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호는 플레이리스트다. 음악 모음이라고 해야 하나, 내 마음에 들어오는 음악들을 모아놓고, 언제든지 들을 수 있게 하는 그런 플레이리스트.


  핸드폰이 일상화된 요즘 우리는 시간과 공간을 가리지 않고 음악을 들을 수 있게 되었다. 마음만 먹으면 자신이 듣고 싶은 음악을 언제든 들을 수 있는 시대.


  그만큼 많은 음악이 유통되고 있고, 다양한 음악을 쉽게 만날 수 있게 되었으니, 그 많은 음악들을 자신의 취향에 맞게 정리해서 들으려는 욕구가 생기게 된다.


너무 많으면 없는 것과 같을 때가 있는데, 이를 정리해 놓으면 자기 것이 되는 경우가 많으니 음악 플레이리스트는 그런 경우라 하겠다.


또 플레이리스트를 제공하는 많은 통로가 있으니, 찾으려고만 하면 언제든 찾을 수 있고, 여기에 자신이 고른 음악을 더할 수도 있으니, 음악은 우리 삶에 더욱 가까이 다가왔다고 할 수 있다.


음악은 내가 들으려 하지 않아도 들릴 때가 많다. 우리 귀는 보는 것보다 많은 활동을 하기 때문인데, 가령 카페에 들어가도 카페에서 틀어놓은 음악을 들을 때가 있으며, 방송을 보다보면 꼭 음악 프로그램이 아니더라도 음악이 바탕에 깔려 나오는 경우가 있다.


그러다 내 상황에 맞는 음악을 들으면 그 음악을 더 자주 듣고 싶고, 또 그와 비슷한 음악을 찾아 듣고 싶어지기도 한다. 이때 플레이리스트를 만들면 많은 도움이 된다. 아니면 자신의 취향에 맞는 플레이리스트를 찾으면 되고.


어디 음악뿐이랴. 우리 삶 많은 부분에서도 이런 플레이리스트를 만들어놓으면 좋을 때가 있다. 가령 마음이 우울할 때 가고 싶은 곳이라든지, 기쁠 때 함께 하고 싶은 존재라든지, 혼자 있고 싶을 때 할 수 있는 일 등등.


많은 부분에서 자신만의 플레이리스트를 만들어놓으면 삶이 더욱 풍부해지지 않을까 한다. 내가 빅이슈를 읽는 이유도 이 중에 하나다. 책을 읽는데 다양한 분야 중에서 잘 만나기 힘든 부분들에 대한 이야기가 빅이슈에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빅이슈는 내 간접경험의 폭을 넓혀주는 역할을 한다. 내가 평소에 만나지 못하는 부분을 만나고 싶을 때 읽는 책 목록에 빅이슈가 들어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번 호에서 다룬 플레이리스트에 관한 기사를 보면서 내 삶에서도 나만의 다양한 플레이리스트를 만들고 싶다는 욕구가 생겼다. 내 삶을 더욱 풍부하게 하기 위해서도.


모두들, 이제 봄이다. 봄은 자연이 풍요로워지기 시작하는 때다. 더불어 우리들 삶도 풍요로워졌으면 한다. 때로는 이렇게 빅이슈를 통해서 힘을 얻어도 좋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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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순서가 바뀌었다. 269호에 대한 이야기를 쓰기 전에 268호를 썼어야 하는데, 이상하게 268호를 늦게 받게 되었다. 그래도 늦게라도 보내주어서 너무 감사할 따름이다. 한 호 한 호 읽는 재미로 며칠을 보내기도 했으니, 중간에 이가 빠진 것처럼 한 호가 빠지면 무언가 어색하기 때문이다.


  이번 호에서는 옛것에 대한 매력을 느낄 수 있다. 영어로 말하면 빈티지라고 하고.


  무조건 새것을 추구하던 시대에서 이제는 옛것을 찾는 시대로 전환하고 있다. 옛것이라고 해서 무조건 좋다고 하는 말이 아니라, 옛것 중에서 쓸모 있는 물건이 많은데, 그냥 버려지는 일은 바람직하지 않기 때문이다.


아파트 단지 곳곳에, 또 주택가 근처 길거리에 보면 의류 수거함이 있다. 이곳에 자신들은 쓰지 않지만 누군가에게 쓸모가 있는 의류들을 집어넣으면 수거해 가서 다시 사용할 수 있게 한다.


