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18일) 한진중공업 청문회가 국회에서 열렸다.  

청문회장에는 한진중공업 회장인 조남호가 나왔고, 이 조남호를 국회의원들이 상당히 강하게 질타했다고 한다. 질타했다고 한다가 끝이다.  

더이상 이야기가 진척되지 않는다. 여전히 해고자들은 해고상태이고, 이를 막기 위해 고공 크레인에 올라간 김진숙은 아직도 그곳에 있다.  

김진숙이 청문회장에 나와, 조남호에게 질문을 해야 하지 않나?  

할 수 없는 상황에서, 사실 김진숙의 상황, 비정규직의 상황을 공감하지 못하는(?적어도 나한테는 그렇게 보인다) 국회의원들이 하는 질문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85호 크레인에서 보면 조남호나 국회의원이나 오십보 백보일텐데 말이다. 

브레히트가 생각났다. 벌써 오래 전에 그는 이런 시를 썼다.  

이 시가 1939년에 쓰여졌다는데, 이 시에 나오는 의문들 중 해결된 것이 있던가?  

아직도 우리는 이 시의 노동자처럼 의문을 지니고, 이 의문을 해결하기 위해서 행동하지 않나?  

책 읽는 노동자, 책 속에 나온 그 위대함, 화려함 속에 감춰진 자신들의 노동, 자신들의 희생을 깨우친 사람이다. 

각성한 노동자라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 대입해 보자. 테베, 바빌론, 리마, 비잔틴, 만리장성 등을 대기업으로, 알레산더, 시이저, 필립, 프리드리히 등을 대기업 회장으로...  

그러면 이번 한진중공업 문제에 대한 답이 보이기 시작한다.  

답은 명확하다. 단지 회피할 뿐이다. 

아마 김진숙이 청문회장에 나왔다면 이 시와 같은 질문을 하지 않았을까 상상을 해본다. 

어떤 책 읽는 노동자의 의문 - 베르톨트 브레히트 

성문이 일곱 개나 되는 테베를 누가 건설했던가? 

책 속에는 왕의 이름들만 나와 있다. 

왕들이 손수 돌덩이를 운반해 왔을까? 

그리고 몇 차례나 파괴되었던 바빌론- 

그때마다 그 도시를 누가 재건했던가? 황금빛 찬란한 

리마에서 건축노동자들은 어떤 집에 살았던가? 

만리장성이 준공된 날 밤에 벽돌공들은 

어디로 갔던가? 위대한 로마제국에는 

개선문들이 참으로 많다. 누가 그것들을 세웠던가? 로마의 황제들은 

누구를 정복하고 승리를 거두었던가? 끊임없이 노래되는 비잔틴에는 

시민들을 위한 궁전들만 있었던가? 전설의 나라 아틀란티스에서조차 

바다가 그 땅을 삼켜 버리던 밤에 

물에 빠져 죽어가는 사람들이 노예를 찾으며 울부짖었다고 한다. 

 

젊은 알렉산더는 인도를 정복했다. 

그가 혼자서 해냈을까? 

시이저는 갈리아를 토벌했다. 

적어도 취사병 한 명쯤은 그가 데리고 있지 않았을까? 

스페인의 필립왕은 그의 함대가 침몰당하자 

울었다. 그 이외에는 아무도 울지 않았을까? 

프리드리히II세는 7년전쟁에서 승리했다. 그 이외에도 

누군가 승리하지 않았을까? 

 

역사의 페이지마다 승리가 나온다. 

승리의 향연은 누가 차렸던가? 

10년마다 위대한 인물이 나타난다. 

거기에 드는 돈은 누가 냈던가? 

 

그 많은 사실들. 

그 많은 의문들. (1939년) 

브레히트 시집, 김광규 옮김, 살아남은 자의 슬픔, 한마당 104-105쪽에서

 
덧말 : 알렉산더는 인도 정벌에 실패하지 않았던가.이 당시 브레히트가 알고 있던 역사적 사실과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적 사실이 조금 다를 수 있다. 그러나 그런 차이는 이 시를 이해하는데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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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동초 지다
- 김대중 전 대통령을 보내며

한 때 노벨상이 최고라고
왜 우리나란
한 명도 없냐고
교보문고에 갈 때면
입구에 걸려 있는
수상자 사진을 보며
탄식하곤 했다.

그런데,
한 사람이 있어
드디어
우리나라에서도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하게 되었다.
2000년!

