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의 죽음, 시대의 고발 - 젊은 영혼들에 빚진 한국 현대사
안치용.바람저널리스트 지음 / 내일을여는책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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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이란 현재보다는 미래에 가까운 존재다. 가깝다는 말보다는, 현재를 살기보다는 미래를 사는 존재라고 하는 편이 좋겠다. 이들에게는 현재를 딛고 미래로 향해 나아가야 하는 권리가 있고, 의무가 있다.


하여 청년들은 현재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청년들의 죽음은 청년들이 앞으로 나아가게 하지 못하게 하는 일이다. 미래를 현재가 잡아끌어 주저앉히는 격이다. 그러니 기성세대들은 청년들이 죽음으로 현재에 머물게 해서는 안 된다. 기성세대에게는 청년들이 미래로 나아갈 수 있게 길을 보여주고 이끌어 줄 의무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기성세대들이 그런 의무를 다하지 않을 때, 청년들의 죽음이 미래의 좌절이 아니라, 미래로 나아가게 하는 디딤돌이 될 때가 있다. 그들의 죽음으로 인해 그동안 가려졌던 현재의 그늘들이 드러나고, 그늘을 제거하려는 움직임이 일어나게 된다.


이렇게 한 청년의 죽음은 개인으로는 좌절이고, 멈춤이고, 미래로 나아가지 못함이겠지만, 사회 전체적으로 보면 또 청년들로 보면 미래로 나아가는 발판이 되기도 한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전태일'이다. 전태일로 인해 우리나라 노동자들이 법에 있는 권리를 제대로 누리지 못하고 있음이 드러났고, 비록 오랜 세월이 걸렸고, 아직도 완전히 실현되지는 않았지만 노동자들의 권리를 보장하는 방향으로 계속 나아가고 있는 중이다. 이처럼 전태일이 외쳤던 '내 죽음을 헛되이 말라'는 말, 노동현장에서뿐만이 아니라 우리 사회 곳곳에서 이어지고 있다고 할 수 있으니 말이다.


책 제목에 '청년의 죽음, 시대의 고발'이라고. 개인의 죽음이 사회의 어두운 면을 보여주고, 그것을 극복하려는 움직임의 토대가 되기에 '고발'이란 말을 달았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의식을 지닌 인물로 이 책에 나오는 '윤상원'을 들 수 있다. 광주민주화운동에서 끝까지 도청을 지켰던 청년. 


그가 인터뷰에서 '오늘의 우리는 패배할 것이지만, 내일의 역사는 우리를 승리자로 만들 것'이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 (283쪽)


윤상원은 자신의 죽음이 우리 사회가 민주주의를 이루는데 밑거름이 되리라고 믿었고, 그의 죽음과 또 광주민주화운동에서 희생된 많은 이들의 죽음은 실제로 우리나라 민주주의의 초석이 되었다.

  

이렇게 미래에 대한 의식을 지니고 죽음을 맞은 청년도 있지만, 그런 의식이 없더라도 한 청년(여기서는 청년이라는 말이 특정한 성별을 지닌 젊은 사람을 의미하지 않는다. 이 책에서 청년은 특정한 성별이 아닌 그냥 젊은이를 가리키는 말이다)의 죽음이 사회의 문제를 드러내고, 그 문제를 해결하는 기폭제로 작용하는 경우도 있다.


미군에 의해 처참하게 살해당한 '윤금이'와 미군 장갑차에 깔려 숨진 '신효순, 심미선'은 우리에게 미군은 어떤 존재인가, 또 우리나라에 주둔한 미군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를 우리 사회가 생각하고, 개선하게 한 청년이었다고 할 수 있다.


'박흥순'을 통해서는 도시빈민들의 문제가 드러나고, '버스 안내양, 김경숙, 박영진, 문송면, 황유미, 황승원, 구의역 김 군, 자이븐 프레용' 등을 통해서는 노동자들의 열악한 노동환경과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문제를 드러내고, 아직도 이 문제는 진행 중이어서 우리가 관심을 지녀야 함을 보여주고 있다.


