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의 미래 - 편혜영 짧은소설
편혜영 지음 / 문학동네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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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의 미래>는 2000년 등단한 소설가 편혜영이 2025년에 발표한 소설집이다. 편혜영 작가의 책 중에는 <아오이가든>, <홀>, <재와 빨강>을 읽었는데 하나같이 공포스러웠다. 이번에 읽은 <어른의 미래> 역시 공포스럽기는 마찬가지이지만 전에 읽은 책들에 비해서는 읽을 만했다. 이전 작품들이 현실인지 환상인지 분간이 안 가는 내용이라서 공포스러웠다면, <어른의 미래>에 실려 있는 작품들은 상대적으로 현실적이다. 환상적인 장치를 빌리지 않고 현실에서 충분히 일어날 법한 상황만으로 공포를 자아냈다는 점에서 오히려 더 공포스러운 면도 없지 않다. 


이를테면 <냉장고>에서 할아버지와 단둘이 사는 야구부 소년이라든가, <어른의 호의>에서 자식이 있는 남자라든가, <깊고 검은 구멍>에서 신발과 우산을 고치는 수리공 등은 대단하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드물지도 않은 평범한 사람들이다. 그러나 같이 살던 할아버지가 죽고, 자식이 학폭 피해자가 되고, 새로운 사업을 시작했다가 이상한 일에 휘말리는 등 의도하지 않았거나 의도한 일 때문에 일상이 무너지고 인생 전체가 흔들리는 경우가 내 주변에도 종종 있다. 그런 경우를 보면서 불쌍한 마음을 품는 것이나 아직 나는 괜찮다고 안도하는 마음을 품는 것이나, 어쩌면 선보다 악에 가까운 반응일지 모른다. 


어쩌면 공포는 외부가 아닌 우리 내부에 있는지도 모른다. <그것만 생각해>에서 다리 부상을 당해 휠체어 신세가 된 여자는 부상 자체보다 오기로 한 남자 친구는 오지 않고 옆방 커플의 소리는 너무 잘 들리는 상황 때문에 심란하다. <한밤의 새>에서 직장을 관두고 남쪽 지방의 펜션을 인수하려고 시찰 겸 여행을 떠난 부부는 친절한 줄 알았던 주인의 다른 모습을 보고 혼란스러워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그건 그들이 스스로 답을 정해 놓고 나중에 끼워 맞춘 이유인지도 모른다. <비닐하우스>에서 도시를 떠나 귀농한 남자는 범죄 사건 용의자가 시체를 묻은 곳이 하필 자신의 비닐하우스인 걸 알게 된다. 하지만 그보다 그의 기분을 언짢게 만드는 건, 그와 사이가 좋지 않은 이장과 동네 사람들의 반응이다. 


대부분의 공포는 불안과 연결되어 있고, 불안은 무지에서 비롯된다. <이윽고 밤이 다시>의 남자는 자신이 과거에 저지른 잘못을 알고 있다는 내용의 전화를 받고 발신자가 누구인지 몰라 불안에 떤다. <신발이 마를 동안>의 여자는 어느 비 오는 날 사무실을 방문한 외판원 남자와 훗날 부부의 연을 맺지만 그때는 그와 그렇게 될 줄 모른다. <아는 사람>의 여자는 간호사로 일하는 병원에서 옛 동창으로 짐작되는 사람을 만나지만 자신이 왜 그를 기억하는지는 모른다. 


한국에서 아파트는 여러 가지 의미로 공포스러운 존재인데 편혜영의 소설에서도 그렇다. <앨리스 옆집에 살았다>에서 아파트에 사는 한 남자는 수리 중인 옆집에 몰래 들어갔다는 의심을 받고 난처한 상황이 된다. <모든 고요>의 여자는 층간 소음에 시달리다 어느 날 갑작스러운 정적을 맞는다. 무슨 일이 일어나도 불안하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도 불안한 도시의 일상과 도시인들의 심리를 날카롭고 서늘하게 그려낸 점이 인상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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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루됨 - 인류학자의 세상 읽기
조문영 지음 / 글항아리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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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에서 사회과학을 전공했지만 졸업 후 전공과 무관한 직업을 가지게 되면서 사회과학 책을 읽는 일이 뜸해졌다. 끽해야 여성학 책을 읽는 정도이고 그 외 분야는 좀처럼 안 읽는다. 그래서 연세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 조문영의 책 <연루됨>을 읽는 동안 내용을 받아들이는 한편으로 내가 만약 대학원에 가서 사회과학을 연구하는 학자가 되었다면 어땠을까, 라는 상상을 했다. 계속해서 이런 책을 대량으로 읽고 분석하고 이런 글을 쓰고 가르치는 사람이 되었다면 지금과는 다른 눈으로 사람들을 바라보고 다른 머리로 세상을 이해했을까. 아니면 지금의 내가 그때와는 다른 존재일지도.


