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이프 오브 워터
기예르모 델 토로.대니얼 크라우스 지음, 김문주 옮김 / 온다 / 2018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2018년 제90회 아카데미 영화제에서 작품상을 포함한 최다 부문 수상에 빛나는 영화 <셰이프 오브 워터>의 소설판이다. 영화를 아직 못 봐서 소설과 영화 중 어느 것이 더 나은지는 말할 수 없지만, 소설만 읽어도 충분히 환상적이고 황홀해서 이를 영상으로 구현한 영화를 보면 얼마나 더 환상적이고 황홀한 느낌을 받을 수 있을지 궁금하고 기대된다.


이야기의 배경은 소련과 우주 개발 경쟁이 한창인 1960년대 미국. 미 항공우주 연구센터의 비밀 실험실에서 청소부로 일하는 엘라이자는 영화와 구두를 좋아하는 평범한 처녀다. 엘라이자는 비록 귀가 들리지 않고, 자신을 돌봐줄 가족도 없지만, 직장에는 믿음직한 동료 젤다가 있고 옆집에는 자신의 일이라면 무조건 발 벗고 도와주는 가난한 화가 자일스가 있다. 어느 날 엘라이자는 실험실에 온몸이 비늘로 덮인 괴생명체가 들어온 것을 알게 된다. 실험실의 보안 책임자 리처드 스트릭랜드는 실험실의 직원들은 물론 청소부들에게도 괴생명체에 대한 관심을 거두고, 외부에 괴생명체에 관한 말을 조금이라도 퍼뜨릴 시에는 가만두지 않겠다고 엄포를 놓는다. 하지만 엘라이자는 괴생명체에게 왠지 모를 연민과 끌림을 느끼고, 스트릭랜드의 눈을 피해 매일 그를 찾아간다.


여기까지는 <셰이프 오브 워터>가 한창 주목받을 때 영화 프로그램에 소개된 시놉시스와 크게 다르지 않다. 내가 이 소설에서 새롭게 발견한 건 리처드 스트릭랜드의 아내 '레이니'의 존재다. 레이니는 군인인 남편과 두 아이를 돌보며 살고 있는 전업주부다. 레이니는 두 아이를 낳은 지금도 여전히 젊고 건강하고 똑똑하다. 하지만 리처드는 레이니가 직업을 가지거나 스스로 차를 운전하는 것조차 허락하지 않는다. 여자가 밖에서 일을 하거나 운전을 한다는 건, 그 여자의 남편이 충분한 돈을 벌지 못하거나 운전할 능력이 없다는 뜻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 날 레이니는 우연히 일자리를 얻게 되고 직장에서 능력을 인정받게 된다. 자신도 남편처럼 밖에서 일을 하고 돈을 벌 능력이 있음을 알게 된 레이니는 더 이상 집으로 돌아가 전업주부로 살 수가 없게 된다.


레이니의 이야기를 읽으니 주인공 엘라이자의 이야기가 더 분명하게 읽혔다. 괴생명체를 만나기 전의 엘라이자는 가난해서, 여성이라서, 장애인이라서 당하는 수치와 모욕을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남자 화장실을 청소하는 중에 남자가 들어와서 소변을 보려 하면 잠깐만 기다려달라는 말을 하지 못했다. 보육원 원장이 자신의 장애를 두고 끊임없이 놀리는 말을 하고 공개적으로 괴롭혀도 항변하지 못했다. 엘라이자는 영화를 보면서 여기가 아닌 다른 세계를 꿈꾸기 시작했다. 나 아닌 다른 존재가 되기를 소망하기 시작했다. 마침내 실험실에 괴생명체가 나타났을 때, 엘라이자는 오직 그만이 불완전한 자신을 있는 그대로 봐준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와 함께 있으면 소리가 들리지 않고 말을 하지 않아도 온전히 소통할 수 있다는 걸 알았다.


