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인 체험 을유세계문학전집 22
오에 겐자부로 지음, 서은혜 옮김 / 을유문화사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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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 인간을 통해 오에 겐자부로의 작품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만엔 원년의 풋볼, 아름다운 에너벨리 싸늘하게 죽다를 이어서 읽었지만, 이 작품들의 메시지를 내 것으로 하기가 어려웠다. 일본의 역사, 지역 공동체나 가계 또는 개인의 서사라는 프레임 안에서 메시지를 찾기에는 뭔가 부족한 점이 있었다. 특별히 그의 작품 곳곳에서 자주 등장하는 성행위 장면은 어떻게 소화해야 할지 난감했다. 그것은 섹슈얼리티라기 보다는 오히려 비참하고 그로테스크한 욕구영상이라면 눈을 질끈 감게 되는로 다가온다. 개인적인 체험에서 그려지는 성행위 장면 역시 불편했다. 그러나 다른 작품에 비해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는 조금 더 선명하다.

 

그는 소설의 방법에서 문학표현과 낯설게 하기라는 소제목으로 구조화에 대해 설명한다. 말과 단어, 문장과 분절화된 문단들은 중립상태로 있을 수 없다. 소설 안에서 문장은 문체화된 전략적인 문장이 되어 그 문장이 표현하는 사람의 상황을 다 끌어들인다. 그 문장이 그 사람이 갖는 정황, 태도를 표현한다. 그렇게 문장은 낯설게 되고 상황들과 관계를 맺고 여러 의미의 층위를 형성한다.

 

문학표현의 말은, 말과 단어의 수준에서 벌써 이 사회가 세계 나아가서는 우주적인 것으로 넓혀 가는 구조적인 양상에 대하여 그 쓰는 사람이 어떠한 태도로 실재하고 있는가를 보여 주는 힘을 갖고 있다.(소설의 방법오에 겐자부로 28p)”

 

작가는 굳이 구조주의를 언급하지 않겠다고 하지만, 그가 말한 구조화라는 것은 구조주의적 해석과 관련이 있다는 생각이다. 자연스럽고 친근하던 표현들이 그의 작품 안에서는 낯설게 느껴지는 이유다.

 

진열장 안의 아프리카 지도를 들여다보며 한숨을 내쉬고 있는 버드는 병원에서 출산 중인 아내를 두고 있다. 처음부터 낯설다. 도대체 태어날 아이를 기다리는 남자가 왜 이런 곳에서 아프리카 지도를 바라보고 있을까? “아프리카 대륙은 고개를 수그린 남자의 두개골 모양과 닮았다(8p)”고 한 문장은, 이 소설의 1/3 정도를 읽고 나면, 주인공 버드가 특수아실 유리 너머로 아들의 기형적인 머리를 보며 구토를 일으키는 장면, 진열장과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몸을 보고 수치심을 느끼는 장면을 지시하는 상징적인 이미지임을 알게 된다.

 

사실 결혼 후, 나는 그 감옥 안에 있는 것이지만 아직 감옥의 뚜껑이 열려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태어날 아이가 그 뚜껑을 꽝 하고 내리덮어 버릴 것이다. (14p)”

 

태어날 아이를 기다리는 그의 심정을 그리는 이 글에서 감옥 문이라고 하지 않고 감옥 뚜껑이라고 한다. 관 뚜껑과 죽음을 연상케 한다. 그에게 아이의 탄생이 어떤 의미와 중압감을 주고 있는지를 알려준다. 이런 불만과 두려움을 느끼고 있는 그에게 뇌헤르니아라는 질병으로 기형의 외형을 지닌 아기는 더 깊이 있던 부정적 감정들을 드러내게 한다.

 

원장의 겐부츠(現物)라고 하는 단어가 버드에게 가이부츠(怪物)’라는 단어를 연상시켰다. 그리고 그 괴물이라는 단어에 들러붙은 가시가 버드의 가슴에 온통 할퀸 자국을 냈다. 버드가 자기를 소개하고, 내가 아버집니다, 했을 때 의사들이 동요했던 것은 그들의 귀에 그것이 이런 식으로 울렸기 때문이 아닐까? ‘내가 괴물의 아버집니다.(37p)”

 

그는 아들로부터 도망치고 싶은 욕망을 느낀다. 곧 죽을 것이란 의사의 말을 듣고 안도감과 죄의식을 느낀다. 어차피 식물아기이고 곧 죽을 것이라는 자기합리화의 방어기제도 작동한다. 아기가 죽기를 바랐던 그는 자신의 에고이즘에 수치심을 느낀다. 그의 수치심은 타인의 시선으로부터도 온다. 아기가 쇠약사 하기를 기다리는 동안, 이런 복합적인 감정으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그는 대학 친구 히미코를 찾는다. 그녀는 그의 섹스 엑스퍼트가 되어준다. 이 지점에서 나는 독자로서 주인공의 심리를 쫓아가는데 실패할 뻔 했다. 그런데, 지나가듯 말한 이 두 사람의 공감대를 인지하면서 겨우 그 끈을 놓치지 않을 수 있었다. 히미코는 남편의 자살 후 여러 남자들과 가벼운 관계만을 이어가고 있다. 어릴 적 아버지에게 사람은 죽으면 어디로 가냐는 질문을 했다가 뺨을 맞은, 그것이 아버지와의 마지막 기억인, 버드, 그의 자기 몸에 대한 혐오감과 수치심은 거기에 근원을 두고 있다고 생각된다.

 

그는 대학원에 적응하지 못하고 그만둔 후 2년 동안 만취 상태로 살았었다. 그는 술에 취함으로 도피하려 했던 절망적인 자포자기로 몰아가는 근원적인 불만이(17p)” 자신에게 있음을 깨닫고 술을 끊었다. 이 근원적인 불만이 무엇인지 여전히 알지 못한 채, 어쩌면 그것과 연결되어 있는, 더 심각한 상황을 맞이하고 있다.

 

그의 근원적인 불만과 함께 그의 수치심에서 몸에 대한 사회의 근대적 시선을 발견하게 된다. 장애에 대한 혐오는 자신의 몸을 근대적 시선 안에 가두고 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몸에 대한 혐오를 갖고 있는 그가 장애를 가진 아들을 받아들이는 것이 쉽지 않음은 당연한 것이다. 작가는 이 몸에 대한 근대적 사유를 주인공을 통해 부각시키고 낯설게 함으로 고통을 들여다보고 있다고 생각된다.

 

그의 고통과 대비되는 아름다운 풍경을 그리는 문장들이 인상적이다. 그가 처한 비극과 대비되지 않았다면 그 문장들이 그렇게 비수처럼 아름답게 느껴졌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건물 안의 상냥한 밤의 자취에 취해 있던 버드의 동공에, 젖어 있는 길 표면과 더없이 무성한 가로수가 반사하는 아침빛이 서릿발처럼 선열하게 닥쳐온다. 그 빛을 거슬러 페달을 밟으며 달려 나가려던 버드는 마치 도약대 위에 서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42p)”

 

도약대라는 단어가 주는 이미지 때문에 희망조차 느끼게 하는 풍경으로 읽힐 수도 있다. 그러나 그가 의사를 만나 아들에 대한 설명을 듣고 큰 병원으로 옮기기 위한 준비를 하기 위해 집으로 향하는 길이라는 것을 알기에, 이 글은 비극적 상황에 낀 낯선 문장이 되어버린다.

 

병원 2층의 창이란 창 모두, 거기다 발코니까지를 가득 채우고, 자리에서 일어나 막 세수를 마친 듯 하얀 맨얼굴을 아침 햇살에 드러낸 임산부들이 이쪽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특히 발코니에 나와 있는 임산부들은 복숭아뼈까지 닿는 기다란 잠옷을 미풍에 나부끼고 있어 하늘을 날고 있는 천사들의 무리 같았다. 버드는 그녀들의 표정에서 불안과 기대, 그리고 기쁨까지를 발견하고 눈을 내리깔았다.(45p)”

 

아기와 함께 앰뷸런스에 올라타서 창밖을 내다본 순간에 버드의 눈에 들어온 이 광경은, 이런 상황이 아니라 아들을 맞이해서 기쁜 한 남자가 보는 것이라면, 축복하며 배웅하는 거룩하기까지 한 장면이다. 그러나 그녀들의 불안과 기대, 기쁨이 무엇인지 알고 있기에, 독자(讀者)인 나는 그의 격렬한 몸서리침에 공감한다.

