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다이아몬드 스타 2
세츠오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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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에 사는 평범한 남학생 타쿠마는 어느 날 5인조 남성 아이돌 그룹 'Sparks!'의 영상을 보고 멤버 케이에게 덕통 사고를 당한다. 그러던 어느 날 타쿠마는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된다. 얼마 전 건강 상의 이유로 활동 중지를 선언한 케이가 타쿠마의 옆집에 살게 된 것이다. 알고 보니 옆집 할머니의 외손자였던 케이를 이웃이자 팬으로서 가만 두고 볼 수 없다고 생각한 타쿠마는 케이가 여기서 사는 동안 최대한 즐거운 시간을 보내도록 적극적으로 나선다. 덕분에 케이는 순조롭게 낫고 있었는데...


Setsuo의 만화 <나의 다이아몬드 스타> 2권은 타쿠마의 친구의 부탁으로 타쿠마가 다니는 고등학교 축제에 참가한 케이의 모습을 우연히 보게 된 멤버들이 케이에서 어서 팀으로 복귀하라고 재촉한 이후의 일을 그린다. 'Sparks!'의 다른 팬들과 멤버들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아는 타쿠마는 하루라도 빨리 케이가 아이돌 활동을 재개했으면 좋겠지만, 지금처럼 케이와 보내는 일상이 계속 되었으면 좋겠고 케이를 떠나 보내고 싶지 않은 마음이 점점 더 커져서 죄책감을 느낀다. 케이 또한 자신 때문에 팬들과 멤버들이 힘든 시간을 보내는 건 싫지만, 아이돌 활동을 재개할 만큼 상태가 나아진 건 아니라서 불안하다.


1권에 이어 2권을 읽으면서 느낀 건, 타쿠마와 케이의 성격이 정말 좋다는 것이다. 일단 타쿠마는 속으로 어떤 걱정을 하든 간에 겉으로는 드러내지 않고 항상 밝고 씩씩하게 행동하는 점이 좋다. 케이는 타쿠마처럼 밝은 성격은 아니지만 늘 주변을 살피면서 자신에게 소중한 사람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려고 하는 점이 좋다. 그냥 둘이 계속 시골에 살면서 꽁냥꽁냥 즐거운 나날을 보냈으면 좋겠는데, 아이돌 활동 왜 때문에 해야 하는지(아이돌 팬으로서 할 말은 아니지만). 아무튼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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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다이아몬드 스타 1
세츠오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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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에 사는 평범한 남학생 타쿠마는 어느 날 5인조 남성 아이돌 그룹 'Sparks!'의 영상을 보고 멤버 케이에게 덕통 사고를 당한다. 이후 타쿠마는 언젠가 라이브 공연에서 케이의 실물을 보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시작하는 등 열심히 살아간다. 그러던 어느 날 청천벽력 같은 일이 일어난다. 케이가 '건강상의 이유'로 활동을 중지한다는 것이다. 살아갈 의욕을 잃고 힘들어하던 타쿠마는 얼마 후 더욱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된다. 활동을 중지한 케이가 요양을 하러 온 곳이 타쿠마의 옆집인 것이다. 


Setsuo의 만화 <나의 다이아몬드 스타>는 아이돌 팬의 옆집에 바로 그 아이돌이 비밀리에 살러 오는, 결코 새롭지 않은 설정을 바탕으로 한다. 결코 새롭지 않은 설정임에도 불구하고 이 만화를 재미있게 읽은 건, 주인공 두 사람의 성별이 남-남이기 때문이다. 두 사람의 성별이 같기 때문에 생긴 장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일단 두 사람이 같이 다녀도 아무도 의심을 안 한다. 의심 받지 않으므로 타쿠마는 케이를 데리고 다니면서 시골 마을의 이곳저곳을 보여주고, 덕분에 케이는 그동안의 생활에서 벗어나 진정한 휴식을 경험할 수 있게 된다. 


