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의 증명
도진기 지음 / 비채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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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직판사 출신 추리소설가로 유명한 도진기의 작품은 크게 두 가지 계열로 갈린다. 메마른 감정의 백수 탐정 진구, 그리고 어둠의 변호사 고진 시리즈.
<악마의 증명>에 나오는 단편은 진구나 고진이 나오지 않는, 데뷔작, 미발표작들로 구성된다. 그래서 흥미롭기는 했는데 지난 단편선인 <순서의 문제>가 너무 뛰어나서 빛이 좀 바랜 느낌. 단편 중에서는 '악마의 증명', '선택', '킬러퀸의 킬러'가 재미있었다. 수록작은 다음과 같다.
악마의 증명: 법대생 박철의 범죄를 호연정검사는 증명할 수 있을까
정글의 꿈: 병원에서 시한부 인생을 사는 남자의 조각품에는 비밀이..
선택: 호연정검사는 변호사 개업을 하고 자동차 사고로 딸과 같이 죽은 엄마 사건을 맡게 된다. 
외딴집에서: 살인마를 추적하던 탐정이 그 집에 들어가는데.. 추리와 호러의 경계에 선 작품
구석의 노인: 법정에서 미소를 띄고 앉아있는 할머니의 정체는?
시간의 뫼비우스: 기차 안에서 옆 승객에게 여러 번의 인생을 산다고 고백하는 남자. 자전적 성격이 짙다고 하는데 재미는 떨어짐.
킬러퀸의 킬러: 어떤 신문기자가 피살당하는데 피터최는 누구인가.
죽음이 갈라놓을 때: 소심한 남자와 상남자 같은 친구. 그 둘 사이에 매력적인 여성이 끼어든다. 

긴 인생이었으나 즐거운 때가 없지는 않았다. 눈을 떠보니 76세였다. 왜 지금이 16세도 아니고, 26세도 아니고 76세인지, 한스럽지만 엄연히 바꿀 수 없는 현실이었다. 자신이 해온 것은 생활이 아니라 생존이었다. 어제 살았기 때문에 오늘도 살았다. 습관이었다. 시시한 청춘이고, 인생이었다.
-<악마의 증명>, ‘정글의 꿈‘, 56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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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의 탄생 진구 시리즈 3
도진기 지음 / 시공사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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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진기 작가의 책 두 권을 몰아 읽었다. 2017년에 비채에서 나온 단편집 <악마의 증명>, 그리고 2015년에 시공사에 나온 장편 <가족의 탄생>. 발표 작품만 10권 정도가 될 정도로 활발히 활동하는 도진기작가는, 작품에 집중하기 위해 얼마 전 판사에서 변호사로 전직했다고 한다.
<가족의 탄생>은 작가의 두 가지 다른 시리즈의 주인공, 탐정 진구와 고진 변호사가 같은 사건을 두고 본격적으로 조우한다는 점에서 기대되었다. 한 가족의 유산 상속 문제를 치밀하고 집요하게 물고 늘어진다. 증명과 반전의 연속이랄까. 작품성 측면에서는 아쉬움이 많았다. 좀 가족 막장 드라마 풍이랄까. 하지만 액자식 구성으로 앞뒤를 장식하는 진구와 이탁오박사의 에피소드는 흥미롭다. <유다의 별> 같은 작품을 또 한번 기대해본다.

 

후훗, 진구가 재미있다는 듯이 웃었다.
"운명에 맡겨보는 것도 재미있겠는데. 나라면 알리지 않겠지만 이건 해미의 판단대로 해. 누구의 판단에 따라 어떤 결과가 생기고 어떻게 결론이 달라질지 재밌을 것 같아."
"오빤 사람 사는 걸 홀짝 게임으로 생각하는 거야?"
해미가 진구를 흘겼다.
"남 일이잖아?"
진구는 휘파람을 휘이 불었다.
-<가족의 탄생> 166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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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단장 죽이기 1 - 현현하는 이데아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홍은주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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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의 신작 발표는 문단 안팎에서 큰 이슈다. 국내 판권료 경쟁부터, 작품에 대한 해석까지. 

<1Q84>에 이어 <기사단장 죽이기>도 문학동네에서 가져갔고 10억 정도라고 한다. 그만큼 팔리니까.