이밖에도 이 책에는 아직도 '사회적 합의' 운운하면서 자신의 주장을 명확히 내세우지 않거나 또는 전혀 용납할 수 없다고 강하게 주장하는 사람들이 당당하게 나서는, 성별에 따른 차별을 생각하게 한 청년들 이야기도 있고, 민주화 운동 과정에서 희생된 '김주열, 이한열'과 같은 청년들 이야기, 외국에 파견나간 노동자들 이야기도 있다.   


미래에 살아가야 할 청년이 현재에 머물게 되는 죽음. 그러나 그 죽음으로 현재의 민낯을 드러내고 현재를 미래로 이끌어가는 촉매역할을 하게 된 청년들.


읽으면서 눈시울이 붉어질 때 많다. 이렇게 많은 청년들에게 빚을 지고 있었구나. 먼 과거의 이야기인 줄만 알았는데, 최근에도 계속 이런 죽음들이 일어나고 있구나. 아직도 우리에게는 이 죽음들을 해결하지 못한 빚이 있구나. 이 빚을 갚아야 이들의 죽음이 과거에 머물지 않고 미래를 활짝 열어젖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하는 책이다.


그래서 이 책에서는 일제시대 윤동주부터 시작한다. 청년 윤동주, 끊임없이 자아성찰을 했던 시인이자 독립운동가. 이런 청년들은 우리를 돌아보게 만든다. 우리를 부끄럽게 하기도 한다. 그런 부끄러움으로 우리를,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를 좀더 좋은 쪽으로 만드는데 참여하도록 한다.


청년의 죽음을 다룬 이 책은 바로 여기서 시작한다. 단지 이런 죽음이 있었다 알리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이런 죽음으로 우리 사회는 어떤 빚을 졌는지를 생각하게 한다. 빚을 그냥 무시하고 넘어가면 더 큰빚이 우리를 짓누르게 된다. 여전히 청년 자살율이 세계에서 가장 높다는 사실이 이를 보여준다. 그러니 그 빚을 갚아야지 이런 사태를 벗어날 수 있다.


빚 갚음. 그것은 사회의 어둠을 보고, 어둠을 몰아낼 빛을 우리가 만드는 일에서 시작한다. 이미 우리는 촛불 경험이 있지 않은가. 


윤동주 시인의 시 '쉽게 쓰여진 시'에 나오는 '등불을 밝혀 어둠을 조금 내몰고 / 시대처럼 올 아침을 기다리는 최후의 나'와 같은 청년들을 이 책뿐만이 아니라 우리 역사 곳곳에서 만나지 않았던가. 그러니 우리가 그들의 빚을 빛으로 만들고자 한다면 잊지 말아야 한다. 잊지 않음에서 시작해서 그들이 원했던 세상을 향해 조금씩 나아가야 한다.


이 책은 그런 점에서 죽음으로 인해 별이 되어 우리에게 빛이 되어준 청년들을 기억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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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지만 없는 아이들 - 미등록 이주아동 이야기
은유 지음, 국가인권위원회 기획 / 창비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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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등록 이주아동은 공부할 권리는 있지만 살아갈 자격은 없는 모순된 현실에서 '있지만 없는 아이들'로 자라는 것이다.' (8쪽)


이것도 법이 바뀌어서 공부할 권리가 생겼다. 그 전에는 미등록 이주아동들은 학교에 가려고 해도 가기가 힘들었다. 배울 권리조차도 보장받지 못하고 지냈던 현실.


지금은 조금 나아졌다고 해야 할까. 그래도 학교를 갈 수 있게 하고 있으니. 그러나 학교까지만이다. 미등록 이주아동은 학교를 마치면 곧 출국해야 한다. 우리나라에 더 이상 살 수가 없다. 여기서 태어나 (또는 아주 어린시절에 들어와) 자랐기 때문에 삶터가 바로 우리나라인데, 이 나라를 떠나라고 한다. 떠나지 않으면 미등록 이주노동자가 된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불법체류자가 된다.


