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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카나 1 - 개정판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 지음, 황가한 옮김 / 민음사 / 2019년 6월
평점 :
나이지리아 소설이 분명한데 어쩌면 이렇게 한국 소설 같은지.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의 <보라색 히비스커스>에 이어 <아메리카나>를 읽고 든 생각이다.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가 2013년에 발표한 <아메리카나>는 나이지리아에서 더 이상 살아갈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고 판단한 주인공 이페멜루가 미국으로 이주해 각종 차별과 편견에 부딪치며 성장해가는 과정을 그린 소설이다. 태어나고 자란 나라에서는 더 이상 살 수 없다고 생각한 주인공이 이민을 택한다는 점에서 장강명의 소설 <한국이 싫어서>를 연상케 한다. 그만큼 두 나라의 사회 환경이 비슷하고 젊은이들이 처한 현실이 유사하다는 뜻이리라.
소설은 이페멜루의 현재와 과거가 교차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이페멜루는 나이지리아의 중산층 집안 출신이다. 정부 기관에서 일했던 아버지는 실직 후 일자리를 쉽게 구하지 못했고, 어머니는 그런 아버지에 대한 불만을 종교 활동으로 풀었다. 이페멜루는 자신의 집안 형편보다 훨씬 좋은 집안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에 다녔다. 부모가 가진 부와 권력을 자랑하는 일밖에 모르는 아이들 사이에서 오빈제는 유난히 빛나 보였다. 대학교수의 아들인 오빈제는 여느 남자아이들과 달리 항상 차분하고 독서를 즐겼고, 직설적으로 말하고 솔직하게 행동하는 이페멜루를 매력적인 여자애라고 생각했다. 얼마 후 둘은 전교생이 다 아는 공식 커플이 되었고, 그렇게 계속 사귀다 남들처럼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을 구하면 결혼식을 올리고 가정을 꾸릴 거라고 누구나 생각했다.
이페멜루와 오빈제가 나이지리아에서 같은 대학에 진학했을 때만 해도 그랬다. 하지만 나이지리아의 정세가 급격히 안 좋아지기 시작했고, 젊은이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미국이나 영국으로 유학을 가거나 취업을 하러 떠나기 시작했다. 이페멜루도 미국에 사는 우주 고모에게 미국으로 오라는 연락을 받는다. 전기와 가스 공급조차 원활하지 않은 나이지리아보다는 미국이 생활 환경도 훨씬 좋고 취업 기회도 많다는 이유다. 얼마 후 이페멜루는 미국 대학의 입학 허가를 받아 나이지리아를 떠난다. 우주 이모의 말대로라면 미국은 나이지리아보다 살기도 좋고 취업도 잘 되어야 하는데 직접 부딪친 현실은 다르다. 나이지리아에선 그래도 중산층의 삶을 살았는데 미국에선 하층민이다. 사회보장번호조차 없는 이페멜루에게 주어지는 직업이라곤 말 그대로 '몸을 쓰는' 일뿐이다.
이페멜루를 더욱 놀라게 한 건 미국 내에서 벌어지는 인종 차별이다. 나이지리아에 있을 때 이페멜루는 자신이 흑인이라는 사실을 크게 의식하지 않았다. 극소수의 백인을 제외하면 다들 흑인이었기 때문이다. 미국에선 달랐다. 미국에는 미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흑인 외에 아프리카, 남아메리카 등 각지에서 온 흑인들이 있다. 이들 간에도 계층이 있고 서로 다른 문화가 있어서 이페멜루는 매번 누구를 만날 때마다 - 그 사람이 백인이든 흑인이든 - 자신이 '나이지리아에서 온 흑인'이라는 사실을 설명해야 하는 게 피곤했다. 나이지리아에 있을 때는 자신이 '나이지리아에서 온 흑인'이라는 말을 할 필요도 없었고 그런 생각조차 안 하고 살았기 때문이다.
이페멜루는 자신이 미국에서 겪은 일들을 블로그에 기록하기 시작한다. 이페멜루가 블로그에 쓴 글들은 미국 내에서 자행되는 크고 작은 인종차별을 환기시키며 큰 반향을 일으킨다. 이페멜루의 블로그가 유명세를 얻는 동안, 이페멜루는 여러 명의 남자들을 사귀며 여성으로서, 인간으로서 다양한 경험들을 한다. 인종 문제, 특히 흑인 문제를 주로 다룬 소설이지만, 작가도 여성이고 주인공도 여성이기에 여성 문제가 필연적으로 드러난다. 유색 인종 여성과 교제하는 것에 대해 일종의 성적 판타지를 가지고 있는 백인 남성들, 그리고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간에 그런 백인 남성들과 교제하거나 결혼함으로써 취업 또는 영주권 취득의 특혜를 누리는 외국인 여성들의 문제를 드러낸 대목이 특히 그렇다(그 반대의 경우도 나온다).
이틀 밤을 꼬박 새워 읽었는데도 다시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 만큼 잘 읽히고 흥미로운 작품이다. 인종 문제, 여성 문제, 계급 문제 등 온갖 사회 문제를 포함하는 사회 소설로 읽어도 좋지만, 평범한 여학생이었던 이페멜루가 독립적이고 진취적인 여성 저널리스트로 변모해가는 과정을 그린 성장 소설로 읽어도 좋고, 한때는 순진한 커플이었던 이페멜루와 오빈제가 각자 미국과 영국에서 험난한 일들을 겪으며 서로의 의미를 재발견해는 과정을 그린 연애 소설로 읽어도 좋다. 2014년 영화화 소식과 함께, 제작은 브래드 피트, 주연은 루피타 뇽오가 맡을 예정이라는 소식이 전해졌는데 과연 언제쯤 스크린으로 볼 수 있을까. 벌써부터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