일 좋아합니다. 담백하고 순수하고...물론 뒷목 잡는 장면 두어번 나옵니다. 아, 이 소설 진짜 최고에요. 저도 읽으려고요. 한번 더!!!

책읽는나무 2020-05-01 06: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이고,참 뭐, 또 이렇게까지....
그 공감에 공감합니다.ㅋㅋㅋ
‘수리 부엉이~‘책 읽으려면 하루키씨 책 안읽은 게 아직 많다 싶어, 한 권씩 옛추억 떠올리며 읽고 있는데...음!!!
차라리 1Q84보다 기사단장이 더 낫지 않나?란 생각을 해봅니다.아직 다 읽진 않았지만...여주인공의 ‘성‘에 대한 사고와 묘사가 설마 저럴까???여자가 아니어서 잘 모르는???음....
읽다 보면 하루키는 이래서 노벨상 후보밖에 되지 못한 것일까??그런 생각이 들곤 하더라구요.ㅜㅜ
그래도 청춘시절 그의 책을 읽고 좋았던 추억 때문에 여전히 손이 가는 작가 중 한 명이라...미련을 끊진 못하겠고 계속 읽고 싶은^^
태백산맥도 완독하지 못한 상태인데...몇 년 전 친구가 조정래 작가의 최근작이라고 좋다고 해서 그래?? 하면서 읽었었는데....음...뭐지??남자 주인공 선생만 올바르고...나머지 등장인물들은 다들 유별난...특히 여자를 바라보는 관점이 좀 특별한? 느낌이 들어 친구에게 얘길 했더니..내가 좀 예민한 사람 취급을 받은 적 있었네요.이 친구는 태백산맥 완독후 작가님 너무나 사랑하는 친구라~~^^
그후로 나의 예민함을 감추고?? 독서하는 습관이 생겼네요ㅋㅋㅋㅋ

‘작은 것들의 신‘은 제가 읽은 책이라 공감,공감입니다.
요즘 외국 여성작가들 책을 읽어 보면 와~~입이 쩍 벌어질만한 작가들 많아요.그동안 무지하여 너무 모르고 살았었네~~하면서 다시 겸손한? 자세로 독서하려구요.^^
‘나의 사촌 레이첼‘이랑 ‘속죄‘랑 ‘어페어‘도 읽어봐야 겠군요~~사랑묘사가 아름다운 책...좋아요.좋아^^

단발머리 2020-05-04 07:28   좋아요 0 | URL
책읽는나무님 굿모닝이요^^ 1Q84는 읽어보지 않아서 전 기사단장이란 비교하기는 어렵네요. 기사단장 읽으면서 마음에 안 드는 구석이 없었던 건 아닌데, 사실 저도 하루키 나름의 읽는 맛을 포기하기가 어렵더라구요. 하루키 책을 모두 다 읽을 생각은 없지만 기회만 된다면 또 읽고 싶기도 하고요.
조정래 작가 최근작이라고 하면 그 초록 표지일까요? 전 조정래 작가는 태백산맥이랑 한강 몇 권만 읽어서 단행본은 안 읽어봤어요. 태백산맥 완독 후 작가님 너무 사랑하는 친구분의 느낌도 아주 쪼금은 이해가 되요^^ 하지만 우리의 예민함은 계속 갈고 닦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ㅋㅋ가 많지만 진심입니다.

전 올해의 소설로 ‘나의 사촌 레이첼‘을 꼽고 싶어요. 읽게 되신다면 책나무님 감상도 궁금해요. 리뷰를~~~~~^^

유부만두 2020-05-01 19: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페이퍼를 읽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두근거려요. 밥해야 하는데 책 읽고 싶어요.
오월 초에 여행을 가지 않은 건 정말 오랜만이라 집에서 멍....하게 있어요.
휴일이지만 휴일 아닌 것과 크게 차이도 없어요.
하지만 오늘은 창문을 열어놔도 춥지 않네요. 봄은 갔어요. ㅜ ㅜ

단발머리 2020-05-04 07:32   좋아요 1 | URL
오월 초 연휴가 덥지도 춥지도 않아 여행가기 참 좋은 시즌이기는 해요. 저희는 오월초에는 여행가지 않는 편인데 유부만두님은 조금 서운하셨을 것 같아요. 사실 아이들이랑 항상 지내다 보면.... 네, 모두 빨간 글씨인 것입니다.
갑자기 날이 더워졌어요. 어제는 반소매 입은 사람들을 많이도 보았습니다. 봄이 갔어요ㅠㅠ

보슬비 2020-05-02 22: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유부만두님 말씀대로 페이퍼를 읽는것만으로도 두근거렸어요. 마침 판타지로맨스를 읽어서인지 단발머리님께서 언급하신 책들이 설레게 하네요.

