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계장 이야기 - 63세 임시 계약직 노인장의 노동 일지 우리시대의 논리 27
조정진 지음 / 후마니타스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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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계장'은 소수의 사람에게만 해당할까?


'임계장'은 임시 계약직 노인장의 줄임말이라고 한다. 대다수의 직장은 정년이 있다. 그 정년이 57세부터 65세까지 다양하지만, 65세 정년인 직장은 거의 없다. 대부분 60세가 되면 정년이 되어 직장에서 나와야 한다.


그런데 생각해 보자. 지금 우리 사회에서 60세면 편안한 노후생활을 할 수 있는 나이인가? 직장 생활을 30년 넘게 한 사람들이라고 그 다음부터 돈 걱정 없이 지낼 수 있을까? 산수를 해보자. 굳이 수학까지 갈 필요도 없으니.


지금 60대들은 결혼을 현재 젊은 세대들보다는 일찍 했을테니 남자로 계산하면 군대 갔다 오고, 가장 빨리 취업을 해도 20세 전후다. 그러니 20세에 취업했다고 하자. 그러면 40년을 근무한 셈이고, 결혼은 25세에 했다고 하자. 


그가 곧 아이를 낳았다면 60세가 되었을 때 큰 아이는 35세가 되어 있을테다. 그리고 둘째를 2년 터울로 낳았다고 하면 둘째 나이는 33세. 


지금 우리나라에서 35세와 33세는 운이 좋으면 직장을 갖고 부모에게 기대지 않고 자신의 삶을 살아갈 수 있으리라. 그렇다면 퇴직을 한 다음에는 온전히 부모는 자신들을 위해서 살 수 있을텐데, 과연 그런가?


여기에 변수가 있다. 부모가 퇴직할 당시 빚이 없어야 한다. 하지만 집을 얻기 위해 대부분은 빚을 지니고 있다. 자식들 대학에 보내드라 또다른 빚이 있고. 직장을 그만두는 순간, 신용이 없어져 이 책에서 말하듯이 빚을 갚으라는 독촉에 시달린다. 갚지 않으면 추심 들어온다고 한다. 그러니 그간 모아두었던 적금, 보험을 해지하고 빚을 갚아야 한다.


또 늦게 둔 자식이 있으면 그 자식 학비로 마련해야 한다. 결국 직장에서 정년을 하고 편안한 노후생활을 할 수 있는 사람은 빚이 없는 사람, 자식들이 모두 자립해서 살고 있는 사람들로 한정된다.


대다수의 부모들은 정년을 하고 나면 살 길이 막막해진다. 그때부터 갚아야 할 빚과 자식들을 부양해야 하는 돈이 부담으로 다가온다. 그러니 그들은 다시 직장을 찾아야 한다.


누군가는 말한다. 정년으로 제2의 인생을 시작한다고. 그런 사람들이 많은가? 이 책을 쓴 사람은 공기업에서 37년을 근무했다고 한다. 그런데도 그는 제2의 인생이 아니라 여러 곳에서 비정규직 노동자의 삶을 살아가야 했다. 살기 위해서.


이 사람을 보아도 '임계장'은 극소수에 해당하지 않는다. 많은 정년퇴직을 한 사람들에게 해당한다. 그들은 살기 위해서 직장이 필요하다. 그런데 그들을 필요로 하는 직장은 대부분 계약직이고, 하고자 하는 사람이 늘 대기하고 있어서 해고하기도 편한 그런 곳이다.


아파드 경비원, 빌딩 관리인 등등이 바로 그런 곳이다. 많은 정년 퇴직자들이 이런 일을 하고 있고, 또 하기 위해 대기하고 있다. 그러니 '임계장'은 결코 소수가 아니다.


3D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암계장'들이 하는 일은 우리 생활에서 꼭 필요하지만 남들 눈에 띠면 좋은 소리를 듣지 못하는 일들이다. 그들은 소위 3D라 불리는 일을 한다. 힘들고 어렵고 더러운 일들. 그 노동으로 다른 사람들은 편하게 지낸다.


그러면 고마워해야 한다. 그런데 그렇지 않다. 일이 조금이라도 잘못되면 그 책임을 이들에게 묻는다. 아파트 단지 내에서 넘어져도 경비원 책임, 자기 차에 흠집이 생겨도 경비원 책임, 쓰레기가 넘쳐도 경비원 책임 등등...


이 책을 읽다보면 이런 아파트 주민들이 있나 싶을 정도다. 그런데 있다. 오죽하면 아파트 입주민의 갑질로 목숨을 끊는 경비원들이 나오겠는가.


