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우스트 홍신 세계문학 1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지음, 정광섭 옮김 / 홍신문화사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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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가지는 긍정의 힘
‘요한 볼프강 폰 괴테’, 괴테의 풀 네임이다. 고백하자면 처음으로 알게 되는 이름처럼 생소한 느낌마저 든다. 여타의 유명한 저자들처럼 그 명성에 어울리지 못할 만큼 나에게는 친숙하지 못한 작가라는 뜻이 맞는 말일 것이다. 괴테의 파우스트를 접하며 다시금 그저 막연함으로 이름만 알고 있는 작가 가 얼마나 많은가 세삼 느끼게 된다. 그래서인지 요사이 책을 손에 들면 가장 먼저 저자의 프로필을 보게 된다. 책이 담고 있는 내용도 궁금하지만 저자의 삶과 그 업적을 알게 되면 책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요한 볼프강 폰 괴테(Johann Wolfgang von Goethe, 1749-1832)은 독일의 시인 겸 작가이다. 왕실 추밀원 고문인 아버지와 시장의 딸이었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엄격한 교육을 받고 자랐다. 대학에서 법률을 공부했고 문예 혁명운동의 선두주자 고트프리트 헤르더에게 독일 민속과 정신에 대한 영향을 받았다. 목사의 딸 프리데리케 브리온과 사랑에 빠지며 감미로운 서정시들을 많이 썼으며, 변호사로 활동하지만 업무보다는 창작에 몰두한다. 엄격한 규칙이나 규율 등 정형화된 형식을 강조하며 낭만주의와 대비되는 고전주의의 대표작가로 알려진 그의 저작들로는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파우스트, 빌헬름 마이스터의 편력시대, 헤르만과 도로테아, 이탈리아 기행, 시와 진실 등이 있다. 

'파우스트'는 괴테가 60여년에 걸쳐 완성했다는 희곡이다. 이 희곡은 15~16세기를 배경으로 실재했다는 파우스트라는 인물과 마술 신앙을 비롯하여 기독교라는 종교와 결부하여 완성했다고 보기도 한다. 요한 파우스트라는 지식인이 추구하는 학문에 대한 탐구와 한 인간의 욕망이 표출되어가는 과정에 대해 그려내고 있다. 희곡 파우스트는 2부 5막으로 구성되어 있다. 

괴테에 의한 만들어진 파우스트라는 인간형이 표현하는 것이 무엇일까? 파우스트 전설에 담긴 인간의 특징으로 거인적이고 모든 욕망을 향유하려하며, 이 모든 욕망이 하느님의 힘이나 광명으로는 이루어질 수 없고 악마와 결탁해야만 이루어지며, 주인공이 멸망하고 연혼은 영원히 지옥으로 떨어지는 비극으로 끝난다고 한다. 하지만 괴테의 파우스트는 이로부터 한발 나아가고 있다. 이 속에 인간의 긍정적인 의지인 향상성을 부여한다. 그리하여 죽은 후 인간의 영혼을 신에 따스한 품에 깃들 수 있다는 것이다.

작품을 완성하는데 걸리는 시간만큼이나 방대한 분량의 파우스트는 다가가기가 쉽지 않다. 무대에서 배우들에 의해 해석되어진다는 희곡이 가지는 특징이 될 수도 있지만 등장하는 인물들의 대사를 따라가기가 녹녹치 않다. 가장 최근에 현대어로 번역되어 다른 번역본에 비해 익숙한 언어지만 그래도 만만치 않은 점이 있다. 이럴 때는 역자의 작품해설이 도움이 되기도 하지만 이 책은 그것도 빈약한 측면이 있다.

1부와 2부로 구성된 파우스트는 학문과 이룰 수 없는 인간의 욕망에 대해 회의를 느낀 파우스트가 악마 메피스토펠리스와 사후 영혼을 두고 거래를 하면서부터 둘의 여행이 시작된다. 우여곡절을 겪으며 호화스러운 생활, 마르가레테와 헬레네라는 두 여인과 애절한 사랑을 하게 되지만 마지막 숨을 거두는 파우스트의 모습에서 인간의 본성에 대한 성찰을 하기에 이른다. 

