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대하고 게으르게
문소영 지음 / 민음사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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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리뷰를 쓴 지 올해로 10년째다. 대학교 2학년 때 생활도서관이라는 대학 내 자치기구에 가입했는데 그곳에서 제법 많은 책들을 읽었다. 책을 읽으면 뭐라도 쓰고 싶어졌고, 그렇게 쓴 글을 누구라도 읽어줬으면 했다. 그래서 개인 블로그를 만들어 책 리뷰를 쓰기 시작했다. 리뷰라고 해도 처음에는 책이 좋았다, 재미있었다, 이런 감상이 전부였다. 책이 좋았다면 왜 좋았는지, 안 좋았다면 무엇이 안 좋았는지 같은 구체적인 내용은 안 썼다. 아니, 안 쓴 게 아니라 못 썼다. 그걸 알아보고 적확한 문장으로 풀어낼 깜냥이 부족했다. 10년이 지난 지금은 좀 나아졌을까. 이 책을 읽기 전에는 내가 쓴 리뷰에 만족하는 마음이 아주 없지 않았는데, 이 책을 읽고 나서 자신감이 확 떨어졌다. 이렇게 충실하고 근사한 리뷰를 오랫동안 꾸준히 써온 프로 리뷰어인 저자도 글을 쓰기 전에는 싫고 괴롭고, 글을 쓸 때는 게으른 자신을 채찍질하며 쓴다니. 나는 아직 갈 길이 멀어도 한참 멀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저자는 어릴 때 천재성을 발휘한 예술가나 학자들보다는 나이 들어 뒤늦게 꽃을 피운 예술가나 학자들에게 관심이 많다는데 나도 그렇다. 어릴 때는 모차르트처럼 성인이 되기 이전에 주목받은 천재들의 이야기에 호기심이 동했는데, 나이가 들수록 박완서나 박경리처럼 성인이 된 이후에 데뷔해 죽기 직전까지 일을 놓지 않았던 사람들의 이야기가 마음을 울린다. 사노 요코도 그렇다. 사노 요코도 무사시노 미술대학 재학 시절부터 그림으로 돈을 벌어 암으로 죽기 직전까지 왕성한 활동을 했다. 이는 이들에게 글과 그림이 도달해야 할 예술이나 취미로 하는 유희가 아니라 경제 활동을 위한 수단, 사회적 인간으로 존재하기 위한 방편이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일간 이슬아>의 이슬아가 사람들에게 자신을 '작가'가 아니라 '연재 노동자'라고 소개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는 내가 그동안 천재를 꿈꾸던 어린이 상태에서 벗어나 먹고사는 게 제1목표인 때묻은 어른이 된 것과 무관하지 않다.


비록 먹고사는 일이 가장 중한 때묻은 어른이 되었을지라도 할 말은 하자는 저자의 주장에도 깊이 공감한다. 저자는 짐 자무시의 영화 <패터슨>을 보고 '불편했다기보다 약간 씁쓸했던 장면'이 딱 하나 있었노라고 고백한다. 그것은 시를 쓰는 버스 운전기사 패터슨이 저녁 산책을 하다가 양아치스러운 십 대들을 마주치는 장면이다. 이 장면을 보고 저자는 패터슨이 아무 거리낌 없이 십 대들에게 다가가 아무렇지 않게 대화를 나누고 아무 일 없이 각자 갈 길 갈 수 있었던 것은, 패터슨이 '190센티미터 가까운 키에 떡 벌어진 어깨에 해병대 출신인 유럽계 인종 남자'였기 때문이라는 생각을 떠올렸다. 만약 패터슨이 여자였다면, 남자라도 소수 인종이거나 왜소했다면 해당 장면의 인상은 전혀 달랐을 것이다. 저자는 이런 생각들을 떠올릴 때마다 '프로불편러'라는 말을 듣는 것이 불편하다. 성폭행이나 학교 폭력 같은 사건이 발생했을 때 가해자가 아니라 피해자를 비난하고, 피해자의 행실 운운하는 사람들이 꼭 있는 것도 불편하다.


