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버지 김홍도 - 아버지와 아들이 길어 올린 결정적인 생의 순간들 낮은산 키큰나무 12
설흔 지음 / 낮은산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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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만의 그림을 그린다는 것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화가를 꼽으라면 주저 없이 선택되는 화가가 김홍도일 것이다. 그러한 김홍도의 명성이 가능한 이유는 그의 풍속도첩이라는 화첩에서부터 시작된다고 보인다. 단원 풍속도첩에는 기와이기, 주막, 새참, 무동, 씨름, 쟁기질, 서당, 대장간, 윷놀이, 타작, 편자 박기, 활쏘기, 담배 썰기, 자리 짜기, 신행, 행상, 나룻배, 우물가, 길쌈, 고기잡이, 장터길, 빨래터 등의 27작품이 실려 있으며 국가지정 보물 제527호다. 이 풍속도첩으로 인해 최고의 풍속화가로 기억되었다.

 

김홍도는 1745년에 태어나 영, 정조의 두 임금을 섬기며 화가로써 최고의 지위를 누렸을 뿐만 아니라 현감 벼슬까지 지냈다. 그러다가 그의 최고 후원자였던 정조가 사망한 후 갑자기 역사에서 사라져 죽은 날짜를 확인할 수 없을 정도로 마지막이 모호한 사람이었다.

 

풍속화가 김홍도, 이러한 표현이 화가 김홍도를 올바로 표현하는 것일까? 풍속화로 유명하기에 다른 작품들은 없단 말일까? 이 물음 앞에 소림명월도, 주상관매도, 송하맹호도, 마상청앵도등과 같은 몇몇 그림을 제시하면 놀랍도록 다른 화풍의 김홍도를 만나게 된다는 사실을 직면하며 놀라는 사람들이 많다. 그렇다면 이토록 다른 모습의 그림을 그렸던 화가 김홍도를 오로지 한 인간, 화가로써 이해하는 키워드는 무엇일까?

 

연암에게 글쓰기를 배우다’, ‘조희룡과 골목길 친구들’, ‘추사의 마지막 편지, 나를 닮고 싶은 너에게와 같은 작품으로 역사 속 실제 인물에 탁월한 상상력을 더하여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것에서 확실한 재능을 발휘하는 작가 설흔을 통해 김홍도의 내면읽기를 따라가 보자. 그 속에서 화가 김홍도의 이야기를 찾아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그림은 붓으로 그리는 게 아니다. 네 마음을 쪼개 그 조각으로 그리는 것이다. 너만이 듣고 볼 수 있는 것을 그리는 것이다. 그것이 쉽겠느냐? 그래서 사람이 일평생 그릴 수 있는 그림에는 한도가 있는 것이다. 네가 원한다면 내 그림을 얼마든 흉내 내 팔아도 좋다. 하지만 그런 그림을 그리는 너는 화가는 아니다. 내 말, 알겠느냐?”

 

여기에 이 책의 주된 관심사가 담겨 있다. 천재화가, 풍속화가, 도화서화원 등으로 불리는 김홍도에서 인간, 화가 김홍도로 시각 전환을 시도하고 있다는 점이 주목된다. 작가 설흔은 김홍도를 유명하게 만들었던 풍속화에 주목하지 않고 그의 추성부도를 통해 화가 김홍도의 내면을 추론해 간다. 그리하여 인간 김홍도의 인간성과 화가 김홍도가 화폭에 담고 싶었던 그림이 무엇인지에 주목하게 되는 것이다.

 

표면상으로 보면 아들의 눈으로 그려 낸 인간 김홍도에 관한 이야기로 보인다. 하지만 글을 따라가다 보면 김홍도의 이야기지만 그 중심엔 그의 아들 김양기가 있다. 그렇다고 아들 김양기에 모든 것이 맞춰지지도 않았다. 아버지와 아들을 이어주는 매개는 역시 그림과 그 그림을 그리는 화가이다. 당대를 뒤흔든 천재 화가 대신 생의 뒤안길에 선 인간 김홍도, 그리고 그런 아버지를 아프게 지켜보면서 차갑고 광폭하기 그지없는 가을 한복판에서 삶의 방향을 찾아 가는 아들 김양기의 만남이 가슴 아프도록 절절하게 그려졌다.

