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보라색 히비스커스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 지음, 황가한 옮김 / 민음사 / 2019년 6월
평점 :
여성의 삶은 국적이나 세대와 상관없이 이다지도 비슷한 걸까.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의 장편소설 <보라색 히비스커스>를 읽으며 든 생각이다. 이 책은 <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합니다>, <엄마는 페미니스트> 등을 쓴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의 2003년 데뷔작이다.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는 이 책으로 영연방 작가상과 허스턴 라이트 기념상을 수상했고, 이후 다수의 소설과 에세이를 발표하며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소설의 주인공은 나이지리아 상류층 가정의 십 대 소녀 '캄빌리'다. 캄빌리의 아버지는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현재는 공장을 몇 개나 거느린 사업가로 자수성가한 인물이고, 캄빌리의 어머니는 그런 아버지와 두 자녀를 헌신적으로 돌보는 현모양처의 표상 같은 인물이다. 캄빌리의 오빠 자자와 캄빌리는 학교에서 1등을 도맡아 하며, 캄빌리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그런 그들을 자랑스럽게 여긴다.
겉보기엔 지극히 모범적인 '정상 가족'으로 보이지만, 이 집안의 실상은 결코 정상적이지 않다. 캄빌리의 아버지는 가부장제의 화신과도 같은 인물이다. 자신의 심기를 거스르거나 자신이 허락하지 않은 행동을 하면 아내와 아이들을 무자비하게 구타하고 벌준다. 아내의 배를 차서 유산을 시킨 적이 여러 번이고, 1등을 놓쳤다는 이유로 아들의 손가락을 망가뜨리고, 하교할 시간에 몇 분 늦었다는 이유로 어린 딸의 뺨을 손자국이 날 만큼 때린다.
캄빌리의 아버지는 자신이 하는 행동들을 기독교와 서구화, 자본주의로 합리화한다. 자신이 가족들을 벌주는 것은 자신의 뜻이 아니라 하나님이 만드신 계명을 따르는 것이고, 자신이 가족들에게 부조리한 규칙과 규율을 강요하는 것은 급변하는 세상에서 남들보다 더 잘 살고 조금이라도 우위를 차지하기 위함이라고 말한다. 캄빌리의 어머니와 오빠 자자, 캄빌리는 아버지의 방식에 의문을 품지 않았다. 아버지의 여동생, 이페오마 고모가 나타나기 전까지는.
이페오마 고모는 남편과 사별한 후 대학에서 일하며 세 아이를 키우고 있다. 이페오마 고모는 캄빌리의 아버지를 설득해 자자와 캄빌리가 자신의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게 하고, 얼마 후에는 자신의 집에서 머무르게 한다. 자자와 캄빌리는 고모의 집에서 지내며 많은 것에 놀란다. 식사 시간에 자유롭게 대화해도 되고, 집에서 편하게 TV를 보거나 음악을 들어도 되고, 종교와 사회 문제에 대해 의문을 가져도 되고 부모에게 질문해도 된다는 사실에 충격받는다.
"네 머리가 몇 개냐, 그보?"
아버지가 처음으로 이보어를 섞어서 물었다.
"하나요."
"저 애도 머리가 하나지 두 개가 아니잖니. 그런데 왜 쟤가 1등을 하도록 놔뒀지?"
(63쪽)
그때 나는 이페오마 고모도 사촌들에게 똑같이 해 왔음을 깨달았다. 엄마가 자식한테 어떤 식으로 말하고, 무엇을 기대하는가를 통해 그 애들이 뛰어넘어야 할 목표를 점점 더 높였다. 아이들이 반드시 막대를 넘으리라 믿으면서 항상 그랬다. 그리고 실제로 그렇게 됐다. 오빠와 내 경우는 달랐다. 우리는 스스로 막대를 넘을 수 있다고 믿어서 넘은 게 아니라 넘지 못할까 봐 두려워서 넘었다.
(274쪽)
봉헌 행렬을 위해 나올 때 보니 어떤 여자들은 속이 비치는 검은 베일을 머리에 쓰기만 했고 어떤 여자들은 바지를, 심지어는 청바지를 입고 있었다. 아버지가 봤다면 노발대발했을 것이다. 여자가 하느님의 집에서 머리카락을 보이면 안 되지. 여자가 남자 옷을 입으면 안 되지, 특히 하느님의 집에서는! 아버지라면 그렇게 말했을 것이다.
(291쪽)
소설의 배경인 나이지리아는 한국과 지리적으로도 멀고 문화적으로도 가깝지 않은 나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설의 많은 장면이 한국 소설의 장면들과 많이 겹쳐 보였다. 가부장적인 아버지가 가족들을 억압하는 장면들이 특히 그랬다. 아내에게는 무조건적인 순종과 정절을 강요하고, 아들에게는 자신의 후계자가 될 능력이 충분함을 입증하길 기대하고, 딸에게는 그저 귀엽고 말 잘 듣는 인형 같은 존재로 남길 바라는 모습은 나이지리아의 아버지들이나 한국의 아버지들이나 크게 다르지 않아 보였다.
나는 이 소설에서 전통을 상징하는 할아버지와 근대를 상징하는 아버지가 서로 추구하는 바가 다르다고 갈등하면서도 여성에 대한 인식은 거의 비슷한 입장인 점이 인상적이었다. 이페오마 고모에게 '딸은 자식이 아니'라고 말하는 할아버지나, 여자는 바지를 입으면 안 되고 아버지나 남편이 시키는 대로 해야 한다고 믿는 아버지나 여성 혐오를 한다는 점은 동일하다. 이들이 어떤 결말을 맞았는지가 이들이 가진 인식의 한계를 보여주지 않나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