'착한 인간은 혹시나 어두운 충동에 휩쓸릴지라도 올바른 길을 잊지 않는다.‘ 와 '어리석은 인간은 가진 것에 만족할 줄 모르고 쾌락만을 탐한다.'는 극단의 인간의 근본에 대한 인식이 파우스트라는 인간형에 의해 그러지고 있다. 죽음, 사랑, 쾌락, 욕망 등 사람의 본성에 대한 탐구는 선과 악이라는 두 축을 통해 신과 악마로 대별되며 지속되어 현대에 이르고 있다. 

시대를 불문하고 인간의 본성에 대한 의문을 가진 사람들에 의해 수많은 연구가 있었다. 시대에 따라 사람을 나타내는 대표적인 말들이 변하기도 한다. 어떤 시각으로 고전을 볼 것인가 역시 보는 사람이나 그 사람이 살아가는 시대정신에 의해 규정될 수밖에 없다. 괴테의 파우스트 또한 당연하게 그 의미를 해석하는 측면은 현대의 시대정신을 벗어나지는 않을 것이다.

착한 인간, 긍정의 의지와 어리석은 인간, 나약한 존재는 인간을 둘러싼 온갖 경계에서 늘 갈등할 수밖에 없는 인간 모습의 표현인 것이다. 시대가 변해 인간에 대한 규정을 어떻게 달라지던 인간이 가지는 긍정적인 힘이 있기에 역사는 발전해 왔고 미래 또한 그 의지에 의해 개척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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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팔천 - 나도 사람이 되고 싶다
이상각 지음 / 서해문집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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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사람이라지만...
오래전 일이지만 영화 ‘왕의 남자’에서 너무 많은 것을 가슴에 담고 살지만 끝내 어쩌지 못하는 공길의 서글픈 눈빛을 잊지 못한다. 공길의 눈으로 바라본 세상은 어떤 곳이었을까? 또한 하늘의 도가 무엇이고 인간의 근본이 무엇인지를 탐구하며 선비의 정신을 구현하고자 학문의 길을 걸었던 조선의 선비들의 이중적인 모습도 이해할 수 없는 것이었다. 달빛이 스며드는 창가에서 거문고 타며 취했던 마음과 재인들이 타는 거문고가 어떻게 다르며, 자신의 서가에 버젓이 올려놓고 애지중지 아끼던 도자기를 만들었던 장인들의 손길이 또 어떻게 다른지 알 수 없다. 

신분은 날 때부터 타고난 것이 아니라 인간의 ‘부와 권력’에 대한 욕망이 만들어 낸 것이기에 하늘이 내린 그 어떤 것보다 넘어서기 어려운 벽이 아니었을까 싶다. ‘타고난 신분이란 원래부터 그런 것이다’고 말한다고 해서 해결되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인간의 이중성이 여지없이 드러나는 증거가 분명하다. 그렇기에 드문드문 나타나는 역사도 외면한 사람들의 이야기는 늘 가슴을 아리게 한다. 그런 부류가 우리 역사 가까운 조선에서도 분명하게 있었다.

이상각의 ‘조선팔천’(朝鮮八賤)은 조선시대 인간취급도 받지 못했던 부류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노비(나도 사람이 되고 싶다), 기생(선녀인가 매화인가), 백정(언저리도 안 되는 것들), 광대(신나게 한번 놀아보세), 공장(자유를 대가로 차별을 얻다), 무당(병든 영혼을 해방시켜라), 승려(조선은 유교의 나라다), 상여꾼(망각의 강으로 인도하라) 등으로 천하게 여겼던 여덟 부류의 사람들에 대해 그들의 실상을 낱낱이 밝히고 있다.

이런 아이러니를 볼 때마다 의문은 그것이다. 유럽의 중세를 암흑의 시기라 했던 이유 중 하나가 종교에 의해 모든 것이 지배되었던 것도 있다. 사람이 사는 이유, 삶의 방식, 심지어 일상생활 어느 것 하나 자유롭지 못했다. 우리 조선에서도 그렇게 모든 삶을 저당 잡혔던 사람들이 바로 천민들이었고 그것이 가능했던 사회라는 점이다. 이 책에 나오는 미암일기의 유희춘이 보여준 모습은 그러한 아이러니를 확실하게 보여준 사례가 아닌가 싶다.

