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인더스 키퍼스 - 찾은 자가 갖는다 빌 호지스 3부작
스티븐 킹 지음, 이은선 옮김 / 황금가지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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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킹이 추리소설에 도전했다고 화제가 된 <미스터 메르세데스>의 후속작이 올여름 돌아왔다.

<파인더스 키퍼스(Finders Keepers)>는 소설을 덮고 나면 굉장히 수긍 가는 제목이다.

호지스 탐정 시리즈이긴 하지만, 호지스의 활약은 덜하다.

이번 편의 주인공은 단연코 악당 모리스 벨라미와, 소년 피터 소버스다.

 

악당을 이렇게도 매력적으로 창조할 수 있을까-라는 점에서 이 소설은 압권이다.

늘 스티븐 킹이 잘해왔던 일이지만, 이번에는 진짜 최고다.

<러너>라는 소설 속 주인공 지미를 좋아하는 모리스가 어떻게 악당이 되고

어떻게 망가진 인생을 살게 되는가.

그 반면 똑같이 지미를 좋아하는 소년 피터는, 다른 선택을 하고 다른 길을 간다.

 

소설 속 소설가인 로스스타인의 <러너>라는 소설을 둘러싸고 벌어진다는 점에서

책을 좋아하는 독자로서 더더 열광을 보낼 수밖에 없는데,

나중에 스티븐 킹이 <러너> 시리즈를 써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마저 가져 본다.


그냥 군말없이 읽어보시라. 올여름 이 한 권이면 충분할 듯.

 

아이들 몇 명이 웃었다. 그는 아이들을 웃길 수 있었다. 그를 좋아하게 만들 수는 없었지만 그는 전혀 상관없었다. 그들은 막장 결혼과 막장 일자리를 향해 가는 막장 인생이었다. 막장 아이들을 키우고 막장 손자들을 어르다 막장 병원과 양로원에서 막장을 맞이해 자기들은 아메리칸 드림을 살았고 예수님이 환영의 꽃마차를 타고 천국 입구에서 자기들을 맞아 줄 거라고 믿으며 어둠 속으로 돌진할 것이었다. 모리스는 그보다 더 훌륭한 미래를 맞이할 운명이었다. 그게 어떤 건지 아직 모를 따름이었다. (중략)
토드 선생님은 경고장을 주기는커녕 불룩한 책가방 안에서 빨간색 표지의 페이퍼백을 꺼냈다. 벽돌담에 기대서 담배를 피우는 남자아이가 표지에 노란 스케치로 그려져 있었다. 그 아이 위로 제목이 보였다. <러너>.
"너는 잘난 척할 기회가 오면 절대 놓치지 않지?"
177p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자기가 책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깨달은 순간을, 살면서 가장 짜릿했던 순간으로 꼽을 수 있을 것이다. 단순히 책을 읽는 수준을 넘어서 책을 사랑한다는 사실을 깨달은 순간, 대책 없이 푹 빠져 버린 순간을 말이다. 맨 처음 그런 느낌을 선물한 작품은 평생 잊히지 않고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다시금 뜨겁고 강렬한 깨달음이 찾아온다. 그래! 그렇지! 맞아! 나도 느꼈어! 그리고 두말하면 잔소리지만, 내 생각도 그래! 내 느낌도 그렇다고!
모리스는 <러너>를 주제로 열 쪽짜리 독서 감상문을 썼다 토드 선생님은 A+를 주면서 한 줄짜리 코멘트를 덧붙였다.
네가 좋아할 줄 알았다.
180p

"모리스." 그녀는 아주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나도 지금 지미가 되고 싶어 하는 너처럼 한때는 여자판 지미가 되고 싶었던 시절이 있었어. 지미 골드, 아니면 그 비슷한 인물은 대부분의 청소년들이 어린이에서 성인으로 넘어가는 과정에 잠깐 거쳐가는 유배의 성 같은 거야. 네가 깨달아야 하는 사실은 뭔가 하면 – 로스스타인이 세 권 만에 드디어 깨달은 사실이기도 한데 – 우리들은 대부분 아무 데서나 볼 수 있는 인간이 된다는 거야. 나는 분명 그런 인간이 됐지."
187p

로스스타인이 글을 쓰는 동안 내다보았을 산들이 보이는 그곳에서 공책을 읽는 거다. 그러면 소설의 둥근 맛이 느껴지지 않겠는가. 맞다. 그리고 소설의 위대한 점이 그것이다. 둥글다는 것, 결국에는 모든 게 균형을 찾는다는 것. 로스스타인이 지미를 그 빌어먹을 광고회사에서 일하도록 내버려 둘 리 없다는 사실을 그도 알았어야 하는 거였다. 그런 결말에는 추악함만 한 숟가락 가득 들어 있을 뿐 둥근 맛이 전혀 없지 않은가.
409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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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에서
김사과 지음 / 창비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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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한국작가 발굴 시리즈,

김사과는 블로그 지인이 좋아한다고 했다. 몇년 전 <미나>를 넘겨보다가 안 맞네 생각했는데.

