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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문학에 취하다 - 문학작품으로 본 옛 그림 감상법
고연희 지음 / 아트북스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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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그림 속에 담긴 사람들의 마음을 읽다
‘그림 읽어주는 책’들에 대한 관심들이 높다. 아마도 가슴속에만 담아두었던 예술적 본능을 확인해 보려는 마음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출간된 서적들을 보면 대부분 서양그림 일색이고 더욱 기독교나 그리스로마의 신화에 대한 정서와 역사를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여전히 높은 문턱이 아닐 수 없다. 그림들이 책속에만 머물고 있는 것이 바로 그러한 이유도 클 것이다.

거기에 비해 동양의 그림들은 한 가지 더 어려운 관문을 통과해야만 그림 속에 담긴 뜻을 오롯이 알 수 있는 것이 대부분이다. 그 관문이란 것이 정서적으로 공감하지 못하는 것보다는 한자에 대한 이해의 부족에서 오는 것이 대부분이다. 그렇다보니 눈에 보이는 것을 넘어선 깊은 내면을 알아가기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얼마 전 이종수 님의 ‘이야기 그림 이야기’라는 책을 통해 이러한 점에 공감을 얻을 경험이 있다. 이 책은 이야기 즉, 텍스트가 있고 그 텍스트를 이미지화 한 결과물이 이야기 그림이고 관심은 바로 그 이야기 그림에 대한 접근이라 해석된다. 

이 책 ‘그림, 문학에 취하다’ 역시 그림 속에 담긴 이야기를 풀어 놓고 있다. 즉, 문학인 이야기를 시각적으로 옮겨 놓은 그림을 가지고 본래의 이야기로 들어가 보는 형식을 취하고 있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한자와 중국 고사에 등장하는 인물 및 이야기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라면 더디 읽힐 수밖에 없다는 한계를 출발부터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그림, 문학에 취하다’에는 우리 선조들의 그림 스물여섯 점을 일곱 가지 분류로 엮어 놓고 있다. 저자가 분류한 구분에는 시, 문인, 꿈, 소리, 문인의 심회, 명산, 욕망과 인정 등이다. 자연과 사람, 그 공존에서 오는 마음의 소리를 시문으로 짓고 이를 눈으로 확인할 수 있도록 옮겨 놓은 그림들이 주요한 관심의 대상이다. 화가들로는 최북, 장득만, 강세황, 허필, 이인문, 안견, 전기, 정선, 이성길, 김이혁, 이방운, 이재관, 김홍도, 심사정, 박제가, 김정희, 윤제홍, 허련 등 조선시대 당시를 살며 화원으로 이름 높은 알 만한 사람들의 친숙한 그림들이 담겨있다.

한 점 한 점 저자의 해설을 따라 읽어가는 그림들 속에 담긴 속내가 심상치 않다. 우리내 선비들이 학문하는 방향으로 시서화(詩書畵)를 하나로 보았기에 시와 글씨 그리고 그림이 그들에게는 학문의 길로 통했던 것이다. 이는 곧 선비의 학문하는 깊은 뜻을 시서화 속에 담았다는 이야기며 이를 읽어간다는 것은 바로 그런 선비들의 마음을 이해하고 얻어가는 길이라 생각된다는 점이다. 또한 세상을 바라보는 감회가 녹아 있는 그림들 속에 당시를 살았던 사람들이 삶의 가치를 어디에 두었는지도 알 수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점을 확연하게 보여주는 그림으로 ‘전기의 귀거래도’에 대한 해설이다. '귀거래'는 ‘도연명의 귀거래사’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저자는 ‘귀거래’라고 외쳤던 사람들에 대한 구분을 통해 같은 귀거래지만 외치는 사람에 따라 담고 있는 의미가 명확하게 구분되고 있음을 말해준다. 예나 지금이나 사람 살아가는 모습은 비슷한 것임을 느끼게 된다. 

‘누군가 말했지. '천도天道(하늘의 도)는 공평무사하여 언제나 찾한 사람의 편에 선다'고. 그렇다면 백이와 숙제 같은 이들은 착한 사람이 아니었던가? 어질고 고결한 덕행을 쌓기를 이같이 하였건만 그들은 굶어죽었지. ...나는 감히 이것을 의심하노라. 과연 '천도'라는 것이 있는가?, 없는가?’

