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지대
줌파 라히리 지음, 서창렬 옮김 / 마음산책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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줌파 라히리 단편만 좋은 줄 알았는데 장편은 더더욱 좋네요. 다른 작품들도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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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지대
줌파 라히리 지음, 서창렬 옮김 / 마음산책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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줌파 라히리는 인도계 미국 작가다. 줌파 라히리는 자신의 출신 배경과 성장 과정을 작품에 적극 반영한다. 줌파 라히리의 작품에 자주 등장하는 인도계 미국 유학생 또는 이민자는 아마도 그의 부모가 모델일 것이다. 그들이 낳은 자식이 이민자 2세로서 혼란과 차별을 겪으며 성장하는 모습은 아마도 줌파 라히리 자신의 경험을 반영한 것이리라. 한때는 줌파 라히리의 작품에 인도계 미국 유학생, 이민자, 이민자 2세의 이야기가 너무 많이 나온다, 지겹다는 생각도 들었는데, 얼마 전 줌파 라히리의 장편소설 <저지대>를 읽고 그런 생각을 싹 잊었다. 줌파 라히리의 작품을 모두 읽어본 건 아니지만, 어쩌면 줌파 라히리가 여전히 하지 않은(또는 못한) 이야기가 있을 수도 있겠다, 그렇다면 읽어보고 싶다, 아니 읽어야 한다는 생각이 강렬하게 들었다.


수바시와 우다얀은 15개월 터울의 형제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이념 대립이 본격화되던 1940년대에 태어난 이들은 부모님의 사랑과 지원을 듬뿍 받으며 일류 대학에 진학하는 데 성공한다. 문제는 동생 우다얀이 독재 정부에 항거하는 반정부 운동에 가담하면서 발생한다. 수바시는 우수한 성적으로 대학을 졸업해 좋은 직장을 얻고 경제적 안정을 이루고 부모님에게 걱정을 끼치지 않는 것이 최선이라고 믿는다. 반면 우다얀은 지금 당장 고생하더라도 사회의 변혁을 이루어 못 사는 사람들이 잘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고 믿는다. 결국 수바시는 미국 유학길에 오르고 우다얀은 취업을 하지 않은 채 정치 운동에 힘을 쏟으며 형제의 인생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향한다. 여기까지만 보면 한국의 전후 문학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경제적 안정이 우선이라고 믿는 형과 민주화 운동에 투신한 동생(또는 그 반대)의 갈등은 한국 소설에도 자주 나왔던 설정이다. 


<저지대>의 장점은 이야기의 무대가 미국으로 옮겨가면서부터 드러난다. 우다얀이 짧은 생을 마치자 수바시는 우다얀의 아내 가우리를 미국으로 데려와 살게 한다. 가우리는 수바시의 배려를 사랑으로 받아들이지 못해 괴로워한다. 수바시가 아버지인 줄 아는, 우다얀과 가우리의 딸 벨라는 자신의 마음 한구석이 항상 허전한 이유를 궁금해한다. 작가는 이들 각각의 시점을 번갈아 보여주면서 한 인간의 존재 또는 부재가 남기는 여파를 섬세하게 그려낸다. 


수바시와 가우리는 우다얀의 존재 또는 부재를 행운으로 여겨야 할지 불행으로 여겨야 할지 확신하지 못한다. 수바시에게 우다얀은 둘도 없는 형제이자 친구 이상의 가까운 존재였지만, 수바시의 삶에 평생 그림자를 드리운(혹은 수바시 자신을 그림자로 만든) 원인이기도 하다. 가우리에게 우다얀은 그녀 인생 최고의 사랑이었지만, 우다얀이 여전히 살아 있었으면 우다얀의 친가에서 우다얀의 부모를 봉양하며 인습에 따르다 늙어 죽었을지 모른다. 벨라는 우다얀의 존재를 알지 못한 채 우다얀의 부재를 느끼며 자란다. 우다얀이 살아 있었다면 벨라의 삶은 더 행복했을까, 아니면 더 불행했을까. 아무리 가늠해 보아도 답은 알 수 없다. 이것이 저것의 원인이고, 저것이 이것의 원인이라고도 확신할 수 없다. 그러한 인생의 본질을 담담하게 그려낸 수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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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8-05-22 16: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목이 저지대인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세요? 저는 아직 읽어본 적이 없는 책이라서 왜 그런 제목이 붙었는지 궁금해요.

