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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림 ㅣ 밀란 쿤데라 전집 8
밀란 쿤데라 지음, 김병욱 옮김 / 민음사 / 2012년 1월
평점 :
운전 중인 남자에게 아내가 말을 건다. "오십 분마다 한 사람씩 프랑스 도로 위에서 죽어. 저 사람들 좀 봐. 주위에서 차를 굴리고 있는 저 미친 사람들. 저들은 거리에서 어떤 할머니가 털리는 걸 보면 지극히 몸을 사리는 바로 그들이야. 한데 어째서 운전석에 앉으면 두려움을 모르게 되는 거지?" 남자는 속으로 답한다. '오토바이 위에 몸을 구부리고 있는 사람은 오직 제 현재 순간에만 집중할 수 있을 뿐이다. 그는 과거나 미래로부터 단절된 한 조각 시간에 매달린다. ... 두려움의 원천은 미래에 있고, 미래로부터 해방된 자는 아무것도 겁날 게 없는 까닭이다.'
밀란 쿤데라가 1993년에 발표한 소설 <느림>의 도입부다. 밀란 쿤데라의 소설이 대개 그렇듯, 이 소설 역시 읽기가 쉽지 않다. 줄거리를 요약하면 '한 남자가 아내와 함께 호텔이 된 파리의 옛 성으로 여행을 떠났다가 과거에 성에서 있었던 일들을 목격하는 이야기'쯤 되는데, 남자가 온갖 상념을 두서없이 떠올리(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내용을 이해하기가 여간 힘든 게 아니다.
나의 경우, 꾸역꾸역 끝까지 다 읽고 서평을 쓰기 위해 다시 첫 장을 펼쳤을 때 비로소 내용을 이해했다. 사람들은 어째서 운전석에 앉으면 두려움을 잊느냐는 아내의 질문에 남자는 그들이 제 속도에 취해 있기 때문이라고 답한다. 차의 속도에 취한 운전자가 주변을 보지 못하듯, 자신의 삶의 속도에 취한 사람 역시 주변을 보지 못한다. 그래서 이따금 남의 눈에 무모하고 어리석게만 보이는 선택을 하지만 자신은 의식하지 못한다. 의식할 여유가 없다.
반면, 운전자가 주변을 보지 못하고 제 앞만 보듯, 주변 사람들은 운전자의 시야에 들어오는 것을 보지 못한다. 주변 사람들은 운전자를 보고 무모하다, 어리석다고 비난하지만, 정작 운전자가 현재 절박하고 필사적인 상황임을 알지 못한다. 결국 만사가 상대적이다. 내 문제는 내 문제라서 바로 보지 못하고, 남의 문제는 남의 문제라서 바로 보지 못한다. 보는 시각과 입장이 다르기 때문이다. 보는 속도가 다르기 때문이다.
느림과 기억 사이, 빠름과 망각 사이에는 어떤 내밀한 관계가 있다. 지극히 평범한 상황 하나를 상기해 보자. 웬 사내가 거리를 걸어가고 있다. 문득 그가 뭔가를 회상하고자 하는데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 순간 기계적으로, 그는 자신의 발걸음을 늦춘다. 반면 자신이 방금 겪은 어떤 끔찍한 사고를 잊어버리고자 하는 자는, 시간상 아직도 자기와 너무나 가까운, 자신의 현재 위치로부터 어서 빨리 멀어지고 싶다는 듯 자기도 모르게 걸음을 빨리한다. (48쪽)
내 눈에 비치는 타인의 삶, 타인의 눈에 비치는 나의 삶이란 결국 일시적이고 피상적이다. 텔레비전 뉴스를 통해 소말리아 아이들이 굶주리는 영상을 1,2초 본 것만으로 소말리아 사람들이 가혹한 상황에 처해 있을 것으로 지레짐작하는 것처럼(작가는 묻는다. "왜 아이들만 굶는가?"), 나는 극히 일부만 보고 타인의 삶을 지레짐작하고 나의 삶 역시 타인에 의해 지레짐작된다. 작가는 이를 18세기 프랑스 파리를 뒤흔든 T 부인과 젊은 기사의 스캔들, 지식인 베르크와 뱅상의 기싸움, 체코 출신 곤충 연구가 체호르집스키의 이야기를 통해 보여준다. 그들은 진지하지만 남들 눈에는 어리석어 보이는, 남들은 어리석다고 여기지만 그들에게는 진지한 문제였던 사랑과 경쟁, 자존심에 관한 이야기들.
작가는 소설 속 '나'의 입을 빌려 말한다. "내일은 없다. 청중도 없다. 제발, 친구여, 행복하게나. 막연한 느낌이지만 난 행복할 수 있는 자네 능력에 우리 유일한 희망이 달렸다고 느끼네."라고. '모든 인간은 죽는다'는 명제 외에 절대적인 것은 없다. 인간은 결국 '참을 수 없을 만큼 가벼운 존재'다. 그러니 내일도 없고 청중도 없는 것처럼 살아도 괜찮다. 때로는 느린 보폭으로 걷기도 하고 때로는 가볍게 몸을 흔들기도 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