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대와 통하는 사찰 벽화 이야기 -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읽는 16가지 불교 철학 10대를 위한 책도둑 시리즈 14
강호진 지음, 스튜디오 돌 그림 / 철수와영희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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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은 한적하고 호젓한 곳에 있다. 아마도 절이 자리잡은 자리는 대부분이 명당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리라. 그만큼 절이 위치한 곳은 산세도 좋고 물도 있고, 또 사람의 마음을 포근하게 감싸주기도 한다.

 

여기에 더하여 절 건물들을 보라. 웅장하게 지은 대웅전조차도 우리를 압도한다기보다는 감싸안아준다는 느낌을 주고, 조금 오래된 절에 가보면 세월의 힘에 의해 변해가는 절의 모습이 오히려 더 친근하게 다가온다.

 

그런데 절을 종교의 장소라기보다는 관광의 장소로, 또는 쉼터의 장소로만 이용을 했던 나에게는 절 건물 벽에 있는 그림들은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사실 절 벽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불교의 내용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어야 하는데, 읽은 경전이 얼마 되지도 않고 불교 신자도 아닌 내가 그 내용들을 제대로 읽어낼 리는 없다.

 

한문 실력이 부족해서 우리나라 옛건물들인 한옥에 가면 기둥마다 붙여놓은 주련들을 읽어내지 못해 아, 한자구나 무슨 뜻일까 궁금해만 한 모습과 비슷하게도 절에 가서도 그림을 그냥 눈으로만 보고 말았다.

 

눈으로만 본 그림이 마음으로 들어와 나에게 어떤 감흥을 불러일으켜야 하는데, 뭘 알아야 감흥이 일지. 역시 알아야 보인다. 보여야 사랑한다. 사랑해야 느낄 수 있다. 유홍준 교수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로 유명해진 이 말처럼 말이다.

 

이 책은 여기에서 출발한다. 작은 제목이 바로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읽는 16가지 불교 철학'이다.

 

철학이라는 말 때문에 긴장할 필요는 없다. 그냥 쉽게 우리가 절에서 만날 수 있는 벽화 16가지에 대한 이야기라고 생각하면 된다.

 

교회나 성당에 가도, 특히 외국의 유명한 성당에는 기독교에 관련된 그림이 많다. 세계적인 명작이라고 하는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 역시 성당에 있는 그림이 아니던가. 그런 식으로 절에도 그림이 많고, 그 그림을 유명한 화가가 그린 경우도 있겠지만(우리는 어린 시절에 황룡사 담에 소나무 그림이 있는데 너무도 잘 그려서 새들이 와서 앉으려다 부딪쳐 죽었다는 이야기를 읽고 자랐다. 여기에 담징이 그렸다는 금당벽화 이야기도) 대부분은 이름없는 화가가 그린 그림이 많다.

 

또, 절에서는 벽화가 닳아 새것으로 고칠 때는 전의 것을 싹 없애고 다시 그렸다고 하니 유명한 절 벽화가 많이 남아 있지 않은 현실이다.

 

이 책에서는 그것을 안타까워 하기보다는 생과 사가 하나이고, 윤회임을 이야기하면서 오래된 벽화보다는 지금 우리가 볼 수 있는 벽화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주고 있다.

 

좋다고 해서 영원히 사라지지 않게 하려는 모습 또는 집착에 불과하니, 이 책의 지은이가 우리가 또렷이 볼 수 있는 벽화를 선택한 것은 불교의 교리에도 맞는 자세라는 생각이 든다.

 

하여 16가지의 벽화가 소개되고, 그 벽화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주고 있다. 그 이야기 끝에 불교철학에 관한 이야기가 덧붙여지고 있는데...

 

불교철학이라고 해도 어렵게 설명하지 않는다. 그냥 청소년들이 쉽게 읽을 수 있도록 그 벽화와 관련지어 불교의 핵심 교리를 이야기해주고 있다. 그래서 결코 어렵지 않다. 지루하지도 않다. 오히려 재미있다.

 

재미있게 읽으면서 그동안 지나치기만 했던 벽화에 담긴 이야기를 알아갈 수 있고, 더불어 자신의 마음 속으로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인가 하는 질문을 하고 답을 할 수도 있다.