이 밖에도 말을 알아듣는 꽃으로 취급했건 기생은 바로 욕구를 채우고 싶지만 자신들의 가족은 보호하고자 했던 이기심의 발로가 기생이라는 제도를 굳건히 했다는 것이다. 한편으로 고려를 마감하게 했던 원이 중 하나인 불교의 승려들에 대한 조선의 정책은 그야말로 철퇴나 다름없다. 하늘에서 땅으로 곤두박질처진 그들의 삶은 극과 극을 경험했기에 더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또한 일제시대 형평사를 조직하고 자신들의 삶을 질을 높여나가면서도 나라를 위해 독립운동을 함께했던 백정들의 삶에서는 고개가 숙연해짐을 느낀다. 

팔천(八賤)은 일반 백성들과 가장 가까이 살았고, 다양한 직업에서 활약했으며, 사회에서 없어서는 안 될 존재였지만 철저히 무시되어 역사는 이들을 기록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사실을 밝히고 인식하여 역사를 새롭게 읽어가는 분명한 주제로 등장시켜야 한다는 저자의 시각이 분명하게 드러나는 이 책에는 인간의 인간에 대한 본질적 안타까움이 담겨 있다고 보인다. 삶을 영위하는데 꼭 필요하지만 자신을 하지 않고 그를 대신했던 사람들을 신분제도라는 사슬에 얽매어 자신들이 누리고 있던 부와 권력을 지켜나갔던 사회와 그 사회를 주도했던 사람들에 대한 반성의 의미도 있다.

이러한 팔천(八賤)에 대한 차별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로서는 상상도 못할 것이 분명할 것이다. 하지만 사회가 변하고 사람들이 변하면서 숨겨지고 왜곡된 다름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근본적으로 인간이 인간을 존중하지 못하는 것으로 팔천의 시작을 본다면 나와 타자사이 벽을 높게 쌓고 소통을 거부하는 모습도 그에 못지않은 폐단을 낳을지도 모를 일이기에 경계해야할 일이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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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주석이 사랑한 우리 그림
오주석 지음 / 월간미술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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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은 읽는다는 것은 이런 것이다
누구나 자신이 보고 싶은 것을 본다. 살아가다 보면 이 말은 여러 가지 일에서 너무도 쉽게 확인된다. 하지만 나는 무엇을 볼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해보면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니다. 관심 있는 그림 한 점을 눈앞에 두고서도 그 속에 담긴 사람의 진솔한 마음을 볼 수 있는 것은 그리 쉬운 게 아니라면 것을 그림에 관심을 가져본 사람이라면 다 알고 있다. 보고 싶은 것을 보고자 한다면 그 분야에 필요한 기본적인 지식을 습득하고 이를 통해 자신 마음 속 울림과 어우러졌을 때 그때서야 비로소 가능해지는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나에게 이런 생각을 확인하는 기회가 있었다. 예전부터 그림에 관심이 있었고 특히, 우리 그림이 주는 묘한 매력에 빠져 관련 서적을 하나 둘 모으다 보니 겹쳐지는 저자가 있는 것을 발견한 것이다. 그 사람이 오주석이다. 오주석이라는 사람의 우리 그림에 대한 독특하고 감칠 맛 나는 그림 읽기를 보면서 그의 가슴이 얼마나 넓고 깊었을지 상상해 보곤 했다. 그의 우리 것, 우리 그림에 대한 관심과 사랑은 자신의 전문분야에 대한 탐구정신과 책임감을 넘어서는 무엇이 있다. 그 마음이 보여 그의 글을 보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오주석(吳柱錫)은 지금 볼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다. 동양사학을 고고미술사학을 공부한 그는 조선시대의 그림과 단원 김홍도에 대한 독보적인 연구와 해설을 내 놓았다. 그는 학교 강단에선 학자로써 머물지 않고 자신의 연구 성과를 보다 많은 사람과 나누기 위해 노력했던 사람이다. 49세 젊은 나이에 요절한 그를 기리는 사람들의 마음이 모여 유작 ‘오주석이 사랑한 우리 그림’이라는 책이 발간되었다.