그들은 자신들이 편리하게 사는 대가가 바로 이들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일을 한다는 사실을 외면한다. 이런 일들은 잘하면 표가 안 나고, 못하면 바로 표가 나는, 그래서 지적을 하기 쉽고, 주민들 입장에서는 큰소리 치기 쉬운 일들이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하지는 않지만, 정말 선량한 사람들도 많지만, 극소수의 사람이 갑질을 한다해도 그 여파는 상당하다. 사람을 그렇게 대하면 안 되는데, 경비원을 사람으로 대하지 않는 그런 아파트라니... 지금은 좀 나아졌으려나? 아니지, 아직도 보이지 않게 힘든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 우리는 이 책에서 저자가 겪은 일을 알게모르게 저지르고 있지 않나.


'공부 안하면 저 사람처럼 된다.' 이게 부모가 자식에게 하는 말이다. 이런 말을 듣고 자란 자식이 어떻게 보이지 않는 곳에서 자신들을 편안하게 해주기 위해서 험한 일을 하는 사람을 존중하겠는가. 그러니 보이지 않는 노동에 대한 존중. 또 자신들이 왜 깨끗하고 편리한 환경에서 지내게 되었는지에 대해서 생각해 봐야 한다.

 

태일의 외침은 여전히


이 책을 읽으면서 '임계장'에게만 해당하는 이야기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전태일이 '근로기준법을 지켜라'고 외치며 온몸을 불사른 지 50년이 되었는데도 노동자들의 조건은, 특히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조건은 여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사회 이곳저곳에서 전태일의 외침이 계속되고 있는데도, 아직도 전태일의 소망이 실현되지 않고 있다. 


여전히 아침에 집을 나서서 저녁에 집에 들어가지 못하는 노동자들이 많은 현실. 그런 현실 속에서도 더욱 힘든 삶을 지니는 '임계장'들. 또 이런 사람들을 자기들끼리 감시하게 만드는 관리자들.


아프면 치료해주지 않고 곧바로 해고하는 그런 직장들. 대기업이라고 들어가도 대기업 직원이 아닌 용역업체 직원으로 들어가게 되는 현실. 일은 대기업이 시키면서도 어떤 문제가 발생했을 때는 용역회사에 떠넘기고, 용역회사는 노동자 개인에게 전가하는 그런 일들이 여전히 비일비재하고 있으니.


약자에게 강하고 강자에게 약한


그러니 우리 사회는 약자에게 강하고, 강자에게는 한없이 약한 그런 모습을 보여주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한다. 빌딩 관리인이 되었을 때 본부장 차는 지정 주차 구역이 있고, 이를 잘못 알고 다른 차를 주차시켰을 때 난리가 나는 현실.


또한 경비원들을 감시하는 역할을 경비반장에게 맡기고, 그에게 정년 연장과 근무에서 특권을 부여해 그로 하여금 회사에 충성하게 만드는 그런 노동 관리 실태.


신영복 선생이 그랬던가. 감옥에 있을 때 한여름 더위에는 바로 옆에 있는 감방 동료들이 미워진다고, 어쩔 수 없이 붙어자야 하는 그들에게 한여름 더위는 견딜 수 없는 일인데 그 화살은 바로 옆에 있는 사람에게 가기 쉽다고 했다.


경비반장 역시 자신이 살기 위해서 그런 행동을 하겠지만, 자신과 같은 처지의 경비원들을 감시하고 회사에 신고하는 역할을 하고 있으니, 이는 약자에게 강하고 강자에게 약한 모습이다. 그리고 이 사회는 그렇게 하기를 강요 아닌 강요를 하고 있다.


이래서는 안된다. 환경을 바꿀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이들은 조직이 되지 않았고, 또 조직하기도 쉽지 않다. 하지만 다양한 경로를 통해 이들에 대한 이야기가 알려지면서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아직도 갈 길은 멀지만.


모두가 함께 할 수 있는 사회


하지만 힘든 일을 하는 사람들은 서로 도울 때도 많다. 휴가를 가기 위해서는 대체 근무자를 구해야 할 때 함께 구해주는 모습이나, 감기에 걸리면 동료에게 옮길까봐 홀로 나가 자는 고속터미널 관리인들. 


이런 모습들. 또 아파트 경비원들에게 친절한 인사를 건네는 사람들. 자신의 마음을 담은 물건을 주는 사람들.


서로가 서로를 배려하는 모습들도 있지만, 그들이 그렇게 하기 전에 먼저 환경을 개선해야 한다. 고속터미널의 상무라는 사람, 핀셋으로 이쑤시개까지 주우면서 관리원들에게 보여주는 모습, 자 이 모습이 어떤가? 