 

이 작품의 백미는 무엇보다도 아버지와 아들을 끈끈하게 이어 주는 그림들이다. 그림들은 아들이 아버지의 마음을 이해하게 되는 중요한 장치로도, 김홍도의 인간적 면모와 품성을 드러내는 단서로도 작용한다. 하지만 그림은 글로만 묘사되고 있다. 김홍도의 작품에 관심을 가진 사람이라면 무슨 작품을 이야기하는지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

 

자신만의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화가의 그림에만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다. 살아가는 동안 내면에 담긴 무엇인가를 밖으로 표현하고자 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이 말이 가진 참뜻이 무엇인지를 일깨워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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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종 2015-02-22 12: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자신만의 그림, 자신만의 사진, 자신만의 음악, 자신만의 글, 자신만의 춤. 자신만의 그 무엇.
인간의 내면은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그것을 보여주기 위한 방법으로 다양한 표현 방법이 나온 게 아닐까요? 무언가 표현한다는 것은 그래서 표현의 형식이 무엇이든 ˝그 자신˝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나˝이든 나의 관점이든. 똑같은 표현 방법이 존재하지 않는 이유겠지요. 우린 모두 보편적인 듯 유일한 존재이므로.
 
섬 택리지 - 강제윤의 남도 섬 여행기
강제윤 지음 / 호미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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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적 시각으로 바라본 바다와 섬

내게 섬은 로망 중 하나다. 특별한 이유를 찾지 못하지만 바다와 섬은 늘 가보고 싶은 곳이며 살고 싶은 곳이기도 하다. 어릴 적 바다 근처에서 살았다는 것도 그 이유 중하나일 것이며 삼면이 바다고 섬 또한 부지기수로 많은 남쪽 땅에서 살았다는 것도 한몫 차지할 것이다. 그렇게 가까이 바다와 섬이 있지만 섬이나 바다에 주목하지는 못했다. 아니, 주목하지 않았다는 말이 맞는 말일 것이다.

 

그러던 중 2006년 발행된 일상과 역사를 가로지르는 우리 바다 읽기라는 주강현의관해기라는 책을 통해 바다와 섬 그리고 그 속에 살아왔던 사람들에 관심을 가졌다. 나에게 '관해기'는 바다를 인문학적으로 살피는 첫 책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 후 강제윤의 '섬 택리지'를 만났다. ‘숨어사는 즐거움을 발간하던 보길도에서의 삶을 정리하고 섬을 떠돌기 시작한 것으로부터 강제윤이 섬에 주목하여 자신의 발로 섬을 찾아다닌 지 십 여 년이 지났다고 한다. 그렇게 발로 쓴 섬 탐사여행기가 일곱 번째 책으로 묶였다. 그 책이 바로 섬 택리지 : 강제윤의 남도 섬 여행기.

 

'섬 택리지'는 조선시대 영조 때 이중환이 지은 우리나라 지리서 택리지에서 따온 제목이라고 한다. 이중환의 책처럼 본격적인 지리서는 아니지만 이중환의 택리지가 뭍과 사람 사이에서의 인문학적인 관계를 살폈다면, 섬 택리지는 바다와 섬이라는 자연환경과 인간 생활을 인문학적인 시각에서 살폈다.

 

도초도의 고란리는 이 나라에서 돌담들이 가장 완벽히 보존된 마을 중 하나지만 나그네에게 발견되기 전까지는 누구도 주목하지 않았다. 장산도와 신의도의 백제시대 고분들과 흑산도에 삼국시대 존재했던 국제 해양도시의 유물들을 비롯해, 지금은 찾아보기 힘든 어업 유물인 생선을 절이는 데 사용한 간독들이 섬의 풀숲에 파묻혀 있다.”

