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벽의 시간 - 결국 현명한 자는 누구였을까
안석호 지음 / CRETA(크레타)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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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말미에 코로나19가 나온다. 이 코로나19로 우리는 자연스레 장벽을 쌓았다. 질병으로부터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어쩌면 앞으로 이런 감염병으로 인한 장벽이 많이 생길지도 모르고, 장벽이 일상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마저 든다.

 

세계화라고 해서 서로가 쉽게 교류하게 된 세상에서 오히려 그러한 교류가 서로에게 장벽을 쌓게 만들고 있는데, 이런 장벽은 근래에 생기지 않았다. 인간을 서로 분리시키는 장벽은 예전부터 존재했다.

 

물리적인 장벽만이 아니라 심리적인 장벽도 많은데, 이 책에서는 눈에 보이는 장벽 3개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우리들 생활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무역장벽이라는 장벽을 이야기하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눈에 띄는 장벽은 지금 세 개다. 이 책에 언급된 4개 장벽 중에 베를린 장벽은 이제 무너졌기 때문이다. 베를린 장벽에 대해서 잘못 알고 있었다. 아니 사실 별다른 생각이 없었다. 독일에 가보지도 못했고, 그냥 베를린을 두 진영이 나누어서 점령했으니 우리나라 분단 정도로 생각하고 있었다.

 

한데 웬걸, 베를린이 동독 영토 안에 있었다니. 왜 그 생각을 한번도 하지 못했을까? 서베를린으로 동독 사람들이 넘어가기가 너무도 쉬운 구조였으니... 동독 측에서 베를린 장벽을 건설했는데, 그 이유는 서독의 침공으로부터 방어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동독 사람들이 서독으로 넘어가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였다니...

 

사람들의 교류를 억지로 막은 결과, 베를린 장벽은 무너지고 독일은 통일되었다. 자, 장벽으로 누가 이득을 보았는가? 자기 나라 국민들이 넘어가지 못하게 장벽을 세운 사실은, 그 나라가 국민들에게 인정을 받지 못함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할 수 있다.

 

누가 이득인가? 당연히 서독이 이득이다. 자기 쪽으로 넘어오지 못하도록 건설된 장벽은 서독이 우월하다는 사실을 만천하에 공표한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무너진 베를린 장벽과 달리 여전히 건재한 장벽이 세 개 있다. 하나는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통제하기 위해 만든 장벽, 또 하나는 미국과 멕시코를 가로지르는 장벽, 그리고 마지막으로 우리나라 남과 북을 가로막고 있는 휴전선이라는 장벽.

 

갈등이 여전하고, 남과 북이야 이 장벽을 통해 사람들이 이동을 하는 경우가 거의 없으니 논외로 친다면, 가지구와 서안지구에 설치된 이스라엘 장벽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삶을 엄청나게 옥죄고 있다.

 

친척들을 만나러 가기 위해서도, 가기 위해서도 온갖 절차를 거치고 많은 시간을 보내야만 통과할 수 있는 장벽. 거기에 툭하면 봉쇄되는 장벽이라니. 멕시코 장벽은 어떤가? 멕시코인을 비롯한 남미 사람들이 살기 위해서 이 장벽을 넘어 미국으로 넘어가려 한다. 장벽을 통과해 미국에 도착하기 전에 죽어간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이렇게 사람들의 삶을 잘라놓고도 건재한 장벽이 왜 존재해야 할까?

 

그것은 인간이 이 유한한 지구에 내 땅, 네 땅이라고 구획을 정했기 때문이다. 자신들이 경계를 정하고 다른 사람들을 배척하기 때문이다. 본래 없던 경계를 나누고 이동을 제한하고, 그것을 확실하게 하기 위해 장벽을 설치했다. 이스라엘도, 미국도, 남과 북도 그런 이유다.

 

자신들이 안전하고 풍요롭게 살기 위해서 장벽을 설치한다고 하지만, 그 장벽은 나와 남을 가르고 남을 위협하기에 결국 나에게 위협으로 돌아온다. 무역장벽도 마찬가지다. 함께 어울려 살아갈 수밖에 없는 지구에서 무역 장벽을 세우면 결국 자신들도 피해를 입게 된다.

