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이 마음을 살린다 - 행복한 공간을 위한 심리학
에스더 M. 스턴버그 지음, 서영조 옮김, 정재승 감수 / 더퀘스트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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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신경건축학'이라는 학문 분야가 있다고 한다. 신경학과 건축학이 융합되었다고 보면 되는데, 더 포괄적으로 말하면 의학과 건축이 융합된 학문이라고 보면 된다.

 

현대는 융합으로 가는 경향이 있는데, 각자 자신의 전문 분야에만 매몰되어 연구하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전문 분야를 살리되 이들이 함께 모여 연구하는 '융합'이 현대의 화두가 된 것이다.

 

그 중에서 우리 삶에 밀접한 영향을 주는 분야가 바로 의학과 건축학인데, 얼핏 전혀 다를 것 같은 학문이 '신경건축학'이라는 학문으로 융합이 되어 활발히 연구하고 활동하고 있다고 한다.

 

처음 듣는 말인데도 친숙한 느낌이 드는 이유는 우리가 지닌 본능에 있을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우리의 건강에 주변 환경이 주는 영향을 인식하든 인식하지 않는 인정하고 있으니 말이다.

 

건강이 의학 분야라면 주변 환경은 건축학 분야라고 할 수 있으니, 우리가 건강하게 잘 살기 위해서 의학과 건축학이 융합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하나의 학문으로 발전하기 이전에 이미 직관적으로 우리는 이를 알고 있었고 또 실천하고 있었으리라.

 

예전의 요양소들을 보면 풍경이 좋은 곳, 공기가 좋은 곳에 지어졌으니 말이다.

 

그것을 과학적으로(이를 경성과학이라고 한다. 무언가 증명이 될 수 있는 객관적인 자료를 제시할 수 있는 과학이라는 뜻이다. 반대로 막연히 그럴 것이다. 또는 객관적으로 자료를 제시하기 힘든 과학을 연성과학이라고 한다) 밝혀낸 책이 바로 이 책이다.

 

'공간이 마음을 살린다'는 제목으로 번역이 되어 있는데, 영어 제목으로 하면 '치유공간' 정도 될 것이다. 오히려 번역 제목이 책에 더 흥미롭게 접근하게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마음을 다른 말로 하면 건강이고, 마음에 따라서 우리의 육체적 건강이 달라질 수 있음을 최근의 의학적 사실들과 연구결과들을 예로 들어서 설명해 주고 있다.

 

즉, 공간에 해당하는 우리의 감각이 느낄 수 있는 것들이 정말로 우리의 건강에 영향을 주는가 하는 점을 면밀하게 살핀 것이 1부라면... 어쩌면 우리가 너무도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었던, 우리를 편하게 해주는 것들, 자연풍경부터 자연의 소리, 음악소리,좋은 냄새, 부드러운 촉감 등등이 어떻게 우리의 몸에 영향을 주는가를 뇌과학의 성과를 인용하여 보여주고 있다.

 

그냥 그렇겠지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나 직관적으로 여기던 것들을 뇌과학이나 신경과학의 결과들을 통하여 증명해주고 있으니, 공간이 우리의 몸에 영향을 준다는 사실이 입증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를 바탕으로 하여 실제 건축에서 일어난 일을 이야기해주고 있다. 디즈니월드나 보건원 건물들을 통하여 공간이 어떤 과학적인 고려하에 건축되었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그것이 우리의 마음에 작동하는 과정도 실제 건축을 예로 들어 잘 설명해주고 있어서 좋고, 이를 바탕으로 3부 치유의 공간으로 넘어간다.

 

프랑스에 있는 기적의 공간이라고 할 수 있는 루르드로 3부를 시작한다. 기적, 치유의 공간이라고 할 수 있는 루르드에서 현대과학이나 의학으로 설명할 수 없는 치유가 일어난 사례들을 들고, 이들이 결국 공간이 우리의 마음에 작동해서 치유를 이끌어냈음을 설명해내고 있다.

 

이런 설명은 명상으로 이어지고, 명상에 이어서 병원의 건축이 어떠해야 하는가로 넘어간다. 현대의 가장 대표적인 치유의 공간이 병원 아니던가.