 

이처럼 저자가 발품 팔아 섬을 돌며 발견한 돌담이나 독살 같은 유형의 보물이 적지 않다. 그밖에도 삼백 년 된 국보급 옛 선창이나 독살, ‘원안의 논같은 해양문화 유적과 어업 유물이 뿐 아니라, 뭍을 그리워하는 섬사람들의 애환을 담은 가거도 할머니의 민요, 제주도 이어도 사나의 흑산도 버전이랄 수 있는 흑산도 해녀 할머니가 불러주는 진리 뱃노래와 같은 구성진 들노래 등이나 흑산도 진리 당집의 피리 부는 소년과 처녀귀신의 사랑 이야기, 비구니와 비구의 사랑이 놓은 애틋한 노둣돌 이야기 등 무형의 보물들이 산재해 있음을 알려준다. 뿐만 아니라 섬 역시도 개발논리에서 자유롭지 못한 곳이다. 방조제나 조력발전소가 들어서면서 파괴되는 갯벌과 문화유산, 해안도로를 내기 위해 어부림(魚付林)을 파괴하고 천 년 된 당집이 허물어지고 그 자리에 체육공원이 들어서는 것을 보는 안타깝다.

 

남도 섬을 여행하며 인문학적 시각으로 섬을 읽어보자는 강제윤의 시각이 따스하다. 섬 문화와 해양 유산, 역사와 지리, 인물 등 유형과 무형의 숨어 있는 보물을 발견하고 이를 어떻게 보존하며 지킬 것인가를 생각하게 만든다. 결국 섬이라는 단절된 공간이었기에 가능했을 사람의 이야기를 이제는 주목해 보자는 말 일 것이다. 강제윤, 그가 있어 섬이 더 가까이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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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종 2015-02-14 07:2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공간으로서의 `섬`은 많은 생각을 하게 합니다. 육지와 떨어져있지만, 바닷속으로는 연결되어 있으니 온전히 동떨어진 공간이라고도 할 수 없는. 육지인 듯 육지 아닌 육지 같은 너ㅎㅎ `섬`은 `시`와도 같습니다. 과감하게 생략된 부분이 물 밑에 잠겨있다는 점에서. 시를 감상하는 사람이 각자 다른 방식으로 해석을 하듯이, 섬도 바라보는 이의 시각에 따라 여러 의미를 갖게 되는 것 같습니다.
요즘은 사람들 마음 안에 있는 섬을 생각합니다. 추상적이긴 하지만 저마다 섬이라고밖에 설명할 수 없는 뭔가를 가지고 있다고 봅니다. 고독과 함께 부록처럼 자유가 주어지는.
 
슬픔을 권함
남덕현 지음 / 양철북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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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우리 슬퍼할 권리를 찾자

연암 박지원의 글 중 사장(士章) 애사(哀辭)에는 나는 매양 모르겠네. 소리란 똑같이 입에서 나오는데, 즐거우면 어째서 웃음이 되고, 슬프면 어째서 울음이 되는지. 어쩌면 웃고 우는 이 두 가지는 억지로는 되는 게 아니다. 감정이 극에 달해야만 우러나는 게 아닐지. 나는 모르겠네. 이른바 정이란 어떤 모양이건대 생각만 하면 내 코끝을 시리게 하는지. 그래도 모르겠네. 눈물이란 무슨 물이건대 울기만 하면 눈에서 나오는지. 아아, 남이 가르쳐주어야만 울 수 있다면 나는 으레 부끄럼에 겨워 소리도 못 내겠지. 아하, 이제야 알았다. 이른바 그렁그렁 이 눈물이란 배워서 만들 수 없다는 걸.”라는 대목이 있다.

 

울기만 하면 눈에서 나오는 물이 눈물인데 그 눈물이 나올 수 있는 근원에 슬픔이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이다. 하여, 슬픔에서 비롯된 자연스러운 눈물은 그 슬픔을 치유하는 중요한 기회가 된다. 하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현대사회는 슬픔을 올바로 받아들이고 그와 동반되는 울음을 울 수도 없는 현실을 강요하고 있다. 박지원은 눈물은 배우는 것이 아니라고 하지만 눈물을 배워서라도 슬픔을 치유해야 하지 않을까 한다.

 

울음을 울 수도 없는 현실을 강요하는 사회에 적극적으로 슬픔을 권하는 사람이 있다. 2013충청도의 힘으로 주목 받았던 남덕현이 그 사람이다. 그는 나는 슬플 때 가장 착하고, 슬플 때 가장 명징하며, 슬플 때 가장 전복적이다.”라며 슬픔이 가지는 본래적 의미를 인문학으로 풀어내고 있다.