 

물리적인 장벽도 마찬가지고... 그런 장벽의 역사를 살펴보고 있는 책이다. 읽으면서 김남주 시인이 쓴 '삼팔선은 삼팔선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라는 시가 떠올랐다. 이 장벽들은 특정한 어떤 장소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이 지구에서 살아가는 우리들 모두에게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장벽들이 사라질 때에야 인류는 경계를 지닌, 장벽을 쌓은 특정한 집단들이 아니라 모두 하나가 되는 인류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김남주 시인의 시에서 삼팔선을 장벽으로 바꿔보면서 이 책에서 말하는 장벽에 대해 더 생각해 보면 좋겠다.

 

삼팔선은 삼팔선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김남주

 

삼팔선은 삼팔선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당신이 걷다 넘어지고 마는

미팔군 병사의 군화에도 있고

당신이 가다 부닥치고야 마는

입산금지의 붉은 팻말에도 있다

가까이는

수상하면 다시 보고 의심나면 짖어대는

네 이웃집 강아지의 주둥이에도 있고

멀리는

그 입에 물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죄 안 짓고 혼줄 나는 억울한 넋들에도 있다

삼팔선은 삼팔선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낮게는

새벽같이 일어나 일하면 일할수록 가난해지는

농부의 졸라 맨 허리에도 있고

제 노동을 팔아

한 몫의 인간이고자 고개 쳐들면

결정적으로 꺾이고 마는 노동자의

휘여진 등에도 있다

높게는

그 허리 위에 거재(巨財)를 쌓아올려

도적도 얼씬 못하게 가시철망을 두른

부자들의 담벼락에도 있고

그들과 한패가 되어 심심찮게

시기적절하게 벌이는 쇼쇼쇼

고관대작들의 평화통일 제의의 축제에도 있다

뿐이랴 삼팔선은

나라 밖에도 있다 바다 건너

원격조종의 나라 아메리카에도 있고

그들이 보낸 구호물자 속의 사탕에도 밀가루에도

달라의 이면에도 있고 자유를

혼란으로 바꿔치기 하고 동포여 동포여

소리치며 질서의 이름으로

한강을 도강(渡江)하는 미국산 탱크에도 있다

나라가 온통

피묻은 자유로 몸부림치는 창살

삼팔선은 감옥의 담에도 있고 침묵의 벽

그대 가슴에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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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흑역사 -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고 똑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톰 필립스 지음, 홍한결 옮김 / 윌북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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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제목을 보는 순간, '다윈상'이 생각났다. 한 해 어리석은 행동을 한 사람에게 주어지는 상. 그가 한 어리석은 행동이 다른 사람에게 경각심을 주어 인류가 진화하는데 도움을 주었기에 주어지는 상이라고 하는데...


이 상 수상자들은 대부분 자신들이 저지른 어리석은 행동으로 인해 살아서는 받지 못한다는, 살아 있어야만 받는 노벨상과 대척점에 있는 상인데... 이 상은 인류라기보다는 개개 인간의 행동에 중점을 두고 있는데, [인간의 흑역사]라는 제목을 단 이 책은 개개 인간보다는, 그 인간들이 한 행동이 인류 역사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쳤는지를 살펴보고 있다.


다윈상을 인류 역사로 확대했다고 보면 되는데, 그럼에도 왜 인류는 이런 실수를 반복할까 라는 의문을 제기하지만, 그 이유는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인간 문명이 발생하는데 농경이 큰 공헌을 했다고 하지만, 반대로 인류에게 온갖 질병과 재앙을 몰아다 준 행위 역시 농경이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으니... 인간이 모여 살기 시작하는 데서 인류의 흑역사는 시작되었는지도 모른다.


과거부터 현재까지, 인류 역사를 훑으면서 실수라고 할 만한 일들과 사람을 등장시키고 있는데, 이 중에서 우리가 반복하지 않는 실수도 있지만, 여전히 반복하고 있는 실수도 있음을 알려주고 있다.


그 중에서 무서운 실수는 바로 무기다. 무기를 개발함으로써 전쟁을, 살상을 막을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지만, 오히려 더 많은 전쟁과 더 많은 살상이 일어나고 만 사실들... 그런 살상들에 '부수적 피해'라고 이름 붙이며 마치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식으로 언어를 통한 진실 왜곡을 하고 있는 일들이 반복되고 있음을... [인간의 흑역사]에서 확인할 수 있다.


