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실교사 하이네 7
아카이 히가사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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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밤에 <왕실교사 하이네> 7권을 읽다가 끅끅거리며 웃었다. 언제부터인가 이야기 전개가 루즈해졌는데, 7권부터 다시 이야기 전개가 빨라지고 인물들의 매력이 되살아난다. 그 원인은 바로 이 사람, 그란츠라이히 왕국의 제1왕자이자 네 왕자들의 큰형인 아인스 폰 그란츠라이히의 등장 되시겠다. 





그란츠라이히 국왕에게는 아들 다섯과 딸 하나가 있다. 그중 맏아들인 아인스는 어려서부터 철저하게 국왕 후계자로서 교육을 받느라 다른 형제들과 교류가 거의 없다. 반년에 걸친 우호국 방문을 마치고 귀국한 형 아인스를 위해 동생인 네 왕자는 꽃다발을 준비하지만, 아인스는 "그런 배려는 필요 없어."라며 차갑게 거절한다. 나쁜 XX 





이런 못된 성격 때문인지 국왕 또한 아인스가 차기 국왕 자리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여기는 상태. 국왕이 아인스가 아닌 다른 왕자들을 차기 국왕 후보로 키우려고 하는 이유를 알게 된 하이네는 이제야 그동안 로젠베르크 백작이 왕자들을 괴롭힌 까닭을 깨닫는다. 로젠베르크 백작이 왕자들을 괴롭히는 건 국왕의 마음이 떠났음을 감지한 아인스 왕자의 지시 일 수도 있다는 것을. 





한편, 아인스에게 무시당한 네 왕자는 아인스를 위협하는 존재가 되겠다며 전의를 불태운다. 이러는 와중에 하이네가 수상한 사람들에게 납치되기도 하고, 네 왕자 중 한 명이 차기 왕자가 되기 위해 지나치게 공부에 열중한 나머지 쓰러지기도 한다(바람 잘 날 없는 그란츠라이히 왕국...). 


그란츠라이히 국왕의 유일한 딸이자 왕자들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귀요미 아델 공주가 하이네를 좋아한다는 사실도 밝혀진다. 아무리 하이네가 키가 작고 엄청난 동안이기는 해도 아델 공주가 자신의 짝으로 여길 정도라니. 물론 하이네는 아델을 조금도 이성으로 의식하지 않고, 의식하면 범죄라는 걸 잘 안다. 실현 가능성은 없어 보이지만, 이 커플 성립되면 귀엽기로는 세계 최강일 듯 ㅋㅋ



 


뷰티 프린스 리히트 왕자에게도 새로운 사건이 생긴다. 국왕에게 특별히 허락을 받고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리히트 왕자는 갑자기 내린 비 때문에 왕궁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카페에서 하룻밤 묵게 된다.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서민 생활을 잘 알게 되었다고 자부하던 리히트 왕자는, 막상 서민들이 먹는 음식을 먹고 서민들이 생활하는 집에서 서민들처럼 잠을 자게 되자 극도의 불편함을 느낀다(서민 출신인 하이네는 잘만 먹고 잘만 잔다 ㅋㅋ). 





리히트 왕자는 잠을 이루지 못하고 결국 밖으로 나오는데, 나와 보니 오너가 부엌에서 남은 일을 하고 있다. 다 늙어가지고 독신에 일밖에 모른다며 빈정거리는 리히트에게, 오너는 어차피 한정된 인생,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살 수 있으면 된 거라고 대답한다. 그 모습이 리히트의 마음에 깊이 박히는데... 이 둘 은근히 잘 어울린다. 오너가 리히트의 비밀을 언제쯤 알게 될지도 궁금하고, 알게 되면 어떻게 대처할지도 궁금하고. 어서 다음 8권을 읽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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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거짓말 6
무사오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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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연휴는 내일부터 시작이지만 내 마음의 연휴는 오늘부터 시작이다(연휴 직전이라서 출근해도 할 일이 없다). 해서 어젯밤에는 시간 가는 줄 모르고(알았지만 애써 잊고) 밤늦게까지 만화를 읽었다. 


맨 처음 손에 쥔 책은 요즘 내 마음속에서 가장 핫한 만화 <사랑과 거짓말> 제6권이다. 신간이 나오는 속도가 무척 빠르다. 8월에 5권을 읽었는데 9월에 6권이 나왔다(굿굿 ^^). 





