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버지입니다 - <땡큐 대디> 원작 팀 호이트 부자의 아름다운 동행
딕 호이트.던 예거 지음, 김정한 옮김 / 라이스메이커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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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어버이날, 한 아버지가 스스로 세상을 등졌다. 아들을 불의의 사고로 먼저 보내고 억겁의 시간을 보내던 아버지의 선택이 목숨을 버리는 것이었다. 죽음으로 무엇을 말하고 싶었을까? 이런 현실에서 수도 서울에만 25만 명의 독거노인이 살아간다고 한다. 이 또한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 선택한 삶이라는 것이다. 가족의 해체가 우리가 사는 현대사회의 현실임을 반증하는 단면이 아닐까 싶다.

 

이렇게 해체되는 가족임에도 불구하고 가족은 인간으로 태어나 귀속되는 가장 기초단위이며 한 인간이 성장하는 자양분이다. 그렇기에 가족은 기적과도 같은 일들을 만들어 온 힘의 근원이 된다. 이런 가족의 힘을 확인할 수 있는 단적인 사례가 여기에 있다. 팀 호이트 부자의 아름다운 동행을 담은 책나는 아버지입니다이다.

 

"아빠와 함께 달리고 싶어요!"라는 한마디에 시작된 팀 호이트 부자의 레이스는 가족 특히 아버지의 존재가 어떤 의미로 다가서는지 확인할 수 있다. 뇌성마비 아들을 휠체어에 태우고, 자신은 그 뒤에서 휠체어를 밀며 보스턴 마라톤대회 풀코스와 하와이 철인3종 경기를 완주한 철인 딕 호이트. 그와 그의 아들이 함께 일구어낸 이야기를 담았다. 영화 탱큐, 대디의 주인공들이다. 유튜브를 비롯한 다양한 매체를 통해 전 세계 1500만의 가슴을 울린 감동 실화의 주인공들의 이야기가 가족 드라마처럼 펼쳐진다.

 

마라톤 42.195킬로미터 64, 보스턴 마라톤 대회 26회에 24년 연속 완주, 세계 철인3종 경기 대회 6, 단축 철인3종 경기 206회 완주, 미국 대륙 6000킬로미터 횡단…….이들이 이런 엄청난 도전을 할 수 있었던 배경은 어디에 있을까? “아버지, 아버지가 없었다면 저는 할 수 없었어요”, “아들아, 네가 없었다면 나는 하지 않았다가족이라는 믿음과 배려를 바탕으로 용기가 그 힘이었을 것이다.

 

태어나는 과정에서 뇌성마비에 걸려 장애우로 살아야 하는 아들을 온갖 사회적 편견과 제약에도 불구하고 정상인으로 성장하도록 함께 길을 걸어간 가족과 그 길에서 주인공이었던 아들의 감동적인 이야기다. 몸은 불편하지만 세상 그 누구보다 강인한 정신력과 긍정적인 마음가짐으로 역경을 이겨낸 아들과 그런 아들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한 위대한 아버지의 이야기는 팀 호이트 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지구상 어디든 가족이 있고 아버지를 둔 자식이라면 모양만 다를 뿐 충분히 있는 사례다. 하지만, 어느 가족보다 딕 호이트는 더 큰 일을 해냈다.

 

할 수 있다라는 신념, 이 신념을 실현해가는 이들의 행보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희망을 전해준다. 그 바탕에 아버지가 있다. 아버지를 중심으로 온 가족이 만들어가는 감동의 드라마가 가족의 해체의 시대에 가족의 의미를 다시금 생각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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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종 2015-05-09 19: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불리는 것만으로도 많은 무게가 실리는 이름입니다, `어머니`와는 또 다른 느낌으로. . .
 
조선의 지식계보학
최연식 지음 / 옥당(북커스베르겐)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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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조선을 이해하는데 빠져서는 안 되는 것이 양반과 사대부의 나라였다는 점이다. 왕조국가인 조선을 양반과 사대부의 나라라고 칭할 수 있는 것은 무엇보다 조선이 세워지고 그 기틀을 만드는 과정에서 유교를 근간으로 한 왕권과 신권의 조화를 밑바탕으로 해서 일궈온 나라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기에 조선은 왕과 양반 사대부가 권력을 나눠가지며 왕권과 신권의 권력의 기울기에 의해 파란만장한 역사를 만들어왔다고도 볼 수 있다. 서로가 권력의 중심을 향하되 상대를 인정하고 공존을 모색했기에 500년 역사를 이어올 수 있었다고 본다.

