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어도어 분 - 소년 변호사의 데뷔 시어도어 분 1
존 그리샴 지음, 신선해 옮김 / 문학수첩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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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 시절로 돌아가게 만드는 유쾌함
때론 작가와 독자가 책 속에서 사건을 두고 머리싸움을 할 때가 있다. 대부분은 작가 스스로 머리싸움의 우위에 서 있지만 꼭 모두 그렇다고는 볼 수 없을 것이다. 이런 흥미를 느끼는 사람들이 자주 찾는 책이 스릴러나 추리, 탐정소설 또는 법정소설이 아닌가 싶다. 이런 소설들의 성공 여부는 그 머리싸움을 얼마나 치밀하며 흥미롭게 이끌어 가느냐에 달려 있을지도 모른다. 어린 시절 그러한 흥미로 나를 사로잡았던 사람이 셜록 홈즈였다. 그 후 한동안 접하지 못했는데 아주 유쾌한 이야기를 만났다.

‘시어도어 분’은 법정소설의 대가 존 그리샴의 작품이라고 한다. 고작 13살인 소년을 주인공으로 법정소설을 구성한 했기에 심각한 장면을 그려가지는 않을 것이란 생각을 하면서 읽게 되었다. 아마도 독자층을 청소년을 대상으로 설정한 것이 아닌가 싶다.

아직 여리지만 관심분야인 법 관련 분야에선 독보적인 두각을 나타내는 시어도어 분은 반 친구들의 법률 상담을 무료로 해주며 해결책까지 제시해주기에 나름 유명인이다. 그러한 상황을 즐기기까지 한다. 그런 시어에게 어느 날, 훌리오라는 같은 학교 후배가 어느 날 살인 사건이 일어났던 주변 골프장에서 일하는 자신의 사촌형 바비 에스코바르가 사건 현장을 목격했으며, 그로 인해 불법체류자인 자신의 처지가 어렵게 되었다고 자문을 구하며 그 사건과 얽히게 된다. 관심 있는 사건에다 학교 후배의 형을 구하기 위해 사건의 한 가운데로 뛰어들게 된다. 

‘부자 동네’ 웨이벌리 크리크의 한 골프코스에 인접한 곳에서 벌어진 살인 사건이 벌어진다. 지역 사회의 커다란 이슈로 등장하고 당연히 시어 역시 지대한 관심을 갖는다. 재력가인 여성의 살인자로 그녀의 남편이 지목되고 법정에서 심리를 통해 사건의 진실에 다가가고 있다. 시어는 심리적으로 남편이 범인이라 생각하지만 법리상 추정 일뿐 증거가 없었다. 지지부진하게 흘러가던 법원 심리가 홀리오의 사촌형의 등장으로 긴박한 상황으로 흘러가고 그 와중에 삼촌과 부모까지 가세하여 판사를 설득하고 지금까지의 법정심리를 무효화하기에 이른다. 사건의 종결이 아니라 중요한 증인의 빠진 상황에 다시 처음부터 시작할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한 것이 시어의 활약상이다.

어린 시절 누구나 한번쯤 사건을 해결하고 범인을 잡는 멋진 탐정을 꿈꾸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지금은 잊고 사는 청소년 시기 꿈 많은 시절로 돌아가게 만드는 유쾌함이 있다. 이미 어른이 되어버렸고 청소년 법정 소설에 그다지 흥미를 느끼지 않지만 이 소설의 주인공이 보여주는 재기발랄함이 재미있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선 듯 자신의 가진 특기를 발휘하여 도움을 주면서 미래 어른이 되어서 활동한 공간을 미리부터 경험하는 모습이 밝고 희망에 찬 모습으로 그려지고 있어 따스하기까지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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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은 여기에 홍신 세계문학 4
미우라 아야코 지음, 정성국 옮김 / 홍신문화사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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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 위에는 언제나 태양이 있다
한 인간에게 종교가 미치는 영향은 얼마나 될까? 굳이 중세 기독교의 시대를 떠올리지 않더라도 종교라는 이름아래 보여주는 오늘날 사람들의 모습을 통해서도 쉽게 알 수 있는 무엇이 있다. 생명을 가진 모든 존재에게 무엇보다 우선시되는 것이 목숨일 것이지만 그 하나밖에 없는 목숨까지도 내 놓을 수 있는 것이 종교가 아닌가 싶다. 순교라고 이름 붙이지 않을지라도 종교 안에서의 삶이 어떨지 그저 짐작만할 뿐이지만 사람에 따라 대단히 큰 작용을 할 수 있음을 알게 된다.