단발머리 2020-05-04 07:33   좋아요 0 | URL
굳이 하나 고르자면 전 판타지 보다는 로맨스 쪽에 방점을 찍고 싶어요. 보슬비님의 두근거림은 제가 보슬비님 방에서 맛나 보이는 사진을 보면서 깨닫게되는, 그런 두근거림일까요?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도리스 레싱의 대표작이며 2007년 노벨 문학상 수상작인 이 책이 성 대결의 측면에서만 소비되는데 도리스 레싱이 불만을 가졌다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아프리카 대륙에서의 흑백 갈등, 공산주의에 대한 회의, 전쟁에 대한 반대 등 이 책은 다양한 주제를 다루고 있다. 여성해방운동의 경전으로 읽힌다는 것에 대해서도 도리스 레싱은 반대했다. 그럼에도 여성해방이 추구하는 모든 주제가 다뤄졌다는 점에서, 특별히 여성의 신체가 세상에 대해 반응하는 방식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어쩌면 이런 평가는 지속될지도 모르겠다.


서사는 자유로운 여자들의 주된 흐름 속에서, 주인공이자 소설가인 애나의 네 가지 색 공책들인 검은색, 빨간색, 노란색, 파란색 공책이 삽입되는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공책들> 안에는 일기, 리뷰, 소설의 개요, 신문 기사, 꿈에 대한 설명들이 이어지고, 마지막에는 금색 공책이 추가된다. 여러 이야기의 앞과 뒤, 먼저와 나중이 하나로 엮이면서 작가가 아닌 독자의 능동적인 참여, 적극적인 이해 과정을 통해 소설이 완성된다. 소설 쓰기의 과정을 보여줌으로써, 작가의 생각을 해부해 보임으로써 소설 형식의 실험을 시도했고 이는 완벽하게 성공했다.



주인공 애나가 제일 많이 투영된 사람은 노란색 공책 <제삼자의 그림자>의 엘라이다. 여성지를 만드는 출판사에서 일하는 엘라는 그녀의 업무와 관련되어 있는 닥터 웨스트의 파티에서 한 남자를 만난다. 폴 태너라는 의사였는데, 그는 엘라에게 성적으로 새로운 세계를 열어 준다. 첫 눈에 반한 건 아니었지만 그를 사랑하게 될 거라는 확신에 차서 점점 더 그를 사랑하게 된 엘라와는 달리, 폴은 엘라가 싫어할 만한 질문을 계속하며 자신의 난봉꾼 기질을 그대로 드러낸다. 밤을 함께 보내고 아침이면 셔츠를 갈아입고 씻기 위해 자신의 집으로 돌아가는 남자. 아내와 아이들이 있는 남자. 아내는 좋은 여자라고 말하면서 매일 밤 엘라를 찾아오는 남자. 결국에는 예상처럼 엘라를 떠나는 남자. 엘라가 사랑했던 남자가 이 남자다.  



폴과 함께할 땐 그와 무관하게 성적인 충동을 느낀 적이 없었고, 그가 며칠 떠나 있는 동안에는 아무런 욕구도 들지 않았다는 사실을. 지금 끓어오르는 이 성에 대한 갈망은 섹스 자체가 아니라 자기 인생의 온갖 감정적인 갈망에 의해 일어난 것임을. 다시 한 남자를 사랑하게 되면 곧 정상의 상태, 즉 남성의 성에 의해 차오르고 스러지는 성을 지닌 한 여성으로 돌아가리라는 사실을. 여자의 성은, 말하자면 남자에 의해, 진짜 남자에 의해 채워진다는 사실을. 어떤 의미에서 그는 자신을 잠들게 해줄 것이고, 그러면 더이상 섹스에 굶주리지 않게 되리라. (『금색 공책 2』, 133)



엘라가 갈망한 것은 섹스가 아니다. 그녀가 원하는 것은 폴이라는 남자가 아니다. 그녀가 원하는 것은 자신의 인생에 대한 물음이다. 인생의 의미, 진정한 사랑, 정치적 이상향. 이 모든 것은 결국 스러져 버린다. 떠나고, 잃어버리고, 해체된다.