 

그렇다면 병원의 공간이 어떻게 건축되어야 사람들이 더욱 효과적으로 건강을 회복할 수 있는가를 고민하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병원 건축이 반환경적이고 반인간적이며 오히려 고통을 주는 공간이 된다면 이곳에서 병을 치유하기보다는 오히려 더 악화되어 나올 뿐이니 말이다.

 

하여 병원이 최근의 '신경건축학' 결과를 활용하여 자신들의 건물을 재구성할 필요가 있음을 너무도 잘 보여주고 있다.

 

특히 최첨단의 기계만을 들여놓으면 가장 좋은 병원이 되는 양 착각하고 있는 우리나라 대형병원들, 자신들의 병원 환경에 대해서 이 책을 통해 고민해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병원 운영에도 또 환자들의 처지에서도 많은 것을 생각할 수 있게 해주는 3부인데... 여기서 더 나아간다.

 

'신경건축학'이 개인의 건강에서 그래서 병원의 건축까지 나아간 것에서 머무르지 않고, 우리들의 건강을 위해서는 도시건축이 정비될 필요가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즉 도시라는 건축들의 집합소가 건강을 위한 도시 건축이라는 관점에서 재구성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고, 이런 도시 건축이 한 나라에 국한되어서는 안되고, 전세계적으로 공유가 되어야 우리의 건강이 제대로 유지된다고 하고 있다.

 

환경은 못 사는 나라, 못 사는 동네에서부터 나빠지기 시작하며, 이렇게 나빠진 환경으로 인해서 건강상 가장 피해를 보는 집단은 못 사는 나라, 동네에 살고 있는 빈민층임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들도 건강하게 지낼 수 있는 건축이 전세계적으로 이루어져야 함을 강조하면서 이 책이 마무리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결말이라고 할 수 있다.

 

"행복한 공간을 위한 심리학"이라고 책의 겉표지에 적혀 있는데, 이보다는 "건강한 생활을 위한 공간 심리학"이라는 말을 붙이는 편이 더 좋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만큼 공간은 우리의 건강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공간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고 실천을 하는 학문이 '신경건축학'이니, 신경건축학은 작은 학문이 아니라 도시건축과 또 세계건축과도 연결이 되는 우리네 삶에 필수적인 학문이라는 생각이 다지게 만든 책이 바로 이 책이다.

 

덧글

 

책의 곳곳에 굵은 글씨로 강조한 부분이 있다. 이 책을 읽고 싶은 사람, 먼저 그 굵은 글씨들만 몇 번 읽어보아도 이 책의 주장이 무엇인지 알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이 책의 주장을 더 쉽게 기억할 수 있게 된다. 물론 이 책은 다 읽어야 하지만... 구체적인 사례들, 의학적 성과들을 자세하게 인용하여 자신의 주장을 증명해가고 있으니, 우리가 직관으로 알고 있던 것들을 과학적 사실로 증명해준 좋은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다른 사람에게 이 책을 소개할 때 굵은 글씨들 많이 도움이 된다. 또 다시 한 번 이 책의 내용을 떠올릴 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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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대폰의 눈물 라임 청소년 문학 4
엘리자베스 스튜어트 지음, 김선영 옮김 / 라임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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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아마도 세계에서 가장 휴대폰 사용량이 많은 나라가 우리나라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휴대폰은 우리 사회 곳곳에 퍼져 있다.

 

광대역이니 엘티이니, 초고속통신망이니 하는 것들부터 시작하여 최신 기기가 넘쳐나는 세상이고, 길거리 어디에 나가보아도 휴대폰을 들여다 보고 있는 사람들 천지다.

 

하다못해 카페에서 차를 마시면서도 서로 얼굴을 마주보고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각자 자기의 폰을 들여다보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는 모습이 대부분인 현실이기도 하고.

 

그런 휴대폰에 얽힌 이야기는 신문에서 또는 책으로도 접하게 되는데...

 

가령 '고릴라는 핸드폰을 싫어해'라는 글을 보면 핸드폰에 들어가는 원료인 콜탄을 채취하기 위해서 숲을 파헤치기 때문에 고릴라들의 서식지가 점점 줄어들어 고릴라들이 멸종위기에 처했다는 내용도 나온다.