주인공 네지마 유카리는 어릴 때부터 좋아한 타카사키 미사키와 정부 통지로 짝 지어진 파트너 사나다 리리나 사이에서 갈등하고 있다. 갈팡질팡하는 네지마에게 극적인 전환이 될 만한 사건이 발생하니, 그것은 바로 네지마네 가족과 리리나네 가족의 합동 온천 여행!


네지마네 가족과 리리나네 가족은 네지마와 리리나가 정부 통지에 따라 결혼할 것을 굳게 믿고 있다. 남녀 모두 일정 연령이 되면 정부 통지에 따라 결혼하는 것이 당연한 사회인 데다가, 정부 통지에 따르지 않을 경우 법적 제재가 가해지니 자신들의 아들딸이 정부 통지에 불응할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한다. 네지마와 리리나 역시 가족들의 뜻을 거스르지 못하고 일단은 친한 척 연기하는 중이다. 





그런데 여행 도중 네지마가 리리나를 이성으로 의식하게 되는 사건이 발생한다. 리리나가 모르는 남자와 사이좋게 대화를 나누는 모습을 목격한 네지마의 마음속에 묘한 질투심과 경쟁심이 발동한 것이다. 


네지마는 이제까지 타카사키만 바라보느라 리리나의 장점을 보지 못했다는 것을 깨닫는다. 리리나는 외모도 예쁘고 성적도 우수하고 성격도 착하다. 리리나처럼 훌륭한 여자아이가 자신의 결혼 상대로 지정된 것은 기적인지도 모른다. 어쩌면 정부 통지가 진실이고 내 마음이 거짓이 아닐까. 타카사키보다 리리나가 더 괜찮은 결혼 상대가 아닐까 하는 의문이 네지마의 마음속에 뭉게뭉게 피어난다. 





그리고 이날 밤, 네지마와 리리나는 가족들의 뜻에 따라 한 방을 쓰게 된다. 이불 위에 누워 있다가 몸을 일으킨 리리나가 단호한 표정으로 말한다. 네지마는 타카사키를 선택해야 한다고. 네지마와 타카사키를 만난 후로 자신의 삶이 바뀌었다고. 그러니 네지마는 자신과 이어지는 게 아니라 타카사키와 이어지는 게 맞다고. 


자신이 좋아하는 네지마와 타카사키의 사랑이 이루어지도록 정부 통지를 거부하겠다고 말하는 리리나를 보며 네지마는 더할 나위 없이 큰 사랑을 느낀다. 그렇지만 여전히 이 감정이 사랑이라고 인정할 수는 없다. 리리나 또한 네지마와 타카사키의 사랑을 응원하겠다고 말은 했지만 네지마를 좋아하는 마음을 쉽게 거두지 못한다. 지켜보는 내가 다 안타깝다. 





한편, 후생노동성에서 정부 통지 업무를 담당하며 네지마의 주변을 맴도는 공무원 야지마의 비화(秘話)가 드디어 공개된다. 짐작한 대로 야지마와 이치조는 어린 시절부터 알고 지낸 사이다. 야지마는 정부 통지를 통한 연고 결혼에 의해 태어난 아이인 반면, 이치조는 정부 통지를 통하지 않고 평범한 연애결혼을 통해 태어난 아이다. 


이치조는 정부 통지를 통해 태어났으면 좋았을 거라고 항상 말한다. 정부 통지를 통해 태어난 아이들이 공부도 잘하고 운동 신경도 좋고 부모님 사이도 좋아서 안정적인 가정생활을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막상 이치조에게 정부 통지가 오자 이치조는 야지마에게 자신을 붙잡아달라고 말한다. 갈등하는 야지마. 과연 이 둘은 어떤 선택을 할까. 이 둘의 관계가 변하는 날이 올까. 다음 권을 어서 읽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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꽁치가 먹고 싶습니다
오즈 야스지로 지음, 박창학 옮김 / 마음산책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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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살 때 서점 직원이 제목을 보고 웃었다. <꽁치가 먹고 싶습니다>라니. 과연 서점 직원이 보고 웃을 만한 제목이다. 하지만 내용은 웃음기가 전혀 없다. 장어도 참치도 아닌 꽁치가 먹고 싶을 만큼 빈곤하고 참혹한 시대에 젊은 날을 보낸 한 예술가의 이야기가 있을 뿐이다. 