사랑을 확신하면서도 결국에는 자신의 것이 되지 않고 떠나가버린 폴을 예상했던 엘라처럼, 젊음과 시간을 모두 바쳤던 거대한 이상인 공산주의의 몰락 앞에서 애나는 절망한다. 엘라는 사랑을 잃었고, 애나는 꿈을 잃었다.


섹스도, 정치적 이상도 일생을 바칠 만한 것이 아니라면 우리 삶을 끌어가는 것은 무엇인가. 우리는 무엇 때문에 살고, 무엇 때문에 사랑하는가. 왜 그토록 뜨거웠던 사랑은 식어버리고, 완벽한 이상은 무너져 내리는가. 마음속 빈자리를 차지하는 것은 왜 사랑과 우정이 아니라 공허함과 우울함인가. 왜 빈자리는 끝내 채워지지 않는가.


소설가는 답해 주지 않는다. , 애나가 말할 뿐이고, 독자는 듣고 생각할 뿐이다. 『금색 공책』에 대한 로베타 루벤스타인의 논평이 옳다. 이 책은 읽는 책이 아니라 경험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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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쟝쟝 2023-01-06 11: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언제 읽은 거죠? ㅋㅋㅋ☺️

단발머리 2023-01-06 11:44   좋아요 1 | URL
2020년 리뷰대회 땜에 ㅋㅋㅋㅋ 나 기억도 안 나는데 ㅋㅋㅋㅋㅋㅋㅋㅋ 5만원 탄 거 같기도 하고요 이거 아닌가? ㅋㅋㅋㅋㅋ

잠자냥 2023-01-06 11:50   좋아요 1 | URL
단발머리 님은 이 사건 때 이 책을 선택하셨지 않았나요???? 했는데 아, 빌레뜨였군요.......

https://blog.aladin.co.kr/socker/11736220

공쟝쟝 2023-01-06 11:51   좋아요 2 | URL
ㅋㅋㅋㅋㅋ 앍 무섭쟈냥!!!!!!!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단발머리 2023-01-06 11:54   좋아요 1 | URL
잠자냥님!!!
촘촘하게 정확하신 분 ㅋㅋㅋㅋㅋㅋ 맞아요!! 그 때 저 책 두 권 받고 ㅋㅋㅋㅋ 그 후에 빌레뜨 두 권 받았다는 ㅋㅋㅋㅋ ”창비 우롱상자를 받았다는 사실을 전해들은 단발머리 씨(23세, 여)는 ㅋㅋㅋㅋㅋㅋㅋㅋ“

공쟝쟝 2023-01-06 11:55   좋아요 2 | URL
와 창비가 금색공책이랑 빌레뜨를 줬다굽쇼???? 오ㅏ 듀근두근

잠자냥 2023-01-06 11:56   좋아요 1 | URL
그런 시절이 있었더이다. 난 <주군의 여인>1,2 받았음.
그때 다부장은 뭐 받았더라.....?

단발머리 2023-01-06 11:56   좋아요 0 | URL
금색 공책 리뷰대회의 3등 상품이 랜덤 2권이었고 모두 같은 책 (인기 없는) - 독자 항의 - 원하는 거 2권 다시 보내줌 ㅋㅋㅋㅋㅋㅋㅋㅋ

단발머리 2023-01-06 11:58   좋아요 1 | URL
주군의 여인으로 저는 기억합니다 ㅋㅋㅋㅋㅋ

공쟝쟝 2023-01-06 12:01   좋아요 1 | URL
창비 찌질하다 ㅋㅋㅋㅋㅋ 아 안살래 ㅋㅋㅋㅋㅋ 금색공책 불매 합니다 ㅋㅋㅋㅋ (앗싸 두권 남았다 ㅋㅋㅋ 모사지?)

