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깨너머의 연인 - 제126회 나오키상 수상작
유이카와 게이 지음, 김난주 옮김 / 예문사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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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어릴 때부터 베프인 두 친구,
독립적이고 사회생활을 하는 모에와
여자임을 최고의 무기로 내세우면서
서른이 되기 전에 세 번의 결혼을 하는 루리코.
그 둘의 사랑 이야기를 그린
유이카와 케이 <어깨 너머의 연인>은
마치 일본드라를 보는 느낌으로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연애와 남자 문제로 방황하는 모에와 루리코,
그 사이에 끼어든 고등학생 다카시가
잠시나마 한 집에서 재미있게 사는 모습은
결혼과 가족만이 답일까, 생각하게 한다.

문장과 문장 사이, 탄성이 느껴진달까.
2002년에 발간된 걸 2014년에 펴냈는데도
나름대로 트렌디하다.

표지를 벗기면 루리코처럼
화사한 속표지가 기다린다.
캐릭터 성이 돋보이는 그런 작품이었다.

 

하지만 이런 여자가 결국 인생을 재미나게 보낸다는 것도 알고 있다.
이런 여자는 즉, 자기란 무엇일까, 그런 의문을 품지 않는 여자다.
대체 얼마나 많은 남자들에게 혼이 나 봐야 루리코는 배울 수 있을까.
42, 45p

가능하면 나는 남들이
"저 녀석 바보 아니야?"라고 말하는
그런 인생을 살고 싶어요.
89p

사실은 모두들 알고 있다.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관철하는 쪽이 참는 것보다 훨씬 어렵다는 것을.
그래서 모두들 참는 쪽을 택한다.
분별력 있는 여자가 제일 골치 아프다.
마음 속 가득한 인내에 불만을 품고 있으면서도 ‘인내를 대신해 얻을 수 있는 것‘에 대해서만 생각한다.
루리코는 늘 자신에게 맹세한다. 아무리 신세가 처량해지더라도 인내심 많은 여자만큼은 절대로 되지 않겠다고.
98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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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이런 가족
전아리 지음 / 다산책방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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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의 끝자락, 책이 잘 안 읽혀서 가벼운 책을 골랐다. 전아리 <어쩌다 이런 가족>은 막장 드라마 컨셉으로 홍보하고 있는데 딱 그만큼이고 드라마보다 재미는 덜하다.
부잣집 두 딸이 있는데 모든 면에서 완벽한 장녀와 그에 못 미치는 막내딸, 그런데 그 장녀가 남자 관련해서 사고를 쳐도 크게 친다. 전형적인 칙릿 소설로 출발하여 기대를 가졌는데, 애매한 스릴러와 감상적인 로맨스를 섞어 놓아 이도저도 아닌 느낌. 부모의 이야기도 골고루 다루는데 어떤 인물에게도 감정이입이 어려웠다.
전아리 작가의 책은 처음 읽는데 가장 아쉬운 건 문장력, 이해 안 되는 비문이 많다.
비슷한 컨셉 계로 심윤경 작가의 <사랑이 달리다>가 훨씬 재미있고 작품성도 있었단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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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겁게 살자, 고민하지 말고
에쿠니 가오리 지음, 김난주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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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쿠니 가오리의 소설은 다 챙겨 읽는 편인데, 이 책은 2016년 6월에 나왔고 나는 그걸 이제 알았다. 그러면서 읽을 책이 하나 더 생긴 것을 럭키-라고 생각했다.

제목이 참 멋없다고 생각했는데, 내용은 이와 달리 슬프고 먹먹하고 꽉 차 있다. 

각기 다른 라이프스타일을 지닌 세 자매의 이야기인데, 첫째 아사코는 전업주부, 둘째 하루코는 워킹걸, 셋째 이쿠코는 프리터족에 가깝게 묘사된다. 평화로와 보이는 일상과 달리 남편과의 문제를 껴안고있기도 하고, 남자친구와의 동거와 갈등, 나이 많은 아저씨들과의 지나치게 자유로운 교류와 그를 넘어서는 성장 등이 그려진다. 가정폭력 문제를 다루고 있기도 한데 당사자가 그 문제에서 빠져나올 수 없는 상황을 너무나 잘 그려, 숨이 잘 안 쉬어지기도 한다. 모든 주인공이 관계에서 상처를 입지만, 그들에게는 자매들이 서로에게 줄 수 있는 위안이 있다. 술 한잔 나누면서 쉬어갈 지점이 있다.  