 

오래 버티지 못할 것이라는 의사의 말과 달리 상태가 호전되고 있는 아기 때문에 버드는 당황하고, 수치심과 죄의식으로 괴로워한다. 그는 수술을 거부하고 아기를 쇠약사할 때까지 한 개인 병원에 맡기기로 한다. 그러나 약속된 병원에 가는 길에, 우묵배미를 맴돌며 같은 자리로 돌아오는, 그는 내면의 극심한 갈등이 있음을 보여준다. 차에 함께 타고 있는 히미코와 그는 긴장감 때문에 침묵만을 지키고 있다. 이 갈등의 고조 상태에서 작품이 끝났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작가의 말을 읽다보니, 한 아버지로서 쓸 수밖에 없었던 결말이었다고 고백하고 있다. 작가에게 이 글은 과정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고통을 받아들이는 과정. 그의 말처럼 그때는 젊은 시절이었고, 자신의 고통을 글로 쓰는 것에도 넘어설 수 없는 한계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작가이지만 그 한계를 넘을 수 없었던, 한 아버지의 아픔이 보였다.

 

첫아이가 머리에 기형을 지닌 채 탄생하면서 그는 일찍이 없던 동요를 경험하게 되었다.(아사히 신문1994)“고 한다. 그는 거기서 회복되어 가기 위해 이 개인적인 체험을 썼다고 한다. 그의 다른 작품들에도 아들 히카리와 관련된 소재들이 등장한다. 만엔 원년의 풋볼에서는 아기가 죽은 것으로 그려지고 있다. 그에게 있어 이 고통은 작품에서 함께 갈 수밖에 없는 것으로 보인다. 남은 인생을 아들과 동행했듯이. 음반을 낸 아들 오에 히카리의 음악 안에서 슬픔의 덩어리를 보는 아버지 오에 겐자부로, 그의 말에서 그 이야기를 되풀이해 쓰는 이유를 알게 되었다.

 

다시 오에 히카리라고 표현된 슬픔의 덩어리는 이전부터 그의 내부에 있었다고 말할 수 있겠다. 그러나 처음 CD가 만들어지고 그것을 스스로 되풀이해 듣는 것을 포함한 교육으로, 그는 이 덩어리를 비로소 대상화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처럼 슬픈 마음을 되풀이하여 표현하고 그렇게 하여 인생은 깊어진다. 그 슬픔, 혹은 괴로움과의 만남은 비참한 것만은 아니지 않은가 하는 소리를 역시 나는 예상하고 있었다. 그러나 표현에는 그 자체를 만드는 손을 치유하고 회복시키는 힘이 있다고 나는 경험으로써 알고 있다. (소설의 방법오에 겐자부로, 235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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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괭 2023-09-04 13:48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와, 진짜 개인적인 체험이네요?? 오에 겐자부로 말만 많이 듣고 한권도 안 읽었는데 갑자기 관심이 생깁니다. ‘여기서 끝냈으면 좋았을‘ 그 뒤에 어떻게 진행되는지도 궁금해요. 읽기 쉽지 않을 것 같긴 합니다만..

그레이스 2023-09-04 13:53   좋아요 4 | URL
가독성은 좋습니다. 다른 작품에 비해서도 잘 읽혀지구요, 무엇보다 난데없이 아름다운 표현들에 감탄하게 되죠. 어떻게 여기서 이런 문장이! 하면서. 오에 겐자부로의 책을 처음 읽으신다면 이 책을 추천하고 싶습니다.

청아 2023-09-04 13:59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오...저도 이 책을 읽어보고 싶네요! 그레이스님 만큼 읽어낼 자신은 없지만 몹시 궁금해지는 리뷰입니다.
말, 단어에 대해 그레이스님이 설명하신 부분과 오에 겐자부로의 글 둘다 인상적이에요.

그레이스 2023-09-04 14:04   좋아요 4 | URL
오에의 경험적 내용이어서 그런지 단어 하나하나에 힘이 있습니다. 그러면서 동시에 자신이 느끼는 부정적인 요소들을 두드러지게 해서, 말과 심상이 낯설게 하는, 그렇게 독자로 하여금 생각하게 하는 작가의 탁월함이 보이는 작품이라 생각됩니다.
미미님은 저보다 더 잘 읽어내시겠죠!

서곡 2023-09-04 16:4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개인적체험 저도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저는 을유 번역 전에 나온 고려미디어오에겐자부로전집 걸로 읽었죠 말씀대로 오에의 딴 작품에 비해 술술 잘 읽히고요 영화로 만들면 좋겠다는 상상을 해본 기억도 나네요

그레이스 2023-09-04 16:54   좋아요 2 | URL
저도 고려원에서 나온 책 갖고 있다가 을유책 새로 샀습니다. 오에 겐자부로 옛날 책들 읽지도 않고 있다가 새로 나온 책들로 바꿨어요.
<일상생활의 모험>은 절판인데, 다시 나오려나 싶네요
조금 충격이어서

서곡 2023-09-04 16: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고려미디어가 아니라 고려원이네요 ㅎㅎ 특유의 집요함이 읽다 보면 질리기도 하다가 때때로 생각나는 성실한 작가입니다 9월 잘 보내시기 바랍니다!

그레이스 2023-09-04 16:57   좋아요 1 | URL
예~
서곡님도 행복한 9월 한달 되세요
감사합니다

새파랑 2023-09-05 09: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오에 겐자부로 안읽어봤는데 이 책을 읽어봐야겠네요 ㅋ
요새는 어려운책 못읽겠더라구요 ㅜㅜ

그레이스 2023-09-05 09:43   좋아요 1 | URL
새파랑님 요즘 바쁘신가봐요.
하루키하고도 비슷한 부분이 있어서 좋아하실거란 생각이 드네요.

새파랑 2023-09-05 09:41   좋아요 1 | URL
8월에 바빴는데 9월부터는 안바빠서 책읽으려고 하고 있습니다 ^^

yamoo 2023-09-06 09: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겐자부로 소설 두 권 읽다가 말았어요. 전 되게 재미가 없더라구요. 매우 지루해서 한 내년이나 다시금 읽어보려구요. 그땐 다르겠죠..ㅎㅎ 겐자부로 책은 하도 평이 좋아서 일단 모셔둬요..ㅎㅎ

그레이스 2023-09-06 12:27   좋아요 0 | URL
ㅎㅎ
그럴 수 있죠.
저도 처음엔 힘들더라구요.^^
 

 

혹시 에우리피데스를 알고 계십니까?” 

하루키의 노르웨이의 숲(상실의 시대)주인공 와타나베가 침상에 누워있는 환자에게 말하고 있다. 환자는 여자 친구 미도리의 아버지다. 미도리와는 연극사 수업에서 만났다. 미도리가 병실을 맡기고 일을 하러 간 사이, 아버지가 눈을 뜨고, 와타나베는 자기소개를 한다. 참 어색한 만남이다. 이 어색함을 극복하기 위해 자신의 소소한 신변 이야기들을 늘어놓는다. 멍한 눈으로 바라보는 환자에게 생각나는 대로 지껄이는 듯 보이는 이 이야기 가운데 그리스 비극 작가 에우리피데스가 등장한다. 왜 하필이면 에우리피데스일까? 에우리피데스가 즐겨 썼던 데우스 엑스 매키나에 관한 대목에서 작가의 의도를 눈치 채게 된다.

