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력주의 - 2034년, 평등하고 공정하고 정의로운 엘리트 계급의 세습 이야기 이매진 컨텍스트 72
마이클 영 지음, 유강은 옮김 / 이매진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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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능력을 무엇으로 측정할까? 이런 기술적인 문제에 매달리면 도대체 왜 사람의 능력을 측정해야 할까? 라는 질문은 사라지고 많다.


능력을 측정한다는 말은, 무언가 순위를 매긴다는 말이고, 순위를 매기는 일은 차이를 드러내고, 그 차이에 따른 대가를 다르게 지정한다는 뜻이다. 결국 능력을 측정한다는 행위 자체에는 이미 차이가 포함되어 있다. 단지 차이를 인식하는 것으로 끝나면 좋지만, 그 차이가 차별로 전환되는 것은 시간 문제다. 


왜? 대가에 차등이 생기기 때문이고, 이 대가로 인해 생활이 완전히 달라지기 때문이다. 나는 능력이 있기 때문에 그런 일을 해서는 안 되고, 그런 대접을 받아서는 안 되지만, 너는 능력이 없으니 그런 일을 해야 하고, 그런 대접을 받아야 해라고 누구나 생각하는 사회.


그래서 능력에 따라 사람을 대하게 되는 사회가 과연 행복할까? 도대체 왜 우리는 능력을 측정하고 순서를 매기려고 할까?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 아닐까? 할 수 없는 일에 매달려 평생을 보내지 말라고, 그러기에 자신이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을 구분할 수 있게 능력을 측정해서 보여주는 것일까?


하지만 자신이 할 수 없는 일에 평생을 매달렸다고 과연 행복하지 않을까? 꼭 무언가를 이루어야 행복할까? 그 일을 하는 과정 자체가 행복일 수도 있지 않은가?


게다가 능력을 하나로 정의할 수 있을까? 그것도 능력을 '지능+노력'으로만 정리할 수 있을까? 노력이 들어가긴 했지만, 이 노력은 지능에 비례한다고 하면, 결국 지능 하나로 결정이 된다고 할 수 있는데...


모든 국민의 지능을 검사해서 숫자로 나타내고, 구간을 설정해 등급을 나누고, 그 등급에 따라서 해야 할 일과 받아야 할 대우가 정해진다면? 그 사회는 어떤 사회일까?


게다가 지능을 여러 차례 검사하던 것에서 과학기술의 발달로 단 한 번의 검사, 그것도 태어나자마자 한 검사 한번으로 미래를 결정한다면 그런 사회는 어떤 모습일까? (왜 우리나라 수능이 자꾸 생각나지? 이 장면에서)


철저하게 그러한 능력(지능)으로 사람을 구분하고 대우하는 사회, 그렇게 지능에 따라 다르게 살아가는 사회가 과연 행복할까?


이 책은 사회학이라는 논문의 형식을 띠고 있는 소설이다. 소설로 읽어야 한다. 마치 영국에서 이런 역사가 있었구나 하고 사실로 읽어서는 안된다. 저자는 미래에 지능만으로 모든 것이 결정되는 사회를 보여주고 있다. 과연 그런 사회가 좋은 사회인지... 이 책에 그려진 사회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쪽으로 이 책을 읽는다면 그것 또한 비극이다.


능력이 있다고 판명된 5%의 소수는 온갖 혜택을 누리며 살지만, 하위 지능에 속한 사람들은 신분제 사회에서나 했었던 하인 역할을 해야 하는 사회. 그것도 이제는 아주 어릴 적 단 한번의 검사로 자신의 인생이 결정되는 사회라면...


그런 사회가 어떤 모습으로 귀결되는지를 이 책은 잘 보여주고 있다. 능력으로 모든 것을 결정하는 사회가 이르게 되는 모습을 보게 된다. 이 책이 나온 지도 꽤 되었지만 지금 세계는 마이클 영이 걱정했던 '능력주의 사회'로 가고 있지 않은지...