음식과 술을 묘사할 때 에쿠니 가오리는 진정 그것을 즐겨본 사람만이 쓸 수 있는, 섬세하고 여성적인 관점이 살아있게 장면을 잘 그려낸다. 

이 책은 무척 사랑스럽고, 또 문제적인 책이다. 보석상자에 고이 넣어두고 잠가놓고 싶을 만큼, 반짝인다.  

 

여행을 좋아하고 월급도 꽤 세지만, 유럽이나 미국을 희희낙락 돌아다니는 것은, 또는 인도나 중국으로 떠나는 것은 왠지 창피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술집 카운터에서 우연히 옆자리에 앉았을 때, 하루코는 구마키를 착해 보이는 남자라고 생각했다. 어느 정도 착한 남자인지 확인해보고 싶었다.
확인해보고 싶다.
하루코의 연애는 늘 그렇게 시작된다.
10p

구마키는 낭만주의자다, 하고 하루코는 생각한다. 남녀 관계도 이 사람이 문제 삼으면 무척 낭만적인 것이 된다. 옆구리에 서류를 끼고 한 손에는 소주 칵테일 잔, 다른 손에는 전자계산기를 들고 하루코는 부엌으로 물러난다. 구마키가 들어와 같이 살면서 부엌이 하루코의 작업실이 됐다.
낭만주의자니까 삼십 대 후반의 나이에 수입이 없어도 견딜 수 있는 것이고, 낭만주의자라서 결혼하자는 말도 할 수 있는 것이다.
40p

하루코는 조그맣게 한숨을 내쉰다. 그러다가, 하지만, 하고 생각하면서 씩 미소짓는다. 하지만, 적어도 내게는 할 일이 있고, 살라미 껍질을 벗겨주는 남자도 있다.
42p

아사코는 남편에게 보이고 싶지 않은 것은 모두 부엌에 둔다.
모든 것이 멀게 느껴졌다. 이쿠코도, 다달이 생일을 축하하는 자기 가족의 기묘한 습관도, 축하받은 자신조차도.
55p

세 자매가 모두 모인 날은 1월 2일뿐이었지만, 그날은 밤늦게까지 먹고 마시면서 수다를 떨었다. 아사코를 제외한 여자 셋이서 끝없이 마셨다. 아침부터 정종을 마셨다. 엄마가 좋아해서 일부러 주문한 향로라는 술인데 깔끔하고 시원한 맛에 그만 과하게 마셨다. 그래서 목이 마르다면서 이번에는 또 맥주를 마셔댔다. 저녁때에는 고기를 구워 와인을 마셨고, 밤늦게는 역시 엄마의 비장의 술 그라파를 예쁜 잔에 따라 몇 잔이나 마셨다.
90p

"나, 빵을 너무 많이 산 것 같아. 형부는 밥을 좋아하는데, 빵은 안 먹거든."
하루코는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무슨 소리야, 언니가 먹으면 되잖아."
게다가, 하고 아사코는 마음속으로 말을 이었다. 길거리에서 음식을 먹는 행위도 구니카즈는 싫어할 게 뻔하다고.
"그만 가봐야겠어."
아사코가 말하자 하루코는 입을 쩍 벌렸다.
"농담이지?"
결국 하루코와 쇼핑을 한 것은 그날이 마지막이 되었다. 지하철 입구에서 헤어지면서 "즐거웠어" 하고 말했을 때, 결정적으로 무언가가 변했다.
옷이며 화장품을 사는 것이 뭐가 그리 즐거웠는지 아사코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이제 곧 구니카즈가 돌아온다.
중요한 것은 그 사실뿐이었다.
99p

아사코는 자신이 무슨 일이든 빈틈없이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중요했다. 언제 누가 봐도 아무 문제없을 정도로, 가 아니라 언제 누가 봐도 좋을 만큼 자랑스럽고 안심할 수 있게. 실제로는 아무도 보고 있지 않지만.
191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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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이 없는 달 - 환색에도력 미야베 월드 2막
미야베 미유키 지음, 이규원 옮김 / 북스피어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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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야베 미유키의 에도시대 배경 소설 <신이 없는 달>은 평범한 사람들이 사계절을 배경으로 살아가는 12가지 이야기를 담았다. 