또한, 김정희의 세한도에 대한 해설에서는 슬픔을 이야기 한다. 일반적으로 세한도는 김정희에 대한 이상적의 변함없는 마음을 칭송하는 것으로 읽히기 쉬운데 저자가 바라본 것은 사기를 지은 사마천의 마음을 끌어들여 슬픔을 이야기하고 있다. 천도를 논하는 사마천과 김정희의 마음이 서로 통한 것인지 모르겠다.

‘한 폭 그림이 접하고 있는 시문, 그림과 시문의 관계는 여기서 탐정소설 속 미로와 같은 복잡한 행로를 엮어내고 있다.’고 하는 저자의 말처럼 그림 하나하나를 따라가기가 버겁다. 하지만 따라가다 보면 감춰진 이야기 속에서 너무도 흥미로운 사실들을 발견하게 되고 그러한 발견이 감동으로 다가오는 경험도 분명 하게 된다. 또한 관가하지 말아야 할 점이 있다고 저자는 이야기 하고 있다. 중국과 조선의 관계가 생각하는 것 보다 훨씬 밀접하게 관련되어 졌다는 점을 확인하지만 그것이 우리 문화의 폄하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오히려 더욱 성숙한 성취를 이룬 그림들이 많아 자부심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렇듯 ‘그림, 문학에 취하다’는 그림 속에 감춰진 이야기를 읽어준다. 저자는 읽어주는 것에서 멈추지 않고 현실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지난 사람들의 마음을 통해 세상과 자신을 성찰 할 기회를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편집상 오류로 보이는 부분이 있다. 116페이지 이성길의 ‘무이구곡도’의 긴 그림이 나뉘어 실렸는데 같은 장면이 중복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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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서 왕 궁전의 코네티컷 양키 세계문학의 숲 7
마크 트웨인 지음, 김영선 옮김 / 시공사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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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넘어서는 뛰어난 상상력의 결과
때론 이미 알고 있는 작가와 작품을 서로 연결하지 못할 때가 있다. 이런 경험은 나에게서는 너무 유명한 작가와 작품일수록 그러한 경향성이 있는 듯싶다. 하지만 작가는 자신의 독특한 세계가 분명하게 있는 것이기에 시간이 걸리더라도 알게 된다. 언젠가 국내 작가의 한 소설을 읽고 흥미로운 점을 느꼈는데 그의 소설이 아닌 다른 글에서 같은 점을 보고 분명 낯설지 않음을 느꼈던 경험이 있다. 그 작가만의 면모가 확연히 들어나는 그런 작가가 좋다. 그래서 작가는 작품으로 말한다고들 하나 보다.

‘톰 소여의 모험’, ‘허클베리 핀의 모험’, ‘왕자와 거지’ 등으로 이미 익숙한 마크 트웨인(1835 ~ 1910)이지만 이 소설 ‘아서 왕 궁전의 코네티컷 양키’와 연결 짓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 작품을 읽어가다 다시 작가에 대한 궁금증으로 살펴보고서야 그 사람이 그 사람임을 알게 되다니. 마크 트웨인이라는 작가가 차지하는 미국 내 지위는 논하지 않더라도 나에게는 ‘허클베리 핀의 모험’만으로도 충분한 작가였다. ‘아서 왕 궁전의 코네티컷 양키’는 시간을 건너뛰어 이야기를 구성하고 있다. 19세기의 미국과 6세기 영국이라는 시간과 공간의 이동이다. 그것도 1000년을 훌쩍 넘어선 무한의 상상의 세계를 넘는다. 

영국으로부터 독립하고 독자적인 문화를 형성해 가던 19세기 미국에 살아가는 코네티컷 출신의 양키 행크 모건이 6세기 아서왕의 시대인 영국으로 시간여행을 한다. 기사를 만나 그의 포로 신세로 상상을 초월하는 시공간의 이동이다. 양자가 융합될 수 없는 다른 존재이기에 벌어지는 다양한 이야기들이 전개된다. 19세기의 다양한 과학 기술과 지식을 동원하여 등의 그의 기지를 이용하여 왕과 군중의 마음을 사로잡아 막강한 자리에 오른다. 

