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시대 - 문보영 에세이 매일과 영원 1
문보영 지음 / 민음사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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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부터 '5년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5년 일기의 진가는 두 번째 해부터 알 수 있다고 들었는데, 두 번째 해에 들어선 지 열흘 하고 며칠이 지난 지금 그 말의 의미를 확실히 알겠다. 두 번째 해의 일기를 쓰면서 첫 번째 해의 일기를 읽어 보면 그때나 지금이나 대단한 일도 없고 엄청난 변화도 없다. 하지만 일기를 쓴 날은 적어도 그날 무엇을 하고 어떤 생각을 했는지 알 수 있지만, 일기를 쓰지 않은 날은 그날 무엇을 하고 어떤 생각을 했는지 아무것도 알 수가 없다. 이 일을 계기로 더욱 확실히 결심했다. 올해는 하루도 빠트리지 않고 일기를 쓰기로. 쓸 만한 일이 전혀 없는 날이라도 뭐라도 쓰기로. 


일기를 쓸 의욕이 없는 날에는 일기를 재미있게 잘 쓰는 작가들의 글을 읽어보는 것도 좋겠다. 그중 하나가 문보영 시인의 산문집 <일기시대>이다. 이 책 이전에 읽은 문보영 시인의 책으로는 매일 버린 물건들에 대해 쓴 <불안해서 오늘도 버렸습니다>와 미국 아이오와 문학 레지던시 프로그램에 참가한 경험을 소개한 <삶의 반대편에 들판이 있다면>이 있는데 두 권 모두 일기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 일기를 쓰는 대로 묶어서 책으로 내다니 부럽다는 생각이 들지만, 일기를 매일 꾸준히 쓰는 것조차 힘이 드는 나로서는 언감생심이다. 흉내는 고사하고 그저 이런 책을 읽었다고 한 줄이라도 쓸 수 있으면 다행일지도. 


내용은 일기답게 자유롭다. 낮에 만난 친구 이야기를 들려주기도 하고, 잠 못 드는 밤에는 어떻게 시간을 보내는지 알려주기도 한다. 최근에 재미있게 읽은 책 이야기가 나오기도 하고, 방 안 풍경을 스케치한 그림을 보여주기도 한다. 평범한 대학생이었던 그가 어떻게 해서 시인이 되었는지 계기를 소개하기도 하고, 시를 쓰는 과정이나 시를 쓸 때의 마음가짐에 대해 털어놓기도 한다. 때로는 우울에 빠지기도 하고 불안에 시달리기도 하면서, 최선이 아닌 '준최선'을 다하겠다는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모습이 남 같지 않아서 좋았다. 시인님 오래오래 행복하게 글 써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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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터밀크 그래피티 - 양장, 음식과 사람, 인생의 비밀을 찾아 떠난 이균의 미국 횡단기 에드워드 리 컬렉션
에드워드 리 지음, 박아람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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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몇 주 동안 <흑백요리사> 시즌2에 푹 빠져 살았다. <흑백요리사>는 영상도 재미있고 출연자들의 캐릭터도 매력적이고 여러모로 흥미를 자극하는 요소가 많지만, 이렇게 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애정을 받는 콘텐츠가 된 데에는 출연자 개개인의 서사가 중요한 몫을 차지한다고 생각한다. 특히 시즌1의 준우승자인 에드워드 리 셰프의 서사는 당시에도 많은 시청자들에게 감동을 주었고 여전히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나 역시 시즌1,2 통틀어 가장 좋아하는 셰프는 에드워드 리인데, 그의 요리를 맛본 적은 없지만(그가 콜라보한 상품은 먹어봤다 ㅎㅎ) 그가 하는 말이나 그가 쓰는 글, 문장에는 아무도 흉내낼 수 없는 그만의 소울이 담겨 있다고 느낀다. 에드워드 리의 음식 여행 에세이 <버터밀크 그래피티>를 읽으면서도 비슷한 감정이 들었다. 


이 책은 그가 2년 동안 미국 전역을 여행하면서 만난 이민자들의 사연과 그들의 '소울 푸드'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한국계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난 그는 어릴 때부터 어머니와 할머니가 만든 다양한 한국 음식을 먹고 자랐다. 당시에는 한국 음식은커녕 한국에 대해서도 잘 모르는 미국인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에 그는 자신이 먹고 자란 음식이 특이하고, 이런 음식을 먹고 자라는 경험은 특수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자라면서 주변의 이야기를 들어 보니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집 밖에서는 피자나 햄버거를 먹어도 가정에서는 자신들이 이민 온 나라의 음식을 먹고 있었다(미국은 이민자들의 나라이니까). 애초에 대표적인 미국 음식인 피자나 햄버거도 각각 이탈리아와 독일에서 온 이민자 음식이 아니던가. 그렇다면 이민자 음식에 대해 본격적으로 알아보자, 라고 생각해서 쓴 책이 이 책이라고 한다.


