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속에 노닐다 - 오주석의 독화수필
오주석 지음, 오주석 선생 유고간행위원회 엮음 / 솔출판사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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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겨진 글로 사람을 그리워하다 
미술, 사진, 역사, 인문학 등 전문 영역에 속한다는 것으로 인해 정작 누려할 사람들은 그것들로부터 소외되는 경우가 많다. 이렇게 된 이유로는 전문가들이라는 사람들이 자신들만의 영역을 설정하고 벽을 쌓아온 것도 분명하게 존재한다. 언제부턴가 이러한 전문영역에 대한 벽을 허물고 있는 선각자들이 있다. 정민, 안대회, 이덕일, 강신주 등이 그들이다. 이들의 공통점은 성역처럼 여겨졌던 전문분야의 벽을 과감히 허물어 대중과 공감과 소통을 꾀하며 한발 나아가 때론 당당하게 그 주인의 자리를 돌려주고 있다는 것이다. 

이들의 노력에 의해 대중들은 글자 속에만 머물러 있는 옛사람들의 삶의 지혜를 만나게 되고, 강단철학을 넘어 우리가 살아가는 현시대의 문제점을 바로 직시할 수 있으며, 역사와 현재를 공유하는 소중한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그런 사람 중 전문가들 속에서나 많은 대중들이 마음에 안타까움으로 기억되며 짧지만 굵은 삶을 살았던 사람을 기억한다. 미술사학자 오주석(1956년 ~ 2005)이 그 사람이다.

자신이 속한 한 분야에서 선배들의 업적을 이어받고 새로운 지평을 열어간다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벅찬 일인지 작품을 읽는 저자의 태도 속에 나타나고 있다. 저자 오주석의 관심은 옛그림 속에 나타난 조상들의 삶과 애환 그리고 굳건한 정신이다. 학문의 과정에서 얻은 자신의 학문적 성과와 감성을 자신만의 시각으로 유쾌하고 익살스러우며 재미있고 쉽게 대중에게 전달하여 사람들의 문화적 감성의 지평을 넓혀준 점이 무엇보다 뛰어난 업적으로 평가되어야 할 것이다.

오주석의 우리문화에 대한 사랑과 애착은 맹목적인 국수주의나 아전인수식으로 해석하지 않는다. 우리 것, 우리음악, 우리그림에 대한 그의 사랑이 자신이 공부한 동양사학, 주역, 한문 등 폭넓은 학문 탐구의 지평에서 아우르는 넓이와 깊이를 지녔다. 또한 그의 서양음악에 대한 이해는 일반인을 수준을 넘어선 탐미적인 깊이에 이르러 감성적으로 작품을 해석하는 깊이를 보여주고 있다. 그런 그의 작품해석이 대중들의 공감을 얻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결과이리라.

이 책에는 옛그림에 대한 그의 독특한 해석을 볼 수 있다. 그러면서도 조상들이 남긴 그림을 ‘무엇을 어떻게 봐야 하는지’에 대한 심도 깊은 성찰을 할 수 있게 만든다. 그가 사랑했던 김홍도의 작품과 김홍도를 있게 했던 정조임금에 대한 관심은 특정한 인물에 대한 관심과 사랑을 넘어 우리문화에 대해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지 보여준다. 뿐만 아니라 이 책에는 오주석의 가치관과 일상을 알 수 있는 수필형식의 글이 있어 저자를 보다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다.

‘사람은 자신이 이미 갖고 있는 것만큼 본다. 그것이 경험이건 지식이건 혹은 추억이건 감수성이건 간에 내 안에 간직되어 있는 것에 비추어 바깥의 사물도 이해하기 마련이다.'