특히 지속되는 실수는 '환경'과 '과학' 분야에서 일어난다. 인간은 살기 위해서 환경을 변형시킬 수밖에 없다. 한 생명체의 생존은 다른 생명체의 죽음과 연결되는데, 그렇다고 자신이 생존하는데 꼭 필요하지 않는 생명조차도 멸종시키는 일들을 반복하고 있는 인간. 


강의 흐름을 바꾸어놓아 결국 재앙에 빠지게 되는 실수들... 머나 먼 곳에 있는 생명체들을 들여와 한 지역의 생태계를 교란시키는 일들... 지금도 무한 반복하고 있는 일 아니던가. 이쯤되면 실수라고 할 수가 없다. 실수가 아니라 의도다. 일부러 그렇게 한다. 왜? 이윤이 생기니까.


이런 이윤때문에 생긴 흑역사는 바로 '납'이다. 자동차 엔진 노킹을 방지하기 위해 '에탄올'로도 충분했지만, 이윤이 생기지 않는다는 이유로 몸에 해롭다는 결과가 나와 있음에도 납을 첨가제로 섞는 행위를 했던 인간들.


지금은 납은 쓰지 않고 있지만, 아직 결과를 알 수 없는 화학물질을 여전히 쓰고 있다. 유해성이 입증되지 않았다고... 그렇게 환경을 넘어서 '과학' 분야에까지 인간은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을 한다. 결과에 연연하지 않고.


결국 '환경과 과학' 분야에서 지속적으로 반복되는 인간의 실수로 인해, 지구는 갈수록 살기 힘들어지고 있는데도 그것을 다시 '과학'의 힘으로 극복할 수 있다고 하니...


이 책은 이런 과학의 발달로 인류가 어쩌면 과거에 유행했던 질병을 다시 불러올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2000년대에 시베리아 동토층이 녹으면서 탄저균이 활동해 탄저병으로 죽은 사람, 죽은 동물들이 나타나고 있듯이.


예전에 퇴치했다고 믿었던, 어쩌면 지구에 묻혀버렸던 질병들이 다시 창궐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한다. 그렇게 '과학'의 발달로 인해 '환경'은 파괴되고, 환경이 파괴되니, 기존 과학으로는 당장 치유할 수 없는 질병들이 나타나게 된다. 코로나19 역시, 그간 인간이 해왔던 실수들이 반복됨으로써 생겨난 질병 아니던가.


그러니 이 책에는 역사를 공부해야 하는 이유가 뚜렷이 나타나 있다. 인류가 멸망하지 않기 위해서, 지금까지 해왔던 인류가 인류를 살기 힘들게 하던 역사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다. '다윈상'을 통해 바보짓을 하지 않게 경각심을 심어준다면, 이 책은 인류 역사를 통해서 인류를 위기에 빠뜨렸던 일들을 알려줌으로써 그런 일을 반복하지 않도록 경고하고 있다.


지금은 '과학'에 대한 맹신을 버려야 할 때... 과학으로만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이 나타나고 있음을... 우주 시대를 개척하고 있는 인간이 그 결과로 지구 밖으로 나갈 수 없는 상태에 이르게도 될 수 있음을 알려주고 있으니. 최근 중국이 우주정거장을 건설한다고 쏘아 보냈던 우주선 일부가 지구로 떨어지는 일을 생각해 보라. 지구로 떨어지는 문제도 심각하지만, 지구 궤도를 따라 수많은 우주 쓰레기들이 엄청난 속도로 돌고 있다면, 그것을 벗어나는 일도 매우 어렵게 된다고 한다.


이렇듯 이 책은 인간 역사를 통해 흥미진진한 사건들과 인물들을 다뤄줌으로써 재미 있게 읽을 수 있도록 했는데, 단지 재미에서 그치지 않고 지금 우리 생활을 돌아볼 수 있게도 해준다. 


이런 '흑역사'를 안다면 반복하지 않으려 노력하기 때문이다. 참으로 많은 인류 역사를 통해서 어리석은 짓이라고 할 수 있는 일들이 많이 나와 있으니, 읽으면서 지금 우리가 그런 일을 혹시 반복하고 있지 않은지 생각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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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빈치가 자전거를 처음 만들었을까 - 가짜 뉴스 속 숨은 진실을 찾아서
페터 쾰러 지음, 박지희 옮김 / 한국경제신문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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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 뉴스 속 숨은 진실을 찾아서'라는 글이 표지에 실려 있다. 뉴스라고 하면 사실을 전달한다고 여기기 쉬운데, 뉴스에서도 사실을 얼마나 많이 왜곡하는지는 우리가 이미 많이 겪고 있다.