서로를 성애적인 눈으로 보지 않기 때문에, 아이돌과 팬이라는 비대칭적인 관계임에도 불구하고 순수하게 응원하고 응원 받을 수 있다는 점도 좋다. 만약 두 사람의 성별이 달랐다면, 타쿠마 입장에서는 케이에게 잘해주기가 조심스러웠을 수 있고, 케이의 입장에서는 타쿠마가 자신에게 잘해주는 게 다른 의도가 있는 걸로 느껴졌을 수 있다. 성별이 같기 때문에 아이돌-팬의 관계를 넘어 이웃이자 친구로서 친해지기가 수월했고, 이후에 펼쳐지는 - 두 사람이 서로에게 느끼는 감정이 아이돌/팬, 이웃, 친구에게 느끼는 그것과는 다르다는 걸 깨닫는 과정이 더욱 흥미진진하게 느껴질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1권에서 타쿠마와 케이는 함께 시골에서 일상을 보내면서 즐거운 추억을 쌓는다. 이 과정에서 예기치 않은 사건이 발생하면서 타쿠마와 케이의 즐거운 시골 생활이 갑자기 막을 내릴지도 모르는 위기를 맞는다. BL로 분류될 만한 설정이지만 19금 이상의 장면은 없고(15금도 없다) 주인공 두 사람의 성별이 같은 걸 제외하면 잔잔한 일상 힐링물+아이돌물 정도다. 작화도 괜찮은데 3권으로 끝나서 아쉽다(길게 끌지 않고 짧게 치고 빠지는 내용을 좋아하는 독자라면 더 좋아할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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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바닥에서 전합니다! - 빈민가에서 바라본 혼탁해지는 정치와 사회
브래디 미카코 지음, 김영현 옮김 / 다다서재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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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래디 미카코의 책은 재미있다. 저자의 관심 분야인 영국 정치와 복지 제도, 대중 음악(특히 펑크, 록)에는 큰 관심이 없지만 계속해서 읽게 만드는 매력이 있다. 이 책도 재미있게 읽었다. 일본어판 원서는 2022년에 나왔는데, 2013년에 발표한 책 <아나키즘 인 더 UK>에 실린 에세이 중 일부와 2015년부터 2022년 사이에 발표한 기사, 칼럼 등을 엮은 것이라서 지금 독자가 읽기에는 다소 옛날 이야기 같은 내용도 많다. 물론 영국의 정치에도 음악에도 문외한이나 다름 없는 나에게는 대부분이 새롭고 신선한 내용이었지만. 


학창 시절 영국의 록 그룹 '섹스 피스톨즈'의 열광적인 팬이었던 저자는 일본과 영국을 오가다 1996년부터 아예 영국에 정착해 살고 있다. 그 때만 해도 영국은 미국만큼은 아니어도 적어도 유럽 안에서는 경제적으로 부유하고 사회적으로 안정적이며 문화적으로 앞서나가는 이미지가 있었다. 그러나 정권이 교체되고 신자유주의가 확산되고 이민자가 늘어나면서 현재의 영국 사회는 저자가 처음 왔을 때의 영국 사회보다 살기 나쁜 공간이 되었다. 경제적으로 장기간 침체되어 있을 뿐 아니라 사회적으로는 차별과 혐오가 만연하며 문화적으로는 부자들의 생활 양식만 우러르고 가난한 사람들의 현실에는 무관심한 상태로 전락했다. 


그렇다고 이 책이 '영국이 보기와는 다르고 예전보다 살기 힘들어졌으니까 오지 마세요' 이런 식의 태도를 견지하는 건 아니다. 오히려 저자는 점점 더 어려워지는 현실에 굴하지 않고 살아가는 보통의 평범한 사람들에게서 계속해서 영국에서 살아갈 힘을 발견하고 희망을 찾는다. 이를테면 기본적인 산수 문제도 풀지 못하는 성인들을 위해 무료로 강의를 하는 동료 R이라든가, 무직이어도 자원 봉사에 열심히 참여하는 이웃들이 그렇다. 젊고 가난할 때는 좌파였다가 나이 들고 부유해지면 우파로 변하는 사람들도 (전 세계적으로) 많은데, 영국에는 제적으로는 부유층에 속하지만 정치적, 사회적으로는 여전히 좌파인 뮤지션, 유명인들이 많은 점도 희망적이다.


