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 다산초당을 찾은 것은 추사의 편액을 보기 위해서였다. 처음 갔을 때보다 길이 완만하게 닦여 있어 오르기가 편했다. ‘다산초당이라는 글씨는 김정희의 글씨를 집자해서 당시 목수가 새긴 것이라 행서와 전서처럼 보이는 글씨가 섞여있고 고르지가 않다. 그 옆 동재에는 김정희가 직접 썼다는 보정산방이라는 예서체이지만 추사다운 독특한 글씨체의 현판이 걸려있다.

 

2주 전, 귀국을 앞둔 덴마크인 청년 A와 국립박물관에 갔었다. 그래도 우리나라에 1년을 있었는데 박물관은 보고 가야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안내하기로 했다. 서화관에서 김정희의 작품 몇 점을 보면서 짧은 영어로 그를 calligrapher로만 소개했다. 독특한 글씨체라든지, 금석학, 고증학, 실학, <세한도>와 같은 유명한 사의화를 남긴 문인이라는 말은 자세히 전하지 못했다. 신라 전시관 마지막 지점에 세워져 있는 진흥왕 순수비 옆면에 추사가 새겨 넣은 글을 알려주려 하니, 삼국시대, 신라 진흥왕, 금석학에 대한 설명이 필요했기에 간단히 넘어갔다. 나의 영어 실력이 짧아 아쉽다고 그녀에게 거듭 사과하면서도, 추사의 글씨를 전과는 다르게 감상하고 있는 스스로를 발견했다. 추사 김정희와 관련된 책들을 읽고 정리한 후라 그런 듯하다이제는 진부한 표현이 되었지만 아는만큼 보인다.” 그리고 느낀다. 어쩌면 나이 때문일수도...^^


연행에서 옹방강과 완원과 같은 문인들을 만나고 돌아온 후 옛 비문들을 연구하던 그가 1816년과 다음해에 북한산 비봉에 올라 진흥왕순수비를 발견하고, 

이것은 신라 진흥대왕 순수비이다. 병자년 7월 김정희·김경연이 오다. 정축년 68일 김정희 조인영이 함께 와서 남아 있는 글자 68개를 면밀히 살펴보았다.(추사 김정희유홍준 101p)”

라고 새겨 넣은 글씨가 더 감격적으로 다가온다. 황초령비 연구와 함께 진흥왕 당시 신라의 영토에 대한 고증을 할 수 있는 증거를 발견한 것도 역사적이지만, 발견한 후 소회를 적어 조인영에게 보낸 편지에서 보이듯, 산을 오르고 거듭 탁본을 뜨고 희미해진 글자들을 읽어내기를 반복하다 진실을 만났을 때의 기쁨이 뿌듯하게 전해져 온다.


내가 추사를 본격적으로 읽고 알게 된 것은 박철상의 세한도라는 책을 통해서다. 이 책을 읽게 된 계기는 <세한도>라는 그림을 보고 궁금해서였다. 10년 전 쯤 한 대학 논술 시험에서 이 <세한도>가 제시되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논술 문제를 찾아봤었다. <세한도>에 얽혀 있는 추사와 우선 이상적의 에피소드와 발문을 제시하고, 도상으로 고흐의 <구두 Shoes>를 감상한 예시문의 방법대로, 감상을 쓰라는 문제였다. 이렇게 해서 더 자세히 본 그림은 마음을 묵직하게 움직이는 이야기가 있었다. 그래서 박철상의 세한도를 찾아 읽게 되었다. 추사의 연행과 연경에서 옹방강과의 만남, 청나라 문인들과의 학예연찬, 돌아와서도 완원, 주학년과 같은 학자들과의 서신 교류, 제주도 유배와 제자 우선 이상적의 변치 않는 마음 등 <세한도>가 그려진 배경에 대해서 알게 되었다.

 

 

명문가 출신으로 증조부가 영조의 사위인 명문가 출신으로, 황산 김유근이나 이재 권돈인과 같은 벗을 두고, 병조참판에까지 오르는 입신(立身)을 한 그가 정적에 의해 무고를 당하고 목숨이 위태로운 지경에서 제주도 위리안치 유배형을 받았다. 멀리 떨어진 외로운 섬에서 날이 차가워진(歲寒) 뒤에야 소나무와 측백나무(松柏)가 늦게 시든다는 것을 알게 된다라고 한 공자의 말을 인용한 발문은 추사의 외롭고 쓸쓸한 마음이 더 절절하게 느껴졌다. 역관인 이상적이 자신을 잊지 않고 북경에 가서 귀한 책을 가져다주는 그의 선의와 정성을 칭송하는 추사의 말이 감동보다는 오히려 차가운 쓸쓸함으로 다가왔다. 세한도에 그려진 핍진한 소나무와 잣자무(혹은 측백나무), 아무 장식도 없이 비어있는 듯 보이는 집 한 채 역시 그의 고독한 마음을 대변하는 듯 했다. 이 제주 유배기간 동안 추사의 글씨는 그만의 독특한 스타일을 형성했다. 얼마나 쓰고 또 쓰면서 외로움을 달랬을지를 짐작하게 한다.

