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음개 시라코 1
야스하라 모에 지음 / 미우(대원씨아이)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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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빨리 추운 겨울이 가고 따뜻한 봄이 왔으면 좋겠지만, 이 만화를 보면 나의 바람이 모두의 바람은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야스하라 모에의 만화 <얼음개 시라코>는 일본 최북단의 섬 홋카이도를 무대로 얼음개 '시라코'와 그의 인간 친구 '시노다 타이치'의 모험을 그린다. 얼음개는 일반적인 개와 다르게 얼음으로 이루어진 개로, 온도가 따뜻해지면 녹기 때문에 추운 곳에서만 살아갈 수 있다. 그런 시라코의 친구가 된 타이치는 오랫동안 가족도 만나지 않고 시라코가 살 만한 곳을 찾아 다니며 지내고 있지만, 점점 따뜻해지는 기온과 '저주받은 개'라며 얼음개를 혐오하는 인간들 때문에 생활이 쉽지 않다.


처음에 이 만화를 봤을 때는 얼음개가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가상의 존재라고 생각해서 이 만화 자체도 SF 또는 판타지 장르에 속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만화를 읽으면서 얼음개처럼 온도가 낮은 지역에서만 살 수 있는 동물들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사실이 떠올랐고, 그들의 안위나 생존에 대해서 신경 쓰지 않고 개발이라는 명목의 파괴를 일삼는 인간들의 모습과 만화 속에서 얼음개를 박해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크게 다르지 않다고 느꼈다. 만화의 배경이 홋카이도라서, 홋카이도의 다양한 지역 이름과 지역별 문화, 생활, 정서 등이 나오는 점도 인상적이었다. 2권도 읽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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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혼자는 익애하는 척 6 - 완결
나카노 에미코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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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카노 에미코의 <약혼자는 익애하는 척>은 경제적으로 위기에 놓인 가문을 구하기 위해 재력으로 유명한 가문의 차남 파하드와 계약 약혼을 한 라티에르가 주인공인 로맨스 만화다. 모든 걸 갖춘 파하드가 가난한 자신을 진심으로 좋아할 리 없다고 믿고 있는 라티에르는 그를 이용하고 있다는 죄책감에 시달리다 이별을 선언한다. 하지만 라티에르의 큰할아버지가 사고를 치는 바람에 큰 돈이 필요해지고, 그 돈을 구하려면 결혼밖에 방법이 없다는 파하드의 말에 설득된 라티에르는 엉겁결에 그와 결혼을 하게 된다. 그동안 두 사람의 관계를 의심하던 사람들은 두 사람이 정말로 결혼을 한다는 사실에 경악한다.


사실 이 결혼에 가장 경악하고 있는 인물은 라티에르다. 라티에르는 결혼을 발표하고 결혼식을 준비하는 동안 내내 두 사람이 정말로 결혼을 한다는 사실을 믿지 못한다. 결혼식을 마친 후에는 첫날밤을 보내야 한다는 사실도 도시전설로 치부하며 겁낸다. 그렇게 어영부영(?) 부부가 된 두 사람 앞에 몇 년 전에 결혼해서 아이도 있는 파하드의 형 부부가 나타난다. 라티에르는 자신보다 파하드에 대해 (당연히) 더 많이 알고 있는 형과 형수에게 열등감을 느끼는데 이런 감정이 애정 아니면 뭔지... 불청객 같았던 형 부부 덕분에 파하드가 자신을 약혼자&신부로 선택한 이유도 알게 되는데 이 대목도 참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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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다미 넉 장 반의 가시공주 5
사토 자쿠리 지음, 요시다 무츠미 그림 / 대원씨아이(만화)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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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토 자쿠리의 <다다미 넉 장 반의 가시공주>는 아빠는 없고 엄마는 집 나가서 혼자서 생계를 해결해야 하는 가난한 여고생 '코바야시 신라'가 학교 최고의 인기남 3인조 '라이', '카난', '햣케이'와 엮이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린 로맨스 만화다. 카난의 여동생 '세이나'의 과외를 해주게 된 신라는 어느 날 카난에게 그의 가정사를 듣게 된다. 카난이 중1 때 카난의 아버지가 세이나의 어머니와 재혼했고, 카난과 세이나는 피로 이어진 남매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새로운 가정에 자신의 자리가 없다고 느낀 카난은 집을 나와 혼자서 생활했고, 그 사연을 들은 신라는 남매를 위해 자신이 뭔가 해주고 싶다고 느낀다.


마침 마을에 여름 축제가 열리고, 세이나가 카난 오빠와 함께 가고 싶어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신라는 자신도 함께 간다는 조건으로 세이나의 어머니를 설득하는 데 성공한다. 덕분에 세 사람은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세이나가 귀가한 후에는 카난과 신라 둘이서 축제를 즐기는데 하필 그 광경을 햣케이가 목격한다. 얼마 전까지 햣케이한테 호감이 있었던 신라는 카난에게 끌리는 자신을 발견하고 당황스러워하는데, 마침 햣케이가 4인 온천 숙박권에 당첨되면서 넷이서 온천으로 여행을 가게 된다. 여자1 남자3 온천 여행이 말이 되나 싶은데, 더 말이 안 되는 상황이 마지막에 펼쳐져서 다음 권을 안 볼 수가 없다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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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냥한 밀크 4
타카다 로즈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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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카다 로즈의 <상냥한 밀크>는 15년차 소설가 아오바 요모기와 그의 가사도우미이자 세러피스트인 시로(카네시로 린)의 기묘한 관계를 그린 여성향 로맨스 만화다. 3권에서 아오바의 취재에 응한 세러피스트는 하필이면 시로의 오랜 친구인 요우(나루바 카나메)였다. 요우는 고등학교 시절부터 시로와 알고 지냈는데, 얌전한 외모와 다르게 연상인 여자들만 골라 사귀는 데다가, "애당초 내가 누군가의 일 순위가 될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 안 해"라며 비관적인 태도를 보이는 시로에게 호기심과 연민이 섞인 감정을 느껴 왔다. 그런 시로의 마음을 사로잡은 여자가 아오바 요모기라니. 이걸 신경 쓰는 이 녀석의 심리는 또 뭘까. 


