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의 편지
조현아 지음 / 손봄북스 / 2019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전학 첫날의 두근거림을 기억한다. 낯선 학교, 낯선 교실, 낯선 선생님, 낯선 친구들... 낯설기만 했던 모든 것들이 언제부터 익숙하고 정든 것들로 바뀌었는지는 기억하지 못한다. 낯선 나에게 먼저 다가와 준 친구들과, 그들을 따라다니며 새롭게 익힌 것들로 인해 정신없이 바빴기 때문이리라.


조현아의 <연의 편지>는 2018년 8월 네이버 웹툰에서 여름 특선 10부작으로 공개된 만화다. 연재 당시 9.98이라는 높은 평점을 기록했고, 이듬해 출간된 단행본도 좋은 반응을 얻었다. 이야기는 주인공 소리가 이전 학교에서 겪은 학교 폭력의 후유증으로 새로운 학교에서도 겉돌다가, 어느 날 우연히 책상 안쪽에 붙어 있는 숨겨진 편지를 발견하면서 시작된다. 소리는 언제 어디서 나타날지 알 수 없는 발신인 불명의 편지를 읽으며 조금씩 학교생활에 적응하고 새로운 친구들을 사귄다.


소리는 예전 학교에서 집단 따돌림을 당하는 친구를 구하려다 그 자신이 집단 따돌림의 대상이 되었다. 그 때문에 학교를 옮긴 후에도 사람이 무서워서 사람 사귀는 걸 두려워하고 힘들어한다.


나도 한때는 친구를 사귀지 못할까 봐, 남들이 나를 미워하고 배척할까 봐 두려워하고 불안해했을지도 모른다. 그런 적이 있었는지 없었는지 정확히 기억하지 못하는 것은, 나에게 먼저 다가와 주고 말 걸어준 사람들이 늘 있었기 때문이다. 어떤 집단이든 간에 소리처럼 소외감을 느끼는 사람이 있다면 나머지 사람들이 민망해하고 반성해야 한다. 사람을 가려서 환대하는 자리에는 선이 존재할 수 없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일생일대의 거래
프레드릭 배크만 지음, 이은선 옮김 / 다산책방 / 2019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프레드릭 배크만의 소설을 좋아한다. 대표작 <오베라는 남자>도 좋았고, <브릿 마리 여기있다>도 좋았지만, 개인적으로 가장 추천하는 작품은 <베어타운>과 <우리와 당신들>이다(두 작품은 연작이다). <베어타운>과 <우리와 당신들> 다음에 출간된 책이 <일생일대의 거래>라서 큰 기대를 품고 읽었는데, 결론부터 말하면 길이도 너무 짧고 내용도 빈약하다. 알고 보니 <일생일대의 거래>는 <베어타운>과 같은 2016년작이고, <우리와 당신들>은 2017년작이라고.


이야기는 추운 겨울날, 한 남자가 어느 술집 안을 들여다보는 장면에서 시작된다. 남자는 얼마 전 암 선고를 받고 과거의 실수를 만회하기 위해 이 술집을 찾아왔다. 오래전에 헤어진 남자의 아들이 술집 안에 있었던 것이다. 예전에 남자는 일만 중시하고 가족들을 등한시했다. 다정한 사람이 되고 싶어 하는 아들을 책망하고, 강해져야 한다고 다그쳤다. 남자는 술집 안에 있는 아들을 보면서 시간을 돌릴 수만 있다면 과거의 잘못들을 돌이키고 싶다고 생각하지만 그건 이루어질 수 없는 소망이다.