 

유홍준의 추사 김정희에는 좀더 자세하고 흥미로운 에피소드들이 등장한다. 그의 그림이나 글씨에 나타나지 않은 것들에 관해 작가의 고증과 상상력으로 엮어가는 지점들이 있어 더욱 흡입력이 있다.

추사의 독특한 글씨만큼이나 성격도 남달라서 주변에 정적을 만든 것으로 작가는 짐작한다. 그의 결기는 유배지를 향하는 중에도 보였던 것 같다. 대둔사에서 초의를 만났을 때 추사는 이광사의 대웅보전 현판 대신 자신이 써준 글씨를 달라고 했다. 그러나 그의 이런 성격도 제주도 유배기간 동안 다듬어져서 유배생활을 마치고 다시 돌아오는 길에 다시 이광사의 글씨로 바꿔달라고 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지금은 원교 이광사가 신지도에 유배되었을 때 쓴 대웅보전이라는 글씨가 걸려있다고 한다. 완당의 예서체를 보면 인생을 생각하게 된다. 그의 인생이 담겨 있어서 추사체라 불리는 것이 아닐까?

 

유홍준의 책은 수록된 작품 사진들 중에 위작 논란이 있는 듯하다. 그런 내용들만 빼면 내게는 많은 것을 알게 해준 책이었다.


유홍준의 추사 김정희에는 완당바람이라는 용어가 나온다. 추사가 연경을 다녀온 후 연경의 문인들과 교류를 하며 서화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켰다는 내용이다. 실제로 추사의 영향을 받거나 그와 함께 했던 당시 조선의 문인들을 소개하고 있던 그의 벗 권돈인은 추사의 그림과 글씨를 그대로 따라 했던 절친한 관계였다. 추사의 제자 중에는 이상적처럼 중인 출신들도 있었다. 그런데 이 완당바람이란 용어는 이동주교수가 사용한 것이다. 그는 완당이 난초 그리는 법은 또한 예서 쓰는 법과 가까우니 반드시 문자의 향기와 서권의 기미가 있는 연후에 얻게 되느니라. 또 난초 그림의 법은 가장 화법이라는 것을 꺼리느니 만일에 화법이 있으면 한 붓도 그리지 않는 것이 가()하다고 하였는데, 문인화의 묘미를 나타내는 말이라고 할 수 있다고 한다. 그의 불이선란(부작란)”에 그의 이런 정신이 잘 나타나있다. 이 문인화의 새바람은 석파 이하응과 운미 이하응에게 이어진다. 이동주 교수는 이 완당바람에 대해 이렇게 평한다.

 

완당 생전과 죽은 뒤의 석파 · 운미시대를 통하여 일종의 완당바람이 불고, 이 바람을 계기로 하여 문인화의 새 바람이 한국의 화단을 덮어서, 그때까지 유행하던 사경산수 · 속화의 터전을 일조에 부숴버리게 되었다. 그런데 야릇한 일은 김 완당과 석파 대원군, 민 운미가 살던 시대의 성격이다.…… 그렇다면 위데 든 완당바람을 타고 온 문인화의 절묘한 맛이 과연 어느 시대, 어느 사회층의 풍조를 상징하느냐 하는 의문에 빠지지 않을 수 없다. (우리나라의 옛그림이동주 334p)”

이동주 교수가 이렇게 부정적으로 사용한 완당바람이 유홍준 교수에게 와서는 긍정적인 방향으로 바뀐 것을 볼 수 있다. 3권의 책 모두 완당, 추사, 보담재김정희를 바라보는 시선에서나 그들이 중점을 둔 작품들이 약간씩 다르기는 하다. 내겐 첫사랑처럼 설레고 처음 아는 지식들을 서투르게 마주쳤던 박철상의 세한도가 추사에 관한한 최고의 책이다.

 

22년 전 아이들과 함께 다산초당으로 가는 산길을 오르던 기억이 내겐 특별하다. 큰 아이가 여섯살 작은 아이가 세살, 게다가 막내는 뱃속에 있었을 때였다. 큰 아이가 세네번쯤 "엄마 얼마나 남았어?" 라고 묻고, "다왔어"라고 대답하는 내게 아이는 "엄마도 거짓말하네!"라고 해서 남편과 내가 웃었다. 바로 직전 월출산에서 아빠의 거짓말에 속아 출렁다리까지 갔다왔으니, 불안하고 의심할 수밖에. 그래서 강진 다산초당을 생각하면 이 대화와 풍경이 함께 떠오른다. 그때를 아이들은 기억도 못하지만 비오고 무더운 산길을 오르며, 나는 그 기억때문에 또 혼자 웃었다.

