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에 나오는 나무 두 그루.


무더위에, 폭우에, 기후 재앙에 시달리고 있는 지금, [삶이보이는창] 표지 그림을 보면서라도 시원함을 느꼈으면 좋겠다.


세상이 어지럽고 힘들 때라도 잠시 몸과 마음을 쉴 수 있는 곳. 이 그림에서 나무 두 그루가 있는데, 그런 나무 역할을 하는 존재들이 있을 거라 믿는다.


그런 나무같은 존재들이 있기에 우리 삶은 여전히 살 만하지 않겠는가.


이번 호에는 죽음에 관한 글도, 케어팜('농촌돌봄'또는 '돌봄농촌'정도로 바꿀 수 있겠다)에 관한 글도, 병에 걸려 치료를 받는 이야기도, 장애에 관한 이야기도 실려 있다.


다양한 글들이 실렸지만, 이 글들을 통해서 삶에 나무 그늘을 제공해주는 이들이 늘 있음을 알게 된다.


어려울 때일수록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존재들이 있다. 그런 존재들로 인해서 지친 몸과 마음이 추스려지고, 다시 일어설 수 있게 되지 않나 싶다.


박일환, 시인의 시선에서 언급하고 있는 아프가니스탄에서 랩을 통해서 그 실상을 알리는 소녀 이야기, 그런 소녀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있게 해주고, 또 그런 이야기들을 다른 사람들에게 알리는 일. 그런 일들이 바로 나무와 같은 역할을 하지 않나 싶다.


여기에 이인휘 글 '단편이, 장편이, 소설이2'는 아직도 우리가 사람 중심에 갇혀 있지 않나 하는 생각도 하게 한다.


버려진 곳에서 잘 살아가고 있던 동물들. 누군가가 놓은 독극물을 먹고 죽어가거나 도망칠 수밖에 없는 버려진 생명들. 그 생명들을 거두어 함께 살아가려 해도, 누군가가 몰래 그들을 해친다.


인간 중심주의... 다른 생명체들을 인간에게 종속된 존재로만 여기는 그런 모습이 이번 호에도 나타나고 있으니... 주변 생명체들을 따스하게 바라보는 조병범의 '시민과학자가 본 새 이야기'에서 느꼈던 즐거움이 사라지고 만다.


집에서 함께 하지 않는 동물들에 대해서는 한없이 너그러우면서도, 집에서 함께 하는 동물들이 집을 잃었을 때 잔인해지는 사람들의 모습을 이번 호에서 만났다고나 해야 할까?


모든 생명체들을 소중하게 여기는 마음, 그런 마음을 모두가 지니고 있다면 하루에도 몇 명씩 죽어나가는 산업재해같은 일들을 막으려고 노력할텐데...


산업재해뿐만이 아니라 장애에 관해서도 함께 하려는 모습을 지니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무더운 여름, 비단 더위만이 아니다. 다시 코로나19도 기승을 부리기 시작했고, 며칠 간 폭우로 많은 사람이 고통을 받고 있으니, 우리네 삶은 여전히 팍팍하다.


팍팍함 속에서도 희망을 느낄 수 있는 그런 삶들이었으면 좋겠다. [삶이보이는창] 130호를 읽고 한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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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 호, 편집장의 글을 읽으면서 분류라는 말을 생각했다. 편집장의 말과 더불어 이번호에 실린 글들도 이런 '분류'를 생각하게 했고.


  분류. 나누고 모은다. 간단한 말이다. 그런데 '분=나누다'는 말이 앞에 있다. 모으기 위해서는 먼저 나누어야 한다. 나누기 위해서는 기준이 있어야 한다. 무엇을 기준으로 삼을까?


  그렇다. 기준, 우리는 살아가면서 알게 모르게 어떤 기준을 작동시킨다. 그 기준에 부합하면 모으고, 기준에 맞지 않으면 모으지 않는다. 그래서 끼리끼리가 되는 경우가 많다. 기준에 부합하는, 비슷한 존재들이 모이게 되니까.


