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나은 삶을 상상하라 - 자유 시장과 복지 국가 사이에서
토니 주트 지음, 김일년 옮김 / 플래닛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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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권력, 삶의 질을 담보하기에는 역부족인가?
80년대를 청년 학생으로 살았던 많은 사람들은 기억한다. 그들이 무엇을 바라며 날마다 거리로 나설 수밖에 없었는지를 말이다. 그때는 목표가 있었다. 사회민주화, 경제정의실현 등 더 나은 삶을 보장하기 위해서라는 분명한 목표아래 힘들었던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 자신의 안일을 뒤로하고 거리로 나섰던 것이다. 그 시기가 지난 뒤 우리 사회는 어떤 모습으로 변화되었나? 많은 변화가 있었고 그 현장에 있었던 많은 사람들 또한 그렇게 느꼈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2010년대는 어떤가? 그때 믿고 힘을 모았으며 염원했던 그 목표를 이뤘는지에 대해서 확신을 가지고 대답할 사람이 몇이나 될까?

시대상황이 변했고 사람들 또한 변했으니 당연한 것이라고 여기면 그나마 위안이 될 수 있을까? 토니 주트의 ‘더 나은 삶을 상상하라’는 바로 그런 의문에 대한 문제제기를 하고 있다. 우리는 어떠한 사회에서 살기를 바라는가? 라는 질문은 바로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자신을 돌아보게 만들며 지금 살아가는 사회가 그런 미래를 보장할 수 있는 사회인지를 직시하게 한다. 

이 책의 중심은 저술한 토니 주트가 밝히듯이 대서양 연안 국가인 미국, 영국을 중심으로 한 현대자본주의 사회에서 나타나는 사회적 병리현상의 근본 원인을 밝히며 그 대안을 마련해야 할 책무가 있음을 분명히 하고 있다. 저자의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치루며 인류가 직면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벌였던 다양한 정책에 대한 분석은 국민들의 삶을 영유하는데 필요한 초소한의 물질적 욕구를 충족시키며 그들의 삶을 안정화 시켜야 한다는 의미에서 복지 국가에 대한 필요성이 대두 되었다고 평가하고 있다. 하지만, 이렇게 만들어진 복지 국가에 대한 국가적 차원의 책임감이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그 의미를 훼손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의문을 또한 밝혀간다.

부의 불균등 분배로 인한 극심한 빈부의 격차, 자본의 논리에 의한 자유 시장경제, 공공기업의 민영화 등에 의해 점차 국가 권력이 가지는 역할의 변화는 강력한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의 사상적 배경을 힘입어 급속도로 사회를 분화시켜온 것이 현실이다. 이에 대처하는 방안으로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세웠던 좌파 사회민주주의자들의 정책적 대안의 부재 또한 저자의 눈을 피해가지 못한다. 이에 대한 비교 분석 대상으로 삼고 있는 북유럽 나라들의 정책들을 보면서 의식적이었던 불가피한 상황이었던 국가 권력을 가진 정부의 역할에 대한 강한 어조의 질책성 문제제기가 공감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사고방식의 근간이 엄청나게 바뀌기 전까지, 인류의 위대한 진보란 불가능하다’
(존 스튜어트 밀)

하지만, 저자는 이러한 현실에 대해 좌절하거나 절망하지 말고 올바른 대안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것은 바로 사고의 전환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방식에 이의를 제기하려고 하는 젊은이들을 위해 이 책을 썼다고 하는 자자는 자유로운 사회를 구성하는 시민으로서 세상을 비판적으로 바라봐야할 의무가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바라본 사회가 문제가 있다면 행동으로 옮겨야 한다는 것이다. 세계를 변화시키는 것은 바로 그러한 실천에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이 책은 현재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를 근간으로 해서 살핀 결과물이 아니다. 하지만, 세계는 이미 한 지붕아래서 살아가는 것처럼 밀접하게 있기에 어느 한 나라의 문제가 그 나라만의 문제가 아닌 것이다. 미국과 영국을 비롯한 선진국에서 겪었던 빈부의 격차, 사회보장제도, 공기업 민영화 등 이러한 사회적 문제는 고스란히 우리나라에도 적용된다. 특히, 미국의 영향을 강하게 받고 있는 우리의 현실에서 미국의 문제는 곧 우리에게 닥쳐올 커다란 파도가 될 수 있다. 

