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차의 꿈
데니스 존슨 지음, 김승욱 옮김 / 다산책방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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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다혜 기자님의 추천으로 넷플릭스에서 영화 <기차의 꿈>을 보고 너무 좋아서 원작 소설을 찾아 읽었다. 근데 소설과 영화의 내용이 비슷하나 같지 않다. 일단 영화와 소설의 큰 줄거리를 거칠게 요약하면, 고아 출신의 가난한 백인 남자 로버트 그레이니어가 주로 육체 노동에 종사하며 한 평생을 살다 간 이야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사이에 한 여자와 사랑에 빠져 미래를 약속하기도 하고, 그 여자와의 사이에서 예쁜 딸을 얻기도 하고, 화재로 가족과 집을 모두 잃는 등 드라마틱한 사건들이 일어나기도 하지만, 넓게 보면 그가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도 일어날 수 있었던 일이고, 그래서 특별하다고는 할 수 없는 - 평범하다고 말할 수 있는 인생을 산 사람이고, 바로 이 점 때문에 영화가 많은 사람들의 공감과 찬사를 받았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생각하면서 원작 소설을 읽었는데, 줄거리는 동일하지만 세부적인 내용이 조금 다른 부분이 있다. 가령 영화에서 로버트는 중국인 노동자가 백인 노동자들에게 죽임을 당할 때 그들을 말리려다가 저지 당하고 끝내 그를 구하지 못한 것에 대해 평생 동안 죄책감을 느낀 것으로 묘사된다. 반면 소설에서 로버트는 중국인 노동자를 죽이려는 백인 노동자 무리에 자발적, 적극적으로 가담한다. 영화에 소년 시절의 로버트가 숲에서 부상을 당해 죽어가는 남자를 만나는 장면이 짧게 나오는데, 소설에는 이 남자의 서사가 제법 길게 나오고 그 내용이 상당히 끔찍하다. 영화에는 안 나오지만 소설에는 나오는 암소 이야기도 충격적이었다(남자들은 대체 왜 그러지...?). 작가가 왜 이런 소설을 썼는지, 감독(각본도 담당함)은  원작 소설을 그렇게(낭만적이고 감동적으로) 각색했는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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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브플롯 - 문학에서 발견하는 무한한 좌표들 은행나무 시리즈 N°(노벨라) 16
황모과 지음 / 은행나무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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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수인 나현은 이혼 후 혼자서 아들을 키우는 언니 미현의 집에 얹혀 살고 있다. 반년 간의 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나현은 언니와 조카의 행동에 묘한 위화감을 느낀다. 언니가 나현만 보면 나가서 돈 벌라고 타박하고, 조카한테 장난을 치면 낄낄대며 웃어주는 건 예전과 똑같은데, 왠지 모르게 다들 예전보다 감정이 메마른 듯하다. 결국 나현은 '김듀라 샐비지 클리닉'이라는 곳에 가게 되고 그곳에서 '감각 과잉 감정 과발산증'이라는 진단을 받는다. 나현이 보기에는 다른 사람들이 '감각 상실 감정 무발산증' 같은데 자신이 문제라니. 그런 나현의 눈앞에 더욱 이상한 문장이 뜬다. '제87차 서브플롯'은 실패했으니 다시 '메인플롯'으로 돌아간다고.