환경도 생각하는 일이다.빈티지를 찾는 사람들이 많을수록 한번 쓰고 버려지는 물품들이 줄어들테니, 지구 입장에서도 빈티지를 추구하는 사람들이 늘어난 지금은 좋을 수밖에 없다.


빈티지라고 해서 낡았다고만 생각해서는 안 된다. 유행은 돌고 돈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예전 유행에 조금만 손봐서 현대 유행을 만들어내기도 하니, 빈티지 물품은 옛것에 머무르지 않고 새것을 창조해내기도 한다.


사는 사람도, 파는 사람도, 그리고 환경에도 좋은 일....그야말로 이번 호에서 '바야흐로 빈티지의 시대'라고 했으니, 온고지신(溫故知新-옛것을 익혀 새것을 알게 된다)이라는 말이 딱 어울리는 시대다. 


어쩌면 이런 빈티지에 대한 글과 함께 표지모델이 된 홍자가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든다. 몇년 전에 미스트롯에서 자신의 존재를 알렸던 가수 아닌가. 무명 생활을 거쳐서 이제는 당당하게 자신을 드러낼 수 있는 가수, 홍자.


트로트가 한물 간 노래라고 했던 시대에서 미스 트롯, 미스터 트롯으로 다시 사람들이 즐겨 듣고 부르는 노래가 되었으니, 트롯도 역시 빈티지의 시대에 어울리는 노래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니 이번 호 내용인 빈티지와 표지모델인 홍자가 서로 상호작용을 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게다가 홍자는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일을 많이 했다고 하니, 빅이슈의 취지와도 잘 맞고... 여러모로 이번 호에서는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들이 계속 다른 쓰임으로도 쓰여야 한다는 사실을 생각하게 한다.


이렇게 따스한 그런, 좀 늦었지만 빅이슈 268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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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석정 하면 개인이 지니는 서정성과 사회의식을 시에 잘 융합시킨 시인이라는 생각이 든다.


  몇 안 되는 시를 읽었을 뿐이지만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란 시와 '꽃덤불'이란 시를 읽으면 개인의 서정과 우리나라가 처한 상황이 시 속에서 잘 어우러지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런 시들을 읽은 기억이 있기에, 그리고 몇몇 구절들이 머리 속에 남아 있기에 신석정 유고시집이 헌책방에 나왔을 때 망설이지 않고 구입할 수 있었다.


  적어도 실망을 안기지는 않을 시인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고, 최근에 부안을 다녀왔는데, 신석정 시인이 부안 출신이라고 알고 있었지만, 그의 생가를 들르지 못한 아쉬움도 있기 때문이었다.


유고시집 제목이 [내 노래하고 싶은 것은]이다. 내가 노래하고 싶다는 말은 내 마음을 표현하고 싶다는 말인데, 이는 개인 서정에 해당한다. 그렇다고 개인적 감정을 단순히 토로하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신석정 시는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간다. 내 감정에서 우리들 감정으로 나아가게 되는데, 그것은 나만 잘사는 사회가 아니라 함께 잘사는 사회여야 하기 때문이다.


내 노래하고 싶은 것은


피 묻은 발자욱이사

새삼 돌아볼 겨를도 없다

아아라한 만첩청산을

만첩청산을 굽이돌아

철 철 철 흘러가는 

저 푸른 강물을 보리로다.


가슴 깊이 간직해 둔

눈물겨웠던 이별 또한

구름과 더불어 왕래하는

구김살 없는 저 학두루미의

학두루미의 노래에 부쳐

하늘 멀리 보내도 좋으리라.


다만 오는 날을 위하여

벅찬 설계를 가다듬어야 하거늘

오염된 문명을 믿을 수는 없다.


그 문명 속에 허덕일 수도 없다.

소슬한 솔바람 소리로

상처 입은 마음을 달래리라.


별들의 참한 이야기

잇따라 들려오고

꽃그늘에 오고 가는

너그러운 햇살이 지키는 속에

내 노래하고 싶은 것은

우리 부신 꿈과 생시뿐이로다.

                                           -전북일보 1973.1.1.


신석정 유고 시집, 내 노래하고 싶은 것은. 창비. 2007년. 130-131쪽.