 

그렇다면 이렇게 왕권과 균형을 이루며 국가를 이끌어 왔던 세력들 중 조선을 지탱했던 사상적 근거인 성리학의 대가들은 어떤 계보를 형성했을까? 조선을 이끌었던 대표적인 선비들을 통해 그 맥락을 찾아보는 것도 의미 있는 작업이 될 것이다. 조선 시대의 선비는 현대사회의 지식인과도 맥을 같이한다고 볼 수 있다. 현대 사회와는 달리 조선은 지식인의 상징적 역할을 했던 것이 확실하게 존재한다. ‘문묘종사가 그것이다.

 

문묘(文廟)는 문성왕묘(文宣王廟)의 약자로 공자묘(孔子廟)라고도 부른다. 공자(孔子)의 위패(位牌)를 모신 사당(祀堂)을 가리키는 말이며, 흔히 공자를 중심으로 그 핵심 제자들의 위패를 모시곤 한다.”조선이 개국하면서 종묘와 더불어 문묘는 커다란 의미를 가진 곳이다. 조선에서 문묘는 성균관에서 관장하며 이 문묘에 종사된 우리나라 사람으로는 총 18명이 있으며 최치원, 설총, 안향을 빼면 조선시대에 문묘 된 사람은 정몽주, 김굉필, 정여창, 조광조, 이언적, 이황, 이이, 성혼, 김장생, 송시열, 송준길, 박세채, 김인후, 조헌, 김집 등 15 명이다.

 

조선의 지식계보학은 바로 조선시대에 문묘종사 된 이 15명에 대한 이야기를 담았다. 개별 인물들의 학문과 정치적 영향력에 중심을 두고 살피는 것이 아니라 정치적 역학관계 속에서 어떤 과정을 통해 이들이 문묘에 종사되었는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는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본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인 면이 있으나 문묘 종사와 관련되어 각 개별 인사들의 면면을 살핀다는 점에서는 미약한 점이 있다.

 

15명의 문묘종사 과정을 따라가는 이 조선의 지식계보학은 크게 세 번의 쟁점화를 통해 살피고 있다. 먼저 중종반정이후 조광조에 의해 제기되어 정몽주의 문묘종사 과정에서는 정도전과 정몽주를 비교하며 어떻게 고려의 충신인 정몽주가 조선의 문묘에 첫 종사자가 되었는지를 알아간다. 두 번째로는 이황에 의해 김굉필, 정여창, 조광조, 이언적에 대한 계보의 추정과 더불어 문묘종사에 대한 구체적 과정, 세 번째로는 이황, 이이 성혼 등으로 정치적 역학관계 속에 임금과 당파사이의 정치적 타협의 산물로 만들어졌던 과정을 추적한다.

 

조선의 문묘 종사에서 중요한 것은 대상자 선정 의 표면적 결과가 아니라 대상자 선정 과정에서 드러난 권력정치의 적나라한 속살이라 말하며 개별 인물 연구가 아닌 문묘 종사의 정치 동학에 초점을 맞추어 이야기를 풀어나고 있는 조선의 지식계보학에서 주목하는 것은 새로운 시각으로 문묘종사를 통해 지식계보를 따져봤다는 긍정적인 측면에도 불구하고 온전하게 지식계보학의 내용을 채워가진 못했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이는 문묘종사가 가지는 상징적 의미에서 부정적인 측면의 강조로 비춰지는 측면이 있어 문묘종사가 가지는 근본적 취지에 보다 주목한 연구와 결합 된다면 보다 풍부한 조선의 지식계보학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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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종 2015-05-09 23: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문묘종사`의 상징성이 그런 것이라면, 책의 제목이 `조선의 정.치.계보학`이었어도 괜찮을 뻔 했겠네요^^
 
행복만을 보았다
그레구아르 들라쿠르 지음, 이선민 옮김 / 문학테라피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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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사회는 다양한 범죄의 양태를 보여주지만 무엇보다도 엽기적인 것은 가족 구성원을 대상으로 하는 범죄를 심심찮게 자주 본다는 것이다. 가장이나 부인이 가족 구성원의 일부를 살해하고 자신은 자살을 시도하거나 자살한 것과 같은 범죄가 그것이다.

