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암요. 처음 그곳을 간 것은 한밤 중 누군가에 의해 이끌려 갔다. 첩첩산중이지만 까만 밤하늘이 환하게 열린 곳으로 강한 인상을 남겼다.

그때 나눈 이야기 중 근처에 물매화가 핀다는 사실을 듣고 다음해에 다른 이를 채근하여 주인장의 안내를 받을 때 였다. 그후로는 물매화 필 때면 괜히 미안한 마음에 알리지도 못하고 살며시 꽃만 보고 온 것이 두번이다.

이미산 천태암에서 하룻밤을 묵고 내려온 길에 물매화 보는 일에 다리를 나줬던 이가 불쑥 그곳에 가자고 한다. 그 해맑았던 주인장을 다시 볼 수 있다는 생각에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따라갔다. 갑작스런 일이지만 이런 일에 대비코자 차 안에 넣어둔 작은 차탁을 꺼내 들었다. 빈손으로 가기 애매할 때 요긴하게 쓰기 위해 준비한 것이 있어 다행이었다.

하늘은 여전히 넓었으며, 도자기 굽는 가마가 하나 더 늘었고, 매실나무는 더 컷고, 두마리 개가 주인보다 더 반겨 맞아 준다. 찾는 사람이 드물어 몹시도 반가운가 보다.

황소만한 몸집에 우락부락한 손이지만 순하디순한 눈매를 지녔다. 만들어 내는 도자기 모두는 만지면 깨질듯 아기자기하고 섬세하기만 하다. 주인장의 심성이 고스란히 담긴 것으로 이해한다.

주인보다 먼저 다실에 들었다. 마음을 사로잡는 모습 앞에 우두거니 서서 한참을 바라보았다. 정갈함이 그대로 드러나는 분위기다. 다음을 기약하지도 못했지만 잠시 나눈 이야기로 든든함을 안고 산길을 나섰다.

마음에 담았으니 이젠 내것이나 매 한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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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기생꽃
깨끗하다. 맑고 순한 모습이 마냥 이쁘다. 순백의 아름다움이 여기로부터 기인한듯 한동안 넋을 잃고 주변을 서성이게 만든다. 막상 대놓고 눈맞춤하기는 미안한 마음이 들 정도다.
 
이번엔 다섯번째 눈맞춤이다. 지난해는 먼길을 나서서 태백산 능선을 올라 환경이 다른 곳에서 만났었다. 지리산과 태백산의 꽃이 서로 다른 느낌이었는지라 이번엔 그 차이를 알고 싶었는데 다시 보니 같다. 다른 느낌을 받은 이유는 뭘까.
 
기생이라는 이름이 붙은 것은 흰 꽃잎이 마치 기생의 분 바른 얼굴마냥 희다고 해서 지었다는 설이 있고, 옛날 기생들이 쓰던 화관을 닮아서 기생꽃이라고 한다는 설도 있다고 한다. 기생꽃과 참기생꽃의 구분은 애매한듯 싶다. 굳이 구분하는 입장에서는 잎 끝의 차이와 꽃받침의 갯수 이야기 하는데 내 처지에선 비교불가라 통상적 구분에 따른다.
 
우리나라 특산종이라고 한다. 지리산 능선의 기운을 품어 더 곱게 피었나 보다. 기꺼이 멀고 험한길 발품 팔아 눈맞춤하는 이유는 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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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애기나리
일부러 발품 팔지 않으면 못보는 꽃이기에 기꺼이 나선 길이다. 길이 멀지 않게 느껴지는 것은 꽃이 주는 설렘이 크기 때문일 것이다. 무엇인가를 만나기 위해 시간을 내고 일부러 찾아갈 수 있다는 것, 지금 내가 누리는 마음의 평화에서 제법 큰 비중을 차지한다.
 
워낙 작은 꽃들이 많고 또 그렇게 작은 꽃에 주목하다 보니 작게 느껴지지 않지만 이 역시 작은 꽃이다. 앙증맞은 크기에 연한 황백색의 꽃이 하나에서 둘, 더러는 세개까지 핀다. 얼굴 가득 자주색 반점을 가져서 더 눈길을 끈다. 작지만 꽃잎이 뒤로 젖혀져서 나리꽃의 특징을 보여준다.
 
