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숙녀들의 사회 - 유럽에서 만난 예술가들
제사 크리스핀 지음, 박다솜 옮김 / 창비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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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그동안 '작자 미상'으로 알려진 작품들 대부분이 여성 예술가의 작품이라는 말을 들었다. 여성이라서 이름을 감추거나 바꿔야 했던 이들의 사례는 얼마 전까지도 흔했다. 여성임이 드러나는 진짜 이름 대신 남성의 이름으로 작품을 발표한 제인 오스틴이나 브론테 자매의 사례까지 갈 것도 없다. <해리 포터> 시리즈를 쓴 조앤 롤링은 여성의 이름으로 책을 내면 잘 안 팔린다는 통념 때문에 'J.K.롤링'이라는 이름으로 책을 냈다(이제는 조앤 롤링이라는 본명이 너무 유명해져서 가명으로 책을 낼 정도다). 


<죽은 숙녀들의 사회>는 여성이라는 이유로 이름을 감추고 존재마저 지워야 했던 예술가들의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미국의 문학잡지 편집장이자 서평가인 제사 크리스핀은 그동안 동경했던 예술가들의 자취를 찾아 모든 일을 멈추고 유럽으로 홀연히 떠난다. 그리고 '천재' 제임스 조이스의 아내로만 알려진 노라 바너클, '위대한 시인' 윌리엄 예이츠의 청혼을 거절한 모드 곤, 뛰어난 르포르타주 작가였으나 '어머니'의 역할에 충실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비난받은 리베카 웨스트, 문단 권력으로부터 배제당했으나 스스로 <리틀 리뷰>를 창간해 T.S. 엘리엇, 제임스 조이스 등을 발굴한 마거릿 앤더슨 등을 소개한다. 


이 책에는 여성은 아니지만, 시대의 통념과 맞지 않는 성적 취향 때문에 고민한 남성 예술가의 사례도 나온다. 동성애자임을 숨기고 불행한 결혼 생활을 영위하며 평생 고통받은 서머싯 몸이 그 주인공이다. 이들의 공통점은 자신이 속한 시대와 사회에서는 결코 온전한 자기 자신으로 인정받지 못했다는 것. 도피처이자 낙원은 오로지 예술뿐이었다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답지 않은 것'과 타협하지 않고 끝까지 '나답게 살다간' 이들의 이름을 일일이 거명한 이 책이 참 사랑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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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맛집 산책 - 일본 유명 푸드저널리스트와 고독한 미식가의 저자가 함께하는
히라마츠 요코 지음, 타니구치 지로 그림, 김대환 옮김 / 하루(haru)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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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드 저널리스트가 직접 가보고 추천하는 오래된 맛집 이야기. 흥미롭고 유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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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맛집 산책 - 일본 유명 푸드저널리스트와 고독한 미식가의 저자가 함께하는
히라마츠 요코 지음, 타니구치 지로 그림, 김대환 옮김 / 하루(haru)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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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푸드 저널리스트 히라마츠 요코가 글을 쓰고, <고독한 미식가>로 유명한 만화가 다니구치 지로가 그림을 그린 책이다. 올요미모노에 연재한 칼럼 12회 분량을 책으로 엮었다. 


자기 전에 달아오른 머리를 식힐 겸 읽기 시작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수첩을 꺼내 놓고 메모를 했다. 방금 만든 봄나물 튀김, 바삭바삭하게 구운 교자, 길거리에서 먹는 오코노미야키, 130년 전통의 메밀 소바, 말고기 나베, 과일 샌드위치 등등 먹어본 적 없는 음식, 살면서 꼭 한 번은 먹어보고 싶은 음식이 나올 때마다 꼼꼼히 적었다(책 뒤에 맛집의 주소와 연락처가 부록으로 실려 있다. 이런 배려 좋다!). 





이 책에 나온 음식 중에 기필코 먹어보고 싶은 음식은 니혼바시 '타이메이켄'과 오사카 '메이지켄'에서 파는 옛날식 오므라이스다. 1931년에 창업한 타이메이켄의 오므라이스 가격은 무려 1650엔. 통통하게 부푼 오믈렛과 밥, 새빨간 케첩을 동시에 떠서 입안에 넣으면 웃음밖에 나오지 않는다고 하니 그 맛이 궁금하다. 반면 1926년에 창업한 메이지켄의 오므라이스 가격은 불과 650엔. 값싸고 양 많은 음식을 선호하는 오사카 사람들의 취향에 맞췄다는데 그 맛은 일품이라고 하니 이 또한 궁금하다. 