많은 사람들이 ‘우리 것’에 대해 나름대로의 다양한 편견으로 제대로 보지 못하는 현실이다. 이 땅에 살아가며 자신을 오늘에 있게 했던 우리의 역사와 문화적 전통을 벗어나 올바로 할 수 있는 것이 얼마나 될까? 하지만 현실은 그와 정반대로 나아가는 것 같다. 자신이 이미 갖고 있는 것만큼 본다는 저자의 말에 우리는 우리 것을 얼마나 가지고 있을까하는 반성을 해 본다. 알지 못하기에 그 소중한 가치를 보지 못하고 이해하지 못하며 결국, 사랑하지 못하는 것이리라.

‘그림 속에 노닐다’는 이 책은 그간 발행된 다른 책에서는 볼 수 없는 독특함이 있다. 유고간행위원회에서 발행한 유고집이기에 그의 미 발표작들과 살아생전 그와 같은 길을 걸었던 사람들의 가슴시린 마음들이 담겨 있어 남은 자들의 슬픔과 떠난 사람의 빈자리가 얼마나 큰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평소 오주석과 가까이 지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지금은 가고 없는 사람을 기억하게 하며 그가 남긴 글을 통해 남은 사람들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분명히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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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의 밤
정유정 지음 / 은행나무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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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과 진실 사이 무엇이 있어야 하나?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사회적 존재일 수밖에 없다. 가족의 구성원으로 출발하여 이웃, 학교, 사회로 그 범위를 넓혀가는 동안 사람과의 관계를 형성하고 그 속에서 울고 웃으며 살아가는 것이 필연적인 것이다. 이러한 필수조건인 사회적 관계로부터 단절된다는 것은 한 인간에게 어떤 의미를 가질까? 자의에 의해 사회적 관계를 단절하는 경우는 그렇다 치더라도 순전히 타의에 의해 그것도 강압적인 내몰림이라면 그 압박을 견뎌낼 사람이 얼마나 될지 의문이다.

사회적 관계의 단절을 나타내는 대표적인 사례 중 하나인 ‘왕따’는 학교라는 사회에서 인간관계의 강제적인 단절을 의미한다. 어린 나이에 그 중압감을 견디지 못하고 목숨을 버리는 일이 일어나는 것을 보면서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의 내면을 깊이 성찰해야 한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라 생각해 본다. 이렇듯 한 사람의 목숨까지 좌지우지할 정도의 비중을 차지하는 인간관계는 문학작품 속에서 자주 다양한 인간형으로 묘사되곤 한다. 

‘7년의 밤’에서 사회적 관계의 배경이 되는 것은 가족이다. ‘세령호의 재앙’이라고 불리는 사건의 속내를 들어가 보면 사회를 구성하는 기본 단위인 가족이 나온다. 사회적으로 무능력한 가장 최현수를 중심으로 부인 은주와 아들 서원의 가족, 탄탄한 사회적 부와 성공의 대명사처럼 보이는 치과의사 오영재의 감춰진 악마적 본성으로 파탄에 이르는 세령의 가족이 그것이다. 현수나 영재 두 아버지는 무슨 대가를 치르더라도 지켜야 할 것이 있다. 서원과 세령이라는 자식들이 그것이며 그를 기반으로 한 가족이다. 한 아버지는 딸의 복수를 해야 하고 한 아버지는 아들의 목숨을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세령호의 재앙이라 불리는 사건으로 ‘살인자의 아들’이 된 열두 살 서원, 또 다른 가족인 친척집으로부터 강압적 단절을 겪고 혼자가 된 서원은 세령마을에서 룸메이트였던 승환을 다시 만나 함께 살기 시작한다. 소설가이자 잠수부인 승환은 아버지의 부하 직원이었고 서원에게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는 버팀목이었다. 세상으로부터 내 몰린지 7년 후, 등대마을에서 조용히 살던 승환과 서원에게 다시 사건은 시작된다. 복수를 끝내지 못한 세령 아버지 영재의 마수가 시작된 것이다. 아들을 지키려던 아버지의 사형집행이 된 시점이었던 것이다. 소설가의 기록에 의해 사건 전말을 알게 된 서원의 선택은 살인자의 아들로 살아온 7년이라는 시간, 살인자 아버지를 어떻게 봐야 하는가이다. 