상상을 초월한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는 것을 넘어선 무엇을 체험하거나 역으로 생각보다 훨씬 못 미치는 것을 확인하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전설처럼 전해오는 6세기의 이야기를 그려내는 것이 마치 허구의 세상 같다. 기사도 정신이라고는 찾아볼 수도 없고, 허풍만 떠는 마법사 멀린 그리고 그들에 이용당하는 어리석은 백성들을 이용하여 자신도 철저하게 이 혼란스러운 세계로 들어간 것이다. 그렇기에 이미 알고 있는 자연현상을 이용하여 쉽게 당시 사람들을 현혹시키는 것은 너무도 쉽다.

드디어 행크 모건은 그러한 시대를 바꾸고자 한다. 인권이라고는 찾을 수 없는 상황에 처한 사람들에게 살아가는 희망을 주고 싶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특허청 설립, 학교제도를 만들고, 신문을 발행하는 등으로 표현되는 19세기 자신이 살던 시대의 산물을 이용하려는 것이 그의 계획이다. 이 과정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이야기는 모험을 넘어선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만들고 있다.

마크 트웨인이 활발하게 활동하던 미국의 동부지역 문학은 고상하고 고전적인 것을 중시하는 유럽문학의 아류가 주를 이룬 지역이라고 한다. 이러한 주류의 분위기를 넘어선 작가의 작품 경향성은 미국 문학을 변화시키는 대단한 역할을 한 것이라는 평가다. 유머와 해학으로 대표되는 저자의 문학은 바로 유럽으로부터 완전한 독립을 추구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만큼 강한 울림을 전하고 있다는 점이 주목되는 것이리라. 

작가는 작품으로 말한다고 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작품의 경향성이 변한다는 것은 바로 그 작가의 삶에 변화가 있었다는 점일 것이다. 마크 트웨인의 ‘톰 소여의 모험’ 등 초기 작품들에서 느껴지는 점과 후기 작품에서의 차이는 미국인으로써 저자의 삶이 구체화된 배경에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1000년을 훌쩍 뛰어넘는 시간여행을 통해 유럽문학의 근본적 출발점으로 돌아가 19세기를 살아가는 작가가 말하고 싶었던 것은 무엇일까? 시공간을 초월하여 벗어나고 싶은 영국과 미국의 비슷한 무엇을 본 것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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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혁명 - 유럽의 지식과 야망, 1500~1700
피터 디어 지음, 정원 옮김 / 뿌리와이파리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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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7세기 유럽지식의 보고를 만나다
시간이라고 부르는 개념에 대해 생각해 본다. 결코 멈추는 일이 없는 시간의 흐름을 인간의 편리한 사고를 위해 단위를 설정하고 구분하여 때와 때 사이를 이어가고 있는 것이 바로 시간이라는 개념이 아닌가 싶다. 특히, 역사의 긴 흐름에 묻힐 수도 있는 특정한 변화를 이해하기 위해 인위적으로 구분하고 그 시간대를 규정하는 특정한 단어를 떠올릴 때면 그 유용성을 대한 가치를 발견하곤 한다.

인류가 이룩한 문명과 과학의 산물에 대해 이렇게 특정한 시간대를 설정하고 그 시대를 특징짓는 일은 결국 그 시대를 살아갔던 사람과 자연의 관계에서 얻어낸 사람들의 업적에 대한 규정을 하기 위해서가 아닌가도 싶다. 하지만 그렇게 규정하는 시간대 역시 규정하는 사람들에 의해 다소 편향적인 치우침이 있을 수 있다는 점을 잊지 않아야겠다. 그러한 치우침은 인류 역사에 대한 평가를 할 때 현재의 지배적인 위치를 점하는 특정한 지역에 편중된다는 점이다. 인류가 이룩한 철학, 과학, 사상 등 굵직한 인문학적 접근을 시도할 때 서양의 관점에서 모든 인류의 업적을 바라보는 점이 바로 그러한 치우침이 아닌가 싶다. 어찌되었던 서양의 업적을 무시하고자 하는 말이 아니고 상대적으로 우위에 서 있었던 당시 동양의 철학, 사상, 과학 기술 등에 대한 평가절하를 하지 말자는 의미다.