우리의 80년대에는 눈에 보이는 확실한 목표가 있었고 그것을 위해 행동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하지만, 오늘날 변화된 상황에 대처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더 나은 삶을 상상하라’는 저자의 주장이 무색할 만큼 사회적 관계를 형성하는 인간이 아닌 개별화된 인간으로 자신을 축소하여 파악하고 오직 개인의 삶에만 눈을 돌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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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을 읽는 9가지 시선>을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예술을 읽는 9가지 시선 - 형태로 이해하는 문화와 예술의 본질
한명식 지음 / 청아출판사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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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 무엇을 볼 것인가?  
미술을 비롯한 예술분야에 대한 일반사람들의 관심도가 날로 높아간다. 이러한 현상은 그동안 예술이 ‘그들만의 잔치’에서 모든 사람들이 함께 누리는 것으로의 확장을 의미한다면 이보다 좋은 것이 없을 것이다. 인간이 기본적으로 가지는 감성 중 아름다움을 보고 느끼며 향유하고자 하는 마음의 발로가 예술의 시작이라고 한다면 그런 마음이 표출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일 것이다. 하지만, 무엇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것은 또 다른 문제일 것이다. 그만큼 예술에 대한 인식이 특정 부분에 한정된 것으로 치부되었고 또 그렇게 한정적으로 누렸던 것은 아닌가 생각되는 측면이 많다. 

요사이 이렇게 아름다움에 대한 공감과 소통을 하고자 하는 접근이 다양한 방법으로 제기되는 것은 대단히 환영할 만하다. 하지만 여전히 알 수 없는 것이 있다. 예술이라고 하는 부분을 떠올리게 될 때 너무도 자연스럽게 서양예술을 먼저 생각한다는 점이다. 분명 우리는 동양에 살고 있고 또 동양 예술이 없는 것도 아닌데 왜 그렇게 되는 것일까? 우리가 속한 우리 문화에 대해 중요한 무엇을 놓치고 살아가는 것은 아닌지 의문이다.

이 책 ‘예술을 읽는 9가지 시선’은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인간의 근본적인 감정에서 출발한 예술에 대해 그 본질을 이루는 것으로 9가지를 선정하고 그 요소 하나하나를 설명하여 인간과 예술을 동일선상에서 바라보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 중심 키워드는 동과 서, 원근법, 죽음, 진화, 모나드, 기하학, 미술, 디자인, 조형 등이다. 예술에 포함되는 총체적인 것을 이 중심 키워드로 해석한다는 것이다.

예술의 시작이 굳이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인간의 기본 감정이라고 부르지 않더라도 원시시대 그들이 남긴 작품 속에 나타나는 모습이 결국 인간이 자연과 어떤 관계 속에서 살아왔고 그 영향이 이후 무엇을 남겼는지 충분히 알 수 있게 하는 것이 예술작품들을 통해서 확인 할 수 있다고 본다. 즉, 자연과 인간의 관계 그리고 인간의 이성적 작용이 전면에 대두 되는 시기에 와서 온전히 자연의 영향으로부터 구별되는 인간의 독창적인 활동 속에서 찾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고대, 중세를 거치며 시대마다 특징지어지는 키워드가 존재할 수 있는 것 역시 자연 속에서 살아온 인간이 자연과 어떻게 관계를 맺고 이를 인간의 삶에 반영해 왔는가가 결국 예술 작품으로 구현되었다는 것이다. 이집트의 예술이 규격화 된 이유나 그리스 예술이 개인의 창조성이 발휘되었던 점, 중세 미술이 신과 결부되어 왔던 점 등이 그러한 반증이 아닐 수 없다고 보고 있다.

