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니스의 개성상인 2 - 한복을 입은 남자
오세영 지음 / 예담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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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400년, 시간과 공간을 넘어 개성상인의 정신
특별한 이유를 들지 않더라도 어떤 특정한 사물에 집중하는 경우가 있다. 대부분 마음이 끌리는 경우가 그것일 것이지만 그 이유라는 것이 설명 불가능할 때면 그냥 마음 가는대로 따라가는 것이 현명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 중에서 왠지 모를 이유로 눈길을 끌고 기대하게 만드는 책을 만나곤 하는 경험을 하는데 이것도 그런 경우가 아닐까? 

잃어버렸던 시간을 현실로 되돌리는 것, 이것에 가장 앞장서는 것이 문학일 것이다. 그 중에서도 팩션이라는 장르의 문학은 지난 시간을 되돌려 현실감을 부여하는 것이며 역사의 순간을 기억하고 그 시간을 살았던 사람들에 대한 일상을 지금 이 시대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은 마음의 표현이 아닐까 한다. 팩션의 장르에 속하는 작품을 발표하는 작가들의 상상력이 발휘되는 순간, 어쩜 역사는 현실로 살아나는 것이 아닐까?

‘베니스의 개성상인’, 이 소설의 모티브가 된 루벤스(Peter Paul Rubens, 1577-1640)의 ‘한국인(Korean Man)’이라는 그림 한 점에서 출발하고 있다. 이 그림을 남긴 루벤스는 400여 년 전 이탈리아에서 활동했던 화가로 바로크양식을 정립시킨 장본인이다. 궁정화가뿐 아니라 외교관으로도 활동 했다. 역사화, 종교화를 비롯하여 많은 종류의 그림을 남겼는데 그중에서도 프랑스 파리 뤽상부르궁전의 21면으로 이루어진 연작 대 벽화 ‘마리 드 메디시스의 생애’가 기념비적 작품으로 손꼽힌다. 같은 시대 활동한 화가로는 티티안, 라파엘, 카라바치오, 아니발레 카라치 등이 있다. 

이 소설 ‘베니스의 개성상인’은 두 시대를 한 이야기 속에서 풀어가는 독특한 구성을 보여준다. 조선시대 임진왜란 때 일본에 포로로 끌려진 유승업과 한국전쟁 때 남하한 유명훈이라는 사람이 각기 그 시대를 살아가며 ‘개성상인’이라는 정신을 이어가는 내용을 담아내고 있다.

안토니오 코레아는 유승업의 다른 이름이다. 유승업은 일본에서 중국, 인도를 거쳐 베니스로 간 사람이다. 어쩔 수 없는 사정에 의해 베니스까지 가게 된 그는 개성상인의 후예답게 유럽 상권의 중심이었던 베니스에서 상업인으로 성공하게 된다. 동양에서 온 낯선 이방인 신분으로 낯선 문화와 생활환경에도 굴하지 않고 종교전쟁, 제국주의가 태동하는 시기의 혼란스러운 상황을 멋진 개성상인의 정신으로 헤쳐 나갔던 그의 활약상을 그려내고 있다. 

한편 이 소설의 다른 구성인 유명훈은 88올림픽 이후 종합상사의 상사원으로 전 세계를 누비며 수출한국의 입지를 굳혀가던 때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전쟁 후 월남한 아버지를 따라 남한에 정착하고 개성상인의 후예인 아버지의 정신을 이어받아 활발하게 무역전선을 누비는 모습을 담아낸다.

두 사람의 활동상은 언 듯 보기에 별 상관이 없는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1600년대 중반과 1900년대 중반이라는 시간상의 차이뿐 아니라 물질문명의 발달, 국제정세의 변화 등 여러 가지 측면에서 다른 환경이지만 두 사람이 살아가는 모습은 비슷하다. 자신의 신념을 관철시켜가는 불굴의 의지와 무한경쟁의 구도 속을 살아갈 수밖에 없는 인간관계에서 무엇이 중요한 것인지를 두 시대에 공통적으로 흐르는 정서를 담아내고 있는 것이다. 이는 400년이라는 시간차는 시대와 국제환경 등에서 사뭇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것 같지만 이 소설은 그 둘을 관통하는 하나의 정신을 찾아낸다. 바로 경제적 이익에 우선하여 의리를 생각하는 ‘개성상인’이라는 조선 상인들의 정신이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구체적인 외형이라 분명 400년의 시간 차이 만큼 다를 것이다. 하지만 사회관계를 구성하는 기본적인 인간관계는 변함이 없다. 