거의 대부분의 일에서 '성과주의'를 표방하면서 당신의 능력을 보여주라고, 능력을 보여주지 않으면 그 자리에 있을 수 없다고 하는 사회가 도래하지 않았는가? 물론 능력주의를 완전히 없애서는 안된다. 마이클 영이 주장하는 것도 이것이다. 


신분이 아니라 능력에 따라 대우를 받아야 하는 사회가 되어야 하지만, 모든 것을 능력만으로, 그것도 능력의 일부인 지능만으로 결정하는 사회는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


사람의 능력은 다양하고, 또 각 분야에 따라서 필요한 능력을 발휘하도록 기회를 제공해야 하지만, 단 하나의 요소로 능력을 평가하고 평생을 살아가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 그렇게 다양한 능력이 다양한 곳에서 꽃 피울 수 있는 사회가 바람직 하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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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평양아...
김찬구 지음 / 비봉출판사 / 200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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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재미교포의 16년간 북한 사업 체험기'라고 한다. 16년간 북한을 왕래하면서 사업을 했다고 하면 북한에 대해서 많이 알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북한에 대해서 알 수 있는 정보가 많이 한정되어 있어서 여전히 내게는 모르는 곳이기 때문에, 저자가 북한을 드나들면서 겪게 된 이야기들은 내게 북한에 대한 정보를 제공해 주겠다는 생각에 읽게 되었다.


참 자주 북한을 드나들고, 많은 북한 사람들을 만났음에도 저자에게도 북한은 여전히 낯선 곳이다. 일이 될듯 하다가도 한순간 안 되어 버리는 곳. 약속이라는 것이 실행이 되기 전까지는 그냥 말이나 문서에 불과할 뿐이었던 곳.


여러 사업을 북한에서 하려고 하는데, 그것이 저자의 이익이 아니라 북한 사람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는 사업을 시도하지만 번번이 어떤 장애에 막혀 좌절하고, 돈과 시간과 정열을 흘려버리고 만 긴긴 시간에 대해서 책에 잘 나와 있다.


북한도 사람 사는 곳이니 원칙대로 일이 처리 안 될 때도 많고, 또 수령과 당 중심의 사회니 그것에 배치되는 말을 할 수도 없고, 이동은 늘 안내원과 함께 할 수밖에 없는 사회. 만나는 사람도 한정되어 있는, 16년이나 다녔어도 혼자 자유롭게 다닐 수 없는 곳.


그럼에도 자주 다니다 보니 북한 사회의 행태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익숙해졌지만, 결국 북한 사람들을 위한 사업을 제대로 하지는 못한 저자의 이야기.


그럼에도 저자의 진정성을 느낄 수 있는 책이었는데, 사업가의 관점에서 쓰였기 때문에 간혹 눈에 거슬리는 장면이 있기도 하지만 (요즘 같으면 성감수성 미비로 비판받을 말과 행동들이 있다. 그 점을 유념하고 읽어야 한다, 또 기업가들의 접대 문화 등도) 그럼에도 90년대 북한에서 고난의 행군이라고 하는 어려움을 겪는 때의 모습을, 북한 소설보다도 더 구체적으로 만나볼 수 있다.


또 그들만의 사고에 갇혀 지내는 모습도 만나게 되고. 북한 지도부의 일처리 방식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감을 잡을 수가 있다. 그리고 북한이 폐쇄 사회임에도 불구하고, 일본이나 미국에 살고 있는 교포들이 북한을 돕기 위해 노력을 했다는 것도 알 수 있고.