이미 이들 아동의 부모들은 불법체류자가 (이 말을 쓰지 말자고 이 책을 쓴 은유 작가는 말한다. 언어가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법을 어겼다고 하기 보다는 단지 등록이 안 되어 있다고 해야 한다고) 되었다. 그래서 단속에 걸리면 추방당한다. 아이들도 마찬가지다. 아이들에게 고등학교를 마칠 때까지 학습권을 보장했다고 하지만, 부모 없이 어떻게 학교를 마칠 수 있겠으며, 고등학교를 마치고는 부모의 나라로 가야 한다. 아는 사람 하나 없는, 말도 통하지 않는 그곳으로.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아이들은 부모들과 마찬가지로 미등록 이주아동 또는 미등록 이주노동자가 되어 버린다.


이 책 말미에 보면 최근에 법이 바뀌었다고 한다. 미등록 이주아동들에게 조금, 아주 조금 유리하게 바뀌었는데, 이게 유리하다고 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법무부는 2021년 4월 '국내출생 불법체류 아동 조건부 구제대책 시행방안'을 발표했다. (범부부 용어에서도 불법체류라는 말이 나오다니... 외국에서 온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인식을 잘 보여주는 용어다) 한국에서 태어나 15년 이상 한국에 체류한 미등록 이주아동들에 한해 체류자격을 심사받을 기회를 준다. (229쪽)


이 조항에 의하면 부모를 따라 아주 어릴 적에 온 아동은 해당되지 않는다.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에 부모를 따라와서 우리나라에서 초,중,고를 다녔다면 최소한 12년을 살게 된다. 그런데도 체류자격을 심사받을 자격조차 받지 못한다. 왜? 우리나라에서 태어나지 않았기 때문에...


또 우리나라에서 태어나 고등학교까지 다녔다고 하더라도, 영주권이 나오지 않고 겨우 체류자격 심사받을 기회만 주어진다. 뭐야? 만약 심사에서 통과되지 못하면 우리나라에서 살 수 없게 되거나, 아니면 부모들처럼 미등록 이주아동 또는 미등록 이주노동자가 되어 버려야 한다.


생각해 보라. 우리나라에서 태어나 (또는 아주 어릴 적에 와) 여기서 자랐다면 언어나 친구들이 모두 우리나라에 있다. 부모 나라는 외국이나 다름없다. 그런 곳으로 가야만 한다고 하면 어떤 아동들이 가려고 하겠는가. 가려는 마음도 없겠지만 가도 우리나라에서보다 잘살 수가 없을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법무부에서 발표한 이 대책도 보완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이 책에는 이런 미등록 이주아동들의 이야기, 그리고 이들을 돕는 사람들 이야기, 부모 이야기가 함께 실려 있다. 운 좋게(?) 비자를 받은 아이도 있지만, 비자를 받지 못해(비자다. 영주권이 아니라) 미등록 이주아동으로 살아가야 하는 아이도 있다.


한 사람 한 사람 이야기를 읽으면서 누구보다도 국어(한국어)와 역사(한국역사)를 좋아하고 공부도 잘하지만 대학에는 갈 수 없는 아이, 비자가 없어서 통장도 만들 수 없는 아이, 그래서 비행기도 탈 수 없고, 공연장에도 갈 수 없는 아이의 이야기가 가슴을 때린다.


정말로 '있지만 없는 아이'가 되어버린 그 아이들의 이야기에 '선진국'에 진입했다고 자랑스러워 하는 우리나라의 모습에 고개를 갸우뚱하게 된다.


선진국이라면 적어도 사람을 등록, 미등록으로 나누기 전에 그들이 살 수 있게 해주어야 하지 않나라는 생각. 후진국에서 개발도상국이 되었다가 이제는 선진국이 되었다면, 노블레스 오블리쥬라는 말이 사람에게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나라에도 적용되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을 했다.


적어도 우리나라가 선진국이라면 사람을 국적으로 나누기 이전에 사람이라는 공통점을 먼저 보고, 사람으로서 누릴 수 있는 권리를 인정해 주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지 않을까. 우리나라에서 태어난 사람이라면. 또 학교에 들어가기 전에 아주 어린 나이에 부모를 따라와 우리나라에서 고등학교까지(이제는 고등학교까지가 거의 무상교육이니) 다녔다면 우리나라에서 살아갈 권리를 주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한다.


