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복탄력성 - 시련을 행운으로 바꾸는 유쾌한 비밀
김주환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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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의 전환, 가능성의 출발이다
오늘날 대한민국을 바라보는 시각은 다양하다. 흔히들 우리의 현실을 비교분석하는 준거집단으로 OECD국가들을 거론한다. 교통사교, 자살, 교육열, 행복지수 등 비슷한 경제성과를 이룬 나라들과의 비교라는 의미와 더불어 혹 우리나라도 이런 선진 OECD 국가들과 비교할 수 있다는 심리적 만족감을 성취하려는 것이 아닌가 싶을 때도 있다. 

그런 집단과 비교하여 우리는 어떤 위치에 있는가를 살펴 현실의 문제를 극복하고 미래를 개척하려는 의미를 가진 것일지라도 비교하여 무엇을 얻고자 하는지 의문이 들 때가 있다. 우리의 현실의 부정적인 측면을 강조하는 측면이 많기에 ‘그래서 어쩌라고?’하는 거부감이 들 때가 많다. 같은 것을 보고도 보고자 하는 사람의 무엇을 중심으로 사고하는가에 따라 천지차이로 달라지는 결과를 보인다는 것이 이런 것이리라.

인류가 살아오는 동안 문제가 없는 사회는 없었다. 그 다양한 문제를 어떻게 바라보는가에 따라 사회를 인식하는 시각은 달라진다. 오늘날 우리가 우리사회를 부정적 시각으로만 바라본다면 이 사회는 회복 가능성이 별로 없는 사회로 인식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같은 것을 보고도 다른 해석이 가능해지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이 문제에 대한 사회적 반응을 불러오는 것이 사고의 전환, 발상의 전환으로 불릴 수 있는 무엇이 필요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 ‘회복 탄력성’은 사회적인 사고의 전환을 이룰 수 있도록 하는 긍정적 역할을 하기에 충분하고 보여 진다. 저자 연세대학교 언론홍보영상학부의 김주환 교수는 ‘회복 탄력성(resilience)’ 은 원래 제자리로 되돌아오는 힘을 일컫는 말로 ‘회복력’ 혹은 높이 되튀어 오르는 ‘탄력성’을 뜻한다고 정의한다. 혼란스럽고 가치관의 혼란을 불러오는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가치를 실현할 수 있는 근본적인 힘을 가질 수 있게 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 처음 소개되는 회복 탄력성이라는 말이 가지는 의미는 이것에 국한된 것만은 아닐 것이다. 저자는 이 책을 집필하며 중심 독자를 자신의 아이들인 중고등학생에 두었다고 한다. 우리나라 중고등학생이 처한 현실을 중심으로 현실을 바로 파악하고 그들에게 미래를 희망으로 설계할 수 있도록 하고 싶은 저자의 마음이 반영된 것이 아닌가 싶다. 

하지만 이 책은 개별적인 사람들을 중심에 두고 설명하고 있다. 즉,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각각의 개인들이 어떻게 하면 ‘회복탄력성’을 강화하여 성공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게 할 것인가에 중점이 되어 있다는 말이다. 하지만 이렇게 각 개인들이 긍정적인 사고로 전환하고 자신의 삶을 구체화한다면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전반적 문제도 충분히 극복될 것으로 보이기에 전 사회적 차원에서 실천가능성을 살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예를 들면 학생들의 자살로 대표되는 교육현실에 대한 개탄에 멈춰있는 교육정책의 중심이 어떤 것 이어야 하는지 심각한 고민을 제시하고 있다고 보여 진다. 