영국 사회의 보수화, 우경화 현상에 대한 이야기도 흥미롭다. 저자의 남편은 아일랜드계 영국인으로, 원래는 런던에서 화이트칼라 계통의 직업에 종사했으나 현재는 블루칼라 계통의 직업에 종사하고 있다. 오랫동안 노동당 지지자였던 남편이 (책 속 시점으로) 최근에 보수당도 아니고 극우 정당을 지지하겠다고 해서 저자에게 큰 충격을 주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저자의 옆집에 사는 (저자의 남편과 마찬가지로 블루 칼라 직업에 종사하는) 청년도 극우 정당을 지지한다고 해서 저자는 이게 그저 놀랄 일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저자의 관찰에 따르면 이들은 직장에서 외국인 노동자들과 경쟁하는 상황인데, 외국인 노동자들은 시급이 낮아도 군말 없이 일하는 반면 영국인들은 노조니 뭐니 시끄럽기 때문에 회사는 외국인을 선호할 수 밖에 없고, 그렇게 일터에서 밀려날 위기에 놓인 영국인 노동자들은 저임금 고물가를 감수하며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들어보면 이들은 외국인 자체를 혐오하는 게 아니라 외국인에 밀려 입지가 줄어드는 현실에 절망하는 것이고, 그렇다면 궁극적으로 비난 받아야 할 대상은 외국인이 아니라 영국에서 돈 벌면서 영국인을 차별하는 회사 아닌가(노동자들이여, 일어나라!).


영국은 여성 인권이 높다는 이미지가 있지만 저자의 경험상 상류층에 한정된 이야기이고 저자가 속한 하류층 사람들 사이에선 여전히 여성 인권이 낮다는 지적도 인상적이었다. 저자가 사는 동네에만 해도 십 대에 싱글맘이 된 여성이 부지기수이고, 가정폭력에 시달리는 여성도 허다하다. 하류층일수록 복지 수당을 노리고 임신 중지 대신 출산을 택하는 경향이 높고, 대체로 그 결과는 남성의 가정 폭력과 여성의 알코올 또는 마약 중독, 아이들의 낮은 삶의 질(그리고 이들 대부분은 십 대가 되면 부모의 전철을 밟는다)이라는 관찰도 기억에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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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로스 - 2024 부커상 인터내셔널 수상작
예니 에르펜베크 지음, 유영미 옮김 / 한길사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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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수상작이라고 해서 구입했다. 읽어보니 통일 이전의 동베를린이 배경인 로맨스 소설이다. 그런데 로맨스 소설로 보기에는 주인공인 두 남녀의 나이 차이가 너무 크고, 남자에게는 이미 가정이 있으며, 학대 내지는 폭력으로 보이는 장면도 있다. 이렇게 문제적인 관계를 그린 소설에 부커상 위원회가 그런 큰 상을 준 이유는 뭘까. 내 생각에는 이 소설에 그려진 두 남녀의 가학적-피학적 관계가 통일 이전 동독 사회 내부의 국가-국민(혹은 정부-시민)의 관계를 은유하고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독일 통일 이전인 1986년 7월 11일. 동베를린에 사는 열아홉 살 소녀 카타리나는 버스에서 우연히 한스라는 남자와 만나 첫 눈에 사랑에 빠진다. 문제는 한스의 나이가 카타리나의 부모 뻘인 쉰세 살인 데다가 그에게는 이미 아내도 있고 아들도 있다는 것. 한스와 카타리나는 그러한 것들을 의식하면서도 빠른 속도로 서로에게 빠져 들고, 무슨 일이 있어도 둘의 사랑은 영원할 거라고 믿는다. 하지만 카타리나가 일 때문에 다른 도시에서 살게 되면서 두 사람의 물리적 거리가 멀어지고, 이런 상황이 불안한 한스는 카타리나에게 점점 더 집착하는 모습을 보인다. 카타리나는 한스를 안심시키려고 노력하지만 젊고 아름다운 카타리나를 유혹하는 것들이 새로운 도시에는 너무나 많고, 결국 한스의 불안을 증폭시킬 만한 사건이 일어나고야 만다. 


줄거리만 보면 흔하디 흔한 치정 소설 같은 이 소설을 끝까지 읽을 수 있었던 건, 이 소설에 묘사된 통일 이전 독일 사회의 모습이 너무나 신기하고 흥미로웠기 때문이다. 가령 소설 초반에 카타리나가 쾰른에 사는 할머니 집을 방문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통일 이전 쾰른은 서독에 속해 있었기 때문에 카타리나가 할머니 집에 가려면 여행 허가서를 받아야 했다. 분단을 경험해 본 적 없는 사람들이 보기에는 할머니 집에 가는 데 정부의 허가서가 필요하다는 게 신기하겠지만, 북한에 부모님이 살아계셔도 만날 수가 없는 나라에 사는 사람으로서는 허가서를 받으면 동독 사람도 서독에 갈 수 있다는 게 신기하다. 카타리나가 동독에 비해 모든 것이 풍족하고 훨씬 쾌적한 서독 거리 한 구석에 거지가 있는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는 장면도 인상적이었다.


