핸드드립 커피 좋아하세요? - 시시때때로 커피가 그리운 사람들을 위한 커피 안내서
김훈태 지음 / 갤리온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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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 그 것도 같고 아닌 것도 같다
좋아하는 게 있나요? 라는 질문에 선 듯 '커피 좋아해요‘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루에도 몇 잔씩이나 마시면서 그 맛을 음미하며 넉넉한 마음의 여유를 찾는다는 것, 소소하지만 얼마나 행복한 시간일까? 누려본 사람만이 아는 것이리라. 하지만 이런 호사를 누리면서도 무슨 맛으로 마셔요? 라는 질문에 선 듯 답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이는 자신이 좋아하는 커피의 맛을 몰라서가 아니라 마땅히 언어로 표현할만한 말을 찾지 못해서일 수도 있다. 

무릇, 무엇인가를 좋아한다는 것은 그것을 즐겨 찾고 자주 누린다는 것이다. 좋아한다고는 말하면서도 자주 찾지 않고 또 즐기지도 않는 것이라면 그것은 좋아하는 것이 아니다. 단지, 좋아하고 싶은 마음의 표현일 뿐인 것이다. 이는 커피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영화, 음악, 책, 나들이 등과 같이 사람이 살아가는 동안 잠시라도 본업에서 벗어나 짬을 누리는 시간동안 함께할 수 있는 것들이다. 하여, 좋아하면 찾게 되고 자주 누리게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렇게 좋아해서 시작한 것들 중에 주종이 전도되어 본격적으로 자신의 일상과 본업을 결합하는 사람도 생기게 마련이다. 이 책 ‘핸드드립 커피 좋아하세요?’의 저자도 그런 사람 중 하나가 아닐까 한다. 커피한잔을 마시기 위해 3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버스와 택시를 갈아타면서 갈 수 있는 사람은 흔치 않다. 저자는 그렇게 자신이 좋아하는 커피를 마시기 위해 그 시간을 아낌없이 소비하면서도 행복을 담을 줄 아는 사람인 것이다.

커피를 싫어했던 그가 커피를 마시게 된 동기에서부터 커피 마니아가 되기까지의 과정이 이 책속에 녹아있다. 이 책에는 저자의 말처럼 ‘시시때때로 커피가 그리운 사람들을 위한 커피 안내서’다 커피의 종류, 원산지, 원산지별 커피의 특징, 로스팅, 핸드드립 커피 만드는 법, 커피 즐기는 법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물론 저자의 커피사랑이 듬북 담겨있다 점이 더 매력적이다.

하지만, 원두고르기, 로스팅 그리고 한 잔의 커피가 완성되기까지 무수한 과정에 벌어지는 다양한 맛의 변화를 다 감지하며 마시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버릇처럼 때론 뭔가 빠져있는 것 같은 아쉬움이 커피를 마시는 주요한 이유가 아닐까도 생각해 본다. 저자가 소개하는 맛있는 거피를 마시려면 무지 복작한 과정을 거쳐야 하고 또 진정으로 그 맛을 낼 수 있는 곳이 별로 없는 현실이다. 그를 따라 진정한 커피 맛을 느낄 수 없는 것이라면 그저 동전 몇 개로 해결되는 자판기 커피가 최고일 때도 있지 않을까 한다.

이 책에는 금방이라도 갓 볶은 원두의 향이 물씬 풍길 것 같은 사진 또한 커피 향만큼이나 매력적으로 보인다. 그 향기는 본문에 등장하는 몇몇 거피전문점 사장의 전문가의 포스가 강하게 풍기는 향기라기보다는 핸드드립 커피를 마신다는 택시 운전사의 향기에 더 가깝지 않을까? 이는 저자가 커피원산지의 노동자들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을 전하는 것과도 상통할 것이라고 본다.