그것이 선진국이 지녀야 할 의무 아닐까. 여전히 '있지만 없는 아이들' 이 많다고 한다. 수십 만에 해당한다고 한다. 인구 절벽을 실감하고 있는 우리나라에서 아직도 국적으로 사람을, 그것도 아동들을 나눌 필요가 있을까?


국적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게 해야 하지 않을까? 미국에서 태어났으면 미국 시민권을 주는 경우와 같이 그런 아동들에게는 우리나라 영주권을 주어야 하지 않을까? 국적은 논외로 하더라도 말이다.


이렇게 '미등록 이주아동 또는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사회의 품격이 달라지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한다. 우리 사회의 품격이 높아지려면 이들을 먼저 사람이라는 관점에서, 사람이 지녀야 할 권리를 보장해주는 쪽으로 정책이나 법안을 마련해야 한다. 


그래야 우리도 진정한 선진국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그 사회의 품격은 가장 낮은 곳에 있는 사람을 어떻게 대하느냐에 따라 판명 된다. 그들을 지칭하는 언어에서도 사회의 품격이 나오고. 앞에서 '불법체류'라는 말을 썼지만, 이 말에는 이미 법을 어긴이라는 의미가 있으니, 이런 말 대신에 '미등록 이주'라는 말을 쓰자고 한다. 찬성한다. 


단지 등록이 안 되어 있을 뿐이다. 그리고 우리는 이들이 등록할 수 있도록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 그래서 '있지만 없는' 이 아니라 '있으면 있는' 존재로 살아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 책은 그렇게 나아가도록 우리를 이끌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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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에 대한 연민 - 혐오의 시대를 우아하게 건너는 방법
마사 C. 누스바움 지음, 임현경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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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오의 시대를 우아하게 건너는 방법'이라는 말이 책 표지에 적혀 있다. 혐오의 시대. 상대가 매우 잘못했고, 그 잘못을 비판했음에도 고치지 않았을 때 미움이라는 감정이 싹튼다. 미움이라는 감정은 원인이 있다. 그 원인이 결과로 이어졌다고 할 수 있는데...


혐오는 원인을 명확히 찾아내기가 힘들다. 어떤 식으로 감정에 자리잡아 근거를 제시하지 않고 그냥 나온다. 근거없는 미움. 아니 사랑 없는 미움이라고 해야겠다.


비판과 비난이라고 하면 혐오는 비난이다. 그냥 비난할 뿐. 특히 상대를 깎아내리거나 상대가 몰락했으면 하는 감정으로 하는 말이나 행동이 혐오다.


혐오의 말, 혐오 행동이 앞설 때 이성은 마비된다. 이성이 잠들 때 괴물이 눈뜬다고 했던가. 이 비슷한 말이 고야 그림에 있다고 기억하는데, 혐오 앞에 이성은 자리잡을 수가 없다. 그만큼 혐오는 이성으로도 논리로도 이야기가 되지 않기 때문에 고치기 더 힘들다.


왜냐하면 자신이 혐오 발언이나 혐오 행동을 한다고 생각하지 않고 그냥 당연하다는 듯이 행동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혐오는 타인의 관점으로 다른 대상을 볼 수 없는 사람들이 주로 지니게 된다.


자신을 다른 사람의 눈으로 한번이라도 본 사람은 남들을 자신만의 눈으로 재단하지 않는다. 그런 재단이 얼마나 위험한지 안다. 그래서 그들은 혐오 발언이나 행동을 잘 하지 않는다.


혐오가 판치는 사회는 이렇게 성찰이 없는 사회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성찰 없는 사회가 되었을까? 그것은 바로 '두려움' 때문이다. 어떤 두려움? 자신이 잘살지 못할 것 같다는 두려움. 자신이 지니고 있는 것을 다른 존재들이 빼앗아 갈 거라는 두려움. 그런 두려움이 자신을 더욱 꽁꽁 닫아걸게 만들고, 남들을 이해하려는 마음을 막아버린다.


