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 교회 오빠들 가정 네 팀이 가까운 계곡에서 아이들 물장구라도 치고 재미있게 놀리라 했던 계획이 취소됐다. 한 아기가 아팠고, 오늘 밤부터는 비가 많이 내린단다. (여기에서 오늘밤은 이젠 어제밤이다. 14일부터 이 글을 쓰기 시작했다.) 전화를 끊으려던 ** 오빠가 말했다.

“그래, 잘 지내고. 내일 태극기 잘 달아라.“

“태극기요? 태극기..... 태극기, 어딨지?”

1. 국가는 내 편인가.

여기 노동자가 있다.

10년, 20년을 몸이 아플 때도, 고단할 때도, 기쁠 때도, 슬플 때도 내 회사, 우리 회사라 생각하며 열심히 현장을 지켰던 사람들이 있다. 회사를 사랑하는 순박하고 순진한 사람들. 그런 사람들에게 정리해고의 이야기가 전해진다. 쌍용자동차 2,646명의 해고자. 전체 노동자의 37%, 현장직 노동자의 43%. 우편을 통해 해고통지서가 전달되기도 했지만, 핸드폰 문자 메시지로 전달된 경우도 있었다.

회사가 어렵다는 이야기에 순진한 노동자들은 자신들의 퇴직금을 내놓고서라도 회사를 지키고 싶어했다. 회사와 함께 하고 싶어했다. 하지만, 이미 회사는 그럴 의지도, 그럴 능력도 없었다.

노동자들은 공장을 점거하고 농성에 들어간다. 경영상의 이유로 정리해고를 단행한다는 회사는 상상하기도 어려운 막대한 비용을 지출하며 용역을 동원한다. 경찰이 배치되어 공장을 봉쇄한다.

단수, 단전, 의료진 출입 봉쇄, 볼트 새총, 경찰 헬기, 10년된 최루액 2041.9 리터 살포, 완전무장한 경찰과 용역의 무차별적 진압.

말하자면 용산에서 간을 본 것이었는데, 의외로 저항이 거세지 않자 이번에도 그걸(컨테이너) 사용한 것이다. 국민이 용산에 대해 국가에게 관용을 베풀지 않았더라면 쌍용자동차 사태도 없었을 것이다. 용산 참사는 국가에게 ‘이렇게 진압해도 된다.’는 몹쓸 교훈을 심어줬다. (46쪽)

작가님의 말처럼, 쌍용자동차에 대한 무차별적인 진압과 인권 유린의 현장은 1980년 광주와 꼭 닮았다. 폭력적, 폭압적 국가 권력 앞에 개인은 테이저건 한 방으로 쓰러뜨려야 하는 “외부 세력”, “빨갱이”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그 사람들, 평택에서 돈 잘 쓰기로 소문났던 쌍용자동차 조합원들, 대기업에 다닌다는 자부심과 회사에 대한 애정으로 소박하고 행복한 일상을 이어가던 사람들. 그 사람들이 볼트 새총에, 최루액에, 테이저건에 그냥 그렇게 쓰러져간다. 회사에서 “이제 나가라!”고 말할 때, “네” 하고 순응하지 않았다는 것이, 회사를 살리고 싶어했던 것이, 일터를 빼앗기지 않으려 했던 것이 그들의 잘못이라면 잘못이다. 그리고, 이어지는 죽음의 행렬......

박노자 교수의 말이 맞다. 당신을 위한 국가는 없다.

2. 너희는 참 좋겠구나

오직 서류상으로만 2008년 9월말까지 168%에 불과했던 부채비율은 561%로 증가한다. 또한 당기 순손실 역시 2008년 9월까지 980억 원이었으나 3개월 만에 7,100억 원으로 치솟는다. 이제 누가 봐도 부채비율 600%, 당기 순 손실 7,000억 원의 문제기업이 되는 것이다. (75쪽)

‘먹튀’를 방조한 국가권력, 산업은행, 그리고 기술 유출을 눈감다시피 한 검찰, 엉뚱한 사람이 내놓은 근거로 기술 유출 무죄를 선고한 무성의한 법원, 약속을 지키지 않는 회사...... (167쪽)

건실한 기업 쌍용자동차가 보고서 하나로 부실기업이 되고, 그 해결책으로 제시된 게 정리해고다. 다른 방법을 생각지 않는다. 어짜피 외국 자본이 필요로 하는 건 기술 뿐이었다. 그런데, 우리의 고급 기술이 유출되는데도, 우리의 근로자가 그렇게 정리해고 되는데도, 아무도 돕지 않는다. 국가도, 경찰도, 검찰도, 법원도 그리고 언론도. 아무도 그들을 돕지 않는다.