‘여자아이가 살해되었고, 엄마가 죽임을 당해 강물에 버려졌으며, 수문을 열어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이는 사실이다. 분명 일어났던 사건으로 만으로 보면 사실로 무엇 하나 여지가 없어 보인다. 하지만, 사실들의 나열들로만 마무리할 수 없는 무엇이 있다. 그것이 무엇일까? 이 소설의 중심은 바로 여기서 시작하고 있다. ‘사실과 진실사이 그러나’로 이어지는 그 무엇을 찾아보자는 것이다. 

‘실수로 인한 살인과 그것이 불러온 파멸, 선택의 기로에 선 인간의 갈등, 복수를 향한 집념, 한 사람의 선의에 의한 선택이 불러온 수많은 사람들의 죽음, 무엇과도 바꿀 수 없이 지켜야만 하는 무엇,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짊어져야 하는책임, 사실과 진실 사이에 존재하는 그러나’ 와 같은 문제에 직면한 사람들을 보면서도 우리는 딸아이의 복수를 해야 하는 오영재의 삶이 옳다라는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 낼 수는 없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불가피한 선택에 의해 살인을 저지른 최현수의 입장 또한 마찬가지다. 

우리 사회는 다양한 사람들이 어울려 살아간다. 그들의 삶의 방식은 사람 수 만큼이나 다양하며 모두 자신의 삶의 방식이 맞다 는 전재 하에 살아가는 것이리라. 그렇기에 타협이나 공존의 여지가 지극히 좁으며 때론 없어 보이기까지 한다. 각자 자유로운 의지로 자신의 삶을 꾸려가기에 모든 사람들의 삶의 방식은 다 올바른 것일까? 그렇다고 대답할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진실일까?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란 쉽지 않다. 우리의 삶이 쉽지 않은 이유이리라. 이 소설은 탄탄한 구성, 숨 막히는 사건의 전개, 먹먹해지는 가슴으로 짙은 안개 속을 랜턴도 없이 길을 찾아야 하는 암담한 기분을 들게 한다. 꼭 우리 내 삶이 그런 것처럼 말이다.

작가는 그러한 질문에 답을 구하기 위해 무거운 과거를 짊어지고 살아온 사람들을 등장시키고 있다. 그렇기에 누구하나 이 물음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태어날 때부터 자유롭지도 평등하지도 못한 존재이기에 그들이 각자 살아가는 삶 또한 그럴 수밖에 없다. 인간의 본성에 무엇이 있을까? 어쩌면 이 질문에 대해 답하는 것이 진실로 가는 길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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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나무 - 동방의 성자, 이야기를 품다 키워드 한국문화 8
강판권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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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에 나무 한그루 심을 일이다
내가 살아가는 도시의 대표적인 나무가 있다. 삭막한 도심에 계절이 변화는 것을 때마침 알려주는 은행나무가 그것이다. 지금 그 은행나무들은 새싹을 내 놓고 따사로운 봄 햇살을 받으며 무럭무럭 그 잎을 키워가며 회색 도시를 초록으로 물들이고 있다. 그 잎이 더 크고 짙은 녹색으로 변하면 여름일 테고 노란색으로 물들기 시작하면 이제 사람들은 본격적인 가을을 누릴 준비를 할 것이며 독특한 냄새를 풍기며 하나 둘 은행이 떨어지면 겨울을 맞이할 마음의 준비를 한다. 이처럼 이 도시의 사계절은 은행나무를 통해 사람들에게 보다 깊은 느낌으로 다가오게 된다.

은행나무 뿐은 아닐 것이다. 사람들은 제각기 나무 한그루쯤은 자신의 마음에 심어두고서 그 나무가 전하는 자연의 소리를 듣고 살아갈 것이다. 그 나무는 곁에 있어 자주 보거니 멀리 있어 가끔 보게 되더라도 상관없다. 문득 생각나 떠올리는 순간 자신과 함께하는 것이기에 나무와 얽힌 추억은 평생을 함께하는 것이리라. 그런 나무들 중에 우리민족과 특별히 친숙한 나무로는 단연 소나무가 꼽힐 것이며 그 다음으로 은행나무나 느티나무가 아닐까 싶다. 