잠자냥 2023-01-06 12:02   좋아요 2 | URL
정확히는 창비세계문학 중 1권 읽고 감상문 남기는 리뷰대회였어요.
1등은 창비세계문학 전집 주고 2등이 10만원 상품권이었나, 적립금이었는데 다부장을 비롯하여 저는 요 10만원을 노리고 참가했습니다만 3등이 되고 말았지요. 요 3등은 창비세계문학 중에서 책 2권을 보내준다는 거였는데, 참가자들은 원하는 책 2권을 준다는 줄 알고 그것도 그런대로 괜찮겠다 했는데 아니 이게 무슨 일 창비에서는 덜커덕 <이반일리치의 죽음>하고 <젊은 베르테르의 고뇌>를 일률적으로 보낸 거예요. 암튼 그래서 여기에 불만을 가진 알라디너들이 다들 들고(?) 일어나서 원하는 책으로 보내달라~~ 집단지랄의 힘을 발휘하여 창비 쪽에셔 결국 원하는 책 2권씩으로 부랴부랴 다시 보내 준 사건이 있었습니다. 일명 <고뇌>와 <죽음> 사건...ㅋㅋㅋㅋㅋ

다락방 2023-01-06 14:17   좋아요 1 | URL
단발머리 님 천재입니까? 제가 받은 것까지 기억하시는 분.. ♡
 




 










여성성의 신화는 여성의 가장 큰 가치와 유일하게 전념해야 할 목표가 자신의 여성다움을 완성하는 것이라고 가르친다. (107).

 


여성성의 신화는 가정이라는 구조 안에 어머니, 아내, 주부라는 역할로 여성을 가둔다. 여성에게 자기 완성이란 아름다운 외모와 아름다운 외모의 추구이며, 출산과 육아가 여성에게 가장 중요한 임무라고 강제하는 것이다.

 

최근에 가장 핫한 드라마라고 한다면 역시 <부부의 세계>일텐데, 나는 <부부의 세계>를 보지 않았는데(TV 시청), 본거나 마찬가지다(유튜브). 4화였던 것 같은데 퇴근한 김희애가 남편을 기다리며 다림질을 하는 장면이 나온다.

 


극중에서 김희애는 00병원 부원장이다. 나는 직장 여성이라면 다림질을 하지 말아야 한다거나, 다림질은 중요하지 않은 일이라고 말하고 싶은 게 아니다. 세탁 후에 어떤 옷은 다림질이 필요하고, 다림질이 필요한 옷은 스스로 다림질하지 않는다. 누군가 다림질해야만 한다. 무한 가격 경쟁으로 이전보다는 저렴해진 ㅋㄹㅌㅍㅇ를 이용할 수도 있고, 세탁 비용이 부담되고 오고 가기 귀찮다면 집에서 다림질하면 된다. 내가 할 수도 있는 일이고, 적절한 비용으로 도움을 받을 수도 있는 일이다. 내가 말하고 싶은 건, 김희애가 다림질을 하고 있는 설정, 그 그림 자체다.

 








극중에서 김희애는 00병원 부원장이다. <백래시>, 정확히는 몇 쪽인지 기억나지 않지만, 결혼 후 경력이 단절되는 여성들에 대한 조사 결과, 가장 적게 타격을 입는 직업이 의사라는 결과를 읽은 기억이 난다. 전문적인 직업군 중에서도 가장 전문적인 일 가운데 하나가 바로 의사. 그럼에도, 의사이며 병원에서 신망 받는 부원장인 김희애는 퇴근 후 집에 돌아와 다림질을 한다. 물론 드라마 속 그녀가 정말 다림질을 좋아할 수도 있겠다.

 

정신 없이 돌아가는 스케줄, 자기 말만 하려고 하는 환자들, 행정직원, 동료의사들과의 신경전 등 전쟁의 소용돌이를 마치고 돌아와, 하얀 셔츠를 단 하나의 주름 없이 완벽하게 다림질하노라면, 그간의 스트레스가 확 풀리고 기분이 상쾌해지는 재충전의 시간으로가 말이 되는가.