3. 지식인의 책무

내가 무력하게 느껴질 때, 어떤 노력도 부질없을 때, 세상이 모두 내게 등을 돌리고 있다고 느껴질 때, 눈물이 터지기 직전, 아마도 그때가 신이 나를 부르는 시간이리라. 나는 아침이 올 때까지 그냥 중얼거렸다. 도와주세요, 도와주세요, 어떻게든 도와주세요, 제발요, 제발......(62쪽)

어렵게, 어렵게 읽어 나갔다. 중간 중간 책을 덮을 수 밖에 없었다. 답답하고, 먹먹하고, 미안했다. 공지영 작가님도 그러했으리라 생각한다. 아니다. 나보다 열배 더, 백배 더 힘들고 괴로웠을 것이다. 나는 한 번 읽는데도 이렇게 힘든데, 이 많은 문장들을 읽고, 또 읽고, 고치고, 또 고치고 했을 그 많은 시간들이 고맙고 또 고맙다. 작가님의 눈물과 수고에 감사와 경의를 표한다.

4. 결심 그리고 용기

쌍용자동차의 노동자들처럼 나도 평범한 사람이다. 운전을 하고 가다 저 앞에 경찰차가 있으면 안전벨트를 다시 한 번 확인하고, 아무리 정권 말기라 하더라도 이런 글을 써도 괜찮나 나도 모르게 ‘자기 검열’하게 된다. 지금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이 내 생각이 불온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지, 누가 날 감시하지는 않는지.

비가 내린다.

마이클 샌덜이, 슬라보예 지젝이 대한문 앞 쌍용자동차 해직노동자 분향소를 찾았을 때, 사진을 보며 반가워하기만 했던 내가 부끄럽다. 시간을 내 찾아가 봐야겠다, 결심을 한다. 결심하지 않으면, 용기내지 않으면 가기가 쉽지 않을테니.

내일은 비가 온단다. 비가 온다니, 다행이다. 차라리 비가 오는게 낫겠다. 어차피 태극기도 못 찾을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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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 2012-08-15 18: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우, 좋은 글이예요.
저희 집은 태극기를 달았으려나요...

단발머리 2012-08-16 01:51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소이진님. 저흰 끝내 태극기 못 달았는데요, 앞으로도 쭈욱 못 달 것 같네요. T.T
 

 

덥다. 진짜 덥다.

내 기억에 서울 36도는 태어나서 처음인거 같은데, 아빠는 뉴스에선 94년도에 더 더웠다고 하더라고 하셨다. 생각해보니 그 때도 더웠다. 보충 끝나고 12시 20분, 땡볕 아래서 버스를 기다리던 정류장엔 그늘 하나 없었고, 땀흡수 안 되는 여름 교복은 몸에 쩍쩍 달라붙어 버렸다.

고교 시절에 나는 소설가가 될 거라고 생각도 못 했다. 내가 언젠가 제대로 된 글을 쓰게 되리라고도 생각하지 못했다. 그저 책을 읽고 있는 것만으로 행복했다. 아니, 책 담았던 상자의 냄새만으로도 행복했다. 지금은 당연한 얼굴로 뭔가 거들먹거리는 소리를 하고 있지만. (139쪽)

항상, 이런 식이다.

그런 생각을 안 했는데도, 작가가 되겠다는 생각을 안 해봤는데도 무라카미 하루키, 내가 아는 그 무라카미 하루키가 된 거다. 작가도 그냥 작가가 아니라, 전 세계적인 작가 말이다.