고속터미널 환경 관리를 관리원들이 하기 힘드니까 도와주는 모습으로 보이는가? 아니, 그 모습을 본 관리소 직원들은 관리원들을 다그친다. 상무님이 왜 저런 일을 해야 하냐고? 이는 강자가 약자를 배려하는 모습이 아니라 오히려 약자에게 일을 더 시키는 모습이다.


오죽하면 상무는 관리인들이 화단에서 이쑤시개를 찾아 청소하는 관리인들을 보면서도 하지 말라는 소리를 한번도 하지 않았을까. 이는 함께 사는 사회가 아니다.


강자는 약자를 편들어 주어야 한다. 약자가 편안하게 지낼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좋은 사회는 약자에게 약하고, 강자에게 강한, 그래서 약자들이 삶을 살아낼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사회다. 


그리고 그런 사회가 우리 모두 함께 살아가는 사회다. 우리도 '임계장'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알고, '임계장'을 우리만큼 존중받아야 할 존재로 여기는 사회가 바로 그런 사회다.


이 책을 참 짠했다. 그리고 우리나라가 저녁이 있는 삶이 아직도 없는 사회라는 생각이 들었다. 저녁이 있는 삶. 이를 더 넓게 확장하면 노년이 있는 삶이다. '임계장'들이라고 불리지 않고 '제2, 제3의 인생을 사는 사람들'이라고 불릴 수 있는 사회. 그런 사회가 되어야 젊은이들도 행복하지 않을까 한다.


'임계장'이 젊은이들의 미래가 아니라 '제2의 인생을 사는 사람'이 젊은이들의 미래가 되어야, 그런 사회가 함께 하는 사회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이 책을 많은 사람들이 읽었으면 좋겠다. 함께 살기 위해, 더불어 행복해지기 위해. 내 삶을 편하게 해주기 위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있음을 알기 위해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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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보그가 되다
김초엽.김원영 지음 / 사계절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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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보그 하면 로봇을 떠올린다. 인간과 다른 로봇이 아니라 인간의 몸에 장착된 기술, 로봇과 인간의 융합. 그래서 보통 인간보다는 능력이 뛰어난, 초능력을 발휘하는 존재. 


그래서 사이보그와 장애인을 결합시키지 못하고 있었는데, 인간의 몸이 다른 존재와 결합되었을 때를 사이보그라고 하면 장애인은 사이보그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기존에 생각해 보지 못했던 점을 생각하게 해주고 있다. 그렇다면 장애인을 사이보그라고 불러도 될까? 그렇게 부르자고 하지는 않는다. 어떤 사람은 장애인 하면 결핍, 부족, 부끄러움, 가려야 함 등을 생각한다면, 어떤 사람은 장애인이 뭘 하면서, 그대로 다른 사람과 같이 드러내야 한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이 책에 치료하는 약이 나와도 안 먹겠다는 장애인 활동가 이야기가 있다. 


이런 모습들은 같은 대상을 바라보는 다른 관점. 아니 자신을 바라보는 다양한 관점일 수도 있겠다. 소위 정상인(정상, 비정상 개념으로 다가가면 장애는 결핍으로, 비정상이 될 수밖에 없는데... 통상 쓰는 말이니 여기서도 쓴다면, 알으로는 정상인이 아니라 비장애인이라는 말로 통일하겠다)들도 자신을 다양하게 바라보는데, 때로는 만족해서, 때로는 불만족스럽게 보고 있으니, 장애인도 마찬가지다.


장애인도 비장애인과 마찬가지로 자신을 다양한 관점에서 바라본다. 그때 그때 따라서 장애인이 자신을 바라보고 판단하고 느끼는 감정이 다 다르다. 비장애인도 마찬가지고.


사이보그가 되다에서는 다양한 관점이 나타난다. 무엇이라고 하나로 규정하지 않는다. 아니 규정할 수가 없다. 비슷한 장애를 가진 사람도 사회에서 지낼 때 같은 모습으로 지낼 수 없다. 하물며 다양한 장애를 지닌 사람들에게는 그에 따라서 사회를 바라보는 시각, 기술을 바라보는 시각, 장애를 바라보는 시각이 다르다. 


어떤 사람은 자신의 장애를 완전한 비장애인처럼 해주는 기술이나 약, 수술을 원하고, 어떤 사람은 장애인으로 불편하게 살아가지만 첨단기술이나 의약, 수술 등을 거부하고 비장애인처럼 보이는 모습이 아닌 장애인인 자신의 모습대로 살아가려 한다. 


그런 장애에 대한 관점, 기술에 대한 관점을 하나로 통일시켜서는 안 된다. 이 책이 주장하는 바는 바로 여기에 있다. 하여 읽다보면 장애에 대해서 그간 생각을 하지 못했던 점들을 발견하게 된다.