디자인을 전공하고 학생들을 가르치는 저자의 입장이 충분히 반영된 책이 아닌가 한다. 무엇이든 그렇듯이 한 분야에서 충분한 지식과 경험을 쌓은 전문가라면 그와 직접적으로 연관되지 않은 분야에도 자신만의 시각을 갖는다는 것이 가능한 일일 것이다. 저자가 자신이 전공하지 않은 철학, 과학, 인문 분야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점이 바로 그것일 것이다. 학문은 이렇게 서로 공유되면 소통하는 속에서 발전하는 것이며 그것을 예술 작품이 충분히 설명해 주고 있다. 예술에 대한 이야기가 과학, 종교, 수학적 등 관련 없어 보이는 다른 학문의 지식이 함께 이야기 되어지는 것이 바로 그것일 것이다.

동양과 서양의 예술에 대한 기본적 시각의 차이를 설명하면서 시작하는 이 책에 대단히 흥미를 가지는 점이 바로 이처럼 동양의 시각을 다른 예술관련 책에서는 볼 수 없었던 점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저자는 중심적 키워드를 선정하고 그를 통해 예술에 대한 접근을 해가는 주요한 흐름을 서양미술사에서 찾고 있다. 이러한 점은 다른 저자들이 밝히는 예술에 대한 이해와 별반 다르지 않다. 처음 시작이나마 동양과 서양의 본질적 차이를 설명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하는가 보다. 이 점이 내가 느끼는 흥미의 출발점이자 아쉬운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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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인의 사랑
막스 뮐러 지음, 차경아 옮김 / 문예출판사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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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부터 아름다운 삶이 열렸다
‘사랑’이라는 단어 속에 포함될 수 없는 인간관계가 있을까? 관계 설정에 따라 무한한 대상을 포괄하는 사랑이라는 말에는 다양한 사람들의 감정이 담겨 있다. 흔히 말하는 아가페 적이고 플라토닉한 사랑을 포함한다면 그 범위는 그야말로 무한정일 것이다. 이렇듯 사랑이라는 말에는 나와 타자 사이에 벌어지는 감정의 상호작용으로 관계 맺어지는 소통이 그 근본을 이룰 것이라는 생각이다.

사랑이라는 말이 주는 묘미는 이성 간의 사랑이 중심에 있다. 하여 그 많은 문학작품에서 다뤄지는 사랑 역시 이런 남녀 간의 사랑이 중심이었고 앞으로도 여전히 그 중요성은 변치 않을 것이다. 하지만, 사람이 살아가는 환경이 변하고 그에 따라 가치관도 변하기 마련이기에 ‘사랑’을 둘러싼 사람들의 이야기도 변하기 마련이다. 그 사랑의 당사자가 살아가는 시대의 정신에 따라 사랑을 규정하는 의미가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이다. 그렇기에 이 사랑에 대해 표현하고 어떤 결말로 이끌어가는 가는 시대와 작가의 가치관에 따라 언제나 현재진행형일 수밖에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막스 뮐러의 ‘독일인의 사랑’은 자기 고백이다. ‘너의 오빠라도 좋고, 너의 아버지라도 좋다. 아니, 너를 위해 세상 무엇이라도 되고 싶다.’는 한 소년의 가슴속에 담겨진 한 소녀를 향한 오롯한 감정을 자신과 타인을 향해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순결한 마음을 가진 한 소녀가 있다. 신분도 높고 아름다운 마음씨를 가졌지만 태어날 때부터 가진 불치의 병으로 인해 세상과 격리되어 세상으로부터 오렴되지 않은 자신만의 순수한 마음을 간직할 수 있는 사람이다. 하지만 그녀를 사랑하는 소년은 낮은 신분, 세상과 부딪치며 삶을 꾸려나가야 하는 사람이다. 이 둘은 어린 시절부터 자연스럽게 알게 되고 성장하면서 서로에 대한 의미를 확인한다. 