<천국에서>라는 제목과 파격적인 표지에 끌려 읽어보았다.

좋으네. 연애하는 대상이 좋으면 '그냥 좋다'라는 게 정답인데 책도 그렇다.

주파수 같은 게 맞으냐-가 모든 걸 결정한다.

다른 사람이 아무리 추천해도 잘 안 읽어지는 작가가 있으니까.

 

케이라는 한국의 대학생 여자애가 뉴욕에서 지내다

한국에 돌아와 겪는 일상인데, 구성이 평범하지 않다.

전통적 서사 플롯을 벗어나, 주요 인물들의 부모 인생사를 요약적으로 들려준다든가. 작가의 관념적인 주장들이 끼어들기도 하고.

하지만 케이라는 인물의 문제의식-주로 한국과 그 윗세대에 대한-은 충분히 공감할 수 있었다.

생각보다 머리를 꽝 치는, 강한 작품이었다.

장강명 작가의 <한국이 싫어서>처럼 청년 세대의 글로벌한 감각이 느껴지는데, 그것보다 더 무거웠던 건

기존 세대에 대한 비판적 시각이 적나라했기 때문이다. 특히 대구에 사는 통닭집 운영하는 지식인 꼰대라든가,

돈 많은 40대 그림 작가가 바에서 양주를 사며 케이에게 들이대는 모습이라든가.


그런데 한국 사회(뿐 아니라 현대의 세계)가 그렇게 닫혀 있고

과거의 좋았던 것들을 모방할 뿐이라면, 출구는, 천국은 정말 없는 것일까. 

 

극소수만이 중산층적 삶의 양식을 감당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미래가 없는 전략, 다시 말해 아무런 전략도 아니었다. 하지만 미래란 무엇인가? 사람들은 더 이상 미래라는 개념을 이해할 수 없었다. 삶은 이미 완벽하게 일회용이 되어 있었다. 사람들은 파산한 삶을 외면한 채 값싼 즐거움으로 도피했다.
여행 또한 마찬가지였다. 공항으로 들어가는 순간부터 다시 나오는 순간까지, 여행의 모든 과정은 쇼핑과 동일하다. 여행자들은 한편으로 트렌드를 쫓으며, 한편으로 가장 독특한 것을 찾기 위해 애썼다. 하지만 이제 더 이상 탐험할 것이, 어떤 새로운 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모든 것은 이미 발견되었고, 재발견되었다.
95p

왜 서울의 베이글은 이렇게 맛이 없어? 왜 서울의 커피는 이렇게 싱거워? 왜 우디 앨런의 새 영화가 개봉을 안하는 거야? 왜 사람들은 눈이 마주치면 웃는 대신 노려보지? 왜 서울에는 쎈트럴 파크 같은 게 없어? 왜 동네 공원에서는 재즈 공연 같은 걸 안 해? 왜 서울에는 스트랜드 같은 헌책방이 없어? 왜? 왜 서울은 이렇게 후진 거야? 그야 한국인들은 아무도 그런 데 관심이 없으니까. 뉴욕에선 말이야.
119p

물론 케이가 지극히 평범한 인간이라는 것은 너무나도 확실한 사실이었다. 물론 평범한 인간에게도 미덕은 있다. 그를 통해 그가 속한 시대의 리얼리티를 이해할 수 있다는 점이 그것이다. 그리고 지금 시대 케이를 통해 이해 가능한 리얼리티는 몰락이라는 단어로 요약 가능했다. 이제 막 시작된 몰락기가 시대 전체를 혼란에 빠뜨리고 있었다. 아직 개인들의 정신이 시대의 변화를 따라잡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내용과 형식의 불일치는 만성적 특성이 되었고, 그것이 케이와 같은 평범한 부류가 스스로를 특별하다고 오인하게 된 진짜 원인이었다.
159p

"그게 벌이야."
"네?"
"그게 벌이라고, 순탄하게 사는 거. 가끔씩 엄청 지겨워하면서 바깥 쳐다보면서 아, 나가고 싶다. 근데 나갈 방법은 없고. 아니, 나가기는 무섭고. 그래서 평생 그……."
309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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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들의 탐정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69
하라 료 지음, 권일영 옮김 / 비채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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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작가에 대해서는 실망할 때도 있는데, 하라 료는 변함이 없다.

과작인 편이어서 1988년에 마흔 넘어 데뷔했는데, 지금까지 총 6 작품뿐.

하드보일드 풍 탐정 사와자키가 주인공인 시리즈의 장편들은 다 재미있었는데,

이번에는 단편집 <천사들의 탐정>이다.

수록 작품들은 '000 한 남자'라는 공통의 타이틀을 달고 있다.  

 

가장 인상적인 작품은 '소년이 본 남자'로

극적인 은행강도 사건 사이에, 자식과 부모의 관계 같은 것을 잘 녹여냈다.

'자식을 잃은 남자'도 한국인 음악가가 나와서 배경이 흥미로웠고.

다른 단편들 모두 십대 청소년들이 얽혀 있는데, 그들을 바라보는 사와자키의 시선은 쿨해 보이나 따뜻하다.