이 책에서 저자는 한국 사회의 빈민, 노동자, 청년, 노인, 여성, 장애인, 원주민, 이주민, 지방, 비인간 문제에 대해 총 64편의 글을 통해 소개한다. 제목의 '연루'라는 단어는 '잇닿고, 인연을 맺으며, 묶어내는 감각'을 의미한다. 이는 권력자들이 통치를 쉽게 하기 위해 각각의 사회 집단을 분리하고 배제하고 차별하고 거부하는 것을 대중이 어떻게 저항하거나 해결할 수 있을지에 대해 저자가 내린 일종의 답이자 대안이다. 저자와 같은 학자, 연구자들이 하는 비판 역시 통치 권력에 대한 저항 및 탈예속화의 실천이 될 수 있으며, 비판이 그저 비판을 위한 비판에 그쳐서는 안된다는 조언이 인상적이었다.


오랫동안 중국에서 유학한 저자는 이 책에서 자신이 직접 경험한 중국 이야기도 많이 들려둔다. 저자가 가르치는 학생들이 소위 말하는 명문대에 다니는데도 불구하고 중국에 대한 지식이 거의 없고, 그나마 가진 지식도 언론이나 인터넷을 통해 얻은 왜곡, 편향된 정보뿐이라 안타깝다고 토로한 대목이 기억에 남는다. 중국에 대해 잘 아는 저자도 최근 중국 정부의 행태를 보면서 분통이 터질 때가 많지만, 중국 정부가 싫다고 중국 전체를 싫어하는 건 (한국과도 관련이 깊은) 중국의 오랜 역사와 문화, 예술 등에 대해 알 기회를 포기하는 일이다. 일부러라도 중국뿐 아니라 다른 나라에 대해 공부하는 시간을 가져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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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주머니는 맑고 강풍
최진영 지음 / 핀드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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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주머니는 맑고 강풍>은 소설가 최진영이 쓴 99편의 일기를 엮은 책이다. 일기의 시작 지점에서 저자는 장편 소설 집필을 멈춘 상태이고, 아직 제주에 살고 있으며, 응원하는 야구 팀의 경기를 보는 즐거움에 푹 빠져 있다. 하루빨리 집필을 재개해 원고를 넘기고 독자들을 만나고 싶지만, 마감이 임박한 다른 원고들을 써내느라 바쁘고, 제주와 서울을 오가느라 몸도 힘들고, 응원하는 야구 팀의 경기 결과에 따라 마음이 요동쳐 집필에 집중하기가 쉽지 않다. 


일견 반성문 같기도 한 일기가 한동안 이어지다 조금씩 변화가 생긴다. 그동안 열심히 마감을 쳐낸 단편 소설과 교정을 본 개정판 책들이 세상에 나오고, 제주에서 육지로 이사하고, 응원하는 야구 팀이 역대급 성적을 낸다. 장편 소설 집필에도 속도가 붙는데, 그렇게 완성된 책이 2023년에 나온 <단 한 사람>이다. 저자처럼 오랫동안 글을 써온 작가에게도 글 쓰는 일은 늘 어렵고, 어려워도 계속 쓰다 보면 어떻게든 끝이 난다는 걸 여실히 알 수 있었던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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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공원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60
마르그리트 뒤라스 지음, 김정아 옮김 / 문학동네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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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는 사람과 스몰토크를 잘하는 사람이 부럽다. 날씨 같은 가벼운 주제에 관해서라면 낯선 사람과도 얼마든지 대화를 나눌 수 있지만, 상대가 조금이라도 사적인 영역에 발을 들이는 듯한 기분이 들면 대화를 이어나가기가 어렵다. 나는 아니지만 어떤 사람들은 스몰토크를 잘하고 심지어 즐기기도 한다는 걸 알고 있다. 가까운 가족이나 친구에게는 털어놓기 힘든 이야기를 일부러 버스나 지하철에서 옆자리에 앉은 사람에게 들려주고 그걸로 기분을 풀거나 마음의 짐을 더는 사람도 있다는 걸 안다(어차피 다시는 안 볼 사이이기에 속마음을 들려줘도 걱정이나 부담이 없는 것이다). 