 

그의 연극의 특징은, 모든 사람들이 엉망으로 혼란에 빠져서 옴짝달싹할 수 없게 되어 버리는 점입니다.…… 모든 사람이 정의가 통하고 모든 사람의 행복이 달성되는 일은 원리적으로 있을 수 없으니까요. 그래서 어쩔 수 없는 카오스가 닥쳐오는 겁니다.

그러면 어떻게 될 거라고 생각하세요? 이게 또 실로 간단하게 풀립니다. 마지막에 하느님이 나타나는 거죠. 그리고 교통정리를 하는 거예요. ……그리하여 모든 일이 제대로 해결됩니다. 이걸 바로 데우스 엑스 마키나라 부르고 있어요. 에우리피데스의 연극에는 노상 이 데우스 엑스 마키나가 나오는데, 이 대목에 이르러 에우리피데스에 대한 사람들의 평가가 갈리고 있어요.

그러나 만일 현실 세계에 이러한 데우스 엑스 마키나가 있다면 일은 편할 겁니다. 곤란하게 됐다, 옴짝달싹할 수 없게 됐다고 생각되면, 하느님이 위로부터 스르르 내려와서 모두 처리해 줄 테니까요. 정말 편할 겁니다. 우리는 대학에서 대체로 이러한 것을 배우고 있습니다. ( 노르웨이의 숲무라카미 하루키)“

 

죽음을 기다리는 환자의 멍한 얼굴에서 이해했는지 기색을 찾으며 지껄이는 이 이야기는 그 스스로에게 하고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다. 그 역시 혼돈에 빠져 옴짝달싹 할 수 없다는 것을 시사한다. 주인공이 나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라는 질문을 반복하는 소설의 마지막은 데우스 엑스 마키나를 말하던 이 병실 장면과 겹쳐진다.

 

하루끼가 와타나베를 통해 말한 것처럼 이런 장치가 우리 인생에도 있다면, 어떨까? 처음 대답은 없는 편을 선택했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그런 구원만이 해결책일 것 같은 인생의 순간이 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사방이 꽉 막히고 어떤 선택도 할 수 없는 그런 상황. 조금 살아보니, 속단과 장담은 지금의 나보다 더 어린 시절의 몫이란 생각이 든다. 소포클레스가 누군가 이틀 또는 그보다 더 많은 날들을 미리 내다보려 한다면, 그는 어리석은 사람(트라키스의 여인들943~945)”이라고 노래한 것처럼 장래는 알 수 없으니. 어찌 알겠는가 그처럼 나도 데우스 엑스 마키나를 바랄 혼돈가운데 빠지게 될지.

 

에우리피데스의 타우리케의 이피게네이아에는 이 데우스 엑스 마키나가 등장한다. 아울리스에서 신전에 제물로 바쳐진 이피게네이아는 아르테미스에 의해 타우리스족의 땅 타우리케로 옮겨지고 신전의 사제로 살고 있다. 어머니와 그의 정부를 죽이고 복수의 여신들에게 쫓기던 그녀의 남동생 오레스테스는 아르테미스 여신상을 훔쳐오라는 아폴론의 명령을 받는다. 친구 퓔라데스와 그 땅에 도착하고, 사로잡힌 그들은 이 신전의 제물로 바쳐질 위기에 처한다. 제물의 축성을 담당한 이피게네이아와 오레스테스는 대화 도중 서로를 알아보게 된다. 남매는 토아스 왕을 속여 아르테미스 여신상을 가지고 이 땅을 탈출하기로 한다. 역풍으로 인해 배가 출발하지 못하고 생포될 위기에 처하지만 아테나 여신이 나타나 구해준다. 아테나 여신이 나타나 토아스의 추적을 멈추게 하고 그들을 떠나게 하라고 명령하는 장면이 바로 데우스 엑스 마키나다.

 

괴테의 타우리스의 이피게니에에서는 이 기계적 장치 데우스 엑스 마키나는 사라졌다. 대신 이피게니에는 더욱 적극적으로 그들을 살리려 하고, 그녀의 지혜와 설득의 힘이 구원으로 이끌고 간다. 그 땅의 통치자 토아스의 마음을 돌린다. 한때 낭만주의자였던 괴테다운 마무리란 생각이다.

 

에우리피데스의 아울리스의 이피게네이아는 트로이를 향해 출항하려고 모여든 그리스 연합군의 함대가 바람이 불지 않아 항구에 발이 묶인 상황에서 시작한다. 이미 이피게네이아를 제물로 바쳐야 한다는 칼카스의 예언이 아가멤논에게 전달되었고, 아가멤논은 그녀를 아울리스로 데려오라는 편지를 보낸 상황이다. 아가멤논은 자신의 결정을 후회하고 번복하지만, 메넬라오스가 막아서고, 아울리스에 모여있는 그리스 함대의 압박을 느낀다. 사실을 알고 클뤼타임네스트라가 반대하고, 이피게네이아 역시 아버지에게 애통해하며 간청한다. 아킬레우스 역시 그녀를 구해주겠다고 한다. 이피게네이아의 아버지의 호소에 다시 마음을 바꿔 희생하기로 결심하고 신전을 향한다.

 

이전 신화아이스킬로스의 오레스테아 삼부작, 소포클레스의 엘렉트라, 에우리피데스의 엘렉트라』―에 따르면 이피게네이아는 아울리스에서 희생 제물로 바쳐져 죽든지, 구원되어 헬라스에서 불멸의 존재가 되든지, 구원되어 타우리오족의 땅에서 불멸의 존재가 된다. 에우리피데스는 그녀가 죽지 않고 고향으로 돌아간다.

 

라신은 에우리피데스의 희곡을 따르면서, 더 많은 등장인물, 더 많은 변수들을 추가했다. 17세기 사람들에게 더 설득력이 있었을 것이다. 아킬레우스와 이피게네이아의 사랑이 이 극을 이끌어가는 한 축이 된다. 에우리피데스의 희곡에서 등장하지는 않았지만 아가멤논에게 존재만으로도 압박이 되었던 오디세우스가 직접 등장하여 트로이로의 출전을 재촉하는 그리스군의 입장을 대신한다. 라신은 여기에 이 극의 반전을 일으킬 인물 에뤼퓔레를 등장시킨다.

 

어쨌든 그리스 신화와 비극에 등장하는 아가멤논의 가정사를 보면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신의 분노를 산 아가멤논이 딸을 제물로 바치고, 그의 부인 클뤼타이메스트라는 트로이에서 돌아온 그를 죽이고, 딸 엘렉트라는 어머니와 정부 아이기스토스를 내내 저주한다. 아들 오레스테스는 복수를 위해 어머니 클뤼타이메스트라와 아이기스토스를 살해한다. 트로이 전쟁은 클뤼타이메스트라의 동생 헬레네을 구출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런 비극 아니 참극이 가능할까? 욕망에 사로잡힌 인간은 어떤 일도 벌일 수 있고, 그 욕망으로 인해 이런 비극은 오늘날에도 가능하다는 생각이다. 그것이 신탁이나 명예, 미덕이라는 것들로 포장되었을 뿐이다.

 

이피게네이아는 고대 그리스에서 여성의 지위를 시사하고 있다. 그 여성의 운명은 그 가정이 속해 있는 도시국가와 더 큰 세계의 정신이 지배하고 있다. 여성뿐 아니라 한 개인을 지배하는 시대정신과 그 정신의 한계는 이피게네이아를 재해석한 라신과 괴테에게서도 볼 수 있다. 개인은 그 정신에 의해 때로 원하지 않는 삶으로 이끌려 간다. 에우리피데스의 이피게네이아도 라신의 에리퓔레도 자발적으로 희생을 한 듯 보이지만, 실제로 그 선택에는 개인이 거스를 수 없는 큰 힘이 작용하고 있다.

 

나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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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곡 2023-08-21 16:4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노르웨이 숲에 저런 대사가 있었군요 잘 읽었습니다 한 주 잘 시작하시기 바랍니다!