프로불편러가 열 명이 모이고 백 명이 모이면 세상에 없는 예술 작품이 탄생한다는 것도 믿는다. 대표적인 예가 2017년 아카데미 작품상을 수상한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의 영화 <셰이프 오브 워터>다. 이 영화는 기존 영화들이 여성을 성녀 또는 창녀로 묘사하던 관례를 완전히 무시한다. 착하고 온순하지도 않고 통상적인 미녀도 아니고 남성의 욕망에 끌려다니지도 않는 여성 주인공 '일라이자'의 모습을 통해 그동안의 영화들이 얼마나 여성을 왜곡된 모습으로 묘사했는지를 보여준다. 나아가 여성이고, 가난하고, 장애로 말을 못 하는 일라이자가 자기보다 더 힘든 처지에 놓인 괴생명체에게 연민을 느끼고 사랑에 빠지는 모습을 통해 그동안의 영화들이 묘사했던 '사랑'이 얼마나 주류 중심적이었는지를 알게 해준다. 어떤 영화가 기존의 통념이나 관례를 답습하는 방식으로 게으르게 만들어진 영화인지, 아니면 다른 영화들이 미처 담아내지 못했거나 일부러 무시했던 소수자들의 목소리에 주의를 기울이며 성실하게 만들어진 영화인지 제대로 보게 해준다. '다시 보게(re-view)' 해준다.


그동안 나는 리뷰를 쓰는 데에만 급급해 정작 독자가 리뷰의 대상을 '다시 보게' 만들지는 못했다. 독자가 놓칠 만한 점을 찾아내거나 불편했던 점을 용감하게 지적하는 역할을 충실히 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없다. 나는 언제쯤 이런 리뷰를 쓸 수 있을까. '광대함'은 없고 '게으름'만 있는 지금의 나로선 힘들 거야, 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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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마음 바깥에 있었습니다 - <고통을 달래는 순서>의 김경미 시인이 차곡차곡 쌓아올린 일상의 풍경
김경미 지음 / 혜다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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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디오 키드였던 나는 지금도 곧잘 라디오를 듣는다. 관심 있는 라디오 프로그램을 팟캐스트로 듣는 경우도 많다. 들을 거리가 많은 시대에 굳이 라디오를 찾아 듣는 이유를 대라면, 항상 같은 시간 같은 자리에서 조근조근 이야기를 들려주는 진행자가 마치 내 친구 같고 가족 같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오늘처럼 사람 때문에 지치고 마음에 맞는 사람 만나기가 하늘에 별 따기보다 어렵다는 생각이 드는 날에는, 직접 만나본 적 한 번 없는 라디오 진행자가 들려주는 말들이 오래 사귄 친구와 떠는 수다보다 큰 위로가 된다.


김경미 시인의 <너무 마음 바깥에 있었습니다>는 저자가 KBS 클래식 FM <김미숙의 가정음악>이라는 프로그램의 한 코너 <시간이 담고 있는 것들>을 위해 쓴 원고들을 모은 책이다. 시인이면서 오랫동안 방송 작가로 일해온 저자는 거의 매일 원고를 쓰고, 어떤 날에는 미리 녹음하는 방송을 위해 평소보다 두 배 많은 분량의 원고를 쓰는데도 글쓰기가 늘 어렵다고 토로한다. 정말로 오랫동안 해온, 너무나 익숙한 일임에도 불구하고 글쓰기가 늘 어렵게 느껴지는 건, 글 한 편 한 편에 쏟는 애정과 노력이 남다르기 때문이란 걸 이 책을 읽으면 저절로 알 수 있다.