황모과의 소설 <서브플롯>은 첫 번째 장(章)만 보면 백수인 여동생과 현실적인 언니, 귀여운 조카, 이렇게 세 사람이 나오는 가족 드라마처럼 보인다. 하지만 첫 번째 장의 끝에서 이 이야기는 '메인플롯' 즉 실제의 나현이 경험한 '서브플롯' 중 하나라는 사실이 드러나고, 대체 나현의 실제 인생(메인플롯)은 무엇인지, 살면서 어떤 일을 겪었기에 그것을 소화하기 위해 이토록 많고 다양한 서브플롯을 필요로 하게 되었는지를 궁금해 하게 만든다. 나현은 처음엔 메인플롯의 원인 또는 결과를 바꾸기 위한 용도로 서브플롯을 이용하려고 했지만, 수많은 서브플롯을 경험하면서 자신이 바라는 완벽한 서사는 실현할 수 없다는 걸 받아들이게 된다. 최종적으로 나현은 자신이 경험한 메인플롯과 수많은 서브플롯을 통해 얻은 교훈 및 아이디어를 조합해 자기만의 이야기를 완성한다. 인간이 이야기를 필요로 하는 이유, 인간에게 이야기가 필요한 이유가 바로 이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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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진과 데이브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40
서수진 지음 / 현대문학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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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여자 유진은 호주 남자 데이브와 연애 중이다.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한 유진은 졸업 후 도망치듯 호주로 떠났고,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술집에 갔다가 우연히 만난 데이브와 연인으로 발전했다. 두 사람은 연애 초반부터 각자가 나고 자란 문화의 차이 때문에 크고 작은 다툼을 빚는다. 예를 들어 유진은 정식으로 결혼할 사이도 아닌데 부모님께 자신을 소개하고 싶다는 데이브가 너무 성급한 것 같은 반면, 데이브는 자신을 좋아한다면서 자신의 가족과는 만나고 싶지 않다는 유진이 좀처럼 이해가 되지 않는다. 이런 차이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은 호주와 한국을 오가며 5년 넘게 연애를 이어간다. 


서수진 작가의 소설 <유진과 데이브>를 한 줄로 요약하면 '한국 여자와 호주 남자의 국제 연애 이야기' 정도가 될 것이다. 나도 딱 그 정도를 기대하고 읽었는데, 읽어보니 그렇게 단순히 요약할 만한 내용이 아니다. 유진과 데이브 사이에는 문화 차이만 있는 게 아니라 인종 차이, 계급 차이, 젠더 차이도 있다. 호주 안에서도 시드니의 문화와 태즈메이니아의 문화가 다른 것처럼 지역 차이로부터도 자유로울 수 없다. 어떤 커플이든 처음에는 사랑만으로 시작했더라도 어느 순간부터는 사랑만으로 버틸 수 없는 지점이 온다. 반대로 처음에는 사랑만으로 시작한 관계는 아닌데 점점 사랑 외에는 설명할 방법이 없는 관계가 되기도 한다. 유진과 데이브는 전자일까 후자일까. 전자 같은 후자, 후자 같은 전자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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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든 눈물 참은 눈물 마음산책 짧은 소설
이승우 지음, 서재민 그림 / 마음산책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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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산책 짧은소설 시리즈를 좋아한다. 이 시리즈로 나오는 책들에는 일반적인 단편보다도 훨씬 짧은 길이의 소설이 주로 실리는데, 그 짧은 길이의 소설에도 작가의 성향이나 특징이 드러나는 것이 재미있다. 이승우 작가의 <만든 눈물 참은 눈물>도 그렇다. 이승우 작가의 소설에는 비슷한 듯 다르거나 다른 듯 비슷한 것 사이에서 고민하거나 갈등하는 인간이 자주 등장하는데, 이 책에서도 그렇다. 


가령 표제작 <만든 눈물 참은 눈물>에서 화자인 '케이'는 어떤 일 때문에 사죄하며 눈물을 참는 영화배우의 모습을 보면서 흐르는 눈물을 참는 것과 안 나오는 눈물을 흘리는 것 중 어떤 것이 더 어려울지 생각한다. 출간 당시에는 주목을 못 받았지만 어느 명사의 추천을 받으면서 베스트셀러가 된 책이 있다면 그 책을 걸작으로 만든 것은 작가인가 명사인가(<걸작의 탄생>), 절판된 소설집의 개정판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작가의 마음에 들지 않아 두 편을 제외한다면 그 책은 개정판인가 새 책인가(<훼손>), 개정판을 내면서 문장을 다 뜯어 고치면 같은 글이라고 볼 수 있는가(<최선의 문장>) 등 쉽게 답을 내릴 수 없는 문제들을 소설의 소재로 삼은 것이 흥미롭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작품은 <집 이야기>라는 단편이다. 내용을 거칠게 요약하면, 부자가 자신이 살 호화 저택을 몇 년에 걸쳐서 짓는 동안, 목수는 검소한 모양의 자기 집을 몇 달 만에 완성하고 집 없는 사람들에게도 집을 지어줘 거대한 마을을 이루었다는 이야기이다. 옛날 동화 같지만, 돈이나 집 등을 남들보다 더 많이 가지고 그걸 자랑하는 걸 성공이나 행복으로 여기는 사람들을 많이 보다가 이런 이야기를 읽으니 위로가 되었다. 어차피 부자는 못 되니 목수라도 되어야 할 텐데 그조차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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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없는 자들의 목소리
황모과 지음 / 래빗홀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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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나는 넷플릭스 드라마 <아웃랜더>를 재미있게 보고 있다. 이 드라마를 통해 그동안 역사적 사건으로만 알았던 스코틀랜드 독립 전쟁의 내용을 보다 자세히, 생생하게 알 수 있어서 좋다. 역사를 다룬 영화나 드라마의 가치는 바로 이런 것이 아닌가 싶다. 소설도 마찬가지이다. 관동대지진 조선인 학살 100주기인 2023년에 출간된 황모과의 소설 <말 없는 자들의 목소리>는 1923년 9월 일본에서 일어난 관동대지진이라는 역사적 사건을 타임슬립이라는 SF적 장치를 통해 독자로 하여금 보다 자세히 배우고 보다 생생히 간접 체험하게 해준다.