그 예술가의 이름은 오즈 야스지로. 세계 영화사에 길이 남을 걸작으로 손꼽히는 <도쿄 이야기>를 만들었고, 카메라를 앉은키 정도에 맞추고 롱 테이크로 촬영하는 '다다미 쇼트'를 탄생시킨, 일본을 대표하는 영화감독이다. 이 책은 오즈 야스지로가 생전에 여러 매체들에 기고했던 산문을 포함해 중일전쟁에 징집되었을 때 쓴 편지와 일기, <도쿄 이야기>의 감독용 각본 등을 담고 있다. 오즈 야스지로의 저서로는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책이다. 


이 책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오즈 야스지로가 중일전쟁에 징집되었을 때 쓴 편지와 일기다. 1903년생인 오즈 야스지로는 1937년 서른네 살 때 징집되어 전쟁이 한창이던 중국으로 파병되었다. 파병 당시 이미 서른네 편의 영화를 찍은 어엿한 영화인이었던 오즈 야스지로는 갑자기 전쟁터에 끌려와 총을 들고 있는 자신의 처지를 글로 열심히 한탄한다. 포탄이 날아다니는 상황 속에서도 끊임없이 인간을 관찰하고 사물을 눈여겨보고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과 느낌을 기록한다. 


여기에 나흘쯤 전부터 위안소가 생겼습니다. 위안소란 톰 브라운이 없는 에이미 졸리의 무리입니다. 실로 낯가림을 모르는 의마심원이라지만, 술 취하기를 어지간한 정도를 넘어 끝에 다다른 게 아니라면 간단하게는 물리칠 수 없는 반도의 무희입니다. (41쪽) 


오즈 야스지로의 눈길이 머문 것 중에는 위안소도 있다. '실로 낯가림을 모르는 의마심원'이라고 비하하면서도 '간단하게는 물리칠 수 없는 반도의 무희'라고 표현한 것이 마음에 걸린다. 역자는 '반도의 무희'가 당시 일본에 소개된 무용가 최승희를 빗댄 표현이라고 설명해 놓았는데 과연 그뿐일까. 강제로 먼 중국 땅까지 끌려와 일본 군인들에게 인권을 유린당한 위안부들이 정녕 그의 눈엔 일본 군인을 유혹하는 '무희'로밖에 보이지 않았을까. 오즈 야스지로의 작품 세계를 잘 알지 못하기에 짧은 기록을 두고 뭐라고 평가할 순 없지만 마음이 착잡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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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는 총을 들고 기다린다 콥 자매 시리즈
에이미 스튜어트 지음, 엄일녀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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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까지 읽은 소설 속 인물들 중에서 남녀 통틀어 가장 멋있는 인물을 고르라면 단연 <밀레니엄> 시리즈의 주인공 리스벳 살란데르인데, <여자는 총을 들고 기다린다>의 주인공 콘스턴스 콥도 그에 버금갈 정도로 멋있다. 삼십 대 중반이 되도록 결혼도 하지 않고 아버지와 오빠에게 의존해 살지 않으며, 자매들을 지키기 위해 직접 총을 겨누는 여성이라니. 게다가 실존 인물이 모델이라는 점이 마음을 사로잡는 것으로 모자라 쥐고 흔든다. 


<여자는 총을 들고 기다린다>는 총 8부작으로 예정되어 있는 '콥 자매 시리즈'의 첫 번째 작품이다. 1914년 7월 헨리 코프먼의 자동차가 콘스턴스, 노마, 플러렛 콥 자매가 탄 마차를 들이받는 사고가 발생한다. 콥 자매의 막내 플러렛이 큰 부상을 입은 걸 안 장녀 콘스턴스는 사고를 일으킨 헨리 코프먼에게 사과와 보상을 요구하지만, 헨리 코프먼은 콥 자매에게 정중하게 사과하고 충분한 보상을 약속하기는커녕 미안하다는 말 한 마디 없이 자리를 빠져나간다. 