 

우리가 사는 도처에 죽음, 가난, 차별 등으로부터 서러움을 안고 살아간다. 특히, 2014년은 세월호 사건 이후 대다수 국민들은 슬픔을 전재로 한 분노를 다스릴 수 없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 강요받은 위로와 희망에 슬퍼할 기회조차 빼앗겨 정당한 슬픔을 치유해야할 권리조차 상실한 것이다. 이런 사회적 환경에서 어설픈 희망과 기쁨보다는 차라리 절절한 슬픔과 절망이 고단한 삶을 치유할 수 있다며 남덕현은 그 슬퍼할 권리를 되찾자고 억설한다.

 

남덕현은 슬픔이 무엇인지를 아는 사람이다. 하여, 묶인 개, 늙은 어미와 이웃 노인들, 스치는 바람뿐 아니라 수시로 자기 자신을 직시하며 존재의 근원에 대한 질문을 한다. 그 질문 속에는 해학의 미학이 함께하기에 슬프지만 웃음이 동반한다. 남덕현은 이렇게 일상적인 자신의 주변 뿐 아니라 죽어간 세월호 아이들과 굴뚝 위의 노동자들을 보면서 그 슬픔의 사회적 가치에 주목한다. 그냥 슬퍼하는 시늉만 하는 것이 아니라 온 몸과 마음으로 슬픔이 스며들어 있는 현장에 당당하게 서 있다. 억눌린 슬픔의 권리를 찾기 위해서 말이다.

 

기쁨과 희망을 권해도 환영 받지 못하는 사회에서 슬픔을 권한다는 것 자체가 역설이다. 하지만 그 역설에 공감할 수 있는 것은 곧 나는 슬플 때 가장 착하고, 슬플 때 가장 명징하며, 슬플 때 가장 전복적이다.”라는 남덕현의 슬픔에 대한 성찰이 사람을 향해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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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종 2015-02-27 12: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같은 물을 마셔도 독사가 마시면 독이 되고, 젖소가 마시면 우유가 된다는 말이 생각나네요.
가끔 리뷰나 페이퍼 등 글을 쓸 때를 되돌아보면, 슬플 때 마음을 울리는 글이 더욱 잘 써졌던 것 같습니다. 글이란 정직해야 하는 거니, 슬플 때 사람은 가장 정직한 자신의 모습과 마주 하게 되나 봅니다.
얼마 전 읽었던 「한글자」에서는 글에 대하여 이렇게 써 있더군요. ˝글을 쓴다는 건. . 바다를 바다라고 말하는 용기를 내는 것˝ 이라구요. 슬플 때 가장 정직해진다면, 슬플 때 쓰는 글은 용기를 동반하기도 하고, 그래서 가장 전복적일 수도 있겠네요^^
 
조선의 풍경, 근대를 만나다
단국대학교 동양학연구원 엮음 / 채륜서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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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과 100여 년 전, 우리의 모습

우리음악에 정악과 민속악이라는 분야가 있다. 정악은 제례악을 중심으로 한 궁중음악을 민속악은 민간에서 생겨나 민중 생활의 일부로서 전해 내려오는 음악을 말한다. 민속악이라고 하면 민요·농악·판소리·선소리·잡가·풍물놀이·산조·시나위 등 민중이 창작하고 즐기던 음악을 말한다. 이 중 산조는 민속악에 속하는 기악 독주곡이다. 이 산조라는 부분은 언제부터 시작된 것일까? 길게 잡아야 189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겨우 100여년이 지났을 뿐이지만 국악의 대표적인 갈래로 인식되어졌다.

 

이렇듯 불과 100여년 사이 우리 사회는 급격한 변화를 맞았다. 하여, 조선이라고 하면 머나먼 이야기가 되고 만다. 그렇다면 우리가 살아가는 현대사회의 모습은 언제부터 비롯되었을까? 현대 사회 이전을 근대사회라 한다면 그 근대사회의 직접적인 영향일 것이다. 우리에게 근대는 어느 시기로 구분되어야 할까? 보통은 개화기로부터 일제강점기까지를 근대라고 시대구분을 한다.

