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이 없는 달 - 환색에도력 미야베 월드 2막
미야베 미유키 지음, 이규원 옮김 / 북스피어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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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야베 미유키의 에도시대 배경 소설 <신이 없는 달>은 평범한 사람들이 사계절을 배경으로 살아가는 12가지 이야기를 담았다. 

가난하고, 집에서 맞고 자라다가 어린 시절부터 상점가에 팔려가 생활하거나, 날품팔이로 근근이 살아가지만 가족을 위하는 그런 사람들. 

배경만 에도시대로 바뀌었지, 원래 작가가 그려내는 대상 자체는 비슷하다. 원래 악인이 아니라, 사회적 환경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나빠지는 사람들에 관심이 많다. 그리고 그들 주변에는 항상 선의를 가진 동료나 가족이 존재한다. 팍팍한 인생이지만 그래도 세상은 살 만하다는 작은 위로들이 쌓여서 따뜻한 느낌을 준다.  

현실적인 소재를 다루지만 간간이 등장하는 환상적인 요소들도 흥미로워서 '기묘한 이야기' 느낌도 난다. 분량이 짧은 단편들이어서 여운이 많이 남는다고 할까, 막 재미있어지려고 하는데 확 끝나버리니까 아쉬움도 남았다. 

가장 인상적인 작품은 비녀세공업자의 안타까운 사연을 그린 '붉은 구슬', 상점가에 팔려간 아이의 애달픈 탈출기와 그림에 얽힌 사연 '목맨 본존님', 신이 없는 달을 기다렸다가 도적질을 행하는 부정을 그린 '신이 없는 달'이다. 

 

"설령 그 대부업자 아들의 성질이 사납지 않았더라도 강도 행각을 계속하다가는 조만간 사람을 찔렀을 겁니다. 그다음에도 뻔하지요. 끝내는 살인하는 단계까지 가 버릴 겁니다. 세상일이라는 게 다 그렇지 않습니까. 강물처럼 모두 흘러가고 있어요. 같은 자리에 멈춰 있질 않아요."
오갓피키는 달력을 쳐다보던 그 눈초리로 주인을 쳐다보았다. 주인장도 달력이나 한가지네, 라고 생각했다. 지나온 햇수만큼 착실하게 나이가 들었어.
272p

하루는 고헤에가 며느리 가요에게 물어보았다. 또래 여자로서 너는 오유키를 어떻게 생각하느냐? 그 여자가 왜 이런 장난을 하는 것 같냐?
그런데 가볍게 물은 고헤에가 놀랐을 만큼 가요는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저는 모르겠습니다. 아버님. 저는 행복하니까요."
가요는 행복이라는 말이 마치 죄스러운 말이라도 되는 양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305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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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벌과 천둥
온다 리쿠 지음, 김선영 옮김 / 현대문학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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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다 리쿠의 오랜만의 장편소설 <꿀벌과 천둥>은 피아노 경연대회를 그린 본격 음악 소설이다. 
무려 700쪽에 달하는 볼륨감 있는 작품인데, 가상의 도시 요시가에를 배경으로 1차 예선, 2차 예선, 3차 예선, 본선 과정을 높은 밀도로 그리고 있다. 
에이덴 아야, 가자마 진, 마사루 카를로스 레비 아나톨, 다카시마 아카시 등이 주요 인물인데, 다들 번득이는 음악성을 지닌 천재들로 그려진다. 하지만 다들 평범하지만은 않은 사연을 보유하고 있다. 천재 소년이 등장하는 파리에서의 예선을 그린 소설의 도입부는 특히 매력적이어서, 빨려들듯이 읽어나갔다. 피아노 경연대회의 모든 곡들을 소개하고 있는데 곡이나 연주에 대한 묘사를 음악이 아닌 '언어'로 수려하게 그려내고 있어서, 그 곡들을 불현듯 찾아 듣고 싶어진다. 유투브를 뒤지면 다 나오니까 몇 곡은 틀어놓고 읽기도 했다. 처음부터 그렇게 음악을 하나하나 들으며 읽었으면 더 좋았을 걸 싶기도 했고. 지금 찾아보니 '꿀벌과 천둥 수록곡 선집'이 CD로 8월 24일 발매된다는 소식! 나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 많았나 보네.