마치 두 편의 소설을 하나로 묶어 놓은 듯 한 구성이지만 행간을 흐르는 하나의 정신이 늘 동시성을 공유하게 만드는 매력이 있다. 곳곳에 등장하는 두 사람이 다 개성상인의 후예라는 암시는 별개의 이야기를 하나로 묶기에 충분한 것처럼 보인다. 이 소설의 출발은 그림 한 점이지만 이야기에는 조선시대와 한국이 있으며 그 속에는 시대와 환경을 뛰어 넘는 한국 사람의 위대한 정신이 있음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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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강여호 2011-02-05 16: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림 한 점이 모티브가 된 소설이라...
매력적입니다.
제목이야 익히 알고 있었지만 읽어보지도 그동안 책소개도 제대로 읽어보지 못햇는데..

잘 읽고 갑니다.
 
베니스의 개성상인 1 - 물의 도시로
오세영 지음 / 예담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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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0년, 시간과 공간을 넘어 개성상인의 정신
특별한 이유를 들지 않더라도 어떤 특정한 사물에 집중하는 경우가 있다. 대부분 마음이 끌리는 경우가 그것일 것이지만 그 이유라는 것이 설명 불가능할 때면 그냥 마음 가는대로 따라가는 것이 현명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 중에서 왠지 모를 이유로 눈길을 끌고 기대하게 만드는 책을 만나곤 하는 경험을 하는데 이것도 그런 경우가 아닐까? 

잃어버렸던 시간을 현실로 되돌리는 것, 이것에 가장 앞장서는 것이 문학일 것이다. 그 중에서도 팩션이라는 장르의 문학은 지난 시간을 되돌려 현실감을 부여하는 것이며 역사의 순간을 기억하고 그 시간을 살았던 사람들에 대한 일상을 지금 이 시대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은 마음의 표현이 아닐까 한다. 팩션의 장르에 속하는 작품을 발표하는 작가들의 상상력이 발휘되는 순간, 어쩜 역사는 현실로 살아나는 것이 아닐까?

‘베니스의 개성상인’, 이 소설의 모티브가 된 루벤스(Peter Paul Rubens, 1577-1640)의 ‘한국인(Korean Man)’이라는 그림 한 점에서 출발하고 있다. 이 그림을 남긴 루벤스는 400여 년 전 이탈리아에서 활동했던 화가로 바로크양식을 정립시킨 장본인이다. 궁정화가뿐 아니라 외교관으로도 활동 했다. 역사화, 종교화를 비롯하여 많은 종류의 그림을 남겼는데 그중에서도 프랑스 파리 뤽상부르궁전의 21면으로 이루어진 연작 대 벽화 ‘마리 드 메디시스의 생애’가 기념비적 작품으로 손꼽힌다. 같은 시대 활동한 화가로는 티티안, 라파엘, 카라바치오, 아니발레 카라치 등이 있다. 

이 소설 ‘베니스의 개성상인’은 두 시대를 한 이야기 속에서 풀어가는 독특한 구성을 보여준다. 조선시대 임진왜란 때 일본에 포로로 끌려진 유승업과 한국전쟁 때 남하한 유명훈이라는 사람이 각기 그 시대를 살아가며 ‘개성상인’이라는 정신을 이어가는 내용을 담아내고 있다.

안토니오 코레아는 유승업의 다른 이름이다. 유승업은 일본에서 중국, 인도를 거쳐 베니스로 간 사람이다. 어쩔 수 없는 사정에 의해 베니스까지 가게 된 그는 개성상인의 후예답게 유럽 상권의 중심이었던 베니스에서 상업인으로 성공하게 된다. 동양에서 온 낯선 이방인 신분으로 낯선 문화와 생활환경에도 굴하지 않고 종교전쟁, 제국주의가 태동하는 시기의 혼란스러운 상황을 멋진 개성상인의 정신으로 헤쳐 나갔던 그의 활약상을 그려내고 있다. 