1987년에는 2012년 현재까지도 베스트셀러를 기록하고 있는 대표작 《노르웨이 숲》을 발표하여 하루키 신드롬을 낳았다. 1994년 《태엽 감는 새》로 요미우리 문학상을 수상했고, 2005년 《해변의 카프카》가 아시아 작가의 작품으로는 드물게 〈뉴욕타임스〉 ‘올해의 책’에 선정되었다. 2006년 체코의 ‘프란츠 카프카상’을, 2009년 이스라엘 최고 문학상인 ‘예루살렘상’을, 2011년 스페인 ‘카탈루냐 국제상’을 수상했다. 전세계 40개 이상의 언어로 50편 이상의 작품이 번역 출간된 명실상부한 세계적 작가이며, 해마다 노벨문학상의 유력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알라딘, 작가 소개> 

작가가 되겠다는 생각을 안 해봤다는데, 언젠가 제대로 된 글을 쓰게 되리라고도 생각지 못했다는데, 그저 책을 읽기만 했는데, 그런데, 이런 작가가 되었다. 쓰고 싶은 작품을 20년이상 쓰고 있고, 문학적으로 인정받고, 대중적으로도 성공한 작가가 되었다.

물론, 읽었던 양이 가히 엄청나기는 하다.

인쇄된 활자는 뭐든 닥치는 대로 읽었다. 각종 문학전집을 처음부터 끝까지 독파했다. 중고교 시절 동안 나보다 많은 책을 읽은 사람을 아직 만나지 못했다. (136쪽)

그렇다고, 무조건 많이 읽는다고 좋은 작가가 될 수 있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읽는 대로, 읽는 양대로 좋은 작가가 될 수 있는 순서가 정해진다면, 그렇다면, 나도 오늘부터 책을 읽어보겠다. 각종 문학전집을,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을, 문학동네를, 펭귄 클래식을 처음부터 끝까지, 닥치는대로 읽어보겠다. 그런데, 그건 아닐꺼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읽은 만큼 어떻게 쓸 수 있겠는가. 어떻게...

열아홉, 친한 친구 책장에 꽂혀 있던 <상실의 시대>를 보았을 때부터, 무라카미 하루키를 처음 읽었던 그 때부터 지금까지, 그는 최고의 작가 중 하나다. 그는 최고다.  

아, 그 다음이 진행이 안 되네. 신랑이 방금 에어컨을 껐다.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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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아이패드를 샀을 때

반응은 총 천연색 무지개와 비슷했는데, 자랑스레 아이패드를 꺼내는 날 보며, “언니, 그게 뭐하는 거야?”하는 친한 유치원 엄마가 있었고, “가정주부가 아이패드가 왜 필요해?”하시던 분도 계셨다. (아, 내가 존경하는 분이기에 그냥 참아준다. 단, 한 번 뿐이다.) 그래도 나름 무난한 반응을 우리 아이들이 보여줬다.

아들 : 우아, 이게 뭐야?

딸 : 치이, 아빠 나빠. 왜 엄마만 사 줘?

앵그리 버드, 탭소닉으로 즐거운 게임 여행을 떠나는 아들을 부여잡고, 엄마도 한 번 해 보자며, 전자책을 펼친다. 알라딘의 13주년 기념으로 출간된 <십삼 곱하기 이>.

자기 본연의 임무를 찾은 아이패드. 결제금액 0원의 전자책. 으하하하.

2. 머리말을 대신하여 - 고(故) 최성일의 아내 신순옥

- <한 권의 책>, 최성일 지음, 연암서가

그것이 당신의 육신이 한 줌 재로 변해도 당신의 육체에서 이탈한 영적 에너지가 광활한 우주를 떠돌다가 결국 제 곁으로 돌아오리라는 것을 믿는 까닭입니다. 인간사 모든 관계가 회자정리會者定離라 하지만, 저는 당신과 정리재회定離再會가 될 것을 믿고 있습니다. “당신은 갔지만, 저는 당신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

평생 책을 사랑하던 남편, 남편이 이 세상에서 마지막으로 남긴 책, 그 책의 서문을 쓰는 아내.

남편을 보내며, 그의 영적 에너지가 자신에게로 돌아오리라 믿는 그의 아내 때문에 마음이 뭉클해진다. 이게 사랑이구나, 이런게 진짜 사랑이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3. 왜 읽는가?