벌써 50년 전에 쓰인 시... 지금 우리 상황에서 다시 이 시를 생각해 보면 과연 우리는 지금 무슨 노래를 부르고 싶을까?


우리가 거쳐왔던 안 좋았던 과거들을 뒤로 하고, '벅찬 설계'를 하고 있는지, 또 '상처 입은 마음을' 달래고 있는지...


'별들의 참한 이야기 / 잇따라 들려오고 / 꽃그늘에 오고 가는 / 너그러운 햇살이 지키는 속에'라고 그렇게 우리에게도 봄은 오고 있는지...


우리들이 살아가야 할 '부신 꿈과 생시'를 노래할 수 있는지 생각해 본다. 


여전히 우리가 불러야 할 노래는 바로 이것이다. 우리들 삶의 환희... 그런 세상. 그래서 이 시에서도 개인의 마음을 넘어서 우리로 나아가게 된다.


나만 잘사는 세상이 아니라 우리가 잘사는 세상. 그렇게 과거를 딛고 미래의 희망을 노래할 수 있는 세상.


봄... 우리 사회에도 진정 이런 봄이 왔을까... 그래서 우리는 시인이 원하던 것과 같은 노래를 부를 수 있을까를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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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생명이 다했다고 해도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다. 사람은 사람에게 자신의 삶을 넘겨준다. 그래서 수많은 삶들이 계속 후대에 쌓이게 된다.


  우리가 알게 모르게, 어쩌면 의식하지 않아도 과거로부터 면면히 이어져왔던 삶들이 우리 삶에 덧씌워져 있게 된다.


  유전이라는 이름으로, 또는 후생유전이라는 이름으로, 아니면 전통이라는 이름으로, 그것도 아니면 무의식이라는 이름으로, 개인 유전자 단위를 넘어 리처드 도킨스가 말한 '밈(Meme)'으로까지 나아가게 된다. 


(리처드 도킨스, 이기적 유전자. 을유문화사.2007년 30주년 기념판 제5쇄. 330-349쪽을 읽어보면 '밈'에 관해서 알 수 있다)


나는 나로 살아가지만 이 나에는 수많은 다른 나들이 들어 있는 것. 그래서 나는 유일한 존재이기도 하지만, 그 유일성은 다른 존재들과 관계없다는 말이 아니라, 다른 존재들이 나라는 유일성에 들어와 있다는 말이 된다.


유병록 시집을 읽으며 그런 생각을 했다. 특히 '습관들'이라는 시를 보면 더 나에게는 과거 수많은 사람들의 삶이 들어 있음을 깨닫게 된다.


'태어나기 전부터 몸에 새겨진 습관은 / 내 몸에 살았던 타인의 흔적' (105쪽)라는 시구를 통해, 도킨스가 말한 '밈'이 작동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그래 나는 나대로 살아가지만, 그런 나에는 수많은 남들이 있음을, 그런 남들이 나에게로 와 세상에서 유일한 존재인 '나'를 만들었음을 인식해야 한다.


이런 '습관들'이란 시에서 '밈'을 인식할 수 있다면, 그렇게 과거 사람들로부터 '밈'이 형성되는 과정을 '사자死者의 서書'라는 시에서 만날 수 있다.


보이지 않는 그런 '밈'을 눈에 보이게 시인은 표현하고 있다. 좀 살벌한 시이기는 하지만, 이렇게 명확하게 '밈'을 보여주는 시도 드물다 싶은 생각이 든다.


 사자死者의 서書


거기에서는

죽은 자의 피부를 벗겨 가까운 사람들이 나눠 가진다더군

아끼는 책을 장정하고 이름을 새긴다더군


죽은 자는 책이 된다더군


아이가 태어나 글을 익히면

최근에 죽은 자의 피부로 감싼 책을 선물한다더군

그를 대부로 삼는다더군


거기에서는

몇권의 책을 장정하며 성인이 된다더군

결혼을 서약할 때는 책에 손을 얹고

여기 장엄한 생을 두고 맹세합니다, 말한다더군


때가 되면

가까운 사람들의 이름을 유언으로 남겨야 한다더군


거기에서

죽은 자는 몇권의 책이 된다더군

문자의 외투가 된다더군


늙어서 죽은 자는 지혜의 책이, 젊어서 죽은 자는

혁명의 책이 된다더군

아이가 죽으면 예언서가 된다더군


삶에 관한 의문이 드는 저녁에 쓰다듬는

한권의 책이 된다더군


유병록, 목숨이 두근거릴 때마다, 창비.2014년. 16-17쪽.