이 책의 저자 강판권은 직업으로 봐서는 나무와 무관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처럼 보이지만 나무에 관한한 전공자 못지않은 사랑과 지식으로 무장하고 나무 사랑의 길에 커다란 발자국을 남기고 있는 사람이다. 그의 책 ‘나무열전’, ‘나무사전’, ‘어느 인문학자의 나무 세기’, ‘미술관에 사는 나무들’ 등은 이미 많은 사람들로부터 사랑받고 있다. 저자는 이렇게 나무들과 생활하며 ‘은행나무’에 대한 특별한 의미를 담아 전국에 있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은행나무들을 찾아 은행나무와 우리민족의 얽힌 이야기를 ‘은행나무 : 동방의 성자, 이야기를 품다.’라는 책으로 발간했다.

저자는 우선 은행나무의 생물학적 의미를 설명한다. ‘은행나무’는 ‘낙우송’, ‘메타세콰이어’와 더불어 ‘살아있는 화석’으로 불리고 있다. 이는 중생대인 지금으로부터 2억 2500만 년 전부터 6500만 년 전까지의 사이에 번성하며 오랜 시간동안 인류와 함께 해온 나무로 오직 1속 1종으로 인척이 없는 외로운 존재라고 보고 있다. 은행나무가 우리나라에 유입된 경로는 중국을 통해 들어왔으며 수나무와 암나무로 구분되지만 일반인이 구분하기에는 어려운 점 등 은행나무의 생물학적 특성을 설명해 준다. 

이 책에서 은행나무를 주인공으로 삼는 이유는 생물학적 특성보다는 우리 민족과 더불어 살아온 문화사적으로 살펴보는데 있다. 이는 ‘본초강목’이나 ‘동의보감’ 등에서 식물을 다루는 식물의 약효가 아닌 사람과 더불어 살아가는 한 생명체로 바라본 것에 의의를 둔다는 것이다. 하여, 마을 입구를 지키며 사람들과 동거 동락해온 이야기가 중심이며 우리의 전통과 역사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고 오늘에 이르렀는지를 밝히고 있다. 

그가 관심 갖는 은행나무는 주로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나무로 천 년이라는 가늠할 수 없는 시간을 살아온 나무들이 대부분이며 그 나무들이 뿌리 내리고 있는 용문사, 영국사, 적천사, 소수서원, 도동서원, 성균관, 공자묘 등 사찰, 서원, 향교 등지를 발품 팔아 찾고 있다. 마의태자와 의상대사의 전설이 얽혀 있는 용문사 은행나무를 비롯하여 보조국사 지눌의 지팡이에서 자라났다는 청도 적천사의 은행나무, 홍수가 났을 때 이색을 구해주고 그의 무죄를 밝혀준 청주 중앙공원의 은행나무 등 우리 역사에서 뚜렷한 발자취를 남긴 인물과의 사연이 얽힌 은행나무들이 대부분이다. 저자는 이런 은행나무를 찾아 부모가 자식을 품에 안 듯 사랑하는 사람을 반기듯 마음으로 가슴으로 안고 만지고 바라본다.

특히, 저자가 주목하는 것은 은행나무와 우리민족의 정신 사상사적 흐름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 유교와의 만남이다. 유독 서원, 고택, 정자, 성균관, 향교 같은 유교 관련 유적지에는 오래된 은행나무가 많이 남아있는지에 대한 고찰이 그것이다. 공자의 가르침에서 유래한 ‘행단’(杏壇)에서 그 유래를 찾고 있다. 은행나무가 가지는 생물학적 속성과 유교의 정신이 이어지는 코드가 어울렸다는 것이다. 즉, 은행나무의 긴 수명과 친인척 하나 없다는 특징이 유교의 유구한 정신과 독자성을 드러내기에 충분했다는 것이다. 이의 극단적인 모습은 소수서원에서 보이는 경(敬)이라는 한자에 주목한다. 경은 성리학적으로 인간의 내면을 다스리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그렇기에 삶 자체가 공부이고 삼라만상이 스승이라는 성리학의 요체는 은행나무로 집결된다는 것이다.