 

조선의 풍경, 근대를 만나다는 현대사회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었던 근대풍경에 주목하여 당시 변혁의 시기를 거치면서 찾아온 사회적 변화, 그리고 그 때문에 새로운 문화가 탄생하는 순간을 포착하여 그 시대를 대표하는 풍경 열 가지를 찾아 우리 삶 속에 어떤 과정을 통해 정착하게 되었는지를 살펴보는 내용을 담고 있는 것이 이 책이다.

 

저자들이 주목했던 욕망이라는 늪에 빠진 사람들’, ‘어른와 아이의 놀이 문화’, ‘만들어진 전통, 현대 한국인의 풍속을 주제로 선별한 열 가지 풍경은 속에는 인간의 욕망과 관련된 근대의 미적 기준과 성병에 주목하여 망의 늪에 빠진 근대의 시대상황을 설명하고, 아이들의 노는 모습을 통해 근대의 새로운 놀이 문화가 가진 의미를 살펴보고 서양식 장난감의 등장과 함께 일어났던 여러 일화를 다루었으며, 크리스마스는 물론, 어린이날과 꽃놀이, 현대의 결혼 문화가 어떻게 조선에 뿌리내리게 되었는지, 당시 사람들은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등을 살펴보고 있다.

 

조선이라는 전통사회가 밀려드는 외국의 사상과 기술, 문화에 급격한 변화를 강요받았던 시기를 시작으로 주권을 빼앗기고 일제강점기를 보내면서 전통의 것에서 벗어나 현대 생활양식을 이루게 된 문화의 변화를 살피는 이야기가 중심이다. 기본적 시각은 근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전통생활방식과 변화된 생활방식을 어떻게 수용하고 향유하는지에 있어 보인다. 이 시기를 주름잡았던 대표적인 풍경 속에 현대인들의 일상 속에서 너무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는 것과의 연관성을 포착하는 것도 잊지 않고 있다.

 

우리가 너무도 자연스럽게 누리고 있는 현대 한국인의 풍속은 신문화와 전통문화가 만나 탄생한 것으로 이것이 조선 사회에 정착하여 현대 한국 사회에까지 이어지는 새로운 전통이 된 것이다. “현대문화가 전통과의 단절이 아니라 우리의 옛 전통문화의 연장선상에 있음을 다시 한 번 확인하는 바로 이 지점이 이 책에서 근대의 풍경을 살피는 목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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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심 - 조심하라, 마음을 놓친 허깨비 인생!
정민 지음 / 김영사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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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의 주인은?

마음은 자신이 사는 세상을 반영할 수밖에 없다. 자연환경을 비롯하여 사회 정치적인 조건에 따라 늘 변하는 것이 마음이다. 특히, 자의든 타의든 관여하고 있는 인간관계에 따라 왔다 갔다하는 것이 사람이 마음이다. 이렇게 자신을 둘러싼 환경에 따라 좌충우돌하는 마음을 어떻게 하면 안정시킬 수 있을까?

 

마음을 안정시키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기에 선인들은 마음공부법을 비롯하여 다양한 방법을 동원하여 흔들리는 마음을 붙잡기 위해 절치부심했다. 홀로 있을 때는 바른 몸가짐으로부터 사회적 존재로써는 정치와 사람 사귐에서 지켜야할 도리에 이르기까지 스스로를 조심하며 마음을 붙잡기 위해 노력했다.

 

정민 선생의 조심(操心)’ 은 바로 선인들의 마음 붙드는 법으로서의 조심을 이야기하고 있다.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살피는 것이 아닌 마음을 잘 붙들어 내가 내 마음의 주인이 되는 것이 조심이라고 한다.

 

몸가짐과 마음공부, 시비의 가늠, 세정과 속태, 거울과 등불 등 네 가지 주제로 묶인 백 편의 글이다. 마음을 잃어버린 사람들과 원칙이 흔들리는 세상 속에서 묵직한 저울추가 되는 말씀들을 네 글자의 행간에 오롯이 담았다. 옛글 속에서 찾아낸 흔들리는 마음을 붙잡을 수 있는 내용의 사저성어를 골라 이에 대한 해설을 하고 있다.