사와자키 캐릭터는 움직임이 적고 말도 터프한데, 사람이 간결해서 마음에 든다.

잭 리처와도 비슷한 캐릭터고, 사실 하드보일드 풍이긴 하지만 덜 마초적이고 여성 편력도 없다.

작가가 썰렁한 유머를 치는데 그게 또 엄청 웃긴다.


비채 출판에서 꾸준히 내주고 있는데, 책 디자인은 간결, 험블하다.

얇은 겉표지를 벗겨도 왠지 보람이 없는 속표지. 하지만  

왠지 주인공 캐릭터에 어울리는 껍데기인 듯.

 

 

"범인이 아니란 게 확실하다니요?"
"내가 청소년 선도위원으로 십사 년을 일했습니다. 그런 건 아이들과 오래 어울려 지내면 알 수 있게 되죠."
"호오...... 오래 어울려 지내면 알 수 없다는 걸 알게 되는 줄 알았는데요."
285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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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환자에 대한 이야기, 아만자.

따뜻하고 간결한 그림과 문장으로 26세에 암에 걸린 남자를 그려내고 있다.

암에 걸린다는 것은 요즘 평범해졌지만, 젊음-이라 더 힘겨운.

읽다보면 먹먹해지고. 그러면서도 슬퍼지는 게 아니라 위로받는 느낌이 든다.

어루만져주는 듯한. 작가의 내공이 보통 아니다.

문학만이 문학이 아니고, 만화도 문학과의 경계선 상에 있음을 알게 하는 작품이다.

 

김보통 작가가 올레웹툰 포털에 연재했던 것을 예담에서 책으로 냈는데 5권 완결이다.

이 데뷔작으로 '2014 오늘의 우리만화상'을 수상했다.

  

 

 

  

 

 

시베리아
만약
나에게 1년이라는 시간이 더 있었더라면,
무엇을 할 수 있었을까.
천사가 나타나
나에게 삶을 정리할 시간을 준다면,
떠날 것이다.
시베리아로.
가족과 여자친구에겐 미안하지만, 어떤 말도 없이 떠날 것이다.
그리고 평야가 보이는 곳에 방을 하나 빌려 지내고 싶다.
날씨가 춥기 때문에 아마 내내 보드카로 몸을 덥혀야 할 테지.
그렇게 술에 취한 채 매일매일 질리도록 시베리아 평원을 바라보고 싶다.

"안녕. 뭐 하니?"
"죽고 있어."
"나도 그래."
"모두가 그렇지."

"아냐, 이바노프. 난 진짜 내년에 죽어."
"부탁 하나 들어줄래?"
"뭐?"
"내 마누라도 데려가."
"난 지옥에 가려는 게 아냐."

그렇게 하루하루를 보내다
364일째 밤.
길을 떠날 것이다.
눈 덮인 평야를 향해 걷고 또 걸어,
어느 누구도 나를 찾을 수 없는 곳으로.
시베리아의 겨울은 길고, 눈은 끝없이 내릴 테니
그 어딘가에 쓰러져 죽더라도
내 몸은 눈에 덮여 찾을 수 없을 것이고,
그렇게 나는 죽지 않은 게 될 것이다.
천하의 불효자식이자
못된 인간으로 두고두고 기억되겠지만,
그래도 어디선가 제멋대로 살고 있겠거니,
제 잘난 맛에 살고 있겠거니,
살아는 있겠거니,
그렇게 이야기되지 않을까.
할 수만 있다면,
살 수가 없다면,
아무도 모르게 죽고 싶다. 그렇게 해서라도 살아 있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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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6-06-29 12: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가족 중 암환자 분을 옆에서 지켜본 경험을 바탕으로 썼다고 했던 만화가 바로 이거였군요. 벌써 5권까지 나왔네요. 관심은 가는데 베쯔님 말씀하셨듯이 더 나락으로 떨어지는 기분이면 어떡하나, 스스로 보호 차원에서 읽기를 주저해왔어요. 그런데 이 리뷰 읽으니 다시 읽어볼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베쯔 2016-06-29 13:50   좋아요 0 | URL
네..저도 절친 중에 암으로 세상을 떠난 친구가 있어서 이 책을 사고도 한참 손에 들지 못하겠더라구요. 하지만 읽어보니 리얼하지만 담담하고, 몽환적인 이야기가 섞여 있어서 오히려 큰 위로를 받았답니다.
 
시바 아저씨
네코마키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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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작가의 <시바 아저씨>는 개가 주인공이다.

40대 이상 결혼한 남자들은 개가 된다는 설정이다. 가족을 위해 일만 하는 묵묵한 희생을 빗댄 코믹물이다.

짠하고 웃긴다. 요즘 꼰대라는 말도 유행인데, 40대 남자는 정말 이리저리 치이고 갈 곳이 없는 건가.

<고양이와 할아버지>와 같이 읽었는데, 그림체는 두 작품이 좀 차이가 난다.

부부가 같이 그리는 만화라서 그런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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