시간은 흔적을 남기기 마련이다. 그 흔적은 나무의 몸통에서도 주변 어린 자식나무에서도 찾을 수 있고 그 나무를 기억하는 사람들 마음에도 있다. 이렇게 시간을 담아낸 나무를 세고 안으면서 자신을 돌아본 저자 강판권의 나무사랑은 자신을 성찰하게 만들었으며 이를 바탕으로 삶의 지혜를 얻었다고 한다. 저자처럼 가슴에 나무 한 그루 심어 그 나무처럼 곧고 바르게 세상을 살아갈 수 있길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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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가가 말하는 건축가 - 17명의 건축가들이 솔직하게 털어놓은 흥미진진 건축가의 세계 부키 전문직 리포트 14
이상림 외 지음 / 부키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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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가, 보여 지는 공간을 행복으로 채워가는 사람들
한창 특정한 건물들이 늘어나던 시기가 있었다. 국적불명으로 주변 건물과도 어울리지 않고 그 만의 독특함도 없이 생경함마저 느끼게 하는 그런 건물들을 보면서 그 건물을 세우는 건축주나 설계한 사람들에게 화가 났다. 자본주의 사회에 살며 이윤을 추구하는 자본의 논리를 벗어날 수는 없는 것이라고는 하지만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것들 중 하나였다. 건축물도 시대의 흐름에 따라 달라지는 것을 본다. 그때 그런 불쾌감을 주었던 건물은 이제 하나둘 사라지고 새롭게 들어서는 건물들은 획일적인 틀이나 어색함을 넘어선 신선한 느낌을 전해주는 것들이 늘어나고 있다. 이는 분명 사람들의 인식이 달라진 것의 반증일 것이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고 한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어떤 특정 관계 속에 속하기 마련이며 이러한 관계는 ‘공간’이라고 하는 범위 안에서 소통을 통해 이루어진다. 그 소통이 이뤄지는 공간은 대부분 건축물의 범위 안에 들기 마련이다. 그렇기에 건축물이 인간의 삶에 미치는 영향은 지극히 큰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건축공간에 대해 그 중요성을 인식하고 그에 맞는 인간과 건축물에 대한 배려를 한 것은 그리 많지 않다는 생각이다. 그러한 모습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아마도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아파트가 아닌가 싶다. 성냥갑으로 표현되는 공간은 인간들의 삶 속에서도 영향을 미처 사람마저 그렇게 만들어 온 것이 아닌가 싶다.

이 책 ‘건축가가 말하는 건축가’는 그렇게 인간들 일상의 중요한 구성 요소인 ‘공간’을 만들어 내는 사람들인 건축가들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진로선택을 앞두고 고민하고 있는 청소년들이나 많은 구직자들에게 한국 건축가들의 삶과 고민과 도전을 소개’하는 것을 목적으로 발간되었다고 한다. 이 책에 소개되는 건축가들의 세계는 건축가들이 건축물에 관여하는 내용에 따른 구분을 하고 있다. 공공 건축, 주택 건축, 상업 공간 건축, 병원 건축, 한 옥 건축 등에서 자신들이 경험한 건축과 관련 다양한 세계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분류는 건축가들의 실제 건축과정에서 그들의 고유영역을 어떻게 실현해 가고 있는지를 대변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건축이 이런 것이다.’ 라는 학문적이고 사전적 의미보다는 현장에서 부딪치는 문제를 해결하는 경험을 통해 건축가들에 대한 실제적인 이야기를 담아내고 있는 장점이 아닌가도 싶다. 여기에 등장하는 건축가는 17명으로 나이나 경력, 성별을 떠나 자기만의 건축 철학을 보여주고 있거나 이제 건축 세계에서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어가고 있는 건축가들로 구성되어 있다. 그들이 건축이라는 ‘보여 지는 건물’을 만들어 가는 과정에서 얻은 자기성찰, 건축이 사람과 어떻게 소통할 수 있고 또 건물이 사람들에게 무엇을 위한 공간이어야 하는지를 알려주고 있는 것이다. 