소설은 2023년 일본 수도권 어딘가에서 한국 청년 민호와 일본 청년 다카야가 100년 전 관동대지진이 일어난 현장 한복판으로 타임슬립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두 사람은 함께 움직이고 있지만 입장은 사뭇 다르다. 아시아 홀로코스트 진상 규명 위원회에서 일하는 민호는 관동대지진 당시 억울한 죽음을 당한 조선인들을 한 명이라도 구하는 것이 목적이다. 반면 조부가 히로시마 원폭 피해자이고 우익재단의 지원을 받고 있는 다카야는 민호가 찾고 싶어하는 진실과는 또 다른 진실이 있을 거라고 믿는다. 결국 두 사람은 입장의 차이를 극복하지 못한 채 따로 움직이기로 한다.


한편 1923년 8월 말 도쿄에서 다리 공사 인부로 일하는 조선인 평세는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평세에게는 어릴 때부터 상대와 몸이 닿으면 그 사람이 죽는 순간이 보이는 일종의 예지력이 있었다. 이 능력 때문에 고향에서 살 수 없게 된 그는 도망치듯 일본으로 왔는데, 하필 자신에게 가장 잘해주는 마달출의 몸에 닿았을 때 그가 얼마 후에 비참한 죽음을 맞는 장면을 본 것이다. 평세의 불안한 예감대로 얼마 후 일본의 관동 지역을 뒤엎는 거대한 지진이 일어나고 그 여파로 조선인 학살이 일어난다. 평세는 달출과 함께 도망을 가는데, 위기의 순간마다 낯선 차림을 한 조선인 청년이 나타나 그들을 구한다.


소설의 전체적인 구성만 보면 미래에서 온 한국인 청년 민호가 과거에 일어난 관동대지진이라는 사건의 피해자인 조선인들을 구하는 내용 같지만, 소설의 결말 부분까지 읽으면 조선인 피해자들을 구한 것은 한국인 후손들만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다. 1923년 당시에도 목숨의 위협을 무릅쓰고 위험에 빠진 조선인들을 도와준 소수의 일본인들이 있었고(이는 픽션이 아니라 저자가 직접 그 후손을 인터뷰하고 관련 자료를 찾아보고 쓴 내용이다)오히려 같은 조선인이지만 일본의 앞잡이 노릇을 하며 더욱 악랄하게 조선인을 괴롭히는 조선인도 있었다(이들이 자경단으로 활동하다 나중에 야쿠자로 발전한 것으로 알고 있다).


최근 들어 한국은 물론 일본에서도 관동대지진을 재조명하는 콘텐츠가 종종 나오고 있는데, 내 생각에는 관동대지진처럼 대중이 가지고 있는 불안이나 불만의 감정을 약자, 소수자에 대한 혐오로 연결시켜서 그들을 대상으로 폭력성을 노출하게 함으로써 대중이 가진 불안이나 불만에 대해 직접적인 책임이 있는 사람들이 책임을 피하는 상황이 한국, 일본은 물론이고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기 때문인 것 같다. 관동대지진 하면 일단 일본을 규탄하는 목소리부터 나오고 그것이 맞지만, 요즘에는 비슷한 상황이 한국에서도 벌어질 수 있다는 걱정을 지우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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