이 소설에는 엘라이자와 레이니 외에도 젤다라는 멋진 여성 캐릭터가 나온다. 젤다는 실험실에서 일하는 청소부들의 보스 격 인물로, 흑인이며 여성이라는 이유로 이중의 차별을 당하고 있다. 젤다는 비록 자신보다 한참 늦게 실험실에 들어온 직원들이 백인 남성이라는 이유로 더 빨리 승진하고 더 많은 봉급을 받는다는 사실에 화가 나기는 하지만, 항상 자기보다 못한 처지에 있는 - 엘라이자 같은 - 동료들을 케어하며 살고 있다. 이 책에는 이런 식으로 약자가 약자를 돕거나 구하는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이들을 못살게 구는 존재가 항상 백인 남성이라는 사실이 의미심장하다. 정작 그 백인 남성이 두려워하는 괴생명체는 - 여러 의미로 - 이들 모두를 구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쓸 만한 인간 - 개정증보판
박정민 지음 / 상상출판 / 2019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책을 읽기 전까지 배우 박정민에 대해 잘 몰랐다. <파수꾼>, <동주>, <그것만이 내 세상>, <사바하>, <타짜 : 원 아이드 잭> 같은 영화에 비중 있는 배역으로 출연한 배우라는데 공교롭게도 이 중에 본 작품이 하나도 없다. 그러니 내게 이 책은 배우 박정민이 쓴 에세이집이 아니라 작가 박정민이 쓴 에세이집으로 읽힌 셈인데 기대한 것보다 훨씬 좋았다.


일단 재미있다. 학창 시절 내내 연예인과는 거리가 먼 평범한 학생이었던 저자는 대학 입학 후 연기자의 꿈을 품고 극단에 들어갔다. 명문대에 다니는 아들이 학교를 그만두고 연기를 하겠다고 하자 부모님의 반대가 대단했다. 한예종 연기과 입학 시험도 보았지만 면접장을 통과하지 못했다(이듬해에 재도전해 합격했다). 겨우겨우 독립영화로 데뷔해 조금씩 필모를 쌓고 배우로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지만, 아직도 현실은 퇴직한 아버지가 집에 계신 줄도 모르고 목청 높여 걸그룹 노래를 부르다가 아버지가 집에 계시다는 걸 뒤늦게 깨닫고 PC방으로 도망치는 찌질한 모습이다. 외국 여행 가면 유명한 한국 연예인들과 친한 사이라고 뻥쳐서 안주를 얻어먹(는 줄 알았다가 뒤통수 맞)고, 친구들이 잘 나간다고 한 턱 내라고 하면 아버지 카드로 술값을 치르는 형편이다. 연예인은 전부 바쁘고 돈이 많다는 편견을 깨주는 대목들이다.


면접장에서 좋아하는 작가가 누구냐는 질문을 받고 '요시모토 바나나'라고 대답하는 대목에선 배를 잡고 웃었다. 그랬던 저자가 김영하, 박민규, 무라카미 하루키, 에쿠니 가오리, 도스토예프스키, 카뮈 등의 책을 열심히 읽기 시작해, 1년 후 다시 그 면접장에 섰을 때는 그럴 듯한 답변을 하는 모습에선 박수가 절로 나왔다. 영화 <동주>의 송몽규 역으로 캐스팅된 후 송몽규와 그가 살았던 시대에 관한 책들을 닥치는 대로 사들여 영화 촬영 시작 전까지 몽땅 읽었다는 대목에선 마음이 뭉클했다. 송몽규가 남긴 아주 작은 흔적이라도 직접 보고 싶어서 용정까지 다녀왔다는 대목도 기억에 남는다. 자신이 맡은 배역을 최대한 완벽하게 이해해 관객에게 잘 소개하기 위해 갖은 노력을 불사하는 모습이 멋있었다. 이런 배우라면 앞날을 기대해봐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알고보니 저자와 나는 공통점이 의외로 많았다. 출생연도는 다르지만 학번이 같고, 분당 야탑동에 살았던 것도 같다. 나는 고등학교 때 야탑동에 살고 대학교 때 서울로 이사했기 때문에 우연히라도 저자와 마주쳤을 가능성은 낮지만, 분당에 살았다는 사람은 많이 봤어도 야탑동에 살았다는 사람은 많이 못 봐서 신기했다. 나이가 비슷하고 살았던 곳이 겹쳐셔인지 어린 시절이나 학창 시절 추억도 닮은 구석이 많았다. 지금처럼 멀티플렉스 영화관이 없던 시절에 극장에서 <쉬리>를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는 것도, 중학교 때 <상실의 시대>를 읽고 무슨 내용인지 이해를 못했다는 것도 같은 또래로서 크게 공감했다. 이 책을 내고 더는 책을 쓸 마음이 없다는데 부디 마음을 바꿔줬으면. <쓸 만한 인간 2>를 기대하는 독자가 나뿐만은 아니리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남자아이가 아니라 아이를 키우고 있습니다 - 무례한 세상 속 페미니스트 엄마의 고군분투 육아 일기
박한아 지음 / 21세기북스 / 2019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페미니스트 엄마는 아들을 어떻게 키울까. 박한아의 책 <남자아이가 아니라 아이를 키우고 있습니다>는 페미니스트인 저자 박한아가 네 살 난 아들 바당이를 키우면서 경험한 일들, 얻게 된 생각을 담은 에세이집이다.