그러면서 다시 우리 사회를 바라본다. 과연 우리 사회는 장애인을 어떻게 보고 있는가? 그들이 지내기에 어떤 환경을 지니고 있는가? 우리가 예전보다는 많이 길거리에서 장애인을 본다고 하지만, 과연 우리는 정말로 길거리에서 장애인을 많이 만나는가?


산책길에서, 또는 자전거도로에서 장애인을 만난 적이 얼마나 있던가? 길거리는 비장애인도 걷기에 위험하지 않나? 자전거도로에서 장애인이 자전거를 타고 가는 경우는 참 드물지 않나? 패럴림픽에 사이클 종목도 있던데...


여기에 이 책에서 나온 지적이 가슴에 콕 박혔다. 소설 속에서 과연 장애인이 얼마나 나오는가? 소설을 사회의 축도라고 하면서 그 소설 속 인물들 중에 장애인이 얼마나 되는가? 영화나 드라마는? 인간승리를 홍보하기 위해서가 아니라면, 어떤 다른 주제를 전달할 목적이 아니면 장애인은 소설이나 드라마, 영화에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비장애인들이 주변에서 장애인을 잘 못 보는 현실이 예술 작품에도 이렇게 나타나 있다. 이런 면도 지적하고 있지만, 과학기술로 장애를 해결할 수 있다는 생각을 버리자는 말... 과학기술이 장애인에게 큰 도움이 되고 있고, 계속 개발해야 하지만, 그와 더불어서 장애인들이 다른 존재들과 연결되어 살아가는 사회, 즉 다름으로 다름과 함께 살아가는 사회를 추구해야 한다는 주장에 동의한다.


많은 면에서 생각할거리를 제공해주고 있다. 이 책에 나온 몇몇 구절을 인용하면서 마친다. 이 인용문들을 곱씹으며 장애인에 대해, 또 장애정책에 대해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져 보자.



김초엽과 김원영은 각자의 몸을 둘러싼 테크놀로지와 세계를 관철하면서 과연 누가, 어떤 방식으로 사이보그가 되는지 묻는다. 이들은 '장애인을 위한 따뜻한 테크놀로지'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몸과 테크놀로지와 사회가 어떻게 재설계되어야 하는지 상상하고 제안한다. (5쪽. 전치형의 추천의 말에서)


나에게는 말소리를 내가 이해할 수 있는 정보로 전환해주는 과정이 필요했다. 다시 말해서 먼 미래에 도래할 완벽한 보청기나 청력 치료제에 대한 약속이 아니라, 새로운 방식의 의사소통과 그런 소통 환경을 가능하게 하는 기술이 내 삶을 실제로 개선했다. (35-36쪽. 김초엽)


'사이보그가 되어서' 스스로를 온전한 존재로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언젠가 도래할 첨단의 기계와 결합하거나 기계 없이도 '정상적인 몸'이 될 날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지금 당장 일상에서 사용하는 기계들과 더 안전하고 자연스럽고 편안하게 공존하는 길을 모색해야 한다. (63쪽. 김원영)


테크노에이블리즘은 기술 낙관론에 기반한 비장애중심주의다. 이러한 관점은 장애를 손상된 몸을 가진 개인의 문제로 환원하고, 그 개인에게 기술적 지원이나 교정을 통해 장애를 제거할 것을 혹은 정상적인 기능을 회복할 것을 요구한다. (86쪽. 김초엽)


기술은 우리 삶을 더 편리하게 만들지만, 우리 모두를 더 '인간적'으로 만드는 것은 아니다. (101쪽. 김원영)


눈에 띄지 않는 평범한 연결들의 거점에서 등장하는 사이보그적 존재는 그 연결들 때문에 힘을 발휘할 뿐 아니라, 그 연결들을 지탱하고 견딘다는 점에서(김혜리 기자의 표현을 약간은 변형된 의미로 인용해본다면) "청테이프처럼 영웅적이다." (113쪽. 김원영)


사이보그 신화는 사이보그의 현실이 기계와의 불완전한 동거, 즉 불화에 가깝다는 사실을 은폐한다. (138쪽. 김초엽)


완벽하지도 매끈하지도 않은 기술과의 융합과 불화가 실제 사이보그들의 삶을 구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139쪽. 김초엽)


장애인 사이보그들은 자신의 삶에 기술을 도입해 일상을 개선하면서, 동시에 기술과 불화하고 기술과 관련된 정상성 규범과도 불화한다. (144쪽. 김초엽)


신체 손상에 따른 기능을 보완하되 주목은 덜 받는 디자인은 오랜 기간 장애인을 위한 보철물 제작에서 중요한 고려 사항이었다. 이는 지금도 인공 보철 판매자와 소비자 모두에게 중요한 마케팅 포인트다. (154쪽. 김원영)