가장 좋았던 글 한 편을 꼽자면 <은행잎이 전하는 말>이라는 제목이 붙은 글이다. 어느 가을날, 마을버스를 타고 가는데 한 노인이 큰 소리로 말했다. 길거리고 어디고 낙엽이 너무 많이 떨어져 있어서 지저분하고 위험하다는 내용이었다. 그 노인이 내리고 곧 다음 정거장에서 다른 노인 한 분이 탔다. 이 노인도 목소리가 유난히 컸는데, 그 큰 목소리로 꺼낸 말은 이랬다. 요즘 은행잎이 너무 멋지니 이런 풍경을 볼 수 있을 때 실컷 봐두라고, 젊은 날엔 일도 중요하고 돈 버는 것도 중요하지만 좋아하는 사람과 낙엽 쌓인 길을 걷는 게 더 좋은 추억이 된다고 말했다.


이런 지혜를 우리 삶에 적용해보면 어떨까. 하루하루가 똑같다고, 지루하고 재미없다고 불평하는 대신, 매일 무사히 삼 시 세끼 밥 먹고 아픈 곳 없이 지내니 감사합니다,라고 말해보면 어떨까. 공부하는 것도 힘들고 일하는 것도 힘들다고 괴로워하는 대신, 언젠가 더 이상 공부하지 않게 되고 일하지 않게 되는 시간을 떠올리며 지금 해야 할 일에 충실해 보는 건 어떨까. 사람 사귀기가 어렵고 마음에 맞는 사람 만나기가 너무 힘들다고 투정하는 대신, 지금 곁에 가까이 있는 사람들부터 잘해주는 건 어떨까. 이거 전부 다 나 자신에게 하는 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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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리의 그림자 철학하는 아이 14
크리스티앙 브뤼엘 지음, 안 보즐렉 그림, 박재연 옮김 / 이마주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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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답다'는 건 대체 뭘까. 삼십 대 중반인 나도 아직 잘 모르겠는데, 나보다 한참 어린 소녀에게는 얼마나 어려운 문제일지 짐작조차 못하겠다.


프랑스 작가 크리스티앙 브뤼엘과 안 보즐렉의 그림책 <줄리의 그림자>의 주인공 '줄리'는 어느 도시, 어느 마을에나 있는 평범한 소녀다. 줄리의 작은방에는 입고 벗은 옷가지가 널브러져 있고, 책상 위에는 읽다 만 책과 그리다 만 스케치북이 펼쳐진 채로 쌓여 있다. 롤러스케이트 타기를 좋아하는 줄리는 한참 신나게 롤러스케이트를 타다가 지치면 방으로 돌아와 책을 읽는다. 롤러스케이트를 신은 채로 침대 위에 엎드려 책을 읽는 줄리의 모습을 본 엄마가 한 말씀하신다. "말 좀 해 봐. 도대체 왜 롤러스케이트를 신고 책을 읽니? 다른 여자아이들처럼 굴 수는 없어?"





줄리는 어른스럽지 않다. 아직도 아이처럼 손가락을 빤다. 줄리는 별로 단정하지 않다. 머리 빗는 것도, 목욕하는 것도 싫어한다. 그런 줄리에게 엄마 아빠는 매일 같이 야단을 친다. "지금 그 꼴로 어딜 가려고?", "마무리가 제대로 안 됐잖아. 더 단정하게 빗어.", "너 일부러 그러는 거지! 그 옷은 구멍 난 거잖아. 내다 버리게 당장 벗어." 엄마 아빠의 잔소리에 못 이긴 줄리가 겨우 머리를 얌전히 빗고 '여자아이같이' 옷을 입으면 그제야 엄마 아빠는 웃는 얼굴로 줄리에게 칭찬을 한다. "봐, 이렇게 예쁘잖니. 이제야 우리 딸 같네."


줄리는 자신이 원하는 대로 하면 어른들이 좋아하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다. 자신이 원하는 대로 하지 않으면 어른들로부터 사랑을 받을 수 있다는 것도 알고 있다.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할지, 아니면 어른들이 하라는 대로 할지 고민하던 줄리에게 '뜻밖의 사건'이 벌어진다. 항상 줄리의 뒤를 졸졸 따라다니는 그림자가 언제부터인가 '남자아이'의 모습으로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사람들은 줄리가 줄리답지 않게 머리를 빗을 때만 줄리를 사랑해 줘요.