저자는 아이의 성별에 대해 크게 신경쓰지 않는 편이었다. 하지만 세상은 달랐다. 저자가 임신 소식을 전하자 주변 사람들은 하나같이 아이의 성별을 궁금해 했다. 아들이라고 전하자 들어오는 선물이 죄다 파란색으로 바뀐 정도는 예사였다. 남자애들은 때려야 한다느니, 남자애들은 더 크기 전에 기를 꺾어놔야 한다느니 같은 말을 조언이랍시고 하는 사람들을 만날 때면 끔찍했다. 여자로서 살아가는 세상도 끔찍하지만 남자로서 살아가는 세상도 만만찮게 끔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태어난 아이에게 분홍색이나 꽃무늬가 그려진 옷을 입혔을 때 사람들이 보인 반응도 가관이었다. "여자애처럼 생겼네"는 괜찮은 수준이고, "얘 정말 아들 맞아요?", "엄마가 딸 갖고 싶은가 보다. 여동생 낳아달라고 해." 같은 말을 들을 때면 자기도 모르게 뾰족한 대답이 나갔다. 다들 생각 좀 하고 말했으면 하는 생각이 간절했다. 


때로는 저자 안에 남아있는 성차별적인 사고방식을 발견하고 부끄러움을 느끼기도 했다. 어느 날 아이가 쇼핑몰에서 한 가게에 걸려 있던 핑크색 샤스커트를 보고 사달라고 했을 때, 저자는 황급히 아이의 관심을 딴 데로 돌리고 그 자리를 떴다. 아이가 여자와 남자의 몸에 관한 호기심을 드러냈을 때에도 겉으로는 내색하지 않았지만 속으로는 내심 당황했다. 아이가 성기에 대해서 물으면 '누구는 있고 누구는 없다'고 얘기하지 말고 '모두 있다'고 말하라는 조언이 유용했다. 뭉뚱그려 말하지 말고 솔직하게, 정확한 명칭을 사용하라는 조언도 도움이 되었다.


아이가 건강한 성관념, 성인지 감수성을 지닌 사람으로 자라나길 바라는 마음은 굴뚝 같지만 현실은 녹록치 않다. 언제부터인가 남자 아이들이 교사를 성희롱하고, 엄마의 영상을 찍어 '엄마 몰카'라는 제목으로 동영상 사이트에 올리고, 같은 반 여자 아이에게 '김치녀' '느금마' '앙 기모띠' 같은 말을 수시로 내뱉는다는 기사가 심심찮게 보인다. 그런 기사를 볼 때면 저자는 이 험한 세상에서 아이를 어떻게 키워야 할지 막막함을 느낀다. 모부는 성차별 없이 아이를 키운다고 해도, 어린이집에서, 유치원에서, 학교에서, 친구들 사이에서, TV나 유튜브 동영상을 보면서 흡수하게 되는 성차별적 관념이나 편견들까지 모부가 어떻게 해줄 수는 없지 않은가.