그간 발간된 다양한 관련 서적들이 이론의 제시나 천년일률적인 방법의 제시로 그것이 그것인 듯 보였다는 것이 한계로 지적될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은 이론을 검증하는 구체적인 실례를 다양하게 제시하고 있어 그 신뢰도를 더하고 있다. 물론 다른 나라의 경험이 많은 부분을 차지하지만 결코 우리의 경우와 동떨어진 비교대상은 아니라는 생각이다. 또한 공감되는 이론의 제시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현 상황을 분석해 보고 회복탄력성을 높여가는 구체적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이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현대사회의 화두로 공감과 소통을 이야기 한다. 사회 구성원들 사이에서 발생하는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에 대한 규정을 바탕으로 공감과 소통을 제시하는 것은 저자가 회복탄력성의 중요한 요소로 제시하는 인간관계의 관계성을 기본으로 소통하는 것과 일맥상통하고 있다고 보여 진다. 무엇보다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는 긍정성이다. 즉, 몸이 약한 사람도 꾸준한 운동을 통해 건강한 사람이 될 수 있고, 음치도 훈련을 통해 노래를 잘 부를 수 있게 되는 것처럼, 회복탄력성도 꾸준한 노력을 통해 고정불변의 것이 아닌 얼마든지 향상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개인은 사회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 또한 개인의 변화를 사회를 변화시키는 원동력일 것이다. 회복탄력성을 높여가는 사람들이 늘어난다는 것은 분명하게 우리 사회를 변화시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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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경 홍신 세계문학 5
허먼 멜빌 지음, 정광섭 옮김 / 홍신문화사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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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경, 무엇을 봐야 할까? 
이러저러한 책을 접하다보면 책장 넘기기가 버거운 책들이 있다. 전문적인 내용을 다룬 인문사회과학이나 자연과학서적도 아닌 문학작품에서 그런 경험을 하게 되는 경우가 요사이 들어서 의외로 많다. 시간이 지나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 받고 평론가들의 호평을 받은 작품들이 내게 그런 경험을 겪게끔 한다. 이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모르겠다. 이번에 만난 H. 멜빌의 작품 백경도 당황스러운 경험을 하게 만들었다. 이미 줄거리를 알고 있었지만 막상 만난 백경은 그리 간단치가 않다. 

‘백경’의 기본 줄거리는 간단하다. 일상생활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청년 이스마일이 상선을 타고 항해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포경선에 오른다. 이스마일이 포경선을 타고 대양을 누비며 직접 보고 느낀 다양한 해상 생활을 전해주고 있는 것이다. 이스마일이 전해주는 이야기의 중심에 포경선 피쿼드호의 선장 에이허브가 있다. 선장은 40여 년이 넘는 포경선의 경험에서 잊지 못할 고래를 만나고 그 고래에게 한쪽 발을 잃었다. 그 복수를 위해 포경선 피쿼드호에 올라 고래 백경을 찾아 나선다. 대서양, 태평양, 인도양을 지나 일본 열도 근해에서 천신만고 끝에 백경과 만나고 그 고래에 의해 선장 에이허브를 포함 포경선 피쿼드호를 침몰하고 최후를 맞는다는 것이다.

이 이야기를 전해주는 이스마일은 할 말이 많아 보인다. 우선 고래의 종류를 비롯하여 고래에 관해 생물학적인 전문적인 내용을 포함 역사적으로 등장하는 고래에 관한 모든 내용을 전해주고 있다. 심지어 사전이나 문학작품에 등장하는 고래이야기까지 내용이 넘치고 있다. 뿐만 아니라 포경선, 선원들의 직능에 따른 차이와 함께 탐승한 사람들의 온갖 이야기들이 다 등장한다. 그것도 아주 자세하게 묘사되고 있어 이 백경이라는 ‘소설’이 해양모험 소설인지 아니면 무슨 백과사전인지 짐작할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한 이야기가 끝없이 이어지고 있다. 웬만한 인내력이 아니면 당하기에는 버거움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나마 소설의 마지막 부분에 이르러서야 다소 박진감 넘치는 모험적 내용이 그려지고 있어 그나마 다행이다. 