 

이러한 범죄 형태는 영화나 범죄드라마, 범죄를 그리는 문학작품들 속에서 주목하여 관객이나 독자들의 이목을 사로잡기 위한 도구로 사용하기도 한다. 하지만 같은 범죄라도 무엇에 집중하여 보는가에 따라 커다란 차이를 보인다. 범인을 잡는 것과 이미 범인이 누구인지 아는 상황에서 그 범인의 심리적 태도를 추적하는 것도 있다.

 

프랑스 작가 그레구아르 들라쿠르행복만을 보았다역시 한 사람의 성장과정과 충격적인 사건을 저지르고 난 후 이해 당사자의 이야기로 구성한 작품이다. 이 작품의 저자 그레구아르 들라쿠르는 프랑스의 카피라이터 출신 작가로 2011그 가문의 소설가이후 발표하는 작품마다 주목을 받으며 작품성과 대중성을 동시에 인정받은 작가라고 한다.

 

행복만을 보았다의 이야기의 흐름은 부모, 나 그리고 자식으로 이어지는 가정 속 환경의 변화가 나에게 미친 영향으로부터 자식에게로 이어진 일련의 과정을 따라간다. 냉철한 손해사정사인 한 남자가 있다. 그는 오랜 시간 동안 다른 사람 목숨의 가치를 매기는 일을 해왔다. 그러다 문득, 그렇다면 과연 자신의 인생의 가치는 얼마쯤 되는지 따져보는 데서 출발하는 소설이다.

 

우리의 인생의 가치는 얼마일까? 라는 1부는 아버지를 중심으로 한 부모와 자신 그리고 자식에게로 이어지는 일련의 과정에서 각 사건마다 돈으로 환산된 이야기를 풀어간다. 평범한 일상이 어떻게 점점 광기에 휩싸여 가는지를 보여주며 그 결말은 주인공이 자신의 딸을 권총으로 쏘는 개 같은 일이 벌어진다. 왜 당신을 날 먼저 쏘았나요? 2부는 그 개 같은 일이 있고 난 후 주인공이 정신과 의사와의 상담 과정 그리고 멕시코로 추방된 이후의 새로운 삶을 그리고 있으며 3부 행복만을 보았다는 권총을 맞은 딸의 시각에서 개 같은 일로 인한 증오와 고통, 그것을 치유하고 희망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이 그려져 있다.

 

용서할 수 없었던 아버지를 찾아가서 옆자리에 앉는 장면을 끝으로 그러니까 인생이란 결국 힘겹더라도 살아갈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라는 문장과 함께 끝을 맺는다. 무엇이든 돈으로 환산되고 그 환산된 돈의 크기에 따라 인간의 가치마저 결정하는 현대사회에서 인간의 가치는 무엇으로 어떻게 평가되어야 할까? 아니 그 평가라는 것이 어떤 의미를 가질까?

 

사연 많은 한 사내의 특정한 경험이 아니라 동시대를 살아가는 누구나 겪을 수 있는 가치관의 혼란과 그로부터 느끼는 상실과 좌절은 평화로운 일상을 파격적인 사건으로 몰고 갈 수도 있고 애기치 못한 사건으로 그 대상이 되기도 한다. 이런 사회에서 인간의 궁극적 가치 기준을 어디에 두어야할까?

 

무엇을 어떻게 이야기하든 삶의 가치는 인간의 행복에 둔다. 이 행복을 찾아가는 길에서 자신을 어떤 삶을 살아야 할지 깊은 고민과 성찰로 이끄는 기회를 제공해 주는 작품으로 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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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행복하자 2015-05-01 00: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왜 저를 먼저 쏘았나요? 책을 덮으면서 맘이 많이 무거웠던 책입니다.
수치로 환산될수밖에 없는 우리의 삶에 환산불가능한 가치를 어떻게 수긍시켜야하는건지...

해피엔딩이었지만 해피엔딩처럼 느껴지지않았던 것 같아요

무진無盡 2015-05-01 00:23   좋아요 0 | URL
읽어가기 버거운 작품이긴했습니다.
삶의 가치는 그 삶에 부여하고 싶은 사람의 가치관에 의해 결정되어지는 것이라 우겨보고 싶은 마음입니다. 돈으로 환산되는 현실이지만 그게 전부는 이니기에ᆢ

나비종 2015-05-10 21: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한글자」라는 책에서 `낭비란 비싼 칼을 사는 게 아니라, 그 칼을 사서 칼집 안에 가둬두는 것`이라는 문구를 본 적이 있습니다. 삶의 가치. . 한참을 생각하게 하는 묵직하고 어려운 말인데요. 가치관이 `비싼 칼`을 사는 선택의 문제라면, 실제로 그 칼을 어떻게 활용하는가는 선택자의 몫으로 남기 때문에 어려워지는 게 아닌가 생각했습니다. 삶은 동사이고, 모든 동사는 용기를 필요로 하니까요.
저마다 행복이라는 목적을 향해 달려간다해도 각기 다른 방향에서 향해 가기 때문에 기준도 제각각이라, 비교할 수 있는 가치를 매기는 것은 거의 불가능할 것 같기도 하구요. 결국 `행복만을 보았다`는 딸처럼 자신만이 스스로 살아온 삶의 가치를 판단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 되는 걸까요?