가난하고, 집에서 맞고 자라다가 어린 시절부터 상점가에 팔려가 생활하거나, 날품팔이로 근근이 살아가지만 가족을 위하는 그런 사람들. 

배경만 에도시대로 바뀌었지, 원래 작가가 그려내는 대상 자체는 비슷하다. 원래 악인이 아니라, 사회적 환경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나빠지는 사람들에 관심이 많다. 그리고 그들 주변에는 항상 선의를 가진 동료나 가족이 존재한다. 팍팍한 인생이지만 그래도 세상은 살 만하다는 작은 위로들이 쌓여서 따뜻한 느낌을 준다.  

현실적인 소재를 다루지만 간간이 등장하는 환상적인 요소들도 흥미로워서 '기묘한 이야기' 느낌도 난다. 분량이 짧은 단편들이어서 여운이 많이 남는다고 할까, 막 재미있어지려고 하는데 확 끝나버리니까 아쉬움도 남았다. 

가장 인상적인 작품은 비녀세공업자의 안타까운 사연을 그린 '붉은 구슬', 상점가에 팔려간 아이의 애달픈 탈출기와 그림에 얽힌 사연 '목맨 본존님', 신이 없는 달을 기다렸다가 도적질을 행하는 부정을 그린 '신이 없는 달'이다. 

 

"설령 그 대부업자 아들의 성질이 사납지 않았더라도 강도 행각을 계속하다가는 조만간 사람을 찔렀을 겁니다. 그다음에도 뻔하지요. 끝내는 살인하는 단계까지 가 버릴 겁니다. 세상일이라는 게 다 그렇지 않습니까. 강물처럼 모두 흘러가고 있어요. 같은 자리에 멈춰 있질 않아요."
오갓피키는 달력을 쳐다보던 그 눈초리로 주인을 쳐다보았다. 주인장도 달력이나 한가지네, 라고 생각했다. 지나온 햇수만큼 착실하게 나이가 들었어.
272p

하루는 고헤에가 며느리 가요에게 물어보았다. 또래 여자로서 너는 오유키를 어떻게 생각하느냐? 그 여자가 왜 이런 장난을 하는 것 같냐?
그런데 가볍게 물은 고헤에가 놀랐을 만큼 가요는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저는 모르겠습니다. 아버님. 저는 행복하니까요."
가요는 행복이라는 말이 마치 죄스러운 말이라도 되는 양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305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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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벌과 천둥
온다 리쿠 지음, 김선영 옮김 / 현대문학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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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다 리쿠의 오랜만의 장편소설 <꿀벌과 천둥>은 피아노 경연대회를 그린 본격 음악 소설이다. 
무려 700쪽에 달하는 볼륨감 있는 작품인데, 가상의 도시 요시가에를 배경으로 1차 예선, 2차 예선, 3차 예선, 본선 과정을 높은 밀도로 그리고 있다. 
에이덴 아야, 가자마 진, 마사루 카를로스 레비 아나톨, 다카시마 아카시 등이 주요 인물인데, 다들 번득이는 음악성을 지닌 천재들로 그려진다. 하지만 다들 평범하지만은 않은 사연을 보유하고 있다. 천재 소년이 등장하는 파리에서의 예선을 그린 소설의 도입부는 특히 매력적이어서, 빨려들듯이 읽어나갔다. 피아노 경연대회의 모든 곡들을 소개하고 있는데 곡이나 연주에 대한 묘사를 음악이 아닌 '언어'로 수려하게 그려내고 있어서, 그 곡들을 불현듯 찾아 듣고 싶어진다. 유투브를 뒤지면 다 나오니까 몇 곡은 틀어놓고 읽기도 했다. 처음부터 그렇게 음악을 하나하나 들으며 읽었으면 더 좋았을 걸 싶기도 했고. 지금 찾아보니 '꿀벌과 천둥 수록곡 선집'이 CD로 8월 24일 발매된다는 소식! 나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 많았나 보네.