키치 2018-05-22 16:43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주인공 형제가 자라는 곳 근처에 저지대가 있고, 저지대가 두 형제의 운명을 가르는 중요한 장소로 여러 번 등장합니다. 작가는 세상의 온갖 것이 흘러 들어와 고이는 곳, 사람들 눈에 잘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곳으로서 저지대라는 장소를 등장시키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질문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차라리 재미라도 없든가 읽어본다
남궁인 지음 / 난다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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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 대한 리뷰를 쓸까 말까 많이 망설였다. 망설인 이유는 책 전체에 대한 평가와는 별개로 어떤 한 대목이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문제의 대목은 위화의 소설집 <4월 3일 사건>에 나오는 한 장면에 대한 저자의 평가다. 


"아가씨, 한가하게 노느니 이거라도 버는 게 안 낫겠소?" 

"흥! 그걸 썩히는 한이 있어도 한 푼도 적게는 안 돼요." 여인이 말했다. 

쑨시는 발을 동동 굴렀다. "좋소. 나도 값을 깎아달라고는 않겠소. 반만 넣지. 반값이니 반만 넣으면 공정하지 않겠소." 

여인은 생각해보더니 옳게 여겼는지 돌아서서 집안으로 들어갔다. 

그러고는 바지를 벗고 침대에 누워 두 다리를 벌렸다. (중략) 

"이봐요, 이봐, 반만 넣기로 했잖아." 

쑨시가 낄낄거리며 대꾸했다. "내가 말한 반은 뒷부분 반이요." 

(173~4쪽) 


저자는 이 장면을 소개하면서 이런 문장을 썼다. "위화의 소설을 읽는 것은 뭐니 뭐니 해도 그의 중국식 위트 때문인데, 마지막으로 한 단락 인용해본다." 저자는 이 장면을 읽고 독자가 웃기를 기대했을 텐데, 결론부터 말하면 나는 이 장면이 조금도 웃기지 않았다. 몇 푼 안 되는 돈이라도 벌기 위해 다리를 벌려야 하는 여자. 그 돈마저도 절반밖에 못 준다고 떼쓰는 남자를 울며 겨자 먹기로 받아들여야 하는 여자. 못된 남자한테 사기를 당하고 비웃음까지 당한 여자. 이런 여자를 보고 어떻게 웃을 수 있지?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한테 공감할 수 있는 마음이, 이런 장면을 '중국식 위트'로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이 나에게는 참 멀게 느껴졌다. 


이런 경우는 사실 이 책 말고도 다른 여러 책, 만화, 영화, 드라마 등등을 볼 때 자주 마주친다. 그때마다 매번 문제를 제기하는 건 아니고 보고도 못 본 척 넘어가는 경우도 많은데, 이 책은 저자가 일반 작가가 아니라 의사라는 점 때문에 마음에 더 걸렸다(일반인보다 더 예민하고 약자의 입장에 공감해야 하는 게 의사 아닌가). 이 부분을 제외하고 다른 부분이 전부 좋았으면 넘어갈 수도 있었겠지만 그것도 아니다. 요조의 책이나 한 번 더 읽을 걸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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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동물학교 1
엘렌 심 지음 / 북폴리오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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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려동물과 함께 살아본 적은 없지만 반려동물과 함께 살아보고 싶은 마음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을 실행으로 옮기지 않는 건 반려동물의 삶(과 죽음)을 책임질 자신이 없어서다. 나는 과연 반려동물에게 좋은 반려인이 될 수 있을까. 나 하나 좋자고, 내 욕심 채우자고 반려동물에게 심한 요구를 하게 되진 않을까. 그러다 반려동물이 내 곁을 떠나가거나 무지개다리라도 건너면 그 죄책감과 상실감을 감당할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을 하다 보면 반려동물과 함께 살아보고 싶은 마음이 생기다가도 사라진다. 


<환생동물학교>는 인기 만화 <고양이 낸시>를 그린 재미 작가 엘렌 심의 신작이다. 네이버 웹툰에서 연재 중인 만화를 단행본으로 엮었다. 무대는 동물이 인간으로 환생하기 위해 남아 있는 동물의 습성을 버리고 인간 세계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교육하는 '환생동물학교'다. 이 학교에 부임한 초보 선생님은 이른바 '문제아 반'으로 불리는 AH-27반을 맡고 자신감에 차 있다. 반 아이들이 신발 뜯기, 발로 긁기, 물기 등등 인간이 하지 않을 행동을 할 때마다 가르치고 타일러서 인간으로 만들면 그만인 줄 안다. 


하지만 반 아이들이 유난히 진도가 느리고 수업 내용에 집중을 못하는 이유를 알게 되면서 초보 선생님은 동물을 인간으로 만드는 것이 옳은지 회의에 빠진다. 어떤 아이는 동물일 때 주인에게 아낌없는 사랑을 받았던 추억 때문에 동물로 남고 싶어 한다. 어떤 아이는 동물일 때 주인에게 학대를 당한 줄 모르고 그걸 사랑이라고 여긴다. 인간이 과연 동물보다 나은가. 인간으로 환생하는 것이 축복인가 고통인가 하는 의문도 가진다.