한편 아오바는 자신의 작업을 전적으로 지지해 주는 편집자로부터 2화 이후의 전개는 무조건 러브스토리로 가야 한다는 말을 듣고 고민에 빠진다. 아무리 허구임을 가정한 소설이라고 해도, 자신과 시로를 모델로 한 두 인물의 관계를 연인으로 설정하는 데 부담을 느낀 것이다. 아오바의 선배이자 데뷔 전부터 도와준 편집자이자 얼마 전까지 비밀리에 교제 중이었던 전 애인 시노노메 역시 아오바의 신작이 여성 소설가와 남성 세러피스트에 관한 내용이라는 걸 알고 마음이 어지럽다. 자기가 찼으면서 미련 보이는 남자 너무 싫다. 아오바와 시로, 얼른 잘 되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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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타는 작품
윤고은 지음 / 은행나무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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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데믹 전과 후로 일상에서 가장 많이 바뀐 것 중에 배달 앱 이용이 있지 않나 싶다. 나만 해도 팬데믹 전에는 배달 앱을 즐겨 이용하지 않았는데 팬데믹 이후로는 한 달에 두세 번씩은 이용한다. 한국인 최초 대거상 수상 작가 윤고은이 2023년에 발표한 소설 <불타는 작품>의 주인공 '안이지'는 한때 촉망 받는 예술가였으나 현재는 배달 앱 도보 라이더로 일하며 생계를 해결하고 있는 인물이다. 하루 종일 배달 생각뿐인 내가 정말 예술가가 맞나, 예술가가 맞다면 언제 다시 작업대 앞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이런 자책 섞인 고민을 하던 그에게 어느 날 깜짝 놀랄 만한 연락이 온다. 오랫동안 전 세계의 많은 예술가들을 후원해 온 '로버트 재단'에서 그를 후원 작가로 선정했다는 것이다.


재단이 제시한 조건은 이랬다. 로버트 재단의 후원 작가가 되면 재단이 있는 미국 캘리포니아로 가서 몇 달 간 지내며 로버트 재단 인근 도시 Q에서 영감을 받은 작품을 완성해야 한다. 이동과 체류에 소요되는 모든 경비는 재단이 부담한다. 단, 전시회 마지막 날 '로버트'가 고른 작품 하나를 소각한다. 당장 배달 일을 하느라 작품 하나도 완성할 여력이 없었던 안이지로서는 거부할 이유가 없는 제안이었다. 하지만 캘리포니아 공항에 도착한 순간부터 크고 작은 사건 사고가 연달아 일어났고, 우여곡절 끝에 도착한 재단에서 마침내 만난 '로버트'는 인간이 아닌 '개'다. 말이 안 통하는 건 물론이고, 예술을 보는 안목을 가졌는지도 불분명한 개에게 자신의 작품의 운명을 맡겨야 한다니. 안이지는 점점 이 제안이 '쉽지 않다(not easy)'는 걸 체감한다.


작가는 왜 하필 배달 앱 라이더로 일하는 예술가의 이야기를 썼을까. 실제로 팬데믹 기간 동안(과 이후에도) 많은 예술 분야 종사자들이 배달 앱 라이더로 일한 현실을 반영한 것이겠지만, 내 생각에 작가는 상품을 가진 판매자와 값을 치르는 주문자 사이에서 상품을 이동시키는 일을 하는 배달 앱 라이더의 업무가 예술 작품의 권리를 가지고 있는 측과 비용을 지불하는 측 사이에 있는 예술가의 일과 닮았다고 생각한 것 같다. 소설 속에서 예술가 안이지는 자신을 후원하는 대가로 작품의 처분권을 가지게 된 로버트 재단과 안이지가 완성한 작품 중 몇 점을 구입하고 문제의 '그 작품'까지 탐을 내는 갤러리로부터 이중의 압박을 당한다. 이들은 안이지가 - 배달 앱 라이더와 마찬가지로 - 예고된 기한 내에 정확히 임무를 수행하는 것에만 관심이 있지, 그에게 진심 어린 환대나 배려는 보이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소설이 진행되면서 안이지가 보이는 변화가 더욱 인상적이고 감동적이었다. 처음에 안이지는 - 아마도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겠지만 - 작품 하나만 태우면 거액의 돈도 받고 명예도 얻을 수 있다니 너무 좋다, 너무 쉬운 제안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마감 기한이 다가와 작업을 하면 할수록 자기도 모르게 작품에 대한 감정이 깊어지고, 자신이 힘들게 완성한 작품을 (그 수고를 모르는) 타인이 마음대로 처분한다는 것에 불쾌감을 넘어 분노와 공포마저 느낀다. 결국 그는 자신이 원했던 것과 전혀 다른 결말을 향해 스스로 나아가는데, 이때의 그가 이 소설 전체를 통틀어 가장 기운 넘치고 속이 시원해 보인 것은 나만의 착각일까. 기발하면서도 심오한 소설이다. 영상화 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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