이런 식으로 소설에 묘사된 통일 전후의 독일 사회의 모습에 주의를 기울이면서 읽다 보니 카타리나와 한스의 관계도 단순한 불륜, 치정 관계 이상으로 보였다. 이를테면 한스가 카타리나에 대한 의심과 집착이 심해진 나머지 카타리나에게 자백을 강요하고,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일종의 육체적 고문을 가하는 장면 등은 '슈타지'로 불리는 동독 시절의 정보기관이 시민들을 대했던 행태를 연상시킨다. "카타리나는 일 년 뒤에도 한스와 함께하게 될까? 일 년 뒤에도 그녀의 나라가 아직 그녀의 나라일까?" (376쪽) 같은 문장은 카타리나에게 한스가 일종의 나라였고, 두 사람이 헤어지는 결말은 결국 지구 상에서 동독이라는 나라가 사라지고 한때 동독의 시민이었던 사람들은 나라 잃은 사람들이 되었음을 상징한다고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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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들 - 숭배와 혐오, 우리 모두의 딜레마
클레어 데더러 지음, 노지양 옮김 / 을유문화사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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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아이돌 그룹의 멤버가 성폭행 범죄를 저질렀다. 그것도 작년 한 해 동안 두 명이나(각각 다른 그룹. 둘 다 최애 아님). 이런 적이 처음은 아니다. 몇 년 전에 좋아했던 아이돌 그룹의 멤버는 다수의 여성에게 성폭행 범죄를 저질러 형사 처벌을 받았고, 그 밖에도 좋아하는 배우, 작가, 예술가, 정치인 등등이 범죄 또는 스캔들의 가해자로 지목되어 사라지거나 사라지지 않고 여태 남아 활동 중이다. 공교롭게도 이들은 모두 남성인데 이런 일이 생길 때마다 다시는 남성 연예인, 예술가 등등을 좋아하지 않겠다고 다짐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또 다른 남성 연예인, 예술가 등등에게 호감을 느끼는 내가 한심하고 부끄럽다. 왜 여성은 남성과 직접 만나거나 사귀는 게 아니라 멀리서 팬질, 덕질을 할 뿐인데도 이런 죄의식 또는 걱정을 느껴야 하는가.


미국 시애틀 출신의 에세이스트, 도서평론가, 기자인 클레어 데더러가 쓴 <괴물들>은 숭배의 대상인 동시에 혐오의 대상이 되는 예술가들을 바라보는 팬의 시선에 대한 책이다. 어려서부터 열렬한 예술 소비자였던 저자는 자신이 열광했던 예술가 또는 창작자 중에 끔찍한 성폭행범, 학대범, 마약 중독자 등이 있는 걸 알고 혼란스러움을 느꼈다. 가령 로만 폴란스키, 마이클 잭슨, 파블로 피카소, 마일스 데이비스,  어니스트 헤밍웨이 등은 각자의 분야에서 최고의 성취를 이루어낸 위대한 예술가인 동시에 전 세계인이 다 아는 범죄자 또는 스캔들 메이커이기도 하다. 만약 이들이 저지른 범죄를 똑같이 저지른 일반인을 만난다면 우리는 그를 비난하거나 외면할 것이다. 그런데 왜 이들의 예술 작품(로만 폴란스키의 영화, 마이클 잭슨의 음악, 파블로 피카소의 그림, 마일스 데이비스의 연주,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소설)은 여전히 소비되고 심지어 찬사를 받을까.