사람들은 줄리가 줄리보다 더 얌전하게 앉아 있을 때만 줄리를 사랑해 줘요.

사람들은 줄리가 줄리만큼 떠들지 않을 때만 줄리를 사랑해 줘요.


줄리는 이제 더 이상 자기 자신이 누군지 알 수 없어요.

언제나 다른 사람에게 사랑받는 사람이 되려고만 했기 때문이에요.


줄리의 그림자 속 '남자아이'는 스위스의 정신분석학자 칼 융이 말한 아니마, 아니무스 개념을 떠올리게 한다. 아니마는 남성의 무의식의 한 부분을 구성하는 여성적 심상이고, 아니무스는 여성의 무의식의 한 부분을 구성하는 남성적 심상이다. 융은 개인이 완전한 인간으로 성숙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내면에 있는 아니마 혹은 아니무스를 포용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다시 말해, 남성은 자기 내면에 있는 여성적(이라고 일컬어지는) 가치를 수용하고, 여성은 자기 내면에 있는 남성적(이라고 일컬어지는) 가치를 수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 사회는 여자가 자기 내면의 아니무스를, 남자가 자기 내면의 아니마를 발견하고 포용할 기회를 주지 않는다. 여자는 '여자답게', 남자는 '남자답게' 자라도록 또는 살도록 훈육하는 것이 대부분의 가정과 학교, 사회와 언론이 공통적으로 답습하는 문화다. 그러다 보니 개인은 자기 안의 다양한 가치를 발견하고 수용할 기회를 가지지 못하고, 완전한 인간으로 성숙하지 못한 채 '반쪽짜리 인간'으로 살게 된다.




나는 한 사람이 여자 같을 수도 있고, 남자 같을 수도 있다고 생각해. 둘 다일 수도 있고.

꼭 한 가지 이름표를 붙여야 하는 건 아니잖아. 우리에게는 우리다울 권리가 있어.


페미니즘과 LGBT를 아우르는 내용이라서 '당연히' 최근에 출간되었을 줄 알았는데, 초판이 나온 해가 1975년인 걸 알고 깜짝 놀랐다. '68혁명' 이후 급격히 확산된 반전, 인권, 여성, 환경 운동의 흐름 속에서 이 책이 출간되어 40년 넘게 많은 사랑을 받은 것은, 이 책이 단지 성차별에 관한 문제를 제기할 뿐 아니라 개인의 정체성이 어떻게 정해지고 타인의 개성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에 관한 넓고 깊은 시각을 제기하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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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카의 장갑
오가와 이토 지음, 히라사와 마리코 그림, 이윤정 옮김 / 작가정신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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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가와 이토의 최신작 <마리카의 장갑>은 오가와 이토가 유럽의 발트해 연안에 위치한 라트비아를 직접 여행하고 쓴 동화풍의 소설이다. 숲과 호수로 둘러싸인 평화로운 나라 루프마이제공화국. 장난꾸러기 아들 셋이 있는 집에 귀여운 딸이 태어난다. 가족들은 이 귀여운 여자아이에게 '마리카'라는 이름을 붙여주고 정성껏 돌본다. 가족들의 바람대로 마리카는 씩씩하고 사랑스러운 소녀로 자라난다. 문제는 수공예를 못한다는 것이다. 수공예를 중시하는 이 나라에선 아이들이 열두 살이 되면 누구나 수공예 시험을 치러야 한다. 남자아이들은 접시를 만들고, 바구니를 엮고, 못을 박는 시험을 본다. 여자아이들은 실을 잣고, 수를 놓고, 레이스를 달고, 엄지장갑을 뜰 줄 알아야 한다.