소설 ’백경’에 대한 묘사가 많다. ‘생과 사를 넘나드는 대모험’, ‘자연을 거스르는 인간의 욕망과 좌절’, ‘장엄하고도 슬픈 아름다운 대서사’ 등이 그것이다. 하지만 백경을 읽어가며 아니 다 읽고 나서 드는 생각은 꼭 이런 묘사가 나와 공감하는 바가 그리 많지 않다는 점이다. 지루할 만치 다양한 사물과 사건에 대한 묘사는 줄거리를 따라가기조차 버겁게 만들며 묘사하는 그것조차도 올바로 이해하기 힘든 무엇이 있다. 그렇다면 저자는 무엇을 말하고 싶었을까? 모험정신?, 선과 악의 대결?, 거대한 자연 앞에 무기력하기만 한 인간? 다시 생각해봐도 성격 규정에 머뭇거릴 수밖에 없다.

이러한 버거움에 홍신문화사 발행 이 백경은 한 페이지에 너무 많은 내용을 담아내고 있어 편집상 답답함을 더하고 있다. 글자 역시 두껍고 행간도 좁아 마치 이스마일이 세상 모든 것을 이 한편의 소설에 담아내고 싶은 마음처럼 느껴져 안타까움마저 든다.

그렇더라도 이스마일이 전해주는 모든 이야기가 다 지루한 것은 아니다. 몇 년이나 육지와 떨어져 생활하는 선원들의 이야기를 비롯하여 자연을 묘사하는 문장, 고래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는 분명 관심을 끌만한 것이며 마지막 결말을 이끌어가는 박진감은 좋다. 하지만, 선장 에이허브의 백경에 대한 집착은 무엇으로 봐야 하는지 생각할 여지가 다분히 많은 부분일 것이다. 한 개인의 복수를 위해 다양한 이유로 포경선에 오른 선원 모두의 생명을 담보로 해야 하는지에 대해선 부정적일 수밖에 없다.

문학작품을 접하며 언제나 간과하지 말아야할 부분이 작가가 살았던 당시의 시대상황이 아닌가 싶다. 그렇더라도 저자 H. 멜빌 살았던 19세기 미국의 상황과 이 이야기의 맥락을 연결하여 미국의 개척정신을 말하곤 하지만 무엇을 어떻게 공감해야 하는지 여전히 난감한 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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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의식의 분석 고전으로 미래를 읽는다 22
칼 구스타프 융 외 지음, 권오석 옮김 / 홍신문화사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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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 있는 인간에 대한 접근-무의식
심리학에 대한 학문적 접근이 아니라도 대단히 흥미로운 분야인 것은 사실이다. 나 역시 호기심에서 출발한 심리학에 대한 접근은 대학 전공으로 이어졌지만 그저 막연할 뿐이었다. 그 후 여러 가지 요인에 의해 흥미를 잃었지만 그나마 정신분석에 대한 프로이트의 꿈의 분석에 있어서는 흥미를 잃지 않았었다. 자신을 포함한 인간에 대한 이해에 도움을 받고자 했던 이유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도 잠시뿐 지속적인 관심이 아니었기에 지금 와서 생각해봐도 아쉽기만 하다. 그 영향인지 책을 접할 때 심리학 관련 책은 관심대상의 우선순위에 있다. 

하지만, 인간을 이해하고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의 일환으로 심리학 관련 서적들이 다양하게 발간되는 현실이 그리 반갑지만은 않다. 그만큼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이 인간이 자신의 존재의 가치를 높이며 행복하게 살아가기에는 여러 가지 문제가 있다는 반증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렇더라도 이 책 ‘무의식의 분석’은 인간을 이해하는 한 측면으로 ‘무의식’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결정적인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는 책이다. 어려울 것이라는 선입견을 넘어 심리학에 관심이 없는 일반인이 보기에도 충분히 이해할 만한 내용으로 쓰여 졌다는 출간의도에 희망을 걸어본다.