‘길은 여기에’라는 한 작가의 자전적 이야기를 통해 종교가 가지는 긍정적인 의미를 생각해보는 기회가 되었다. 이 이야기는 우리에게 ‘빙점’의 작가로 잘 알려진 저자 미우라 아야코(三浦綾子, 1922년 4월 25일-1999년 10월 12일)다. 저자는 특이한 이력의 소유자다. 그리 길지 않은 삶 속에서 무려 13년간 긴 투병생활을 했다. 그것도 누워서 천장만 바라봐야 하는 중환자로 말이다. 그가 종교생활 속에서 만난 두 사람의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담담하게 풀어 내놓고 있는 것이 이 책이다. 1946년 빙점 이후 1999년 사망할 때까지 다양한 창작활동을 벌렸다. 주요작품으로 ‘길은 여기에’. ‘이 질그릇에도’, ‘살며시 생각하며’ 등 다수가 있다. 

저자는 2차 세계대전의 패전국이 되기 전까지 순조로운 삶을 살아가며 교사로 활동하게 된다. 아이들을 사랑하고 주어진 교사로써의 임무를 성실하게 해가던 어느 날 패전 소식을 접하고 미국이 진주한 이후 달라진 학교생활 속에서 교사의 책임에 대한 강한 의구심을 떨치지 못하고 7년간의 교사생활을 마감한다. 패전의 혼란스러운 상황과 미래에 대한 불투명성에 의해 결혼이라는 현실안주를 택하고 약혼하는 날 발병으로 그마저 포기하고 만다. 이후 병을 치료하는 과정은 삶을 포기할 만큼 좌절과 절망 등 지루하게 이어지고 있다. 

자신이 믿었던 세계가 무너지는 혼란 속에 인간이라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고, 허약한 존재인지를 실감하며 회의주의에 빠져 그녀는 삶의 목표를 잃어버리고 말았다. 하지만 그런 저자에게 전혀 새로운 길을 안내하는 사람이 나타났다. 마에카와 다다시라는 사람으로 어린 시절 친구이자 같은 병을 앓고 있는 크리스찬이었다. 그는 자신을 포기한 삶을 벗어나 진지하게 살라며 충고하며 삶에서 희망을 발견하기까지 헌신적인 사랑을 보여준다. 사랑하는 사람이며 삶의 의미였던 그마저 병으로 인한 죽게 되지만 그 절망에서 벗어나는 것은 그가 보여주었던 사랑의 힘이었고 이후 삶을 포기하지 말고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게 만들어 주었다. 이후 죽은 마에카와 다다시와 너무도 닮은 미우라 미쓰요를 만나 건강을 회복하고 결혼에 이르는 과정이 담겨있다.

‘길은 여기에’를 읽으며 종교 안에서 살아가는 작가의 이야기보다는 투병의 과정에서 만나는 사람, 그 사람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인간관계 그리고 저자 미우라 아야코의 사랑이야기에 중심을 두고 보게 된다. 이런 관점으로 바라본 이 자전적 이야기는 우선 교사생활을 끝내고 발병하기까지의 과정과 발병하고 한 남자를 만나 사랑을 가꿔가는 모습과 그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이후 새로운 사람을 만나 결혼에 이르는 과정 이렇게 구분하고 보게 되었다. 

‘나는 관능적이면서도 정신적인 깊은 사랑 없이는 살아가지 못한다. 만일 깊은 사랑이라면 육체적인 사랑은 없어도 좋다. 그러나 육체만의 사랑은 싫다. 이것은 내 관능이 아직껏 깨지 않고 잠들어 있기 때문일까. 어쨌든 나는 지知 정情 의意의 깊고 풍요로운 것을 구한다.’
 