 

수많은 사실들을 어떻게 배치하느냐에 따라서도 사실이 잘못 전달될 수 있는데, 악의를 지니고 왜곡한 사실을 파악하기는 매우 힘들다. 그것도 언론에 발표가 되면.

 

하지만 언론에 발표된 일들이 모두 사실이라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언론에 발표된 일들에 대해 꼼꼼하게 판단하는 습관을 지녀야 한다.

 

이 책을 읽으면 더더욱 그렇다. 우리가 그동안 잘못 알고 있던 사실들에 대해서도 알려주고 있는데, 이미 그것들은 잘못된 사실로 판명되었음에도 한번 퍼진 소문을 바로잡기는 쉽지 않다. 그러므로 처음부터 비판적인 읽기를 할 필요가 있다.

 

이 책은 처음 미국의 전 대통령이었던 트럼프로부터 시작한다. 그가 한 말 중에 많은 말들이 사실이 아님에도 사람들은 트럼프의 말을 믿고 싶어했다는 것. 즉 사람들은 자신들이 보고자 하는 것을 보고, 믿고자 하는 것을 믿으려는 경향이 있다는 것.

 

그러므로 그러한 경향에 부합하는 뉴스들이 난무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이런 뉴스만이 아니라 역사에서도 사실공방이 지금까지도 벌어지고 있는 경우가 많으니, 한번 잘못된 사실을 전달하면 그것에 대해서는 더 많은 사실들이 만들어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책에 나오는 잘못된 사실에는 과학적 연구도 많이 포함된다. 특히 유물을 발견해서 발표하는 경우에 수많은 잘못된 사례들이 있음을 알려주고 있다. 유물뿐만이 아니라, 상대를 몰락시키기 위해 악의적으로 퍼뜨리는 소문들이 많았음도 잘 보여주고 있다.

 

이렇듯 너무도 많은 날조된 사실들이 열거되어 있어서 참 세상 못 믿겠다는 생각이 들지만, 이 책은 우리에게 신문이나 방송에서 다루고 있는 일들이 모두 사실이라고 믿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다.

 

우리 자신이 사실을 판단할 수 있는 자료들을 찾아내려는 노력을 해야 하고, 또한 발표된 날조된 일들은 가만히 살펴보면 앞뒤가 맞지 않는 일들이 많이 있음을 찾아내야 함을 알려주고 있다.

 

지금 우리 사회도 한 가지 일을 두고 서로 다른 방향에서 뉴스가 나오기도 한다. 팩트 체크라고 사실을 확인하는 방송도 있지만, 그들 역시 자신들의 처지에서 확인을 한다. 세상에 늘 팩트 체크는 있어왔다. 다만 어느 관점에서 이루어지느냐에 따라 그것을 믿거나 믿지 않거나 했을 뿐이다.

 

그래서 우리 자신이 사실을 꼼꼼하게 확인하게 할 필요가 있음을 생각하게 해주고 있다. 아마도 이 책을 읽으면 그동안 세계적으로 많이 알려졌던 가짜 뉴스들을 만나볼 수 있을 것이다. 더 이상 그런 가짜 뉴스에 속지 않아야 하고, 우리들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생각하게 해주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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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태어난다면, 한국에서 살겠습니까 - 한강의 기적에서 헬조선까지 잃어버린 사회의 품격을 찾아서 서가명강 시리즈 4
이재열 지음 / 21세기북스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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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론조사를 하는 질문과 비슷하다. 


"다시 태어난다면, 한국에서 살겠습니까"


그런데 질문이 좀 이상하다. 우리는 보통 태어난 나라에서 살 수밖에 없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자신이 태어난 나라에 살지 않고 다른 나라에 사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그러니 이 질문에 답하기는 어렵지 않다. 당연히 한국에서 살 수밖에 없다.


이렇게 답해야 한다. 그렇지만, 아마도 많은 사람들은 "아니오"라고 답할 수도 있다. 자신이 태어난 나라를 벗어날 수 없음에도.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산다는 일이 얼마나 힘든지 온몸으로 겪었으니까. 다시는 이런 나라에 살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으니까... 질문을 바로 하려면 이 책 제목이 된 질문은 이렇게 바뀌어야 한다. 만약 진짜로 한국에서 살고 싶은지를 묻는다면...