이 책의 저자 칼 구스타프 융(Carl Gustav Jung, 1875~1961)은 정신과 의사이자 분석심리학(分析心理學)의 창시자이다. 스위스의 목사 아들로 태어나 대학에서 의학과 정신의학을 공부했다. 어린 시절부터 경험한 강렬한 꿈과 환상 등 자신의 신비한 경험을 집중적으로 기록, 연구하면서 신화와 역사, 연금술에 심리학적인 의미를 부여했다고 한다. 정신분석의 유효성을 인식하고 연상 실험을 창시하였으며 콤플렉스를 정의했다. 특히, 프로이트와 정신분석학파의 핵심으로 공동 작업을 진행하기도 했지만 견해차이로 인해 결별하고 독자적으로 무의식세계를 탐구하여 분석심리학설을 제창했다. 특이할만한 것은 그가 동양사상에도 깊은 이해를 보였으며 동서양의 교류의 다리를 놓았다는 점이다. 주요 저서로는 ‘정신분석의 이론’, ‘심리학과 종교’, ‘영혼을 찾는 현대인’, ‘심리학적 유형’, ‘미발견의 자아’, ‘심리학과 연금술’, ‘인간과 상징’ 등이 있다.

사람은 누구나 꿈을 꾼다. 그 꿈에 나름대로의 의미를 두고 있는 사람들은 꿈에 대한 해석에도 관심을 가지기 마련이다. 이러한 꿈을 포함하는 의식의 상대개념으로 무의식이 있다. 자신이 알지 못하는 또 다른 세계가 내 안에 존재한다는 점과 그 다른 세계를 어떻게 이해해야하는가에 대해 융의 해석를 중심으로 그와 관련된 제자들이 공동으로 집필한 책이 바로 이 책이라고 한다. 크게 두 부분으로 구성된 이 책은 첫 번째 무의식의 접근은 융이 직접 쓴 부분으로 무의식과 그 언어를 형성하는 원형 및 상징과 무의식의 내용을 담고 있다.

개별적인 인간은 성장과정에서 직접적인 학교 교육이나 간접적인 인간관계 등을 비롯하여 다양한 경로로 입수한 정보를 통해 자신을 형성하게 된다. 물론 선천적으로 물려받는 유전적 요인도 분명하게 작용한다. 융은 개인이 꾸는 꿈의 내용을 이해하고 해석하는데 있어 이러한 배경을 기반으로 삼아 올바른 분석을 해야 한다고 한다. 그렇기에 원시종족이나 다양한 문화권의 역사 및 신화, 종교 등을 면밀하게 검토 분석하는 것이다. 그러한 이해가 바로 원형일 것이다. 개인의 특성은 오직 개인의 특수한 경험일 테지만 그것을 이해하는데 필요한 것은 인류가 만들어 온 모든 유, 무형의 자산을 포함하고 있는 것으로 봐야 하고 그것을 이해하기 위해 상징화되어 있는 모든 것에 대한 이해를 높여야 한다는 것이다.

무의식이 나타나는 방법의 일환인 꿈에 대한 접근은 사실적인 표현이 아니라 지극히 상징화된 무엇으로 나타나며 또한 꿈은 과거의 일에 대한 회상이 아닌 미래의 무엇을 나타내고 있다는 점을 이야기하고 있다. 이러한 꿈에 대한 분석에는 일반화된 표준이 존재할 수 없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융은 무의식의 한 부분인 꿈에 대한 접근을 통해 의식과 무의식의 상호 보상관계를 밝혀 인간의 다양한 측면을 이해하는데 한발 더 나아간 것이다.

꿈에 대한 올바른 분석을 위해 제시하고 있지만 이 책에서 등장하는 다양한 상징의 세계도 흥미롭다. 인간이 자연과 더불어 삶을 영위하던 때로부터 벗어나면서 인간 근본에 대한 이해의 폭을 좁혀온 것인지도 모른다는 융의 이야기는 인류학적 차원에서도 의미 있는 접근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의 두 번째 구성 부분인 ‘고대 신화와 현대인’은 고대의 신화와 전설 및 원시적인 의식 속에서 위에서 융이 언급한 몇 개의 ‘원형’을 보여주고 그에 대한 이해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설명하고 있다. 특히 누구나 알 수 있는 미녀와 야수에 대한 새로운 해석은 무척 흥미롭다.