그래서 두려움은 혐오를 부추기고, 사회적 갈등을 유발하여 사회 통합을 가로막는다. 이런 두려움에 대한 이야기를 이 책의 저자인 마사 누스바움은 여러 근거들을 통해서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다.


이 책 원래 제목은 '두려움의 군주제:우리의 정치 위기에 대한 철학적 고찰'이라고 한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두려움은 자유로운 사고를 가로막는다. 자신이 결정하기보다는 다른 존재가 결정한 것에 따르게 된다. 그래서 군주제다. 이런 사회는 닫힌 사회다. 서로가 서로에게 장벽을 쌓고 교류를 하지 않는. 그러면서 근거도 없는 비방, 혐오, 폭력을 행사하는 사회.


미국 사회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어디 미국 사회뿐만이겠는가? 이 책에 나온 수많은 혐오들은 우리 사회에서도 일어나고 있으니... 남 나라 일이 아니라 바로 우리 일이기도 하다.


문제는, 그런 혐오가 왜 일어나고 있으며, 어떻게 일어나고 있는지는 대다수의 학자들이 분석하고 알려주고 있다는 데 있다. 이미 우리는 혐오가 만연한 사회라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다. 그런데도 혐오는 사라지지 않고 있다.


왜? 바로 어떻게 혐오 없는 사회를 만들어갈 것인가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마사 누스바움이 제시하는 방향은 바로 여기에서 시작한다. 분석은 이제 됐다. 실천해야 한다.


가정에서, 친구들과의 우정에서 시작한다고 해도, 사회가 불안하면 혐오는 사라지지 않는다. 사회의 불안은 개인 삶의 불안정으로, 좋은 삶을 살기 힘들다는 두려움을 유발하기 때문이다. 두려움이 이성을 마비시킨다고 했으니, 두려움을 벗어나는 가장 쉬운 길로 책임을 남에게 전가하는 방식을 택하기 쉽다.


그러므로 사회가 두려움을 없애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 누스바움은 '역량 접근법'을 제시하고 있다. '최소한의 정의가 존재하는 사회라면 모든 시민이 최소한의 기본 권리를 누릴 수 있는 기회를 보장받아야 한다'(286쪽)고 한다. 그 열가지 역량은 다음과 같다. 자세한 내용은 이 책 286쪽-288쪽을 참조하면 된다.


1. 생명, 2. 신체 건강, 3. 신체 보전, 4. 감각, 상상, 사고, 5. 감정, 6. 실천 이성, 7. 관계, 8. 인간 이외의 종, 9. 놀이, 10. 환경 통제


이것들이 보장되는 사회라면 두려움에서 어느 정도는 벗어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그리고 두려움에서 벗어난 사회라면 상호 존중, 이해, 협력이 이루어지는 사회가 될 것이라고 한다.


그러면서 미국에서 이런 일들이 성공하기 위해서 모든 사람들에게 의무적으로 어느 기간 동안은 공공 복무를 하게 해야 한다고 한다. 군대조차도 의무가 아닌 미국에서 누스바움은 공공업무에 모든 사람이 종사해 봄으로써 공동체에 대한 생각, 공공선에 대한 관점을 확립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한다.


지금은 좀 실현불가능한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지만, 공공업무에 모두가 종사하지 않더라도 누스바움이 말한 교육이나 예술을 통해서, 또 지역 사회의 활동을 통해서 어느 정도는 공공선에 대한 인식과 자세를 지니게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은 한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지녀야 할 희망적 자세 아닌가 한다. 지금 우리는 중요한 선거를 앞두고 후보자 선출을 위한 여러 활동들을 만나고 있다. 이때 우리가 어떤 후보를 선택해야 할지 그것은 개인의 판단이겠지만, 적어도 나는 우리에게 '두려움'을 주는 후보가 아니라 '희망'을 주는 후보, 혐오 없는 사회를 함께 만들어가자고 하는 후보를 선택하고자 한다.


그래야 우리 사회가 타인을 혐오하는 사회가 아니라 타인에게 연민을 지닌, 함께 살아가는 사회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으므로. 