그레이스 2023-08-21 16:59   좋아요 3 | URL
제 책이 오래되서 페이지 안 넣었어요.
거의 뒷부분에 있습니다.^^

페넬로페 2023-08-21 17:3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제가 하루키를 좋아하는 부분이 저런 면이예요. 엉뚱하지만 진지한 모습요.
에우리피데스 읽으면 저도 꼭 저 부분 인용하려고 했어요.

그레이스 2023-08-21 17:42   좋아요 3 | URL
^^~♡
어제 상실의 시대 다시 읽었어요.
3번째네요
바쁜데....ㅠ
다시 읽으니 못봤던 것들이 많았네요.

청아 2023-08-21 20:26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라신 희곡선>저도 읽어보고 싶어요.
아가멤논 <일리아드>에서 얄미웠는데 콩가루 집안이었군요?
상실의 시대 3독이라니 그레이스님~^^♡

그레이스 2023-11-08 13:11   좋아요 2 | URL
콩가루집안 ! ㅎㅎ
저도 일리아스에서 아가멤논 별로예요
여기서도 그렇긴한데,,, 그리스 연합군 총지휘관이라는 무게가 느껴지긴 해요.
암튼 갈등하는 그도 별로 맘에는 들지 않죠.
상실의 시대 읽을때마다 다르네요.
발췌때문에 도서관에서 노르웨이의 숲도 빌려봤으니...^^
그런 책이 있더라구요.
제게 자꾸 돌아오는 책이!

라신 희곡집도 좋았어요
잃시찾때문에 페드르(파이드라)도 봐야해요.

cyrus 2023-08-21 20:4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제가 20대 중반에 문학사상사 판 <상실의 시대>를 읽었어요. 책 속에 에우리피데스를 언급한 대목이 있었군요. 신기해요. 제가 요즘 읽고 있는 책이 에우리피데스 비극 전집 2권이거든요. 20대의 저는 에우리피데스를 잘 몰랐을 거고, 그가 쓴 비극을 읽을 줄 생각하지도 못했어요. ^^

그레이스 2023-08-21 21:07   좋아요 0 | URL
저도 그래요,
책을 읽을수록 자꾸 고전쪽을 향해 가게 되네요^^
 
길고 긴 나무의 삶 - 문학, 신화, 예술로 읽는 나무 이야기 피오나 스태퍼드 식물 시리즈
피오나 스태퍼드 지음, 강경이 옮김 / 클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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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서울에서는 자작나무를 볼 수 없게 될 것 같다. 한동안 공원마다 자작나무를 10주 이상씩 군식(群植)해서 하얀 수피를 감상할 수 있도록 했는데, 그렇게 심겨진 자작나무는 이제 기온상승으로 인해 시름시름 앓다가 죽어 한그루씩 베어져 나가고 있는 게 현실이다. 무리짓지 않으면 눈에 띄지 않는 나무다. 내가 처음 자작나무에 매료된 것은 광릉 숲에서다. 가을 금빛으로 반짝이는 나뭇잎들을 달고 무리지어 서있는 하얀 나무들은 숲의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안내하는 연구원 분은 이쪽 거는 우리나라 자생, 저쪽은 만주 자작나무 하고 손으로 가리키며 알려 주셨지만, 그런 식의 구분은 나에게 의미가 없었다. 하얀 옷을 입고 서있는 무리들이 만드는 이국적인 정취에 반해 이후로 자작나무는 나의 최애 나무 중 하나가 되었다. 세상의 모든 딸들이라는 소설에서 매머드의 시대 사람들이 자작나무 부드러운 수피의 효용에 대한 이야기가 지금까지 기억에 남아있다. 클림트의 그림, 시베리아 유형지 등, 자작나무 하면 떠오르는 것들이다.


나의 추억과는 다르게 저자는 이 나무 이야기를 자작나무(Birch)의 체벌(birch)이라는 뜻으로 시작하고 있다. 그 유연한 가지들이 회초리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수피에 있는 짙은 반점들은 눈처럼 보여서 아르고스(그리스 신호에 등장하는 백 개의 눈을 가진 거인)나무라고 부른다. 존 러스킨, 존 밀레이, 구스타프 클림트, 로버트 프로스트의 그림과 시에 담긴 자작나무를 소개하고 있다. 가장 인상적인 것은 오슬로 북쪽 거대한 삼림지대 노르마르카에 있는 은색자작나무 숲이다. 이 삼림지대 깊숙한 곳에 자리 잡은 <미래도서관>은 묘목들로 이루어져 100년 후 1000그루를 이용해 출판할 계획이라고 한다. 지금까지 청탁받은 작가는 마거릿 애트우드, 데이비드 미첼과 함께 한강도 포함되어 있다고 한다.

 

내게 있어 호랑가시나무는 항상 천리포 수목원을 떠올리게 한다. 방문 당시 탄성을 자아낸 것은 사람 키의 두배 정도 되는 사초류(억새)이다. 잡지에 나온 캘리포니아나 미국 남부지역의 저택 입구의 풍경을 이루던 그 식물을 보게 되어 반가웠고, 이런 조경식물이 우리나라에도 있었으면 했는데, 이제는 서울 도심에서도 심심치 않게 보게 된다. 또 한 가지 감탄의 대상이었던 것은 물속에 잠겨 있던 낙우송이다. 붉은 낙우송은 연못을 조성하면서 물에 잠기게 되어 그런 신비한 빛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이런 나무들에 시선을 빼앗기고 감탄하고 있는 우리에게 연구원은 그들은 열악한 생존을 이겨내고 있는 중이라고 수목원의 숲을 이루고 있는 호랑가시나무를 주목하라고 환기시켰다.


호랑가시나무는 백악기 화석기록을 남긴 아주 오랜 역사를 갖고 있다. 이름이 Holly인 이 나무는 크리스마스 리스에 많이 사용되는 것으로 사람들에게 친숙하다. 이름에서 예측되듯 악령을 쫓는다든지 이 나무를 훼손하면 재앙을 당한다든지 하는 그런 믿음들이 있었다고 한다. 미국의 Hollywood가 이 나무 이름에서 왔다. 재미있는 것은 유럽 이주민들이 미국 서해안에 도착해서 주홍 열매와 상록수 잎을 단 토착나무를 보고 캘리포니아 홀리(Callifornia Holly)라는 이름을 지어주었지만, 사실 그 나무는 토연나무(Toyon tree)였다는 사실이다. 어쨌든 토연우드보다는 할리우드가 더 그럴듯하다.

 

물푸레나무(Ash)는 실물보다는 도마나 가구, 문학으로만 익숙하다. 이제는 물푸레나무는 제임스 조이스의 지팡이와 존 컨스터블의 그림으로 기억될 듯하다. 컨스터블의 풍경화에 자주 등장하듯 영국의 풍경을 이루고 있는 흔한 나무이다. 이 나무로 크리스마스 전날 밤에 하는 놀이가 있다는 것은 쉽게 구하고 친근하다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속성수라는 점과 목재의 단단함과 유연성 때문에 목재를 다루는 이들에게 사랑받는 소재다. 썰매, 스키, 갈고리, 지팡이, 의자, 마차 바퀴 등에 사용된다. 제임스 조이스가 항상 들고 다닌 것이 이 물푸레나무 지팡이다. 1941년 생산라인을 떠나게 된 모스키토 폭격기 역시 이 나무가 재료이다. 1940년대 자동차의 뼈대에도 사용되었다영국에서 가장 친근한 나무 가운데 하나인 이 나무는 물푸레나무 역병과 호리비딱정벌레의 습격으로 인해 위기를 만났다고 한다.

 

사시나무처럼 떨다는 말이 영국에서도 통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포플러(Poplar)의 한 종류인 사시나무(은백양)은 잎병(잎자루)가 가늘어서 공기의 작은 흐름에도 흔들린다. 잎의 윗면은 짙은 초록색이고 뒷면은 은회색으로 이루어져 있어서 바람에 흔들리면 그 잎의 떨림이 반짝이는 듯 더 눈에 띈다. “존 키츠는 미완성 서사시 <히페리온Hyperion>에서 정복당한 고대 대지의 신들을 그릴 때 이 패배한 이교 신들의 지도자가 흐린 눈에 마비된 혀, ‘사시나무 병으로벌벌 떠는 수염을 가졌다고 묘사했다.(183p)” 내가 사는 아파트에는 조경수 뿌리에 달려와 심기는 바람에 이질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는 은백양이 한그루 있다. 책상에 앉아 창밖을 보면 바람이 없는 날에도 파르르 반짝이고 서있다.