'왜 당신은 나를 사랑하나요?' 그녀는 결정의 순간을 마냥 미루려는 듯 나직한 소리로 물었다. '왜라니요? 마리아! 어린애한테 왜 태어났냐고 물어보십시오. 나는 당신을 사랑하도록 되어 있기 때문에 사랑하는 겁니다.'

이 문장은 사랑을 시작하거나 지금 사랑하고 있는 청춘들 모두를 한번쯤 고뇌하게 만드는 질문이 아닐까 싶다. 태어날 때부터 그렇게 사랑하도록 운명 지워진 사랑이 바로 우리의 사랑이라고 믿고 싶은 소망의 표현일 것이다. 하지만, 이런 운명적인 사랑이 얼마나 될까? 현실은 다양한 조건에 의해 관계 맺어지는 사람들의 일상처럼 사랑 역시 그런 관계 맺음 속에서 자라나고 키워지며 결정되는 것은 아닐까?

‘독일인의 사랑’은 저자가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사랑에 대한 정의’와 더불어 저자가 활동하던 시대정신을 반영할 수밖에 없었다고 본다. 종교적인 가치를 포함하여 세속적인 눈으로 보는 사랑이 그 사랑이 가지는 본질적인 숭고함을 희석시키는 현실에 대한 저자의 대안이 아니었을까? 저자는 이 사랑을 아주 이상적인 모습으로 결론짓고 있다. 소녀의 죽음은 이 자기고백이 출발할 때부터 예견된 일이었다. 

‘한 때 이 세상에서 마리아 같은 성품의 인간을 만나 알고 지냈으며, 사랑했던 사실을 신에게 감사하게. 또 그녀를 잃은 것까지도.’

소녀를 담당했던 의사의 마지막 말이다. 그 의사 역시 한 여인을 사랑했지만 그 사랑을 완성하지 못한 자괴감으로 한 여인을 향한 사랑을 그녀가 남긴 딸을 돌보며 한 여인에게서 시작한 사랑을 이웃과 세상으로 넓혀나간 사람이다. 저자가 사랑의 완성으로 표현하는 이 말 속에 담긴 사랑의 본질은 시대가 변하고 사랑이 가지는 의미가 변하더라도 언제나 사랑을 이야기하는 중심에 서 있을 것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는 사랑이 세속화 되고 물질 앞에 힘을 잃어가는 사회라고도 한다. 사랑이 사람들의 관계에서 벌어지는 감정의 소통이라고 한다면 그 사람들이 살아가는 시대가 바로 그렇게 사랑을 변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사랑이라는 말로 상대방을 ‘나을 위해 무엇이 되라고 강요하는 것’에서 ‘너를 위해 세상 무엇이라도 되고 싶다.’는 마음으로 변할 때 어쩜 사랑은 완성되는 것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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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로아티아 블루 - 언젠가, 어디선가, 한 번쯤은...
김랑 글.사진 / 나무수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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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와 공유하고픈 마음이 머무는 곳을 거닐다
여행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어떤 이유가 있을까? 그것도 일상을 벗어나 예약 없는 일정을 보내고 있는 여행자들에게 말이다. 흔히들 말한다. 답답한 일상을 벗어나 자신을 돌아보는 기회를 삼고자 여행을 한다고 말이다. 그렇게 떠난 여행자들에게는 어떤 공통점이 있는 듯하다. 바로 그들 각자가 그들만이 가고 싶은 곳이 있다는 것이다. 그곳은 일상과 아주 가까운 곳이 될 수도 있지만 대부분 일상에서 아주 먼 곳이기 마련이다. 그래야 일상을 벗어났다는 마음의 위안을 삼을 수 있을 테니까. 이 책의 저자 김랑도 그렇게 찾아간 곳이 크로아티아다.