프랑스의 작가 마르그리트 뒤라스가 1955년에 발표한 소설 <동네 공원>은 어느 봄날 오후 동네 공원에서 우연히 같은 벤치에 앉게 된 젊은 여성과 중년 남성의 대화를 그린다. 여자는 스무 살의 가사도우미로 매일 아이를 돌보고 과체중의 노인을 씻기고 먹이는 노동을 하며 몸과 마음 모두 지쳐 있는 상태다. 불행한 현실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결혼뿐이라고 여긴 여자는 댄스 클럽에 나가서 춤을 추며 자신과 결혼해 줄 남자를 물색하지만 쉽지 않다. 남자는 가방 하나 들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물건을 파는 것으로 생계를 잇고 있는 행상이다. 가난한 육체노동자이고, 매일 열심히 일하지만 장래가 막막하다는 공통점이 있는 이들은 잠시 쉬어 가려고 들른 공원에서 우연히 만난 상대와 대화를 나누며 각자의 인생의 의미를 곱씹는다. 


이 책에서 인상적이었던 점은 불행한 현실에서 벗어나기 위해 (어쩌면 더 불행해질지도 모르는) 결혼이라는 관습적인 길을 가려고 하는 여자를 오히려 남자가 말린다는 것이다. 남자는 여자에게 인간에게는 먹고 자는 욕구만 있는 게 아니라 인간으로서 인정받고 싶어 하는 욕구도 있으며, 행상으로 일하는 지금보다 훨씬 더 자유로웠던 여행의 추억을 들려주며 결혼(이라는 예속)을 유일한 정답으로 간주하지 말라고 한다. 남자의 말이 여자의 마음에 얼마나 가닿았는지는 모르지만, 마침내 떠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늘 동경하며 찾아다니는 (떠나지 못한) 나의 마음에는 충분히 와닿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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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계인 자서전
마리-헐린 버티노 지음, 김지원 옮김 / 은행나무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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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의 좋은 점은 소설을 읽는 동안에는 다른 시간, 다른 공간에서 다른 인간으로 살아볼 수 있다는 것이다. 어떤 소설은 다른 인간이 아니라 다른 동물이나 다른 식물, 다른 존재로도 스스로를 상상해 볼 수 있게 도와준다. 마리 헐린 버티노의 장편 소설 <외계인 자서전>이 그렇다. 소설의 주인공 '아디나'는 1977년 미국에서 태어난 인간 여자 아이지만 스스로를 외계인이라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고서야 보이저 1호가 우주로 향하고 <스타워즈>가 탄생한 기념비적인 해에 자신이 태어날 리도 없거니와, 무엇보다 평범한 팩스 기계로 외계 동료에게 지구 관찰 일기를 보내고 답변을 받는 일이 가능할 리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디나는 언젠가 외계인들이 지구로 와서 자신을 데려갈 거라고 믿지만, 현실은 외계인 이야기가 끼어들 틈조차 없다. 아디나의 엄마 테레즈는 장애인 시설에서 일하며 혼자 힘으로 외동딸인 아디나를 키운다. 아디나는 엄마가 얼마나 힘들게 일하면서 자신을 키우고 있는지 잘 알기에 좋은 딸이 되려고 노력하지만, 자신이 다른 아이들보다 훨씬 가난하고 불우한 형편에 놓여 있다는 걸 모르지 않고 그 때문에 종종 괴롭고 외롭다. 다행히 아디나에게는 좋은 이웃들과 친구들이 있어서 늘 괴롭고 외롭지만은 않다. 시간이 흐르고 나이가 들면서 아디나가 외계인과 팩스를 주고받는 일은 점점 줄어들지만, 빈자리를 아디나가 새롭게 만나는 사람들과 아디나가 좋아한 책, 음악, 영화, 연극 등이 채우며 아디나의 인생은 점점 더 넓어지고 깊어진다. 


나는 소설을 읽는 내내 아디나가 외계인이라고 믿는 존재, 그러니까 아디나가 팩스로 지구 관찰 일기를 보내면 답변을 해주는 존재가 따로 있으며 소설 후반부에 나올 줄 알았다(아디나의 친부라든가 아니면 잘못 도착한 팩스에 진심으로 답해준 마음 좋은 어른이라든가...). 그런데 끝까지 그의 정체가 밝혀지지 않아서 그런가 보다 했는데 정말 외계인이었던 걸까...? 그도 외계인이고 아디나도 (인간 여자아이가 아니라) 외계인이라면, 평생을 낯설고 이질적인 존재들과 어울려 살아야 했던 아디나는 그동안 얼마나 힘들었을까. 


어쩌면 이 소설의 외계인은 지구 바깥의 천체에서 온 우주인이라는 문자 그대로의 의미가 아니라, 같은 인간이지만 사회적으로 힘이 없고 다수가 아니라는 이유로 힘 있고 다수인 사람들과 같은 대우를 받지 못하는 약자, 소수자들을 뜻하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생각하니 이 소설뿐 아니라 다른 소설이나 영화, 드라마, 만화 등에 나오는 외계인들도 전과 다른 시선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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