다른 존재와 함께 살아갈 수밖에 없는 존재인 우리에게 어떻게 그들과 지내야 하는지, 어떤 생각이나 행동은 하지 말아야 하는지를 생각하게 해주는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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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1-10-26 09:3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혐오의 근원에 두려움이 있다는 말 ! 공감합니다.

kinye91 2021-10-26 10:26   좋아요 1 | URL
두려움으로 인해 이성이 마비되고, 합리적인 판단보다는 다른 사람의 판단에 따르기 쉬우니, 혐오를 통해 자신들의 유대감을 형성한다는 누스바움의 주장이 타당하다고 생각해요. 우리 사회가 어떤 두려움을 지니고 있는지 파악한다면, 혐오 사회로 가지는 않겠지요.
 
- 어느 세월호 생존자 이야기
김홍모 지음 / 창비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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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삼풍 생존자입니다]를 읽으면서 느꼈던 먹먹함이 이 책을 보면서 다시 밀려왔다. 아직도 진실이 밝혀지지 않은 사건.

 

왜 그들이 차가운 물 속에서 죽어가야 했는지, 7년이 지나가는 데도 여전히 진실은 미궁 속에 있다. 미궁을 빠져나올 생각을 못하고 있다. 세월호 사건에 대한 아리아드네의 실이 있지만, 그 실을 일부러 끊어버리지는 않았는지, 도무지 미궁 속에서 나오지 않고 있으니...

 

정권이 바뀌고 다시 또다른 정부를 구성하기까지 얼마 남지 않은 시간, 세 정부를 거치면서 세월호 사건이 점차 잊혀져 가고 진실은 그렇게 어둠 속에 묻혀버리고 말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는 안되는데... 정말로 그래서는 안되는데... 어째서 제대로 진실을 규명하지 않을까? 그렇게 죽어간 사람들이 영문도 모르고 죽어갔는데, 말을 잘 들었다는 이유로 죽었는데, 정작 그들이 억울함을 풀어줄 국가는 손을 놓고 있다는 생각이 드니...

 

세월호 사건에서 살아남은 사람들, 생존자들, 그들이 엄청난 고통을 받고 있다는 이야기는 들은 적이 있는데, 그 아픔이 얼마나 심한지를 이 책을 통해서 느낄 수 있다.

 

[저는 삼풍 생존자입니다]를 읽을 때와 비슷하지만, 그때와는 다르게 더 먹먹하게 다가오는데, 그 이유는 진상 규명이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고, 생존자들에 대해서도 나라에서 제대로 해주고 있단 생각이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제주도 생존자를 인터뷰해서 만화로 표현해 낸 이 책은, 세월호 생존자들이 겪는 고통을 잘 보여준다. 생존자 당사자만이 아니라 생존자의 가족들도 엄청난 고통을 받고 있음을 생존자, 딸 안나, 딸 나연, 부인 이렇게 네 명의 시각으로 내용을 전개함으로써 잘 보여주고 있다.

 

한 사람의 고통으로 끝나지 않고 가족 모두의 고통이 되는데, 이를 치유하는 첫단계는 진실 규명이다. 진실을 밝히고 그에 대한 치유를 시행해야 하는데, 첫단계가 이루어지지 않았기에 생존자들과 그 가족, 그리고 희생자들의 가족들이 여전히 고통받고 있는 현실.

 

이 책과 더불어 김탁환이 쓴 [거짓말이다]를 읽으면 좋다. 두 책 모두 세월호에서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온몸을 바친 사람들이 보람보다는 더 많은 고통 속에 빠져들어 있음을 느끼게 한다.

 

세월호 사건을 해결하는 아리아드네의 실은 있다. 이 만화를 보면 그 실을 찾아야만 한다는 생각이 든다. 반드시 찾아야 한다. 그래서 이 고통이 사그러들게 해야 한다. 더 이상의 시간이 가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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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소 사회의 종말 - 인권의 눈으로 기후위기와 팬데믹을 읽다
조효제 지음 / 21세기북스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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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의 눈으로 기후위기와 팬데믹을 읽다'라는 작은 제목을 달고 있다. "탄소 사회의 종말'이라고 제목을 달았는데, 이것은 저자의 바람이라고 할 수 있다.