‘언젠가, 어디선가, 한 번쯤은’이라는 희망은 모든 여행자들의 가슴에 담긴 말이 아닐까 싶다. 이 책 ‘크로아티아 블루’의 저자도 마찬가지다. 무엇이 ‘그리워서 떠나는 여행이라지만, 떠나고 보면 그리운 것은 언제나 사람이었다.’고 고백한다. 하여 사람에 대한 온전한 기억 속으로 떠난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게 하여 저자가 떠난 곳은 발칸 반도 서부에 있는 나라. 유고연방에서 분리 독립한 크로아티아다. 내게 크로아티아는 책 속의 사진이 전해준 것이 전부다. 백승선, 변혜정의 공저 ‘행복이 번지는 곳 크로아티아’ 속에 푸름의 진수를 보여준 사진들은 푸른색에 대한 호감이 있는 나에게 푸름의 원천으로 남아 있다. 하지만 나에게 크로아티아는 책 속에 머무는 이상향일 뿐이다.

여행은 자연과 만남을 우선한다. 하지만 떠나선 만나는 자연의 낯선 풍경 속에는 언제나 사람들이 존재한다. 그 사람들로 인해 낯선 자연 풍경이 한껏 빛을 발할 것이다. 이 ‘크로아티아 블루’도 그런 점은 마찬가지다. 저자를 떠난 한 사람에 대한 기억은 함께 가고자 했던 곳에 대한 아쉬움도 있지만 그것은 어쩌면 여행자의 자기 위안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다. 여행은 분명 새로운 자신을 발견하는 계기가 될 테니까 말이다.

크로아티아에 장기간 머물고 있는 저자는 느린 여행자다. 관광이 여행의 전부인 것처럼 변해버린 오늘날의 여행 모습과는 아무런 연관이 없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보고 싶은 곳을 찾아가 머물고 싶을 만큼 머물수 있는 여행자가 얼마나 될까? 저자는 바로 그런 여행자들 중 한명이다. 그렇기에 찾아가는 곳이 사람들이 살아온 흔적이 고스란히 머물러 있는 소도시의 골목길이며 그곳에서 삶을 영위하는 사람들이다.

저자가 보고 듣고 느끼는 것에는 눈에 스치는 풍경에만 머물지 않는다. 하늘로부터 선물이라도 받은 것처럼 빛나는 자연풍광에 그곳을 아끼고 살아가는 사람들뿐 아니라 도시를 구성하고 사람들의 생각을 만들어 온 크로아티아의 역사적 배경도 잊지 않고 살핀다. 모든 사람은 지난 역사와 무관할 수 없다는 점을 확인하는 것이다. 그래서 저자의 눈에는 한때는 로마의 일부, 그리고 베네치아 공국에도 속했던 오래된 역사의 흔적, 최근 유고슬라비아 연방국가에서 독립하는 과정에서 겪어야 했던 내전의 아픔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도시의 모습까지 하나도 빠트리지 않고 담아낼 수 있었을 것이다.

내겐 어차피 책 속에 머물 수밖에 없는 곳, 크로아티아이기에 그곳을 찾아가는 여정이나 구체적인 여행 정보는 처음부터 관심이 없었는지 모른다. 그렇기에 여행자가 자연풍광과 사람들을 만나면서 가슴으로 담아내는 저자의 심경의 변화가 주목되었다. 하여, 지구를 몇 바퀴쯤 돌아온 이곳에서, 내일은 오늘과는 다를 거라고 믿는다는 저자의 마음을 보았다. 