아버지와 아들의 갈등은 <베어타운>과 <우리와 당신들>에도 등장하는 소재다. <오베라는 남자>도 그렇지만, 프레드릭 배크만은 돈이나 사회적 지위만을 좇다가 관계로부터 얻을 수 있는 재미와 행복을 잃어버린 나이 든 남성, 이른바 꼰대들에게 관심이 많은 것 같다. 나는 딱히 그들에게 관심은 없지만, 그들이 어떻게 세상을 망쳐왔고 어떤 식으로 다른 집단 혹은 세대에서 재생산되는지에는 관심이 있다. <일생일대의 거래>는 그들에 대한 연민이나 동정이 더 두드러진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다름 아닌 사랑과 자유
김하나 외 지음 / 문학동네 / 2019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나의 어머니는 개를 몹시 무서워하신다. 어릴 때 아버지(나의 외할아버지)가 개에 물리는 모습을 본 이후로 아무리 작은 개도 무섭게 느껴진다고 하셨다. 어머니가 그런 말씀을 하실 때마다 나와 동생은 개가 뭐가 무섭냐며 개의 편을 들었지만, 그렇다고 개가 막 좋지도 않았다. 개뿐만 아니라 다른 동물들도 마음을 다해 좋아해본 경험이 없다. 그래서일까. 동물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접하면 공감하는 마음보다 부러워하는 마음이 더 든다. 동물의 눈빛, 동물의 소리, 동물의 온기, 동물과 보내는 시간... . 그것들을 아는 사람의 삶과 모르는 사람의 삶은 얼마나 다르고 멀까.


<다름 아닌 사랑과 자유>는 김하나, 이슬아, 김금희, 최은영, 백수린, 백세희, 이석원, 임진아, 김동영 등 내로라하는 작가 9인이 각자의 반려동물에 관해 쓴 에세이를 엮은 책이다. 이 책에 참여한 작가들은 모두 비영리 동물보호단체 카라(KARA)와 '일대일 결연'을 맺었으며, 이 책의 판매 수익금 전액은 카라의 활동 후원금으로 사용된다고 한다.


이 책에 실린 모든 글이 좋았지만, 김금희 작가의 글을 읽을 때 유난히 눈물이 났다. 씩씩하게 잘 지내던 장군이가 언제부터인가 벽에 부딪히는 일이 늘어서 병원에 데려가 보니 실명했다는 말을 들었을 때 얼마나 마음이 아팠을까(이 문장을 쓰는데도 눈물이 난다). 의사는 개가 시각보다 후각이나 청각 같은 다른 감각에 더 많이 의존하기 때문에 괜찮을 거라고 위로했지만, 앞이 보이는 사람의 말보다 앞이 보이지 않는 장군이의 마음이 더 가깝게 느껴져서, 장군이를 볼 때마다 측은하기도 하고 고맙기도 했다는 저자의 글이 나의 마음에도 깊이 박혔다.


다른 작가들이 주로 동물에 관한 추억, 동물을 향한 사랑에 대해 썼다면, 이석원 작가는 동물에 대한 무지와 욕심 때문에 생긴, 일종의 '흑역사'에 대해 썼다. 고양이 털 알레르기인 걸 모르고 그저 예쁘다는 이유로 고양이를 들였다가 누나에게 보낸 일, 그 때문에 누나가 원래 기르던 고양이가 새 고양이에게 적응하지 못하고 지금까지도 불화하는 일 등등... 이석원 작가는 자기처럼 동물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면서 욕심 때문에 동물을 들이는 사람들에게 제발 '기르지 말자'라고 충고한다. 이것도 참 일리 있는 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내 인생 구하기 - 삶을 마냥 흘려보내고 있는 무기력한 방관주의자를 위한 개입의 기술
개리 비숍 지음, 이지연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20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세상은 결코 평등하지 않다. 재능도 기회도 누구에게는 많이, 누구에게는 적게 주어지고, 아무리 노력해도 약간의 주목조차 못 받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약간의 노력만으로 엄청난 인정을 받는 사람도 있다. 그런데 단 하나, 모두에게 공평하게 주어지는 것이 있다. 나이가 많든 적든, 돈이 많든 적든, 유명하든 유명하지 않든 간에 모든 사람에게 동일하게 적용되는 사실. 그것은 바로 모든 사람에게 주어지는 하루는 단 24시간뿐이라는 것이다.


문제는 누구에게나 똑같이 주어지는 24시간을 누구는 알차게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반면, 누구는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다. 맨날 똑같은 헛짓거리를 반복하면서 나이를 탓하고 부모를 원망하고 잘못된 사회 제도나 관행을 비난한다. 이런 사람들이 꼭 읽었으면 하는 책을 만났다.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시작의 기술>의 저자 개리 비숍의 신간 <내 인생 구하기>이다.