저자가 인간의 본성인 사랑을 구하는 절대적인 기준이다. 그렇기에 두 남자를 사랑하는 과정이 자신의 기준에 가장 잘 어울리는 것이 아니었을까 싶다. 자신의 과거를 이렇게 담담하게 그려갈 수 있는 힘은 무엇일까? 병중에서도 나약해지는 마음을 다스리고 자신과 세상의 올바름에 대한 추구는 종교로부터 얻은 힘이 크다고도 보이지만 한 인간이 가지는 의지나 정신적인 힘의 깊이로 보고 싶다. 13년간 길고도 긴 투병생활을 이겨낼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고통과 좌절 속에서도 찾고자 했던 사랑에 대한 믿음 때문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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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과 제자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원영 지음 / 불광출판사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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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 이후 무엇을 잡고 갈 것인가
머리를 깎는다는 것은 어떤 상황과의 단절을 의미하는 경우가 많다. 군대를 가는 경우나 부모님에 의해 강제적인 삭발도 그런 의미가 들어 있다고 보인다. 이런 경우는 대부분 타의에 의한 강제적인 요인으로부터 출발하는 것이지만 순전히 자의적으로 삭발하는 경우는 아마도 불교에 귀의하는 승려들이 유일하지 않을까 한다. 자신이 속한 세상과 단절하는 가장 큰 외형적 모습이 바로 삭발이라는 보이는 모습으로 나타나기에 그 의미가 매우 강렬하게 다가오는 것이 사실이다.

그렇게 강한 마음가짐으로 출가하고 구도의 삶을 살아가는 승려의 삶은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 것일까 하는 의문은 굳이 불교를 종교로 가지지 않은 사람일지라도 궁금할 때가 많다. 승려들이 살아가는 승가집단 역시 사람들이 살아가는 세상이기에 그리 큰 차이가 없을지도 모른다는 단순한 생각도 하지만 그들만의 독특한 삶의 방식은 외부적으로 보이는 다른 모습만큼 분명한 차이가 있을 것이다.

‘부처님과 제자들은 어떻게 살았을까’는 바로 그러한 의문을 풀어주는 책이다. 출가부터 수행, 생활을 비롯하여 승려들이 수행하는 공간인 사찰 그곳에서 행해지는 행사들뿐 아니라 이 책 발간의 본질적 목적이라고 밝히고 있는 중점요소인 계율에 이르기까지 출가한 승려가 구도자의 길을 가는데 빠트릴 수 없는 다양한 이야기들을 담아내고 있다. 출가가 가지는 의미에서부터 인간에게 가장 기본적인 의식주의 문제, 출가자의 기준, 어떤 사람에게 법을 설할 것인지, 어디는 가고 어디는 가면 안 되는지 까지 일상적이고 소소하지만 중요한 이야기들이 담겨있다. 승려 한 개인의 삶뿐만 아니라 승려들의 집단인 승가를 이루고 이를 꾸려나가는데 필요한 제반 사항들에 대해 저자인 원영스님이 직접 체험한 일상과 결부하여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승려들의 모습을 보면서 의문이 들었던 점이 있다. 그들이 소유하는 자동차로부터 일상생활을 꾸려 가는데 소요되는 각종 물건들 특히 차를 마시는 도구인 다기가 모두 값 비싸고 명품으로만 채워지고 있다는 것을 어떻게 볼 것인가 하는 점이다. 불교의 가르침이나 승가에서 정한 규율에 그러한 점이 허용되는 것일까? 속세를 떠나 남다른 삶을 선택한 그들이 속세에서 삶을 살아가는 일반인들보다 더 과한 물건에 대해 관심을 보이고 또 누리며 살아가는 것에 대해 드는 의문이 그것이다.

종교에 몸담고 있는 구도자들에게 가장 중요한 덕목이 무엇일까? 신앙이 근본이 되는 의심치 않은 믿음이 우선이겠지만 그 믿음을 가능케 하는 것이 종교에 귀의한 자들에 대한 계율이 아닐까 싶다. 계는 좋은 습관이라는 의미로 승가집단과는 별 관계가 없다고 한다. 율은 스님들이 승답게 훌륭한 인격체로 생활하기 위해 지켜가야 하는 승가라고 하는 집단 속에서 적용되는 법률을 의미한다.

저자는 승려 한 사람의 몸가짐이 승가 전체를 대표할 수 있다는 점을 들어 무척 조심하고 모범적으로 꾸려가야 한다고 지적하지만 현실에서 보이는 모습은 그렇지 못하게 보인다는 점이 의아하기 마련이다. 바로 이러한 점 때문에 구도자의 길을 가는 원영스님의 전공 분야인 율장에 의해 규정해 보고 싶은 것이었는지 모르겠다. 저자는 이러한 고충을 원로스님이나 은사스님, 도반에게도 계율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기가 쉽지 않다는 현실이 이를 반증하는 것이 아닐까 한다.