이번 가족 여행은 완도, 신지도, 고금도, 해남, 강진, 광주, 전주를 잇는 남도 여행이었다. 남도에는 유배지가 많다. 김정희의 부친 김노경이 유배되었던 고금도까지는 완도에서 신지도와 고금도까지 이어지는 다리가 놓여있었다. 신지도의 절경 명사십리와 강진 다산초당과 같은 풍경 속에 유배형을 살고 있던 사람들의 외로움과 회환을 떠올려 본다. 절로 글이 써지고 붓이 달리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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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24-08-28 09:2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오오 다산초당 !

한 십수년 전에 어느 출판사
행사로 정민쌤이랑 같이 답
사 갔던 기억이 나네요.

너무 즐거웠던 것으로.

저도 정말 오래 전에 월출산
에 갔었는데, 추억 돋네요.

그레이스 2024-08-28 09:30   좋아요 2 | URL
정민교수님이랑 답사였으면 저보다 많은 것을 보셨겠네요^^

go 2024-08-28 10:2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올려주시는 독서기록 마주할 때마다 그레이스님이 읽으신 책들 꼭 읽어봐야겠다하고 마케팅 당하는데 어제는 마지막 단락에 적어주신 자제분들과의 추억을 제 나름으로 상상하며 웃음지었어요 ㅎㅎ ˝엄마도 거짓말하네˝는 계속 생각이 나요!
제 큰 딸아이(34개월)는 요즘 말을 잘하게 되었는데 이렇게 기억에 남는 말덩어리가 생기는 게 신기하거든요 ㅎㅎ

그레이스 2024-08-28 17:53   좋아요 2 | URL
감사합니다 ~
그렇게 웃음짓는 순간이 있어,,, 양육의 힘듦을 잊게되는듯요. 지나고 보면 그때가 좋았다고 생각할거란 어른들의 말이 맞아요^^
따님이 한참 기쁨을 줄 때네요.
예쁜 기억 많이 남는 시간들이 되시길 바래요~~♡
 
나귀 가죽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3
오노레 드 발자크 지음, 이철의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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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혁명으로 국민에 의해 왕이 된 루이 필립이 부르주아의 왕, 증권업자의 왕이라 불린 것이 상징하듯 부르주아지가 권력계급이 되었다. 그들은 사교계의 중심이 되었고, 정치와 신문매체를 통해 그 권력을 행사했다. 복고왕정시대를 닫고 국민의 주권 원리에 따라 왕권을 축소하고 법과 행정제도를 개혁하고 진보를 약속한 7월 혁명의 이면이다. 그 시대-변화를 바라는 많은 사람들의 과격한 행동, 매일같이 벌어지는 가두시위, 자기들의 때가 도래 했다고 믿는 보나파르트 파·공화주의자·생시몽 파(Saint-Simonians)의 논쟁이 벌어지는-를 발자크는 못마땅하게 보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내가 읽어 온 그의 작품들에서 공통적으로 받는 뉘앙스다.

 

오를레앙 공의 거주지였던 팔레 루아얄에 만들어진 도박장은 시대의 격변을 상징한다. 밤마다 구경꾼과 노름꾼, 주정뱅이들로 북적이는 팔레 루아얄 도박장은 혁명이 꿈꾸고 개혁이 약속한 것들과는 먼 풍경을 보여주고 있다. 메마르고 차가운 노름꾼들의 시선은 도박장에 들어온 낯선 인물을 쫓는다. 그의 용모와 태도와 안색과 표정에서 발견한 것은 체념과 절망이다.  운명을 시험하듯 마지막 남아 있던 금화 한 개를 투기하고 떠나는 젊은이는 쾌락을 쫓다가 막장에 이른 주인공 라파엘이다. 그 시대 많은 젊은이들의 모습이다.

 

라파엘이 길을 걷다가 들어가게 된 골동품점 역시 그 시대를 나타내는 코드로 읽게 된다. “각 문명과 종교의 유물, 성물과 걸작 예술품, 왕궁 유물과 쾌락 용구(50p)”등으로 가득 차 있는 이곳에서 취향을 만족시키기 위한 소비가 있음을 알려준다. 개인의 감상을 위한 미술품의 구매는 후에 키치라는 문화를 만들어냈음을 익히 알고 있다. 축적된 자본과 유행, 취미가 이끌어가는 시장이다.

 

도박장과 골동품 상점 모두 라파엘과 같은 젊은이들의 바랐지만 저버려진 욕망을 상징한다.

 

대해처럼 펼쳐진 이 가구와 발명품과 의상들, 그리고 예술품과 유물의 잔해는 그에게 끝나지 않는 한 편의 시였다. 형태와 빛깔과 사상 등 모든 것이 거기에 살아 숨쉬고 있었다. (47p)”

 

그가 도박장과 골동품 점에 오기까지, 지난 날 경험했던 쾌락과 방탕과 좌절은 소멸해버린 지난 오랜 역사가 남긴 잔해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그것들에 숨이 막히고, 모든 인간의 사유에 염증을 느낀다. 그는 이런 감정들에 휩싸여 죽음 충동을 느끼고, 그런 그의 앞에 환영 같은 노인이 나타난다. 마치 발푸르기스의 밤 파우스트 앞에 나타난 메피스토처럼.