이 꽃처럼 꽃에 '애기'라는 이름이 붙으면 대부분 작고 앙증맞은 경우가 많다. 애기나리, 큰애기나리, 금강애기나리가 서로 비슷비슷한데 금강애기나리는 얼굴의 자주색 반점으로 구분하면 쉽다.
 
애기처럼 귀여운 금강애기나리는 '청순'이라는 꽃말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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茶後小詠 다후소영

小甁汲泉水 소병급천수
破鐺烹露芽 파쟁팽로아
耳根頓淸淨 이근돈청정
鼻觀通紫霞 비관통자하
俄然眼翳消 아연안번소
外境無纖瑕 외경무섭하
舌辨喉下之 설변후하지
肌骨正不頗 기골정부파
靈臺方寸地 영태방촌지
皎皎思無邪 교교사무사
何暇及天下 하가급천하
君子當正家 군자당정가

차를 마시고 나서 작게 읊다

조그마한 병에 샘물을 길어다가
묵은 솥에 노아차를 끓이노라니
귓속은 갑자기 말끔해지고
코끝엔 붉은 놀이 통하여라
잠깐 새에 흐린 눈이 맑아져서
외경에 조그만 티도 보이질 않네
혀로 먼저 맛 보고 목으로 삼키니
기골은 바로 평온해지고
방촌의 마음 밝고 깨끗하여
생각에 조금의 사도 없어라
어느 겨를에 천하를 언급하랴
군자는 의당 집부터 바루어야지

*고려사람 목은牧隱 이색(李穡, 1328~1396)의 시다. 저서로는 목은문고(牧隱文藁)와 목은시고(牧隱詩藁) 등이 있다.

장마철로 접어들었다고 하나 비는 여전히 만나기 어렵다. 습기 많은 날이라 더운 공기가 정신을 더없이 탁하게 만든다. 차디찬 물에 발 담그고 물 흐르는 소리나 듣고자 하나 그것도 나와는 먼 일이라 생각 속에서만 머문다. 이런 날에는 가만히 앉아 차 달이는 향기를 떠올리는 것도 스스로를 다독이는 좋은 방법이다.

정갈하게 만든 차와 맑고 깨끗한 물이 있다면 굳이 솥까지 갖출 필요가 있겠는가. 여기에 정성을 더하여 달인 차를 마주할 수 있다면 그만이다. 잘 우려진 차를 마시기 적당한 온도까지 기다렸다가 한모금 마신다. 입안에 번지는 향과 맛에 집중하다보면 평화로운 마음을 누리기에 이만한 것도 없다.

비 소식은 먼 곳에서만 들리지만 흐려지는 하늘에서 비를 예감한다. 창가에 맺힌 빗방울을 상상하는 것과 차 달이는 향기를 떠올리는 것이 서로 다르지 않다.

더운 여름이기에 더 좋은 차맛을 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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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솜대
큰키나무들이 잎을 내어 이제 숲은 그늘로 드리워지는 때다. 그 숲에 하얀 꽃들이 불어오는 바람따라 흔들린다. 발밑에 꽃을 찾아 걷는 사이에 빛이 들어 더욱 환하게 빛나는 순간을 마주한다.

꽃이 솜대를 닮았다고 풀솜대라는 이름을 붙였다는데 솜대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라고 한다. 지장보살이라는 이름으로 더 자주 불린다. 옛날 춘궁기 때 풀솜대를 구황식물로 이용되었는데, 절에서 죽을 쑤어 먹곤 했다고 한다. 그래서 중생들을 구제하는 풀이라는 뜻으로 풀솜대를 '지장보살'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뭉처서 피는 햐얀꽃이 지고나면 둥글고 붉은색의 열매가 달린다. 의외의 열매라 가을 산행에서 주목하게 만드는 대상이 되기도 한다. 이와 비슷한 식물로 우리나라 고유종인 자주솜대가 있다. 노고단에 오르면 놓치지 않고 찾아보게 되는 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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