"다시 한국에 태어나 살고 싶습니까"


이 질문에 많은 사람들은 "아니오"라고 답할 수도 있다. 지금 우리 사회를 "헬조선"이라고 하는 사람이 많으니... 특히 MZ세대(1980년대 초반부터 2000년대 초반에 걸쳐 태어난 세대인 밀레니얼 세대 (Y세대) 와 1990년대 중반부터 2000년대 초반 사이에 태어난 세대인 Z세대 )들은 더욱 그러하리라 추측한다.


이 책을 쓴 이재열은 MZ세대란 말 대신 에코세대란 말을 썼다. 베이비붐 세대의 자식들에 해당하는 세대이니, MZ세대나 에코세대나 거의 비슷한 세대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세대는 '지질하게 사는 것'을 인생의 실패로 여기기까지 한다'(58쪽)고 한다.


그러니 이들은 '자신이 지금 소비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에 투자하는 것, 이것을 매우 중요한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지극히 현실적이다. ... 현실 인식이 명확한 편이기 때문에 자신의 현실에 대해 냉정히 진단하고, 불가능한 일은 빨리 체념한다. 그래서 자신의 서열과 사회적 위치에 대한 수용성은 높은 편이다. 그렇지만, 상대적 박탈감을 더 많이 경험한다' (59쪽)고 한다.


얼마 전 언론에서 명품관 앞에 줄을 주욱 서 있는 사람들 모습을 방영한 적이 있다. 가방 하나에 수천만 원 하는데도 그것을 사겠다고 줄을 선 사람들, 명품 시계라고 수천만 원짜리 시계를 그것도 중고로도 구입하려는 사람들. 그것들을 명품이라고 자신이 쓰겠다고 하는 젊은이들. 집을 사기는 힘드니 자신을 꾸미는데, 드러내는데 쓰겠다고 하는 모습이 과연 현실적인지... 아니면 상대를 의식하는 사회적 위치에 대한 치열한 방어전략인지...


아무튼 바람직한 사회 모습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이들이 자신들의 시간과 돈을 다른 방향으로 쓸 수 있게 하는 사회가 더 낫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했는데... 명품은 사용가치보다는 교환가치, 그것도 다른 사람에게 과시하는 비교가치가 높은 물품에 불과한데, 그 제품에 '명품'이라고 이름을 붙이는 자본주의 상술도 대단하다는 생각을 하지만...


이런 모습을 지닌 에코세대들이 30년이 지난 다음에, - 출생율이 아무리 낮아도 이들 세대들을 이을 세대들은 나타나기 마련이니까 - 올 세대들에게 어떤 세상을 물려줄 수 있는지...


이 책 제목은 그래서 질문을 조금 바꾸어야 한다. '당신 뒤에 살 세대들에게 이런 한국을 물려주겠습니까"라고.


그래선 안 된다고. 우리 사회에 문제가 있다면 고쳐야 한다고.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 한다고 하지만, 중이 절을 떠나긴 쉽지 않다. 그러니 절을 개혁하려고 한다. 


우리 사회도 마찬가지다. 한국에서 태어났으면 한국을 떠나기 힘드니, 한국 사회를 바꾸어야 한다. 어떤 사회로? 품격 있는 사회로... 저자는 품격 있는 사회를 이렇게 말한다.


미래에 대한 희망이 넘치고, 제도에 대한 신뢰가 높고, 현실에 만족하며, 적극적으로 위험을 감수해 창업과 혁신 노력을 기울이고, 참여를 통해 능동적 변화를 끌어내려는 공동체 의식이 높은 사회 (239쪽)


좋은 말들이 나열되어 있다. 사회학자인 저자는 사회학이라는 학문 용어로 이를 다시 정리한다.


품격이 있는 사회란 앞에서 제기한 두 축, 즉 개인과 공동체간, 그리고 시스템과 생활세계 간에 팽팽한 긴장관계를 유지하는 사회다. (243쪽)


한 마디로 갈등은 있어야 하지만 이 갈등을 효율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제도가 갖추어진 사회가 품격 있는 사회라고 할 수 있는데, 아직 우리 사회는 이런 품격 있는 사회가 되지 못했다. 품격 있는 사회가 되지 못했기에 성장이 행복을 동반하지 못하고 있다. 방향을 바꾸어야 한다. 성장을 거부할 수 없지만, 행복 없는 성장은 거부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회 제도에 대한 끊임없는 감시, 비판이 이루어져야 하고, 정치적 무관심을 버려야 한다.