탄소 사회가 지속되면 기후위기가 더 심해지고, 그 결과 인류가 살아갈 수 없는 지구가 될 가능성이 많다. 인류가 살 수 없는 지구에서 어떻게 인권이 이루어지겠는가?


살아갈 수 있는 사회가 인권의 기반이라면, 살아갈 수 없는 사회로 변해가게 하는 것은 인권 침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니 기후위기는 인권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또한 팬데믹도 마찬가지다. 팬데믹은 전지구적으로 일어나지만, 그 위험은 개인적으로 감내할 수밖에 없다. 사회적 빈곤층일수록 팬데믹에 취약해질 수밖에 없으니, 팬데믹 또한 인권 침해에 해당한다.


그럼에도 기후위기를 환경문제로만 보고 인권의 문제로 보지 않았던 경우가 많은데, 최근에는 기후위기와 인권을 연결하여, 기후위기, 팬데믹을 인권의 문제로 보게 되었다고 한다. 여기에 더해 이러한 문제들은 인권의 문제로 보아야만 한다고 한다.


왜 인권의 문제로 보아야 하는가? 인권으로 접근하면 강제성을 띨 수 있다고 한다. 국가가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일이 아니라 인권 보호 차원에서 반드시 해야만 하는 일이 된다고 한다. 그러니 기후위기나 팬데믹을 인권으로 접근하면 사회의 변화에 어떤 책무성을 부여할 수 있다고 한다.


이 책은 이렇게 탄소 사회로 인해 일어난 기후 위기, 팬데믹을 인권의 문제로 보아야 함을 여러 근거들을 통해 제시하고 있다. 코로나 19로 인해 우리 역시 인권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음을 몸으로 느끼고 있지 않은가.


이 책은 그런 점에서 의미가 있는데, 지금 이대로 가다가는 인류가 살아가기 힘든 지구로 되어갈 거라는 위기의식이 있다.


인류가 살아남기 위해서도, 또 인류만이 아니라 지구에 존재하는 다른 모든 존재들이 살아남기 위해서도 탄소 사회는 종말을 기해야 하고, 기후 위기에 전지구적으로 대처하면서 개인적인 실천도 해야 한다고 한다.


결과 중심주의 운동만이 아니라 원칙을 이해하고 관철시키려는 운동도 필요하다고 하는데, 인권은 결과도 결과지만 원칙에 있어서 철저하기 때문에 환경과 인권이 결합될 수밖에 없다고 한다.


결국 환경은 인권이다. 또한 인권에는 사회적 책임도 있다. 그러므로 현재 우리만이 살아가는 사회를 추구해서는 안된다고 한다. 인권은 수평적이자 수직적이기 때문에, 공간과 시간이 아우러져야 한다.


전지구적으로, 그리고 과거-현재-미래가 한데 어우러지게 해야 한다고 한다. 이것이 인권의 관점에서 본 탄소 사회의 종말이다.


책의 마지막 부분에 탄소 사회의 종말, 아니 정의로운 전환을 위해서 해야 할 여섯 가지 제안을 하고 있는데, 전환을 위한 관점 세우기, 언론-미디어의 역할, 사회적 동력, 젠더 주류화, 인권담론, 민주주의의 재발견을 제시하고 있다.


지금 우리는 코로나19만이 아니라 지구온난화를 비롯한 기후위기를 몸소 겪고 있다. 이론으로만 존재하지 않고 실제 우리 삶에 이미 기후위기가 닥쳤다고 할 수 있다.


그러니 미래로 미뤄서는 안 된다. 이 기후위기는 미래세대가 해결해야 할 문제가 아니라 현세대가 해결해야 할 문제다. 인권으로 기후위기에 접근해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저자의 제언, 곰곰 생각하고 실천해야 한다. 그래야 우리도 살고 미래 세대로 살 수 있다. 기후위기를 바로잡는 행동, 더이상 미뤄둘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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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1-11-05 16:4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리뷰 당선 축하드려요~

kinye91 2021-11-06 15:39   좋아요 2 | URL
감사합니다.

초딩 2021-11-07 11:2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 축하드립니다~

kinye91 2021-11-07 11: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