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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 서서 길게 통곡하니 - 소리 없는 통곡, 선비들의 눈물
신정일 엮음 / 루이앤휴잇 / 2015년 4월
평점 :
선비들의 눈물
옛사람들의 감정 표현은 솔직하다. 글로 만나는 옛사람들의 삶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보다 훨씬 감정에 충실한 모습이었다고 보인다. 문장이나 시를 통해 사랑하는 가족이나 부부 사이, 스승이나 벗과의 마음 나눔, 연인을 그리워하는 마음 등을 보면 확실히 절절한 내용이 많다. 선비라고 예외일 수는 없어 보인다.
선비라고 하면 우선 의관정제(衣冠整齊)하고 서안(書案) 위 펼쳐진 책을 읽는 모습을 상상한다. 극도로 절제된 언행을 통해 자신을 관리하며 근엄한 모습으로 감정에 치우치는 일이 없는 모습이 아마도 선비라는 말에 담긴 이미지가 아닌가 한다. 선비 또한 일상을 살아가는 인간인지라 이런 모습이 전부는 아닐 것인데 고착화된 이미지로 인해 고충이 많았을 것 같아 미소가 절로 인다. 그런 이미지의 선비이기에 비록 글이지만 자신의 감정을 노출하는 모습은 낯설기도 하지만 역으로 생각하면 그만큼 확실한 감정 전달도 없을 듯하다.
이러한 모습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이 바로 그 선비들이 남긴 글 속에서 찾을 수 있다. 사랑하는 자식과 아내, 가족, 벗, 스승의 죽음 앞에 미어진 가슴을 부여잡고 소리 없이 울었던 조선 선비들의 절절하고 곡진한 문장을 담은 책이 ‘새로 쓰는 택리지(10권)’의 저자 신정일의‘홀로 서서 길게 통곡하니’다.
정약용, 박지원, 이덕무, 홍대용, 허균, 김정희, 기대승, 윤선도, 이산해, 송시열, 정철 등 우리가 그 이름만으로도 익히 알만한 조선의 선비들이다. 그 선비들의 남겨진 글 속에 부인, 자식, 형제, 스승, 벗의 죽음을 맞아 그 애통한 심정을 글로 남긴 것들을 모았다.
이 책에서 주목하는 감정은 슬픔이다. 그 슬픔을 나타내는 말이 ‘통(痛)’이다. 아버지를 잃은 슬픔은 하늘이 무너지는 고통과 같다는 뜻의 ‘천붕지통(天崩之痛)’, 남편을 여읜 아내의 아픔은 성(城)이 무너져 내리는 듯한 고통이라는 ‘붕성지통(崩城之痛)’, 아들 잃은 부모의 고통 ‘서하지통(西河之痛)’ 등이 그것이다. 체면과 절제를 중시했던 조선 선비들은 이러한 고통에서 자신의 감정을 어떻게 표현했는지에 주목하여 그에 관련된 글 44편을 모았다.
“두터운 정의는 차마 글로 쓸 수 없고 아프고 쓸쓸한 말은 혹시라도 너의 마음을 근심케 할까 두렵다.”- 신대우 둘째딸의 1주기를 맞아
“월하노인 통해 저승에 하소연해 / 내세에는 우리 부부 바꾸어 태어나리 / 나는 죽고 그대만이 천리밖에 살아남아 / 그대에게 이 슬픔을 알게 하리라.” - 김정희, 아내 예안 이씨의 죽음을 애도하며
“기둥이 부러지니 사람은 절망하고 / 난초가 시드니 해는 장차 추워지리 / 옛집에 슬픈 바람이 일고 / 거친 산에는 묵은 풀이 쇠잔하도다.”- 기대승, 죽은 동생을 위한 만장 중에서
선비 역시 한 인간으로 따뜻한 마음을 지닌 한 아버지이자 아내를 그리워하는 남편이며 뜻을 함께 나누는 벗이었다. 어쩌면 지켜야만 할 체면과 위신으로 인해 억눌러 두었던 감정을 표현할 때가 되면 더 절절한 슬픔 및 눈물, 아픔을 담았을지도 모른다. 가슴시린 선비들의 굵은 눈물을 흘릴 때 그 속은 어떨까? 옛사람들의 모습 속에서 슬픔을 감당하는 모습을 배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