 

이 책에도 나오지만 잘 산다는 것, 간단하다. 조과 스님을 찾아온 백낙천에게 스님이 해 주었다는 말. 

 

"아무리 작은 악이라도 짓지 말고, 모든 착한 일을 다 행하라. 그렇게 스스로 마음을 깨끗이 하면 이것이 바로 부처님의 가르침이다." (156쪽)

 

백낙천은 이 말을 듣고 세 살 아이도 아는 말이라고 코웃음을 치지만, 스님은 세 살 아이도 아는 말이지만, 팔순 노인도 실천하기엔 어려운 말이라고 되받아친다.(156쪽)

 

그렇다. 앎과 삶이 일치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는 우리가 잘 알고 있지 않은가. 최근에 우리나라에서 정치를 한다는 사람들이 어떤 잘못을 저질렀는지, 과연 그들이 몰라서 그랬겠는지, 그들은 그냥 관행이라서 그랬다고 하기도 하지만... 그들의 앎은 그러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게 앎과 삶이 하나되기가 어려운데, 진리의 길은 결코 먼 데 있지 않은데... 그것이 이리도 실천하기 힘드니...

 

결국 어떤 종교든 이 말 하나로 통한다는 생각이 든다.

 

옳은 것을 행하고, 옳지 않은 것을 행하지 말고, 네 마음을 깨끗이 하라.

 

이렇듯 이 책은 꼭 불교에 국한되어서 이야기하지 않는다. 우리의 삶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절에서 볼 수 있는 그림들을 통해서 우리의 삶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이야기해주고 있다. 하여 불교에 대해 문외한이라고 해도 이 책은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그림과 이야기가 있으니 재미 없을 턱이 없고, 자신이 보던 그림에 그런 이야기가 속해 있다는 것을 알게 되는 즐거움도 있을테니 말이다.

 

종교와 상관없다. 기독교나 천주교 또는 이슬람 신자라면 관광지라고 할 수 있는(좀 불경한 말인가) 절에 가면 절 벽에 그려져 있는 그림들을 보고, 이런 이야기가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는 데 이 책의 의미를 두면 된다.

 

물론 불교 신자들이나 불교에 관심 있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지식을 하나 더할테고, 지식에 실천까지 더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는 마음가짐을 지니면 된다. 물론 궁극적으로는 종교를 떠나 옳은 삶으로의 실천으로 나아가 앎과 삶이 일치되는 삶을 살아야 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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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인간의 삶과 뗄레야 뗄 수 없는 사상.

연약한 인간이 자신의 연약함을 위로하는 방편으로 종교를 만들었는지, 아니면 신이 인간을 위해서 자신들의 존재를 알리기 위해 종교가 존재하는지 논란은 있지만, 종교는 사람의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역할을 한다.

특히 갑작스런 죽음을 경험하거나 자신의 힘으로 감당하기 힘든 일을 겪거나 할 때 우리는 종교에 귀의한다. 그리고 마음의 위안을 얻는다.

 

세상에 참으로 많은 종교가 있다.

엄청나게 많은 종교. 그런 종교로 인해서 전쟁이 일어나기도 하고.

그럼에도 사람들은 종교를 통해 평화를 얻기도 한다.

그런 종교 중에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믿는 종교가 불교, 기독교, 천주교 등이다.

이 중에 불교는 우리의 역사에서 참으로 오래동안 우리와 함께 했던 종교인데.

 

세상이 그 많고 많은 교회와 성당과 절과 모스크들이 있는데 왜 세상은 평화로와지지 않을까?

세상에 악인도 많고 안 좋은 일도 많으니, 도대체 무슨 까닭인가?

이런 의문이 사라지지 않는다.

 

헌책방에서 불교 관련 책장을 둘러보다 지장경을 발견했다. 한 번은 꼭 읽겠다고 작정했던 경전.

금강경이나 법화경, 화엄경 등이 너무도 어렵다면 지장경은 그리 어렵지는 않다.

지옥에 머물면서 또는 세상을 돌면서 사람들을 구제한다고 하는 지장보살.

그가 건 서원이 바로 모든 사람들을 구제하겠다는 것이었다지.

그는 모든 사람이 구제될 때까지 성불하지 않겠다고 했다지.