소설의 주인공은 아내의 외도로 집을 나온 초상화 전문 화가의 이야기다. 그는 유명한 일본화가의 집에 혼자 살게 되고, 멘시키라는 불가사의한 이웃을 만나고, 새로운 스타일의 그림을 시도하고, 멘시키가 딸이라고 여기는 중학생 여자애의 초상을 그리면서, 비현실적인 여러 상황에 놓이게 된다. 이런 류의 환상문학은 하루키의 전문 분야다. <댄스 댄스 댄스>부터 <1Q84>까지, 작가는 정교한 환상 세계를 창조해낸 후 독자를 초대한다. 그러한 세계를 엿보는 것만으로도 독자는 '지금 내가 살고 있는 현실'을 뛰어넘는 경험을 하는 듯한 기분 좋은 착각에 빠지게 된다. <기사단장 죽이기>라는 소설 제목과 같은, 극 중 그림 제목인 '기사단장 죽이기'에서 실체로 현현한 '이데아'와 '메타포'에 대해 작가가 어떤 메시지를 전하려고 하는지 해석하는, 가볍게 두뇌를 쓰면서 독서하는 즐거움도 더해진다. 주인공은 와인과 커피와 홍차를 마시며 클래식 음악을 들으며 폼잡는데(삐딱하게 보면), 그런 부분까지도 참 하루키답다고 할 수 있다. 

이번 소설은 북아사히의 '이것이 하루키다!라고 말할 수 있는 요소가 다 들어 있다'라는 평으로 압축할 수 있다. 환상과 경계를 넘나들기, 어디에도 흔들림 없는 남자 주인공(평범을 가장한 비범한), 여자들과의 섹스 등등.

어떤 작가도 무라카미 하루키를 대체할 수 없다-는 것이 진정한 하루키 문학의 힘 아닐까. 이번 책을 읽으면서는 특히 그런 생각이 많이 들었다. 

 

북케이스, 비하인드북 두 개의 사은품은 소액의 포인트를 내고 구매 가능. 

1, 2권을 사면 증정하는 북케이스에 책을 보관할 수 있다. 괜찮은 마케팅.


 

 

 

 

 

그러한 작업에서 중요한 한 가지는 고객에게 조금이라도 친애의 마음을 품는 일이었다. 물론 호감이 가지 않는 사람도 더러 있다. 그러나 제한된 장소에서 일시적인 관계만 맺을 ‘방문객‘이라면, 좋게 볼 자질을 하나둘쯤 발견하기란 그리 어렵지 않다. 깊숙이 들여다보면 어떤 인간이든 저 안쪽에 반짝이는 무언가를 갖고 있기 마련이다. 그것을 잘 찾아내어, 혹시 표면이 뿌옇다면(뿌연 경우가 더 많을지도 모른다) 헝겊으로 말씀히 닦아준다. 그런 마음가짐이 으레 작품에 배어나오기 때문이다.
1권. 27p

단출한 짐을 자동차 트렁크에 실어두고 부엌으로 돌아와 주전자에 물을 끓였다. 홍차 티백을 우려 식탁에 앉아 마셨다. 이 정도는 해도 상관없으리라.
1권, 63p

그런 새로운 환경에 놓이니 뭔가를 그리고 싶다는 마음이 절로 솟아났다. 그것은 소리 없는 욱신거림과 비슷했다. 그리고 지금 나에게는 나를 위해 쓸 수 있는 시간이 거의 무제한으로 주어져 있다. 생계를 위해 내키지 않는 그림을 그릴 필요도 없고, 퇴근하고 돌아올 아내를 위해 식사를 준비할 의무도 없다. 그뿐 아니라 원한다면 식사 따위는 하지 않고 마음대로 굶을 권리도 있다.
1권. 77p

"호기심은 언제나 리스크를 동반합니다. 리스크를 전혀 수용하지 않고 호기심을 충족시키기란 불가능하지요. 호기심이 죽이는 건 고양이만이 아닙니다."
1권. 322p

커피가 나와서 잔을 들어 마셨다. 커피 같은 맛이 났지만 그다지 맛있다고는 할 수 없었다. 그래도 어쨌거나 커피였고, 충분히 뜨거웠다.
1권. 353p

발랄라이카는 보드카와 쿠앵트로와 레몬주스를 3분의 1씩 섞어서 만드는 칵테일이다. 과정은 심픓지만 북극지방처럼 쨍하게 차갑지 않으면 맛이 제대로 나지 않는다. 어설픈 솜씨로는 미지근하고 밍밍하기 일쑤다. 그러나 그 발랄라이카는 놀라울 정도로 맛있었다. 거의 완벽에 가깝게 예리한 맛이 났다. (중략) 물론이다, 라고 나는 생각했다. 당연히 멘시키가 솜씨 나쁜 바텐더를 데려왔을 리 없다, 쿠앵트로를 준비하지 않을 리도, 앤티크 크리스탈 칵테일과 고이마리 접시를 갖추지 않을 리도 없다.
1권. 429p

나이가 몇이든 모든 여자에게 모든 나이는 곧 미묘한 나이다. 마흔한 살이든 열세 살이든 그녀들은 언제나 미묘한 나이에 놓여 있는 것이다. 그것이 지금까지 여성에 대한 소소한 경험을 통해 내가 얻은 교훈 중 하나였다.
2권. 82p