할머니와 어머니, 새언니의 도움으로 가까스로 시험을 통과한 마리카. 그리고 얼마 후 운명처럼 야니스라는 소년을 만난다. 마리카와 야니스는 서로 좋아하게 되고, 얼마 안 있어 결혼을 약속한다. 그러자 또다시 문제가 생긴다. 이 나라에선 신부가 결혼하기 전에 엄지장갑을 잔뜩 떠서 상자 하나를 가득 채워야 하는 전통이 있다. 엄지장갑을 잘 못 뜨는 마리카는 이러다 야니스와 결혼하지 못하겠다는 생각에 잠을 잊고 필사적으로 엄지장갑을 뜬다. 결국 마리카는 야니스와 결혼하게 되지만, 결혼 후 이때까지만 해도 평화로웠던 마리카의 일상에 조금씩 균열이 생기고 끝내 생채기가 난다. 그게 꼭 우리네 삶의 모습 같아서 마지막 책장을 덮는 마음이 씁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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킬링 이브 - 코드네임 빌라넬
루크 제닝스 지음, 황금진 옮김 / arte(아르테)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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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좌의 게임> 시즌8 보려고 왓차 플레이에 가입했다. 큰맘 먹고 가입한 김에 밤마다 이것저것 보다가 <킬링 이브>를 보게 되었다. <그레이 아나토미>로 유명한 한국계 배우 산드라 오에게 2019년 골든 글로브 TV 드라마 부문 여우주연상을 안겨준 화제의 드라마 말이다. 산드라 오는 이 드라마에서 국제적으로 활동하는 여성 킬러 '빌라넬'의 뒤를 쫓는 영국 정보부 요원으로 나온다. 남자가 남자를 뒤쫓는 이야기는 지겹게 봤지만 여자가 여자를 뒤쫓는 이야기는 처음이기도 하고, 드라마 자체가 워낙 완성도 높고 재밌어서 열심히 보다 보니 문득 원작 소설이 궁금해졌다. 그래서 읽었다. 영국 소설가 루크 제닝스의 소설 <킬링 이브>를.


소설 <킬링 이브>는 드라마 <킬링 이브>와 여러모로 다르다. 일단 처음부터 '12(트웰브)'의 존재가 알려진다. 드라마에선 빌라넬과 이브의 대결을 주로 그리다가 나중에야 빌라넬의 배후에 12가 있다는 것을 밝히는데, 소설에선 맨 첫 장부터 빌라넬의 배후에 12가 있고, 12가 어떤 모임인지가 드러나 살짝 김이 빠졌다. 빌라넬의 과거도 이른 단계에서 밝혀진다. 드라마에선 빌라넬의 과거가 나중에야 조금씩 드러나는데, 소설에선 빌라넬이 어떤 어린 시절을 보냈고, 무슨 일을 계기로 킬러가 되었으며, 어떤 훈련을 받았고 어떻게 현재에 이르렀는지가 자세히 나온다. 너무 자세히 나와서 소설 쪽이 원작이 아니라 2차 창작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드라마 <킬링 이브>는 이브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는 데 반해, 소설 <킬링 이브>는 빌라넬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혹독한 훈련 끝에 정식 킬러가 된 빌라넬이 부여받은 임무를 하나씩 해나가다가 그 과정에서 영국 정보부 요원 이브의 감시망에 걸리게 되고, 이때부터 지독한 인연 또는 악연으로 묶이게 된다는 식이다. 빌라넬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하는 것 자체는 나쁘지 않은데, 타인의 감정에 무관심한 사이코패스로 설정된 빌라넬의 심리를 자세하게 보여주니 사이코패스 같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드라마 <킬링 이브>가 평범하다 못해 미숙해 보이지만 실은 두뇌 회전도 빠르고 능력도 뛰어난 요원인 이브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한 건 탁월한 선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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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연 2019-07-26 08: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거 드라마로 보고 싶어서 찜해두었는데... 산드라 오는 연기가 상당히 매력적인 사람인 듯.

키치 2019-07-26 08:34   좋아요 0 | URL
산드라 오 너무 멋있죠! 이 드라마에서도 멋진 연기를 보여줍니다 ^^b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