이 분류에 끼지 못하면 배제된다. 분류는 모으다는 말도 있지만, 배제한다는 말도 포함하고 있다. 이에 속하지 않으면 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한데 이 분류가 참 무서울 때가 있다. 개인의 특성을 먼저 생각하기보다는 분류, 집단의 속성을 먼저 떠올리게 된다. 집단 속에 개인은 무시당하기 일쑤다. 그리고 개인을 비난하는데, 이 집단을 이용하기도 한다.


또한 집단을 이용해서 비난을 하면 개인이 반박하기 힘들어진다. 편집자의 말에서 어떤 비애를 느꼈는데, 사실 확인을 하지 않고 비난하는 글이 실렸을 때, 그 비난은 집단을 향하고, 집단 속에 있는 개인에게는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긴다.


반박하는 글을 실어도 이미 버스 지나간 뒤에 손 흔들기가 된다. 사람들은 비난에는 민감하지만, 비난을 반박하는 글에는 무심하다. 대체로 그렇다. 이렇게 분류 속에 이미 자신의 사고틀을 집어넣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분류 기준을 바꾸는 일, 참 힘들지만 살면서 시도해야만 하는 일이다. '당신의 첫 번째 분류 기준은 무엇인가요?'라는 글을 보면 왜 그것이 첫 번째 기준이 되었을까 한번 생각해 보아야 한다.


대체로 사람을 판단할 때 학벌, 지역, 성별. 신체조건 등을 첫 번째 기준으로 내세우는 경우가 있다. 과연 그래야 할까? 다양한 기준을 함께 적용할 수는 없을까? 


이런 기준은 사람들 생각과 행동을 규정짓기도 한다. '당신은 말을 못하는 게 아니라 특정 상황에서 얼어붙는 거예요'라는 글에서 이 점을 알게 된다.


중년 남성 앞에서 말을 잘 못하던 사람. 왜? 자라오면서 겪은 일들이 자신의 마음 속에 남아 있었기 때문. 그것을 인식한 순간부터 서서히 중년 남성 앞에서도 말을 잘할 수 있게 된다. 자신의 기준을 바꾸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재활용, 재사용에 관한 일들도 마찬가지다. '당신 곁의 재사용'이라는 글을 보면 우리가 삶의 기준을 바꾸었을 때 얼마나 많은 일들을 할 수 있는지를 알게 해준다. '나를 이루는 것의 팔 할이 전기다'도 마찬가지다.


별다른 생각없이 쓰는 전기에 대해서 기준을 한번 바꾸어 보는 삶. 그런 삶을 상상하고 실천한다면 어떨까?


[빅이슈]에 대한 생각도 그렇다. 노숙인들 이야기, 또는 집에 관한 아니면 젊은이들 취향의 글들이 실릴 것이라고만 생각하면 이 역시 분류의 함정에 빠져 있는 셈이다. [빅이슈]는 이런 잡지야 하고 규정짓고, 그 규정 안에서 [빅이슈]를 만나려고만 하게 된다.


이번 호에서는 그런 기준에 대해서 생각하게 한다. 기준을 통한 분류가 모으는 역할을 하기도 하지만 나누고 배제하는 역할도 하고 있음을. 그래서 때로는 기준에 대해서 생각하고, 기준을 바꾸는 삶도 살아야 함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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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라알라 2022-08-07 18: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kinye님 덕분에 빅이슈 들어가봤는데 ˝당신곁의 재사용˝ 페이지 컬러감 넘 좋네요^^
일부러 구매해 읽거나 찾아보진 않겠지만 혹시 이 잡지 접하게 되면, kinye님 언급하신 꼭지는 꼼꼼하게 읽게 될 것 같습니다

kinye91 2022-08-07 19:24   좋아요 0 | URL
이 잡지 읽는 것 즐거워요. 직접 찾아서 읽기는 힘들지만, 그래도 읽을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꼭 읽기 바랄게요.
 

  시집에 어려운 말이 하나도 없다. 그냥 우리가 쓰는 말들이 시로 표현되어 있다.


  이 시집 전체에 흐르는 마음은 바로 사랑이다. 사랑, 상대에 대한 이해. 그렇게 시인은 사랑은 특별한 감정이기도 하지만, 우리 모두가 지니고 있는 감정임을 보여주고 있다.


  자연에 대한 사랑, 그래서 이 시집에는 봄, 꽃에 대한 시가 많다. 봄은 새로운 시작이고, 따스함이고, 열려 있음이고, 희망이니, 청소년 시집에 봄이 많이 나온다는 이야기는 바로 사랑일 수밖에 없다.