 

저자는 이 책의 목차 첫 번째로 주목(Yew)을 두었다. 길고 긴 나무의 삶(The Long, Long Life of Trees)라는 제목과 가장 잘 어울리는 수목이기 때문일 것이다. 느리게 자라기도 하지만 긴 수명을 가진 나무다. 성장이 느려서 나이테로 그 정확한 나이를 측정할 수 없다. 오래 전 문학이나 역사 향토 기록을 통해 그 수명을 짐작해보기도 한다. 둘레가 10미터가 넘는 주목은 약 2,500년이 넘는다고 추정한다.


주목은 정원수 중 비싼 나무에 속한다. 묘목을 심으면 다음 세대에야 성목을 볼 수 있다. 아파트 입구에 원추형으로 서있는 것을 자주 보게 된다. 그 형태 때문에 겨울이 되면 전구로 크리스마스 장식을 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우리가 보는 그 형태는 전정가위로 다듬어진 모양이다. 주목은 잎을 잘라내면 옆으로 퍼지면서 밀도를 높이기 때문에 토피아리나 수벽으로도 이용된다. 유럽의 오래된 정원의 자수화단에 서있는 동물모양의 나무들은 대부분 주목이다느리게 성장하는 주목의 목재는 그만큼 튼튼해서 고급 소재로 사용된다. 목재의 강함과 탄성때문에 주목은 영국의 활 롱보우longbow 에 사용되었고 그 파괴력은 가히 위력적이었다고 한다.

<웨일스의 위대한 주목길>

웨일스의 위대한 주목 길에 있는 아치형 주목 터널에 있는 오래된 나무는 피를 흘리는 것처럼 붉은색의 액체를 내기도 한다. 주목은 나이가 들면 줄기 속이 비기 시작하고 가지가 늘어져 땅에 닿으면 그 가지에서 새로운 생장이 이루어진다. 그렇게 해서 터널이 형성된다. 사람들은 오랜 역사와 그 신비로움에 반하는 듯하다.


그밖에도 벚나무, 마가목, 사이프러스, 산사나무, 느릅나무 등 영국인들이 좋아하고 친근한 나무들과 관련된 역사와 신화 문학과 예술 정치와 경제를 시적 언어로 이야기한다. 프루스트의 작품에서 자주 그려졌던 산사나무와 포플라는 영국인들에게는 조금 다른 느낌의 대상이라는 생각이 든다. 산사나무의 추억과 관련된 프루스트의 아름다운 표현과 달리, 아일랜드의 산사나무(가시나무)는 경작지의 울타리로 사용되었고, 죽음을 상징하기도 하는 조금은 어두운 인상을 준다. 아일랜드의 기근을 배경으로 한 소설 <슬픈 아일랜드>에서도 산사나무가 죽음의 소식을 전해주는 매개로 사용되었다.

 

롬바르디아 사이프러스에 반해 여행자들이 영국으로 들여오던, 여행이 유행이던 시대 풍조들, 버찌와 산사열매를 좋아해서 식재를 장려한 왕들, 위험성 때문에 Cherry picker 면허를 받은 사람만 버찌나 산사열매를 수확할 수 있었다는 이야기들, 이 책에 등장하는 나무들은 신화, 역사, 생활사, 문학과 예술 등의 다양하고 무궁무진한 이야기들을 담고 있다. 새삼 나에게도 나무와 관련된 이야기들이 많다는 것을 알게해준, 충만한 독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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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곡 2023-08-18 00: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리뷰 잘 읽었습니다 남은 이 달 건강히 잘 보내시길 바랍니다 안녕히 주무세요!

그레이스 2023-08-18 05:13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서곡님도 건강히 잘 보내세요

청아 2023-08-18 08:45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자작나무 저도 좋아하는데 저희 동네 공원에도 있거든요. 그 자리를 지나갈 때마다 감상하려고
천천히 걷게 되요. 기온 상승으로 너무 많은 것들이 바뀌어가네요.
웨일스의 주목길도 아름답습니다! 빨간망토 소녀가 막 달려 나올 듯한^^
그레이스님의 피톤치드같은 리뷰네요~♡

그레이스 2023-08-18 10:05   좋아요 3 | URL
빨간망토 소녀를 상상하시는 미미님!
미미님이 그 소녀를 닮았을까요?
신비로운 주목의 생명에 감탄했습니다.

페넬로페 2023-08-18 09:43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강원도 월정사 입구에서 본 자작나무가 생각나요.
나무는 보기만 해도 좋아요.
근데 이름을 잘 몰라요.
웨일스 주목길, 가고 싶어요^^

그레이스 2023-08-18 10:08   좋아요 4 | URL
주목길 뿐 아니라 웨일스에는 저도 가보고 싶어요~♡

거리의화가 2023-08-18 12:3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물푸레나무 단단하면서도 유연해서 다양한 곳에 쓰이는군요^^ 주목의 터널이 만들어지는 과정은 놀랍네요! 올려주신 이미지를 보니 애니메이션이나 영화에서도 자주 본 듯합니다.
기후재난으로 이제 남한에서는 자작나무를 보기 어렵지 않을까 싶네요.

그레이스 2023-08-18 13:43   좋아요 2 | URL
예 자작나무 제대로 감상하려면 강원도 인제쯤 가야할듯요

책읽는나무 2023-08-18 18: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웨일스의 주목 터널은 좀 무섭네요?
사람의 팔 같아 보이기도 하고, 머리카락 늘어뜨리고 있는 것 같기도 하구요.
신비롭기도 하네요.
자작나무가 서울에도 있었었군요?
강원도 인제에만 있는 줄 알았습니다.
우리 동네는 뭐...아니 이 곳에 자작나무가? 하고 놀라서 달려 갔더니 인조 자작나무!!!ㅋㅋㅋ

그레이스 2023-08-18 18:25   좋아요 1 | URL
ㅎㅎ
그러고보니 무섭게 느껴질 수도 있겠네요
서울에도 한동안 자작 많이 심었었죠.
 
가벼운 마음
크리스티앙 보뱅 지음, 김도연 옮김 / 1984Books / 2022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어떻게 리뷰를 남겨야 할지 벅찬 책들이 있다. 온통 발췌문만 가득해지고 내 문장을 자연스럽게 연결하기가 힘든……. 보뱅의 책들이 그렇다. 아름답다는 말로만은 표현할 수 없다. 그가 보는 세계는 그에게서 정화되어 글이 된다. 그 글은 아포리즘이 되고 시가 된다. 새롭게 창조된 세상이 된다.

 

원제 ‘La Folle Allure’미친 발걸음정도로 번역될 수 있을 것 같다. 조금 더 순화하면 무분별한 발걸음이라고 하면 될까? 그러고 보니, 소설의 표제지에 인쇄되어 있는 작가의 글이 의미 있게 다가온다.


우리는 이중의 삶을 살아야 한다. 같은 수레에 묶여 서로 자기 쪽으로 미친 듯이 끌어당기는 두 마리 말과 같은, 기쁨과 고통, 웃음과 그늘이라는 두 줄기 피가 우리 마음에 흐르게 해야 한다. 그러니 적절한 보폭을 찾고 올바로 판단하려 애쓰는 눈밭의 기수들처럼 앞으로 나아가자. 그 길에서 만나는 아름다움이 때론 얼굴을 때리는 낮은 나뭇가지처럼 우리를 쓰리게 하고, 목덜미로 달려드는 황홀한 늑대처럼 우리를 물어뜯는다 해도.