우리가 통일을 이루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생각하게 한다. 늘 느끼는 것이지만 자유로운 교류가 가장 좋은 답이겠지만, 국제 제재도 있고, 또 자신들의 체제를 지키려는 모습 때문에 자유로운 교류가 어쩌면 가장 어려운 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체제 유지를 우선시 하는 집단은 자유로운 교류를 가장 두려워한다. 왜냐하면 통제할 수 없는 만남은 다양한 생각을 양산하게 되고, 이것은 단일 체제를 고수하는 집단에게는 가장 큰 위협이 되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이산가족 상봉이 쉽지 않은 이유도 바로 이런 쪽에서 찾아야 한다고 한다. 그들에게 이렇게 체제 바깥의 사람들과의 만남은 위험하다는 인식이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을 보아도 몇몇 소수를 제외하고는 체제 바깥의 사람들과 만남이 자유롭지 않음을 실감할 수 있다. 가장 당성과 출신성분이 좋다는 평양에 사는 사람들과도 자유롭게 이야기를 못하고, 북한을 그렇게 자주 드나드는 저자에게도 안내원 없이는 외출이 통제되는 상황, 그럼에도 저자는 아침 산책을 위해 안내원 없이 외출하기도 하는데, 이런 특혜를 받은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어느 정도 북한에서 인정하는 사람도 이렇게 많은 제약을 받는데,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는 더 심한 제약이 있을 것이다.


저자 역시 많은 사업을 하려고 했고, 우리나라 기업과들과 북한 산업을 연결하려는 노력도 많이 했지만, 난관에 부딪혀 성사된 일은 많지 않다. 그런 저자의 고군분투가 이 책에 오롯이 드러나 있다.


저자의 사업 경험과 더불어 저자가 만난 많은 북한 사람들 이야기가 함께 실려 있어, 이 책을 읽으면 여전히 폐쇄된 사회인 북한에 대해서, 적어도 북한의 90년대 삶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실감할 수 있게 된다.


한때 금강산 관광, 개성공단 입주 등으로 교류가 이루어졌었는데, 이제는 그나마도 모두 끊겨 다시 이 책의 저자가 활동했던 시기로 돌아갔다는 생각이 드는데...


그럼에도 북한은 우리가 모르쇠로 일관할 수 있는 나라가 아니다. 우리 삶에 밀접한 영향을 미치는 나라다. 지금 북한을 잘 알지는 못하겠지만, 90년대 북한의 모습을 알고 싶으면 이 책을 읽으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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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의 도전 - 한국 사회 일상의 성정치학
정희진 지음 / 교양인 / 200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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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온 지 오래된 책이다. 개정판이 나왔지만, 도서관에서 옛날 판을 빌려 읽다. 늦은 감이 있다고 할 수 있지만, 사람이 살아가는데 많은 고민을 주는 책에 이르다 늦다가 어디 있겠는가. 게다가 개정판이 나왔다는 얘기는 이 책이 아직도 쓸오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고 할 수 있고.


이 책은 이런 말로 시작한다.


머리 좋은 사람이 열심히 하는 사람을 따라갈 수 없고, 열심히 하는 사랆은 즐기는 사람을 이길 수 없고, 즐기는 사람은 고민하는 자를 능가하지 못하는 법이다. 여성주의는 우리를 고민하게 한다. 남성 중심적 언어는 갈등 없이 수용되지만, 여성주의는 기존의 나와 충돌하기 때문에 세상에 대해 질문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성주의는 여성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남성에게, 공동체에, 전 인류에게 새로운 상상력과 창조적 지성을 제공한다. 남성이 자기를 알려면 '여성 문제(젠더)'를 알아야 한다. 여성 문제는 곧 남성 문제다. 여성이라는 타자의 범주가 존재해야 남성 주체도 성립하기 때문이다. (여성주의는 보편과 특수라는 이분법 자체에 문제를 제기하지만) 젠더는 특수한 문제도, 소수자 문제도 아니다. (12-13쪽)


이제까지 유일한 것으로 군림해 온 목소리가 조금 낮아질 때, 비로소 다른 목소리가 들리게 된다. 남성과 여성의 조화를 파괴하는 것은 가부장제지, 여성의 '직설적인' 목소리가 아니다. 다른 목소리를 들을 수 없는 사회는, 갈등 없는 사회가 아니라 가능성이 없는 사회다. (43쪽)


직까지 한국 사회에서는 평화운동, 환경운동 등 이른바 신사회운동이나 '탈근대적' 사회운동에서도 성(gender)은 중요한 고려 대상이 아닌 경우가 많고, '평화운동가'라고 해서 저절로 성평등 의식을 갖추고 있는 것도 아니다. (254쪽)