‘건축가는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처럼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이 조화롭게 일할 수 있도록 이끌어야 하며 건축 허가 관련 관청 업무를 비롯해 다양한 일을 해야 한다.’ 이 말은 건축가가 담당하는 역할에 대한 규정일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규정에 앞서 땅 위에 보여 지는 공간을 만들아 내는 사람으로 그 보여 지는 공간이 인간에게 어떤 의미여야 하는지 먼저 생각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그런 의미에서 정기용 건축가는 우리에게 답을 제시하고 있다고 보여 진다.

편집자의 의견으로 제시된 건축과 건축가의 세계와 문답형식으로 구성된 16가지 관련 궁금증 그리고 전국 건축대학 일람표는 이 책의 발간 목적에 부합하는 건축가와 관련된 다양한 정보를 함께 보여주고 있다. 건축가를 직업으로 선택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내가 사는 도시 중심부에 한창 터파기 공사가 진행 중인 건축현장이 있다. ‘국립아시아문화의전당’이 그것이다. 말도 많고 탈도 있었지만 아직 그 결말이 나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데 중장비들은 계속 움직이고 있다. 독특한 설계로 이목을 집중했고 그만큼 기대도 크지만 지상 건축물의 철거 논쟁에 휘말려 시끄럽기만 했다. 건물이 들어설 공간에 대한 지역사람들의 정서와 이후 그 공간 활용에 어떻게 참여할 수 있을지의 여부가 중요한 것이 아닌가 싶다. 이러한 진통은 건축물이 단순히 지상에 솟은 건물로써의 상징적인 의미뿐이 아닌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고 그 사람들의 삶을 풍요롭고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공간’의 역할을 기대하는 것이라고 본다.

‘건축가가 말하는 건축가’를 통해 자연과 사람이 공존, 사람과 건물의 조화, 행복을 전해주는 건물에 기여하는 건축가의 세계를 만날 수 있어 좋은 기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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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깨진 청자를 품다>를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나, 깨진 청자를 품다 - 자유와 욕망의 갈림길, 청자 가마터 기행
이기영 지음 / 효형출판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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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 시간을 거슬러 인간을 보다
사람들의 살아가는 모습은 참으로 다양하다. 그러기에 무엇이 올바르고 그른 것인지 판단에 앞서 그 사람의 가치관과 삶의 자세를 먼저 보아야 하지 않을까 싶다. 세상의 일반적인 기준으로 볼 수만도 없고 그렇다고 각기 모든 사람들의 삶을 다 올바를 것이라고 판단하기도 섣부른 무엇인가가 있다. 굴곡 많은 사람의 삶에서 중요한 결코 놓치지 말아야할 것이 바로 무엇에 가치를 두고 이를 어떻게 실현해 가는가의 여부가 중요하지 않을까 싶다.

그렇게 본다면 ‘나, 깨진 청자를 품다’의 저자 이기영은 대학에서 외교학을 전공하고 프랑스에서 경제학을 공부했으며 다시 도자기와 관련된 일을 하면서 사업체까지 운영하고 이제 도자사(陶磁史)를 연구한 책을 발간하였다. 학문간 경계를 넘어서는 활동으로 우여곡절을 겪기도 하며 자신의 길을 당당하게 걸어가는 모습이다. 현재 이기영그릇제작소 대표, 한국도자재단 이사로 재임 중이다.