- <해럴드 블룸의 독서기술>, 해럴드 블룸 지음, 윤병우 옮김, 을유문화사

독서의 즐거움은 사실 사회적이기보다는 이기적이다. 책을 더 잘 읽음으로써, 또는 더 깊이 읽음으로써 다른 사람의 삶을 직접적으로 향상시킬 수는 없다. 개인의 상상력을 성장시킴으로써 타인에 대한 배려가 증가되리라는 전통적인 사회적 희망에 대해 나는 회의적이며, 홀로 행하는 독서의 즐거움을 공익과 연관 짓는 모든 주장에 대해 경계심을 갖고 있다.

왜 읽는가에 대한 대답은 무척이나 다양하다. 내가 가장 자주 만나는 사람들인 엄마들은 “아이가 공부를 잘하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독서를 지향한다. 다르게 생각하는 엄마들도 물론 있겠지만.

제목이 잘 기억나지 않는 어떤 책이 생각난다.

독서 지도가 흔치 않던 10여전부터 독서 교육을 지도하시던 분이었는데, 초등학교 교실에서 글을 잘 못 읽는 아이를 발견하고는 눈물을 참을 수 없었다고 했다. 5세에 영어유치원 준비반을 보내는 우리나라에서, 초등학교를 다니는 얘가 한글을 띄엄띄엄 읽는다면, 이 아이에 대한 보살핌이 어떠했을지는 충분히 예상 가능하다. (뭐, 또 다른 경우도 있다. 아이의 엄마나 아빠가 국문학을 전공했을 경우. 엄마나 아빠가 국문학을 전공한 경우, 일부러 아이에게 한글을 늦게 가르치는 경우를 종종 있다. 더 많이 책을 읽어주기 위해서다. 이런 경우는 논외로 한다.)

“외롭고 힘든 인생살이에서 이 아이는 어디에서 위로를 얻는단 말인가. 쓸쓸하고 외로운 어느 날 저녁, 이 아이는 책 아닌 다른 어떤 곳에서 위로를 받을 수 있단 말인가.”

전적으로 동의한다.

독서가 주는 효과가 과소평가될 필요는 없지만, 독서의 효용만을 강조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독서”를 통해 무엇을 얻어야 한다기보다는 독서 자체가 주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이 얘기는 중학교 입학과 동시에 교과서와 문제집 이외의 모든 책과 안녕을 고하는 우리나라에서는 어림도 없는 소리일 것이다.

이기적인 목적의 독서, 즐거움을 위한 독서는 설 자리가 없다.

에잇, 안 되겠다.

내가 도와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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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2-08-02 16: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잇, 안 되겠다. 내가 도와줘야겠다!! :)

언젠가 '제대로 된' 독서를 하기 위해서 읽는 내내 생각하고 물음표 달고 포스트잇 붙이고 생난리를 피운 적이 있어요. 그때 느낀 것이 바로 독서는 즐거움이 우선이라는 거에요. 그래봤자 평소 읽을 때랑 다르게 얻는 것도 별로 없더라구요. 시간만 축내고 재미만 없어지고 읽어야 하는 의무감만 생기고. 책을 읽는 행위는 참 재미난 거 같아요. 이기적으로 즐겁기 위해서 독서한다지만, 여러 사람들이 책을 통해서 내가 성장했다고 그러잖아요. 특히 유명인사들이 그러면서 독서를 권장하고. 독서가 사회적 효용이 있는건지 저는 아직 체험해보지는 못했는데요. 어쨌거나 즐거운 건 사실이랍니다. 흐흐, 즐기다 보면 뭔가 얻어걸릴지도...

단발머리 2012-08-06 23:34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즐기다가 뭔가 얻어걸리는게 최고죠. 거기에다 돈까지 따라오면 완전 최상의 시나리오인데. ㅋㅎㅎ 즐거운 책읽기는 멈춰지지 말아야 한다! 일단은 여기에서 시작하는게 좋겠네요
 

 

새로운 작가를 만나는 일은 새로운 우주를 만나는 일이다. 이응준이라는 작가를 난 알지 못 했고, 이제 알게 됐고, 그의 소설을 좋아하게 됐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의 책 <그는 추억의 속도로 걸어갔다>는 친숙했다.

아, 기억이 난다.