인용한 세 부분을 더 생각해 본다. 여성주의는 여성만을 대상으로 하지 않는다. 오히려 하나로 만들지 않고 여럿이 있음을 드러낸다. 다양한 목소리들이 공존하는 사회를 꿈꾼다. 다름을 같음으로 치환하려 하지 않고 (우리가 남이가!) 다름을 다름으로 인정하고, 그 다름의 소리들이 사회에서 드러날 수 있도록, 그래서 다양한 목소리들이 공존하는 사회를 꿈꾼다.(그래, 우리는 남이다. 그런 남들과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곳이 바로 사회다)


이러한 여성주의는 남성성에 갇힌 남성들에게도 도움이 된다. 남성에게도 고민할 수 있는 계기를 주기 때문이다. 그런 고민들은 질문을 만든다. 질문은 곧 자명하다고 생각했던 것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이다. 


가부장제라는 단일한 목소리에 균열을 내는 것이다. 그러니 남성과 여성의 조화를 파괴하는 것이 어느 목소리인지 생각해야 한다. 왜 다른 목소리들이 나왔는지 한걸음 물러서서 생각해 보면, 그간 조화롭다고 생각했던 것이 강자의 일방적인 문화에 불과했다는 것, 약자의 희생 또는 약자의 희생이 드러나지 않고 당연시 되었던 것에서 비롯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정희진이 이 말은 새겨두어야 한다. '다른 목소리를 들을 수 없는 사회는, 갈등 없는 사회가 아니라 가능성이 없는 사회'라는 이 말.


그렇다면 소위 진보진영이라는 곳에서 불거지는 성폭력 문제를 다시 바라볼 수 있게 된다. '진보'라는 말에모든 것이 포함되어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진보'라는 말로 다른 갈등을 뭉뚱그리고, 무마했던 것은 아닌지.


'진보'는 오히려 다른 목소리들을 드러내고, 그것들이 제시하는 문제제기에 관심을 기울이며 좀더 다양한 가치들이 공존할 수 있도록 해야 하지 않을까. 따라서 '진보'는 더 고민하고 더 질문하고, 더 성찰하는 삶을 살 수밖에 없다.


15년도 지난 과거에 쓴 글이지만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그만큼 페미니즘의 도전은 여러 문제를 해결하기도 했지만, 모든 문제가 끝났다고 여길 수 없게 한다. 모든 문제가 끝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다양한 문제들이 계속 나타나는 것, 그것은 사람들이 질문을 한다는 것이고, 좀더 나은 사회를 향한 움직임을 멈추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니 그런 목소리들을 누를 것이 아니라 왜 그런 목소리들이 나왔는지 먼저 생각해야 한다. 정희진의 이 책은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소통과 공존'을 할 수 있는지 생각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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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웃라이어 - 성공의 기회를 발견한 사람들
말콤 글래드웰 지음, 노정태 옮김, 최인철 감수 / 김영사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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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웃라이어'


오래 된 책이다. 글래드웰이 쓴 "타인의 해석"을 읽고 그 전에 쓴 이 책도 읽게 되었다. 뛰어난 사람이라는 뜻보다는 성공한 사람, 사회에서 두각을 나타낸 사람으로 풀이를 하는 것이 좋은 제목인데...


책의 앞부분에 아웃라이어에 대한 뜻이 나와 있다. '1. 본체에서 분리되거나 따로 분류되어 있는 물건 2. 표본 중 다른 대상들과 확연히 구분되는 통계적 관측치'라고 되어 있다. 한마디로 말하면 보통에서 벗어난 존재라는 뜻이다.


사람으로 치면 뛰어난 사람, 한 마디로 정리하면 천재라고 할 수 있다. 단지 천재라고 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사회에서 그 재능을 발휘한 사람으로 해야 한다. 천재라고 할 수 있는 사람 중에서 사회에서 그 능력을 발휘하지 못한 사람도 많으니 말이다.