무엇인가에 집중하고 있는 사람들은 무심히 흘려보내는 것이 하나도 없을 것이다. 어느 것이 찾고자하는 그 무엇의 실마리를 풀어갈 단서를 제공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저자의 고려청가 가마터를 순례하는 동안 무엇 하나 허투루 보낸 것이 없어 보인다. 천 년이라는 시간 앞에 온전한 것은 아무것도 없을지라도 그 흔적 속에서 자자가 찾아내고 싶은 것은 무엇이었을까? 

영암 구림을 시작으로 강진, 고흥, 영암, 해남, 장흥, 진안, 고창 등 호남 11개 지역, 서산, 공주 등 충청도 4개 지역, 양주, 고양, 인천, 시흥, 용인 등 경기도 5개 지역을 직접 발로 걸으며 하나하나 확인한 여정이다. 뿐만 아니라 북한 황해도 지역 2곳에 대한 저자의 사색의 결과까지 담겨 있다. 깨진 청자 조각 하나 하나에 눈길을 돌리며 그가 걸어간 길은 만만치 않다. 순례길이었다는 저자의 회고에 공감이 간다.

저자는 우리나라 청자의 초기 과정을 5세대로 구분하며 주목한다. 1세대 신라 말 장보고의 청해진을 주목한다. 무역으로 막대한 부를 축적했던 장보고의 꿈이 결부된 인근지역에 분포된 가마터를 찾아 그 흐름을 추적하고 있다. 장보고의 죽음이후 벽골제로 이주한 도공들에 의해 퍼진 시기를 2세대로 보고 있다. 진안과 공주 등 지역에 분포되어 있으며 시 시기에 들어서면 흙의 가공이나 유약의 제도 가마 등에서 축적된 기술이 형성된 시기라 보고 있다. 3세대는 중국 월주 계열과 강진의 기술이 접목되는 시기로 지역 호족과 결부되어 청자와 백자가 함께 만들어진다. 4세대는 축적된 기술을 바탕으로 대량생산체제에 들어선 시기로 본다. 5세대는 한강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시기로 청저 생산에 있어 새로운 단계로의 진입을 생각하게 된다고 보고 있다.

이렇게 초기 청자가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중국의 영향이나 국내 상황을 살펴보면서 남쪽 바닷가에서 한강을 중심으로 한 한반도 중심부로 이동하는 청자를 만드는 기술이나 가마 등의 모습을 비교 분석을 통해 추론해 들어간다. 저자는 이렇게 청자의 이동 경로를 찾아가는 여정을 따라간다.

저자가 발품 팔아 찾아간 가마터에서 막걸리 한 잔 앞에 놓고 시간 앞에 무상한 역사를 돌아보고 있다. 가마터 현장에 남은 관련 유물과 지리적 특색을 살펴 당시 기술 형편과 인력, 재료 수급 등 청자 생산을 둘러싼 환경을 추적하고, 그곳에서 직접 수습한 깨진 도자기 조각을 다각도로 분석하여 각 지역 청자의 특징을 비교하고 있다. 하지만 저자는 이미 흔적을 찾아보기도 어렵게 변해버린 그곳에서 깨진 조각하나를 두고 저자가 엮어내는 이야기는 청자 파편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다. 천 년 전 살았던 사람들의 삶을 돌아보며 인간의 자유와 욕망, 희열과 애환의 복잡한 감정을 담아내고 있다.

천 년의 시간은 인간의 개념으로 짐작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선 무엇이 있다. 깨진 파편들을 보며 저자의 마음에 무거움이 있을 것이라는 점은 이해가 간다. 도자기를 빗고 굽는 저자의 마음이 녹아 있으며 그것이 오늘날 우리나라의 도자기산업의 현실과 결부되어 그 무게감을 더해갔을 것이다. 그 심정이 이 책 전체를 관통하고 있는 듯하다. 

우리나라 이미지와 자긍심을 대표하는 청자, 그 미래는 희망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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