시인 원재훈은 ‘바다와 커피’라는 소설에서 ‘한 잔의 커피는 인생’과도 같다는 말했다. 인생도 당야한 변수를 거치며 자신만의 향과 맛을 만들어 가듯 ‘그 것도 같고 아닌 것도 같지만 은근한 매력이 있어 벗어날 수 없는 것’ 같이 조금은 벅찬 삶을 가꾸는 사람들이 자신만의 그 맛을 찾아가는 것이 진정 무엇인가를 좋아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고운 햇살이 창문으로 번지는 따스한 곳에 앉아 코끝을 자극하는 커피 향에 취해 잠시 몸과 마음을 짓누르는 일상을 벗어난 호사를 꿈꿔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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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할 시간은 그리 많지 않다 - 우리 시대의 스승 열여덟 분의 행복법문
고산스님 외 17인 지음 / 불광출판사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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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누구도 아닌 나 자신을 사랑하는 일
누구나 행복을 꿈꾼다. 그렇지만 자신이 행복하다고 하는 사람은 찾아보기 힘들다. 왜 그럴까? 늘 행복을 꿈꾸면서도 행복하지 않은 일상을 살아가는 것은 암울하기만할 텐데도 여전히 행복하지 못한 일상을 살아간다. 유사 이래 눈 밝은 이들은 그 이유를 찾아 수많은 질문하고 그 해답을 찾아왔다. 하지만 여전히 그 의문은 지속된다.

이 행복한 삶에 대한 해답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답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왜 행복하지 않은 삶을 살아갈까? 이 딜레마에 대해 또 답을 제시하는 지혜로운 사람들의 이야기를 만난다. 자신과 이웃의 진정한 행복을 찾아 속세를 떠나 모진 수행의 길에 서 있는 사람들이 그 답을 제시하고 있다. 

이 책 ‘사랑할 시간은 그리 많지 않다’는 수행의 과정에 있는 큰 스님들이 대중을 향해 자비심의 마음으로 내 놓은 수행의 결과물들이다. 그 스님들이 불교계 주간신문과 월간지를 통해 발표했던 이야기를 모아 엮어낸 책이다. 고산, 밀운, 종진, 정무, 법산, 청화, 도법, 무여, 종광, 수진, 청전, 우송, 법만, 지광, 심산, 청안, 해주, 일진 스님 등 이미 대중적으로 알려진 스님을 비롯하여 수행에 전념하시는 스님 열여덟 분이 대중과 함께 행복을 찾는 법문이다.

이들 법문 속에는 불교와 익숙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다소 생소한 말들도 분명 있다. 하지만 행복을 꿈꾸는 사람들이 읽어 가는데 그리 큰 장애로 다가오지는 않을 정도라고 생각된다. 물론 사람에 따라 개인차는 있을 것이다. 그렇더라도 일상에서 부딪치는 지극히 현실적인 문제에 대한 사람들의 마음가짐을 이야기하기에 머리를 끄덕일 수 있다. 

부처님의 모든 이야기는 결국, 모든 사람들에게 자신이 찾는 꿈이 실현 가능하며 그 힘은 자신에게 있다는 점을 알려주는 것이리라. 인류의 스승들이 밝혀 놓은 삶의 지혜가 있음에도 늘 행복하지 않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대부분인 것은 답이 없어서가 아니라 그 답이 자신의 것이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점에 비추어 보면 이 책 역시 마찬가지일수도 있다.

‘수천의 생을 반복한다 해도 사랑하는 사람과 다시 만난다는 것은 드문 일이다. 지금 후회 없이 사랑하라. 사랑할 시간은 그리 많지 않다’. 샨티데바『입보리행론』中 

인간이 느끼는 다양한 문제의 근본은 사랑에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자신과 이웃 그리고 자신을 둘러싼 모든 생물에 대해 사랑하는 마음을 펼칠 때 비로소 행복은 내 앞에 나타는 것이 아닐까? 스님들이 내 놓은 법문들의 요체는 바로 사랑일 것이다. 진정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은 자신을 존재하게 한 근원에 대한 성찰과 더불어 그 마음을 이웃에게도 나눌 것이기에 말이다. 스님들의 말처럼 ‘행복과 불행은 둘이 아니며 스스로 지은 것’이기에 내 마음 살펴 자신과 이웃을 사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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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성 소화 선집 문학동네 한국고전문학전집 9
김준형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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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놓고 말하지 못하지만 누구나 관심 있는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고 한다. 지나친 것은 미치지 못한 것과 같다는 점에 있어서 농담 삼아 이야기하는 것들이 대부분이 아닐까 한다. 말에 걸리지 않고 하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쉽사리 흘리게 되는 것은 아마도 성(性)과 관련된 이야기가 아닐까 싶다. 하지만 때론 웃자고 시작한 이야기에서 울게 되는 경우도 생기기 마련이다. 바로 과유불급이 문제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성(性)과 관련된 많은 이야기가 전해 온다. 우리나라 역시 마찬가지다. 인간의 근본적인 욕망과 무관하지 않을 이 성 이야기는 시대의 생활상을 반영하며 각색되고 변색되어 오늘에 이르게 된 것이리라. 하지만 이러한 성 이야기가 자주 언급되는 시기는 따로 있는 듯하다. 생활이 각박하거나 혼란스러운 사회상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한다. 