그렇다면 이 책은 그러한 천재라고 할 수 있는 사람들 중에서 어떤 사람이 자신의 재능을 발휘했는지를 살펴본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 누구나(물론 재능에 따른 구분은 있다) 천재로 태어날 수는 있지만 누구나 재능을 펼치는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라면 한번쯤 읽어보거나 들어본 삼국지를 보라. 제갈공명이라는 이름은 잘 알고 있지만 방통이라는 이름은 잘 모른다. 제갈공명이나 방통이나 능력은 비슷했다고 할 수 있는데, 공명은 자신의 재능을 십분 발휘했고, 방통은 다 발휘하기도 전에 죽음에 이르고 말지 않았던가. 같은 능력이라도 서로 다르게 발휘하고 있음을 이 예에서 잘 알 수 있다.


또한 아웃라이어를 읽으면서 사자성어 '낭중지추(囊中之錐)라는 말이 떠올랐다. 주머니 속의 송곳이란 뜻으로 감추려고 해도 드러나는 존재라는 뜻인데, 뛰어난 사람을 의미하는 말이다. 그런데 주머니 속의 송곳이 아무리 드러나 보여도 주머니에서 꺼내 쓰지 않으면 끝이다. 쓰일 수 있도록 사람, 환경, 시대 등등을 잘 만나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주머니 속에서 그냥 잊혀질 뿐이다.


천재들도 마찬가지다. 성공한 소수의 천재들이 천재로 남아 있는 이유는 그들은 사회에서 자신들의 능력을 발휘했기 때문이다. 브레히트의 시 '살아남은 자의 슬픔'에서 '강한 자는 살아남는다'고 했듯이 그들은 성공했기에 천재로 불리는 것이다.


아웃라이어가 된 것은 그들이 사회에서 재능을 발휘했기 때문이다. 즉, 살아남았기 때문이다. 물론 그들은 운이 좋아서 그렇게 되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대부분 그렇게 생각하지 않고 그들이 특출한 능력을 지녔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생각을 여지없이 부수는 것이 바로 이 책이 하는 일이다. 이 책은 그들이 재능은 성공의 필요조건이지만 충분조건은 아니라고 한다. 성공에는 재능에 더해서 더 많은 것들, 가령 문화적 유산이나 가정 환경, 태어난 시기, 자라난 시기 등과 같은 시대, 그리고 무엇보다 노력(무려 1만 시간의 노력)이 있어야 한다고 한다.


그 점을 여러 사람들을 통해서 설명하고 있기 때문에 이 책을 읽으면 다른 사람의 재능을 부러워하기만 하고, 자신의 재능 없음을 탓하는 것은 실패로 가는 지름길임을 알게 된다. 재능 탓을 하는 것이 얼마나 잘못되었는지를 9장 마리타에게 찾아온 놀라운 기회에서 잘 보여주고 있다.


가정 형편도 좋지 못하고 그렇다고 아주 뛰어난 재능도 있지 않고, 문화적 유산도 별로 없는 마리타라는 인물이 나름대로 재능을 펼쳐가게 되는 조건, 그것은 그런 사람들도 재능을 발휘할 수 있는 조건을 마련해 주는 일이다.


그런 역할을 학교에서 할 수 있다는 것. 그러기 위해서는 학교에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 바로 9장이다. 이런 학교 교육이 가능하려면 가정 형편에 따라 재능을 펼칠 수 있는 조건이 엄청나게 다르다는 현실을 인정해야 한다. 모든 것을 네 자신의 노력에 달려 있다고 하는 것이 허구임을 깨달아야 한다.


이미 조건에서 차이가 나기 때문에 출발선이 달라진 사람들이 있음을, 그 사람들도 출발선을 교정해줄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해 준다면 다양한 능력을 발휘할 수 있음을 생각하게 한다.


여기에 재능은 아주 특출한 한 명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재능 있는 많은 사람들이 있음을, 그들의 재능을 숫자로 명확히 나눌 수 없고 어느 정도 수준이면 그 다음부터는 환경과 노력에 따라 달라짐을 이 책은 잘 보여주고 있다.