그러니 나보다 앞서 산 사람들은 모두 나에게 영향을 준다. 비록 그와 내가 직접 만나지 않았더라도 나는 그의 영향에서 벗어날 수 없다. 다시 '습관들'이란 시를 보면 시인은 '습관은 / 앞서 지나간 자들이 남긴 계율 / 나는 나를 번복하지 못한다' (105쪽)라고 표현하고 있다.


굳이 과학을, 도킨스의 이론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우리는 과거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다. 물론 그렇다고 과거에 그대로 종속되어 있지도 않지만.


사람이 저마다 유일한 존재인 이유는, 이러한 과거로부터 들여온 것들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살아가기 때문이다. 그렇게 나에게 수많은 책들이 있고, 그 책들을 통해서 나는 삶을 살아가고, 또 나 역시 나중에 그러한 책이 된다.


도킨스의 '밈'을 이보다 구체적으로, 사람의 육체로 표현해 낸 시가 있을까 싶다. 그래서 유병록의 이 시집 [목숨이 두근거릴 때마다]를 읽을 때 '습관들'과 '사자의 서'를 함께 읽으면서 도킨스의 '밈'을 생각해봐도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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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시집은 사람에 대한 시집이다. 만나고 헤어지는 사람에 대한 시들.


  사랑하고 미워하고 만나고 헤어지고, 하나였다가 둘이 되는 그런 사람들. 살다 죽는 사람들. 죽어서도 잊지 못하는 사람들. 잊힌 사람들.


  그렇데 이 시집은 바로 사람에 대한 이야기다. 사람이란 무엇일까? 홀로 살아갈 수 없는 존재. 다른 사람과 함께 살아가야 하는 존재. 그렇다고 다른 사람과 하나가 될 수는 없는 존재.


  사람은 사람을 만나 함께 서지만, 그렇다고 다른 사람에게 자신을 완전히 맡겨서도 안 된다. 사람과 사람은 함께 하더라도 공간, 틈이 있다. 완전히 붙어 있지 않다. 그 틈이 바로 사람을 사람으로 존재하게 한다.


그렇지 않으면 다른 사람에게 휘둘리는, 자신을 잃은 사람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다. 한자어를 보자. 사람 인(人). 서로가 서로를 받치고 있지만, 결코 하나가 되지는 않는다. 자기 자리에 서서 상대를 만날 뿐이다. 이 공간, 이 사이, 이 틈이 바로 우리들이다. 그래서 우리는 함께 하되, 따로 가고, 따로 서 있되 함께 살아갈 수밖에 없다.


이사라 시집에 나온 사람에 관한 시들 중에 '사람들'이란 시가 있다.  


 사람들


사람이 아니라

사람'들'일 때


'들'에는 언제나 틈이 있다


사람들이 모여드는 

광장


사람들은

함께 모여 하나이지만


뒤따라가는 사람이

앞선 사람을 잠시 놓치면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비바람이 일어

그 틈에서

보이지 않는 아픔이 자라는 것은 무언지


모든 '들'에는 틈이 있어

바람처럼 사람이 드나드는

사람들 틈에서


광장이 그래서 숨을 쉬나


이사라, 저녁이 쉽게 오는 사람에게. 문학동네. 2018년. 58쪽.


'그 틈에서 / 보이지 않는 아픔이 자라는 것은 무언지'라고 하지만, 그렇다. 다른 존재를 만날 때 순전한 기쁨만으로 만날 수 있을까? 가장 사랑하던 사람도 언제 기쁨만으로 만나지는 못한다. 만남을 통해서 우리는 가끔 벌어진 틈을 보게 되고, 그 틈을 통해 아픔을 느끼기도 하지만, 그 아픔으로 인해 더욱 굳건하게 함께 할 수가 있다. 


그래 사람'들'은 틈이 있어야 한다. 그냥 하나로 뭉뚱그려지는 사람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함께 만나고 있는 그런 상태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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