하여 그의 이름을 외는 순간, 그를 믿는 순간 우리는 지옥에 떨어지지 않는다고 하지.

지옥에 떨어졌더라도 그가 구제해준다고 하지.

 

얼마나 마음이 편한가.

지장보살과 함께 있으면 지옥에 가지 않는다는.

이를 현실에 맞게 재구성하면 좋은 일, 착한 일, 착한 마음을 지니고 세상을 살라는 얘기가 아닐까.

지장경에는 아주 자그마한 선행을 한 사람도 그 선행에 의해서 지옥을 불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하니.

지장보살을 믿는 사람들은 지장보살만 믿고 멋대로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지장보살이 낸 서원에 따라 우리 모두가 선업을 쌓도록, 해탈할 수 있도록 노력을 하는 사람들이 될 것이다.

 

그것이 바로 종교를 믿는 이유이기도 하다.

믿음과 실천이 함께 가는.

지장보살이 지옥을 두루 다니며 사람들을 구제하는 것은 바로 사랑일텐데, 이를 자비라고 하기도 하니, 이 자비는 바로 우리들이 모두 지니고 있어야 할 삶의 태도 아니던가.

자비가 넘치는 사회, 그 사회가 바로 천당이고 극락이 아니겠는가.

지장보살을 다시 불러내는 사회. 그 사회는 아직도 지옥에서 헤매는 사회가 아닐까.

 

내가 지장경을 꼭 읽고 싶다고 생각했던 이유가 바로 현실이 지옥처럼 느껴질 때 그 지옥에서도 벗어날 길이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싶었기 때문이 아닐까.

 

이런 지옥 속에서도 사람을 위해서 노력하는 존재가 있다는 것. 그것이 신이든, 우리 사람이든 그런 존재는 반드시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싶었기 때문에 이 지장경을 읽고 싶었던 것이리라.

 

어려운 시대다. 정말로 앞이 꽉 막힌, 캄캄한 시대다. 그런 시대, 지장보살이 필요한 시대다.

지장보살. 마음 속에만 있는 보살이 아니다. 지장보살은 행동하는 보살이다. 직접 움직이는 보살이다.

요즘, 그립다. 그런 지장보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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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이 온다
한강 지음 / 창비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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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죄라는 말이 있다. 내가 잘못된 행동을 하지도 않았는데 죄를 지니고 태어났다는 기독교에서 하는 말.

 

인간은 원초적으로 죄인이라고 하고, 이 원죄에서 벗어나기 위해 신의 품으로 들어가야 한다고 하는데, 우리나라 역사에서는 1980년 5월 광주가 원죄로써 작동을 한다.

 

국민을 보호해야 할 군대가 오히려 국민을 학살한 사건. 민주주의를 외쳤을 뿐인데, 당연한 권리를 주장했을 뿐인데, 그 당연한 외침이 폭력으로 진압당하고, 그 후로도 오랫동안 고통을 받아야 했던 5월 광주.

 

우리는 아직도 광주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광주에서 벗어났을 때 그 때서야 비로소 민주주의가 정착했다는 말을 할 수 있게 될 터이다.

 

그래서 이 책을 읽기가 겁났다. 솔직히 34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음에도 광주는 아직도 묵직한 아픔으로 다가오고 있기 때문이다. 해결되지 않은 아픔, 비록 책임자들을 청문회도 하고 법정에도 세웠지만, 그들에게 책임을 지우지는 못했다.

 

국민을 학살했음에도 불구하고 진상규명이 이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책임자들이 처벌을 받지 않은 현실. 그것이 원죄가 아니고 무엇이랴. 우리는 아직도 광주를 이어가고 있음이다.

 

이 광주가 올해는 세월호를 통해서 나타났고, 또다시 우리는 책임자를 처벌하지도 못하고 있는 현실이다. 광주가 반복되고 있다는 느낌.

 

하나의 사건을 철저하게 규명하고, 책임을 지움으로써 다른 일들을 미연에 방지할 수가 있는데, 하나의 사건이 유야무야 넘어가게 되면 그 다음부터는 누구도 책임을 지지 않으려 하게 된다.

 

이게 지금 우리의 현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이 소설이 편하게 읽힐 수는 없다. 작가의 필력으로 소설은 쉽게 읽히지만 읽는 내내 마음은 불편하다. 과거의 광주였으면 좋겠는데, 현재의 광주이기 때문이다.