음식에 대한 책이지만 여행 에세이 형식이라서 읽다 보면 저자를 따라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이것저것 맛있는 음식을 먹어 보는 듯한 기분이 든다. 물론 대부분이 잘 모르는 음식이지만 재료와 레시피가 나오기 때문에 맛을 상상해 보는 즐거움이 있다. 음식과 여행 이야기 사이에 저자의 개인사도 조금씩 나오는데, 이야기꾼답게 에피소드 하나 하나가 영화 같고 드라마 같다. 특히 아버지가 임종하실 때의 일을 그린 마지막 에피소드가 좋았다. 소중한 사람이 세상을 떠나도 삶은 계속되고, 삶을 계속하기 위해서는 음식을 먹어야 한다는, 당연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숭고함을 잊기 쉬운 진리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하는 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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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낯의 삶
마리즈 콩데 지음, 정혜용 옮김 / 문학동네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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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마리즈 콩데가 20대 청년 시절을 보낸 1950년대 후반부터 60년대의 일들을 담고 있다. 훗날 위대한 작가이자 교수가 된 사람이라면 모범적이고 성실한 청년 시절을 보냈을 것 같지만, 적어도 이 책에 그려진 마리즈 콩데의 청년 시절은 그렇지 않다. 1937년 프랑스령 과들루프에서 태어난 마리즈 콩데(원래 성은 '부콜롱')는 유복한 부모 덕에 피부색으로 인한 차별이나 혐오를 겪지 않고 자랐다. 그랬던 그가 자신의 인종(흑인)과 국적(프랑스 식민지)에 대해 인식하기 시작한 건 대학 진학을 위해 파리로 유학을 오고 나서다. 그는 그때까지 인종 차별은 남의 일이고 자신은 파리 사람들과 '같은' 프랑스인이라고 생각했지만, 파리에서의 경험은 달랐다.


상처 받고 혼란스러웠던 그는 장 도미니크라는 남자를 만났고, 그 남자의 아이를 임신해 혼자서 출산했다. 첫 아들 드니를 키우면서 학교에 다니고 일을 하는 건 무리라고 생각한 그는 아이를 양육 가정에 맡기고 돈을 벌었다. 2년 후인 1958년에 마마두 콩데와 결혼해 드디어 안정적인 생활을 하는가 했지만 금방 남편과 사이가 안 좋아졌고 결국 아들을 데리고 기니로 떠났다. 당시 프랑스의 흑인 사회에서는 자신들의 뿌리가 아프리카에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고 아프리카의 역사, 문화, 예술과 연결되어야 한다는 의식이 강했다. 마리즈는 이러한 의식에 동조해 기니로 이주했지만, 기니 사람들은 프랑스어로 말하고 프랑스 문화에 익숙한 그를 그들과 같은 인간으로 여기지 않았다.


고향에서도, 파리에서도, 기니에서도 자신이 온전히 속할 수 있는 공동체를 발견하지 못한 그는 계속해서 남자를 만나고 성관계를 가지고 임신을 하고 아이를 낳는다(하나의 삶도 온전하기 힘들 때 더 많은 삶이 탄생하는 아이러니). 그러는 동안 아프리카에 정치적, 사회적 분쟁이 연이어 발생해 그와 그의 가족이 휘말리는 사건도 생긴다. 프랑스와 아프리카의 역사에 대해 더 많이 알았다면 이 책의 내용을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었겠지만, 이해하지 못한 채로 마리즈 콩데 개인의 생애에 관한 부분만 읽어도 충분히 극적이고 흥미로웠다. 이렇게 드라마틱하고 스펙터클한 삶을 산 작가는 어떤 소설을 쓸지도 궁금하다. 작가의 어린 시절을 담은 책 <울고 웃는 마음>도 읽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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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마음 있는 사람
정기현 지음 / 스위밍꿀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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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처음'은 설렌다. 하물며 그것이 '첫 책'이라면 그 책을 낸 작가에게도, 그 책을 읽는 독자에게도 설렘을 느끼게 하지 않을 수 없다. 정기현 작가의 첫 소설집 <슬픈 마음 있는 사람>을 읽는 마음이 그랬다. 정기현 작가를 알게 된 건, 민음사 팟캐스트 '말줄임표' 덕분이다. 민음사에서 편집자로 일하고 있는 그가 이 팟캐스트의 진행자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가 들려주는 책 이야기를 듣다 보니 그가 쓴 소설도 궁금해졌다. (공동 진행자인 김화진 소설가도 민음사 편집자 출신이다. 편집자로 일하면서 소설도 쓴다니. 다들 너무 대단하다.) 


<빅풋>은 '기은'이 중학교 때 친구 '새미'가 실종되었다는 말을 듣고 새미가 남긴 일기를 읽으며 그동안 몰랐던 새미의 삶을 상상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테니스 선수인 새미는 키는 작지만 발은 유난히 커서 신발장에 있는 신발들도 (당연히) 크다. <발밑의 일>에는 소인(小人)인 '새미'가 임준섭의 집에 숨어들어 한동안 생활하는 이야기가 나온다. 현실에 틈입한 비현실 또는 환상에 관한 이야기라는 점에서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이 떠오르기도 했다. <슬픈 마음 있는 사람>은 휴직 중인 '기은'이 동네 곳곳에 산재해 있는 어떤 낙서를 찾아다니는 이야기이다. (서울 송파구 거여동에 위치한 오카리나 박물관 이야기가 잠깐 나오는데 인터넷에 검색해 보니 실재하는 장소다.) 