 


의사이며 부원장인 김희애가 다림질 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이유가 여기 있다. 의사이며 게다가 부원장이라 할지라도 집으로 돌아와서는 다림질을 해야한다는 것. 완벽한 워킹맘을 구현하는 김희애의 모습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그녀가 다림질을 해야만 한다는 것. 여성은 직업적으로, 사회적으로 대단한 성취를 이루었다 할지라도, 집으로 돌아와서는 여느 평범한 주부와 같이 다림질을 해야한다는 것.

 

김희애의 다림질을 보면서 느꼈던 짧은 감상이다. 여성성의 신화가 현재까지 되풀이되고 있다는 증거이며, 미디어를 통해 알게 모르게 이런 신화가 우리에게 학습되고 있다는 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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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0-04-26 13:4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는 어제 여성성의 신화를 읽으면서 ‘그런데 왜 여자는 직장에 다닐 것인가 전업주부가 될것인가‘를 고민해야 하는가, 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남자들은 남편이 될것인가 직장인이 될것인가를 걱정하지 않는데 말예요. 저도 어제 여성성의 신화 조금 읽었어요.

말씀하시는 걱정이 뭔지 너무 잘 알겠지만(직장에 다닌다고 다림질을 하지 않아야 하는 건 당연히 아니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 역시 되묻고 싶네요. 김희애는 왜 다림질을 하는가... 하아- 저도 저 드라마 초기에 좀 봤었는데 심지어 저 남편 능력도 없어요. 투자도 못받고 돈도 못벌어. 그런데 바람이나 피고 있는...아 너무 짜증나. 저는 그래서 저 드라마 김희애 나온다고 해서 초반에 보다가 나중에 확 일어나 제 방으로 들어갔어요. 드라마속 남자들을 견딜 수가 없더라고요. 저 남편부터 시작해서 데이트폭력하는 놈까지. 너무 다 싫어서 이걸 왜 보고 있어야 하나 싶어져서 말예요. 아, 게다가 지가 사모하는 여자가 남편의 바람으로 외로워보이자 접근하는 이웃집 쌍놈도....... 너무 너무 싫어요. 이때다 싶어서 노리는 거 너무 구역질 남요. ㅠㅠ


아, 쓰다보니 분노했네요. 저 여성성의 신화 읽으러 갈게요 ㅠㅠ

단발머리 2020-04-29 07:41   좋아요 2 | URL
제 생각에는요... 여성은 직업적으로 성공하더라도 전통적으로 여성이 수행해왔던 일들에 대한 ‘요구‘가 존재하는 것 같아요. 성공한 여성의 인터뷰에서 항상 빠지지 않는 말 있잖아요.
아침 7시에 출근해요. 그래도 아침밥은 꼭 챙겨주고 나온답니다. 이건 직업적으로 성공한 여성이 엄청 체력이 좋고 또 그렇게 하고 싶어서 일수도 있지만, 그런 사회적 기대에 부응해야만 한다는, 그래야만 가정일을 버려두고 일에 빠진 여성이라는 비난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일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말 그대로 일을 해야겠다면 슈퍼우먼으로서 하라는 거죠.

드라마 속의 김희애가 의사인데다가 병원에서도 중요한 업무를 많이 맡고 있지만, 집에서는 다림질을 하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직업적 성공 속에서도 가정일을 소홀히 하지 않는 모습을 부각시키려 하는 것 같아요. 할려면 이런 식으로 해야 한다. 양쪽 모두를, 완벽에 가깝게. 그냥 쉽게 생각해도 논문 읽고 그런 모습이 더 자연스러워 보이는데 말이지요. 하긴 저도 모르기는 합니다. 의사 선생님들 퇴근하면 집에서 뭐하시나요? 다림질 하시나요? 아니면 논문 읽으시나요? 저 정도 큰 병원의 부원장이라면 전 논문 읽는다는 쪽에 한 표 할것 같은데요. 그 드라마는 엄청 인기를 몰고 다니던데, 이상한 남자들이 한 집에 한 명 꼴 ㅠㅠ

공쟝쟝 2020-05-01 07:49   좋아요 0 | URL
저는 가족들 볼때 드문드문 봤는데, 김희애가 육아로 자책(?)하는 장면 보다가 성질나서 말았어요... 와우씨, 하면섴ㅋ 사회적 기대를 당장 바꿀 수는 없겠지만, 여성들의 자책을 방지해주는 그런 여성들끼리의 연대 너무 필요한 듯 해요(아아, 우린 왜 이렇게 구조와 남의 문제까지 자기에게서 반성할 걸로 찾게 사회화 된 걸까) 자책 싫어!!!
 