 

여기에 우니나라 모기업에서도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엄청난 고통을 받는다는 얘기가 기사로도 나오고 있는 현실이라서 휴대폰에 관한 이야기는 어느 정도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사실을 알고 있다는 것과 마음으로 느끼는 것은 다른 문제다. 사실을 형상화함으로써 마음을 울리게 하는데 소설의 한 기능이 있다고 하면, 휴대폰의 문제를 다룬 소설이 나온 것은 당연한 일이다.

 

우리나라 작가들이 쓴 소설도 있겠지만 이번에 읽은 이 '휴대폰의 눈물'은 세 사람의 처지에서 내용을 전개해 나가고 있어서 읽으면서 흥미를 느끼게 된다.

 

한 번 손에 쥐면 그 다음이 궁금해서 끝까지 읽게 하는 매력이 있는 작품인데... 원제가 blue gold(푸른 금)이라고 하는데, 이는 콜탄을 의미한다고 보면 된다.

 

영어의 원제목보다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휴대폰의 눈물'이라는 제목이 더 호기심을 자극할 수 있고, 이해하기도 쉽다는 생각이 든다. 잘 붙인 번역 제목이다.

 

내용은 세 사람의 처지를 형상화하는 것으로 전개된다.

 

하나는 원료 채취단계인 아프리카 콩고 사람인 '실비'

 

그녀가 우리가 아무 생각없이 사용하는 휴대폰으로 인해 성폭행을 당하고 고향에서 쫓겨나며, 생명의 위협까지 받는 상황이 나타난다.

 

또 다른 하나는 제품 생산단계인 중국의 '레이핑'

 

휴대폰을 만들기 위해 그녀가 어떻게 착취당하고 있는지, 얼마나 힘든 노동을 견디고 있는지를 작품을 통해서 잘 보여주고 있다.

 

마지막은 제품 소비단계인 캐나다의 '피오나'

 

그녀는 휴대폰에 자신의 가슴이 나온 사진을 올렸다가 곤경에 처한다. 휴대폰에 아무 생각없이 올린 사진이나 글들이 문제가 되어 큰 고통을 겪는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을 작품을 통해 보여 주고 있는데... 특히 청소년들이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어떤 경각심을 일으킬 수도 있다고 본다.

 

서로 동갑인 이들이 각기 다른 나라에서 다른 경험을 하지만, 이들의 경험은 휴대폰으로 엮여 있다. 그리고 그 휴대폰이 얼마나 비인간적일 수 있는지, 남의 고통을 바탕으로 해서 최종소비자의 손에 들려 있게 되었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그렇다고 휴대폰을 사용하지 말자고 주장하지는 않는다. 휴대폰으로 인해 고통을 겪은 피오나 역시 휴대폰을 사용하지 않겠다는 결심을 하지는 않는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휴대폰을 절대적으로 사용하지 않겠다는 것이 아니라, 이 책의 말미에서 작가가 말하고 있듯이 휴대폰에 얽혀 있는 이야기들을 우리가 알고, 가능하면 윤리적인 소비를 하자고 주장하고 있다.

 

잘 사용하는 길...

 

그것은 우선 아프리카에서 채취 단계에서 윤리적일 것.  

 

두번째는 생산단계에서 노동자들의 권리를 보장하고, 그들의 생계와 생활을 책임질 수 있는 인권적인 환경에서 만들어 낼 수 있는 공장 환경을 조성할 것. 

 

마지막으로는 소비자로서 윤리적인 소비를 할 것. 즉 휴대폰의 기능에 맞는 사용을 하고, 그것이 다른 사람의 인권을 침해하는 방향으로 사용하지 않도록 할 것.

 

휴대폰... 우리나라 청소년들이 엄청나게 소비하고 있는 물건이다. 제대로 사용하는 사람들이 더 많겠지만, 간혹 잘못 사용하는 사람들이 있다. 또한 비윤리적으로 채취되고, 생산된 제품을 사용하는 경우도 있다.

 

그런 점이 얼마나 다른 사람을 고통에 빠뜨릴 수 있는지 이 소설은 세 소녀의 모습을 통해서 잘 보여주고 있다.