장애disability는 단지 몸의 특정한 기능이 결여dis-ability된 상태가 아니라 '정상이 아닌 몸'이라는 사회적 평가를 획득한 일종의 신분(지위)에 가깝다. 따라서 고도로 발전한 테크놀로지가 기능의 결여를 보완한다 해도 여전히 장애는 존재할 수 있다. (155쪽. 김원영)


어떤 기술이 반드시 억압적이거나 해방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 기술과 장애인이 이 사회에서 관계 맺는 맥락이 중요한 것이다. (182-183쪽. 김초엽)


기술 지식의 생산자들이 무엇보다 장애인의 필요를 중심에 두고 장애 정의와 접근성 실현으로 목적으로 하며, '따뜻한 기술'이 아니라 '모두를 위한 기술'을 내세우고 있다는 것이다. (200쪽. 김초엽)


장애인은 심리스-스타일의 세계 안에 끊임없이 '이음새'를 만드는 존재다. 많은 것이 자동화되고 인간 행위자의 개입을 최소화하는 시스템이 갖춰질 때, 늘 거기에 빈틈이 있다고 알려주는 존재가 장애인이다. (248쪽. 김원영)


기계-다른 인간-동물과 결합할 때 더 효과적으로 성취될지도 모른다는 뜻이다. 시각장애인이 안내견과 하나로 움직일 때, 중증 뇌병변장애인이 휠체어와 결합하고 다시 그 휠체어를 밀어주는 활동지원사와 접속할 때, 그 사에서 발생하는 많은 어긋남, 불화, 이음새의 단차를 넘어 결합해본 경험이야말로 우리가 미래에 '증강해야 할' 역량이다. (250쪽. 김원영)


개인을 교정하는 것으로 장애를 해결하는 대신 환경과 접근성의 문제를 고려해 다른 세계를 설계한다. 장애가 사라지거나 감춰진 미래가 아니라 장애인들이 세계의 일부로 살아가는 미래가 ... (268쪽. 김초엽)


인류가 그보다 현명하다면, 다른 존재로서 서로를 조금씩 불편하게 만들고 또 서로 적응해가며 같이 살아가는 법을 찾으려 할 것이다. 인간으로의 일방적인 동화를 요구하는 대신 이 사회 속에 다른 존재들의 자리를 만드는 방식으로. (275쪽. 김초엽)


장애는 그 사람의 삶에 새겨지는 경험이며, 치료가 반드시 답이 될 수는 없고, 어떤 이들은 장애인으로 살아가기를 선택할 수도 있다는 점에서 말이다. (277쪽. 김초엽)


장애를 가지고 살아간다는 것은 장애인의 몸으로 물질세계와 직접 상호작용하는 구체적인 경험이고, 그 경험은 개인의 자아와도 밀접하게 연결된다. (278쪽. 김초엽)


우리는 어떤 사람과 하나의 시공간을 점유할 때에만 이미지와 소리에 제한되지 않는 풍부한 총체를 경험할 수 있다. (299쪽. 김원영)


기술의 발전 수준이 문제가 아니라, 장애 정의와 접근성이라는 원칙이 기술의 핵심 가치에 포함되지 않기 때문에 무시되는 것들이 너무 많다고 생각해요. ... 비판을 통한 개입, 장애 당사자의 지식 생산, 접근성 원칙의 의무화 등 시스템의 변화가 모두 적극적인 개입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350쪽. 김초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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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삼풍 생존자입니다 - 비극적인 참사에서 살아남은 자의 사회적 기록
산만언니 지음 / 푸른숲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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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절하다. 온마음이 오롯이 담겨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글을 잘 쓰고 못 쓴다는 말을 할 수 없다. 글자 하나 하나 문장 하나 하나에서 진심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마음을 울리는 글. 그렇다. 이렇게 마음을 울리는 글은 잔잔한 호수에 물결이 퍼지듯이 사람들 마음에 서서히 스며든다. 스며들어서 사람들 마음을 움직인다.


이 책은 그런 책이다. 자신의 슬픔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슬픔에만 머물러 있지 않다. 슬픔에 갇혀 지내던 세월을 넘어 이제는 사회에 자신의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계기는 '세월호 사건'이다. 아직도 진장규명이 되지 않은 사건.


어떤 사람들은 말한다. 이제 지겹다고. 그만 말하라고. 왜 지겹지? 무언가 해결되었나? 해결되었다고 그만 말해도 되나? 피해자들이 겪는 아픔을 조금이라도 생각한다면 그렇게 말할 수가 있나? 이들에게 오히려 계속 말하라고, 이 사건이 완전히 해결될 때까지, 아니 이 사건의 전말이 완전히 밝혀진다고 해도 피해자들이 겪고 있는 고통은 여전할테니...더 말하라고... 계속 말해야 이런 일이 더 발생하지 않는다고.