 











사람은 자신의 입장에서 생각한다. 자신을 중심으로 생각하고, 자신의 이익을 위해 변명한다. 정도의 문제다. 우주까지는 아니더라도 내가 속한 이 세상은 나를 중심으로 돈다. 인정하느냐 하지 않느냐의 문제일 뿐이다.

 

오에 겐자부로의 책에서 에드워드 사이드라는 이름을 처음 들었을 때, 나는 아무런 근거 없이, 얼굴도 모르는 이 미국인 교수는 유대인일거라고 추측했다. 오리엔탈리즘. 오리엔탈에 대한 해석. 동양에 대한 해석. 가진 정보 없이 오리엔탈리즘에 대해 내가 내린 결론이었다. 미국인 교수의 동양에 대한 해석. 미국 교수의 아시아 이해.

 

예상이 전부 틀렸다는 건 책날개에서부터 확인되었다. 에드워드 사이드는 예루살렘에서 태어난 팔레스타인인이다. 재외국 팔레스타인의회 의원으로 활동하면서 평생 미국의 중동정책과 이스라엘 무력 행사를 강도 높게 비판했다. 그가 말하는 오리엔탈리즘이란 무엇인가.

 


오리엔탈리즘이란 서양이 동양에 관계하는 방식으로서, 유럽 서양인의 경험 속에 동양이 차지하는 특별한 지위에 근거하는 것이다. 동양은 유럽에 단지 인접되어 있다는 점만이 아니라, 유럽의 식민지 중에서도 가장 광대하고 풍요하며 오래된 식민지였던 토지였고, 유럽의 문명과 언어의 원천이었으며, 유럽문화의 호적수였고, 또 유럽인의 마음속 가장 깊은 곳에서 반복되어 나타난 타자 이미지이기도 했다. (15)


여기가 두번째 놀람 포인트였다. 예루살렘에서 태어난 팔레스타인으로서, 그가 말하는 동양은 내가 살고 있는 동양이 아니었다는 점. 그가 말하는 동양이란 유럽에 인접한 동양, 유럽 문명과 언어의 원천이 되는 동양, 유럽의 호적수로 오랫동안 경쟁관계를 이루었던 동양을 가리키는 것이었다. , 그가 말하는 동양은 내가 속한 동북 아시아가 아니라, 중동 아시아 정확히는 유럽과 아시아의 교점으로서 동양을 지시하는 것이었다. 내가 바로 이해한 건가. 의미가 명확해지는 지점은 141.

 


동양이라는 말이 단순히 아시아 동양 전체의 동의어가 아니고,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나 이국적인 것을 막연히 지시하는 것도 아닌 경우, 그것은 이슬람 동양을 가리키는 것으로서 지극히 엄격하게 이해되었다. (141)

 


그래서 이렇게 오리엔탈리즘을 하나의 정의로 정리하려는 순간, 네이버 지식백과 사전이 이렇게 당부한다. 

 


초기에 국내에서는 오리엔탈리즘이 아랍세계에만 관련 있는 것으로 잘못 알려지기도 했으나, 1995년 사이드의 한국 방문을 계기로 오리엔탈리즘에 대한 논의가 본격화되었고, 이어 일본교포학자인 강상중 교수의 『오리엔탈리즘을 넘어서』가 번역되면서 관련 분야 연구와 번역이 활성화되었다. (김성곤) [네이버 지식백과] ‘오리엔탈리즘’ (문학비평용어사전, 2006. 1. 30., 한국문학평론가협회)

 

 

코로나19 바이러스가 한참 중국에서 맹위를 떨치며, 한국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수십 명 단위였을 때, 터키 여행을 갔다. 100번도 넘게 들었던 이야기가 동서양 문명의 교차로, 터키’, ‘아시아와 유럽이 만나는 곳, 터키였다. 이스탄불 공항 직원들을 마주했을 때부터 집으로 돌아올 때까지의 생각을 하나의 문장으로 요약하자면 이렇다. 터키가 왜 아시아에 속하지? 이스탄불의 어느 지점이 아시아적이지?