‘오주석이 사랑한 우리 그림’에는 조선시대의 그림이 중심이다. 누구나 알만한 한번쯤은 보거나 들었을 우리 옛 그림 27점을 그 만의 시각으로 해설하고 있다. 그가 선정한 그림에는 김홍도, 신윤복, 강세황, 김정희, 이인문, 정선, 강희안, 김명국 등 조선시대를 주름잡았던 당당한 화가들의 그림이 담겼다. 이러한 그림을 해석한다는 것은 워낙 유명한 그림이기에 전공자로써 부담스러운 점이 있을 수 있었을 것이다. 이미 화가와 그림을 해설한 기존 학자와 전공자들의 글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주석의 그림 읽기는 전공자의 박식함이나 전문성을 넘어선 무엇이 있다. 그는 전공자로써의 전문지식에 우리 그림을 사랑하는 마음이 가득 담긴 가슴으로 읽는 따스함으로 그림을 읽어주고 있다. 그림을 읽어간다는 것은 그림을 그린 사람이 어떤 마음이었을지 짐작하는 것이 우선일 것이다. 그것으로부터 시작한 그의 그림 읽기는 그림 속 무엇 하나도 놓치는 법이 없다. 그림을 그리는 화가의 마음과 그 그림을 읽는 독자의 마음이 하나로 만나는 지점을 찾아내 감동을 바탕으로 하는 소통의 기회를 안겨주는 것이다. ‘감상은 영혼의 떨림으로 느끼는 행위인 만큼 마음 비우기가 중요하다’고 한 이유를 알만하다.

오주석은 ‘우리 옛 그림 안에는 우리가 지금 이 땅에 사는 이유, 그리고 우리인 까닭이 들어 있는데, 우리는 여전히 내가 사랑하는 우리그림 하나 대기가 힘들다’는 현실의 안타까움이 들어 있다. 그의 가슴과 눈을 통해 발견하는 우리 그림 매력이 한 층 더 살아나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닐 것이다. ‘아는 것은 좋아하는 것만 못하고, 좋아하는 것은 즐기는 것만 못하다(知之者 不如好之者 好知者 不如樂之者)’는 말의 진가를 그의 그림 읽기에서 확인한다. 그가 그토록 좋아했던 우리 그림에서 발견한 감동을 모든 이웃과 함께 나누고 싶었다던 마음이 너무도 쉽게 발견되기에 생전에 좋아했던 화가 김홍도의 ‘소림명월도(疏林明月圖) : 차고 맑은 가을, 성근 숲, 달이 뜬다.’을 읽어주는 오주석의 마음을 알 것도 같다.

‘오주석이 사랑한 우리 그림’은 그림을 읽는 것은 이런 것이다 의 모범답안 같다. 그림을 좋아하는 내 마음이 오주석의 그 마음을 따라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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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념사란 무엇인가 - 역사와 언어의 새로운 만남
나인호 지음 / 역사비평사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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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해석하는 또 다른 방법, 개념사
언어가 없다면? 이라는 상상이 가능할까? 사람들이 누리는 온갖 물질문명과 문화적 혜택은 어떻게 보면 언어가 있었기에 가능한 것인지 모른다. 하지만 우리가 빈번하게 사용하는 모든 말들의 그 본래적 뜻을 정확하게 알고 사용하는 것일까? 분명 그렇지는 못하다. 누구나 한번쯤은 의사전달 과정에서 내가 의도한 뜻과 전달된 뜻이 달라 일을 그르치거나 역으로 다른 결과를 가져온 경험들이 있을 것이다. 이런 일이 일어난다고는 하지만 학문하는 사람이 아인 일반인이 굳이 사용하는 모든 말의 본질적 뜻을 다 알아야 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도 하게 된다.

언어는 한 가지 뜻만 가진 것이 아니고 사용하는 조건에 따라 문맥을 살펴야 하는 일이 더 많다. 또한 말이라는 것이 어떤 목적으로 쓰는가에 따라 본래적 의미를 상실하고 엉뚱한 뜻을 전달하기도 한다. 이는 사회적 공론이 필요한 부분 등 공식적으로 사용되는 말이라면 분명 문제를 일으킬 소지가 다분하다. 텔레비전 토론 프로그램을 시청하다보면 분명 같은 단어를 사용하지만 자신이 전하고자 하는 의미가 달라 공허한 메아리로 그치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된다. 바로 이러한 상황에서 필요한 것이 사용하는 언어의 본질적 내용에 대한 공감이 아닐까 싶다.