언뜻 보기에는 인간이 되기 위한 교육을 받는 학교에 다니는 동물들의 일상을 그린 만화이지만, 사랑의 실체와 사랑에 따르는 책임을 묻는 진지하고 무거운 내용을 담고 있다. 사랑이란 무엇일까. 나로서는 사랑해서 하는 행동이 상대에게도 사랑으로 받아들여질까. 반대로 나에게는 사랑으로 보이는 행동이 상대에게도 사랑 때문에 하는 행동일까. 이 같은 질문은 인간과 동물의 관계뿐 아니라 인간과 인간의 관계에도 적용해볼 수 있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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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생삼세 십리도화 (영화표지 특별판) 삼생삼세
당칠공자 지음, 문현선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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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유튜브에서 <삼생삼세 십리도화> 드라마를 보고 전체 내용이 궁금해져서 읽게 된 책이다. 드라마는 백천이 남장을 하고 묵연의 제자로 들어가는 장면부터 시작되는 반면, 소설은 백천이 소소였던 시절의 일부터 나온다. 순서를 고려하면 드라마판의 플롯이 낫지만, 전생을 기억하지 못하는 백천을 바라보는 야화의 애틋한 심정을 표현하는 데에는 원작 소설의 플롯이 더 나은 것 같다. 


<삼생삼세 십리도화>의 줄거리를 한 줄로 요약하면 '신선인 백천이 세 번의 삶을 살며 단 한 명의 연분을 찾는 이야기'이다. 산속에서 홀로 지내던 소소라는 여인이 야화라는 남자의 생명을 구해준다. 알고 보니 야화의 신분은 천군의 손자. 야화를 따라 구중천으로 간 소소는 속인 주제에 야화의 눈에 들었다는 이유로 궁중 여인들의 시기를 당하다가 두 눈을 잃고 절벽에서 떨어진다. 다들 소소가 죽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소소는 죽지 않았다. 소소는 사실 속인이 아니라 잠깐 속계에 내려온 신선 백천이었다. 


긴 잠에서 깨어난 백천의 나이는 십사만 살. 딸이 이 나이(!) 먹도록 결혼하지 않은 걸 걱정한 백천의 부모는 백천을 천군의 손자 야화와 결혼시키려 한다. 백천은 얼굴이나 보고 마음을 결정하자 싶어 야화를 보러 가는데, 백천을 본 야화의 눈길이 예사롭지 않다. 설상가상으로 야화의 어린 아들 찹쌀경단이 백천을 보자마자 엄마라고 부르며 백천에게서 떨어지려 하지 않는다. 야화는 백천이 찹쌀경단을 낳은 소소와 너무나 닮아서 그렇다고 아들에 대한 용서를 구한다. 


이때부터 소소였던 시절의 기억이 전혀 없는 백천과, 백천이 소소인 줄은 꿈에도 모르는 야화의 알콩달콩 즐거운 나날이 이어진다. 그 사이에 백천이 오만 살에 불과했던 젊은 시절의 이야기가 삽입된다. 여우족 출신의 신선이자 오빠만 넷인 막내딸로 자라 성격이 털털하고 장난치기를 좋아하는 백천은 수련은 하지 않고 놀러만 다녀서 부모의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참다못한 백천의 부모는 백천을 사음이라는 남자로 분장시켜 상신 묵연의 제자로 보낸다. 그러던 어느 날 묵연이 사음을 구하려다 목숨을 잃는 일이 발생하고, 여자로 돌아온 백천은 자신의 피로 묵연을 지킨다. 


백천은 야화와의 사랑이 무르익어도 자신을 지키려다 목숨을 잃을 뻔한 스승 묵연을 잊지 못하고 가슴 아파한다. 백천의 심정을 눈치챈 야화는 백천이 묵연을 완전히 살릴 수 있도록 돕기는 하지만 한편으로는 백천의 사랑이 자신을 향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괴로워한다.


줄거리가 엄청 복잡하긴 한데, 주인공 백천의 시점을 따라가며 읽다 보면 그렇게 복잡하지만도 않다. 십사만 살 '연상녀' 백천과 오만 살 '연하남' 야화가 알콩달콩 사랑을 나누는 모습도 귀엽고, 백천이 십사만 살 먹도록 만났던 여러 남자들의 이야기도 흥미롭다. 특히 백천의 실질적인 첫사랑이라고 할 수 있는 이경과의 사랑 이야기가 오래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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