이 책 ‘조선 후기 성 소화 선집’도 그런 의미에서 불안정했던 조선 후기의 시대상을 반영하고 있다고 보여 진다. 이 책의 근거가 되고 있는 ‘이야기책’, ‘소낭’, ‘진담론’, ‘파수추’, ‘어스신화’, ‘성수패설’, ‘기문’, ‘교수잡사’, ‘각수록’, ‘파적록’, ‘거면록’ 등 여러 종류의 책들이 만들어진 시기 역시 신분상의 문제나 사회적 제약에 의해 뜻한 바를 이뤄가기 힘들었던 시기에 작성된 것들이 대분이라고 한다. 이 책은 바로 이러한 기록물들에서 성 이야기만을 선별하여 해석하고 편찬한 책이다.

은밀하고 때론 도발적인 이러한 이야기들이 엄격한 신분사회에서 공유되었다는 것이 새삼스럽기도 하지만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소통되었다는 점은 분명 이유가 있을 것이다. 노골적으로 대놓고 말 할 수 없었던 이야기를 이러한 성과 관련된 이야기로 풍자하여 양반이나 권력에 대한 대항의 의미도 있었다는 점이 눈여겨 볼만한 것이 아닌가 싶다. 이는 현대 사회에서도 성로비 등에서 보이듯 돈, 권력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조선 후기 성 소화 선집’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이야기는 권세를 부리는 양반들이 자신의 욕망을 충족하기 위해 사회적으로 통용되었던 기생이나 첩들과 사이의 이야기다. 또한 그 범위에만 한정된 이야기가 아니라 버젓이 행세께나 했던 양반가의 부부사이에서도 마찬가지다. 무색하고 당혹스러운 이런 이야기들은 인간의 근본적인 욕망과 관련된 것이 바로 성 이야기이기에 저변에 확산되고 소통되는 근간이 아닐까 싶다.

이 책은 열 한권이나 되는 여러 책에서 발간 시대 순으로 옮겨온 것이라고 한다. 다양한 책들에서 모았기에 비슷한 이야기가 중복되기도 한다. 이해되는 이야기가 대부분이지만 무슨 뜻을 담았는지 모두지 알 수 없는 이야기도 있다. 하지만 짧은 글들이 대부분이기에 읽어가는 대에는 무리가 없다. 번역자는 이들 이야기들을 통해 당시 지식인들이 사회적으로 억눌린 감정을 발산했을 것이라 이야기하고 있는데 일면 타당성이 있는 지적으로 보인다.

누구도 대놓고 이야기 하지만 못하더라도 은근히 관심 갖는 것이 성 이야기다. 이것은 시대나 남녀노소를 불문한다. 타고난 인간의 본성이기에 그럴 것이지만 이러한 이야기 속에 사회적 한계나 본능에 대한 욕심을 해학을 통해 그 속에 진정으로 담고 싶었던 뜻을 알아가는 것도 흥미로운 일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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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정도 - 윤석철 교수 제4의 10년 주기 작作
윤석철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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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와 나의 공존이 인류의 희망이다
목표를 성공으로 이끄는 것에 대한 관심은 많다. 인류가 자연과 더불어 삶을 개척하는 모든 역사가 바로 이 과정이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닐 것이다. 인류가 자연의 법칙에 순응하며 살아남는 생존이 전부였던 시대를 벗어나 이제 삶의 질에 대한 보다 높은 요구를 하는 시대이다 보니 그 삶의 질에 대한 깊이와 폭을 넓혀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목표가 된 것이다.