‘개념사란 무엇인가’ 이 책은 어떻게 보면 이렇게 같은 이야기를 하면서도 다른 내용을 말하는 상황에 대한 문제제기일수도 있을 것이다. 다소 낯선 ‘개념사’라는 단어가 주는 선입감은 바로 그런 것이었다. 하지만 저자가 밝히는 ‘개념사’는 보다 심층적이고 심오한 학문적 뜻을 함축하고 있다. ‘개념사는 언어와 역사가 어떻게 얽혀 있는지 탐구하는 역사의미론의 한 분야이다. 전통적 역사학에서 언어는 단지 과거가 실제로 어떠했는지 파악하는 수단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역사의미론에 의하면 오히려 언어가 역사적 실재를 구성한다.’ 라는 설명이 솔직히 알 듯 말듯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점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 책은 다분히 개념사에 대한 지평을 넓히기 위해 이를 소개하고 그간의 성과를 보여주는 역할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기에 구성도 그런 순서를 보여주고 있다. 먼저 1부에서는 개념사의 이론적 형성과정을, 2부에서는 근대를 시작으로 문명과 문화, 미국과 아메리카니즘, 여자, 역사, 자본주의 정신 등의 단어가 가지는 의미를 개념사 입장에 서서 설명하고 있다. 

‘역사의미론으로서의 개념사는 언어와 텍스트에 의해 역사적 실재가 어떻게 구성되었는가를 연구하면서, 언어 현상 중 특히 개념에 초점을 맞춘다. 개념사는 역사 행위자들이 개념을 사용하면서 표현하고자 했던 여러 의미의 성층을 파헤쳐, 그들의 경험과 기대, 경험을 해석하는 방식, 세계관과 가치관, 사고방식이나 심성, 그리고 희망과 공포 등을 읽어낸다.’

일례로 저자가 밝히는 개념사로 보는 여자에 대한 설명은 여성사의 한 측면을 보는 듯하다. ‘여자라는 존재, 동반자에서 적으로 변화하다 → 근대적 남자의 동반자 현모양처 → 팜므 파탈의 등장, 남성의위기 → 남성동맹의 적으로서의 여자’로 변화되어오는 과정이 바로 여성사의 한 장면이라고 보이는 것이다.

어떤 단어가 생성되고 그 뜻이 함유하는 내용이 변화와 정립의 과정을 거치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그렇기에 특정 단어를 통해 그 단어의 변천사를 알아간다는 것은 역사를 보는 한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점이 바로 개념사가 가지는 매력이며 존재 이유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그렇게 본다면 아직은 생소한 개념사에 대한 학문적 접근은 무척이나 큰 의의를 가질 것이다. 저자가 ‘근대’라는 단어가 가지는 의의를 개념사적 시각으로 설명하며 보여준 중층적 의미는 분명 역사를 새롭게 규정하는 일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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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설픔 - 한 번도 제대로 쉬어보지 못한 이들에게
이기웅 지음 / 조화로운삶(위즈덤하우스)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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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을 바탕으로 하는 소통은 곧 감동이다
마음으로 깊은 동질감을 느낀다는 것이 이런 걸까? 어느 때부터인지 확실치는 않지만 나무며 꽃들이랑 붉게 타는 노을, 아침햇살에 빛나는 느티나무 잎의 떨림 같은 것들이 눈을 사로잡더니 점차 가슴으로 들어왔다. 이유는 모른다. 하지만 그렇게 들어온 자연 속 생명들은 복잡했던 머리를 개운하게 만들어주고 텅 빈 듯 한 가슴을 온기로 채워주었다. 이런 정도라면 요즘 사람들 누구나 누리고 있고 또 누리고 싶어 하는 것으로 충분히 공간하는 것이리라.

이기웅, 이 사람에게 동질감을 느끼는 것은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고 있는 모습이 전부가 아니다. 어린 시절부터 그가 생각하고 꿈꿔온 세상에 대해 하나 둘 알아가며 느끼는 그것이 더 크다. 살아온 과정, 지금 살아가는 모습은 분명 전혀 다른 모습들이지만 묘한 공감이 있다. 하여, 내가 살아가는 세상에 나와 참으로 비슷한 생각을 하며 사는 사람이 하나쯤 있구나 하는 안도감이 생긴다. 그 사람이 살아온 삶의 중심에 확고하게 자리 잡은 것이 무엇인지 이 책 한권에 다 담을 수 없을지 모르지만 가슴으로 느끼는 사람들은 충분히 알고도 남음이 있을 것이다.