한반도 전체는 아니고, 거의 절반을 “현빈” 열풍으로 몰아넣었던 드라마 <시크릿가든>에 소개된 책이구나. 같이 소개되었던 책 대여섯권이 세트로 구성되어 ‘주원서재’를 시작하는 사람들에게 선풍적인 인기를 얻었다는 그 책. 드라마에 소개되었던 건, “Lemon Tree".

다만 멀리 존재함으로 환상처럼 여겨지는 것들이 있다. 별들의 세계가 그러하다. (121쪽)

책은, 읽고 싶은 사람이 골라 읽는 것이 제일 좋다. 자신이 골라야 흥미를 느낄 수 있고, 흥미를 느껴야 기억도 잘 된다.

하지만, 이런 경우는 어떨까. 사람들이 책을 도통 안 보는 요즈음, 사람들이 많이 보는 드라마에 소개되어 급상승 베스트셀러가 되는 것 말이다. 그것 자체가 좋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렇게라도 ‘좋은 책’을 만나게 된다면, 그래서 새롭게 독서에 눈뜨게 된다면, 그것도 그렇게 나쁘게 보기 어려울 것 같다. 물론, 이 경우는 책 한권당 2달러의 상금을 받는 경우와 다르다는 가정하에서다.

나는 ‘작가의 말’이 좋다. 작가들의 멋진 이야기들을 좋아하지만, 내가 제일 좋아하는 건, ‘작가의 말’, ‘수상소감’류다.

나는 일기를 남기지 않는다. 내 이 부끄러운 오늘을, 그리하여 괴로움인 저 어제를 굳이 기록할 까닭이 없기 때문이다. 대신 내 소설들을 보면 그것들을 빚어내려 애쓰던 무렵의 내가 타인은 해독해 내지 못하는 암호가 되어 거기에 있다. (작가의 말, 292쪽) 

어쩜, 이렇게 멋있을 수가.

이승우의 책에서도 이런 비슷한 구절을 본 적이 있다. 이 책이었는지, 저 책이었는지는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요는 이거였다.

 

 

 

 

 

 

소설을 쓴 이후로 나는 일기를 쓰지 않는다.

여러 가지 이유로 글을 쓰고, 소설을 쓰겠지만, 글쓰기를 통해 얻어지는 성과 그 이상으로, 글쓰기 자체가 갖는 ‘자기 치료’의 효과도 적지 않다고 생각한다. 부끄러운 과거, 힘들었던 과거가 글쓰기를 통해 승화되고, 상처가 치유되는 일이 가능하다고 여겨진다.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회사를 그만두던 그 해까지 일기쓰기를 멈추지 않았던 어떤 사람의 생각이다. 그 사람은 지금 소설을 쓰는 것도 아닌데, 왜 일기쓰기를 그만두었는지. 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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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다.

다락방님 서재에서 이 책에 대한 페이퍼를 읽고 생각했다. (벌써 두 달 전?)

아, 책 진짜 이쁘다. 재밌겠네. 아, 나도 저 책 읽고 싶어.

다락방님을 만나 커피라도 한 잔, 스콘이라도 나눠먹으면서 고맙다는 말을 진지하게 전해야 할텐데. 아쉬운대로 일단 지면상으로라도.

“다락방님, 책 소개 항상 고마워요. 앞으로도 잘 부탁해요. 쭈욱~~~”

소재가 신선하다. 진보노동당 소속 국회의원이자 당 대표 오소영과 새한국당 소속 국회의원 김수영이 사랑에 빠진다. 소설이 발표되자마자 드라마화가 결정되었다고 하던데, 드라마로 만들어도 재미있게 그려질 장면이 무척이나 많겠지만, 소설 사이사이 작가의 번뜻이는 유머가 그대로 살아있으니 드라마보다는 아무래도 소설이 더 재미있을 듯.