-크리스티앙 보뱅


이 소설에는 가벼움과 무거움에 대한 글이 많이 담겨 있다. “나는 진지할수록 웃는 게 좋고,……이름들은 진지하다. ()은 태어날 때부터 당신 위로 떨어지고, 나이가 들수록 두툼한 옷 속으로 스미는 가랑비처럼 점점 더 무거워진다.(29)” 타고난 혈통에 덧입혀진 의미들로 말미암아 무거워진 존재를 생각하게 된다. 밀란 쿤데라는 자신의 소설에서 존재의 가벼움을 견디지 못하는 사람들로부터 독자에게 사유의 과제를 제시하고 있다. 보뱅은 이 소설 가벼운 마음에서 계속해서 탈주하는 주인공을 그리고 있다. 무거움으로부터 탈주다. 무거움을 견디지 못한다.

 

화자이며 주인공인 뤼시는 나는 오로르다라고 소개하고는 곧 아니 농담이다. 내 이름은 벨라돈이다. 그리고 마리 뤼드밀라, 앙젤, 에밀리, 아스트레, 바르바라, 아망드, 카트린, 블랑슈다.(29p)”라고 한다. 그녀는 그 누구도 아니고 그 누구도 될 수 있다. 한 가지 이름으로 규정되길 거절하고 규정 될 수 없다는 뜻이리라. 모비딕“Call me Ishmael”이란 문장으로 시작한다. 이 짧은 문장의 번역과 해석을 놓고도 독자들은 많은 의미들을 만들어 냈다. 이름으로 존재에 의미를 부여하는 대표적 소설이다. 반면 보뱅의 이 소설에서는 화자가 지나가며 가볍게 농담하듯 여러 가지 이름으로 자신을 소개하며, 오히려 웃음이 자신보다 강하다고 말한다. 이름조차 말할 필요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다!

 

뤼시의 영혼의 친구는 늑대다. “내 첫사랑은 누런 이빨을 가지고 있다.” 두 살 때 늑대의 우리 안에서 늑대의 배에 머리를 대고 잠이 들어있는 그녀를 발견했다. 그들이 공포에 떨었던 것은 우리 안에서 졸고 있는 짐승이 아니라 우리 위에 적힌 빨간 글씨의 안내판이다. “두렵게 만드는 건 이름이다. 이름이 없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며, 실체 자체도 없다.(11p)” 늑대의 죽음과 함께 그녀의 가출은 시작되었다. 그리고 그녀는 많은 이름들을 지어냈다.

 

뤼시는 서커스단에서 태어나 자랐다. 부모가 있지만 특별히 누가 부모랄 것도 없이 그 공동체 내의 열세 가정에서 동시에 자랐다. 어릿광대나 곡예사 아주머니 등 어른들에게서 자랐다. 그녀가 바라보는 세상은 직관적이다. 그녀에게 아버지는 늑대와 같고 어머니는 고양이 참새, 넝쿨식물, 소금, 꽃가루 같다.

 

뤼시는 네 살짜리 쌍둥이 동생들을 물속에 빠뜨리고, 머리위로 비둘기가 내려오는 것을 보고 싶어 세례를 주었다고 말함으로 어릿광대 아저씨의 교육을 무화시키지만, 그의 몸짓과 표정으로 표현된 복음서 이야기들을 승화된 아름다운 예술적 장면으로 기억한다.

종교에 관한 한, 나는 향유, 맨발, 머리카락, 이 눈부신 삼위일체에 머물러 있다.(41p)”

 

그녀는 글을 쓸 때 잉크로 쓰지 않는다. 가벼움으로 쓴다. 가벼움은 어디에나 있다. “여름비의 도도한 서늘함에 침대 맡에 팽개쳐둔 펼쳐진 책의 날개들에, 일할 때 들려오는 수도원 종소리에. 활기찬 아이들의 떠들썩한 소음에, 풀잎을 씹듯 수천 번 중얼거린 이름에, 쥐라산맥의 구불구불한 도로에서 모퉁이를 돌아가는 빛의 요정 안에,…… 저녁마다 덧창을 느릿느릿 닫는 의식에,……(68p)”

 

아름다운 글이다. 그녀가 말하듯 어디에나 가벼움이 있지만, 찾기 힘든 게 우리다. 그렇게 희박해서 찾기 힘들다면, 그 까닭은 어디에나 있는 것을 단순하게 받아들이는 기술이 우리에게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단순하게 받아들이기! 나로서는 실천하기 힘든 태도다. 그런 기술을 장착할 수 없는 것은 불안 때문이 아닐까? 이렇게 단순하게 생각해도 될까? 이렇게 생각나는 대로 말해도 될까? 그 뒤에 다른 의미들이 또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서커스단에서 태어나서 이리저리 유랑하고, 다툼이 일상인 부모가 불편하면 다른 트레일러를 찾아가고, 가출이 습관이 되어버린 아이 뤼시는 불행하게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세계 속에 감추어진 가벼움으로 글을 쓰는 능력은 그러한 삶에서 갖게 된 것이다. 누구에게나 그렇진 않겠지만 그녀에겐 축복이 되었다.

 

마주할 일을 미리 걱정하지 않고 바로 그때가 되면 생각하는 것, 어떤 일을 할 때 왜 하는지 몰라도 할 수 있다는 것, 가벼움으로 본 삶에 대한 깨달음이다. 사랑과 결혼에 대해서 질문을 한다. “사실 감정의 깊이는 사랑과 아무런 관련이 없을 때가 많다.” “부부생활을 더딘 죽음을 견뎌내는 커다란 짐승과 같다.” 그리고 궁극적인 질문 영혼은 무엇인가?”이른다. 누군가와 함께 하는 시간은 그녀에게 이런 질문에까지 이르게 한다. 그녀는 자신의 질문들에 바람을 쐬어 주고 응시하기 위해 자주 홀로 머문다. 그녀는 누군가의 구속을 받아들일 수 없는 존재다.

 

나의 늑대를 통해 깨달은 것이 있다. 눈에 비치는 모든 사람들이 그들의 죽음을 향해 가고 있으며, 그들이 다가오는 것 같을 때라도 실은 우리에게서 멀어진다는 것과, 모든 건 처음부터 사라지며 소멸해간다는 것이다. …… 그 때문에 오히려 주저하지 않고 사랑할 수 있으며, 그 생각으로 나는 이 순간에도 노래 부를 수 있다.(154p)”

 

누군가에게는 미친 발걸음으로 보일지라도 그것은 가벼움을 찾아가는 걸음이다. 그만큼 무게를 덜어내기가 쉽지 않으므로 갈지자로 보인다. 유목민처럼 태어나고 살았던 그녀일지라도. 수많은 의미가 담긴 시선으로 보면 그 가벼운 마음의 행보가 미친 듯 보인다. 그녀와 달리 오늘도 모든 상황에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 나를 본다. 무겁다. 무엇이 나에게 더 좋은 삶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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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아 2023-07-31 15:0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 책 너무 좋아서 주변에도 선물했던 기억이 납니다. 저에게는 웃다가 벅차서 눈물 나는 가벼움이었어요.
설명하기 힘들어서 독후감 쓰지 못했는데 그레이스님의 리뷰로 대리만족합니다.ㅎㅎㅎ

그레이스 2023-07-31 15:07   좋아요 3 | URL
미미님도 그러시군요.
그냥 책 한권으로 간직하고 싶은 그런 글들이죠. 뭔가 감상을 쓰는게 훼손하는 것 같은! ㅎㅎ

거리의화가 2023-07-31 15: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단순하게 받아들이기, 생각만큼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문장들이 참 아름답네요. 저도 언젠가 보뱅 만나보겠습니다^^*

그레이스 2023-07-31 15:28   좋아요 2 | URL

정말 넘 아름다운 문장들이예요
제 책상에는 환희의 인간이 올려져 있습니다.
절판된 책들도 다시 나왔으면 좋겠네요.

페넬로페 2023-07-31 15:2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사실 저 이 책 다 읽었는데~~
다시 읽으려고 해요.
제 나름의 의미를 아직 찾지 못했어요.