취재를 11년, 집필을 7년간 했다고 하는데 그럴 만하다는. 워낙 뛰어난 천재들 간의 독기 없는, 악인도 없는 경쟁을 다루다보니 뒤로 가면 반전을 기대하게 되는데 그런 건 없다. 그래서인지 뒤로 갈수록 스토리의 힘은 좀 주춤하는 느낌. 만화 <피아노의 숲>을 워낙 좋아하는데 둘을 비교해서 읽는 것도 흥미롭다. 
2017년 156회 나오키상, 일본서점대상을 동시에 수상해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온다 리쿠가 추리, 미스테리 쪽에 특화된 작가기는 한데 청소년들의 걷기를 담담하게 <밤의 피크닉>이 대중적인 인기를 끈 걸 생각하면, 이번 작품이 가장 대중적으로는 인기를 끌 수 있지 않을까 추측해 본다. 음악이라는 소재와 긴 분량이 장벽일 수도 있지만, 일본에서 서점대상을 받았다는 건 대중적 검증이 됐다는 뜻이니까.  
현대문학사에서 출간되었고, 작가 사인이 인쇄된 손수건을 이벤트 증정품으로 냈다. 

 

 

 


기술이 이 정도로 엇비슷하면 나머지는 어떤 ‘신호‘로 비교할 수밖에 없다. 특출한 재능, 명확한 개성이 있는 아이라면 모르지만 합격선을 가르는 것은 아주 작은 차이의 싸움이 되기 때문이다. ‘신경 쓰이는‘ 아이, ‘마음이 술렁거리는‘ 아이, ‘눈길을 끄는‘ 아이. 망설였을 때, 결국에는 언어로 설명할 수 없는 그런 불확실한 감각에 의존하는 게 현실이다. 콩쿠르에서 미에코는 자기가 순순히 ‘더 들어보고 싶다‘라고 생각하는지를 기준으로 삼는다.
28p

엄마, 홍차는?
그렇게 말하려던 아야는 대기실에 자기 혼자뿐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언제나 진하고 달콤한 홍차를, 체온에 맞춰 보온병에 넣어 건네주는 어머니의 모습이 곁에 없었다.
아야는 동요했다.
발밑이 쑥 꺼지는 듯한 거대한 상실감이 그녀를 덮쳤다.
58p

연구 결과 ‘낭만적인‘ 소리는 다분히 여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빈약한 소리, 힘겨운 소리로는 안 된다. 갓 말린 보드라운 이불처럼 폭신폭신하면서 촉촉한 물기를 머금고 있어야 한다. 실로 연인들의 촉촉하게 젖은 눈망울처럼 ‘물기‘가 필요하다. 하지만 그 ‘물기‘를 표현하려면 상당한 여유가 있어야 한다.
군더더기 소리를 내지 않으려면 근력이 필요하다.(중략) 낭만적인 소리를 내려면 강인한 파워가 필요하다.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그것은 곧 ‘어른‘이라는 존재가 갖춰야 할 요건이기도 하다.
마사루는 그런 생각을 했다.
더 강해져야 해.
467p

"음. 꽃꽂이는 음악하고 비슷하네요."
"그래?"
진이 가위를 다다미 위에 가만히 내려놓고 팔짱을 꼈다.
"재현성이라는 점에서 꽃꽂이하고 똑같이 찰나에 지나지 않아요. 이 세상에 계속 붙잡아놓을 수는 없죠. 언제나 그 순간뿐, 금방 사라지고 말아요. 하지만 그 순간은 영원하고, 재현하고 있을 때는 영원한 순간을 살아갈 수 있죠."
진은 도가시가 꽂운 가지 끝을 바라보았다.
500p