여행은 어쩜 새로운 인연을 만나는 과정인지 모르겠다. 인연은 굳이 사람에 국한된 것이 아닌 장소, 시간이 그렇게 인연을 이어 그 시간을 함께 나눈 사람으로 넓혀질 것이 분명하기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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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로 읽는 슬픔과 기쁨 - 예술가의 육필 편지 49편, 노천명 시인에서 백남준 아티스트까지
강인숙 지음 / 마음산책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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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극히 사적이어서 공감이 큰 편지 속 이야기
사람과 사람 사이를 이어주는 소통의 수단은 그 시대를 적극적으로 반영하게 된다. 오늘날 전화나 휴대 전화, 이메일 등을 활용하여 상황에 맞는 소통을 이뤄가 듯 시대마다 그 시대에 통용되는 소통의 수단은 있었다. 하지만 개인이나 단체 공적인 일이나 사적인 일에 상용되는 소통의 수단이 오늘날처럼 다양화 된 경우가 없었다. 이렇게 다양한 소통 수단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사람들 사이의 공감과 소통이 더 원활하고 사람 사이를 가깝게 만들어 준다고 볼 수 없는 것 또한 사실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 가슴속에는 ‘손편지’에 대한 아련한 추억 하나쯤은 가지고 있다. 편지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연애편지나 부부, 부모와 자식 간의 다양한 마음을 담아 주고받은 것들이다. 이 편지에는 어쩔 수 없이 필요한 것이 시간의 흐름이다. 짧게는 2~3일 길게는 몇 주가 걸리는 이 시간이 있어 편지를 주고받는 사람들 사이 간절함을 더하게 된 것이다.

이 책 ‘편지로 읽는 슬픔과 기쁨’은 바로 그런 편지를 중심으로 그 편지의 사연이 있게 된 배경에 대한 이웃 사람의 이야기를 담았다.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들이 중심이 되는 이 편지 묶음이 주목되는 것은 우리들이 익히 알고 있는 우리나라 문단의 내 노라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라는 점이다. 지금은 고인이 되어 볼 수 없는 사람도 있지만 아직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작가들의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는 편지들이라 작가에 한 발 다가서고 싶은 독자들의 흥미를 끌기에 충분하다고 볼 수 있다.

이 편지글을 엮은 사람은 2001년 1월 문학평론가 이어령과 그의 부인이 함께 설립한 문학박물관인 영인문학관을 운영하는 문인 강인숙(건국대학교 국문과 명예교수, 문학평론가) 관장이다. 부부가 다 문학계에 몸담고 있어 문인들과의 교류가 활발했기에 문학박물관에 소장된 문인들의 소중한 이야기를 담은 소장품들이 많을 것이란 생각이다. 이 문학박물관인 영인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문인들의 편지글을 기본으로 엮은 책이 바로 이 ‘편지로 읽는 슬픔과 기쁨’이다.

문인들을 포함하여 예술가의 육필 편지 49편을 엮은 이 책에는 화가 김병종, 이성자, 소설가 정미경, 박범신, 이광수, 김동인, 조흔파, 조정래, 박완서를 비롯하여 시인 정한모, 김남조, 문효치, 박두진, 박용철, 김광균, 주요한, 고정희, 노천명 뿐만 아니라 백남준, 장연주 등의 친필 편지가 담겨 있다. 이뿐 아니라 파울로 디 카푸아가, 인류학자 레비스트로스, 일본 작가 가와바타 야스나리, 구로다 모모코가 등 외국인들의 편지도 있다.

관심이 가는 편지는, 부부사이의 묘한 감정을 담고 있는 소설가 조흔파가 부인 정명숙에게 보낸 편지에서는 미소를 번지게 하고 있다. 문학계 유명한 닭살 부부로 통하는 조정래의 편지, 얼마 전 고인이 된 박완서의 편지 등이다. 짧은 편지만으로는 이해하기 힘든 상황을 저자의 읽어주는 편지글을 통해 시대상황과 문인들 간의 인맥, 예술인들의 개인적 고뇌까지 알 수 있게 하는 친절함이 있어 더 반갑게 읽힌다.

‘편지는 수신자 혼자서만 읽는 호사스런 문학이다. 그것은 혼자서 듣는 오케스트라의 공연과 같다.’ 이 말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그만큼 개인적이고 내밀한 마음의 한 자락을 담고 있어 혼자만 누리는 호사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또한 편지를 주고받는 당사자 사이 온갖 감정이 넘나드는 현장이라는 의미라면 분명 오케스트라 공연일하고 할만하다. 이런 상황을 충분히 짐작하게 만드는 편지들을 보는 재미가 여간 아니다. 또한 작가들의 멋진 손글씨를 감상하는 즐거움까지 덤으로 누릴 수 있다. 이 또한 분명한 독자들의 호사라 할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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