 

작품의 내용이 행복한 결말이어서 읽는이로 하여금 안도감을 느끼게 하는 맛도 있고, 그리고 내 손 안의 작은 세계인 휴대폰이 실질적으로 세계적으로 많은 사람들과 얽혀 있음을 인식시키는 역할도 하는 소설이다.

 

또한 윤리적인 소비가 왜 필요한지를 마음에서부터 깨닫게 하는 소설이기도 하고. 적어도 내가 쓰는 휴대폰에 눈물이 있어서는 안된다는 생각으로 제품이 만들어지기까지의 과정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음을 너무도 잘 보여주고 있는 소설이다.

 

청소년들... 어른들... 자신의 손에 있는 작은 세계인 휴대폰. 그 휴대폰에 얽혀 있는 세계를, 삶들을 마음으로 느껴보고 싶으면 이 소설을 읽으라. 마음에 어떤 울림이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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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마음에 든다. "어떻게 밖으로 나갈까"

 

우리가 살아가는 공간이 안과 밖으로 나뉘었다는 물리적인 이야기말고, 우리네 삶 자체도 안과 밖으로 나뉠 수 있다는 이야기.

 

자신 속으로만 침잠하는 사람과 사회 속에서만 자신의 삶을 발견하는 사람.

 

그러나 사람은 안과 밖을 모두 아우르고 있는 존재이니, 우리는 안에 있으면서 밖에도 역시 있어야 한다.

 

시인은 어떻게 밖으로 나갈까 라는 질문을 하면서, 우리가 지닌 껍데기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이 껍데기가 무거워서, 또는 무서워서 밖으로 나가지 못하고 있는지도 모른다고. 이 말에 나는 껍데기를 아직도 지고 사는 내 자신의 삶이 떠올랐다. 나에게 껍데기는 무거운 걸까? 아니면 무서운 걸까?

 

시인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얼핏 보면 우리가 안에서 밖으로 나가지 못하는 것은 <껍데기가 무거워서> 혹은 <껍데기가 무서워서>인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과연, 껍데기가 그렇게도 무거워서 껍데기가 그렇게도 무서워서 우리는 밖으로 솟구쳐 날으지 못하는가? ...습관적으로 자기 영토(땅)를 고정하고 공간만들기를 좋아하고 권력이 만들어놓은 제도와 관습 속에서 속령화된 삶을 기꺼이 받아들이고자하는 정주민의 욕망이 우리가 안에서 밖으로 나가고자 하는 것을 방해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 이 시집은 아마도 우리를 제도화된 욕망 속에 가두고 그럼으로써 우리를 폐쇄된 코스모스(안)에 주둔시킴으로써 우리를 마음껏 지배하고 있는 얼굴 없는 권력의 마수, 혹은 그것에 질질 끌려가는 내 욕망의 파시즘에 관한 해부의 기록이다.

 

(김승희, 어떻게 밖으로 나갈까, 세계사.1993년 1판 5쇄 '자서'에서

 

그래... 어쩌면 안이 주는 편안함 때문에 밖으로 나가지 않으려 하는지도 모른다. 그 안에서 밖을 그냥 관음증 환자처럼, 또는 텔레비전의 중계방송처럼 보기만 하려고 하는지도 모른다. 참여는 하지 않은채.

 

세상이 변하지 않음을 개탄하면서, 밖의 위험성에 대해, 밖의 야만성에 대해서 말만 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한 편안함에 이끌려서. 

 

시가 찰나를 노래하지만, 그 찰나가 영원하다는 생각을 했는데...이 시집에서도 지금...바로 우리들의 이야기가 실려 있는 시를 보고서 역시, 시는 찰나를 노래하지만 영원을 보여주는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안과 밖... 그것을 가로지는 벽. 그 벽에 대해서...