<검은 강에 둥실>도 현실에 틈입한 비현실 또는 환상에 관한 이야기이다. 여름방학을 맞아 시골 할머니 집에서 지내게 된 '새미'가 할아버지 무덤가에서 멧돼지를 발견하면서 벌어지는 일종의 환상 모험담인데 흥미롭다. <마음대로 우는 벽시계>는 고장 난 뻐꾸기시계를 공원에 가져간 기은이 파쿠르를 하는 아이들과 얽히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린다. (파쿠르 또한 실재하는 스포츠라고. 모르는 게 참 많다.) <농부의 피>는 길을 걷던 '승주'가 우연히 주인 없는 땅을 발견하고 농사를 시작하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린다. 평범한 회사원이었던 승주는 농사를 하면서 자신이 타고난 농부임을 깨닫고 기뻐하지만 어떤 사람의 등장으로 기쁨은 빠르게 식는다.


<시험>은 외고를 목표로 열심히 공부하던 전교 1등 '승주'가 학교의 '노는 아이들' 무리와 어울리게 되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린다. 우등생, 모범생의 일탈 또는 타락은 소설에서 드물지 않은 소재이지만, 이 소설에서 승주가 벌이는 악행은 이유도 없고 대상도 정해져 있지 않다는 점에서 더욱 위험하고 공포스러웠다. <바람 부는 날>은 회사원인 '승주'가 출근길에 있는 공사가 중단된 아파트 단지를 둘러 가지 않고 통과해 가기로 하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린다. 이 소설도 현실에 틈입한 비현실 또는 환상에 관한 이야기인데, (작가님이 팟캐스트에서 좋아한다고 하신) 판판야(panpanya)의 만화와도 닮았다고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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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아한 유령
장진영 지음 / 민음사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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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작가의 책을 세 권쯤 읽었으면 좋아하는 작가라고 해도 될 것 같다. 장진영 작가의 책을 <취미는 사생활>, <치치새가 사는 숲>에 이어 <우아한 유령>까지 총 세 권을 읽었는데, 세 권 다 (좋은 의미로) 강렬하고 충격적이고 재미도 있어서 앞으로도 장진영 작가의 책이 나올 때마다 계속해서 읽게 될 것 같다.


<우아한 유령>에는 여덟 편의 단편이 실려 있다. 첫 번째 단편 <입술을 다물고 부르는 노래>는 청각 장애가 있는 '미조'의 학습을 보조하는 아르바이트를 하게 된 대학생 '나'가 겪는 일을 그린다. 아르바이트를 여러 개 하느라 대학 생활을 제대로 즐기지 못하고 있던 '나'는 미조에게 우정 비슷한 감정을 느끼고 미조도 그런 것 같지만, '나'는 어디까지나 장학금을 받기 위해 미조와 알게 된 것이고 미조 역시 '나'에게 도움을 받는 처지이기에 둘의 거리는 좀처럼 좁혀지지 않는다. 만약 두 사람이 학습 보조와 보조 대상이 아닌 평범한 친구나 선후배로 만났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미조로 인해 약간의 돈을 얻은 '나'가 잃은 건 무엇일까.


우리가 '그렇게' 만나지 않았다면 다를 수도 있지 않았을까,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더 있다. <용서>는 교통사고 가해자의 아들이 아버지 대신 피해자 가족에게 사죄하러 가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린다. 피해자의 부모는 죽은 딸을 생각하면 무슨 일이 있어도 가해자를 용서할 수 없다는 입장이었지만, 아버지를 대신해 사죄하러 온 아들이 겪고 있을 고통을 생각하면서 조금씩 마음이 약해진다. 어떻게 보면 갑자기 딸을 잃은 부모나 살인자의 자식이 된 아들이나 비슷하게 괴롭고 당황스러운 처지가 아닐까. 그러나 한쪽은 피해자의 부모이고 한쪽은 가해자의 아들이라서 다시는 만나지 않는 편이 좋게 된 사이라니. 기구하다.


이어지는 단편 <허수 입력>은 여성이 자신의 성별 때문에 느낀 불안이 어떤 식으로 그 자신의 삶을 갉아먹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일층이 주유소, 이층이 가정집인 집에 살았던 '나'는 어릴 때 주유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남자들이 자주 자신의 집 화장실을 빌려 썼던 기억이 있다. 그 기억 때문에 '나'는 어른이 되면 아무나 들어오지 못하는 안전한 집에 살고 싶었지만 좀처럼 소망을 이루지 못한다. 대체 여자에게 '안전한 집'이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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