저자의 이런 이야기들을 읽고 있노라니 비혼 무자녀인 나조차도 참 답답하고, 답이 없는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이야 아이가 어려서 모부의 말을 잘 듣는다 해도 갈수록 친구들이나 미디어의 영향을 더 많이 받을텐데, 과연 아이가 올바른 성관념을 지닌 친구들을 만날 수 있을지, 잘못된 성관념을 전파하는 미디어로부터 자신을 잘 지킬 수 있을지 걱정된다. 모부가 아무런 노력을 하지 않는 것보다는 조금이라도 노력을 하는 게 낫다는 생각은 든다. 나의 모부만 해도 딸아들 구분 없이 나를 키워줬고, 덕분에 나는 또래보다 일찍 페미니즘에 눈뜨고 페미니스트가 되었다. 만약 내가 여자는 '여자다워야' 한다고 믿는 모부 슬하에서 자랐다면 어떤 사람이 되었을까. 결국 내가 되었겠지만 더 많이 흔들리고 방황했겠지. 이 세상 모든 페미니스트 모부들을 응원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신경써달라고 한 적 없는데요? - 더 이상 충고라는 이름의 오지랖은 사절합니다
유민애(미내플) 지음 / 21세기북스 / 2019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그래서일까. 우리는 자신의 본능을 따르기보다는 주변의 압력에 굴복할 때가 많다. 학교나 직장, 결혼 등 자신의 인생에서 중요한 선택을 할 때도 스스로의 판단에 따라 결정하지 않고 가족과 친구, 지인의 충고나 조언을 진지하게 고려한다. 식당에서 음식을 주문할 때도 자기가 먹고 싶은 걸 주문하지 않고 주변 사람들의 주문에 맞춰서 주문한다. 티셔츠 한 장을 살 때도 '가족들이 뭐라고 하지 않을까', '친구들이 나를 어떻게 볼까' 같은 생각을 한다. ​ 


이런 사람에게 권하고 싶은 책을 만났다. 고민 상담과 자기 계발을 전문으로 하는 유튜브 '미내플'의 운영자 유민애의 책 <신경써달라고 한 적 없는데요?>이다. 올해로 서른세 살인 저자는 나름 다사다난한 젊은 날을 보냈다. 대학에서 문헌정보학을 전공했지만 적성에 맞지 않았고, 부모님의 조언으로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하다가 1년 만에 그만뒀다. 대학 졸업 후 경제 전문 방송사와 신문사에서 온라인 뉴스 에디터로 일하다가 4년 만에 그만뒀고, 스타트업에서 홍보 담당자로 일하다가 1년 만에 그만뒀다. 이후 고향에서 부모님을 도와 사과를 팔다가 포기했고, 비영리단체에서 일하다가 역시 그만뒀다. ​ 


저자는 입사와 퇴사를 반복하는 동안 주변 사람들로부터 별별 말을 다 들었다. "네 나이와 스펙에 거기보다 더 좋은 직장 없다", "빨리 결혼해야지. 서른 지나면 아무도 너 안 데려가" 같은 말들. 그런 말들에 상처받아 운 날도 많았다. 지금은 그런 말들이 정말 나를 위해서, 걱정해서 해준 말이 아니라는 걸 잘 안다. 그런 말을 한 사람들은 친절과 배려라는 이름으로 오지랖을 부렸을 뿐이다. 말하는 건 돈이 안 든다는 이유로 약자인 나를 상대로 스트레스를 푼 것이다. 만약 내가 그들보다 나이가 더 많고, 돈이 더 많고, 지위가 더 높은 사람이었다면 그런 충고나 조언을 할 수 있었을까. 결국 그 또한 갑질이었다.


남의 말에 쉽게 흔들리는 건 자기 자신에 대한 믿음이 약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저자는 어릴 적 부모님에게 혼날 때 들었던 말들이 자신의 발목을 잡는 경험을 여러 번 했다. "넌 못 해" "넌 안 돼" "넌 멍청해" "넌 게을러" 같은 말들이 마음에 남아서, 회사에 이력서를 내거나 새로운 일에 도전할 때 못하게 막았다. 학창 시절 친구들한테 들었던 말이나 남자친구한테 들었던 말들도 상처로 남아서 저자를 두고두고 괴롭혔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좋아하지 않을 거라는 생각에 무리를 하면 무리하는 것 같다고 욕먹고, 무리하는 걸 그만두면 성의가 없다고 욕먹었다. 차라리 처음부터 있는 그대로의 나를 보여줬다면 상대도 혼란스럽지 않고 나도 괜히 힘 빼지 않았을 것이다.