 














우리 몸이 세계라면에서 김승섭은 인종 개념은 역사적이고 정치적인 구성물이라고 지적했다. 유전자 변이에 따라 인류를 6개 집단으로 나누는 경우, 6개의 인구집단 구분과 오늘날의 피부색이나 국적에 따른 인종 구분이 연관성이 없다는 것이다. 인종 구분은 인간을 구별하는 편리한 판별법이 될 수는 있지만, 많은 경우(사실 대부분의 경우) 정치적으로 이용되어 왔으며, 실제로 인종이라는 개념 자체가 허구라는 주장이다.

 

하지만, 사람과 사람이 대면했을 때, 나와 다르게 생긴 존재를 맞닥뜨렸을 때의 느낌에 대해서라면, 그들은 우리와 다르다. 얼굴 모양, , 체형, 머리카락, 눈동자 색. 그리고 그들의 식습관을 관찰했을 때, 그들은 다르다. 우리와는 다르다.

 


나는 패키지 여행객이어서 내가 만났던 사람들은 터키의 사람들 중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관광버스 기사님, 현지 가이드님, 편의점 직원들, 관광지역 상인들, 블루모스크 안에서 만난 사람들이 전부다. 하지만 그들 중 누구에게서도 동양적인 느낌을 받지 않았다. 동양은 내게 속한 범주다. 내가 바로 동양인이다. 노란 피부에 크지 않은 코. 검은 머리, 검은 눈동자. 중간 체형의 동양인. 내가 확실히 동양인인 것만큼 그들은 서양인이 확실하다. 터키는 서양에 속한다.

 

물론 나의 이런 판단 역시 동양은 어떠하다는 혹은 동양적 외모가 어떠해야 한다는 전제에 근거한다. 내가 생각하는 가장 동양적인 모습은 내가 살고 있는 한반도와 동북 아시아인들의 모습이다. 한국인, 일본인, 그리고 중국인.

 


그렇다면 터키를 동서양 문명의 교차로 혹은 동양과 서양의 만남으로 규정하는 사람들은 누구인가. 서양인들, 유럽인들이다. 터키를 서양으로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 ‘진정한서양의 범주에서 터키를 배제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다. 서양인들이 가장 자랑스러워하는 그리스 문화가 꽃피었던 곳이며, 비잔티움 제국의 1000년 수도가 자리했던 곳이 바로 터키다. 그럼에도 터키는 서양이 아니다. 터키인들이 몽골 초원과 중앙아시아의 튀르크 제국의 후예이기 때문일까. 비잔티움 제국의 멸망 이후 이 지역이 이슬람화되었기 때문일까.

 



콘스탄티노플의 함락은 단순히 한 도시의 함락이 아니었다. 서로마 제국이 무너진 지 1000년 만에 비잔티움 제국(동로마 제국)도 역사 속으로 사라진 것이다. 기독교의 상징으로 유럽 문화를 찬란하게 꽃피웠던 천 년의 수도는 이슬람교를 믿는 튀르크족의 차지가 되었다. 유럽의 동쪽을 지키면서 이슬람 세력의 공격을 막아 주던 방파제가 무너져 버린 것이다. (128)

 






오리엔탈리즘. 타자에 대한 인식, 강력하고 명석한 유럽과 늙고 무력한 아시아, 인류의 대표자로서의 서구와 서구의 해석에 의해 규정되었던 동양. 탐구 대상이었을 뿐만 아니라 정복의 대상이었던 동양. 잠재적인 오리엔탈리즘과 명백한 오리엔탈리즘. 이 모든 것은 아직도 너무 멀리 있다. 멀다. 너무 멀다. 멀다 멀어. 너무 멀리 있구나. 


심려치 마소서. 신에게는 아직도오리엔탈리즘』 532쪽이 남아 있사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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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0-04-23 00: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지막에 아야 소피아 성당 사진이 눈에 확 들어오네요. ㅎㅎ

단발머리 2020-04-23 00:38   좋아요 0 | URL
그런가요? 사진 vs 사진이라 할수 있겠네요.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늦은 밤.... 잠자냥님께 인사를 전합니다.
잠자냥님, 굿나잇!!!