한편 이 소설의 다른 구성인 유명훈은 88올림픽 이후 종합상사의 상사원으로 전 세계를 누비며 수출한국의 입지를 굳혀가던 때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전쟁 후 월남한 아버지를 따라 남한에 정착하고 개성상인의 후예인 아버지의 정신을 이어받아 활발하게 무역전선을 누비는 모습을 담아낸다.

두 사람의 활동상은 언 듯 보기에 별 상관이 없는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1600년대 중반과 1900년대 중반이라는 시간상의 차이뿐 아니라 물질문명의 발달, 국제정세의 변화 등 여러 가지 측면에서 다른 환경이지만 두 사람이 살아가는 모습은 비슷하다. 자신의 신념을 관철시켜가는 불굴의 의지와 무한경쟁의 구도 속을 살아갈 수밖에 없는 인간관계에서 무엇이 중요한 것인지를 두 시대에 공통적으로 흐르는 정서를 담아내고 있는 것이다. 이는 400년이라는 시간차는 시대와 국제환경 등에서 사뭇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것 같지만 이 소설은 그 둘을 관통하는 하나의 정신을 찾아낸다. 바로 경제적 이익에 우선하여 의리를 생각하는 ‘개성상인’이라는 조선 상인들의 정신이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구체적인 외형이라 분명 400년의 시간 차이 만큼 다를 것이다. 하지만 사회관계를 구성하는 기본적인 인간관계는 변함이 없다. 

마치 두 편의 소설을 하나로 묶어 놓은 듯 한 구성이지만 행간을 흐르는 하나의 정신이 늘 동시성을 공유하게 만드는 매력이 있다. 곳곳에 등장하는 두 사람이 다 개성상인의 후예라는 암시는 별개의 이야기를 하나로 묶기에 충분한 것처럼 보인다. 이 소설의 출발은 그림 한 점이지만 이야기에는 조선시대와 한국이 있으며 그 속에는 시대와 환경을 뛰어 넘는 한국 사람의 위대한 정신이 있음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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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유도원 - 안견과 목효지 꿈속에서 노닐다
권정현 지음 / 예담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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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향을 향한 인간의 욕망의 끝은?
이상향은 존재할까? 현실에 발 딛고 살아가는 사람에게 이상향은 어떤 의미를 가질까? 현실을 벗어나고 싶은 욕망이 모여 이상향으로 나타난 것이라면 출발부터 한계를 가진 것이 바로 이 이상향일 것이다. 현실에서는 존재할 수 없는 꿈이니까. 

지존의 자리가 흔들리는 격동의 시기를 살아가는 사람들, 그것도 권력의 중심에서 대권을 노리는 사람들이라면 그들의 꿈은 지존의 자리에 오르는 것이리라. 군주의 시대 왕권을 장악하고 자신의 이상향을 현실에서 실현하고자 했던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는 언제나 사람들의 흥미를 끌기에 충분하다. 그래서 늘 텔레비전 역사 드라마는 인기를 끈다. 바로 이상향, 권력, 현실정치, 인간의 욕망 등 사람들이 현실에서 누리지 못하는 꿈같은 이야기를 드라마틱하게 펼쳐놓기 때문일 것이다.

문학도 그에 못지않은 흥밋거리로 역사적 사건을 현실의 무대로 되살리고 있다. 문학에서 팩션이라고 하는 분야가 바로 그것이며 이 분야에 대한 관심은 날로 높아져간다. 이 책 ‘몽유도원’도 그런 분야의 소설이다. 흥미로운 점은 서로 어울 것 같지 않은 그림과 풍수를 한데 모았다는 점이 아닐까 한다. ‘몽유도원도’라는 그림 한 점을 매개로 얽혀지는 사람들과 권력 그리고 인간의 욕망이 표출되는 과정을 담아내고 있다.

이 소설의 출발이 되는 ‘몽유도원도(夢遊桃源圖)’는 1447년 안평대군이 어느 날 밤 꿈속에 노닐던 신비로운 도원경의 광경을 도화서 화원 안견에게 위탁하여 이틀 만에 그리게 그림으로 안평대군의 자필 제발을 포함 박팽년, 성삼문, 김종서, 신숙주, 최항, 정인지, 윤자운, 서거정 등 21인의 당대 최고의 문인, 묵객, 학자, 명신들의 자필 발기가 붙어 있다. 알 수 없는 과정을 통해 지금은 일본 국보로 지정되어 덴리대학에 소장되어 있다. 