‘과학 혁명’은 인류의 역사를 이야기할 때 반드시 언급되는 특정한 시기인 16~17세기의 이야기를 담았다. 유럽의 이 시기는 르네상스로 대표하는 다양한 철학, 사랑, 과학, 문화, 예술 등의 업적과 성과를 이어받고 보다 창조적이고 진취적인 도전의 결과가 집약된 시기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시기의 규정을 ‘과학혁명이 일어난 시기’라고 칭하고 있는 것이다.

저자 피터 디어는 16~17세기에 일어난 혁명적 전환을 ‘과학적 사유와 실천의 근본적 전환’으로 규정한다. 이 시기의 대표적인 과학자들로는 코페르니쿠스, 케플러, 갈릴레이, 데카르트, 뉴턴 등 누구나 알 만한 사람들이 활동하던 시기였다. 이는 지난 시기 사회를 규정하고 있던 사상의 변화를 필두로 하여 사고의 전환이 혁명적으로 일어났으며 이러한 사유의 전환을 실천적으로 이끌었다는 특징을 들고 있다. 이러한 ‘실천적 지식’을 바탕으로 사회 전반에 걸쳐 대 전환이 이뤄졌다고 파악하는 것이다. 특히, 이러한 맥락에서 시대의 파악을 16세기를 '과학적 르네상스'로, 17세기를 과학적 혁명의 시대로 보고 있다.

갈릴레이의 ‘운동에 대하여’,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을 비롯하여 인류 과학사의 커다란 변환이 이뤄진 시기가 바로 이 시기다. 이렇듯 그동안 과학의 관심이 알 수 없는 자연현상에 대한 설명에 있었다면 이 시기부터 인간이 ‘자연을 지배하고 통제’하는 방향으로의 전환을 이뤘다는 점이다. 이는 사고의 혁명적 변화였다. 즉, 과학이 차츰 실용적 지식에 집중하게 되면서 근대 과학의 출발점이 되었다는 점이다.

이 책은 왜, ‘유럽의 지식과 야망, 1500~1700’년이라는 타이틀을 붙였는지에 대한 이유를 알게 한다. 오늘날 인문학이라 부르는 학문들의 중심적인 관심사가 무엇이었고 그 학문들이 상호간 영향을 미치면서 성과를 축적하고 이를 바탕으로 사회 자체가 변화했다고 파악한다면 그야말로 16~17세기 유럽의 지식을 총 망라하고 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 책의 발간 목적을 대학에서 강의에 사용되도록 했다고 한다. 이러한 점은 과학의 다양한 주제와 쟁점을 포괄적으로 설명하면서도 그 중요한 업적과 성과를 포괄적으로 소개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점이 분명 처음 과학사를 접하는 사람들에게 입문서이면서 개론서의 역할을 톡톡히 할 것으로 기대되는 점이다.

인문학 특히 과학이나 철학 사상 등이 어려운 것이라는 편견으로 접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최고의 입문서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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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거기 있어 줄래요?
기욤 뮈소 지음, 전미연 옮김 / 밝은세상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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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면, 거기에 있을까?
죽음은 과연 모든 것의 마지막 일까? 가장 일반적으로 죽음에 대한 생각을 할 때면 죽음으로써 모든 것이 끝난다는 생각일 것이다. 죽은 후 무엇이 있는지에 대한 생각보다 살아온 시간에 대한 알지 못하는 두려움이 더 크지 않을까 싶다. 가슴 속 깊은 곳에 숨겨두고 애써 외면하고 살아왔던 무엇이라도 있다면 더 크게 다가 올 것이다. 이미 이러한 진실을 알고 더욱 되돌릴 수 없기에 지나간 시간은 그렇기에 큰 힘을 가진 것이리라.