  꽃도 마찬가지다. 꽃을 보면서 불안, 어둠을 느끼는 사람은 거의 없다. 꽃은 희망이고, 즐거움이고, 아름다움이다. 청소년들도 마찬가지다. 그들이 아직 꽃을 피우지 않았을지라도, 언젠가는 꽃을 피우는, 저마다 자신의 꽃을 피우는 존재이기 때문에 이 시집에 꽃이 많이 등장한다.


그렇게 시인은 자연과 사람, 또다른 동물들을 통해서 사랑을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 전체적으로 시집을 읽으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어려움은 잠시 뒤로 미루고, 시집에서 전해오는 따스함, 편안함, 사랑을 느끼게 된다. 나태주 시인의 다른 시들과 마찬가지로, 이 시집 역시 '사랑'이 전체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이런 시집을 읽으면 마음이 봄에, 꽃에, 사랑에 머무르게 된다. 우리들 삶에 사랑이 넘쳐나게 된다.


시를 읽는 이유이기도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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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 호를 읽으면서 편견에 대해 생각했다. 편견은 곧 가짜뉴스가 판칠 수 있는 환경을 만든다. 내 생각과 다른 생각을 들을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선택은 이미 결정되어 있었다'(43쪽)고 가짜 뉴스에 관한 글에서 이야기하고 있다. 선택은 이미 결정되어 있다. 그리고 이 선택을 강화하는 쪽의 글들을 읽는다. 자기 생각을 더 강하게 만든다. 그래, 그랬지 하면서. 


  이렇게 자신의 생각을 강화하면서, 다른 생각은 아예 듣질 않으려고 한다. 듣고, 잘못을 이야기하지 않고, 또는 비판적으로 판단하지 않고, 귀를 닫고 만다. 


  닫힌 귀... 이런 닫힌 귀들이 많은 세상에선 가짜 뉴스가 판치게 된다. '가짜뉴스는 가짜라서 성공하는 게 아니다. 뉴스 소비자들의 니즈에 맞을 때만 성공하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가 믿고 싶은 것은 그대로 받아들인다. 나쁘다고 생각하는 사람 혹은 세력에 대한 나쁜 뉴스는 필터링 없이 받아들인다.' (43쪽)


남 이야기 같은가? 아니다. 바로 우리 얘기다. 우리는 우리의 필요에 맞는 이야기는 잘 받아들이면서도 우리의 필요와 거리가 먼 이야기는 들으려고도 하지 않는다. 귀가 두 개인데, 이상하게도 한 쪽 귀만 있는 듯이 행동한다.


그러니 말과 말이 부딪혀 진실로 향하지 않고, 한쪽 말이 아예 나오지 못하게 막는다. 일방적이다. 그러니 가짜뉴스가 활동할 수 있는 최적의 환경이 만들어진다.


[빅이슈]를 읽는 이유는 어쩌면 이러한 편견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마음에서일지도 모른다. 내가 평소에 만나지 못했던 세계를 [빅이슈]를 통해서 만나게 되니까.


다양한 사람들의 모습을, 연예인처럼 화려한 세계에서 활동하는 사람들과 빅이슈판매원처럼 결코 화려하다고 할 수 없는 삶을 함께 만날 수 있으니까.


고급스러운 음식에 대한 소개도 만날 수 있고, 하루 한끼 먹고 살기 힘든 사람들은 노숙인들을 만날 수도 있으니까. 또 환경을 생각하며 여행을 하는 사람들도 만날 수 있고, 자기 분야에서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으니까.


이렇게 [빅이슈]는 한쪽에 치우치지 않아서 좋다. 다양한 삶들을 만날 수 있고, 다양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어서 좋다. 이렇게 [빅이슈]와 같은 역할을 하는 매체들이 많아진다면 가짜뉴스가 설 자리는 점점 줄어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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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도.

  사람들이 많이 여행하는 곳.

  낯선 풍경을 만날 수 있는 곳.

  이제는 낯선 언어로 말하는 사람이 많이 줄었지만, 그래도 낯선 언어를 만나 생소함을 느낄 수 있는 곳.