이 책은 그 점을 말해주고 있다. 삼풍백화점 사고... 우리나라에서 일어난 비극적인 사건이다. 이 사건에서 살아남은 생존자 역시 온갖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힘든 삶을 살아왔다. 그렇게 힘들게 힘들게 살아오면서 자신이 왜 이렇게 힘들까를 생각하고, 이겨내려고 하고, 정신치료도 받고 봉사활동도 하며 살고 있는데도, 완전히 상처는 아물지 않았다고 한다.


아니, 상처가 아물 수가 없다고 한다. 그 상처를 안고 살아가야 한다. 다만 그 상처로 인해 더 고통받고 세상을 뜨겠다는 마음을 먹지 않겠다는 결심을 했다고 한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고통에 대해서 쉽게 이야기하는 경향이 있다. 하긴 다른 사람의 암보다 자신의 감기가 더 아프다는 말도 있으니 남의 상처에 대해서는 아무래도 한 다리 건너뛰어 느끼게 된다.


그래서 말을 앞뒤 가리지 않고 할 때가 있다. 그 말이 다른 사람의 상처에 또다른 상처를 덧입힌다는 생각도 못한 채. 생각을 못한 채 한 말도 잘못한 일인데, 어떤 사람들은 상처에 소금을 뿌리듯이 고의로 더 험한 말을 한다. 


이 책을 쓴 산만언니는 바로 그런 사람들 때문에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그 사람들의 말이 어떤 결과를 일으키는지를 알려주고자.


처음에 쓴 글이 '세월호가 지겹다는 당신에게 삼풍 생존자가 말 할게요'라는 글이라고 한다. 이 글로 인해 자신의 상처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고, 그런 이야기와 더불어 다른 사람의 상처를 함부로 말하는 이에게 그렇게 하면 안 된다고, 그것이 얼마나 잘못된 행동인지 알게 하려고 이 책을 펴냈다고 한다.


그만큼 이 책을 읽으면 마음이 찡해진다. 삼풍, 이제는 먼 이야기라고 생각했는데, 아니다. 그때 살아남은 사람들이 지금까지도 고통을 겪고 있는데, 가족을 잃은 사람들은 어떻겠는가. 그것은 영원히 남아 있을 상처다. 


그 상처로 인해 2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아파하고 있는 사람이 있는데 뭐, 그만하라고? 지겹다고? 그건 사람이 할 말이 아니다. 정말 마음에 안 들면 그냥 가만히 있으면 된다. 이 책에서도 말한다. 차라리 위선이 낫다고. 


착한 척하기 싫으면 그냥 가만히 있으면 된다. 되지도 않는 소리 내뱉지 말고. 그것이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라는 생각을 한다.


더 긴 말 필요없다. 읽어보면 안다. 왜 우리가 사람들 목숨을 앗아갔던 사고들을 기억해야 하는지, 왜 진상규명을 해야 하는지... 그리고 이들이 얼마나 큰 고통을 겪고 있는지를 온전히 이해하고 공감할 수는 없겠지만, 최소한 그들에게 예의를 지킬 수는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덧글


이 책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된 '세월호가 지겹다는 당신에게 삼풍 생존자가 말 할게요'라는 문장을 검색하면 그 글을 찾아 읽을 수 있다. 나도 검색해 보니, 찾을 수는 있는데, 그 글이 이 책에 '삼풍과 세월호'라는 제목으로 실렸다. 193쪽에서 197쪽.


삼풍백화점 사고에서는 나오지 않았던 말들, 반응이 왜 세월호에서는 나오게 되었을까를 산만언니 나름대로 정리한 글이 있다. 그 글을 읽어서 생각을 정리해도 좋을 듯하다.

'자꾸만 설명을 요구하는 사람들' (217쪽-22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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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라알라 2021-09-02 08: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비록 인쇄되진 않았지만 최초의 책제목과 연관해서도, 추천해주신 217-255 꼭 찾아 읽어보겠습니다! 북플 이웃님들 리뷰보고 계속 읽어야지만 하던 중인데.

kinye91 2021-09-02 09:50   좋아요 1 | URL
두 사건에 대한 반응이 많이 달랐는데, 왜 달랐을까를 삼풍 생존자 입장에서 잘 정리했다고 생각해요. 아직도 진행형인 세월호 사건에 대해서 ‘지겹다‘는 말이 나온다는 사실 자체가 슬프고 참담하기도 하고요. 공감능력. 이게 필요한 때가 아닌가 해요.
 