오죽하면 이렇게 주장하는 학자도 있다고 한다. 


  심리학자 배리 슈워츠는 복잡한 입학 과정 대신 일정한 범위에 속하는 사람들을 무작위로 추첨할 것을 엘리트 학교에 권하기도 했다.

  "사람들을 두 범주로 나누는 겁니다. 충분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으로요. 충분한 사람들은 추첨 통에 들어가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못 들어가지요."

  물론 슈워츠는 자신의 생각이 받아들여질 리 없다고 생각했지만, 그는 완벽하게 옳다. (102-103쪽)


우리나라로 치면 대학에서 공부할 능력이 있는 학생을 측정하는 것이 대학수학능력시험(일명 수능)인데, 거기서 그치지 않고, 이를 등급별로 나누어 다시 피말리는 서열화를 시키고 있으니... 이 책에 의하면 일정 등급의 학생들은 비슷한 재능을 지니고 있다고 봐야 한다. 그들에게 유의미한 차이는 없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한 문제, 두 문제로 등급이 갈리고 그 다음에 그들에게 주어진 교육 환경, 그리고 사회 인식이 달라지기 때문에 인생의 길이 확연히 달라지고 만다. 더 많은 사람들이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를 소수만을 위한 등급화로 원천봉쇄하고 있다는 생각을 이 책을 읽으면 할 수밖에 없다. 


우리는 소수의 몇몇을 위해 재능 있는 대다수의 사람들을 낙오시키는 것이 아니라, 대다수의 재능 있는 사람들이 소수가 받을 수 있던 문화,교육, 경제 등등의 혜택을 받게 해야 한다.


이 책 아웃라이어는 소수의 천재들은 타고난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에게는 비슷한 재능이 있다. 아니, 적어도 소위 천재라고 불리는 사람과 비슷한 재능을 지닌 사람은 많다. 그 많은 사람들이 몇몇에게 가려 재능을 발휘할 기회도 잡지 못하고, 또 일찍 좌절하는 것은 잘못되었다고 하는 것이다.


많은 재능있는 사람들이 재능을 발휘해서 성공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제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미 출발선이 달라진 사람들에게는 그것을 보정해주어야 하고.


여러모로 생각할거리가 많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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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약의 사회사 - 가정상비약에서 사회악까지, 마약으로 본 한국 근현대사
조석연 지음 / 현실문화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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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약 하면 부정적인 생각이 먼저 떠오른다. 그렇지만 무엇이 마약일까 하면 별로 알고 있지 않다. 몇 년 전이던가, 아니 지금도 프로포폴이란 마취제가 문제가 된 적이 있었다. 분명 의약품인데 의사 처방 없이 사용하면 마약으로 취급되는 약. 


그렇다면 마약은 마약이라는 이름으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어떤 상황에서 사용되었느냐에 따라 마약이냐 약이냐가 결정된다고 할 수 있다.


내가 알고 있는 마약에 어떤 것이 있을까? 언론을 통해 들어본 적이 있는 이름은 아편, 대마초, 필로폰 정도다. 그것도 정확한 마약의 명칭이 아닐 수도 있다. 필로폰이 일본식으로 '히로뽕'이라고 불리고, 그 이름이 상표로 판매가 되기도 했다고 하니, 마약이란 사회의 변화에 따라 규정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아편도 마찬가지다. 아편은 조선시대 말까지만 해도 가정에서 흔히 쓰던 상비약이었다고 한다. 진통제로써 쉽게 구할 수 있었던, 그래서 가정에서 쓸 수 있었던 구급상비약 정도였던 것. 하지만 이 아편이 목숨을 끊는 수단으로 쓰이기도 했다고 하니, 아편의 독성에 대해서는 우리 조상들도 잘 알고 있었던 듯하다.