 

“‘조심操心은 바깥을 잘 살피라는 의미로 쓰지만, 원래 마음을 붙든다는 뜻이다. 지금처럼 조심이라는 말이 마음에 와 닿는 때가 없다. 우리는 마음을 잃어버린 사람들과 원칙이 흔들리는 세상 속에서 재앙을 경험하고 있다. 물질의 삶은 진보를 거듭했지만 내면의 삶은 더 황폐해졌다. 김매지 않은 마음밭에 쑥대만 무성하다.”

 

지유조심에서 소년청우까지 백 개의 묵직한 저울추를 통해 정민 선생의 해설은 책 속의 글귀에 머물지 않는다.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 사회, 정치적 상황에 의해 늘 간섭받는 마음을 다스리기 위한 것이기에 그런 현실의 문제를 외면하지 않는다. 모든 제목이 사자성어로, 좁은 행간 안에 깊은 뜻을 담아 촌철살인의 메시지를 전한다. ‘소음의 언어보다 안으로 고이는 말씀이 필요한 시대에 필요한 말씀을 담았다는 이야기다.

 

팽팽 돌아가는 세상은 하루도 바람 잘 날이 없다. 덩달아 일희일비하다 보면 내 안에 나는 없고 세상으로 꽉 차버린다. 나를 잃으면 허우대만 멀쩡한 쭉정이 삶이다. 조심하라, 마음을 놓친 허깨비 인생

 

내 인생이 허깨비 인생이 아니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할까? 짧은 글귀에 재미있는 이야기들로 짜여진 이 책은 그 허깨비 인생에서 탈출할 수 있는 비법이 담겨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지금 자신의 현주소를 살펴 무엇이 필요한가에 대해 성찰할 기회를 제공해 주고 있다. 받아 안을 수 있는지 없는 지는 결국 자신에게 달렸다. 가까이 두고 생각날때마다 한구절씩 펼쳐보는 것도 좋을 듯 싶다.

 

다 좋다. 지극히 옳은 말이기에 토를 달 꺼리도 이유도 없다. 그렇지만 사족하나 달자. 마음 붙잡기가 왜 개인의 노력, 실천의 여부로만 집중되는 것일까? 그 개인이 속한 정치사회적 환경을 쏙 빼버리고 모든 것을 개인의 문제로 시작한다면 그 시작 자체가 잘못된 것이라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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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종 2015-01-31 23: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동감입니다. 제도적인 한계가 개인 탓으로 치부되어 버리는 경우도 많으니까요.
홍세화님의 「생각의 좌표」에서 `내 생각은 어떻게 내 생각이 되었는가`라는 구절이 나오는 데요, 많은 사람들이 다른 사람에 의해 주입된 생각을 마치 자신의 생각인양 착각하며 살아간다더군요. 생각의 주인이 되지 못하는 거죠.
한때 다른 카페에서 `내삶의 주인`이란 닉네임을 사용한 적이 있었는데요, 삶이든 마음이든 생각이든 주인이 된다는 건 어려운 일인 것 같습니다.
마음에 대해 생각하다 잠시 북플에 들렀는데, 눈에 들어오는 제목에 끌려 두서없이 적어봅니다.

무진無盡 2015-01-31 23:52   좋아요 1 | URL
늘 깨어있는 삶이라면 마음의 주인으로 살아가는 한 방법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나비종 2015-01-31 23: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용기가 필요한 동사로서의 삶인데,
생각보다 쉽지 않아 매순간 갈등을 많이 한답니다.

무진無盡 2015-01-31 23:59   좋아요 0 | URL
어제와 다르지 않은 오늘을 살아가다보니 갈등하는 순간이 줄어들더군요. 조건에 끄달리지 않은 자족의 삶이 가져온 결과가 아닌가 싶어요.

나비종 2015-02-01 00: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런 삶을 살고 싶기도 하지만, 어제와 다른 오늘을 꿈꾸고 싶기도 해서요.
욕심이 많은 걸까요?

무진無盡 2015-02-01 00:15   좋아요 0 | URL
욕심과는 사뭇다른 느낌
어제와 다르지 않은 오늘에는 겉과 속의 조화가 기본이겠지만 때론ᆢ 이미 나이들었다는 반증일수도^^
오늘과 다르지 않을 내일이기에 고요합니다

나비종 2015-02-01 00: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바다처럼 더 깊고 넓어져야겠습니다. 많은 걸 품고 받아들여도 고요할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