삶의 가치를 무엇을 근거로 삼는가의 문제는 시대에 따라 분명하게 달라져 왔다. 풍요한 물질문명, 정신적 가치, 삶의 질, 행복한 삶 등으로 인류의 가치척도의 기준이 변했다고는 하지만 만만치 않는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이러한 것들이 얼마나 현실적인 가치로 받아들여지는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그렇더라도 진보된 삶을 추구한다는 점에서는 그 자치가 날로 높아지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이 책 ‘삶의 정도’는 바로 그러한 인식에서 출발하여 무엇이 진정 가치 있는 삶인지를 돌아보게 하는 책이다. 저자는 문학, 인문사회, 자연과학, 경영학 등을 통해 인류가 자연과 더불어 삶을 영유하던 때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에서 달라진 가치의 어떻게 실현해 갈 것인지에 대해 깊이 있는 성찰을 일정한 흐름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이 흐름을 먼저 살펴보기 위해서 이 책의 목차를 유심히 따라갈 필요성이 느껴진다.

저자는 머리말에서 삶의 복잡함을 벗어나 간결함을 추구하라고 한다. 이는 세상이 복잡해 지면서 사람들의 머릿속 생각이 복잡해지고 욕망과 가치관이 복잡해 졌다고 한다. 이러한 복잡함은 분명한 목적을 혼란스럽게 하는 것이며 이는 곧 목적을 성공적으로 이뤄내는데 커다란 장애요소로 파악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오늘날 컴퓨터의 가공할 만한 능력이 아주 단순한 이진법에서 출발하듯 삶에서도 복잡함을 간결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저자는 이 책에서 ‘목적함수’란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한 방향성이며 ‘수단매체’란 목적함수를 달성하기 위해 필요한 ‘수단적 도구’라고 정의한다. 이 ‘목적함수’와 ‘수단매체’라는 용어를 사용하여 삶의 정도를 밝혀가고 있다. 이 책은 바로 이 과정을 인간이 자연의 법칙을 밝혀내고 그것을 이용하여 인간의 삶의 질을 높여가는 방향을 다양한 학문적 성과를 통해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저자가 예시하는 문학작품이나 자연과학적 법칙을 통해 보다 쉽게 그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저자는 인간의 한계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라는 의문의 해결을 인간의 능력은 유한하고 불완전하며, 인간 능력의 한계를 확장하기 위해서는 ‘수단적 도구’인 ‘수단매체’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로 파악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저자가 찾아낸 삶의 정도는 ‘너 죽고 나살자’에서 ‘너도 살고 나도 살자’로 모아진다. 저자는 이러한 성찰을 개인, 기업 그리고 국가적 차원에서 적용하는 사례들을 찾아 잘 보여준다.

저자의 개인적인 생각일 것이라 판단되지만 한국전쟁에 대해 ‘종전’이라고 보는 점과 미국을 제2의 조국이라고 받아들이는 점은 결코 일반화 할 수 없는 것이 아닌가 싶다. 그런 점에서 동의하지 못하더라도 이 책은 현대인에게 사람의 진저완 가치를 성찰하게 하는 매력이 있다. 삶의 질을 높인다는 것은 곧 ‘인간다운 삶’과 ‘가치 있는 삶’을 스스로 구현하는 삶일 것이다. 끝도 보이지 않은 생존경쟁에서 ‘너를 죽이고’ 이룩한 성과가 아닌 ‘너와 내가 공존’할 수 있는 삶의 과정에서 자신의 삶의 가치를 찾아보려고 한다는 의미에서 현대 사회에 지극히 필요한 가치를 제시하고 있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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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남자네 집
박완서 지음 / 현대문학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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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움의 대상이기에 더 소중한 첫사랑
사람마다 세상을 보는 눈은 다르다. 힘든 세상살이에서 자신을 지탱해주는 것 역시 자신이 살아온 삶에 한 순간을 가슴에 담아두고 그 힘으로 살아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다 보니 살만한 세상이라고 느끼는 것 또한 제각각의 기준이 있을 것이다. ‘내게 글을 쓴다는 건 내 고통의 일부를 독자에게 나누는 거예요. 내 고통을 글로 옮기면서 내가 조금씩 자유로워지고 가벼워지죠.’라고 했던 우리에게 친숙한 작가 박완서는 그 힘을 ‘문학’에서 찾았다고 했다. 전쟁과 미군정 이후 숨 가쁘게 달려온 사람들의 삶 속에 그들을 살게 했던 힘은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부모세대가 그 험난했던 시간을 살아낸 근본적인 원동력을 찾아보는 것은 그리 쉽지 않다. 