 

이 소설은 광주를 온몸으로 겪은 사람들의 처지에서 서술된다. 첫부분이 동호라는 16세의 중3학생으로 시작된다. 그런데 특이하게 '너'라는 이인칭으로 서술이 되고 있다. 서술자가 16세의 동호가 되어 동호가 느꼈음직한 마음 상태를 표현하고 있다고 해야 한다. 요즘 가끔 시도되는 그런 2인칭 소설기법이라고 할 수 있는데...

 

작품 전체가 바로 이 동호를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다. 동호 다음에는 동호의 친구인 정대의 입장에서, 아니 정대의 혼이 되어 이야기를 이끌어가고 있다. 젊음의 꽃도 피워보지 못하고 왜 자신들이 죽어가야 하는지, 군인들이 자신들을 왜 죽여야 하는지 물음을 던지는 정대. 여기에 정대의 누나 정미 역시 죽었다고 표현이 되어 있고.

 

정대 다음으로는 동호와 함께 시신 수습을 했던 사람인 김은숙이 나온다. 이 사람은 광주의 생존자다. 그럼에도 광주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출판사 직원으로 일하면서 광주 직후의 검열 문제를 온몸으로 경험하게 된다.

 

다음은 김진수. 그는 생존했으나 살아있는 삶을 제대로 살지 못한다. 그 역시 동호와 함께 시신 수습을 맡았던 사람이고, 동호를 이끌던 사람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는 광주 진압 이후 고문과 또 그때의 일들로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만다. 광주는 80년 5월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이후에도 지속되고 있음을 그 다음 이야기의 주인공인 임선주를 통해서도 보여주고 있다.

 

국가권력으로부터 어떠한 폭력을 당했는지, 그 상처가 얼마나 깊은지를 임선주를 통해 잘 보여주고 있으며, 끝부분으로 가서 동호의 엄마가 등장하여 광주 유가족들의 아픔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마지막, 왜 작가가 광주의 이야기를 글로 쓰게 되었는지를 보여주는 글이 나오는데, 이를 사실로 보아도 좋고 소설적 허구로 보아도 좋다. 그러나 어느 편이든 광주의 진실을 우리가 외면할 수 없음을 이 부분을 통해서 너무도 잘 보여주고 있다.

 

광주는 아직도 진행형이다. 광주민주화운동기념식에서 공식 가요로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지 못하게 하고 있는 현재... 아직도 광주민주화운동은 빨갱이들의 운동이라고 선동하는 사람들이 있는 현재... 광주와 비슷한 일이 서울의 용산에서도 경기도의 평택에서도, 그리고 진도 앞바다에서도 일어나고 있는 현재...

 

소설은 광주의 슬픔이 그냥 넘어가서는 안됨을 보여주고 있다. 얼마나 깊은 상흔들이 사람들을 제대로 살지 못하게 하고 있는지를, 그것이 우리 사회가 왜곡된 모습을 보이게 하는데 크게 기여하고 있다는 점을 생각하게 해주고 있다.

 

읽기는 편하나 마음은 너무도 무거운... 그런 소설이다. 그럼에도 읽어야 한다. 상처는 글로써 치유될 수 있으니, 광주에 대한 글들이 많이 나와야 한다. 많이 나와서 광주가 되풀이 되지 않도록 우리를 각성시켜야 한다.

 

역사가 반복되지 않도록... 그렇게... 이 소설은 여기에 조금이나마 이바지하는 점이 있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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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보이는 창"

 

우리는 삶을 살아간다. 그런데 가끔은 자신의 삶을 제대로 보지 못한다. 삶이라는 늪에 빠져 허우적 거릴 뿐이다. 더이상 자신을 객관적으로 보지 못하고, 그 삶에서 다른 것을 보지 못하고, 오로지 제 삶에 빠져 있을 뿐이다.

 

가끔씩만 그러면 괜찮을텐데, 너무도 자주 그렇게 된다. 그렇기에 자신의 삶을 보게 만들어줄 무언가가 필요하다.

 

그 무언가의 역할을 "삶이 보이는 창"이 한다.

 

내 삶을 다른 사람들을 통해서 볼 수 있다는 것. 그것은 어쩌면 행복일지도 모른다.