그레이스 2023-07-31 15:29   좋아요 3 | URL
예~
저도 다시 읽게 되면 놓친게 많은걸 알게 될 것 같아요

얄라알라 2023-07-31 19:1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그레이스님, 영광입니다!!!!

[가벼운 마음] 마지막 페이지까지 다 읽고, 바로 다시 앞으로 돌아가 읽었을 정도로 보벵의 문체와 매력적인 인간형에 반했었는데요. 그의 문장에 압도되다 보니, 찬탄만 나오지 독자로서 어떤 문장으로 정리해야할지도 모르겠더라고요. 저는 주인공이 남편을 떠나 계단을 내려올 때 내던 그 소리가, 책 읽은지 몇 달 지나고 난 지금 가장 먼저 생각납니다 그레이스님께서는 ‘이름‘에 주목하셨네요. ˝ 이름조차 말할 필요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다!˝(그레이스님 말씀)___ 혹 제가 이 책을 또 읽을 기회가 생긴다면, 그 땐 그레이스님의 시선을 상상하며 봐야겠어요^^

감사합니다. 다시 읽고싶어지네요

그레이스 2023-07-31 20:16   좋아요 2 | URL
감사합니다
댓글에 감동받았어요
저도 말씀하시는 그 부분 너무 인상적이었어요.
티타티티타티, 티타티타타티...~♡

제가 영광입니다^^

얄라알라 2023-08-01 12:43   좋아요 1 | URL
아!!! ㅋㅋ맞아요 그레이스님

˝티타티티타티, 티타티타타티....˝

자꾸 그 부분에서 무용수의 몸짓을 상상했는데

티타티티타티, 티타티타타티..
요거 였군요^^

2023-08-01 10: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8-01 10: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은오 2023-08-02 18:1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그레이스님!!!!! 가벼운마음 진짜 좋죠!!!!! 🥹🥹🥹🥹🥹🥹🥹🥹🥹🥹🥹🥹🥹🥹🥹🥹🥹
저도 너무 좋았어요......
그래서 보뱅 에세이도 한권 읽었는데 이것도 좋았지만 역시 가벼운마음이 최곤거같아요.. 진짜.. 너무 좋아....ㅠㅠ

그레이스 2023-08-02 21:31   좋아요 1 | URL

다들 좋다고 하시니, 저도 뿌듯합니다.
보뱅읽기는 계속되어야 할듯요.

얄라알라 2023-08-03 01: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어제 보뱅의 파란책을 빌려왔는데 제목이 갑자기 기억이 안남이요...혹시 은오님 말씀하시는 에세이일까?^^ 기억력을 구박하며 서가로...가봐야겠습니다 ㅎ

그레이스 2023-08-03 05:14   좋아요 1 | URL
환희의 인간!
저도 그거 읽으려고 해요~~

얄라알라 2023-08-05 03:54   좋아요 1 | URL
^^ 그레이스님

온통 파란 그 책 제목은 <인간, 즐거움>이네요 저도 이후 찾아봤어요

1984books처럼 편집이 예쁘지는 않아서 말 그대로의 파란색이예요^^

저도 나중에 <환희의 인간> 읽어볼게요 그레이스님

그레이스 2023-08-05 07:59   좋아요 0 | URL
그건 없는데...
찾아봐야겠어요
감사합니다

ㅠㅠ
절판된 책이군요.
도서관으로....!
 

그리스 비극을 처음 읽었을 때는 서사를 놓치게 되는 순간이 많았었다. 소포클레스 비극 전집 한권 전체를 읽는데 주석(註釋)이라는 돌부리들을 만나 흐름이 깨지는 것을 수없이 경험했다. 재독(再讀)의 즐거움 중 하나는 처음과 달리 제법 막힘없다는 것이다. 두 독서 사이에 지식을 쌓은 시간이 존재하기 때문이리라. 그럼에도 확인해야 하는 사실들이 있다. 처음 읽을 때보다 오히려 참고할 책들이 많아지기도 한다. 서사는 알고 있으니 처음 겉핥기로 지나쳤던 지식을 더 찾아보는 여유가 생기기도 했고, 무엇을 더 읽어야할지 잘 보이기 때문이다.

 

아폴로도로스의 비블리오테케 BIBLIOTHEKE를 번역한 이 책은 토마스 불핀치나 에디스 해밀턴, 그리고 국내작가가 쓴 그리스 로마신화와 달리 간결하여 곁에 두고 사전처럼 읽기에 편한 책이다. 호메로스나 기원전 5세기경에 활동했던 아이스킬로스, 소포클레스, 에우리피데스와 같은 작가들도 자신의 작품에서 신화나 영웅의 이야기를 각색하고 재구성했다. 이렇게 신화책들은 구전되거나 극적효과를 위해 재구성된 것들을 기록하다보면 내용이 많아지고 여러 갈래의 이야기가 공존하게 된다. 아폴로도로스는 기원전 2세기 알렉산드리아에서 활동하던 아테나이 출신 대학자이다. 이전 기록들을 참고하여 백과사전 형식으로 정리한 책이다. 그래서 제목도 비블리오테케 BIBLIOTHEKE’. 고대 도시 국가의 탄생과 그 왕들의 계보와 함께 그들과 관련된 신화에 관한 정보를 주고 있다.

 

그리스 비극을 읽기에 좋은 참고서다. 예를 들자면 소포클레스의 비극 오이디푸스 왕의 배경이 되는 고대 테바이의 신화와 역사를 시간에 따라 일목요연하게 알 수 있다. 특히 라이오스와 아들 오이디푸스로 이어지는 테바이의 왕위계승자들과 찬탈자들, 테바이 전쟁에 관한 기록은 두 세 페이지 안에 비극의 핵심 내용이 담겨있다. 한 줄의 문장을 비극으로 탄생시킨 작가의 상상력에 감탄한다. 아니, 복잡하고 극적인 사건을 신문기사처럼 간결하고 정확한 정보로 전달하는 아폴로도로스와 같은 기록자에게 감사하게 된다.


콜로노스의 오이디푸스는 시간적으로 오이디푸스왕안티고네사이에 위치하지만 소포클레스의 현존하는 작품으로는 가장 늦게 만들어진 것이라고 한다. 오이디푸스 왕이 분노와 죄책감으로 스스로 눈을 멀게 한 이후 시간이 흐른 후의 이야기다. 격정이 지나가고 절망했던 친부살해와 근친상간을 바라보는 그의 시각은 달라져있다. 콜로노스에 도착한 그는 아테나이 시민들에게 나는 법 앞에 결백하며 영문도 모르고 그리 했던 것이오.(549)”라고 말합니다. 진실을 알게 되었던 때, 죽는 것이 간절한 소망이었으나 세월이 흘러 고통이 가라앉고, “홧김에 지난날의 과오를 너무 지나치게 벌주었다고 느끼기 시작했을, 그때서야 비로소 도시가 나를 억지로 나라에서 내쫓으려 했다.(437~440)”라고 회상합니다. 콜로노스에 도착한 그는 아테나이 시민과 테세우스에 의해 환대를 받는다. 그는 예언자의 모습을 하고 있다. 과거 눈이 먼 예언자 테이레시아스를 비웃고 의심했던 오이디푸스는 테이레시아스의 위치에 서게 된다. 눈이 있으나 볼 수 없었던 것을 눈을 잃고 시간이 흐른 후 보게 되는 역설이다.

 

그를 쫓아온 크레온은, 아리스토파네스가 그의 희극에서 비판했던, 정치적이고 외교적 수사에 강한 인물이다. 그는 부드러운 언변과 태도로 감춘 욕망을 이루어내는 노회한 사람이다. 오이디푸스에게 행한 일들이 정의롭지 않음이 드러나도, 여전히 능란한 말로 변론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런 정치적인 인간도 안티고네라는 복병을 만나 악수를 두고 후회하는 순간이 온다는 것이 교훈적이다.

