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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진우의 이명박 추격기 - 저수지를 찾아라
주진우 지음 / 푸른숲 / 2017년 7월
평점 :
촛불이 꺼졌다. 선거가 끝났다. 대통령이 바뀌었다. 내각이 교체됐다. 그러나 세상은 바뀌었을까. 지난 금요일, 삼성전자 부회장 이재용은 '고작' 징역 5년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헌정 사상 최초로 탄핵당한 대통령을 배출한 새누리당의 전신인 자유한국당은 '아직도' 야1당이다. 행정부 수반만 바뀌었을 뿐이다. 사법부와 입법부에서 지난 정권의 입김은 여전하다. 대기업과 언론은 말할 것도 없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끝나기 전까지 마음을 놓아서는 안 된다. <주진우의 이명박 추격기>를 읽는 내내 든 생각이다. 이 책은 시사IN 주진우 기자가 지난 10년 동인 MB의 비자금을 좇은 기록을 정리한 결과물이다. 저자는 일찍이 BBK와 내곡동 사저 특종을 터뜨려 MB에게 두 개의 특검을 '선물한' 바 있다. BBK와 내곡동 사저는 MB가 서울특별시장, 대한민국 대통령을 거치며 '해 드신' 돈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저자는 MB의 비자금이 일본, 홍콩, 싱가포르, 미국, 캐나다, 스위스, 독일, 케이맨제도 등 전 세계 곳곳에 숨겨져 있다는 것을 파악하고 이를 열심히 추적했다. 이 과정에서 여러 번 허탕치고 실패도 했지만, 이제 거의 다 왔다는 짐작이 든다. 언제쯤 다 왔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음, 그건 MB의 양 팔목에 빛나는 은팔찌가 채워지면?
이명박을 쫓는 건 위험한 일이다.
감옥 문 앞까지 끌려가기도 했다. 감옥에 가는 것은 나쁜 일이지만 아주 나쁜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죽음의 그림자를 밟는 순간도 있었다. 죽는 순간은 더 나쁜 일이지만 최악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독립운동을 하다가, 민주화 운동을 하다가 감옥에 간 선배들은 부지기수로 많다. 돌아가신 선배들도 적지 않다. 내가 사는 이 세상은 그분들에게 빚을 지고 있지 않은가? 나는 선배들에 비해 훨씬 편하고 좋은 조건에서 싸우고 있지 않은가? 진짜 최악은 불의에 저항하지 않고, 악행을 미워하지 않는 것이다. (6쪽)
저자의 MB 추격기는 시사IN 기사를 비롯해 저자의 이전 책들과 라디오, 팟캐스트를 통해 여러 번 알려진 바 있다. 이 책 내용 중에도 알려진 것이 적지 않다. 얼마 전에는 이 책 내용의 일부가 팟캐스트로 제작되기도 했다. (http://www.podbbang.com/ch/9938?e=22365347)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 첫 번째는 전두환이다. 이 책은 '이명박 추격기'라는 제목이 붙었는데도 상당한 분량이 전두환의 부정부패에 관한 내용으로 채워져 있다. 그만큼 한국의 권력자들이 벌인 부정부패가 고질적이고 심각하며, 아직 뿌리뽑지 못한 폐단이 많이 남아있다는 것이다. 전 재산이 29만 원이라는 인간이, 배드민턴 한 번 치러 갈 때마다 1백 명에서 2백 명의 밥값을 계산한다. 전두환의 사저를 지키는 의경의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전두환이 조의금으로 1천만 원을 냈다. 자기 밑에서 일한 장관이 죽었을 때는 조의금으로 1억 원을 냈다고 한다. 그가 이렇게 돈을 뿌리고 다닐 수 있는 건 대통령 재임 시절 기업 회장이나 CEO로부터 수많은 돈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를 한 번 만날 때마다 5백억 원이 들었다니, 조의금 1천만 원은 우스운 돈일지도 모르겠다.
이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 두 번째는 당연히 MB다. 전두환은 받아챙긴 돈을 쓰기라도 하지, MB는 쓰지도 않는다. MB가 '살 집만 남긴 채' 전 재산을 기부해 설립한 청계재단이 2016년 장학 사업에 쓴 돈은 고작 2억 6,680만 원. 가수 이승환이 한 해 기부하는 액수보다 적다. MB가 돈을 '해 드시는' 패턴은 따로 있다. 1단계. 회사를 하나 만들거나 인수한다. 2단계. 회사가 돈벼락을 맞고 그 돈이 돌고 또 돈다. 그러면서 돈이 사라지고 회사가 사라진다. 3단계. 국가기관이나 은행은 그 돈을 찾지 않는다. BBK도, 농협의 캐나다 노스욕 사기 대출 사건도, MB와 관련된 사건은 죄다 그런 식이다. 애먼 사람들만 피해를 보거나 심하게는 죽는다(저자에 따르면 503 주변에 의문의 죽음이 많지만 MB 주변도 만만치 않다고).
지난 8년간 우리나라에서 조세회피처로 나간 돈이 190조인데 그중 홍콩을 제외하고는 케이맨이 제일 많다. (중략) 역외투자의 거점이라고 하는데 왜 돈이 꼭 케이맨에 들러야 하는지 이유는 모르겠다. 우리 교민은 10명도 안 될 텐데... 교민이 있기는 할까? 2007년부터 한국과 케이맨의 직접교역액은 급상승한다. 매년 2배 이상 성장. 이명박 재임기하고 정확하게 일치한다. 우연으로만 보이지는 않는다. 석연치 않다. (242쪽)
MB 비자금 문제의 가장 큰 문제점은 일반인이 이해하기가 어렵다는 것이 아닐까 싶다. 적어도 나는 그렇다. BBK도 그렇고, 내곡동 사저 문제도 그렇고, 금융 문제, 부동산 문제라서 그런지 아무리 들어도 이해하기가 어렵다(그에 비하면 503-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은 막장 드라마 같아서 이해하기가 비교적 쉬웠다. 물론 아직 밝혀지지 않은 것이 많이 있지만). 이 책에서도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이 여러 개 있었는데 영화로 보면 쉬우려나(주진우 기자의 이명박 추격기는 <저수지>라는 제목의 영화로 제작되어 오는 9월 상영될 예정이다).
이 책에는 취재원 이야기도 많이 나온다. 권력자와 가깝고 권력자의 비밀을 많이 알고 있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은 죄다 입 닫고 조용히 살기를 바라는 줄 알았는데, 저자에 따르면 그런 사람들 중에도 진실을 알리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있고 세상이 바뀌길 기대하는 사람들이 있단다. 부디 주진우 기자가 취재하는 영역에 관해 뭐라도 알고 있는 분들은 제보해주시길. 권력과 가깝지 않은 저는 책이라도 사서 읽고 몇 권 더 사서 지인들에게 선물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