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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화와 반정의 시대 - 성종, 연산군, 중종대의 왕권과 정치
김범 지음 / 역사의아침(위즈덤하우스) / 2015년 4월
평점 :
언론 삼사를 중심으로 격동의 시대를 본다
왕조의 나라 조선은 동아시아의 여타 왕조의 나라와는 다른 독특함이 있다. 그것은 국정을 운영하는 주체 사이의 힘의 균형에서 찾을 수 있다. 왕조의 나라이기에 당연 최고 권력은 왕에게 있지만 그 왕을 중심으로 신하들의 힘 또한 무시하지 못한다. 신권 중에는 대신과 대간으로 구분되는 권력이 있었으며 조선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가 바로 삼사(조선시대 언론을 담당한 사헌부, 사간원, 홍문관)의 대간들의 역할이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닐 것이다.
성종(1470~1494), 연산군(1494~1506), 중종(1506~1544) : 3대 75년, 조선 역사에서 이만큼 드라마틱한 시대가 흔치 않았다. 경국대전의 완성으로 조선의 안정화를 구축한 성종, 조선 최초의 사화, 조선 최초의 반정의 대상 연산군, 반정으로 자신을 추대한 신하들과 권력의 틈바구니에 있었던 중종.
이 75년의 치세 기간은 성종에 이르러 법적 장치를 완성하면서 체제의 안정적 기반을 만들었다고는 하지만 바로 되를 이은 연산군에 의해 허물어지고 만다. 이 조선 최초의 사화와 반정의 시대를 새롭게 읽는다. 김범의 ‘사화와 반정의 시대’에서는 왕권을 중심으로 한 권력의 양편에 대신과 대간이라는 세력의 힘겨루기로 읽어간다.
그 중심에 성종이 있었다. 성종은 왕의 적장자가 아님에도 13세의 나이로 갑자기 조선의 최고 권력자가 되었다. 그러나 조선 최초의 수렴청정과 훈구대신에 의한 원상제라는 변형된 왕정을 경험해야 했다. 그 동안 성종이 훈구대신의 지나친 권력 팽창에 문제의식을 갖게 된 것은 자연스런 일이었다. 이로부터 왕권의 강화와 안정을 모색한 성종은 언론 삼사의 대간 세력을 키워간다. 대신에게 집중된 힘의 분산을 노린 것이다.
연산군은 성종의 적장자로 열 번째 국왕에 올라 12년을 재위한다. 왕권 강화에 심혈을 기우렸던 연산군에게 삼사의 지나친 언론활동은 매우 불만스러웠다. 무오사화를 시작으로 강력해진 왕권을 오용한 연산군의 일탈은 대신과 삼사를 협력하게 했으며, 연산군이 주도한 갑자사화는 결국 조선 최초의 반정과 연산군의 폐위로 이어졌다.
반정으로 왕위에 오른 중종은 단지 추대된 국왕이었다. 집권 초반의 정국공신, 조광조를 필두로 한 사림의 등장, 국정의 핵심인 인사정책에서 충분한 판단력과 조정력을 발휘하지 못해 왕권을 제대로 행사하지 못한 것은 중종의 한계다.
저자 김범은 이 책에서 성종, 연산군, 중종 대의 혼란스러운 상황을 왕, 대신, 언론 삼사 간의 힘의 균형에 초점을 맞추어 살피고 있다. 이 삼자간의 힘의 균형에 의해 국정이 운영되고 권력이 한쪽으로 집중될 때 문제가 생기곤 했다. 왕은 바로 이 점에 주목하여 훈구 세력인 대신과 이를 견제할 새로운 세력이라고 할 수 있는 대간 사이를 중재한 것이다.
언론 삼사의 역할에 주목하여 격동의 시대를 이해하는 시각은 훈구와 사림이라는 기존 시각에 새로운 관점을 부여하고 있다. 사람의 등장이 전혀 새로운 계층이라는 기존 시각에 대해 훈구와 사림은 한뿌리라는 것이다. 맡은 일이 달라 입장차가 터진 것이라는 기본 시각이다. 이런 이해를 바탕으로 조선사를 본다면 기존에 보지 못했던 점이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