 

   벽지 바꾸는 시대

 

지금은 벽을 부수는 시대가 아니다

벽을 부수는 시대가 아니다

기울어진 벽을 부수고

새벽을 짓는 그런 시대가 아니다

벽을 부수려는 시대는

지나갔다

 

상복을 입은 여인들이 울고 있다

4월에도 울었고

5월에도 울었고

6월에도 울었고

상복을 입은 여인들이 일년 내내 달력

속에서 울고 있는 울먹임의 역사

이런 역사를 만장과 더불어

벽장 속에 깊이 올리고

 

지금은 새로운 벽지를 바꾸려고

도배집 앞에 줄지어 서서

새로운 무늬 벽지를 고르는 시대

어떤 아름다운 무늬의 벽지가

벽의 결함을

감춰줄 것인가

(벽의 파손을 막아줄 것인가)

그런 것을 꿈꾸는

넋 나간 시대

 

그런데, 너, 너,

너는 또 뭐냐?

충치로 구멍 숭숭 뚫린 썩은 이빨과

풍치로 화농 흘러 뭉그러진

검은 잇몸(구강의 총체적 난국)

위에

아침 낮 저녁으로

치석 방지 치약

니코틴 제거 치약

딸기향을 첨가한 향긋한 후르츠 향의

온갖 치약거품들을

쓰러질 듯 갸우뚱 걸린 벽거울 앞에 서서

황홀하게 황홀하게 도배하고 있는 너는?

 

김승희. 어떻게 밖으로 나갈까. 세계사. 1993년 1판 5쇄. 74-75쪽

 

벽을 바꾸어야 할 시대에 겨우 벽지만 바꾸고 있는 모습. 우리가 지금 그렇지 않은가. 내가 그렇지 않은가. 이 시에서 처음에는 사회의 모습을 비판적으로 이야기하다가 결국 자신에게 돌아온다.

 

벽지만 바꾸는 사회나 근본적인 해결책은 없이 겨우 치약만 바꾸는 나는 무슨 차이가 있는가? 안과 밖이 이렇듯이 맞물려 돌아가기 때문에 세상은 벽지만 바꾸고도 근본적인 것이 바뀐 양 착각하고 있는 것 아니겠는가.

 

이 시에서처럼, 아직도 눈물이 마르지 않았는데, 벽지만 바꾸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기만 하다. 이제는 벽지가 아닌 벽을 바꿀 생각도 해야 하는데... 20년 전에 쓰여진 시가 지금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니...

 

강산이 두 번이나 바뀌어야 햇는데, 우리는 그동안 벽지만, 무늬만 바꾸고 있었단 말이지...참...

 

그래서 벽지가 아닌 벽을 바꿀 수 있는 시대(밖)가 되기 위해서는 안에서 나와야 한다. 나와서 살아야 한다. 그래야 밖이 변한다.

 

그 점을 이 시집에서 마지막 시로 이야기하고 있다. 희망의 끈, 놓지 않고 있다.

 

그 시(보리수나무 아래로)의 마지막 부분.

 

(전략)

쓰러질 때까지 사랑했던 사람

쓰러질 때까지 일했던 사람은

그가 어느 나무 아래 길을 걸었다

하더라도

결국은

보리수나무 아래 길을 걸은 것이라고

 

이제야 비로소 난

모든 사람의 길과 나 자신의 길을

이해하고 사랑할 수 있을 듯하다.

모든 길이란, 아마도, 나,

자신의 보리수나무 아래로 가는

길이므로.

 

김승희. 어떻게 밖으로 나갈까. 세계사. 1993년 1판 5쇄. 122쪽. '보리수나무 아래로' 부분

 

깨달음의 길... 그것은 나와서 걷는 일이다. 껍데기를 깨고 나와 사는 일이다. 어떤 삶? 자신의 전생애를 건 삶을 사는 삶. 그것이 바로 깨달음의 길이고, 그러한 깨달음의 길에는 하나의 길만이 존재하지 않는다.

 

너무도 많은 깨달음의 길이 있다. 안에서 밖으로 나오는 길, 껍데기를 깨는 길... 하나가 아니다. 다ㅏ 자기만의 길이 있다. 이 길들을 가는 순간 벽지만 바꾸던 삶에서 벽을 부수는 삶으로, 벽을 부수어 길을 내어 그 길을 가는 삶으로 바꿀 수가 있다.