계율을 중심으로 승가집단의 모습을 돌아보게 하는 이 책은 부처님 살아생전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이끌어가지만 결국 오늘날의 승가집단이 무엇을 어떻게 실천해 갈 것인지에 대해 의미 있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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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계 VS 율곡, 누가 진정한 정치가인가
김영두 지음 / 역사의아침(위즈덤하우스)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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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과 현실의 결합, 무엇이 해답일까?
‘선비의 나라’라고 하면 우선 조선시대가 떠오른다. 조선시대 ‘선비’는 조선 사회를 지배했던 성리학을 학문의 기초를 삼아 자신의 삶과 나라를 이끌어가는 주체였다고 봐도 무리가 없을 것이다. 조선의 정치 이념은 성리학이었다. 성리학은 고려 말에 들어와 신진사대부를 중심으로 정치, 사회, 윤리의 척도로 받아들여졌으며 그 때문에 대표적인 조선의 유학자는 동시에 대표적인 조선의 정치가이기도 하다. 조선 개국 이후 성리학은 조선 사회를 이끌어가는 근본적인 사상이었기에 조선이라는 시대를 이해하는데 없어서는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덕목중 하나이다. 하지만, 그 성리학은 사회적 폐단을 낳은 온상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하기도 했기에 긍정적인 면과 더불어 부정적 측면도 살펴야 하는 것이 기본일 것이라는 생각이다.

조선시대 성리학의 거두라고 하면 조선 초기 정도전, 황희 중기의 조광조, 이황, 이이, 유성룡, 서경덕, 조식, 기대승을 비롯하여 후기에는 송시열, 허목 등을 우선 떠올리게 된다. 이들 성리학자들 중에서도 우리에게 너무나 친숙하면서도 자주 서로 비교되는 사람이 바로 퇴계 이황(李滉, 1501~1570)과 율곡 이이(李珥, 1536~1584)를 거론할 수 있을 것이다. 그만큼 두 사람이 차지하는 성리학의 학문적 업적뿐 아니라 현실 정치에서도 비교 연구되는 사례들이 많을 만큼 우뚝 선 학자의 대표주자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퇴계와 율곡 두 사람이 중심적으로 활동한 시대가 다르다. 퇴계는 학문을 중심에 두고 제자를 거두어 교육하는데 중심을 두었다면 이이는 학문의 성과를 현실정치에서 실현하고자 부단히 노력했던 점이 우선 주목되는 두 사람의 차이다. 하지만, 자신이 살아가는 시대를 반영할 수밖에 없는 것이 학문하는 사람들의 기본적인 환경이기에 현실 문제에 대한 대안을 마련하는 시각에도 차이가 있을 수 있다는 점을 이야기 한다. 저자는 두 사람이 교류한 시기가 10여 년 동안 사이에 주고받은 편지를 통해볼 때 두 사람의 관계를 적대적이거나 경쟁의 관계가 아니라고 보고 있다.

이 책 ‘퇴계 vs 율곡 : 누가 진정한 정치가인가’는 바로 현실정치를 어떻게 바라보고 그 대안을 제시하고 있는가를 중요 관점에서 해서 성리학의 두 거두의 학문과 사상을 비교 분석하는 책이다. 서른다섯 살 차이가 나는 현실을 뛰어 넘는 두 사람이 학문하는 사람으로써의 인간적 관계를 통한 교류를 먼저 살피는 것도 잊지 않고 있다.

저자가 두 사람의 정치사상을 비교분석하는 근거를 삼고 있는 것이 임금에게 올린 상소인 퇴계의 ‘무진육조소’와 율곡의 ‘만언봉사’다. 퇴계의 ‘무진육조소’는 1567년 무진년에 갓 즉위한 왕 선조에게 올린 여섯 개의 항목을 담은 상소다. 여기에는 왕도정치를 실현하기 위한 방안으로 국정운연에 대한 전반적인 원칙과 방안을 제시한 것이다. 율곡의 ‘만언봉사’는 1574년 국정에 대한 의견을 묻는 선조의 구언교서에 답하는 형식을 띠고 있다. 여기에는 왕도정치의 중심인 국왕의 개인적 수양과 국정운영 요체를 담고 있다.

퇴계는 왕도정치의 실현을 현명한 군주가 나타나면 가능해 지는 것으로 파악하고 선조에게 그러한 왕이 되기 위한 기본적인 이념을 밝혀 성군이 되길 바라는 마음을 담은 것에 중점을 둔 반면 율곡은 한발 나아가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책을 제시하는 데 더 적극적이다. 학문하는 올바른 길이 현실정치 속에서의 구현이라 생각했기에 보다 구체적이며 직설적일 수 있었던 것은 아닌가 생각된다.

