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곳에서 성과주의 어쩌고 저쩌고 하고, 특히 텔레비전 방송에서는 시청률이라는 명목의 경쟁으로 프로그램을 더욱 풍요롭게 만든다고 말들을 하는데... 

그래, 시청률 경쟁을 해서 더 좋은 프로그램이 나왔나? 

성과주의 운운으로 경쟁을 해서 더 나은 경제성장, 또는 성과를 거두었나? 

오히려 피곤함만 가중되고, 서로가 서로를 견제하게 되어 발전이 아니라 퇴보가 되지 않았나. 

진정한 발전은 경쟁이 아니라, 협동이 아니던가. 

서로가 서로를 배려하며 함께 가려고 하는 모습을 보여야 하지 않나. 

방송도 마찬가지다. 시청률이란 경쟁에서 벗어나야 더 좋은 프로그램, 즉 시청률을 의식하지 않는 좋은 프로그램이 만들어지지 않나. 

이제부터라도 경쟁이 만능이라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21세기적 인간은 경쟁으로 내몰리는 인간이 아니라, 서로가 서로를 위하는 협동하는 인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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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부터 계속 이 프로그램에 의문이 들었다. 

왜 여자 출연자들은 남자 출연자들에 비해 맞는 것도 덜 맞고, 먹물도 코 끝에만 칠할까? 

위기탈출이라는 위험 상황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프로그램인데... 

은연중에 남녀의 역할을 우리에게 주입하고 있지는 않은가? 

여자는 약하고, 예쁘고, 그래서 보호받아야  하고, 남자는 특히 이 중에서 좀 못생겼다 싶은 연예인은 막 대해도 되는 존재라는 사실을 무의식중에 우리로 하여금 받아들이게 한다. 

이는 위기탈출이 아니라, 남녀의 차별에 대한 위기를 조성한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남녀의 성역할에 대해서 서구에서는 엄격하게 가르친다고 하는데.. 고정되어 있지 않다고. 

하여 스웨덴 같은 곳에서는 유치원에서 사용하는 물건에도 여자는 분홍, 남자는 파랑 등과 같은 색깔 구분을 하지 못하게 한다는데... 많은 아이들이 보는 프로그램에서 이렇게 명확하게 남녀를 구분해 놓으면 어떡하겠다는 건지. 그동안 일어났던 여성운동은 왜 이 프로그램에는 침묵할까. 아니 많은 발언이 있는데, 내가 놓치고 있는 걸까? 발언이 있었어도 힘이 없었나 보다. 아직도 그런 상태로 유지되고 있으니. 

또, 왜 이렇게 폭력적일까? 

그깟 문제 못 맞췄다고 왜 때리는 거지?  이런 행위를 너무도 당연하게 여기게 만들고 있지 않은가.

그것도 체벌 아닌가? 체벌 금지가 대세인 세상에서 안전프로그램에서 안전에 관한 문제를 맞추지 못했다고 얼굴을 때리고, 얼굴에 칠하는 벌칙이 과연 바람직한가? 다른 방향으로 바꿔야 할텐데...

자주 보던 프로그램이었는데... 요즘 들어 더 마음이 불편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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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의 책 중 가장 많이 알려진 "무소유" 

그리고 무소유의 삶을 실천하셨던 분. 

그 분이 가신 지 일년이 되었다. 

비록 그 분은 가셨지만 그 뜻은 우리 마음에 남아 있는데... 

최근 신문에 그 분의 뜻을 이은 재단인 맑고 향기롭게에서 갈등이 일어났다고 하는데... 

스님의 유지를 받는 단체에서 갈등이 일어난다면 그는 아직도 그들이 무소유의 정신을 지니지 못했다는 증거이지 않을까. 

옳고 그름이 명확하다면 옳음을 위해 갈등을 해야 하지만, 스님의 뜻을 어떤 방식으로 이어가느냐 하는 방법론의 차이라면 양보하는 자세가 무소유의 정신과 통한다고 본다. 

금강경에 이런 말이 있었는데... 정확하지는 않지만... 배는 강을 건너기 위한 수단이니, 강을 건넌 다음에는 미련없이 배를 버려야 한다고. 

스님의 말과 행동, 그리고 글들은 우리들에게 진리를 깨닫게 하는 배와 같았으니, 우리 자신도 하루바삐 깨달아 스님을 우리 마음 속에 완전히 받아들여, 스님이 운운하는 말은 이제 하지 않았으면. 

우리 삶, 자체를 무소유 정신으로 채웠으면 한다. 

나도 하나하나 버리는 그런 태도를 지녀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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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아침 우연히 텔레비전에서 대담 프로그램을 보았는데... 이주호 교과부 장관, 김상곤 교육감, 그리고 교총과 전교조에서 한 명이 나와 질문을 받고 이야기를 하는 프로그램이었다. 

최근에 불거진 학생 체벌 중에서 간접체벌을 놓고, 찬반을 이야기하였는데... 

간접체벌이란, 도구를 이용해 신체에 압력을 가하는, 즉 때리는 행위가 아닌, 신체를 힘들게 하는 벌, 예를 들면 엎드려 뻗치기, 앉았다 일어나기, 운동장 돌기 등을 말한다. 

흔히 군대에서 말하는 얼차려와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이 간접체벌마저 없애면 학생들 지도가 거의 불가능하다는 입장이 교과부와 교총의 입장이고, 간접체벌도 체벌이기에 학생의 인권을 위해서는 간접체벌도 금지해야 한다는 입장이 김상곤 교육감과 전교조의 입장이었다. 

이게 논란거리가 되는, 텔레비전에서 방영이 되는 자체가 한심스럽다. 

학생은 학생이기 전에 사람이다. 즉 사람으로서의 권리를 당연히 누려야 한다. 이게 인권이다. 학생은 그 다음이다. 그러므로 인권을 생각한다면 간접체벌도 체벌이므로, 인권을 침해하는 행위이므로 당연히 금지되어야 한다. 논란거리가 될 여지가 없는 문제를 가지고 아직도 왈가왈부하고 있다니... 

그러니 이런 책이 아직도 유효하지. "인권은 교문 앞에서 멈춘다"  

학생을 교사와, 또 어른과 동등한 사람으로 본다면 체벌에 관한 논의는 이미 끝났어야 했다. 간접체벌도 체벌임을, 학생을 사람으로 보기보다는 가르쳐야 할, 만들어야 할 대상으로 보았을 때나 간접체벌 허용 운운이 가능하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존중받은 사람이, 인권적으로 자라난 사람이 인권을 존중하는 사람으로 성장한다는 사실,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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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용자동차 노조 문제가 해결된 지가 제법 되었는데도, 약자인 노동자들은 계속 죽어가고 있다. 

벌써 몇 명째인지. 

약자가 이렇게 죽어가는 나라에서 복지는 무슨? 

노동자의 이익을 대변한다는 정당도 생긴 나라에서, 노동조합 조직율이 30%도 안 되는 현실. 

파업만 하면 불법이 되는 현실. 

40년 전에 전태일이 외쳤던 그 말들을 지금도 외쳐야 하는 현실. 

맘이 무겁다. 

이제는 전태일이란 이름을 역사 속에 묻어두어야 하지 않나... 

아직도 이 땅에 얼마나 많은 전태일이 계속 나와야 할까. 

이 전태일 평전이 아직도 우리에게 현실로 다가오고 있으니, 우리 현실을 직시하자. 국민의 대대수가 노동자 아니던가. 쌍용차 노동자들 이야기가 남 얘기가 아니다. 진정한 복지국가를 꿈꾼다면 이러한 사람들이 더 이상 나오지 않게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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