 

노인은 라파엘에게 나귀가죽을 주고, 이 나귀가죽은 그것을 소유한 자의 욕망을 이루어주지만 그때마다 줄어들면서 그의 수명을 단축한다. 어차피 자살을 생각했던 그에게 그 조건은 고려대상이 아니다. 그것을 지닌 그는 길을 나서고, 모임에 참석하게 되고 거기서 친구 에밀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한다.

 

지금의 자신을 이해하려면 먼저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는 그의 말에서 그에게 아버지는 유년기의 정서와 인격 형성에 중요한 사람이었음을 알 수 있다. 불행히도 아버지는 그에게 어두운 면을 형성했음을 짐작하게 하는 고백들이 보인다. 엄하고 곁을 주지 않는 아버지는 자신의 진로도 정해주었다. 아버지는 대혁명과 시대의 격변 속에서 파산하고, 이후 재산을 되찾기 위한 소송을 10년 동안 벌이고 있었다. 라파엘은 법학을 공부하고 하고, 소송 전쟁에 뛰어 들면서, 아버지의 우수를 이해하게 되었다고 고백한다. 과연 이해한다고 해서 그의 성장과정에서 만들어진 흔적과 상처가 지워질 수 있을까? 그것은 별개의 것이다. 한사람의 삶에서 이런 흔적이 만들어 놓은 결과는 어떤 모양으로 나타날지 알 수 없고, 그것을 알고 있다 할지라도 넘어서는 것은 평생이 걸릴 수도 있다.

 

라파엘은 그런 결핍을 쾌락적 사랑으로 채우려고 했고, 페도라라는 여인을 욕망했다. 그녀와의 사이에 다리를 놓은 사람이 바로 라스티냐크, 고리오 영감의 주인공이다. 그는 고리오 영감의 장례를 치르고 파리의 번화가를 바라보며 살아가겠다고 결심했던 그 방식대로 살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런 전형적인 젊은이들이 파리의 사교계에서 바람잡이 역할을 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는 페도라에게서 사랑을 쟁취하는 것도 실패하고, 방탕했던 생활 때문에 파산에 이르렀다. 에밀에게 이런 내용의 고백을 하고 있는 그에게 상속재산이 있다는 소식이 갑작스럽게 전해지고 그는 전율과 함께 주머니 속의 나귀가죽의 크기를 확인한다. 인간은 결핍을 욕망한다. 시간이 줄어듦을 인식하고 나귀가죽을 전해준 노인의 말을 기억한다. 욕망하지 않는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그 비결이라는 말!…… 가능할까?

 

나귀가죽은 인생의 반어법이다. 욕망하는 것을 얻지만 그로 인해 삶의 남은 시간이 줄어드는 반어법. 줄어드는 시간 속에서 죽음을 인식하는 그는 눈을 떠서 진정으로 사랑하는 여인 폴린을 본다. 죽음 앞에서 진실이 드러나는 반어법! 인생에는 이런 반어법이 존재한다. 하지만 그것을 고통과 기쁨이라는 총량의 법칙으로 가늠할 수는 없다. 욕망의 대상은 삶의 도처에 있고, 욕망과 쾌락으로 탕진하는 것은 재산이 아니라 시간이다. 살아가는 것은 시간을 탕진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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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staff 2024-07-29 05:0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하여간 라스티냐크, 가는 곳마다 사고 치고 사라지는 악마.... 아닐까요? 볼 때마다 메피스토펠레를 연상하게 하더라고요.

그레이스 2024-07-29 05:17   좋아요 3 | URL
ㅎㅎ
그래도 라스티냐크 보고 반가웠어요.
그럴수도 있겠네요. 메피스토펠레스!
전, 나귀가족을 준 노인만 생각했는데,,,!

레삭매냐 2024-07-31 10:0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오오 진짜 오래 전에 읽은 책이네요.

처음 나왔을 적에 눈에 불을 켜고
오탈자 찾던 기억이 생생하네요 :>

나중에 반영이 되었는지 궁금하네
요.

그레이스 2024-07-31 14:58   좋아요 2 | URL
오탈자 나와도 ‘콩을 팥으로‘ 새겨 읽었나봅니나.ㅋㅋ
못 찾았네요^^;;

페넬로페 2024-08-13 17:3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제가 최근에 ‘퍼펙트 데이즈‘라는 영화를 봤는데 계속 라파엘의 삶과 대비되더라고요.

그레이스 2024-08-13 17:38   좋아요 3 | URL
영화 내용 잠깐 봤는데,,, 그럴만한 지점이 여럿 보이네요.
보고 싶네요^^
 


전통회화 초상화론에 '전신사조(傳神寫照)'라는 말이 있다. “초상화를 그릴 때 인물의 외형 묘사뿐 아니라 인격과 내면세계까지 표출해야 한다(한민족대백과사전)”는 뜻이다. 동진(東晋)의 인물화가 고개지(顧愷之)가 처음 사용한 말이라고 한다. 동양이나 서양이나 화가의 고민은 같은 지점에서 만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아서 단토는『무엇이 예술인가』에서 예술에 있어서 정신적인 개념에 관하여 설명하며 1831년에 발표된 미지의 걸작을 예로 들고 있다. 대가 프렌호퍼가 화가 포르뷔스의 그림을 보며 평하는 장면이다.