개혁개방 이후 일본으로 건너온 중국인들이 터전을 잡고 새롭게 차이나타운을 형성하고 있는 이케부쿠로의 맛집들도 궁금하다. 직원과 학생은 물론 외부인도 이용할 수 있는, 값싸고 영양 만점인 직원 식당, 학생 식당 정보도 유용하다. 지금은 없어진 우에노의 대중식당 '쥬라쿠다이'와 오사카 '쿠이다오레'에 관한 이야기도 인상적이었다. 일본 맛집은 몇 대에 걸쳐 백 년, 이백 년 씩 하는 경우가 종종 있어서 부러웠는데, 이런 노포(시니세)도 점점 사라지고 있다니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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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례한 사람에게 웃으며 대처하는 법 - 인생자체는 긍정적으로, 개소리에는 단호하게!
정문정 지음 / 가나출판사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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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무례한 사람에게 웃으며 화내는 법을 모른다. 무례한 사람을 만나면 대체로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지면서 아무 말도 못하거나 어색하게 그 자리를 피할 뿐이다. 차라리 화를 내고 싶다, 기왕이면 웃으며 화내는 고수가 되고 싶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이 책을 읽었다. 


아쉽게도 이 책만으로 내가 알고 싶었던 '고수의 기술'을 알 수는 없었다. 다만 유용한 팁 하나는 얻었다. 누가 나에게 쓰레기를 주면 그걸 계속 가지고 있을까? 주변에 쓰레기통이 있나 없나 확인한 다음 최대한 빨리 쓰레기를 버릴 것이다. 마찬가지로 누가 나한테 쓰레기 수준의 말이나 행동을 하면 마음에 담지 말고 얼른 냅다 버리는 게 상책이다. 물론 한두 번이 아니라 상습적으로 쓰레기를 버릴 때는 '이곳은 쓰레기를 버리는 곳이 아닙니다'라고 정중하게 알려야 하겠지만(더 심하면 무단 투기로 신고할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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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꾸는 언어 - 민주주의로 가는 말과 글의 힘
양정철 지음 / 메디치미디어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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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꾸는 언어>는 故 노무현 전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을 말과 글로 보좌한 전 청와대 비서관 양정철이 쓴 책이다. 책보다도 저자에 관심이 있어 이 책을 읽었는데, 책이 좋으니 저자가 더 좋아 보였다. 이 책에서 저자는 한국인들이 쉽게 사용하고 무심코 내뱉는 말과 글 속에 남아 있는 권위주의와 차별 의식을 지적하고, 말과 글로써 '언어 민주주의'에 도달하는 길을 소개한다. 


이를테면 어려운 한자어가 난무하는 법조문을 법조인들이 애써 바꾸지 않는 것은 법조인 스스로가 법조인 아닌 사람들과 자신들을 구별하고 특권을 유지하기 위함이다. 언론인들이 "~로 예상됩니다.", "~로 보여집니다." 같은 수동, 피동 표현을 남발하는 것은 스스로 보도의 주체가 되지 않고 중립을 가장해 책임을 미루는 태도가 반영된 것이다. 아파트 이름이 죄다 대기업 이름과 캐슬이니 팰리스니 하는 외래어의 조합인 것은 돈과 자본, 외국의 것을 숭상하는 천박한 취향이다. 


언론에서 잘못 사용하는 표현에 대한 지적이 특히 흥미로웠다. 정치 보도에서 흔히 쓰이는 '대권'은 일본 구헌법에서 '천황이 행하는 통치권'을 일컫는 말을 그대로 가져와 쓰는 것이다. 이는 일본식 표현이라는 점에서 좋지 않고, 전제 왕조시대의 군주 권한을 가리킨다는 점에서 민주주의와도 맞지 않다. 스포츠 보도에 자주 나오는 '현해탄'은 일본어 '겐카이나다'를 한자음 그대로 읽은 일본식 표현이다. '한일 두 나라 사이 바다'를 표현하고 싶을 때는 현해탄이 아닌 '대한 해협'을 쓰는 것이 적절하다. 


'빨갱이' 어원인 '빨치산' 뜻을 따져보면 재미있다. 빨치산 어원은 '파르티잔(partisan)'이다. 이는 정당(party) 당원들을 의미한다. (중략) 단순히 어원(파르티잔=정당 당원)으로만 놓고 보면 우리나라 각 정당에 소속된 의원이나 당원 모두가 '빨치산'인 셈이다. (112-3쪽) 


각하는 폐하 아래, 전하보다도 아래다. 그냥 고위 관료를 이르는 말이다. 조선시대에는 정승 같은 고위 관료를 각하로 부르기도 했다. (중략) 따라서 대통령 뒤에 각하 호칭을 쓰는 것은 존칭이 아니라 심하게 격을 낮추는 꼴이다. 우리가 지금 쓰는 '대통령'이라는 호칭은 그 자체로 극존칭이다. (128쪽) 


일본 국가 <기미가요>의 작곡가가 일본인이 아닌 독일인 프란츠 에케르트이고, 그의 묘지가 서울 마포구 합정동 양화진 외국인 묘지에 있다는 사실도 처음 알았다(<기미가요> 작곡가의 묘지가 서울에 있다니 뭔가 찜찜하다). 중국 국가는 아니지만 중국인민해방군 대표 군가인 <팔로군 행진곡>은 전남 광주 출신의 정을성 선생이 작곡했다. 이런 미니 역사 지식도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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