'몽유도원' 바로 이 몽유도원도에 담겨진 안평대군이 자신의 이상향을 현실에서 실현하고자 했던 마음을 담았다는 추론에서 시작하고 있다.

도화서 화원 안견은 중인 집안 출신으로 독학으로 그림공부를 하고 그 실력을 인정 받아 특채되었다. 하지만 자신이 그리고 있는 그림에 만족하지 못하고 풀리지 않은 의문에 쌓여 안평대군의 서고에 보관되어진 중국과 고려의 그림을 보고 싶은 열망으로 주체하지 못하고 몰래 담을 넘는다. 안평대군의 문예를 살아하는 마음과 넉넉한 인품은 그런 안견의 받아주고 이후 든든한 후원자를 넘어 벗으로 대한다. 안견은 자신의 그림세계를 완성하기 위해 노력하던 중 삼각산에서 실족하고 목효지의 도움으로 살아남아 이후 두 사람은 친구가 된다. 

한편, 세종의 아들 수양대군과 안평대군은 그들의 형 문종이 병으로 일찍 세상을 떠나고 어린 조카 단종이 왕권을 이어받자 신권에 흔들리는 왕권을 보호하고 나라를 지켜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권력의 중앙으로 등장하고자 한다. 하지만 이 둘, 수양과 안평의 꿈의 출발은 달랐다. 비극의 출발은 이것부터가 아닐까 한다. 

흔들리는 왕권을 두고 수양대군 측이 벌이는 권력을 향한 음모를 막고 종묘사직을 지켜야 한다는 안평대군 역시 우여곡절을 겪지만 왕권에 마음이 있는 것이다. 이 권력을 장악하기 위해 풍수 목효지를 이용한다. 그 틈바구니에서 안견과 목효지의 행보는 달라지며 수양대군의 거사가 성공하며 끝내 운명이 달라진 것이다.

봄바람 같아서 잠깐 왔다가 금방 사라지는 것이 사랑이라는 목효지의 사랑 초요갱의 말은 사랑만을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리라. 이상향을 향한 인간의 꿈, 현실 권력에 대한 욕망, 자신의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욕망 등도 역시 한가지라고 말하고 싶은 것이리라. 안평대군의 꿈속에 함께 있었던 사람들의 운명과 끝내 이루지 못한 이상향에 대한 그 희망에서 모두 실패한 사람들은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다. 이렇게 사라진 사람들의 눈으로 권력의 속성과 인간의 욕망을 그려가는 점이 이 소설의 특징이 아닌가 싶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다양한 인간관계에서 주목되는 부분이 있다. 안평대군의 안견에 대한 믿음과 사랑을 그려내는 부분이 그것이다. ‘검은 먹물이 골짜기를 이루며 세세토록 흘러가리라(현동자 玄洞子)’이기를 바랐던 안평의 마음이다. 안평대군이 죽은 후에야 그 뜻을 알게 되는 안견의 마음이 얼마나 안타까웠을지 짐작이 간다. 이런 인간관계를 담아내고자 했던 것이 그림 몽유도원도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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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흔 개의 봄 - 역사학자 김기협의 시병일기
김기협 지음 / 서해문집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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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에서 아들로 이어질 봄을 기다리다
모든 사람들은 사회적 관계를 형성하며 살아간다. 누구도 예외는 없다. 이 사람들의 관계는 일정한 거리를 유지한다. 둘 사이 떨어진 거리는 그 사람과의 친밀도를 나타내며 일정한 시간동안 유지되거나 가깝게 또는 멀어지며 살아가는 것이다. 이 거리는 사람들에게 다가오는 정도가 물리적인 거리보다는 심리적 거리가 더 크게 작용된다. 또한 이 거리는 자신이 설정해 둔 거리 이상 멀어지거나 가까워질 때 부담이나 불편 때론 이별의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하지만 이 거리를 인정하지 않은 관계가 있다. 사회적 관계에서 모든 사람들 사이에 유지되는 이 일정한 거리가 무시되는 가장 전형적인 관계가 부부사이, 가족이다. 사람들이 현성하는 거의 대부분의 사회적 관계는 자의적일지도 모르지만 가족 그것도 부모와 자식의 관계를 자신의 의지와는 전혀 상관없이 맺어지는 관계다. 이 일정한 거리가 무시되거나 인정되지 않아서 발생되는 다양한 문제에는 답이 없다. 그렇기에 평생을 안고 가야하는 마음이 짐이 될 때가 많다. 하지만 이 관계는 언제나 어느 때고 아주 간단한 이유로 멀어졌던 거리가 무너지며 모든 것을 가슴으로 안아 풀어지기도 하는 것이다.