 

자네의 성녀를 보게, 포르뷔스. 처음 보면 성녀는 근사해 보이네. 하지만 두 번째 보면 그녀가 그림의 배경에 달라붙어 있어 그녀의 육체를 둘러볼 수 없다는 것을 알아차리게 되네. 이것은 단 하나의 면만을 가진 실루엣이고, 절단된 외양이며, 뒤돌려 볼 수도, 위치를 바꿀 수도 없는 이미지일 뿐이야. 이 팔과 그림의 바탕 사이에 공기가 흐르는 것을 느낄 수가 없네. 공간과 깊이가 부족하기 때문이지. 물론, 투시법상으로 모든 게 좋아. 대기원근법도 정확히 지켜지고 있고. 하지만 그토록 칭찬할 만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아름다운 육체가 따뜻한 생명의 숨결을 받아 생기를 띠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네.(미지의 걸작78p)”

 

대가 프렌호퍼는 포르뷔스의 이집트의 마리아가 생명이 없는 이유는 그가 데생과 색채 사이에서 흔들리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이것은 푸생과 루벤스의 논쟁을 떠올리게 한다. 엄밀한 냉정함과 눈부신 격정, 엄격함과 풍요로움 사이에서의 선택은 세잔 이후 화가들에게서 반복되는 것이다. 프렌호퍼의 모델이 누구일 것인가에 대하여 많은 추측을 하지만 한 예술가를 꼽기에는 복합적이다.

 

단토는 프렌호퍼가 소매를 걷어붙이고 포르뷔스의 작품에 몇 번의 붓질을 하여 그림에 생명력을 부여하는 장면에서 이 생명은 정신의 개념을 의미한다고 한다. 세잔으로부터 입체주의와 현대의 호크니, 고흐로부터 표현주의, 마티스로부터 로스코에 이르기까지 많은 화가들의 반복되는 작업과 실험을 통해 얻으려 했던 것은 무엇이 예술인가에 대한 자신만의 답일 것이다. 노화가 프렌호퍼의 작업과 그의 한마디 한마디는 뒤에 올 화가들이 수없는 붓질을 통해 찾은 답이라고 할 수 있다.

 

미지의 걸작에는 이제 막 자신만의 화법을 찾아가고 있는 푸생과 오랜 기간 그림을 그려왔고 어느 정도 명성은 얻었지만 경지에는 이르지 못한 포르뷔스와 대가(大家) 프렌호퍼가 등장한다. 푸생에게 비친 프렌호퍼는 예술가의 본성에 대한 완벽한 이미지였다. 그의 천재성과 광기는 악마적인 어떤 것으로 느껴지기까지 한다. 포르뷔스와 푸생은 프렌호퍼의 작업실에 초대되고 그의 작업과 작품을 엿볼 기회를 얻는다. 그리고 프렌호퍼의 완성하지 못한 작품에 대해 알게 된다. 프렌호퍼가 작품을 완성하지 못하는 이유는 그 작품의 모델을 찾지 못한 까닭이다.

 

연인 질레트에게 노화가의 모델이 되어달라고 부탁하는 푸생과 자신의 화폭에 그려진 여인을 보여주는 것은 끔찍한 매춘이라고 하는 프렌호퍼의 생각은 대비(對比)를 이룬다. 프렌호퍼의 작품을 대하는 태도는 피그말리온을 연상시킨다.

 

이것은 그림이 아니라, 한 사람의 여자야! 나와 함께 울고, 웃고, 이야기하고, 생각하는 여자이지. 자네는 내가 십 년 동안의 행복을 외투를 내던지듯 갑자기 버리길 바라나? 갑자기 내가 아버지이자, 연인이자, 신이 되는 것을 그만두기를 바라나? 이 여자는 신의 피조물이 아니라, 나의 창조물이야.(116p)”

 

질레트를 모델로 프렌호퍼는 작품을 완성하고 완성된 작품을 감상하는 푸생과 포르뷔스는 처음에는 그 화면에서 혼란스럽게 쌓인 색깔들만 보이고 여인은 도무지 찾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곧 한 구석에서 벗은 발의 끝부분을 찾고, “그 발은 색깔과 색조, 불분명한 농담(濃淡)들의 카오스로부터, 즉 형태 없는 안개 같은 것으로부터 삐져나와(미지의 걸작128p)” 있는 것을 본다. 두 화가는 프렌호퍼의 도취 상태를 모호하게나마 납득하기 시작한다.