다만 이렇게 가정 상비약으로 쓰인 아편이 일제시대가 되어 대량으로 생산되기 시작했다고, 조선을 아편 생산지로 만든 일제는 그것으로 돈도 벌고 또 상대를 무력화 시키는 작업도 했던 것이다. 아편이 마약으로서 자리잡는 순간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아편은 일제시대를 거쳐 해방 직후까지 우리나라 마약의 역사에서 가장 큰 자리를 차지한다. 그러다가 아편을 대체하는 식물이 나타났는데, 바로 대마라고 한다. 대마초로 만들어 피우면 환각작용을 일으킨다는 식물.


이 대마초가 유행하게 된 것이 미군으로부터였다고 하니, 그것 참, 일제로부터는 아편의 유행이, 일제를 대신한 미군으로부터는 대마초가 유행하다니, 마약의 역사와 우리나라 현대사의 비극이 함께 하고 있음을 이 책을 통해서 알 수 있게 된다.


미군이 쉽게 구할 수 있었던 것이 우리나라 대마초라고 하니, 미군들의 수요에 의해서 대마초로 공급하게 되고, 따라서 시골에서 식물로 키웠던 대마가 마약으로 자리를 잡게 되는 것이 1970년대라고 한다. 나라에서 대대적으로 대마초 소탕 작전을 펼치고, 언론을 통해서 대마초가 마약임을 인식시켰다고 하니...


마약은 어떤 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하느냐에 따라 우리와 함께 하는 식물이냐, 규제되는 마약이냐가 결정된다. 이렇게 마약 단속을 하는 정부 차원의 규제가 국민 개개인의 건강을 위함도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정권 안정을 위해서 하는 정책인 경우가 많았다고 하니, 그것은 마약에 대한 규제에 집중했지, 마약을 하는 사람들을 어떻게 치유할 것인가 하는 치유에는 소홀했음에서 그것을 알 수 있다고 한다.


즉 마약을 국민 건강보다는 자신들의 정권 유지에 이용한 국면이 많다는 것이다. 1980년대 들어서는 이제 아편과 대마초는 수그러들고, 필로폰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고 한다. 이것도 또 일본하고 관련이 있다.


우리나라 마약의 역사에서 일본과 미국을 빼면 이야기할 수가 없다는 것, 이렇게 마약도 국제관계 속에서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일본이 자국에서는 규제를 강하게 하니까 필로폰을 제조하는 곳을 우리나라에 두고 밀수입을 하고 있었다는 것. 그러니까 우리나라 사람들은 돈을 벌기 위해 필로폰을 만들어 일본에 밀수출을 하고 있었는데, 일본이 우리나라와 협력하여 필로폰 수입을 막는 정책을 펼쳤다는 것이다.


일본으로 가지 못하는 필로폰. 어디로 가겠는가. 당연히 국내에서 사용될 수밖에 없다. 이 점을 당시 정책가들이 생각했어야 하는데, 일본과 협정을 맺으면서 그 이후는 생각을 하지 못했나 보다. 그러니 우리나라에 필로폰 사용자가 급증하게 되었다고 한다. 


쿠테타로 집권한 군사독재정권에세 자신들의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는 길은 마약 단속을 비로한 사회정화 활동을 하는 것. 그들은 국민건강보다도 정권 유지를 위해 필로폰 단속을 실시한다. 그리고 우리나라에서는 해방직후부터 1980년대까지 나라에서 추진한 강력한 마약 단속 정책으로 인해 마약에 대해서는 국민들 모두가 부정적인 인식을 지니게 되었다.


아직까지 마약청정국이라는 소리를 듣는 것은 이런 역사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는데, 역대 정책들이 규제에는 강했지만 치유에는 소홀했다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는 것이 문제라고 한다.


이렇게 이 책은 조선 말기부터 1980년대까지 우리나라 근현대사에서 펼쳐진 마약에 대한 인식과 규제 정책에 대해서 살펴보고 있다. 여전히 마약은 진행형이지만, 의약품으로서 역할을 하면 약이 되고, 개인적으로 남용하면 마약이 되는 현실에서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 또 중독된 사람들을 어떻게 치유할 것인가에 이제는 중점을 두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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