다락방 2020-04-23 08: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또 너무 좋은 글이다. 아침부터 이런 글 읽으니까 너무 좋으네요. 도대체 단발머리 님의 관심이 뻗치지 않는 곳은 어디인가요? 멋져.. ♡.♡

터키는 한 번 가보고 싶은 곳이에요. 사실 그런 곳이 너무 많다는 게 문제...
단발머리님 오리엔탈리즘 열심히 읽어요. 읽고, 언젠가 우리 터키에 함께 가요.....

단발머리 2020-04-23 09:32   좋아요 0 | URL
타자에 대한 인식,이라는 측면에서 전 오리엔탈리즘에 대한 사고가 페미니즘 공부에도 도움이 될 거라고.... 막연히 생각하고 있습니다. 저도 제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잘 가고 있는지 모르지만요ㅎㅎ

오리엔탈리즘 열심히 읽을게요. 읽고, 언젠가 우리 터키에 함께 가요.
가요, 가요, 가요, 가요, 가요요요요요요요요요요요요요!

감은빛 2020-04-23 08: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래전 학생 때 문화인류학 수업 필독서였는데, 아마도 과제 때문에 책을 펼쳐보긴 했을텐데 지금은 기억나는 내용이 전혀 없는 걸보니 제대로 읽지는 않고 읽은 척만 했었나봐요. 실은 문화인류학 필독서 여러권을 다 그랬던 것 같기도 하네요. 공부하기 싫어했던 대학시절이 후회되네요. 그때 다른 건 몰라도 책이라도 제대로 읽었으면 좋았을텐데

단발머리 2020-04-23 09:26   좋아요 0 | URL
지금 생각해 보면 문화인류학, 이런 근사한 수업을 들었어야 하는데요. 그 때는 뜨거운 피에, 열정에 나름대로 정신없이 바빴네요. 저도 전공 시간에 교수님이 다른 것보다 공부하는 시간을 따로 빼놓아야 한다, 이런 말씀 하셨던거 기억나요. 저는 다른 시간 다 쓰고 남는 시간에 전공공부 하다보니, 공부할 시간이 없었..... ㅠㅠ
되돌아보면 그게 제일 후회되라구요. 공부 안 한 거, 책 읽지 않은 거요. 너무 어른 같은 발언일까요?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비연 2020-04-23 09: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리엔탈리즘을, 단발머리님이 읽고 페이퍼 올려 주시니.. 느무나 좋네요^^

단발머리 2020-04-23 09:33   좋아요 0 | URL
비연님이 좋다고 하시니, 저도 기분이 느무나 좋으네요.
완벽한 굿모닝! 입니다!!!!

책읽는나무 2020-04-23 10: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스탄불 문화는 참 신비롭다라는 생각을 갖게 되던데....오리엔탈리즘에 대한 공부를 하고 계시니 단발머리님도 신비롭게 보입니다^^
직접 다녀오셔서 좋으셨겠습니다.
타자에 대한 인식이란 대목에 눈길이 머뭅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이 타자의 선입견일 수도 있었던???음....532쪽의 남은 페이지 이야기가 궁금해집니다^^

단발머리 2020-04-23 19:20   좋아요 1 | URL
저는 신비로운 것과는 거리가 멀지만 신비롭게 보일 수도 있다는 생각에 하하하! 웃고 있습니다.
터키에서는 좋은 기억을 많이 가지고 돌아왔어요. 다시 가고 싶기도 하구요.
532쪽에서 많이 줄어들지는 않았다고 합니다. 응원해주신 분들 계셔서 완독해야 하는 분위기인데 말이지요^^

수이 2020-04-24 09: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리엔탈리즘 완독 무조건 응원합니다 단발머리님! 근데 저는 지금 당장 읽고 싶은 건 터키사! :)

단발머리 2020-04-24 10:08   좋아요 0 | URL
수연님 따근한 응원 한 개 더 모아서 전진합니다! 반 정도 읽고 페이퍼 올릴걸... 후회하고 있어요. 아직도 많이 남았ㅠㅠㅠ

2020-04-25 17: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4-25 09:29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