 

내 작업을 주의 깊게 살펴보게. 모사와 윤곽선을 처리하는 방식에 대해 내가 자네에게 얘기했던 것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걸세. 가슴의 빛을 보게. 어떻게 내가 아주 두텁게 칠한 일련의 터치들과 하이라이트들로 진정한 빛을 획득하였는지, 또 어떻게 그 빛을 밝은 색조의 반짝이는 흰색과 결함시킬 수 있었는지 보게나. 그리고 어떻게 상반되는 작업을 통해 돌출 부분과 물감의 우둘투둘함을 지우면서 반-농담에 잠긴 내 인물의 윤곽을 공들여 다듬었는지, 그 결과 어떻게 데생의 인위적 수단의 개념까지 없애버리고 인물에게 실물 그 자체의 모습과 둥근 형태를 줄 수 있었는지 살펴보게.( 129p)”

 

자신의 작품을 알아보지 못하는 포르뷔스에게 하는 프렌호퍼의 설명은 가까이는 인상파의 그림을, 더 나아가 세잔으로부터 시작된 야수파와 입체파, 현대미술의 도래를 예언하는 듯이 보여 놀랍다. 이 설명을 듣고 푸생이 그는 화가라기 보다 시인이라고 한 말과 지상에서 우리 예술이 끝나는 군(미지의 걸작129p)”이라고 한 포르뷔스의 말은 개념미술과 아서 단토가 말한 예술의 종말을 떠올리게 한다.

 

발자크가 어떻게 이런 것을 알고 작품에서 구현했느냐고 질문한다면, 나는 그가 미술을 완전히 알고 전망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이 작품이 쓰여진 시대 이전 푸생과 루벤스의 논쟁을 통해 예술가들의 고민과 그 갈등이 가리키는 예술의 방향을 바라볼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한편, 푸생을 사랑하기에 프렌호퍼 앞에 선 질레트를 묘사하는 단어들이 독자인 나를 당혹스럽고 불편하게 한다. “강도들에게 유괴당해 노예 상인 앞에 끌려온 순진하고 겁먹은 조지아 처녀처럼, 순수하고 꾸밈없는 태도”, “수줍어하는 듯한 홍조” “눈을 내리깔았고. 힘이 다 빠져나간 것처럼 두 손을 허리 곁에 늘어뜨렸다. 그리고 그녀의 수치심에 가해진 폭력에 저항하는 듯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미지의 걸작121p)” 그런 그녀를 보고 프렌호퍼는 놀라고, 푸생은 아름다운 보물을 그의 창고에서 꺼낸 것에 절망하고 스스로를 저주했다, 아연해질 수밖에 없다.

 

프렌호퍼의 작품 안에서 찾아낸 조형을 바라보고 감탄하던 푸생은 구석에서 잊고 있던 질레트의 울음소리를 듣는다. 질레트는 푸생을 경멸한고 증오하고 있다고 울부짖는다. 화폭을 바라보는 푸생을 보며 자신을 그런 눈으로 바라본 적이 없었다고 깨닫고 절망하는 질레트는 당시 화가들의 모델이었던 여성들의 소외를 떠올리게 한다. 영화 누드모델의 감독은 이 지점에서 사유를 확장시켰을 거라 생각된다. 원하는 포즈을 요구하는 노화가에게 내가 찾겠어요라고 하는 마리안의 대응은 발자크의 질레트로부터 더 나아간 것이다.

 

노화가가 요구한 포즈, 거기에 자신의 창조물인 여성의 이미지, 그 화가의 정신이 있다. 그 포즈는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과 티치아노의 <우르비노의 비너스>, 그리고 마네의 <올랭피아>에 이르기까지 여성의 몸과 자세에 대한 이미지들을 떠올리게 한다. <비너스의 탄생>베누스 푸디카는 정숙한 여인의 자세로 여겨졌다. 그녀가 서있는 조가비가 사라지게 되면서 바닷가에 누워있는 비너스를 그리게 되고, 그것은 다시 <우르비노의 비너스><올랭피아>와 같은 변화된 이미지들을 생산해냈다.

 

시선의 불평등에서 특별히 보티첼리의 비너스가 여성에게 강요된 비현실적인 미의 기준들과 성적이 성숙에 대한 억압이 지속적으로 미친 영향에 대해 논리를 전개한다. 미술과 주류 이미지에서 비너스의 몸은 오랫동안 인간의 성과 욕망을 탐구하는 합리적인 틀이고 보이지 않는 규범(시선의 불평등59p)”이 되었다. 성적 욕망을 보편적으로 나타내는 것으로 선택되었고, 남성의 시선을 만족시키기 위한 것으로 만들어졌다. 누드 작품에서의 여성의 포즈, 배경에 그려진 사물들이 지시하는 의미들은 오랫동안 여성에게 폭력적이었다.

 

발자크의 작품을 볼 때마다 에필로그가 달려있는 것을 자주 보게 된다. 이것은 그가 인쇄소까지 쫓아가서 그 자리에서 고쳤다는 작품에 대한 조바심이 습관의 결과물이 아니가 생각한다. 아직 발자크에게는 자신이 낳은 작품을 독자에게 맡기는 자유로움과 성숙함이 없었을까?