 

한 번도 제 삶을 보지 못하고 제 멋에 겨워 살다가 가면 그 얼마나 불행한가.

 

따라서 삶창을 통해 내 삶을 볼 수 있다는 것, 삶을 볼 수 있는 창이 있다는 것, 그 삶이 보이는 창을 갖고 있다는 것, 그것은 행복이다.

 

잊고 싶은 일들, 감추고 싶은 일들, 외면하고 싶었던 일들, 또는 잊고, 감추고, 외면하던 일들을 삶창을 통해 대면하게 된다.

 

그 대면은 곧 깨달음으로 나아가고, 깨달음이 행동으로 나아갈 때 힘이 된다. 그 힘은 나를 바꾸고 사회를 바꿀 수 있는 원동력이 된다.

 

"삶창 99호"

 

세월호가 침몰한 지 90일이 넘어 100일 되어가고 있지만 아직도 해결되지 않고 있다. 해결할 의지가 있는 건지 의심스럽기도 하다.

 

'세월호 특별법'은 6월 국회에서 처리되지 못하고 7월 국회로 넘어 왔으며, 책임자는 여전히 오리무중이고, 누구도 제대로 진상규명도 책임지지도, 그렇다고 실종자에 대한 완전한 해결도 되지 않은 상태다.

 

그런 상태... 도대체 '세월호는 나에게 무엇인가'라는 특집으로 삶창 99호가 시작된다. 세월호는 나에게 무엇인가? 이 말은 계속 우리들의 가슴 속에 남아 있을 것이다.

 

이 물음을 가슴 속에 지니고, 대한민국이라는 더 큰 '세월호'에 대해서 생각해야 한다. 세월호에 대한 생각이 사회를 바꾸는 힘으로 바뀌어야 한다.

 

그냥 또 하나 과거의 사건으로 넘어가서는 안된다.

 

슬픔이 우리 삶을 바꿀 수 있는 힘으로 전환되게 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 삶이 바뀌어야 한다.

 

삶을 바꾸는 일, 그것이 바로 세월호에 대한 우리의 질문일 것이다. 또한 삶창을 보는 이유이기도 하리라.

 

다시 한 번 "삶창"을 통해 내 삶을 본다. 내 삶... 그 속에 매몰되지 않고, 나를 객관적으로 보고, 실천할 수 있도록 나를 채찍질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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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신 이야기 1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
오비디우스 지음, 이윤기 옮김 / 민음사 / 199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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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각 권이 300쪽이 넘으니 한 권으로 구성되었다면 아마도 700쪽이 넘는 방대한 분량의 책이 되었으리라.

 

이런 책은 이렇게 친절하게 나누어 놓는 편이 좋다. 그래야 읽기 좋다. 보관용, 즉 장식용이야 한 권으로 양장으로 두텁게 나오는 것이 좋겠지만, 읽기에는 이렇듯 두 권 또는 세 권으로 나누어 놓는 것이 편하다.

 

책이 아무리 재미있더라도 분량이 너무 많으면 질리기 때문이다. 특히나 그리스 로마 신화처럼 낯설은 이름이 계속 나오는데 그걸 한 권으로 읽으라고 하면 읽다가 신들의 이름이나 사람의 이름을 헷갈려 하기 십상이다.

 

물론 이렇게 두 권으로 나누어도 신들, 사람의 이름을 다 알 수는 없다. 읽으면서 까먹는다. 세상에 왜 이리도 이름이 길고 헷갈릴까.

 

게다가 그리스 이름과 로마 이름이 다르고 또 영어식 이름이 다르니 혼란은 가중될 뿐이다. 어렸을 때부터 그리스 로마 신화를 자신들의 생활에서 경험한 서양 사람들과는 달리 우리는 아무리 많이 접했다고 해도 여전히 그리스 로마 신화의 이름들은 몇몇을 제외하고는 낯설다. 그러므로 이름이 헷갈리는 경우가 많다. 여기에 외국의 그 많은 지명이 나오니 더 헷갈리기도 하고.