알 수 없는 무의식의 세계에 대한 접근은 무엇을 말할까? 생각하고 판단하는 속에서 하는 우리들의 일상적인 활동만으로는 자신을 이해하는데 많은 부분이 빠져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문제제기가 그 출발이 아닐까 싶다. 곧 스스로 알 수 없는 그 무엇을 이해하고 자신에 삶을 더 가치 있게 만들어가고 싶은 것이리라. 그런 의미에서 융의 업적은 더 빛날 것이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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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점 홍신 세계문학 2
미우라 아야코 지음, 최호 옮김 / 홍신문화사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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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김없는 인간 본질에 대한 성찰
인간의 내면에는 얼마나 다양한 감정들이 중첩되어 있을까? 외부의 영향에 손바닥 뒤집기보다 쉽게 변하는 마음 상태를 느끼다 보면 내 안에 무엇이 그리 복잡하고 많은 것이 담겨 있을까 하는 생각에 이른다. 세상 모든 것을 품고도 남을 넉넉한 마음일 때도 있는가 하면 바늘하나 꽂을 수도 없이 닫힌 마음일 때도 있다. 그 경계를 서성이며 살아가는 것이 사람 사는 모습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혼란스럽다. 그렇게 본다면 완전하게 착한 사람도 나쁜 사람도 없다는 것이다. 다 처한 상황에 따라서 이렇게도 저렇게도 반응하며 흔들리며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

또한, 우리가 선(善)이내 악(惡)이내 하는 것도 알고 보면 시대에 따라 달리 평가하고 또한 사람에 따라 달라져 왔던 것을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절대적인 선이나 악이 존재하기는 하는 것일까? 우리들이 살아가는 현실에서는 이를 증명하는 것이 여간 복잡하고 어려운 것이 아니다. 자신과 직접적으로 관련이 없더라도 누군가를 평가한다는 것에 대한 어려움이 분명하게 있다. 이렇기에 사람들은 문학이라는 가상현실을 설정하고 그 안에서나마 마음껏 그려가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결코 평탄한 삶이 아니었던 일본 여류작가 미우라 아야코의 ‘빙점’은 바로 그러한 인간의 복잡한 속내를 잘 보여주는 이야기가 아닐까 싶다. 희(喜), 노(怒), 애(哀), 구(懼), 애(愛), 오(惡), 욕(慾)을 벗어난 일상생활은 극히 어렵듯이 살아가는 일상에서 인간이 느끼는 다양한 감정의 변화와 그 폭을 여실하게 보여주고 있다. 평범하고 행복해 보이는 단란한 가정에 어느 날 불행이 닥친다. 누구의 책임도 아닐 수 있지만 그 누구도 벗어나지 못하는 현실의 결과는 자못 심각한 방향으로 흘러가기 마련이다. 한 도시의 병원장과 그 가족에서 닥친 일로인해 가족 내 중심이 되는 부부사이가 얼마나 왜곡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그 출발은 세 살짜리 아이의 실종과 죽음이다. 

죽은 아이를 잊지 못하는 부인 나쓰에의 부탁으로 남편 게이조는 나스에의 불륜에 대한 복수로 아이를 죽인 범인의 아이를 입양한다. 그 근저에는 자신이 ‘원수를 사랑하라’는 대의를 실천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에 대한 실험이기도 했다. 죽은 아이를 대신하는 자리에 들어온 요코는 나쓰에의 헌신적인 사랑에 의해 밝고 명랑하며 착한 아이로 성장한다. 하지만 이런 행복은 그리 오래가지 못하고 남편의 숨겨진 이중성이 드러나면서 파행적인 모습으로 변해간다. 요코는 조금씩 자신의 처지를 알아가면서도 선천적으로 누굴 미워할 수 없는 성격에 의해 불편한 진실을 받아들이며 성장하지만 어머니 나쓰에의 편집증적인 모습에 자신을 더욱 강한 사람으로 다그친다. 이후 요코는 ‘자신의 모든 것을 걸어도 좋을 사람’인 기다하라를 만나면서 나쓰에와의 갈등은 더욱 심해지고 결국, 자신의 존재의 근본적인 원인에 접근하여, 이 모든 상황의 출발점인 자신의 원죄를 느끼고 자살을 결행한다.