 

미지의 걸작의 첫 번째 버전(프렌호퍼 선생)은 질레트의 울부짖음으로 끝났었다고 한다. 그런데 후에 내용이 덧붙여졌다. 노화가와 작품의 마지막에 관한 내용이다. 이제까지 읽었던 발자크의 에필로그나 추가된 부분 중에 가장 맘에 들지 않는 내용이다. 처음의 엔딩은 질레트에게 초점이 모아진다. 발자크는 노()화가와 그의 걸작에 시선을 두고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던 듯하다

보티첼리 <비너스의 탄생>14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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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원 김홍도
오주석 지음 / 솔출판사 / 2006년 8월
평점 :
절판


다른 분들이 왜 김홍도에 관한 이런 책을 못내는지 알것 같다. 조선 미술사에서 김홍도 챕터는 대부분 이 책을 인용하고 있는듯. 상세하고 도판이 충분히 담겨있어 이 화가를 공부하기엔 아주 좋은 텍스트다. 다시 출간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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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괭 2024-07-01 18: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 몇년 전에 오주석님 ‘한국의 미 특강‘이랑 ‘옛 그림 읽기의 즐거움‘ 읽었는데 참 좋았던 기억입니다. 김홍도는 이 책이 찐이군요! 절판이라니 안타까워요.. ㅠ

그레이스 2024-07-01 18:26   좋아요 0 | URL

저도 이번에 한국미술사 공부하면서 중고책으로 샀어요 ^^
 
왜 우리는 쉽게 잊고 비슷한 일은 반복될까요? - 기억하는 사람과 책임감 있는 사회에 관하여
노명우 지음 / 우리학교 / 2024년 4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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팽목항에서 불어오는 바람에서 세월호 이후 바뀔 인문학의 방향과 그것으로 인해 우리가 사는 세상에 변화가 올 것임을 기대하던 글을 읽었던 기억이 난다. 그에 동의했고 기대했었다. 그러면 어떻게 무엇을 공부해야 할까 하고 생각했었다. 10년이란 시간이 흘러 우리가 알고 싶어 했던 진실은 밝혀지지 않았고, 오히려 무력감과 무심함과 패배의식만 가득한 것을 목도하고 있다. 누군가는 이만큼은 변했다고 증명하고 설득하려 들지 모르겠다. 하지만 내가 체감하는 것은 애써 외면하는 피로해진 얼굴들이다.

 

열광했던 인문학은 바람 빠진 공처럼 그 탄성을 잃고 늘어져 있는 것 같다. 당시 우리를 지배했던 자본의 권력에서 자유하게 될, 모두는 아닐지라도 나를 포함한 누군가는 그렇게 될, 방법이라 여겼던 공부는 의미를 상실한 채 습관과 자기만족으로만 남아있는 것은 아닌지. 모임에서도 그 이야기를 꺼내길 주저한다. 상대방을 피곤하게 할지 모른다는 두려움, 아니 스스로에 대한 부끄러움 때문이다.

 

그 이후로도 또 다른 재난들이 이어졌다. 무력감을 느끼며 거리두기와 버티기를 해야 했던 팬데믹과 그 재난들을 동일한 범주에 넣고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듯하다. 그러다 또 다른 참사 소식이 들려왔다. 흠칫 놀란다. 내 마음 때문에.

 

노명우 작가는 이 책에서 세월호 사건에서 물어야 했던 ?”라는 질문들을 계속 해야 하고, 그 물음 끝에 답을 얻어야 한다고 당위를 주장한다. 우리는 참사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 그것은 한 개인의 불운이 아니라 세상의 상식이 침몰한 공동체의 재난이기 때문이다. 낙관론으로만 설명될 수 없는 세상의 어두운이면을 대면해야 한다. 그것이 사회적 고통이 되풀이 되지 않는 방법일 것이다.

 

20세기 제노사이드의 시대를 열었던 1915년 튀르키에서의 아르메니아인들 학살과 1948년 제주 4.3 사건, 1989년 힐즈버러 스타디움 참사와 2022년 이태원 참사, 1978년 미국 러브 운하환경참사와 2023년 현재 7,891명의 피해자가 등록된 가습기 살균제 사건 등 그 재난이 닮은 과거와 현재의 사건을 소개 한다. 그리고 질문한다. 대체 왜 재난은 되풀이 되는 것일까? 그것도 같은 원인과 결과로.

 

대체 재난은 왜 끊이지 않고 되풀이 되는 것일까요? 인간은 그 자체로 악을 품고 있는 존재여서 그 폭력성이 학살이라는 재난을 만들어 내는 것일까요? 길을 걷다가 영문도 모른 채 압사당하고, 축구 경기를 보러 갔다가 목숨을 잃고, 건강을 염려해 권장하는 대로 가습기 소독을 하다가 생명을 잃고, 신도시로 이주했다는 이유로 삶을 상실한 사람은 자신의 악운과 가혹한 운명을 탓해야 할까요? (59p)”

 

우리가 인간의 역사에 쌓여 있는 이 재난의 파국 앞에서 그 원인을 개인의 운명이나 잔혹함으로 돌려 버린다면그 재난은 계속 반복될 것이다. 시야를 넓혀서 그 재난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매커니즘을 규명해야 하고 그 반복되는 작동을 중지 시켜야 한다.

