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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리의 그림자 ㅣ 철학하는 아이 14
크리스티앙 브뤼엘 지음, 안 보즐렉 그림, 박재연 옮김 / 이마주 / 2019년 7월
평점 :
'여자답다'는 건 대체 뭘까. 삼십 대 중반인 나도 아직 잘 모르겠는데, 나보다 한참 어린 소녀에게는 얼마나 어려운 문제일지 짐작조차 못하겠다.
프랑스 작가 크리스티앙 브뤼엘과 안 보즐렉의 그림책 <줄리의 그림자>의 주인공 '줄리'는 어느 도시, 어느 마을에나 있는 평범한 소녀다. 줄리의 작은방에는 입고 벗은 옷가지가 널브러져 있고, 책상 위에는 읽다 만 책과 그리다 만 스케치북이 펼쳐진 채로 쌓여 있다. 롤러스케이트 타기를 좋아하는 줄리는 한참 신나게 롤러스케이트를 타다가 지치면 방으로 돌아와 책을 읽는다. 롤러스케이트를 신은 채로 침대 위에 엎드려 책을 읽는 줄리의 모습을 본 엄마가 한 말씀하신다. "말 좀 해 봐. 도대체 왜 롤러스케이트를 신고 책을 읽니? 다른 여자아이들처럼 굴 수는 없어?"
줄리는 어른스럽지 않다. 아직도 아이처럼 손가락을 빤다. 줄리는 별로 단정하지 않다. 머리 빗는 것도, 목욕하는 것도 싫어한다. 그런 줄리에게 엄마 아빠는 매일 같이 야단을 친다. "지금 그 꼴로 어딜 가려고?", "마무리가 제대로 안 됐잖아. 더 단정하게 빗어.", "너 일부러 그러는 거지! 그 옷은 구멍 난 거잖아. 내다 버리게 당장 벗어." 엄마 아빠의 잔소리에 못 이긴 줄리가 겨우 머리를 얌전히 빗고 '여자아이같이' 옷을 입으면 그제야 엄마 아빠는 웃는 얼굴로 줄리에게 칭찬을 한다. "봐, 이렇게 예쁘잖니. 이제야 우리 딸 같네."
줄리는 자신이 원하는 대로 하면 어른들이 좋아하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다. 자신이 원하는 대로 하지 않으면 어른들로부터 사랑을 받을 수 있다는 것도 알고 있다.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할지, 아니면 어른들이 하라는 대로 할지 고민하던 줄리에게 '뜻밖의 사건'이 벌어진다. 항상 줄리의 뒤를 졸졸 따라다니는 그림자가 언제부터인가 '남자아이'의 모습으로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사람들은 줄리가 줄리답지 않게 머리를 빗을 때만 줄리를 사랑해 줘요.
사람들은 줄리가 줄리보다 더 얌전하게 앉아 있을 때만 줄리를 사랑해 줘요.
사람들은 줄리가 줄리만큼 떠들지 않을 때만 줄리를 사랑해 줘요.
줄리는 이제 더 이상 자기 자신이 누군지 알 수 없어요.
언제나 다른 사람에게 사랑받는 사람이 되려고만 했기 때문이에요.
줄리의 그림자 속 '남자아이'는 스위스의 정신분석학자 칼 융이 말한 아니마, 아니무스 개념을 떠올리게 한다. 아니마는 남성의 무의식의 한 부분을 구성하는 여성적 심상이고, 아니무스는 여성의 무의식의 한 부분을 구성하는 남성적 심상이다. 융은 개인이 완전한 인간으로 성숙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내면에 있는 아니마 혹은 아니무스를 포용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다시 말해, 남성은 자기 내면에 있는 여성적(이라고 일컬어지는) 가치를 수용하고, 여성은 자기 내면에 있는 남성적(이라고 일컬어지는) 가치를 수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 사회는 여자가 자기 내면의 아니무스를, 남자가 자기 내면의 아니마를 발견하고 포용할 기회를 주지 않는다. 여자는 '여자답게', 남자는 '남자답게' 자라도록 또는 살도록 훈육하는 것이 대부분의 가정과 학교, 사회와 언론이 공통적으로 답습하는 문화다. 그러다 보니 개인은 자기 안의 다양한 가치를 발견하고 수용할 기회를 가지지 못하고, 완전한 인간으로 성숙하지 못한 채 '반쪽짜리 인간'으로 살게 된다.
나는 한 사람이 여자 같을 수도 있고, 남자 같을 수도 있다고 생각해. 둘 다일 수도 있고.
꼭 한 가지 이름표를 붙여야 하는 건 아니잖아. 우리에게는 우리다울 권리가 있어.
페미니즘과 LGBT를 아우르는 내용이라서 '당연히' 최근에 출간되었을 줄 알았는데, 초판이 나온 해가 1975년인 걸 알고 깜짝 놀랐다. '68혁명' 이후 급격히 확산된 반전, 인권, 여성, 환경 운동의 흐름 속에서 이 책이 출간되어 40년 넘게 많은 사랑을 받은 것은, 이 책이 단지 성차별에 관한 문제를 제기할 뿐 아니라 개인의 정체성이 어떻게 정해지고 타인의 개성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에 관한 넓고 깊은 시각을 제기하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