성리학이라는 같은 이념을 지향하는 학문을 하면서도 현실정치의 참여와 그 방안을 제시하는 점에서 차이를 보이는 두 사람을 두고 오늘날의 시점으로 일방적인 시각은 분명 일면적으로 파악하는 한계가 있을 것이다. 퇴계와 율곡 두 사람 중 누가 진정한 정치인인가라는 의문은 현실성이 없을지도 모른다. 그렇더라도 이 책을 통해 살펴본 현실의 정치는 곧바로 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일상에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오기에 현실정치와 무관한 학문이 어떤 의의를 가지는지 생각하는 기회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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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문학을 그리다
종이나라 편집부 엮음 / 종이나라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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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의 두 세계가 만나 새로움을 만들다
그림과 문학의 만남은 단순하지 않다. 몇 년 전, 지방에서 활동하는 화가들의 전시회 도록을 만들면서 경험한 것이다. 세상을 바라보며 경험해온 일상의 일이나 특별한 느낌을 화폭에 담고자 하는 화가들의 마음이 온전히 담기기도 어렵지만 그것을 또한 글로 표현한다는 것은 또 다른 차원의 문제라는 점을 알게 된 것이다. 한 사람의 가슴속에 든 것도 이럴 것인데 하물며 장르가 다른 그림과 문학이 만나는 일은 두 가지 다른 창조적인 세계가 만나 새로운 세계를 만드는 일처럼 어려운 일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은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북촌미술관은 서울의 북촌지역(North Village)에 위치하고 있으며, 고미술에서 현대미술을 아우르는 폭넓은 예술적 관점과 해석이 자유롭게 소통할 수 있는 전시공간을 마련함으로서, 가까이 이웃하는 북촌의 역사문화유적지와 더불어 편안한 문화쉼터의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또한 다양한 문화적 욕구충족을 돕고자 일반인들에 다원화된 미술시장을 선보임으로서 예술적 흥미를 불러일으키고, 전문가 · 교수 등 미술사학 연구자들에게는 예술사적 연구 자료를 제공함으로서 미술관의 기본적 기능 및 목적의식을 분명히 하고, 학문적 · 예술적 가치가 있는 국내외 문화예술자료를 수집 · 보존 · 전시하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북촌미술관 관장 전윤수, http://www.bukchonartmuseum.com)

위 글은 북촌미술관을 안내하는 사이트 소개 글이다. 미술관련 전문가를 비롯한 다양한 사람들이 문화적 쉼터로 찾아가는 미술관으로 자리 잡은 곳이다. 이 북촌미술관에서 기획한 ‘그림, 문학을 그리다’의 전시관련 성과물을 집약하여 발간한 책이 이 ‘그림, 문학을 그리다’이다. 

이 책에는 화가 강미선, 김덕용, 김병종, 긴선두, 김을, 박불똥, 양화선 등 33명과 시인을 비롯한 문학인 고은, 김용택, 김춘수, 신경림, 이성복, 황지우, 공지영, 김연수, 박완서, 송기원, 이청준, 황석영 등 42명의 작품이 한곳에 모여 새로운 문화를 만들었다. 현대 우리나라를 대표한다고 할 수 있는 익숙한 문학인들이 대거 등장하고 있다는 점이 그림에 문외한이더라도 충분한 매력적인 요소가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들의 시와 글이 그림과 어우러지는 화면 속에는 묘한 느낌을 전해준다. 이미 익숙한 문학의 테두리에서 접했던 글이 그림이라는 다른 예술장르 속에서 서로를 빛나게 살려주는 그 느낌은 서로 상생하는 예술의 힘을 느끼기에 적절한 만남이 아닌가 싶다.

강승희의 그림 새벽과 고은 시인의 배 한척이 만나 인간 근본의 물음에 답을 찾아가는 구도자의 그 무엇을 발견하는 즐거움이나 김덕용의 그림 知音-피리부는 소년과 고은 시인의 휴식도 비슷한 느낌을 전해준다. 또한 노영신의 그림 나무시리즈의 붉디붉은 색체가 담고 있는 것이 박완서의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나 김지하의 빗점과 어떻게 조화를 이루는지 실은 고개가 갸우뚱 해지기도 한다.

이처럼 ‘그림, 문학을 그리다’ 이 책은 그림을 읽어가는 것이 꼭 그림에 머리박고 들여다본다고 해서 답이 나오는 것이 아닌 것처럼 문학 또한 글을 구성하는 단어와 문장 넘어 행간을 읽어야 하는 것처럼 때론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그림과 글이 만나 새로움을 만들어 내는 묘한 분위기를 체험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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