  그런 제주도에는 볼거리만큼이나 아픈 역사도 있다. 아픈 역사만큼이나 가족이 겪은 비극도 많다. 또한 섬이라는 지리적 여건으로 인해 겪은 고통도 있고.


  단순히 관광으로 끝날 섬이 아니다. 그런 제주도를 아우를 수 있어야 제주도 여행을 제대로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사람과 자연과 역사가 어우러진 곳. 제주도. 이 청소년 시집에는 제주의 이 모든 것이 다 녹아들어가 있다.


제주도 소년과 소녀가 느끼는 감정, 그리고 제주가 겪은 역사. 제주의 자연 등등. 이 시집에는 다양한 제주의 모습이 나오는데, 그 중에서도 특히 해녀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시인이 해녀의 딸이라고 해서 그런지, 해녀의 생활이 시에 많은 편인데, 바다 깊숙한 곳까지 내려가 가족들의 생계를 위해 일을 해야 하는 사람들. 마찬가지로 남자들은 배를 타고 멀리 나간다. 생계를 위해서.


이런 저런 제주도의 모습을, 제주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시를 통해 만나다가, 제주도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오히려 폐를 끼치는 사람들의 모습을 시에서 만나고는 씁쓸해지기도 했다.


시인은 이런 시를 통해서 사람들이 제주도에 와서 제주도의 본 모습을 체험해야지, 오로지 자신들의 관점에서 제주도를 이해하고 행동하면 안 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관광객들이 현지인들에게 어떤 피해를 주는지 인식도 못하는 경우가 많지만, 시를 통해서 그것을 보여주고 있으니 우리들의 행태를 살펴봐야 한다.


 올레길은 돌아서


길은 주인이 없다지만

동네에선 널어놓은 깨가 먼저고

귤 실은 트럭이 먼저고

지팡이 짚은 할머니가 먼저고

아기 업은 엄마가 먼저라서

친구들과 우르르

올레길에 몰려다니다가도

한쪽으로 비켜서는데

길마나 코스 이름 번호 붙더니

전세 버스 타고 우르르 몰려다니는 무리는 

트럭도 막아서고

지팡이도 막아서고

우는 아기 막아선 줄도 모르고

널어놓은 깨를 툭툭 치며

즐거워한다

이젠 심부름 갈 때

올레길은 돌아서 간다


허유미. 우리 어멍은 해녀. 창비교육 2020년 초판 2쇄. 75쪽,


이런 제주도의 모습, 우리가 원하는 모습 아니던가. 올레길이 무엇인가. 그 지방의 모습을 체험하면서 걷는 길 아닌가. 그러니 그곳의 풍습을 해치지 않고 걸어야 하는데, 걸으면서 자신들 멋대로 행동하면 어떻겠는가.


그렇게 하면 '온몸에 힘을 주고'(80-81쪽)이란 시에 나오는 문어와 같이 제주도를 대하는 사람들이 될 수밖에 없다.


'갯바위에 달라붙은 문어를' 맨 손으로 떼려는 사람들. 하이힐로 문어 다리를 찍는 사람들, 문어에게 돌멩이를 던지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이 바로 제주도를 제대로 여행하지 않는 사람들 아닌가.


청소년시집을 통해서 여행은 어떠해야 하는지, 우리가 자주 가고 또 가고 싶어하는 제주도를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 반성하게 하는 시이기도 하다.


어쩌면 제주도는 지금 이 시에 나오는 '다리가 너덜너덜해지도록 관광객을 받아 낸 문어 / 바다 한 귀퉁이도 너덜너덜하다'(81쪽)는 표현처럼 되어가고 있지는 않은지...


제주도 여행을 가려고 하는 사람, 이 시집을 한번 읽고 가면 좋겠다. 제주도이 다른 모습을 볼 수 있을테니 말이다. 이처럼 자신의 눈에 보이는 것만을 보지 않고, 가려져 있는 제주도를 볼 수 있도록 해주는 시집이 바로 이 시집이다.


꼭 제주도만이 아니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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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2-07-23 23: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계속 올려주시는 청소년시집 참고하고 있어요
감사합니다

kinye91 2022-07-24 07:46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청소년시집을 통해 잊고 또는 잃고 있었던 마음을 다시 찾기도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