무진無盡 2015-05-10 21:35   좋아요 1 | URL
나 자신 이외에도 누군가는 알아주는 사람이 있길 희망하는거지요. 그것이 결국 공감이며 삶을 바꿔간 수 있는 출발점이 아닌가 합니다.
 
반짝반짝 나의 서른 - 조금씩 채워져가는 나를 만날 시간
조선진 글.그림 / 북라이프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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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서른 즈음을 돌아본다

내 나이 마흔을 기다렸었다. 불혹(不惑)이라고 하는 논어, 위정편에서 공자는 일생을 회고하며 자신의 학문 수양의 발전 과정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나이 40를 불혹으로 규정한 것으로부터 기인한다. ‘미혹되지 아니함’. ‘어떤 유혹에도 넘어가지 않음에 대한 이러한 규정으로부터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기회로 삼고자 한 것이다. 삼십대에서 사십대로 넘어갔지만 일상에서의 변화는 없었다.

 

꼭 공자의 그런 규정이 아니더라도 스물아홉과 서른, 서른아홉과 마흔, 마흔아홉과 쉰 등 단위가 바뀌는 때를 기다리기도 하고 때론 그 시기의 지나침을 아쉬워하기도 한다. 태어면서 성장하고 나이 들어 죽을 때까지 특정한 시기를 규정하여 질적인 변화를 가져오는 것은 찾아보기 쉽지 않다. 그러더라도 단위가 바뀌는 특정한 시기에 도달하는 사람들은 그 시가가 주는 무엇인가를 찾아보려고 고심한다. 하지만, 모든 사람들이 그렇듯 어제와 오늘이 별 다른 차이점 없듯 서른도, 마흔도, 쉰도 그냥 일상의 하루일뿐이다.

 

그렇다면 일상에서 이렇게 특정 짓는 어떤 때를 규정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을까? 꼭 그렇지만은 않아 보인다. 지난 삶을 돌아보도 자신의 현주소를 살펴 다가올 내일을 보다 알차게 살아가려는 차원에서는 대단한 의미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반짝반짝 나의 서른"완벽하진 않아도 지금의 내가 좋다" 는 서른을 맞이한 일러스트 작가 조선진의 글과 그림으로 엮어진 책이다. 작가는 묻는다. 아직 청춘이냐고...ᆢ 일, 사랑, 인간관계 등 서른 즈음, 변화의 시점에 놓인 저자는 자신의 일상을 돌아보며 누구나 한 번쯤 겪게 되는 일상의 고민과 변화들을 섬세하게 그려낸 그림 에세이다.

 

나 아직 청춘일까, 다시 사랑을 할 수 있을까, 낭만적 밥벌이는 환상일까, 어떻게 해야 행복해질 수 있지, 다시 배낭을 메고 떠날 수 있을까, 이제는 별일 없이 살 수 있을까.” 저자가 주목하는 화두라고도 할 수 있는 질문들이다. 누구나 이 질문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만큼 삶의 구체적인 모습과 직결되는 질문들이다.

 

청년에서 어른으로 진입하는 문턱인 서른, 이 시기를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어쩌면 삶 전체에 영향을 줄 수 있다. 서른, 누구도 아닌 와 더욱 깊은 관계를 맺을 시간이라는 시각으로 접한다. 막연한 두려움을 걷어내고 스스로 묻고 답하다 보면 제법 멋진 어른의 모습에 한 발짝 다가가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서 중심은 오늘에 있다. 내일은 누구도 모른다. 그 내일을 담보로 오늘 내 삶을 희생한다면 그 내일은 영원히 내게 오지 않을 수도 있다.