무관심은 용인과 같은 말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우리 사회에 팽배한 사고는 '3불'이라고 한다. '불신, 불만, 불안' 이 3불을 사라지게 해야 한다. 그런데 누가? 냉소적이고, 현실적이라서, 공동체보다는 개인의 현재 삶에 충실하려는 에코세대(MZ세대)가 이제는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한다.


앞선 세대들을 비판만 해서는 일이 해결되지 않는다. 이미 문제는 발생했다.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그 해결책이 완전하지 않고 또 에코세대(많이 쓰는 MZ세대라는 말보다, 이 책 저자가 쓴 용어를 그대로 쓴다)에게 미룬다는 감은 있지만, 그래도 명심할 말이다. 


이렇게 할 수 있도록 사회제도를 정비하라고 기성세대들에게 항의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우리 사회가 계속 살고 싶은 사회가 될 수 있다고. 저자가 제시한 주장을 정리한다. (290쪽-292쪽)


첫째, 정치적 냉소를 벗어나 좌절과 분노를 강력한 참여의 에너지로 전환하자. 


둘째, 순응과 체념보다 탈인습의 도전정신이 절실하다. 각자도생의 경쟁 논리를 벗어나 공감과 배려의 폭을 넓히자. 반칙에 무심하고 끼리끼리 문화에 익숙한 기성세대에게 옐로카드를 들이대는 당돌함이 아쉽다.


셋째, 과거의 성공 공식에 집착하지 말자. 취업이 잘된다는 전공을 찾아 줄 서는 시대는 갔다.


2007년에 우석훈과 박권일은 [88만원 세대]라는 책에서 이렇게 말했다. 앞의 세 가지는 그 말의 다른 표현이라고 보면 된다.


"20대여, 토플책을 덮고 바리케이트를 치고 짱돌을 들어라"


이 말을 어찌 젊은이들에게만 할 수 있겠는가? 사고는 기성세대가 다 쳐놓고, 책임을 뒷세대에게 미루는 말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니 이 말을 에코세대나 어떤 시대든 20에접어든 사람들에게 하는 말이 아니라, 그 시대를 살아가면서 그 시대가 지닌 문제를 인식하고 고치려고 하는 사람들에게 하는 말이라고 생각하자. 이 말은 우리 모두에게 해당하는 말이다.


그래야만 우리 사회가 품격 있는 사회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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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릭 미러 - 우리가 보기로 한 것과 보지 않기로 한 것들
지아 톨렌티노 지음, 노지양 옮김 / 생각의힘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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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펼치자마자 많은 사람들이 추천한 글이 실려 있다. 이렇게 많은 찬사를 받은 책이니 꼭 읽어야 한다고 생각하게 하려는지. 좋은 책은 이런 추천글이 없어도 읽는다. 읽을 생각이 들고 읽어야만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굳이 이런 추천사를 나열한 이유가 있을텐데...


어쩌면 이런 추천사를 통해 우리들이 지니고 있는 환상을 깨려고 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다. 그냥 트릭 미러라는 제목으로 사람들의 관심을 유발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적어도 읽을 만한 책이라는 생각이 들게 해야 읽기 시작하는데...


기술이 발달하면서 빅데이터에 기반해 사람들이 읽을 책도 그런 경향의 책을 읽는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있으니, 무언가를 하지 않으면 아무리 좋은 책이라도 읽히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 그런가? 그런 빅데이터를 통한 추천과 이렇게 알려진 사람들의 추천사는 어떤 차이가 있는가?


잘 알려진 사람들이라고 해도, 그들에게 호감을 가진 사람만이 그들이 추천한 책을 집어들게 되지 않을까? 결국 [트릭 미러]는 이러한 추천사에도 적용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자, 네가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이 책을 읽었어. 그리고 이렇게 추천하고 있어. 그러니 너도 읽어.


이 책을 읽은 소감은 이렇다. 작가는 의도하지 않았겠지만, 이 책을 추천한 사람들 글이 우리나라 판에 이렇게 책 앞장에 소개되어 있는 것도 일종의 [트릭 미러]가 아닌가 하는 생각.