사람들은 스스로 생각하고 주체적으로 판단하고 있다고 믿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어려서부터 부모나 교사로부터 주입된 생각이나 고정관념, 편견 등에 크게 좌우되고, 주변 사람들이나 사회, 언론 등으로부터 영향을 받아서 크고 작은 결정들을 내린다. 그중에는 자신이 진정으로 고민해서 진심으로 내린 선택이나 판단은 별로 없다. 한국에서 태어났으니 평생 한국에서 살면서 한국에 있는 학교에 다니고 한국에 있는 직장에 다닌다. 지극히 당연한 생각 같지만, 실은 아무런 생각도 아니다. 


저자는 한 번이라도 스스로 생각해서 판단하고 결정을 내리고 행동하는 경험을 해보라고 조언한다. 자신이 그동안 당연하게 여겨왔던 패러다임에 이의를 제기하고 그것으로부터 벗어나 전혀 다른 선택을 해보기를 권한다. 하고 싶은 일을 미루지 말고 당장 해보라고 말한다. 일이 바빠서, 시간이 없어서, 사람들의 눈치가 보여서 할 수가 없다는 말은 핑계에 불과하다. 결국 그렇게 당신은 자신의 인생을 스스로 좀먹다가 죽기 직전에야 삶다운 삶을 살지 못했다는 사실을 깨닫고 후회할 것이다.


인생을 새로 시작하기에는 너무 멀리 와버렸다는 생각이 들 때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 그래도 괜찮다. 지금부터 다시 시작하면 된다. 원하지 않는 일을 너무 오랫동안 해왔다면 새롭게 하고 싶은 일을 찾으면서 지금 하고 있는 일을 천천히 그만두면 된다. 사랑하지 않는 사람과 너무 오랫동안 관계를 지속해 왔다면 지금이라도 대화를 시도해 관계를 재정비하면 된다. 인간은 과거, 현재, 미래 중에 현재밖에 살 수 없다. 현재를 바꾸는 건 오로지 지금, 당신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장르 세계를 떠도는 듀나의 탐사기 - 도대체 이야기가 뭐냐고 물으신다면
듀나 지음 / 우리학교 / 2019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코니 윌리스의 소설 <둠즈데이 북>을 읽을 때만 해도 흑사병 같은 전염병은 SF 같은 장르 소설에나 등장하는, 현실과는 거리가 먼 소재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현재,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전 세계를 마비시키고 공포에 떨게 하고 있는 상황을 맞고 보니, <둠즈데이 북> 같은 장르 소설이야말로 가장 현실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지금이야말로 그동안 이른바 순문학과 달리 '불순한' 장르로 취급되거나 폄하 당해온 장르 소설의 명예를 회복할 최적기가 아닐까.


SF 작가이자 영화 평론가인 듀나의 책 <장르 세계를 떠도는 듀나의 탐사기>는 SF, 호러, 추리, 미스터리 등의 장르물에 해박한 지식과 남다른 식견을 지닌 저자가 현재 장르물 팬들 사이에서 화두인 주제에 대해 이런저런 생각을 풀어놓는 형식의 책이다. 이를테면 장르물의 고전이라고 할 수 있는 <스타워즈>, <스타트렉> 등의 새 시리즈 주연을 남성이 아니라 여성이 맡는 것에 대한 논쟁이 있다. 어떤 팬들은 새롭게 등장한 여성 중심 서사를 낯설어하고 거부하는 반면, 어떤 팬들은 다양성을 반가워하며 새로운 팬들을 끌어오기도 한다. 한동안 거부하는 목소리가 들리겠지만, 한 번 시작된 변화의 흐름을 뒤집기는 어려울 것이다.


문학도 사정이 다르지 않다. 휴고상이 제정된 1953년부터 앤 맥카프리가 <용의 간택>으로 중편상을 받은 1967년까지, 이 상을 받은 여성 작가는 단 한 명도 없었다. 이제는 대부분의 SF 문학상을 여성 작가가 휩쓸고 있으며, 다른 문학 분야에서도 여성 작가들의 활약이 두드러진다. 한때는 여성 작가들이 독자들의 선택을 받기 위해 남자처럼 보이는 필명을 사용했지만, 오늘날에는 남성 작가들이 일부러 여자처럼 보이는 필명을 쓰는 일도 있다. 이 밖에도 장르물이라는 필터로 보는 다양한 이야기가 실려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