삶의 질 보다는 생존이 급했던 시간을 살아온 사람들이라고 하지만 문학 속에 등장하는 사람들의 가슴 속에는 지금 우리의 가슴과 크게 다르지 않음을 보여주는 한 작가의 자전적 이야기를 만난다. 박완서의 ‘그 남자네 집’은 작가가 고희가 넘는 시간동안 가슴속에만 간직한 이야기를 세상과 공유하고자 한 것이다. 첫사랑에 대한 저자의 고백은 이성에 대한 ‘첫사랑’ 보다는 격동의 시대를 살았던 작가의 삶의 한 부분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것 같다.

가족을 해체를 강요했던 전쟁 후 서울 한 동네에서 살아가는 주인공은 순전히 살아가는 위해 학교도 포기하고 미국부대에 취직한다. 사람들의 눈을 의식한 어머니의 눈치를 외면하면서도 그런 생활은 온 가족을 먹여 살리는 길이었다. 그 시기 그 남자를 알게 된다. 황폐한 풍경 속에서도 그 남자와의 만남은 일상에서 오는 답답함을 벗어나기에 충분했다. 몇 번의 이사를 하면서도 이어지는 그 남자와의 관계도 결혼이라는 현실에서 한발 뒤로 물러서고 만다. 미군부대에서 알게 된 은행원과 결혼하고 이제 유부녀가 된 주인공은 그 남자와의 만남에서 일상의 탈출구를 찾는다. 단지, 그것뿐인 것으로 보인다.

소설 ‘그 남자네 집’에는 두 남자의 집안 이야기가 중심적으로 그려지고 있다. 첫사랑의 그 남자와 결혼한 남자의 집안이다. 첫사랑 그 남자의 집안은 가족 일부가 월북하고 그 남자를 지키지 위해 남은 어머니와 공존하지 못하는 현실을 담아내고 있다. 상이군인이 되어 돌아온 그 남자와 어머니 사이의 관계는 일반적인 부모와 자식 사이의 어머니 정을 그려내는 것이 아닌가 한다. 또 한 집인 남편의 집안 역시 전쟁으로 가장과 남자들을 잃고 혼자 남은 아들이 전부인 집이다. 남편을 향한 시어머니의 모습도 낯설지 않은 풍경이다. 두 어머니로 묘사되는 가정의 모습은 우리가 살아온 현대사의 단면을 그대로 보여준다. 이러한 어머니들의 모습은 50년대를 넘어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는 우리들의 삶이다. 

전쟁 후 폐허가 된 것은 외형적인 모습뿐이 아니다. 전형적인 가부장 제도에서 살았던 사람들에게 남자의 부재는 삶의 중심을 무너뜨린 변화였다. 주인공이나, 언니, 춘희의 삶이 보여주듯 그동안 가정을 이끌어 오면서도 주변부에 머물렀던 여자가 이제는 그 중심에 선 계기가 된 것이다. 그런 시대를 온 몸으로 헤쳐 온 여성들의 삶은 어쩜 시린 가슴을 안고 살아온 우리의 어머니들을 대변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박완서의 자전적 이야기라고 하는 ‘그 남자네 집’에 등장하는 그 남자에 대한 기억이 주인공에게 사랑일까? 하는 의구심을 떨치지 못하고 있다. 첫사랑을 말하는 것들은 많다. 사랑이 이뤄진다는 것에서 첫사랑은 모두 실패한 사랑으로 그려지기 일쑤다. 그 남자와의 첫사랑도 실패한 것으로 그려진다. ‘아무것도 안 그리워하면 무슨 재미로 살겠수’라는 춘희의 말에서 실패한 사랑이기에 고희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불쑥 불쑥 살아나 그 시간을 채워주었던 그리움이 아닐까 싶다.

책장 넘기기가 쉽지만은 않은 이 소설을 통해 한국 문학의 어머니라는 친숙한 이미지의 이제 고인이 된 작가 박완서를 그리워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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