태양 때문에 아랍인을 권총으로 쐈다고 누가 그랬지? 뫼르소지? 맞아.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 뫼르소, 엄마가 오늘 죽었는지 어제 죽었는지도 혼란스러워하던 뫼르소. 그래, 삶이란 확실한 게 하나도 없고 불행은 난데없이 들이닥치는데 태양은 아랑곳없이 이글거린다. 순간, 김수영은 뫼르소가 희미하게나마 이해되었다. 뫼르소는 이 모호한 세계의 중심 앞에서 방황하는 인간의 전형이었던 것이다. (66쪽)

추행당하는 아가씨를 도와주다 경찰의 도움을 받아야할 처지가 된 전태양, 전태양을 도우러 간 김수영. 경찰서 문을 나서며, 생각한다. 태양 때문에 아랍인을 권총으로 쐈다고 누가 그랬지? 뫼르소지? 그래, 뫼르소. 『이방인』의 뫼르소.

“고소하라니까. 나는 죽어도 너희 군사독재의 똘마니들이랑은 타협 안 해. 왜놈 때렸다고 이순신 장군이 사과하는 거 봤어?”

“요망한 것이 어딜 감히 장군님 존함을 들먹여. 넌 남자였음 59초 전에 내 손에 죽었어. 개소리 삼키고 시키는 대로 해. 확 옥수수 포대에 넣어서 북송시켜 버리기 전에.” (117쪽)

이 순수하고, 아름다운 대화는 오소영이 휘두르는 소화기에 맞아 뒤로 넘어가 대자로 뻗은 새한국당 김수영이 가해자인 진보노동당 오소영을 찾아가 사과를 종용하는 장면이다. 물론, 사건 자체는 오해에 의해 발생한 것이지만, 두 사람이 대한민국이라는 거대한 강의 이 쪽 끝과 저 쪽 끝편에 서 있음은 자명한 바, 이처럼 솔직하고 진솔한 의견 교환이 이뤄지고 있다.

폭풍 소화기로 김수영에게 강한 첫인상을 남긴 오소영은 강남의 한 멤버십 클럽 앞에서 그를 다시 만나, 이 기쁘기도 하고 슬프기도 한 장면을 같이 목격하게 되는데...

새한국당 주요 의원들과 여러 야당 의원들이 사이좋게 뒤섞여 한창 어지럽게 놀고 있는 것이다. 국회에서는 그렇게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던 위인들끼리 동지, 오라버니, 동생, 누님, 형님 하며 스킨십을 일삼는 가관에 김수영과 오소영은 아우슈비츠 가스실 속의 벌거벗은 유대인 남매처럼 절망했다. (148쪽)

폭탄주를 원샷하는 오소영에게 새한국당 대표, 김수영과의 러브샷을 재차 권하니, 절대미모 오소영 의원 쥐고 있던 빈 잔을 노래 기계를 향해 던져버린다. ㅋㅋ 역시나 역시.

니체는 이렇게 설교했다.... 사랑한다는 것은 자신과는 완전히 정반대의 삶을 사는 사람을 그 상태 그대로, 자신과는 반대의 감성을 가진 사람을 그 감성 그대로 기뻐하는 것이다. (206쪽)

다른 세계에 속한 사람, 다른 별에서 온 사람, 나와 다른 그 사람을 본다. 그리고 그를 사랑하게 된다. 내가 그를 사랑하는 이유는 그가 나와 다르기 때문이다. 내가 그에게 사랑받고 싶은 이유는 그가 나와 다르기 때문이다. 나와 다르기 때문에 나는 그를 사랑한다. 나와 다르기 때문에 나는 그의 사랑을 갈구한다. 나와는 다른 그를 사랑한다.

 

 

 

 

 

『철학적 시읽기의 즐거움』에서 강신주는 이렇게 표현했다.

여기서 우리는 사랑이란 감정이 과연 어느 경우에 발생하는지 숙고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사랑은 공동체, 하나의 언어 게임으로 닫혀진 공간에서 발생하는 것일까요? 아니면 사회, 최소한 두 가지 이상의 언어 게임이 마주치는 공간에서 발생하는 것일까요? 당연히 사랑의 감정은 공동체에서 발생할 수 없습니다. 사랑은 타자, 즉 다른 공동체에 속한, 혹은 다른 삶의 규칙을 가지고 있는 사람에 대한 매력으로 시작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더 나아가 사랑이란 감정은 삶의 규칙이 다르기에 내가 정확히 알 수 없는 타자에 대해 위험한 도약 또는 비약을 감행하는 것이기도 하지요. (208쪽)

‘나와 다른 사람을 갈망하는 것, 다른 공동체에 속한 사람에게 매력을 느끼는 것’, 그것이 바로 ‘사랑‘이다. 이미 공동체, 하나의 언어 게임으로 닫혀진 공간에서 ‘가족’의 이름으로 살고 있는 나와 남편의 ‘관계와 감정’에 대해서는 위의 책의 페이퍼에서 이미 충분히 성토했으니, 여기에서는 그만하기로 하고.