빙점이 보여주는 오해와 불신의 축은 남편 게이조, 부인 나쓰에, 부인을 좋아하는 무라이의 삼각관계에서 출발하고 있다. 사랑이라고 하는 현실의 문제가 어떻게 왜곡되고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는지 여실히 보여준다. 여기서 부인 나쓰에로 그려지는 인간형을 보면 인간의 근본적이면서 알 수 없는 감정의 흐름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경우가 아닌가 싶다. 남편을 살아하면서도 자신에게 구애의 눈길을 보내는 다른 남자의 손길을 거부하지 못하는 모습이나 심리적 갈등을 겪지만 그 와중에도 아들의 친구에게 이성적 감정을 보이는 등의 모습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또한, 남편 게이조는 확인되지 않은 어떤 요인에 의해 한없이 의심의 꼬리를 놓지 못하는 소심함에다 원수를 사랑할 수 있을까? 라는 풀지 못할 운명적인 숙제를 껴안고 살아가며 자신의 옳지 못한 순간의 선택이 어떤 결과를 낳게 하는지를 보여주며 근원적인 질문을 하게 만들고 있다. 한편, 도루의 갈등은 구체적이며 어른들이 일으킨 문제는 그들이 풀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며 자신이 짊어지고 나가야할 책임으로 생각한다. 요코와 결혼함으로써 이 모든 문제를 안고가려고 하지만 남매라는 현실을 벗어나긴 어렵다.

작가는 게이조, 나쓰에, 무라이, 다카키, 도루 이들이 보여주는 각기 다른 인간으로써 본질적 갈등을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으로 한 인간형을 만들어 놓았다. 요코가 보여주는 모습이 그것이다. 현실에서 겪게 되는 배반, 좌절, 절망,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헤쳐 가는지를 통해 희망을 제시하고 있다. 하지만, 역부족일까? 아니면 종교에서 말하는 원죄라는 것을 벗어나지 못하는 인간의 한계를 보여주고 있는 것일까? 마지막 선택이 자실이지만 작가는 다시 요코가 깨어날 것이라는 희망으로 사람들 사이의 오해와 갈등을 풀어갈 여지를 남긴다. 

현대사회가 안고 있는 다양한 모순을 풀어갈 화두로 공감과 소통을 이야기 한다. 태어나면서부터 사회적 관계 속에 놓여지는 인간은 그 관계를 벗어나서는 존재할 수 없을 것이다. 또한 이 소설이 보여주듯 많은 갈등의 요소는 바로 그 관계에서 비롯되고 있다. 자의든 아니든 사회적 인간으로써 살아가며 부딪치게 되는 다양한 갈등에 피하지 않고 대처할 묘수는 없는 것일까? 저자는 우리들에게 심각하게 자신을 돌아볼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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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강화
이태준 지음, 임형택 해제 / 창비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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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바른 글쓰기란 무엇인가
글을 쓴다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세상과 자신을 바라보며 가슴에 담겨진 무엇인가를 표현하고 싶은 것의 반영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느낀 그 무엇을 그대로 표현한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우리가 쓰는 세상의 언어로 다 담아낼 수 없는 인간의 감정의 미묘함이 있어 그렇고 훈련되지 않은 글쓰기의 미숙함이 그렇다. 무엇하나 글을 쓰는 자신의 마음에 흡족하지 않아 늘 망설이게 만드는 것이 글쓰기가 아닌가도 싶다.