하지만, 지나간 시간 중 어떤 시간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이러한 생각은 누구나 한번쯤 해본 것일 수도 있다. ‘당신, 거기 있어줄래요?’의 이야기의 출발점은 바로 이것이다. 죽음 앞에서 가장 되돌리고 싶은 그 순간으로 시간여행을 가 자신의 선택을 돌려보고 싶은 것 말이다.

죽음을 선고 받은 한 외과의사 엘리엇은 평생을 가슴 속에 묻고 살아온 사랑 일리나를 다시 보고 싶어 한다. 우연히 시간을 돌리는 알약을 손에 쥔 그는 30년 전으로 돌아가 자신의 사랑 일리나를 만나고 싶다. 처음 시작은 그녀를 다시 보는 것이었다. 하지만 죽을 운명에 처한 일리나를 살려내면서 운명이 바뀐 사람들이 겪는 고통에 대한 책임을 져야했다. 엘리엇의 갈등은 사랑을 살려내면 훗날 자신의 유일한 딸아이의 운명과 직결되기에 다시 선택의 순간을 맞는다. 

저자는 용감한 선택을 한다. 자신의 사랑하는 사람을 살려내고는 그녀와 이별한다는 것이다. ‘사랑이나 우정만한 삶의 버팀목도 없지만 혼자서 헤쳐 나갈 수밖에 없는 문제가 있기 마련이다.’ 다른 사람들의 운명에 영향을 주지 않으면서도 사랑하는 사람을 지켜가려는 엘리엇의 선택과 그 선택으로 인해 자신의 유일한 사랑과 친구와도 이별하는 아픔을 감내하는 것이다. 그렇게 살아온 30년, 겨우 죽음 후에서야 사랑하는 사람과 친구에 대한 자신의 사랑과 의리를 기록한 노트를 친구에게 남겨 새로운 운명에 대한 여운을 남긴다.

‘당신 앞에 여러 갈래 길이 펼쳐지는데, 어떤 길을 선택할지 모를 때, 무턱대고 아무 길이나 택하지 마라. 차분히 앉아라. 그리고 기다려라. 기다리고 또 기다려라. 꼼짝하지 마라. 입을 다물고 가슴의 소리를 들어라. 그러다가 가슴이 당신에게 말할 때, 그때 일어나 가슴이 이끄는 길로 가라.’ -수잔 타마로

시간 여행을 통해 그 시간으로 돌아간다고 해서 자신의 삶을 완벽하게 만들 수 있을까? 태어난 존재에게 정해진 운명이 있는 것일까? 그렇다면 그 정해진 운명에 의해 살 수 밖에 없는 것이라면 인간의 자유의지는 무엇일까?

‘시간여행’이라는 개념을 통해 저자가 말하고 싶은 것은 무엇일까? 이 모든 이야기기의 시작과 끝은 결국, 시간에 대한 생명의 유한성에 있지 않을까 싶다. 이러한 시간여행에 대한 갈망이 존재하는 것은 곧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한 아쉬움과 미련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지나온 시간 결코 되돌릴 수 없다는 점과 이미 정해진 운명이라면 바꿀 수 없을지라도 그 결과에 이르기까지 과정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것이리라. 많은 사람들이 지나온 시간과 다가오지 않은 미래에 발목 잡혀 소중한 현재를 낭비하며 살아가는 우리들에 대한 성찰의 기회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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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범죄 - State Crimes
이재승 지음 / 앨피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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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범죄, 때늦은 청산은 없다
국가와 개인의 이익이 충돌하게 될 때 무엇이 우선되어야 하는가? 라는 문제에 직면하게 되면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된다. ‘시민 의지로부터 법과 정부가 나와야 하며 이것은 타인에게 양도하거나 분할할 수 없다’고 역설한 루소의 이야기를 끌어들이지 않더라도 사회가 변화하면서 개인의 권리에 대한 중요성은 날로 커가고 있다. 국가라는 보이지 않은 실체가 국가의 구성요소인 개인의 존재와 그 자유를 침해하는 경우를 접할 때는 더욱 이러한 문제에 대해 고민하게 될 것이다.