당장 이 자리에서 총을 맞아 죽어도 알고 싶은 것. 그 여자는 지금 어떨까? 나와 같을까, 다를까? 내 생각은 아예 안 할까? 진짜? 진짜? 설마. (197쪽)

아, 나는 잠시 잊고 있었다. 이 깔끔하고 눈부시게 예쁜 이 책이 ‘연애 소설’이라는 걸.

아, 나는 잠시 잊고 있었다. 이 책의 제목이 『내 연애의 모든 것』이라는 걸.

결국 알고 싶은 것 한 가지는 바로 이거다. 그녀도 나와 같을까? 그녀도 내 마음과 같을까? 두 사람이 똑같은 마음이라면 둘은 연애하게 될 것이고, 사랑하게 될 것이다. 두 사람이 똑같은 마음이라면 둘은 계속 사랑하게 될 것이고, 이별하지 않을 것이다. 두 사람의 마음이 똑같지 않다면? 두 사람의 마음이 똑같지 않다면, 그렇다면 아무 얘기도 없다. 이야기는 시작되지 않았을 테니까.

“어떤 일? 액션 버전을 말하는 거야, 에로 버전을 말하는 거야?”

“장난치지 마.”

“보고 싶어서 왔어.”

“뭐?”

“못 보면 죽을 거 같아서 왔다.”

“……우, 웃겨.”

“안 웃긴 거 알아. 사귀자.”

“미쳤어?”

“응, 사귀자.”

“정말 미쳤구나?”

“그 여자 참. 미쳤다니까. 같은 말 여러 번 하게 하네.”

“미쳤어. 정말.” (202쪽)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기 전, 그녀의 마음이, 그의 마음이 내 마음과 똑같은지 다른지 알게 되기 전, 세상은 ‘죽을 거 같은’ 곳이다. 그 곳이 바로 지옥이다. 지옥에서, 지옥 같은 그 곳에서 용기를 내서 그녀의 마음, 그의 마음을 조심스레 두드려본다. 그리고 알게 된다. “그녀도 나와 같다.”는 것을. “그도 나와 같다.”는 것을. 그녀의 마음을 확인한 후에 이제 세상은 ‘천국‘이다. 세상은 ’살 만한 곳‘, ’살고 싶은 곳‘이다.

이응준 소설을 읽고 싶어, 일단 두 권을 빌렸다. 『자전소설 04』를 읽다가 이런 구절을 발견했다.

 

 

 

 

 

 

그가 좋아하는 열 개의 단어들.

- 비바람, 형(兄), 나무, 짐승, 자유, 청춘, 해탈, 영혼, 고백, 김수영 (자전소설 04, 91쪽)

그래서, 우리 주인공이 김수영이구나.

김수영이구나, 김수영. 저항의 시인, 김수영. 사랑의 시인, 김수영.

아.....

사랑이야기. 재미있는 사랑이야기를 읽었다. 결국 인생은 사랑을 찾아가는 과정. 폭풍처럼 몰아쳐, 왜 하필, 나한테 이런 일이, 왜 하필 지금 이런 때 내게 사랑이 찾아오나, 원망하고 불평해도 소용없으니, 쇼펜하우어의 말처럼, 사랑은 그렇게 열병처럼 찾아온다더라. 열병처럼 그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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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2-07-25 08: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ㅎ 김수영이 그래서 김수영인지는 단발머리님의 이 글 보고 처음 알았어요. 재미있게 읽으셨다니 다행이에요!
:)

단발머리 2012-07-27 17:40   좋아요 0 | URL
그 김수영이 그 김수영인지 확신은 없네요. 그냥 한자가 같고.... 쩝. 그럴거라 예상이 엄청 됩니다. 다락방님, 너무 덥네요. 너무 더워요. 이 하소연을 다락방님에게... 아, 더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