그 사람,
김대중.
인동초라 불리던.
북한이,
북괴 괴뢰도당이 아니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임을,
김일성, 김정일,
그리고 북한 주민들이
뿔 달린 도깨비가 아닌,
늑대가 아닌,
정체가 없는 괴물이 아닌,
바로 우리와 같은
사람임을
만천하에 밝힌 사람.

하여
남과 북은
전쟁보다는 평화를,
이젠
전쟁은 없을 것이라는
믿음을
주었던 사람.

비록
놓친 것도 있지만
그는
남과 북
하나만으로도
큰사람이었다.

제 뿌린 씨앗이
열매로 맺는 것을
보지 못하고
이젠 딴 세상으로
간 사람.
2009년 8월 18일!

DJ 김대중.
그 씨앗이
아직 자라고 있음을,
우리 마음 속에 있음을…….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이 돌아가신 지 2년이 되었다. 그 동안 그분의 자서전이 나와서 한 번 읽어봐야지 했는데...  

아직도 심리적 거리가 너무 가까워서인지 선뜻 맘이 내키지 않았다. 다만 예전에 읽었던 대통령이 되기 전에 나왔던 책... 

그것을 맘에 담아두고 있을 뿐이다. 

이 책에서 언급하지 않고 있는 부분들이 최근에 나온 자서전에는 모두 나온다고 한다.  

조금 더 심리적 거리가 멀어진 다음, 차분하게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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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영화를 봤다. 

황선미 원작의 소설을 워낙 재미있게 읽어서 온 가족이 다같이 보러 갔다. 

물론 원작과 달라야 한다고 생각했고, 어떻게 다를 것인가를 관심있게 보기로 했는데... 

어떻게 다른가 보다는 여전히 이 작품이 감동적인가하는 생각을 하면서 보았다. 

그런데 과연 어린이들이 이 작품이 전하고자 하는 내용을 이해할까 하는 생각도 해보았고, 

어쩌면 이 작품은 어른들에게 더 많은 생각거리를 제공해주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분위기를 무겁지 않게 해주는 수달, 달수의, 그리고 박철민의 목소리가 무거운 내용을 어느 정도 부드럽고 아이들의 취향에 맞게 해주었다는 생각을 했다. 

이 작품의 그림도 좋고, 가족이 함께 보면 좋은 영화라는 생각. 

여기서 잎싹이 이름을 짓는 모습은 이름을 통해 자기 정체성을 확보해가는 모습일테고. 즉 이름없는 존재에서 이름이 있는 존재로 다시 태어남은 자신이 누구인가를 깨우쳐가는 과정이고, 다른 존재들에게도 이름을 붙여주는 과정은 나와 함께 하는 남들은 누구인가를 깨우쳐가는 과정이라서 아주 중요한 과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제목이 마당을 나온 암탉인데, 처음에는 잎싹이 양계장에서 탈출해 마당에서 사는 삶을 꿈꾼다. 이 때 잎싹이 꿈꾼 마당은 자유와 협동이 존재하는 공동체였는데, 그러한 공동체는 존재하지 않고, 이곳에서도 서열과 복종만이 있었다는 사실, 처음엔 추방이지만, 다음엔 스스로 마당을 거부하는, 즉 마당은 울타리가 쳐진 남의 통제에 길들여진 공간이라는 인식을 우리에게 주고 그래서 잎싹은 이 마당을 나올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게 해준다. 

마당을 나와서 진정한 자유로운 존재로 살아가는 모습, 그것은 나만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존재도 생각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잎싹의 최후로 말해주고 있다. 

영화를 먼저 보든, 책을 먼저 읽든 관계 없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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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국가라고 알려진, 의견을 다양성을 존중한다는 북유럽, 그 중에서도 노벨평화상을 수여하는 노르웨이에서 폭탄테러 및 총기난사 사건이 벌어졌다. 

누군가가 확실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극우근본주의자라는 이야기가 있다. 

근본주의자, 이는 어떤 일을 믿는데 있어서 자기 종교, 신념만이 옳고 나머지는 옳지 않다는 태도를 지닌 사람이라는 의미로 쓰이고 있는데... 

본래 근본주의자 하면 모든 것을 근본에서부터 생각해 보자고 주장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지 않나? 

만약 기독교 근본주의자라면 예수의, 하느님의 사랑에서 출발해야 하고, 불교 근본주의자라면 부처의 자비에서 출발해야 하고, 이슬람 근본주의자라면 알라의 사랑에서 출발해야 한다. 유교 근본주의자는 공자의 인에서 출발해야 할 테고... 

이러한 근본주의자들이 많다면 세상은 오히려 사랑과 자비와 인으로 넘치는, 다른 말로 하면 평화와 존중이 넘실대는 세상이지 않을까. 