저자는 진짜 내 삶을 살고 싶으면 일단 내가 어떤 사람인지부터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방 청소를 해보는 건 어떨까. 저자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정리 컨설턴트 곤도 마리에의 책 <설레지 않으면 버려라>를 읽고 집 정리를 시작했다. 더 이상 설레지 않는 옷과 책, 서류, 소품, 추억의 물건을 정리하자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가 눈에 보였고, 내가 어떤 사람인지 더욱 명확하게 알 수 있었다. 이 밖에도 나의 삶을 더욱 나답게 살기 위한 저자만의 팁이 여럿 나온다. 쉽고 명쾌한 조언이 마음에 쏙쏙 들어온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수영장의 바닥
앤디 앤드루스 지음, 김은경 옮김 / 홍익 / 2019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요즘은 수영장에 갈 일이 별로 없지만 어릴 때는 여름만 되면 수영장으로 놀러 갔다. 수영장에 가면 부모님은 항상 수영장에서 가장 물이 얕은 어린이 풀장에서만 놀라고 말씀하셨다. 수영을 하더라도 깊은 바닥까지 내려가지 말고 어른들이 볼 수 있는 물 위에서 놀라고 당부하셨다. 부모님 말씀을 잘 듣는 어린이였던 나는 부모님이 하라는 대로 어린이 풀장에서만 안전하게 놀았다. 그래서일까. 몇 년을 배웠는데도 수영 실력이 별로인 건. 물 근처에 가지도 않으면서 지레 겁먹고 무서워하는 건.


베스트셀러 <폰더 씨의 위대한 하루>의 작가 앤디 앤드루스의 신작 <수영장의 바닥>을 읽으니 그 시절이 절로 떠올랐다. 이 책에서 저자는 어린 시절 수영장에서 겪은 일로 운을 뗀다. 저자도 어릴 적에 나처럼 여름만 되면 수영장으로 놀러 가곤 했다. 언제부터인가 친구들 사이에서 물속으로 일단 잠수했다가 물 밖으로 가능한 한 높이 솟구치는 사람이 승자가 되는 게임이 유행하기 시작했다. 여러 친구들이 경쟁했지만 승자는 항상 아론이었다. 어느 날 갑자기 케빈이 전혀 새로운 방식을 시도해 새로운 승자가 되기 전까지는 말이다.


케빈이 승리한 방식은 기발하면서도 단순했다. 이전까지 친구들이 물속에서 헤엄을 치다가 순식간에 물 밖으로 치솟았다면, 케빈은 물속에서 헤엄을 치다가 다시 바닥으로 내려가 바닥을 박차고 물 밖으로 튀어나왔다. 바닥을 박차는 힘이 가해지면 물 밖으로 나왔을 때의 높이가 더 높아지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이때까지 저자와 친구들은 하나의 방식만을 고집했다. 저자는 이때의 경험을 통해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배웠다. 승리로 가는 길은 하나뿐이 아니다. 언제나 더 새로운 방식이 있고, 그 새로운 방식을 먼저 시도해 성공하는 사람이 새로운 승자가 될 수 있다.


저자가 어린 시절 수영장 바닥에서 배운 교훈은 우리의 인생에도 적용할 수 있다. 사람들은 모두들 성공하고 싶고 행복해지고 싶어 한다. 성공하기 위해, 행복해지기 위해 저마다 비슷비슷한 선택을 한다. 남들과 비슷비슷한 선택을 해서는 성공할 수도 없고 행복해질 수도 없다. 남다른 성공, 남다른 행복을 원한다면 남다른 길을 택해야 한다. 모두가 정해진 방식으로 점프할 때, 자신은 반대쪽으로 돌아가 바닥을 치고 더 높이 솟구칠 각오와 재치, 열정과 노력이 있어야 한다.


책에는 저자의 주장을 뒷받침해주는 사례가 여럿 나온다. 이 중에는 오늘날 가장 강력한 콘텐츠 파워를 자랑하는 디즈니 사의 창업자 월트 디즈니의 이야기도 있다. 디즈니는 젊은 시절 첫 직장이었던 신문사에서 '상상력이 부족하고 독창성이 결여돼 있다'는 이유로 해고당한 적이 있다. 만약 이때 디즈니가 해고 이유를 받아들이고 만화를 그만뒀다면 지금의 디즈니 신화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자신의 가치를 결정하는 것은 그 누구도 아닌 자기 자신이다.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기 위해 바닥까지 내려갈 각오가 되어 있는 사람. 그런 사람에게만 승리의 여신은 미소를 보내줄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