이들과 너는 생각이 비슷하니, 이 책을 읽어야만 한다. 그리고 이 책은 너에게 만족을 줄 것이다. 네가 좋아하는 사람들도 만족했으니. 


그러나 이 책을 읽으면서 한번 더 생각해야 한다. 이 책이 의도하는 것은 이런 추천사를 믿고 따르라는 것이 아니다. 추천사는 추천사일 뿐이다. 그냥 그 사람들의 생각은 이렇다고. 너는 네 나름대로 책을 읽어야 한다고. 하지만 그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는 우리 모두가 알고 있다.


우리가 이미 지니고 있는 관점을 벗어나기가 얼마나 힘든가. 확증편향이라는 말이 공연히 생긴 것이 아니다. 자신의 관점을 지지하고 굳히는 내용의 책으로 관심이 가는 경향이 있고, 자신이 지지했던 사람들이 쓴 책, 추천한 책을 읽는 경향도 분명히 존재한다. 그러니까 이 책을 읽으면서 앞의 추천사를 곱씹어야 한다. 그 추천사를 그대로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그래서 추천사는 '트릭 미러'가 아니라 '미러(거울)'가 되게 해야 한다.


그러니 이 책 표지에 작은 글자로 또 다른 제목이 있다. '우리가 보기로 한 것과 보지 않기로 한 것들'


이걸 계속 의식하면서 책을 읽으라는 말로 읽힌다. 이 책이 우리의 관점을 강화시키는 역할만을 하게 하지 말고, 우리 관점 너머를 볼 수 있는 역할을 하라고.


총9편의 글이 실려 있는데, 이 글들은 다른 내용이면서도 연결이 된다.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자신이 살아온 배경을 통해서 보게 되고, 때로는 그것을 의식하지 못한 상태에서 세상을 판단하면서 살아가게 된다는 점을 생각하게 하는 공통점이 있다.


한번 손에 들면 책 내용에 빠져들게 된다. 그러면서내 관점을 반성하게 된다. 세상이 선과 악으로만 구성되어 있지 않음을, 모든 것을 이분법으로만 해석할 수 없음을. 그런데도 디지털 세상에서는 0과 1로 디지털을 운영하듯이 이것과 저것으로 나누는 일이 자연스럽게 일어나고 있음을 인식하게 된다.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고 하는데, 이 말을 계속 생각하니, 좌나 우는 서로를 비추는 거울, 그것도 서로의 모습을 왜곡해서 비춰주는 [트릭 미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이런 모습을 잘 알 수 있는 글이 '어려운 여자라는 신화'다. 


여성과 여성의 한계를 뛰어넘는 사람들, 그리고 그것을 이용하는 사람들. 페미니즘에 대해서 생각하게 하는데, 성에 대한 관점에 숨어 있는 다른 관점들을 볼 수 있어야 한다는 주장에 공감하게 된다.


이 글과 관련하여 '우리는 올드 버지니아에서 왔다' 역시 사건의 본질을 보는 것이 중요함을 생각하게 한다. 대학의 성폭행 사건을 단순히 개인의 일탈로 보지 않고, 그 행위에 녹아 있는 '관습'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관습'이 어떻게 일탈을 정당화 하는지, 그리고 그것이 주류 세력에 의해 공고화 되어 왔음을 잘 보여주고 있다. 민주주의의 아버지라는 평가를 받는 제퍼슨이 세운 대학 '버지니아 주립대학'에서 벌어진 사건을 두고, 그 기저에는 성차별만이 아니라 인종차별까지도 깊게 내면화되어 있음을. 


그래서 이 책을 읽다보면 눈에 보이는 것 너머를 볼 수 있는 안목을 키워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우리 눈에 보이는 것이 우리의 관점을 통해 굴절되었을 가능성을 생각해야 하고,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 역시 우리 관점으로 인해 가려졌을 가능성을 생각해야 한다는 것.


'우리가 보기로 한 것과 보지 않기로 한 것들'을 인식할 수 있는 눈을 지녀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 인터넷, 리얼리티쇼, 사기(특히 무슨 무슨 펀드라는 이름으로 자행되는 경제 사기), 성차별, 종교와 마약, 결혼제도 등등에 대해 내 눈에 보이는 것만을 보는 것이 아니라 보이는 것 밖에 있는 것들을 생각해야 함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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