이럴 때 글쓰기에 도움이 되는 무엇이라도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것이 모든 글을 쓰는 사람에게 소망하는 바가 아닐까 한다. 그렇더라도 같은 것을 보고도 사람마다 다른 느낌을 가진 듯 글쓰기의 교본을 보고서도 글쓰기에 도움을 받기보다는 그 어려움을 더 할 때가 많은 것이 답답한 현실이다.

‘문장강화’ 이 책은 그런 어려움을 느끼는 사람에게 ‘글’이란 무엇인가를 이해시키는데 아주 적절한 성격의 책이라는 느낌이다. 글쓰기 이전에 글이라는 것이 무엇이고 어떤 의미가 있는지 올바로 이해한다면 자신이 쓰고자 하는 글에 대한 자신감을 가질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이 책은 글을 쓰는 사람의 마음가짐에서부터 글이란 무엇을 담아내야 하는지에 대한 이해를 넓혀주고 있는 것이다.

이 책은 문장작법에서 문장과 언어, 운문과 산문, 다양한 문장 종류에 다른 차이와 글 쓰는 요령, 퇴고, 문체에 이르기까지 이미 발표된 글들을 예로 들어가며 비교검토하고 예로든 글이 가지는 매력적인 점이 무엇인지 확실하게 전달해 주고 있다. 막연한 글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확실한 예시를 제시하고 그로부터 배워야할 무엇을 이끌어내고 있어 아주 실용적인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다는 장점이 부가되어 보인다. 이 책에서 예를 들고 있는 예시문은 우리의 고전에서부터 현대에 발표된 다양한 작가들의 글을 포함하고 있으며 우리에게 익숙한 작가와 글이 많아 더 이해하기 쉽다.

‘우리에게 있어서 이론과 행동이 둘이 아니듯, 자기의 삶을 어떻게 하고 어떻게 표현하느냐 역시 하나로 통합되는 문제다. 그렇기에 문장이란 소홀해도 괜찮은 일이 아니요, 어떻게 살아갈 것이냐와 연관해서 고통해야 하고 그 공부에 정련까지 요망되는 것이다.’

조정래의 자전적 에세이인 ‘황홀한 글감옥’에서도 이야기하고 있듯 글을 쓰는 사람의 마음가짐과 글이 담아내야 하는 것이 무엇이어야 하는지를 확실하게 보여주고 있는 글이 아닌가 싶다. 글은 단어의 나열만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글 쓰는 사람의 정신과 삶이 온전히 투영된 한 인간의 정신과 그 맥을 같이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는 말이될 것이다. 

글을 쓰고자 하는 사람들이 어려움을 호소하는 여러 가지 것들 중에 기술적인 문제는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닌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다가서는 어려움은 그 기술적인 문제가 더 크게 다가온다. 이는 본질을 벗어난 지엽적인 문제가 본질을 넘어서는 중압감으로 나서는 경우가 아닌가 한다. 한 줄의 글이 완성되기까지 수없이 고민한 결과가 그 글 속에 담겨야 하는 것이기에 이 점은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현대에 들어 자신의 감정을 글로 표현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그만큼 개인들은 살아가는 동안 자신이 느낀 점을 스스로 정리하거나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은 마음이 많아지는 것의 또 다른 표현이 아닌가 한다. 자신 스스로를 비롯하여 다른 사람들과 이렇게 소통하고 싶어 하는 것은 건강한 사회를 만드는 초석이 될 것이다. 그런 사회상을 반영하여 글쓰기 교본이나 관련 교양서가 빈번하게 출간되고 있다. 이 책은 그런 글쓰기 교양서의 모범이 되는 책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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댄스는 맨홀 2011-04-06 00: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의 마음을 다른이에게 전달하는것이 쉽지 않네요. 말을 하는 것도 글을 쓰는 것도요. 글쓰기 교양서의 모범이 되는 책이라니 꼭 읽어 보고 싶습니다.

무진無盡 2011-04-06 19: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정을 언어와 글로 표현한다는 것이 참으로 어렵습니다. 이 책에서 그 상황에 맞는 딱 그말을 찾는다는게 그렇게 어려운 일이 더라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