 

그래 나에게 무슨 껍데기가 그리도 무겁고, 무섭겠는가. 내가 두려워하는 것은 오직 내 자신의 삶을 온전히 살지 못하고, 밖의 권력에 휘둘리거나, 안의 편안함에만 안주하는 그런 삶이어야 하지 않겠는가.

 

20년 전에 나온 시집이지만 지금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많은 시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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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인간 - 분석심리학자가 말하는 미래 인간의 모든 것
이나미 지음 / 시공사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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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미래는 오지 않는다. 오직 현재만이 있을 뿐이다. 미래가 왔다는 말은 곧 현재가 되었다는 얘기니 미래는 늘 미래로써 존재하고, 현재로써 미래는 실현될 뿐이다.

 

"다음 인간"이라는 책이 나왔다. 다른 말로 하면 '미래 인간'일텐데... 몇 십년 뒤 우리 사회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에 대해서 이야기를 한 책이다.

 

한 치 앞도 못 보는 것이 인간이라는 말이 있는데, 반대로 인간의 눈은 앞을 보도록 되어 있으니, 앞을 보고 살아가는 존재가 인간이라는 말도 된다.

 

우리는 미래에 대한 희망이 없으면 현재를 살아갈 수가 없다. 그래서 인간은 끊임없이 오지도 않을 미래를 상상하고 계획하고 꿈꾼다.

 

그런 꿈이 다시 현재에 나타나기도 하고, 그냥 꿈으로 끝나기도 하는데도 불구하고 그 꿈에 대한 권리를 포기하지 않는다. 그런 미래에 대한 꿈마저 없다면 인간은 살아가기가 힘들어 질 것이다.

 

분석심리학자, 특히 융심리학을 전공한 학자가 우리 사회를 살아갈 "다음" 사람들에 대해서 상상한 것을 책으로 냈다. 상상이라고 말했지만, 현재에 기반에서 있음직하다고 생각하는 사실들에 대해서 이야기했으며, 심리학자답게 사회,정치적인 변화보다는 사람들의 생활, 심리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해 나가고 있다.

 

하여 기술발전으로 인해서 사람들의 심리 상태가 지금과는 많이 다를 것이며, 가족들의 모습도 핵가족도 아닌 무가족, 비가족의 형태를 띠는 새로운 공동체가 형성될 것이며, 국제적인 관계에서도 명실상부한 다문화 사회가 될 것이라고 예상하고, 영리병원이 허용되어 치료의 빈인빈 부익부 현상이 심화될 것이며, 새로운 종교적 믿음과 생활이 생기게 되고, 지금과는 다른 죽음의 형태를 맞이하게 될 것이라고 한다.

 

물론 심리학자가 미래 사회를 예측했기에 다 실현된다는 보장은 없다. 아니 실현되어서는 안되는 내용들이 많다.

 

이 책대로 된다면 "다음 인간"들은 행복하다기보다는 행복하기를 추구하는 존재로만 머물고, 결국 권태에 빠져 스스로의 삶을 망가뜨리게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책은 실현되면 안되는 내용들이 많다. 실현되면 안되는 내용들로 "다음 인간"에 대해 이야기한 이유가 무엇일까?

 

그 대답이 에필로그에 나와 있다.

 

'미래에 대한 비전은 안팎으로 곤경에 빠졌을 때 포기하려는 나를 격려해주고, 때로는 건강하게 타협할 수 있는 힘을 준다. 일이 계획대로 이루어지지 않더라도 그대로 주저앉지 않고 다시 시도해볼 수 있게 도와준다. 청사진을 갖고 씩씩하게 무언가를 시작했지만 도중에 크고 작은 실패에 좌절해 자신에 대한 믿음을 버리고 싶을 때 미래에 대한 희망은 다시 한 번 자신을 추스리게 만든다. 이것이 이 책에서 미래에 대한 여러 이야기를 펼친 가장 중요한 이유다.'(238쪽)

 

그렇다. 이렇게 미래가 현재로 다가올 수 있다고, "다음 인간"은 이런 사람들일 수 있다고,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이 책에 나와 있는 미래 중에 좋은 것은 현재화하고, 좋지 않은 것은 현재가 되지 않을 수 있게 하는지 생각하라고, 그리고 행동하라고 이 책은 말하고 있다.