이 책은 숭배의 대상인 동시에 혐오의 대상이 된 예술가들의 목록을 열거하거나 고발하는 내용이 아니다. 그보다는 그런 예술가들과 그들의 작품을 대하는 복잡한 팬의 마음, 예술 소비자의 심리를 소개한다. 영화 팬인 저자는 로만 폴란스키의 범죄를 싫어할 수는 있어도 그의 영화까지 싫어하기는 힘들다고 고백한다. 나는 로만 폴란스키가 만든 영화를 본 적조차 없기 때문에 저자의 고백에 공감하기 어려웠다. 파블로 피카소, 마일스 데이비스,  어니스트 헤밍웨이에 대해서는 그들의 작품을 접한 적은 있지만 팬이 될 정도로 큰 매력을 느끼지는 못했다. 그래서 그들의 예술이 존재하지 않아도 나의 일상에는 큰 지장이 없을 것 같다.


문제는 마이클 잭슨이다. 나는 오랫동안 마이클 잭슨을 '아동 성추행 혐의가 있는 불세출의 스타' 정도로 인식하고 있다가 작년에 우연히 유튜브에서 그의 무대 영상 보고 깊은 감동을 받아 한동안 그의 매력에 푹 빠져 있었다. 관심이 살짝 식은 후에야 마이클 잭슨의 아동 성추행 혐의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는데, 이미 그의 팬이 되어버린 나로서는 혐의는 혐의일 뿐이라고 생각하고 싶지만, 만약 혐의의 대상이 마이클 잭슨이 아니라면 - 가령 내가 좋아하지 않는 연예인이라면 - 과연 내가 그렇게 생각할까. 비슷한 예가 쟈니스 엔터테인먼트(현 스타토)이다. 이 회사가 그동안 얼마나 큰 범죄를 일으켰고 은폐해 왔는지는 전 세계적으로 알려져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이 회사 소속의 연예인들을 좋아한다. 가해자는 죽은 사장이니까 소속 연예인들은 좋아해도 괜찮다고 생각하지만, 만약 내가 좋아하지 않는 연예인의 소속사가 비슷한 범죄를 일으켰어도 똑같이 생각했을까. 아닐 것이다.


이 책은 주로 남성 예술가를 다루지만 여성 예술가를 다룬 부분도 있다. 여성 예술가에 대한 감정도 어려운 문제다. 책에 나오는 사례는 아니지만, 예를 들어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 아니 에르노가 연하의 외국인 유부남과 사귀었던 실제 경험을 담은 책 <단순한 열정>은 배우자가 있는 남성과 교제하는 내용이라는 점에서 반도덕적이고, 탈냉전 이전에 적국인 러시아의 남성과 사귀었다는 점에서 반애국적이라는 비난을 받을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성인 예술가가 자유롭게 자신의 성적인 관심과 경험에 대해 털어놓는 글을 썼다는 점에서 이 책을 높게 평가했는데, 반대로 남성인 예술가가 그런(자유롭게 자신의 성적인 관심과 경험에 대해 털어놓는글을 썼다면 나는 과연 그 책을 좋아했을까. 아마 눈길도 주지 않았을 것이다. 이런 식의 구분은 개인적인 선호에 그치지 않는다. 애초에 남성 작가가 자신의 비도덕적이고 반사회적인 경험이나 생각에 대해 쓴 글은 허다한 반면 여성 작가의 그런 글은 드물다. 이 책에 나오는 모성 문제처럼 - 남성은 부성이 없어도 비난 받지 않지만 여성은 모성이 결여되었다는 혐의만 있어도 비난 받는다 - 사회가 여성에게 유독 가혹하다면 일개 독자인 나 정도는 관대하도 괜찮지 않나 싶다.


저자는 이 책에서 숭배의 대상인 동시에 혐오의 대상이 된 예술가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대신해서 결론을 내려주지는 않는다. 어떤 범죄까지는 괜찮고 어떤 범죄는 안 괜찮은지 일률적으로 정할 수 있는 문제도 아니고, 억지로 정한다 해도 어차피 개인마다 받아들이는 기준이 다를 것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나는 예술 영화의 팬이 아니기 때문에 로만 폴란스키의 영화를 평생 안 봐도 괜찮을 것 같다. 하지만 문학을 열렬하게 사랑하는 독자로서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작품을 읽지 않을 수는 없다. 사실 어니스트 헤밍웨이에 대해서는 이제까지 전혀 호감이 없었는데 이 책을 읽고 오히려 읽어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남성성에 대한 집착과 여성 혐오가 스스로 남성성이 부족하다고 느낀 데에서 비롯되었다는 설명이 인상적이었다. 미시마 유키오와 비교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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