‘어설픔 : 한 번도 제대로 쉬어보지 못한 이들에게’의 저자 이기웅, 그는 한의사다. 아픈 사람들을 돌보며 병든 육체와 정신을 보듬고 함께 나누고자 하는 것이 보통의 의사와는 다른 무엇이 있지만 현실적으로 보이는 모습은 한의학을 전공하고 한의원을 개원한 의사라는 것은 분명하다. 환자를 대하는 남다른 모습은 그가 독특한 한의사여서 그런 것만은 아닐 것이다. 스무 살 무렵 세상과 만나는 자신의 삶의 가치가 세상 속에서 찾아지지 않아 그것을 찾는 내면의 여행을 지속해온 결과가 이렇게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이 책은 그런 저자의 그간 삶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물론 환자를 본질적으로 만나기까지 침도 약도 처방하지 못하는 의사의 고뇌가 짐작이 된다. 그가 만나온 환자들에게서 얻은 교훈은 자신이 살아오며 추구한 꿈과 멀지 않다는 것이 그것이다. 약이나 침을 처방하기 전에 환자와의 소통을 먼저 생각하고 그것을 위해 기꺼이 여행을 준비하고 길을 나선다. 이것만으로도 좀 유별한 의사가 아닐까 싶다. 이 유별나다는 것은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에서 좀처럼 보기 힘든 낯선 모습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그에게 진료를 받았던 많은 사람들은 그것이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알아가고 그와 함께 하는 동안, 자신이 잊고 있었거나 애써 외면했던 자신의 가슴에서 울리는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우리게 되었다는 것이다. 하여 대부분 몸에 든 병은 우리 몸이 스스로 치유할 수 있는 것임을 자각하게 된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를 확인하며 깨우쳐가는 것이 진료라고 생각한다. 

‘나는 사람들이 아프기를 바라는 한의사입니다. 아프다는 것은 삶을 다른 방식으로 바라보라는 신호이기 때문입니다. 조금 어설퍼지세요. 그러면 긴장이 사라지고 비로소 마음이 쉬어집니다.’

아픈 환자와 병을 치료하는 의사 사이에 이 말이 통할 수 있는 관계가 얼마나 될까? 환자를 아니 사람들을 대하는 저자의 심정이 절절하게 녹아있는 말이 아닐 수 없다. 완벽함 만을 추구하고 강요되어지는 현실에서 이를 이겨내고 살아왔지만 어느 순간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무너지는 순간, 마음에 갇혀있던 그 무엇이 몸으로 나타는 것이 병인지도 모르겠다. 하여 일시적인 치료는 근본적으로 몸을 회복하는 데에 큰 작용을 하지 못한다고 보는 것이 이 의사가 유별난 방법으로 환자를 대하는 방법인 것이다.

‘어설프다’는 형용사는 익숙하지 못하고 엉성함이나 허술한 행동 따위를 설명할 때 사용된다. 완벽하다에 대치되는 그 말에는 부정적인 의미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여유나 틈 등 무엇인가 다가설 수 있는 여지가 있다는 것으로 볼 때 특별한 의미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사람관계의 시작인 ‘만남’의 단초를 형성하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현대인이 외로움을 느끼는 것의 한 원인으로 ‘인간과 인간의 본질적 만남’의 부재를 들고 있는 저자는 그 만남의 중요성을 확신하고 있다. 그래서 틈이 보이는 어설퍼지자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이 책은 의사로써 환자를 만나는 경험을 적고 있다. 그 경험을 풀어 놓은 것이 곧 저자의 세계관이다. 또한 의사가 주체가 되어 밝힌 경험 말고도 그와 함께 소중한 체험을 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도 들어있어 친금감을 더해주고 있다.

자연을 보고 느끼는 동안 자연은 마음의 안식만을 주는 것은 아니다. 자연과 함께하는 동안 그 자연 속의 구체적인 사물들은 자신을 바라보는 사람들에게 스스로를 돌아보게 하는 작용을 한다. 그래서 내면에서 울리는 깊은 공명을 느껴 스스로를 사랑하게 만드는 것이다. 이 특별한 경험을 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지만 이 책의 저자는 그 길로 사람들을 안내하고 있는 것이다. 자신의 내면에 울리는 소리와 만나고 싶은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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