일렁거리는 시간의 흐름 밑에 가라앉은 고독, 평소에는 못 본 척하는 고독, 느낄 새도 없는 일상생활 이면에 찰싹 들러붙어 있는 고독, 아무리 다들 부러워하는 행복의 정점에 있어도, 충실한 인생을 보내고 있어도, 역시 모든 행복은 언제나 인간이라는 존재의 고독을 등에 업고 있다.
깊이 생각해서는 안 된다. 일단 깨닫게 되면 절망밖에 없다. 자기의 약한 부분을 보게 된다. 그런 생각으로 피해왔던 근원적인 ‘고독‘을.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노래하지 않을 수 없다. 이 고독을, 찰나를, 생물이 지나온 기나긴 세월로 보면 한순간에 지나지 않는 인생의 행복과 불행을.
561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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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드 오브 왓치 빌 호지스 3부작
스티븐 킹 지음, 이은선 옮김 / 황금가지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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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여름 나온 스티븐 킹의 <엔드 오브 왓치>는 은퇴한 형사 빌 호지스 시리즈 완결편이다. 호러물이 아닌 본격 추리물에 도전하여 화제를 모은 <미스터 메르세데스>, <파인더스 키퍼스>에 이은 마지막 편. 
메르세데스를 끌고 많은 사람을 사살했던 악당 브래디와의 대결이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병실에 누워 의식이 없는 브래디가 과연 어떻게 남은 악을 쥐어짜내 사람들을 괴롭힐까. 컴퓨터게임 중독 문제를 담기도 했는데, 스마트폰 불안증이 커지는 요즘 시사하는 바가 크긴 하다. 스토리의 힘이나 재미는 개인적으로는 조금 떨어진다고 느꼈다. 악당과의 대결, 그 결말이 뻔하달까. 사람 머릿속으로 들어가는 이야기는 스티븐 킹의 특기여서 기시감도 좀 들었고. 
시리즈 세 편 중 압권은 <파인더스 키퍼스>다. 강추함. 각각 따로 읽어도 전혀 지장 없는 이야기인데, <미스터 메르세데스>와 <엔드 오브 왓치>의 연관성이 좀더 짙다.

 

 

 

 




됐다. zeetheened는 금상첨화에 불과하다. 그가 유포한 재핏이 많지는 않았지만 십 대는 무리를 지어서 다니는 종족이고, 무리를 지어서 다니는 종족들은 정신적, 정서적으로 발을 맞추어 걷는다. 물고기와 벌 들이 떼를 지어 움직이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제비들이 해마다 카피스트라노로 돌아오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인간에 대입하자면 미식축구와 야구 경기장에서 ‘파도타기‘를 하는 이유, 군중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그 안에 개인이 매몰되는 이유가 그 때문이다. 십 대 남자아이들은 무리에서 배제되지 않으려고 남들과 똑같이 헐렁한 반바지를 입고 남들과 똑같이 꾀죄죄한 얼굴로 다닌다. 십 대 여자아이들은 똑같은 스타일의 원피스를 입고 똑같은 그룹에 열광한다.

365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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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차의 시간
야마다 우타코 글.그림, 강소정 옮김 / 애니북스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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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홍차 브랜드 카렐 차펙의 창업자이자 일러스트레이터인 야마다 우타코의 <홍차의 시간>은 티와 티푸드 레시피를 담은 책. 카렐 차펙 브랜드가 인기를 얻게 된 이유가 홍차의 맛이나 품질에만 있는 게 아니라, 매년 새롭게 바뀌는 티캔의 패키지, 귀여운 바찌 캐릭터 다구들 때문인데. 이 책도 야마다 우타코의 일러스트가 가득 들어있어 눈이 즐겁다.
홍차에 관심이 없거나 지식, 보편적인 레시피 책을 찾는다면 이 책의 장점을 찾기 어려울지도. 어디까지 귀염귀염한 책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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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코, 여신의 영원
시바타 요시키 지음, 박춘상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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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바타 요시키의 <리코, 영원의 여신>을 읽었다. 신주쿠의 여형사 리코는 잔인한 살해 장면이 묘사된 비디오테이프를 입수한다. 그녀를 둘러싼 남자 형사들과의 강렬한(?!) 연애와 사건 해결 과정이 펼쳐진다. 나름 재미있었고 데뷔작으로서의 매력은 있지만, 전체적인 완성도를 놓고 보면 글쎄다. 여주인공을 수동적으로 묘사하고 대상화하는 점이, 같은 하드보일드라도 훨씬 주체적이고 강렬하게 묘사되는 기리노 나쓰오 작가의 무라노 미로 시리즈와 비교된다.  
작가의 <성스러운 검은 밤>, <고양이 탐정 쇼타로> 등을 재미있게 읽었던 터라 하드보일드 풍의 데뷔작이 어떨지 궁금했다. 국내에서는 2014년 발간되었는데, 원래 1995년 작품이라서 20년 이상의 간극이 있다. 거기서 오는 약간 멜랑꼴리한 정서의 느낌, 오버하는 분위기도 좀 아쉬웠다. 재정가로 5천원에 구입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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