"하지만 일단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한 남녀의 관계를 멈추기란 그리 간단하지 않아." 하고 내가 말했다.
정말로 간단하지 않다고 나는 속으로 말했다. 그것은 힌두교 교회에서 말하는 거대한 수레바퀴처럼, 온갖 것을 숙명적으로 짓밟으며 오로지 앞으로 나아가기만 한다. 뒤로 물러나는 법은 없다.
2권. 231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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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코 2017-08-12 12: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얼마전에 기사단장 죽이기를 샀는데 아직 읽어보진 못했어요. 사실 하루키에 관심이 적어서 더 그런 것 같아요. 베쯔님 리뷰 덕분에 이 책 당장 읽고 싶네요. 다행히 제 옆에 책이 바로 있어서 좋습니다. ㅎㅎ

좋은 글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베쯔 2017-08-12 14:26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저는 20여 년간 하루키를 읽어왔지만 늘 변화하면서 새로운 작품을 써내는 그의 작품세계가 참 좋아요.
재미있게 읽으시길 바래요^^!
 
희망장 행복한 탐정 시리즈 4
미야베 미유키 지음, 김소연 옮김 / 북스피어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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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야베 미유키의 스기무라 탐정 시리즈, <이름 없는 독>, <누군가>, <십자가와 반지의 초상>에 이어지는 신작 <희망장>은 
평범한 남편이자 편집자였던 스기무라가, 탐정사무소를 차리게 되는 전환점이 나오고 그 이후에 맡게 된 사건들을 다룬 단편집이다. 
특별한 사건이 없을 것 같은 주변의 평범한 이웃들의 사건을 다루면서 그 안에서 사람의 인간성, 심리, 관계에 대한 통찰이 들어 있다.
악인이 없고 '그럴 수 밖에 없는' 상황에 내몰리는 심리를 잘 그려내서, 꼭 주변에 이런 일들이 있을 것만 같은.
그리고, 무엇보다 재미있다. 과연 '플롯의 여왕'이라 할 만하다. 본격 탐정이 된 스기무라의 행보가 기대된다. 

성역 : 탐정사무소를 차린 스기무라가 처음 맡은 사건. 갑자기 부자가 된 할머니와 중년의 딸, 그 사연은 무엇인가. 
희망장 : 요양원의 할아버지는 무슨 사건을 저질렀을까. 죽으면서 남겨진 의혹. 
모래 남자 : 메밀국숫집을 운영하는 부부. 갑작스러운 살인사건은 왜 일어났을까 
도플갱어 : 한 남자가 사라진다. 동일본 대지진 사태와 관계가 있을까.  

 

 

"간지 씨는 이제 없어. 그러니까 너는 앞으로 육십 년쯤 걸려서 간지 씨 같은 할아버지가 되면 돼."
미키오는 입을 시옷자로 구부렸다. 꽤 오랫동안 그러고 있더니, "무리예요"라고 말했다. "할아버지는 할아버지 한 분뿐이에요."
이 말은 착실하게 평생을 일해 온 서민에게 바치는, 최고의 묘비명일 것이다.
-희망장. 208p

"그는 자기를 잘못 평가하고 있었어요. 제대로 된 인간이었던 거예요. 제대로 되어 있었기 때문에 견딜 수 없었던 거죠."
‘이오리‘의 주인이었던 남자, 맛있는 메밀국수를 만들고, 아내를 사랑하고, 산속을 걸어 다니며 사진 찍는 것을 좋아하는, 온화하고 다정했던 남자.
-모래 남자. 362p

"나는 아무것도 못 들은 걸로 할게요, 도련님" 하고 나카무라 점장은 말했다. "그러니까 와인보다 센 술 좀 내놔 봐요."
본래는 와인 잔으로 마시는 술이 아닌 그라파(포도 찌꺼기를 발효한 뒤 증류해서 만든 이탈리아 브랜디)를 벌컥벌컥 마셨고 새벽에는 술에 취해 소파에서 잠들고 말았다.
-모래 남자. 364p

"명함에는 ‘스기무라 탐정 사무소‘라고 박아요."
이것은 아사미의 어드바이스가 아니라 명령이었다.
"‘조사 사무소‘라니, 결심이 안 선 거 같아서 멋없어요. 삼촌은 사립탐정이 되는 거니까 탐정이라고 하세요."
그래서 나는 그렇게 했다.
-모래 남자. 369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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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드 오브 왓치 빌 호지스 3부작
스티븐 킹 지음, 이은선 옮김 / 황금가지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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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에 맞춰 나온 건가요. 넘나 좋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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