 

그래서 이름을 외우는 것을 포기하고 읽었다. 그랬더니 재미있다. 부담이 없기 때문이다. 그냥 죽 읽어가면서 내 머릿속에 남는 이름이나 지명만을 기억하기로 했다. 어차피 내게 남아 있지 않은 이름들은 읽는 도중에 내게 별다른 인상을 주지 못했기 때문이리라.

 

오비디우스는 로마 아우구스투스 황제 때 사람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이 책은 아우구스투스에 대한 찬사로 끝을 맺는다.

 

흔히 우리가 알고 있는 그리스 로마 신화처럼 신들의 이야기만을 다루지 않고 카이사르나 피타고라스 같은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적 인물도 다루고 있다.

 

시대를 황금시대, 은의시대, 청동시대, 철의시대로 나누고 그가 살고 있던 로마 시대를 철의 시대로 지칭하고 있다. 즉 신들의 전성기에서 영웅들의 이야기로 나아가고 이제는 인류의 역사를 다루는 것에서 끝을 맺는 것이다.

 

제우스부터 시작하여 아테나, 아폴론, 디오니소소, 비너스, 테세우스, 이아곤, 미다스, 아킬레스, 아이네이아스 등등 이미 알고 있는 이야기도 나오지만, 이 이야기들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하나로 꿰어 이야기가 전개되고 있다.

 

하여 시대의 흐름에 따라 신들과 인간의 흥망성쇠, 그리고 온갖 사물들의 유래에 대해서 알게 되는데, 이 책은 어쩌면 그리스 로마 신화의 원조격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변신 이야기라는 제목을 달고 있는 것은 우리가 알고 있는 것들에 대한 기원을 설명해주기 위해서 그렇게 된 것이고, 얼마나 많은 대상들이 요정이나 인간들이 변해서 된 것인지, 그래서 우리가 그 이름을 이런 신화를 읽으면 더 쉽게 이해할 수 있게 되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본래 운문으로 쓰여진 책을 산문으로 재 번역했는데, 운문에 익숙치 않은 우리들에게 산문으로 번역한 것이 더 읽기 편하게 다가온다. 내용도 더 잘 이해할 수 있고.

 

거의 마지막 부분에 피타고라스가 나오는데,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피타고라스의 정리'의 주인공인 그는 오비디우스의 이 작품에 사상적 원천을 제공하고 있다고 한다. 그는 만물은 유전한다는, 어찌보면 불교의 인과론, 윤회론과 같은 사상을 펼치고 있으며, 또한 육식을 금하고 채식을 권장하는 말을 하기도 한다.

 

모든 것은 총량이 정해져 있고, 그것들이 무한히 변화할 뿐이라는 피타고라스의 말은 이 작품의 제목이 변신이야기인 것과도 관련이 있다. 한 사물과 한 사물이 전혀 관계가 없는 것이 아니라, 이것이 저것으로 저것이 이것으로 변해왔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으니, 세상에 우리가 함부로 할 것이 하나도 없다는 얘기가 된다.

 

1권과 2권으로 나누어져 있지만, 시간의 흐름 속에서 내용이 죽 이어지기에 두 권을 모두 읽는 것이 좋고, 그것이 싫다면 필요한 부분만 뽑아서 읽어도 좋다.

 

우리 신화와 다른 점이 우리 신화는 평화, 협조, 함께 함을 바탕으로 하는 점이 많은데, 이 변신이야기에서는 싸움, 경쟁, 복수 등이 많으니 서양의 역사 속에서 일어난 온갖 전쟁 등이 이러한 신화를 바탕으로 설명되어지는 것이겠지라는 생각도 들었다.

 

결국 신화 속에는 그 민족이 살아온 역사가 나타나 있는 것이니... 이들이 피타고라스의 말만 제대로 들었어도 그러한 피를 부르는 칼부림은 줄일 수 있었을 텐데...

 

자, 만물은 변화한다. 그 점을 이 "변신이야기"는 잘 보여주고 있다. 이 작품에서도 나오지만 나라 역시 끊임없이 변화한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정권도 변화한다. 그 변화를 거부할 수는 없다. 그러니 자신의 권력이 영원불멸할 것이라는 생각을 버린다면, 현재 어떻게 하는 것이 옳은 것인지를 생각하고 실천하게 될 것이다.

 

그것이 이 책을 읽으면서 배워야 할 것이고, 권력을 지닌 사람들이 이런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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