‘아흔 개의 봄’ 속에 등장하는 어머니와 아들 사이가 바로 그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된다. 아흔 나이에 치매에 걸린 어머니와 아들 사이에 벌어지는 소소한 일상의 모습에는 그 가족사의 모든 것이 담긴 듯하다. 굴곡이 많은 우리 현대사를 온몸으로 고스란히 안았던 아버지와 어머니 사이 중혼, 먼저 떠나 지아비를 가슴에 묻고 아들 삼형제를 키워온 어머니, 삼형제 사이 막내로 자라면서 어머니와 너무 먼 거리를 유지했던 아들이었다.

어느 날 갑자기 쓰러진 어머니는 파주, 일산 등 병원과 요양원을 옮겨 다니게 된다. 물론 이는 자식들과 가족들의 편의에 의해서기도 하지만 결국 그 어머니의 남은 인생을 더 편안하게 보낼 수 있게 하기 위한 것이다. ‘아흔 개의 봄’은 너무 먼 거리를 유지했던 아들이 어머니의 병원 간호하면서 가까운 사람들에게 어머니의 병 중 모습을 알려주기 위해 시작된 글쓰기였다. 하루 이틀 그리고 3년이라는 시간 동안 계속된 이 글쓰기는 어머니와 아들 사이의 벽과 먼 거리를 이어주는 계기가 되었다.

이 책은 둘 사이 마음에 쌓인 앙금이 여과되지 않은 채 그대로 담겨 있다. 어머니에 대한 불편했던 심사, 형들 사이 무엇인지 모를 이상기류, 너는 너무 멀리 있었다고 고백하는 어머니, 간병인과 어머니 사이의 일상,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는 시어머니를 바라보는 며느리, 그리고 마음 따스한 어머니의 벗들이 보여주는 모습이 있는 그대로 담겨있다. 무엇보다 더 관심이 가는 것은 그 너무 멀리 있었던 어머니에 대한 아들의 마음이 아닐까 한다. 그저 아들의 도리를 해야 한다는 의무감으로 시작된 병간호가 자신이 어머니를 생각했던 마음의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온 것이 그것이다.

‘나는 그렇게 살지 않았다’는 어머니의 삶은 그 말대로 굵은 획을 그으며 살아온 것일지 모른다. 그 삶에서 아들과의 거리는 아들이 어머니가 스스로 만들었거나 둘 사이의 관계에 의해서 만들어져 온 것이리라. 이렇게 형성된 벽과 거리는 이제 서로가 인정하며 지나온 시간을 회고하며 새롭게 정립한다. 그것이 간병하던 3년이 이 두 사람과 가족에게 어쩜 너무도 소중한 시간이었을 것이다. 

사회적 관계가 유지되는 거리가 무시되기 일쑤인 가족관계도 일정한 거리를 필요하다. 그 거리를 인정할 때 보다 넓고 깊은 정이 쌓을 수도 있음을 인정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어머니의 아흔 개의 봄은 아들의 봄으로 이어져 또 다른 봄을 맞이할 것이다. 두 사람이 그렇듯 우리 모두도 마찬가지일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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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재기이 - 타고난 이야기꾼, 추재 조수삼이 들려주는 조선 후기 마이너리티들의 인생 이야기
조수삼 지음, 안대회 옮김 / 한겨레출판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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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되는 사람들 속에서 되살아난 조선시대
역사 속에는 알지 못하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한 시대를 한 시대를 풍미했으나 사회적 한계로 인해 기록되지 못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이들이 있었기에 역사는 이어지고 오늘 우리가 누리는 문명의 혜택이 있을 것인데도 말이다. 그렇기에 기록문화의 중요성과 의의가 새롭게 생각된다. 기록되지 않으면 사라지는 것이 당연하기에...