취재를 11년, 집필을 7년간 했다고 하는데 그럴 만하다는. 워낙 뛰어난 천재들 간의 독기 없는, 악인도 없는 경쟁을 다루다보니 뒤로 가면 반전을 기대하게 되는데 그런 건 없다. 그래서인지 뒤로 갈수록 스토리의 힘은 좀 주춤하는 느낌. 만화 <피아노의 숲>을 워낙 좋아하는데 둘을 비교해서 읽는 것도 흥미롭다. 
2017년 156회 나오키상, 일본서점대상을 동시에 수상해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온다 리쿠가 추리, 미스테리 쪽에 특화된 작가기는 한데 청소년들의 걷기를 담담하게 <밤의 피크닉>이 대중적인 인기를 끈 걸 생각하면, 이번 작품이 가장 대중적으로는 인기를 끌 수 있지 않을까 추측해 본다. 음악이라는 소재와 긴 분량이 장벽일 수도 있지만, 일본에서 서점대상을 받았다는 건 대중적 검증이 됐다는 뜻이니까.  
현대문학사에서 출간되었고, 작가 사인이 인쇄된 손수건을 이벤트 증정품으로 냈다. 

 

 

 


기술이 이 정도로 엇비슷하면 나머지는 어떤 ‘신호‘로 비교할 수밖에 없다. 특출한 재능, 명확한 개성이 있는 아이라면 모르지만 합격선을 가르는 것은 아주 작은 차이의 싸움이 되기 때문이다. ‘신경 쓰이는‘ 아이, ‘마음이 술렁거리는‘ 아이, ‘눈길을 끄는‘ 아이. 망설였을 때, 결국에는 언어로 설명할 수 없는 그런 불확실한 감각에 의존하는 게 현실이다. 콩쿠르에서 미에코는 자기가 순순히 ‘더 들어보고 싶다‘라고 생각하는지를 기준으로 삼는다.
28p

엄마, 홍차는?
그렇게 말하려던 아야는 대기실에 자기 혼자뿐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언제나 진하고 달콤한 홍차를, 체온에 맞춰 보온병에 넣어 건네주는 어머니의 모습이 곁에 없었다.
아야는 동요했다.
발밑이 쑥 꺼지는 듯한 거대한 상실감이 그녀를 덮쳤다.
58p

연구 결과 ‘낭만적인‘ 소리는 다분히 여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빈약한 소리, 힘겨운 소리로는 안 된다. 갓 말린 보드라운 이불처럼 폭신폭신하면서 촉촉한 물기를 머금고 있어야 한다. 실로 연인들의 촉촉하게 젖은 눈망울처럼 ‘물기‘가 필요하다. 하지만 그 ‘물기‘를 표현하려면 상당한 여유가 있어야 한다.
군더더기 소리를 내지 않으려면 근력이 필요하다.(중략) 낭만적인 소리를 내려면 강인한 파워가 필요하다.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그것은 곧 ‘어른‘이라는 존재가 갖춰야 할 요건이기도 하다.
마사루는 그런 생각을 했다.
더 강해져야 해.
467p

"음. 꽃꽂이는 음악하고 비슷하네요."
"그래?"
진이 가위를 다다미 위에 가만히 내려놓고 팔짱을 꼈다.
"재현성이라는 점에서 꽃꽂이하고 똑같이 찰나에 지나지 않아요. 이 세상에 계속 붙잡아놓을 수는 없죠. 언제나 그 순간뿐, 금방 사라지고 말아요. 하지만 그 순간은 영원하고, 재현하고 있을 때는 영원한 순간을 살아갈 수 있죠."
진은 도가시가 꽂운 가지 끝을 바라보았다.
500p

일렁거리는 시간의 흐름 밑에 가라앉은 고독, 평소에는 못 본 척하는 고독, 느낄 새도 없는 일상생활 이면에 찰싹 들러붙어 있는 고독, 아무리 다들 부러워하는 행복의 정점에 있어도, 충실한 인생을 보내고 있어도, 역시 모든 행복은 언제나 인간이라는 존재의 고독을 등에 업고 있다.
깊이 생각해서는 안 된다. 일단 깨닫게 되면 절망밖에 없다. 자기의 약한 부분을 보게 된다. 그런 생각으로 피해왔던 근원적인 ‘고독‘을.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노래하지 않을 수 없다. 이 고독을, 찰나를, 생물이 지나온 기나긴 세월로 보면 한순간에 지나지 않는 인생의 행복과 불행을.
561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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