인류세 교유서가 첫단추 시리즈 44
얼 C. 엘리스 지음, 김용진.박범순 옮김 / 교유서가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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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옥스퍼드 영어사전에 '인류세'가 등재되었다고 한다. '현재의 지질학적 시대. 인간의 활동이 기후와 환경에 지배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간주되는 시대'라고 (261쪽)


이 책은 이러한 '인류세'에 대해서 개괄적으로 살펴보고 있는 책이다. 언제 인류세라는 말이 나왔으며, 어떤 의미로 사용되었고, 어떤 분야의 학자들에게서 논의가 되었는지, 이 말이 지니는 의미가 무엇인지를 살펴보고 있다.


따라서 '인류세'라는 개념에 대해서 궁금해 하는 사람에게는 꽤 유용한 책이다. 다만, 여러 논점들이 다뤄지고 있기에, 이 인류세라는 개념에 대해서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지금 우리가 어떤 행동을 해야할지에 대해서는 좀더 생각해야 한다.


아마도 옥스퍼드 사전에 등재된 뜻에 반대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또한 이 뜻에 부합하는 증거도 많다. 다만, 지질학적으로 인류세라는 지질시대 구분을 해야 할 필요가 있을까에 대해서는 많은 학자들이 논의 중이라고 한다.


지질학에서는 논의 중이지만, 사회학이나 정치학 또는 생태학에서는 '인류세'라는 개념은 인류가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에 대한 논의로 나아가고 있다. 왜냐하면 이대로 가면 인류가 지구에서 존재할 수 없게 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지구라는 별은 한계가 있고, 지금까지 무한증식을 해온 인류는 지구가 수용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서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류세라는 개념은 학문적인 관점보다는 실천의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


우리 삶을 지속하기 위한 실천의 출발점으로 인류세를 삼아야 한다. 이 책 말미에서도 주장하지만 인류세란 개념을 좋은 인류세로 만들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인류가 살기 힘들어진 상태로 지구의 변화를 초래한 시기로 '인류세'가 자리매김할 수도 있다.


어쩌면 이 책에서 하나의 제목으로 삼고 있기도 한 것처럼, 우리 인류는 '이카루스'처럼 자기 교만에 빠져 파멸로 점점 다가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카루스처럼 추락하지 않으려면 이미 자신이 한계를 넘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그 한계를 인식하게 하는 말이 바로 '인류세'란 말이다.


따라서 인류세란 말에는 인간이 지금처럼 살면 안 된다는, 자신이 살아온 방식을 바꾸어야 한다는 말이 담겨있다. 실천해야 한다는, 그래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절박함이 담겨 있다.


단순히 지질학적 시대구분이 아니다. 우리들 생존이 걸린 문제다. 이 책에서 다양한 학문 분야에서 논의된 인류세란 개념에 대해서 소개하고 있지만, 각 학문 분야에서도 지금처럼 나아가면 인류의 생존에 큰 위협을 받는다는 공통적인 위기의식이 담겨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 지금 과학기술의 발달로 인류세에 도달한 인류가 다시 과학기술의 발달로만 인류세의 위기를 극복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 우리 인류의 삶을 총체적으로 되돌아 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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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세: 인간의 시대
최평순.EBS 다큐프라임 〈인류세〉 제작팀 지음 / 해나무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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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자연기금의 2016년 보고서에 따르면 지구 전체 인구가 한국인처럼 산다면 3.3개의 지구가 필요하다." (303쪽)


과연 우리나라는 선진국이다. 개발도상국이라고 선진국을 따라가느라 정신없이 달려 왔는데, 어느 순간 뒤돌아보니 개발도상국들이 저 뒤에 있다. 경제 능력만이 아니라 지구 자원을 소모하는 면에서도.


다른 나라 원조를 받던 우리나라가 이렇게 선진국이 되었는데, 그렇다면 선진국에서 떨어져 나간 나라가 있던가. 없다면 또는 있더라도 선진국에 진입하는 나라보다 적다면, 이 얘기는, 지구에서 우리가 사용하는 자원이 더 많이 소모된다는 뜻 아닌가. 이런 상황에서 인류세라는 말이 나오게 되었따.


인류세란 말이 많이 쓰이고, 이 말이 지구가 위험에 빠졌다는 신호의 말로 읽히는데, 인류세라는 말이 만들어진 이유는 바로 인류에 의해서 지구의 역사가 바뀔 수 있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단지 생각이 아니라, 인류는 지구를 바꿔왔다.