우리의 역사는 개인이 바로 이러한 선택의 문제에 직면하게 만든 많은 사건들이 있었다. 하지만 무엇 하나 그 진상에 대한 규명은 명확하게 밝혀진 것이 없다. 민주정부나 참여정부 등 정권의 성격이 변하면서 역사 속에 묻혀있던 사건들이 세상 밖으로 나오는 기회도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수면아래에서 한줌의 빛이라도 들어오길 간절히 바라는 사건은 부지기수다.

‘국가범죄는 법전法典에는 없는 말이지만, 일반적으로 국가권력에 의한 중대한 인권유린 행위를 가리킨다. 국가범죄를 대체하는 개념들로는 정부범죄, 인권범죄, 국가에 의해 조종된 범죄, 국제법상의 범죄, 중대한 인권침해 행위 등이 있다.’

국가범죄에 대한 이러한 인식을 바탕으로 저자는 권력의 힘에 의해 개인 및 집단이 오명을 쓰고 지하에서 아파했던 바로 ‘국가범죄’라는 묵직한 주제를 이야기 한다. 국가범죄라는 이 무거운 말을 할 수 있다는 현실에 반가움보다 앞선 안타까움이 여전한 것은 무엇 때문일까? 

우리나라의 현안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해결하고 넘어가야 할 문제가 있다고 한다. 여러 분야의 석학들에 의하면 그 문제는 바로 ‘일제잔재의 청산’과 ‘분단의 극복’이라고 한다. 우리가 겪고 있는 당야한 문제의 근원을 파고들면 이 문제와 직면하게 된다는 말일 것이다. 이는 바로 과거사를 올바로 자리매김할 때 현재에 올바로 설 수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 중심에 ‘과거청산’이 있다고 분명하게 말하고 있다. 저자는 이러한 과정을 국내외의 구체적 실례를 찾고 그 처리 과정을 면밀하게 분석하고 있다. 특히 제주 4.3항쟁이나 몇몇 개인들의 사례는 과거청산의 결과가 무엇으로 귀결되어야 하는지를 말해주는 과정이 아닌가 한다.

저자는 과거청산의 방향이 ‘근본적으로 어떠한 정치 구조와 문화 속에서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공공적인 의제 설정’에 있다고 보며 과거청산은 곧 ‘인권의 문제’의 문제라 규정한다. 국가로부터 개인들이 반드시 보장받아야 할 인권이기에 이것은 과거나 현재의 문제만이 아닌 미래와도 직결되는 문제라는 것이다.

광주민주화운동관련자 보상 등에 관한 법률(1990), 5.18민주화운동 등에 관한 특별법(1995), 헌정질서파괴범죄의 공소시효 등에 관한 특례법(1995), 거창사건 등 관련자의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조치법(1996), 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2000), 의문사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2000), 민주화운동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에 관한 법률(2000), 광주민주유공자 예우에 관한 법률(2001), 동학농민혁명 참여자 등의 명예회복에 관한 법률(2004), 일제강점하 강제동원 피해진상규명 등에 관한 특별법(2004), 삼청교육대피해자의 명예회복 및 보상에 관한 법률(2004), 특수임무수행자 보상에 관한 법률(2004), 군의문사 진상규명 등에 관한 특별법(2005),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기본법(2005), 일제강점하 반민족행위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2005), 친일반민족행위자재산의 국가귀속에 관한 특별법(2005), 태평양전쟁전후 국외강제동원희생자 등 지원에 관한 법률(2007)

2010년 10월 현재, 우리나라에서 제정된 주요 과거사 관련 법률이다. 모두 열일곱 가지 이 법률들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를 생각하면 관련자들뿐 아니라 많은 국민들에게 특별한 감정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이 모두가 바로 국가범죄와 관련된 법률이라는 것이다. 이것이 다는 아닐 것이다. 앞으로도 이러한 법률이 필요한 부분이 많다는 현실은 우리 모두가 직시해야 할 국민의 의무가 아닐까 싶다.

‘때늦은 청산은 없다’고 분명하게 선언한다. 청산하지 않으면 언젠가는 우리의 발목을 붙잡을 것이기에 형사책임, 공소시효 등 법률적 한계를 넘어서서 ‘민족과 인권’ 차원에서 근본적 대안은 꼭 필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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