나와 생각이 다르다고, 나와 인종이 다르다고 남을 배격하는 사상은 결코 근본주의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하는데... 

관용과 포용, 그리고 여유로 상징되던 북유럽, 노르웨이에서 참사가 일어나다니... 

마음이 안타깝다. 

지금 세상 곳곳에서 아직도 테러와 전쟁이 멈추지 않고 있는데... 

상호 존중을 통한 평화, 그리고 평화를 통한 행복이 넘치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는데... 

노르웨이에서 일어난 일에 대한 기사를 보고, 박노자가 생각났다. 

우리나라를 다른 시각에서 바라볼 수 있게 해 준 사람. 

그가 한 때 노르웨이에서 교수로 있었고,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우리나라를 바라볼 수 있는 거울로 북유럽을 소개한 책이 있었다. 

좌우는 있어도 위아래는 없다. 

그래, 북유럽이라고 해서 만능은 아니라고 그도 주장하고, 또 그의 말대로 북유럽을 비판적으로 보아야겠지만, 그래도 배울 점이 많았던 곳이 북유럽이었는데... 

세계 곳곳이 점점 더 폭력으로 점철되어가고 있단 생각에 마음이 착잡하다. 

다시 한 번 차분히 읽어봐야겠다. 

박노자의 북유럽 탐험 

좌우는 있어도 위아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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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속에 남아 있던 찜찜함이 막 밖으로 밀려나왔다. 

세상을 두드리는 사람 중에 심홍아의 만화 '그들의 무지개'를 보면서였다. 

그냥 저러면 안 되는데, 저건 위험한 발언인데 하는 마음이. 이거 정말 문제구나. 너무도 당연하게 다수가 소수를 이상한 사람 취급하는 이 사회는 문제가 많구나 하는 생각. 

며칠 전에 텔레비전을 볼 때 사회자가 다음부터는 키스 장면을 연출하려면 머리를 기르고 나오라고, 앞에서 보면 몰라도 뒤에서는 구분이 안된다고, 우리 프로에 나오려면 머리를 길러야 한다고 농담식으로 말을 했다. 

순간, 저 발언 위험한데, 저렇게 해도 되나?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이 발언에는 의도하지 않았던 의도했던 키스는 이성끼리 해야 하며, 여자는 특히 머리가 길어야 한다는 의식이 깔려 있지 않은가. 

두 가지 점에서 문제가 있는데, 우선 여자는 머리가 길어야 여자로 쉽게 인식된다는 생각은, 남자와 여자의 겉모습을 고정시키고 있다는 문제가 있다. 

남자는 머리가 길면 안 되나? 여자는 머리가 짧으면 안 되나? 머리 짧은 여자는 남성적인 여자고, 머리 긴 남자는 여성적인 남자인가? 남녀를 불문하고 머리가 길든 짧든 그건 상관없는 일 아니던가.  

공적인 방송에서 그렇게 발언하면 상당히 문제가 될텐데... 하는 마음이었는데... 

두 번째는 동성애자들을 폄하하지 않았던가. 물론 그 발언을 내가 곡해하고 있을 가능성도 있지만, 한 사람은 남자임에 분명하고, 한 사람은 머리가 짧은 여자였는데, 머리를 길러야 뒤에서 봐도 여자임을 알 수 있다고 하면 키스는 이성애자들끼리 해야 정상이고, 나머지는 이상하다는 암시를 주는 것이 아닌가? 

동성애가 분명 죄가 아니고, 사회에서 격리되어야 할 일도 아님을 지금은 많은 사람들이 깨우쳐가고 있는데... 차이를 차별로 만드는 모습은 이제는 없어져야 하는데... 

그냥 스치고 지나갔던 생각들이 심홍아의 만화를 보면서 머리 속을, 마음 속을 비집고 나와 버렸다. 

나는 작은 차이를 아무 것도 아니란 듯이 뭉개버리면서 소수자의 인권을 무의식 중에 침해하지 않았는가? 갑자기 모골이 송연해졌다.  

머리 속으로 아는 것과 실제로 행동하는 것이 다른데, 그간 내 말과 행동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그 방송과, 이 만화가. 

독일의 성교육 책은 동성애도 다뤄주고 있는데...그 책 제목이 남들에게 얘기하기 민망한데, 번역을 돌려서 하지 않은 이유도 있겠지. 읽으면 좋은 책이다. 제목에 굳이 자체검열이 되는 모습 또한 문제일테니... 이 책 제목은 섹스북이다.

인권에 대한 감수성을 키우고 싶다면 "세상을 두드리는 사람"을 읽자.  

많이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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