 

참으로 다양한 "다음 인간"들에 대한 모습이 나와서 여러가지로 생각하게 만들어주는 책인데...

 

이 책을 재미있게 읽는 방법을 생각해 봤는데, 여러 사람이 함께 이 책을 읽으면서 이 책에 나온 미래의 모습 "다음 인간"들이 과연 실현가능한지, 아니면 공상에 불과한지 토의를 하고, 현재로 나올 가능성이 있다면 어떤 모습이 현재로 나와야 하고, 현재로 나와서는 안되는 "다음 인간"들이 어떤 종류인지를 논의하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모두 미래를 꿈꿀 권리가 있고, 또 우리는 모두 미래를 현재로 살아갈 사람이기에 어쩌면 이 책에 나온"다음 인간"들이 우리들일 수도 있기 때문에 이 책에 나온 "다음 인간"들의 모습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해 봐야 한다.

 

쉽고 간결하게 썼고, 상황을 묘사하고 설명을 하는 방식을 택했기에 읽기에도 부담이 없는 책이다.

 

게다가 한 번 미래의 "나"를, 내 주변의 "다음 인간"들을 상상해볼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있는책이기도 하니, "현재"의 우리 삶을 되돌아 볼 수 있게 해주고 있는 책이라고도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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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우리나라 우파를 불가사리에 비유한 이 책.

 

죽지도 않는, 가리지 않고 쇠란 쇠는 모두 먹어치우는 그런 괴물.

 

하여 불가살(不可殺)이라고 한다고 하지.

 

도대체 제가 무엇을 하는지도 모르고 사라져야 할 때가 되어도 사라지지 않는 괴물. 이 괴물이 불가사리인데...

 

왜 요즘 다시 불가사리란 말이 떠올랐지.

 

지금도 우리 사회엔 이런 불가사리가 살아 돌아다니고 있지 않은지.

 

세월호.

 

야당이 합의를 해줬단다. 수사권도 없는 그런 특위를... 지금대로 나가면 하나마다한 수사를 하게 될 것이고, 또 제대로 된 책임규명도 못하게 되어 유야무야 넘어갈 가능성이 많다고 한다.

 

책임져야 할 것들이 마치 불가사리 같다.

 

어떻게든 살아남고 게걸스럽게 먹으며 죽지도 않는다.

 

마찬가지로 의료민영화 작업이 서서히 진행되고 있다고 한다. 이것도 역시 불가사리다. 우리들의 피를 빨아먹을 것이 뻔한데, 추진하겠다는 집단이 있다. 끈질기게 살아남는다. 죽었다 싶었는데, 다시 살아남아 우리를 괴롭힌다. 그걸 추진하는 자들... 불가사리 같다.

 

군대 폭력... 정말 불가사리다. 없어지지 않는다. 단지 은폐되었을 뿐이다. 지금과 같은 제도의 군대는 불가사리처럼 젊은이들의 목숨을 빨아들일 것이다.

 

싱크홀... 정말.. 왜 싱크홀이 일어나는지 규명을 제대로 하지 않는다. 무언가 막는 집단이 있나? 그런 불가사리 같은 집단.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는 다른 사람은 아랑곳하지 않는 그런 불가사리들.

 

지금 조금씩 나타나는 싱크홀이 어느 순간 거대해지면 그 때는 대책이 없을텐데...

 

마찬가지로 4대강 녹조... 핵발전소...군사기지...개발이라는 명목의 환경 파괴... 노동유연화란 이름의 정리해고 등등

 

정말로 우리나라 국민들을 힘들게 하고 괴롭히는 불가사리들이 많다. 이 불가사리들... 어떻게 퇴치해야 하나...

 

이를 퇴치하기 위해서 불가사리들의 습성을 명확히 파악해야 하는데... 그걸 해야 할 정치권은 불가사리들에 속수무책이니... 결국 설화 속에서도 불가사리는 지배층이 아닌 쪽에서 해결을 했으니.. 우리도 우리가 해결할 방법을 찾아야 하겠지.

 

풀뿌리 민주주의... 우선은 그것부터 시작해야 할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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