이튿날 동생들이 사고 후유증에 시달리는 모습을 보다 못한 콘스턴스는 헨리 코프먼의 사무실에 찾아가 보상을 요구한다. 헨리는 요지부동이다. 오히려 "동생들은 안 데리고 왔나? 막내 이름이 뭐더라? 플러렛?", "좀 알려주지 그래, 어느 창문으로 들어가야 미스 플러렛의 침실이 나올까?" 같은 막말을 시전하며 콘스턴스의 속을 뒤집는다. 물론 잠자코 듣고 있을 콘스턴스가 아니다. 곧바로 코프먼의 멱살을 잡아 들어 올렸고, 급기야 피를 보고 만다(참고로 콘스턴스는 180센티미터가 넘는 키에 80킬로그램이 넘는 건장한 체격을 자랑했다). 


친구들 앞에서 여자한테 들어올려져 피 흘리는 꼴을 보이다니. 화가 난 코프먼은 그날부터 부하들과 함께 콥 자매의 집을 향해 벽돌과 술병을 던지거나, 콥 자매의 집 주변을 돌면서 콥 자매를 조롱하고 비난하는 내용의 고성을 지르거나, 콥 자매의 집을 불태워 없애려고 하는 등 각종 위협 행위를 한다. 콘스턴스는 보안관을 찾아가 코프먼을 쫓아내달라고 부탁하지만, 보안관은 신고를 하려면 여자 혼자 오지 말고 아버지나 오빠, 남편을 데려오라는 황당한 소리만 늘어놓는다. 참다못한 콘스턴스는 악당으로부터 자매들을 지키기 위해 직접 총을 드는 편을 택한다. 


콘스턴스 콥은 1878년 미국 브루클린에서 태어났다. 미혼인 채로 스무 살만 넘어도 노처녀 소리를 듣던 시대에 콘스턴스 콥은 서른다섯 살이 되도록 결혼하지 않았고, 아버지와 오빠에게 기대지 않고 자매들을 부양하며 독립적으로 살았다. 소설에 나오는 교통사고도 실제로 일어난 사건이다. 콘스턴스 콥에게 총을 주는 히스 보안관도 실존 인물이다. 콘스턴스 콥이 헨리 코프먼의 악행을 사회에 고발하고 재판에서 승소한 것을 높이 사 미국 뉴저지의 여성 보안관보 1호가 된 것도 사실(史實)이다. 


날 위협하는 것으로 모자라 내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을 건드릴 때 가만있지 못하고 어떻게든 되갚아주는 것이 인지상정인데, 대부분의 문학 작품은 여성이 그런 상황에 놓였을 때 주저앉아 울거나 남자에게 의존하는 모습만 그린다. 나라도 누가 내 여동생을 위협하면 멱살이 뭐냐, 평생 목을 못 가누게 만들어줄 것이다. 그런데 왜 대부분의 소설(뿐 아니라 콘텐츠 전반)은 자매가 서로 시기하고 질투하는 모습을 집중적으로 묘사하며 '여적여(여자의 적은 여자)' 서사를 강화할까. 여자는 여자의 적이 아니라 여자의 친구이고 동지인데. 


이 소설엔 스포일러가 될까 봐 말할 수 없는 반전이 있다. 반전을 알면 콥 자매의 관계가 더욱 애틋하고 각별하게 느껴질 것이다. 조만간 시리즈 2부가 출간된다던데 어서 나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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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요정 2017-09-27 18: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스베트 살란데르만큼 멋지다구요? 저도 읽겠습니다^^

키치 2017-09-27 21:56   좋아요 0 | URL
제가 기대치를 너무 높인 게 아닌가 급 걱정이 됩니다 ㄷㄷㄷ 살란데르 언니가 최고죠 ^^
 
나치의 아이들 - 전범의 자식들, 역사와 대면하다
타냐 크라스냔스키 지음, 이현웅 옮김 / 갈라파고스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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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에 관심 있는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이런 생각을 해봤을 것이다. 그 많던 친일파는 광복 후 어떻게 되었을까. 독재 정권에 항거하는 시민들을 탄압하던 사람들은 어디에 있을까. 가혹한 고문으로 멀쩡한 사람을 불구로 만든 고문관들은, 광주 민주화 운동 당시 시민군을 향해 총부리를 겨눴던 군인들은, 민주화 운동하는 학생들과 시민들을 진압하던 경찰들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 이들의 자식들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 자신들의 아버지, 할아버지가 한 일을 알기나 할까. 