조선시대의 철저한 신분제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사라졌다. 사회가 유지되고 사람들의 삶이 윤택해지기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자신은 하지 말아야한다면서 다른 사람들이 하는 것 까지를 거부했던 시대가 조선이라는 신분제 사회의 단면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사회의 주류로 자처했던 양반들 말고는 기록되는 경우가 극히 드물게 되는 계기가 된 것이다.

그런 중에서도 몇 몇 사람들의 기록에 의해 살아나는 사람들이 있다. 다시 살아나는 그들은 대부분 하층 계급에 속한 사람들이며 양반들이 스스로에게 하용하지 못했지만 사회와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힘을 주었던 일에 종사한 사람들이다. 하지만 어느 사회나 예외라는 것이 존재하기에 이러한 사람들을 기록한 사람이 있다. 당대 타고난 이야기꾼이라고 불렸던 조수삼이 그 사람이며 그의 들려주는 조선시대 소외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추재기이’가 그것이다.

조수삼(趙秀三, 1762~1849)은 조선 후기(영조, 정조, 순종, 헌종)때 사람이다. 정조와 순조 시대를 대표하는 시인이며 1500여 수의 시를 창작한 시인이다. 송석원시사(松石園詩社)에서 중추적으로 활동했으며, 여항 시단을 비롯하여 당시의 쟁쟁한 사대부들과도 시를 통해 교유했다. 중인 출신이라는 신분상의 제약 때문에 벼슬을 하지 못하다가 여든셋이 되어서야 노인에 대한 예우로 진사시에 급제, 벼슬을 받았다고 한다. 청나라 사신을 보좌하며 여러 번 청나라를 오가며 청나라 문인들과 교류했으며 이 책 ‘추재기이’는 그의 말년에 손자에게 구술하여 남긴 저작이다. 남겨진 책으로는 ‘연상소해’, ‘추재시초’, ‘추재집’ 등이 있다.

‘추재기이’는 조선 영조와 정조 때 활동했던 당시 조선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담았다. 도둑, 강도, 조방꾼, 거지, 부랑아, 방랑 시인, 차력사, 골동품 수집가, 술장수, 임노동자, 떡장수, 비구니 등 모두 71명에 달하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모두 주류에서 밀려났던 사람들의 이야기라는 점이다. 저자 조수삼이 이들을 골라 이야기를 엮은 시각이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다고 보인다. 바로 사회에서 소외 받았지만 자신의 분야에서 월등한 능력을 보여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고 때론 추앙 받았던 사람들이라는 점과 이들 모두가 다른 사람들에게 따스한 인정을 폈다는 점일 것이다. 신분상의 한계로 남들의 선망을 받진 못하더라도 당당하고 건강하게 살아가는 이들의 따듯한 인간미에 중심을 두고 바라봤던 것이다.

그렇다면 조수삼이 자서에서 ‘인물의 옳고 그름이나 나라의 정사에 관련된 일은 한 가지도 언급하지 않았다’고 밝힌 이유가 무엇일까? 이는 자신이 처했던 중인 출신이라는 신분상의 제약도 한몫했을 것이라고 한다. 당시 조선이 철저한 신분사회로 주류인 양반 사대부들이 장악한 사회의 병폐나 모순에 대한 저자만의 반항적인 표출일 수도 있을 것이라고 이 책을 번역 발간한 안대회는 밝히고 있다. 이 책은 또한 영조 정조 때의 조선시대 민간인들 사이에 흘렸던 생활모습 등을 잘 나타내 주고 있다. 사회 밑바닥 층들의 삶에서 그들이 진정으로 가치 있게 여겼던 것이 무엇인지 알게 해주는 소중한 자료가 아닌가 싶다.

이 책이 조선에서 사라질 뻔 했던 사람들이 대한 기록이라는 의의를 가진다면 이는 옛 조선시대만 해당되는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분명 여러 가지 측면에서 달라진 오늘날에도 사회 곳곳에서 몸을 낮추며 묵묵히 자신의 일에 매진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들 역시 이름 없이 살아질지 모른다. 그렇더라도 조수삼의 ‘추재기이’에 담긴 사람들이 조선을 지탱했듯이 오늘의 그들이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를 든든하게 만들어가고 있음을 알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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