 

내 나이 쉰 지천명을 넘어섰다. 서른 그때로부터 옛 어른들의 시간법으로 강산이 두어 번 변할 시간이 지났다. 서른 즈음에 난 무엇을 생각하고 살았나를 되돌아보는 계기가 된다. 서른 즈음의 사람에게는 지금, 이 현재의 중요성을 서른을 넘어선 사람들에도 서른 즈음의 시기를 돌아보며 지금, 현재를 보다 알차게 살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주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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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 서서 길게 통곡하니 - 소리 없는 통곡, 선비들의 눈물
신정일 엮음 / 루이앤휴잇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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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비들의 눈물

옛사람들의 감정 표현은 솔직하다. 글로 만나는 옛사람들의 삶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보다 훨씬 감정에 충실한 모습이었다고 보인다. 문장이나 시를 통해 사랑하는 가족이나 부부 사이, 스승이나 벗과의 마음 나눔, 연인을 그리워하는 마음 등을 보면 확실히 절절한 내용이 많다. 선비라고 예외일 수는 없어 보인다.

 

선비라고 하면 우선 의관정제(衣冠整齊)하고 서안(書案) 위 펼쳐진 책을 읽는 모습을 상상한다. 극도로 절제된 언행을 통해 자신을 관리하며 근엄한 모습으로 감정에 치우치는 일이 없는 모습이 아마도 선비라는 말에 담긴 이미지가 아닌가 한다. 선비 또한 일상을 살아가는 인간인지라 이런 모습이 전부는 아닐 것인데 고착화된 이미지로 인해 고충이 많았을 것 같아 미소가 절로 인다. 그런 이미지의 선비이기에 비록 글이지만 자신의 감정을 노출하는 모습은 낯설기도 하지만 역으로 생각하면 그만큼 확실한 감정 전달도 없을 듯하다.

 

이러한 모습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이 바로 그 선비들이 남긴 글 속에서 찾을 수 있다. 사랑하는 자식과 아내, 가족, , 스승의 죽음 앞에 미어진 가슴을 부여잡고 소리 없이 울었던 조선 선비들의 절절하고 곡진한 문장을 담은 책이 새로 쓰는 택리지(10)’의 저자 신정일의홀로 서서 길게 통곡하니.

 

정약용, 박지원, 이덕무, 홍대용, 허균, 김정희, 기대승, 윤선도, 이산해, 송시열, 정철 등 우리가 그 이름만으로도 익히 알만한 조선의 선비들이다. 그 선비들의 남겨진 글 속에 부인, 자식, 형제, 스승, 벗의 죽음을 맞아 그 애통한 심정을 글로 남긴 것들을 모았다.

 

이 책에서 주목하는 감정은 슬픔이다. 그 슬픔을 나타내는 말이 ()’이다. 아버지를 잃은 슬픔은 하늘이 무너지는 고통과 같다는 뜻의 천붕지통(天崩之痛)’, 남편을 여읜 아내의 아픔은 성()이 무너져 내리는 듯한 고통이라는 붕성지통(崩城之痛)’, 아들 잃은 부모의 고통 서하지통(西河之痛)’ 등이 그것이다. 체면과 절제를 중시했던 조선 선비들은 이러한 고통에서 자신의 감정을 어떻게 표현했는지에 주목하여 그에 관련된 글 44편을 모았다.

 

두터운 정의는 차마 글로 쓸 수 없고 아프고 쓸쓸한 말은 혹시라도 너의 마음을 근심케 할까 두렵다.”- 신대우 둘째딸의 1주기를 맞아

 

월하노인 통해 저승에 하소연해 / 내세에는 우리 부부 바꾸어 태어나리 / 나는 죽고 그대만이 천리밖에 살아남아 / 그대에게 이 슬픔을 알게 하리라.” - 김정희, 아내 예안 이씨의 죽음을 애도하며

 

기둥이 부러지니 사람은 절망하고 / 난초가 시드니 해는 장차 추워지리 / 옛집에 슬픈 바람이 일고 / 거친 산에는 묵은 풀이 쇠잔하도다.”- 기대승, 죽은 동생을 위한 만장 중에서

 

선비 역시 한 인간으로 따뜻한 마음을 지닌 한 아버지이자 아내를 그리워하는 남편이며 뜻을 함께 나누는 벗이었다. 어쩌면 지켜야만 할 체면과 위신으로 인해 억눌러 두었던 감정을 표현할 때가 되면 더 절절한 슬픔 및 눈물, 아픔을 담았을지도 모른다. 가슴시린 선비들의 굵은 눈물을 흘릴 때 그 속은 어떨까? 옛사람들의 모습 속에서 슬픔을 감당하는 모습을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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