<나치의 아이들>을 쓴 타냐 크라스냔스키는 자신의 외할아버지를 이해하기 위해 이 책을 썼다. 저자의 어머니는 독일인이고, 저자의 아버지는 프랑스계 러시아인이다. 저자는 어린 시절 독일인인 외할아버지와 아주 가깝게 지냈는데, 외할아버지의 직업은 군인이었고 활동 시기는 나치 정권 시절과 겹친다. 저자의 어머니는 자신의 아버지가 전범에게 부역했다는 사실에 환멸을 느끼고 프랑스로 귀화했고, 저자 역시 자신에게 한없이 인자한 외할아버지가 유대인 학살에 가담했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의식하며 살았다.


저자는 나치 전범의 후손들이 어떻게 살았는지 치밀하게 추적한다. 이 책은 홀로코스트 설계자 하인리히 힘러, 제국 원수 헤르만 괴링, 총통의 후계자 루돌프 헤스, 크라쿠프의 백정 한스 프랑크, 히틀러의 오른팔 마르틴 보어만, 아우슈비츠 소장 루돌프 회스, 악마의 건축가 알베르트 슈페어, 생체실험가 요제프 멩겔레 등 대표적인 나치 전범 8인의 생애와 그들의 후손들의 삶을 추적한 결과물을 담고 있다. 


'나치의 아이들'의 삶의 모습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아버지의 범죄 자체를 부정하는 모습이다. 하인리히 힘러의 딸 구드른 힘러가 대표적이다. 힘러가 애지중지하는 딸이었던 힘러는 아버지가 뉘른베르크 전범 재판에서 자살한 후에도 아버지의 범죄를 인정하지 않고 오히려 아버지의 행위를 옹호했으며, 나중에는 독일 극우 정당에 가입하고 전범들을 돕는 ‘침묵의 원조’의 회원으로 활동하는 행보를 보였다. 평생을 아버지 하인리히 힘러의 사랑스러운 딸이자 나치 정권의 '공주'로서 산 구드룬 힘러는 여러모로 '어떤 분'과 매우 흡사해 소름이 돋았다.


'공주'는 자신에게 충성하는 자들이 앞에서 열을 지어 지나가는 모습을 보며 그들에게 근엄한 목소리로 "전쟁 때 당신은 어디서 싸우셨나요?", "당신은 어느 부대에서 근무했나요?"라고 질문하기를 좋아한다. 그녀는 아버지에게서 병참에 관해 배운 적이 있기 때문에, 아버지가 사찰 현장에 자신을 데리고 갔을 때 무엇을 관찰해야 하는지 알고 있었다. 행렬을 이룬 옛 전투원들은 아돌프 히틀러의 가장 뛰어난 부하의 딸 앞에 있다는 사실에 자긍심을 느낀다. 


또 하나는 아버지의 범죄를 증오하거나 속죄하는 모습이다. 나치의 악행을 알고 나서 더 이상 이들의 후손이 지구 상에 남아 있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스스로 불임 수술을 받은 사람도 있고, 아버지가 유대인을 학살한 죗값을 대신 치르기 위해 사제가 되어 유대인 공동체에 들어가 봉사하는 삶을 택한 사람도 있다. 히틀러의 총애를 받던 건축가 알베르트 슈페어의 딸은 아버지가 유대인들한테서 몰수한 그림을 팔아 예술과 과학계의 유대인 여성들을 지원하고 있다. 


독일은 나치 전범을 엄격하게 처벌하고 나치에 가담한 이력이 있는 사람을 철저하게 추적한 나라라는 인상이 있었는데, 이 책을 보면 그렇지만도 않다. 전쟁이 끝난 후 오랫동안 나치 전범에 관한 언급은 금기시되다시피 했고, 전쟁을 일으킨 책임은 히틀러와 최측근 몇 명에게만 지우는 분위기가 팽배했으며, 나치 전범의 아이들 또한 큰 어려움 없이 생활을 영위할 수 있었다. 저자는 나치 일당을 확실하게 뿌리뽑지 못했고 나치 전범의 후손들이 여전히 독일에서 잘 살고 있는 것이 오늘날 극우파가 기승하는 결과를 낳지 않았는지 지적한다. 이는 한국 사회에도 유효한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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