인간의 역사는 진보에 진보가 더해지는 개선이 아니라 비극에 비극이 더해지는 파국의 역사(63p)”라고 한 발터 벤야민의 말을 인용한다. 아르메니아의 제노사이드는 파국의 시작이었고, 이후 인류의 역사 속에 홀로코스트(1945~48), 난징 대학살(1937), 캄보디아 민간인 학살(1975~79), 르완다 내전 중 투치족 집단 학살(1994), 보스니아인 학살(1995) 등 수많은 집단 살해가 반복되었다. 홀로코스트가 벌어지기 전 그 사회에는 이미 그런 일이 가능해질 시스템이 만들어진다. 그 시스템이 작동한 결과다. 희생자인 유대인들조차도 이 전조를 눈치 채지 못한 사람들이 많았다. 참사의 경우도 재난의 전조가 있음에도 그 경고를 알아채지 못할 때 일어난다.

 

눈을 멀게 하는 권력은 무엇일까? 결국 그 시스템을 만든 권력이다. 세월호 당시 많은 소문들이 있었지만, 나는 오랜 시간 동안 전조가 있었음에도 눈을 멀게 했던 자본의 권력에 분노했다.

 

1969년 인도 보팔의 미국의 유니언카바이드공장에서 일어난 가스 누출 사고는 24일 일어난 화성 아리셀 공장 화재는 노동력의 수요와 공급이 만난 외국인 노동자들의 희생이라는 면에서 다르지 않다. 우리는 공장 건물 붕괴로 천여명이 숨지는 방글라데시의 재난 현장에서 만들어진 옷을 입고 있을 수 있다. 반복되는 참사와 재난을 지배하는 힘은 자본이다.

 

우리가 공부를 하고 그 매커니즘을 알았다고 해도 그 거대한 힘에 맞서 중지시킬 힘이 있을까?

 

1789년 윌버포스가 영국 하원에 노예무역 폐지 법안을 첫 번째로 상정했다. 오랜 시간 자료들을 수집하고 거듭 법안을 상정하고 설득했다. 그의 의회 연설은 정의에 가득 차 있었고 강한 설득력이 있었지만 대다수 의원들의 마음은 불편했다. 윌버포스가 제시한 사실에 동요되기는 했지만, 노예무역 폐지가 경제적 재앙을 가져오지 않을까 우려가 앞섰다. 이 법안이 통과되고 노예제가 폐지 된 것은 1833년이었다. 무려 44년이란 시간이 걸렸다. 윌버포스라는 한 사람의 각성으로 시작하여 그와 함께 한 친구들과 동료들이 함께 한 결과였다.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그 사람들의 욕망이 모여 만들어진 시스템이야 말해 무엇 하겠는가? 중단 없는 투쟁과 연대가 필요한 이유일 것이다.

 

변하지 않는 세상 앞에서 때로 무력감에 휩싸여도 공부하자. 그리고 부끄러움에 얼굴이 붉어져도 할 말은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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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아 2024-06-30 23:3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대형 재난(인재)이 일어나기까지 100가지가 넘는 징후가 있다고 들은 기억이 납니다. 그걸 다 무시하고 관련된 사람들이 다 침묵해야 비로소 일이 터진다는 거겠죠. 자본주의의 횡포와 파괴력에 대해서 국가적으로 고민해보면 좋겠어요. 그런데 정작 권력을 가진 사람들은 그걸 좋아하지 않고 가장 피해를 입는 사람들은 힘이 없고 다수는 권력을 선망하거나 두려워하고...어렵네요.

그레이스 2024-06-30 23:44   좋아요 1 | URL
ㅠㅠ
그렇죠
미미님 말씀에 동의합니다.
저도 그 거대한 권력 아래 있는 것을 절감합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을수는 없는일!

독서괭 2024-07-01 18:2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시스템.. 그렇죠.. 무력감에 휩싸여도 공부하자, 는 그레이스님 말씀을 새겨야겠어요.
세월호 참사도, 이태원 참사도 그 충격이 컸는데 바쁘게 살다 보면 어느새 잊고 있고 ㅠㅜ 잊지 않게 하는 이런 책들도 계속 나와줘야 할 것 같습니다.

그레이스 2024-07-01 19:19   좋아요 1 | URL

작가와의 만남 다녀왔거든요.
4월이었던것 같은데,,, 그때는 4월에만 이런책 올리나 싶어서 나중에 잊을만하면 쓰자 했다가,,, 이번에 또 화성화재 같은 사고가 또 일어나네요 ㅠ
그래서 올렸습니다.

젤소민아 2024-07-06 00:4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당선, 축하드립니다~

그레이스 2024-07-06 08:35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

고양이라디오 2024-08-29 10: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늦었지만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리고요.

재난, 참사... 항상 뉴스로 소식을 볼 때 마다 안타깝습니다.

그레이스 2024-08-29 12:29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무기력하다고 해야할까요?
그런 기분마저 느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