 

자신을 찾아온 폴뤼케이네스를 만나지 않으려하는 오이디푸스의 노여움에서 세월이 흐르고 깨달음이 있다 해도 여전히 성품이 변하기는 쉽지 않음을 보게 된다. 안티고네의 설득으로 내키지 않지만 아들을 만나기로 한 오이디푸스가 퇴장하고 코러스가 부르는 노래는 슬프다.

 

경박하고 어리석은 청춘이 지나고 나면

누가 고생으로부터 자유로우며,

누가 노고(勞苦)에서

벗어날 수 있단 말이오?

시기, 파쟁, 불화, 전투와 살인.

그리고 마지막으로 비난받는 노년이

그의 몫으로 덧붙여지지요.

힘없고, 비사교적이고, 친구 없고, 불행 중의

불행들이 빠짐없이 모두 동거하는 노년이.”

(1229~1238)

 

힘없고, 불행한 상황은 불가피하다해도, 비사교적이고, 친구 없는, 비난받는 노년을 피하려면 어떻게 해야할까를 생각해보게 한다.

 

주인공이 하데스를 향하는 장면은 호머의 오디세이아, 베르길리우스의 아이네이스, 단테의 신곡의 장면과 오버랩 된다. 또한 노년의 주인공이 욕망, 수치심, 분노 등을 내려놓고 죽음을 맞이하는 장면은 셰익스피어의 리어왕, 템페스트에서도 보게 된다. 오이디푸스의 죽음은 그의 비극적인 삶에 대한 보상처럼 보인다. 아폴로도로스는 비블리오테케에서 앗티케의 콜로노스에 도착한 그는 그곳에서 탄원자로 앉아 테세우스의 환대를 받았으나 곧 죽었다.(원전으로 읽는 그리스 신화211p)”라고 짧게 말하고 있으나, 소포클레스는 믿음과 상상력을 통해 재현한다. 고대인들에게 죽음은 또 다른 세계로 들어가는 것이며, 이 땅에서의 삶과는 영원히 이별하는 것이므로, 죽음을 앞둔 인간은, 모든 정념(情念)이 사라지고, 안식을 맞이한다. 인간에게 죽음은 실존이며 영원한 숙제이고 철학적 주제일 수밖에 없다. 문학의 주제로 반복 재현되는 이유일 것이다.

 

오이디푸스가 죽고 안티고네는 테바이로 돌아간다. 크레온은 테바이를 위험에 빠뜨렸던 폴뤼케이네스의 시체를 장사지내지 말라고 명령을 내린다. 오이디푸스의 두 아들이 벌였던 왕권다툼과 추방된 폴뤼케이네스가 아르고스의 군대를 이끌고 조국 테바이를 쳤던 테바이 전쟁이라는 역사가 배경이다. 그러므로 크레온의 명령은 타당성이 있어 보인다. 안티고네는 안티고네가 이 명령을 어기고 오빠의 시체 위에 흙을 덮으러 나서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명령을 어긴 안티고네를 체포해서 무덤에 가두는 크레온 앞에 다시 예언자 테이레시아스가 등장한다. 소년을 의지해서 등장한 그는 올바른 숙고(생각)’이 가장 값진 재산이라고 말합니다. 그 올바른 숙고의 결과는 양보’, 자기 의지를 바탕을 한 완고함을 거두고 유연해짐으로 나타난다고 한다. 올바른 길은 하나밖에 없음을 주장(796, 685행)하는 크레온에게 하이몬이 한 충고(710, 723, 712-14, 715-17행)와 맥락을 같이 한다. 하이몬과 테이레시아스 모두 배움과 양보, 그리고 실천적 지혜와 유연한 융통성을 강조한다.

 

마사 누스바움은 세계에 대해 완고하기보다는 유연하게 반응하면 세계가 품은 가치의 풍부함을 인식하는 길을 여는 한편, 충분한 만큼의 안전과 안정으로 향하는 길도 함께 열 수 있다.(연약한 선208p)” 고 말한다. 그가 말한 것처럼 크레온이 주장한 에토스의 단일성은 어리석고 추악하고 빈곤하다.

 

강태경 교수는 크레온은 페리클레스를 가리키고 있다고 한다. 당시 펠로폰네소스 동맹의 맹주 아테네는 패권주의를 추구했습니다. 기원전 5세기 페리클레스는 아테네의 동맹국인 밀레토스(Miletus)와 사모아(Samoa)의 분쟁에 개입하여 사모아와 전쟁을 벌인다. 분쟁국의 전쟁에 참여하게 되면서 전사자가 속출하자 가정장례를 국가 장례절차로 치르게 한다. 사모아와의 전쟁에서 승리를 한 후 페리클레스는 전몰자를 위한 장례의식에서 연설을 한다. 애도가 있어야 할 자리에서 연설을 했다. 페리클레스의 통치적 의도를 엿보게 된다.


이 작품이 디오니소스 연극축제에서 처음 상연되었을 때 아테네인들은 열광적인 반응을 보였으며 그 공로로 극작가를 사모아의 총독으로 추대했다. 이 작품은 첫 상연 이후 32년에 걸쳐 연속적으로 연극축제에 출품되었다.(『고전문헌목록』 J. 랑프리에르)


이 작품에 페리클레스를 비판하는 의도가 있었다면, 작가인 소포클레스가 사모아의 총독으로 추대됐다는 사실 또한 아이러니하다.

 

지금까지 안티고네에 대한 거의 모든 해석들은 헤겔의 논의의 변주와 반론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헤겔의 영향력은 절대적(안티고네39p)”이라고 한다. 그는 비극이란 동등한 두 권리 내지는 윤리적 요청의 충돌이며 안티고네는 그러한 충돌의 역학과 그것이 종합적으로 해결되는 정--합의 변증법적 과정을 결정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이라는 개괄적 이해를 제시한다. “상대적으로 동등한, 궁극적으로 일면적인이 두 윤리적 행위는 각자의 정당성에도 불구하고 상호배제적이라는 점에서 참된 정의”, 곧 보다 높은 윤리적 차원을 획득하지 못하고 상호 파멸에 이른다는 것이 헤겔의 설명이다.

안티고네는 시대와 함께 재해석되어 왔다. 18~19세기 계몽주의 시대, 안티고네는 들라크루아의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의 이미지로 열광 받았다. 양극화와 극단적 진영논리가 팽배한 현대 상황에서 마사 누스바움의 해석이 적용에 대한 통찰을 제시한다.

 

완전히 수동적인 희생자는 다른 사람을 돕는 행위를 할 수 없고 크레온과 같은 행위자는 타자를 보지 못한다. ‘운명의 칼날에 서려면 반드시 이런 식으로 질서와 무질서, 통제와 연약성 사이에서 극도로 섬세하게 균형을 잡아야 한다.(연약한 선208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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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아 2023-07-23 22:3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연약한 선>의 발췌문 인상적입니다. ^^
이렇게 어려운 책을 재독하시느라 뜸하셨군요!
공부는 할수록 해야 할 것들이 늘어나는 것 같습니다.ㅎㅎ

그레이스 2023-07-23 22:38   좋아요 3 | URL
^^;;
공부하는 팀이 늘어났어요.
고전 읽기 모임이 하나 더 생겨서 다시 재독 중입니다^^
재밌는데,,, 다시 읽고 논제 만드는데, 더 수월하지도 않네요.

새파랑 2023-07-24 00: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가 읽은 오이디푸스와 안티고네랑 좀 다른거 같아요 ㅋ 역시 아는 만큼 보인다고 깊이의 차이가 느껴집니다~!!

그레이스 2023-07-24 01:02   좋아요 1 | URL
;;
다 각자 읽는 프레임이 다를 뿐이죠.
감사합니다

독서괭 2023-07-24 18: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흐름을 잡을 수 있다고 하시니 혹하네요.
근데 저 <원전으로 읽는 그리스 신화> 샀던 것 같은데.. 심지어 읽었던 것 같은데..?? 본가에 있나 찾아봐야겠어요^^;;

그레이스 2023-07-24 18:02   좋아요 1 | URL
ㅎㅎ
완전 공감합니다.