이 책을 읽으면서 다양한 분야에서 인류세가 좋은 의미보다는 안 좋은 의미로 쓰이고 있음을 알게 되는데, 이는 지구 역사의 한 획을 긋는 인류의 활동이 지구를 파괴하는 쪽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인류세라는 말에는 공유지의 비극이라는 말이 포함된다. 공유지... 너나할 것 없이 함께 쓰는 공간. 그렇기 때문에 막 사용해서, 결국은 공유지를 파괴한다는 말. 공유지의 비극.


지구는 지구에 살고 있는 모든 존재에게 공유지다. 공유지이기 때문에 함께 써야 함을 인식하고 함부로 남용해서는 안되는데, 오히려 공유지이기 때문에, 내것이 아니기 때문에 막 쓴 결과 지구가 견디기 힘든 상황으로 몰아넣고 말았다. 그래서 지구라는 공유지의 비극은 인류세라는 다른 이름을 만들어내고 있다.


이 책은 교육방송 팀이 전세계를 돌아다니며 인류세에 들어선 우리들의 모습을 취재한 결과다. 또 이 책에는 붕인섬이라는 지구를 1억분의 일로 축소한 곳을 대상으로 한 장이 끝날 때마다 정리해주고 있다.


지구를 우리 눈에 들어오게 축소해서,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어떻게 변해왔으며, 그들이 생태계를 어떻게 바꾸고 있는지를 보여줌으로써 지구라는 생태계가 인류에 의해 어떤 변화를 겪었고, 또 얼마나 위기에 처해 있는지를 생각하게 해주고 있다.


지금, 인류에 대항할 생물이 지구상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무생물로 넓혀도 마찬가지다. 코로나-19로 인해 팬데믹 상황에 빠져 있기는 하지만, 이것이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지는 않는다. 오로지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는 존재는 인류밖에 없다.


그래서 이 책 결말 부분에 있는 이 말은 수정되어야 한다.


"인간과 생존권을 두고 다투던 상위 포식자가 사라진 이 풍경에서 우리는 이제 동물이 아니라 자연과 싸워야 한다." (314쪽) 


아니다. 자연과 싸워야 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인간과 싸워야 한다. 더 많은 지구가 필요할 정도로 소비하는 인간과 싸우지 않으면 지구라는 공유지는 파괴되고 만다. 우리 삶터를 우리 스스로 파괴하게 된다.


그러니 이제 인간은 다른 동물, 식물, 바이러스 등이 아니라 바로 인간 자신들과 싸워야 한다. 공유지를 둘러싼 갈등은 이제 지구상의 다른 존재들과 인간에게 있지 않다. 지구라는 공유지는 인간들끼리의 갈등, 또는 인간들의 삶 자체에 비극이 내재되어 있다.


공유지의 비극... 극복할 수 있다. 함께 살아가야 할 공간이라는 인식을 하고, 그 공간이 파괴되었을 때 모두가 살 수 없게 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그래서 우리들의 삶을 돌아보아야 한다. 지구라는 공유지에서 내 몫 이상을 소비하고 있지 않은가. 나는 나만의 이기심으로 지구라는 공유지를 더 사용하고 있지 않은가. 그렇게 우리들 삶을 바꾸어야 한다.


나만이 아니라 우리가. 하여 에드위드 윌슨이 주장했듯이 지구라는 공유지의 절반을 보호 구역으로 지정할 수 있어야 한다. 더 많은 소비가 아니라 더 적은 소비, 더 많은 활동이 아니라 더 적은 활동. 더 빨리가 아니라 더 느리게... 여유 있게 우리 삶을 즐길 수 있는 방법은 많다. 지구의 절반을 보호하고서도 인류는 생활을 해 나갈 수 있다. 


아니, 생활할 수 있도록 인류가 힘을 합쳐 지구라는 공유지를 보호해야 한다. 공유지의 비극은 특정한 장소에서만 일어나지 않는다. 이제 지구라는 공유지가 위기에 처해 있다. 그리고 그 위기를 우리는 기후 위기로, 각종 감염병으로, 사라지지 않는 미세 플라스틱, 또 우리 건강을 위협하는 미세 먼지 등으로 겪고 있다.


위기가 닥쳤을 때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능력, 또 극복하려는 활동을 하는 존재, 그 존재가 바로 '호모 사피엔스'다. 우리가 사피엔스, '지혜로운 인간'이라는 소리를 들으려면 지금 당장, 이 위기에 대처하는 행동을 해야 한다. 


이 책은 그 점을 여러 자료를 통해서 잘 보여주고 있다. 인류세라는 말이 부정적인 뜻에서 긍정적인 뜻으로 바꾸는 것, 그것은 바로 우리 인류의 다음 활동에 달려 있다.


인류세라는 말이 공유지의 비극을 가리키는 다른 이름이 되지 않게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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